추수를 끝낸 들판이 평온하다. 하얀 무게를 둘러쓴 거대한 알처럼 보이는 짚더미며 나락을 베어낸 자리 어느새 푸릇하게 올라와 오종종 떨고 있는 새순들이 늦가을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때를 잊고 꽃망울을 터트렸던 망초꽃도 엊그제 내린 된서리에 풀썩 주저앉았고 막바지 김장용 야채를 수확하는 손길로 분주하다. 가을 들판에 서면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새싹을 틔우고 무더운 여름 태풍과 장마를 견뎌 꽃을 피우고 태양의 길과 달의 날짜를 기억하며 열매를 익혀 수확을 끝내고서야 바람의 통로가 돼 주는 들판은 모성이다. 어린 나이 출가해 층층시하 어른들 봉양하고 자식들 다 키워 출가시키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견뎌냈을 어머니. 몽당연필처럼 닳고 닳은 손마디와 주름사이에 묻어나는 세월을 볼 때마다 어머니나 빈들이나 같다는 생각을 한다. 유년의 기억들이란 참으로 매콤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살얼음이 살짝 든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와 적당히 익은 김장김치 송송 썰어 넣고 끓여주시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양의 미꾸라지에 소금을 한주먹 뿌리면 세차게 몸부림치다 이내 잠잠해지던 미꾸라지를 쇠죽을 끓여낸 아궁이 잔불에 자글자글 끓여 아궁이 앞에서 퍼 먹던
날이 추워지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다. 내 자신부터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가난은 겨울추위보다 더 심한 추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날이 추워지면 가난이 더 서럽고 시린 법이다. 며칠 전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을 때 봤던 광경을 잊을 수 없다. 건강도 챙길 겸 우리 시의 골목골목을 살필 겸 관용차를 놔두고 걸어서 출근한지 꽤 오래이다. 걷다보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직접 민원을 챙길 수도 있으며, 더러는 무거운 짐을 실은 리어커의 뒤를 밀으며 난데없이 운동을 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 좋다. 그날도 걸어서 출근하고 있었을 때였다. 군포소방서를 지나 산본역으로 넘어오는 도로에 자신의 몸짓보다 두 배는 더 큰 짐을 소형카트에 싣고 아슬아슬하게 굴러가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에 무언가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신문뭉치와 종이박스를 산더미처럼 쌓은 짐사태였다. 그렇게 작은 카트 위에서 굴러가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짐을 끌고가는 건 건장한 장년남자가 아니었다. 가녀리디 가녀린 할머니였다. 칠십은 훌쩍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一勤天下無難事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이다. 다산 정약용은 배우는 사람들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외우는데 민첩한 사람으로, 이런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는 글 짓는 데 빠른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셋째는 깨달음이 빠른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거친 것이 폐단이다. 그의 어린 제자 황상이라는 이에게 준 가르침이었다. 둔하지만 계속 파고드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며 답답한데도 연마하면 그 빛이 빚난다. 파고드는 방법도 부지런함이다. 평생 부지런함을 잊지 말아라. 다산 정약용의 권학문(勸學文)이다. 황상은 이를 가슴에 새겨 정의로운 세상과 다산의 학풍을 계승해 최고가 됐으며 당대 추사(秋史) 김정희가 지우(知友)로 여길 만큼 시문에도 뛰어났다. 세상을 살다보면 불평과 남의 탓, 나아가 사회 탓으로 돌리고 자기노력은 하지 않은 이들이 많다. 이들은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 부지런함은 지위와 부를 얻는 재산이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많아도 게으르면 잃는 것도 순간이다. 멀리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이웃에서도 자주 볼…
구조조의의 태두라는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1955년 브라질 원주민을 연구한 기념비적 작품인 ‘슬픈 열대’를 발표했다. 9부로 나뉜 이 책은 서구중심의 사고(思考)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만행을 일삼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명저로 손꼽히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학자, 인류학자, 인문학자, 생태학자 등 전문분야가 다른 이들이 읽더라도 저마다 자기 식으로 감명을 받는 ‘깨달음의 바다’와 같은 역할로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각광을 받고 있다.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슬픈 열대’에서 말하고 있는 이분법의 폭력성과 자기중심적 파괴성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책을 통해 서구중심의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적 판단의 오류를 자신이 관찰한 브라질의 4개 부족을 통해 입증했다. 그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서구사회와 다를 뿐’ 비이성적 야만이거나 악(惡)의 집단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보로로족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는 그들이 각자의 역할에 다라 사회적 시스템을 이루고 유기적으로 생활하고 있어 결코 서구의 사회시스템에 뒤떨어지지 않음을 입증했다. 또 우리가 이해 못하는 그들의 관습과 생활양태는 나름의 과학적 근거와 종교·문화적 법칙아래 조화되고 있음도 보여준다. 오히
