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은 세계문화유산이다. 그 화성에 한옥마을 조성이 결정됐다. 오랜 시간 결정을 못 내리고 있던 수원시가 최종결론을 내린 것이다. 국내에는 현재 8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순수한 숫자 통계로만 보면 세계 상위권에 속할 만큼 우리의 문화유산은 그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국토의 수십 배, 인구 역시 20배에 가까운 중국에서조차 우리보다 적은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이번에 결정된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면 우리는 총 9개의 세계문화유산 보유국이 된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후 유적에 대한 사후관리는 그렇게 흡족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주위 상황변화와 함께 이번 수원시의 결정은 크게 환영받을 만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서울북촌의 한옥마을이나 전주 한옥마을 등 지자체 고유의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어 수원 한옥마을에 대한 기대를 더 갖게 하는 것이다. 수원시는 공사비용 50% 범위 내에서 한옥신축보조금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을 지원받으려면 시에 등록을 한 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옥심의위원회 심의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재 추진 중인 성곽주변 노후주
회사측과 노조는 끝 갈 데까지 으르렁대고 싸운다. 노조는 머리에 빨간띠 두르고 회사측을 향해 요구사항을 외친다. 이에 회사측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나몰라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회사는 생산성을 잃고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끝내 문을 닫고 만다. 회사는 만신창이가 되고 노조원들도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싸워 득 될게 무엇인가. 회사의 존폐가 달려있으면 그 대립은 심해진다. 쌍용자동차 사태가 바로 그렇다. 평행선을 그으며 달리는 철도의 궤도처럼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법정관리 절차가 진행 중인 쌍용차는 22일 정리해고와 별도로 1천400여명의 퇴직이 이미 확정됐다고 밝혔다. 쌍용차 이유일 공동관리인은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별관 청사에서 열린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 집회에서 “정리해고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나름대로 기울이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쌍용차 노동조합은 평택 공장 출입구를 봉쇄하고 ‘공장 점거파업’을 시작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좀 색다른 노조도 있다. 1960년대 초 설립된 오산시에 소재한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대광다이캐스트(주)의 경우다. 이 회사는 지난해 1월 부도로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같은 해 12월
얼마 전 2009년도 병무행정발전 시민참여위원으로 위촉되어 병무행정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젊은 시절 심신을 다 바쳐 근무했던 나의 옛 직장인 인천경기지방병무청을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방문했다. 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벚꽃과 개나리꽃이 만발한 청사의 아름다운 환경에 매료된 채 곧바로 후배직원들의 반갑고 따스한 환대 속에 회의장으로 향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병역자원과 유동인구를 보유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 김노운 전 청장을 비롯한 전 직원들이 일치단결하여 2008년 전국에서 손꼽히는 우수한 지방병무청으로 선정된 과정을 들으며 내가 근무했던 직장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긍지를 갖게 되었다. 또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성심껏 수행하여 오늘날의 병무행정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후배직원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알기쉬운 병무행정 매뉴얼과 민원백서 발간, 역사와 지역특색을 접목시킨 징병검사장과 군지원센터, 민원실 등의 환경개선, 2008년도 한해동안의 경인청 역사를 총망라한 ‘飛上 경인청! 우리들의 발자취’ 영상물 제작 등의 우수사례는 인천경기지방병무청이 이룩한 주목할만한 큰 성과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우수사례 외
80년대 우리산업 노동력의 주력부대는 20, 30대였다.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생산노동인구는 30, 40대로 바뀌었다. 불과 20년 만에 취업자 비중에서조차 큰 변화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우리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60년대 산아제한 구호는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 또는 ‘잘 자란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우스갯소리까지로 진화하기도 했다. 당시 산아제한은 일종의 사회운동으로까지 발전했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누구나 한 번쯤 겪었던 웃지못할 일들이 수두룩했다. 길거리에서 아주머니들이 길가는 청년들을 불러 세웠다. 정관수술을 받은 사람에게는 카스테라 한 개와 우유 한 병을 주었다. 내달 예비군 훈련도 면제됐고 국가정책에 이바지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그 후 30년 뒤 오늘처럼 세계 최고의 저출산국이 되었다. 그때 수술받은 현재의 50, 60대 장년층들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들이 출산세대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노년인구는 늘어나고 신생아들의 출산율은 계속 하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노동력은 점점 늙어가고 있었고 이제는 숫제 40, 50대가 생산주력인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행정부, 정치권, 경제계,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네티즌 등 각계각층은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과 함께 비통한 심정을 드러내면서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각 정당과 경제단체, 종교계 등은 공식 논평을 잇따라 발표해 애도의 뜻을 표했으며, 네티즌과 시민들 그리고 고향인 김해 봉화마을 사람들도 절절한 추모의 정을 드러냈다. 평소 이념 갈등이 있었던 시민단체나 학계도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한 마음으로 애도의 뜻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은 “농촌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겠다”며 퇴임 직후 고향인 봉화마을로 낙향했지만 그 역시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한 전철을 밟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최고의 권좌에 오르기까지 도덕성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아왔다는 점이 오히려 ‘결백’의 표시로 자살을 선택한 배경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없지 않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았지만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을 마감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강도는 더 할 수밖