요즘 기자들은 금요일에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 회사에 출근은 하지 않지만 출입처를 돌며 일요일 회사에 나와 작성할 기사거리를 취재해 놓아야 한다. 25일 오후가 되자 기자들이 출근하지 않아 텅빈 회사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최영재 기자가 누구에요, 기자상 받으신다면서요” “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전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본보 최영재 기자가 특종 보도한 ‘용인시 용인경전철㈜ 비리 의혹 기사’가 한국기자협회 제254회(10월)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였다. 한국기자협회 소속 회원사가 신청한 40여건의 기사 가운데 본보 최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포함해 모두 5건의 기사가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최 기자가 용인 경전철 특혜 비리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은 지난 4년 전의 일이다. 최 기자는 용인경전철 문제를 한시도 놓아본 적이 없었다. 용인시 전체 예산의 상당액이 투자되고도 운행조차 되지 않는 전철문제를 꼭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용인시와 시행사인 용인경전철㈜의 갈등으로 국제중재에 넘겨진지 6개월이 훌쩍 넘어가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져 갔다. 최 기자의 끈질
이번에는 부천시장이다. 벌써 도내에서만 하남시장, 과천시장에 이어 3번째다. 다른 게 아니고 지자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이다. 본보에서 이미 사설과 창룡문 칼럼을 통해 지적한 바 있는 주민소환제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불법, 부당한 행정행위와 도덕적 해이 등을 지역 주민들이 견제해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취지였다. 임기 중인 선출직 공직자를 유권자들의 투표에 의해 해임할 수 있다. 즉 지방자치단체의 인사권을 주민이 갖는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에 의해 뽑혔지만 초심을 잃고 주민의 의사에 반하는 독선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정을 하거나 부패한 행위를 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을 해임시킬 수 있는 주민소환제는 선출직 지방 공직자를 견제하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이번에 김만수 부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이 벌어지게 된 것은 김 시장이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추모공원 조성사업을 철회하고, 뉴타운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등 독선적으로 시정을 이끌었다는 것이 이유다. 부천여성단체협의회, 부천추모공원추진비상대책위 등이 주민소환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갖고 서명운동에 들어간다고 한다. 주민소환제는 분명히 필요
광주시 중부면에 있는 남한산성을 광주 땅으로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곽을 경계로 남쪽은 성남시, 북쪽은 하남시이고 산성 내부와 그 중 통행량이 비교적 적은 동쪽방면이 광주시이고 도립공원으로 경기도에서 관리하고 있어 광주시가 별로 관여할 일도 없기 때문에 찾는 이들은 대부분 성남시 땅이겠거니 한다. 그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광주사람들의 남한산성에 대한 애착과 긍지는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1천년 전 광주는 지금의 안산에서부터 한강 이남의 엄청난 지역에 걸쳐 있었다. 그래서 고려 때에는 경기와 충청인근을 양광도라고 불렀는데, 이는 양주와 광주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 계속 줄어들어 지금은 남한산성만이 천년광주의 자존심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산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참 많이도 소풍을 다녔다. 봄, 가을 소풍 때마다 항상 목적지의 첫 순위에 올랐으니까. 첫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졸업반 수학여행버스에 함께 얹혀 갔었는데, 길도 험했고 성곽이나 성문이 부서져 볼품이 없었다. 수어장대 옆에는 탑신 위에 날개를 편 봉황
SNS 열풍은 反정부 선동·사생활 침해 등의 도구가돼 사회혼란을 야기했다…살만한 세상은 각자의 삶에 책임의식을 갖고 생활하는 환경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로마의 철인 세네카는 “만일 당신이 주의해 보면 인생 최대의 부분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지나가고 많은 부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동안에 지나가며 전 생애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삶의 본질 자체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말이라 여겨진다. 사실 인생 자체는 결코 생각만큼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헛되이 낭비하다가 마침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비로소 인생이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여하에 따라 인생을 짧게도 그리고 길게도 할 수 있다. 사실 산다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요, 사람답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인데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태어나고 죽기까지의 개인에게 주어진 삶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일정한 분량이 주어지게 된다. 그 분량에 따라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삶이 목표에
개그맨(Gagman)은 우스운 행동이나 우스갯소리로 일반 대중을 웃기거나 즐겁게 하는 사람을 말한다.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하던 ‘코미디언(Comedian)’이라는 말과는 구별되는데, 코미디언들은 자빠지고 넘어지는 몸웃음에 강했다면 개그맨들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풍자, 그리고 타이밍을 살리는 각본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웃음을 주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단어의 시대적 변천일 뿐 커다란 차이가 없어 보인다. 구태여 어원을 찾으면 미국과 유럽까지 번지지만 우리가 정겹게 쓰고 있는 개그맨이라는 말은 원로 개그맨이 스스로 작명(作名)한 ‘콩글리시’라고 한다. 요즘은 개그맨들이 대세다. 각 방송의 황금시간대를 쥐고 있는 주인공 대부분이 개그맨이며 이들은 개그프로그램뿐 아니라 각종 프로그램의 사회자, 패널로 등장해 주가를 높이고 있다. 따라서 잘 나가는 개그맨의 연수입은 100억 원대가 넘는 경우도 있어 청소년들로부터 동경의 대상으로 부상한지 오래다. 이들 개그맨 중에도 최근 언론과 세간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는 두 명의 개그맨이 있다. 한 명은 ‘최효종’이라는 남자 개그맨으로 개그프로그램에서 국회의원을 풍자했다가 고소를 당해 더욱 유명해졌다. 최 씨는 모 방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