최근 배달업체 종사자 및 청소년들의 무질서한 이륜차 운행으로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전체 교통문화를 저해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이륜차 운행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이륜차에 대한 지속적인 계도 및 단속에도 불구하고 교통사망 및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이륜차 치사율은 6.4%로 자동차의 치사율 2.5%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하남경찰서는 이달부터 오는 11월 말까지 약 7개월간 이륜차량에 대하여 보도주행, 안전모 미착용, 난폭운전 등 3대불법행위에 대한 집중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하남경찰서는 이륜차의 불법행위에 대해 단속 및 지도할 방침이며, 특히 사업용 이륜차량 운전자 및 업주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다. 첫째, 사람이 다녀야 할 인도 또는 횡단보도에서 이륜차를 탄 채 질주하는 행위는 사고위험이 크니 도로주행을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안전모를 쓰지 않거나 폭주행위 등 난폭운전을 할 경우 사고발생시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니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셋째, 업주들은 배달원이 무면허인 것을 알고도 고용하여 배달토록 한 경우, 형사책임과 더불어 사고발생시 민사적 책임
4선인 과천·의왕출신 안상수 의원이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것은 친이(이명박 대통령)계의 주도권이 당분간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후임 사무총장에 직전 정책위의장을 지낸 임태희 의원(성남 분당을)이 유력시 되고 있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친이계가 공천권을 거머쥐고 행사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당 사무총장 자리는 당장 다가올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의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아무리 친이, 친박간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해도 친이계가 사무총장 자리를 친박에게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청와대 한 참모도 “원내부대표단 인선에서 친박 의원들을 상당수 기용할 수는 있어도 당 사무총장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말했다. 안상수 의원의 원내대표 선출은 당내 경기권 권력지도의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당내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는 직전 정책위의장을 지낸 임태희 의원의 거취도 이와 맞물려 관심의 촛점이 되고 있다. 우선 안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맞닿아 있다. 청와대 한 핵심 참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쟁점법안 처리 등 현안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
‘불의 모험(The Adventures of the Fire)’을 주제로 경기도 이천, 광주, 여주에서 열린 제5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가 30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24일 막을 내렸다. 경기도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라 많은 볼거리를 기대하며 지난 23일 이천축제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천터미널에 내려 주위를 둘러본 뒤 열악한 인프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 식당이나 숙박시설은 낙후됐으며 주차장도 좁아 행사장을 찾는 차량들이 난립해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외국인이 있어 통역을 부탁한다는 요청이 있었다. 그러나 담당자는 10명 이상의 단체관람객에 한해서, 그것도 며칠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며 불가하다는 답변했다. 더구나 통역관 배치 현황은 영어 통역관 3명, 일본어 통역관 1명에 불과했다. 사전에 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지원의 일환으로 통역관을 충분히 배치하겠다고 했었지만 현장의 사정은 달랐다. 또한 행사장에는 초등학생이 유난히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통솔자는 초등학생의 교육을 위해 지자체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자체별 할당에 따라 가장 ‘만만한’ 초등학생들이 동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급서했다. 뜻밖의 비보에 모두가 놀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를 나와 봉화산에 올라 부엉이 바위 아래로 뛰어내려 자살하기까지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행했던 경호원이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가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이송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9시 30분 숨을 거뒀다. 향년 63세를 일기로 한 파란만장한 생애는 그렇게 끝났다. 그는 남다른 인생을 살았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되었지만 7개월 만에 법복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이 때가 인간 노무현의 후기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으나 그를 정치 스타로 급부상시킨 것은 5공청문회였다. 반골로 일관한 그는 2002년 12월 19일 1201만 4227표(유효투표 48.9%)를 얻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권의 꿈까지 이뤄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10월 10일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 2004년 3월 12일 국회 탄핵소추 의결로 헌정사상 최초의 ‘권한 정지’ 대통령이 된 데 이어 같은해 10월 12일 수도이전법 ‘위헌결정’까지 받으면서 임기 동안 바람 잘날이 없었다.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