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절정이다. 점심 식사 후 잠시 동안 단풍놀이를 하던 중, 저물어가는 가을 정취에 대한 감상이 오고 갔다. 함께 걷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아직 푸릇한 소나무만 없다면 오색 단풍이 더욱 아름답겠다’고 말하였다. 무리 중 일부는 그말에 공감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과는 생각이 좀 달랐다.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더욱 빛이 나는 이유는 바로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한 채 섞여있는 사철나무 때문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이들이 전부 어우러져야만 더더욱 오색이 영롱할 수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 모두가 동의하였고 다시 단풍에 대한 감상은 계속되었다. 다양성이 어우러지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는 굳이 단풍놀이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며칠 전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도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 링컨의 노예 해방 이후 137년만에 미국의 수장이 유색 인종으로 바뀐 인류사적 사건은 바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유색 인종인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다는 사실 외에도 그보다 더 우리를 경이롭게 하는 일은 바로 지금까지 미
농경사회가 아니라도 농업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현실은 늘 거꾸로 걸어왔다. 그 결과 농촌인구가 작년에는 350만 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65세 이상 노인들이 37%를 차지하는 등 농촌이 고령화의 길로 접어든지 오래다. 문제는 도시가구와의 경제격차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90% 수준이었던 도시 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이 이제는 75% 수준 이하로 내려앉았다. 각종 보조금의 폐지와 낙후된 유통구조 탓이 큰 듯하다. 그런데 시름이 깊은 농민들에게 세계 각국과 체결될 자유무역협정(FTA)이란 복병이 하나 더 생겼다. 갈수록 농업부분 수입개방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농약, 비료값 등의 값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이 산지 농산물 값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망한 젊은이들이 선뜻 영농후계자로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올해도 굵직한 농업과 관련된 사회문제들이 연이어 터졌다. 연초에 국제 곡물가격 폭등을 시작으로 미국산 쇠고기파동, 중국산 멜라민파동 등에 이어 쌀 직불금파동은 가히 충격이었다. 애써서 지은 농사가 대풍년이면 어김없이 농산물 값은 과일, 채소 할 것 없이 폭락하기 일쑤다. 올해도 그렇다. 재배 농가들이 피땀 흘려 지은 농사를 갈아엎어버리는가 하
성인에서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휴대전화를 손에 지니고 있지 않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휴대폰은 대중화됐다. 학생들은 휴대전화로 통화하기보다는 교실 앞·뒤 자리에서도 문자로 대화하기 일쑤다. 일명 엄지족 들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들만의 함축된 단어를 짧고 간결하게 수십 번씩 주고받는다. 지난 2006년 운전중 휴대전화 사용을 전국적으로 집중 단속했을 때만 해도 전화기를 손에 들고 통화하는 행위 위주로 단속했지만 이젠 통화뿐만 아니라 운전 중에 문자를 주고받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에 그 위험성이 심각하다. 지난 9월 12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는 400명의 승객을 싣고 달리던 통근열차가 화물열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나 25명이 사망하고 135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원인은 적색신호등을 미쳐보지 못한 기관사의 실수였고 기관사는 충돌 직전에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고 미국 방송이 보도한 적이 있다. 실제로 운전 중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거나 쓰게 되면 사물에 대한 반응시간이 35% 둔해지는 것으로 미국 교통연구소의 실험결과가 드러났으며 실험에 참가한 운전자들 91%가 문자를 쓰는데 정신이 팔려 핸들 조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휴대전화 사용을 금
전국 어느 지방시나 마찬가지겠지만 광명시도 밤거리는 유흥가의 불빛으로 인해 네온 싸인 이 홍수를 이루고 여기 모여드는 층이 주로 청소년이라는데 문제가 있어 어떤 특별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유흥가의 주 손님은 학생·청소년 아니면 이미 기성세대에 접어든 젊은 세대들로 젊은 신세대들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통금 시간(전일 12시-다음날 새벽 4시까지)이 되면 고요함과 함께 적막이 흐르고 온 나라가 평온함을 만끽하며 각 가정에서 편히 쉬는 시간에 오로지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위를 담당한 공권만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을 기다려야 했다. 이미 오래전 30여년의 세월 속 에 묻혀버린 엄격한 사회 규제 제도 속에 해방직후인 1945년 9월부터 사회혼란을 막기 위해 통행금지라는 법을 준수하며 살아온 우리 기성세대들에게는 여기에 얽힌 애환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공권력은 땅에 떨어져 나 딩굴고 경찰력은 밤새워 술 취한 취객들에 봉변을 당하기 일쑤요,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서로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의 시간관념이 없어지다 보니 자연히 부모 형제의 우애도 없어지고 심지어는 부부간에도 밤 ,과 낮 이 엇갈린 현상에…
산업시대의 원동력이 증기기관이었다면, 정보시대에는 그 원동력이 컴퓨터입니다. 불과 70여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컴퓨터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이 사용하는 컴퓨터의 성능은 그 필요에 의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성능은 더욱 발전해서, 노트보다 작은 컴퓨터의 성능이 10여 년 전의 데스크 톱 컴퓨터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대하고 복잡한 연산을 요구하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는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용량, 고성능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고성능 컴퓨터를 “슈퍼컴퓨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기상청이나 국방과학연구소 등 몇몇 기관에서 슈퍼컴퓨터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이러한 고성능 컴퓨터를 보유하는 것은 엄청난 비용으로 인해 거의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사용할 일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슈퍼컴퓨터와 같은 계산 능력과 분석 능력이 필요하다면 그리드 컴퓨팅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드 컴퓨팅은 이미 보급되어 있는 컴퓨터나 데이터 저장장치, 각종 최신 실험장비들을 통신망으로 연결시켜 마치 하나의 컴퓨터처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18년째를 맞고 있다. 1950년대 지방자치는 중앙에 예속된 지방자치였고 그 수명도 매우 짧았다. 그래서 1990년대 다시 시작된 지방자치를 우리정치사의 첫 지방시대로 꼽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쥐고 있고 지방은 지방대로 줄서기를 비롯한 중앙예속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잇따라 불거지는 단체장들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 지방정치의 한계인가를 생각해보면 새삼 지방자치의 위기로 연결 되곤 한다. 지방자치의 꽃은 시장군수 등 기초단체장이다. 예산과 인사권 등 핵심권력이 단체장에게 함빡 몰리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방의 유력인사들이 지방정치권으로 진출하게 되고 이러한 현상이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체장은 또 다른 이면을 가지고 있다. 절대 권력의 절대 부패 이론처럼 단체장으로 당선되기까지 그들의 속은 새카맣게 오그라들었다고 한다. 중앙이건 지방이건 선거는 혼자 치를 수가 없다. 개인의 탁월한 능력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중앙정치권과의 줄타기, 지역 내에서의 확실한 지지세력, 그리고 자금이 있어야한다. 그래서 당선 뒤 지지 세력에게 돌려줘야 할 그 ‘대가성
개교 35주년을 맞은 아주대학교가 개교 50주년이 되는 2023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한 ‘아주비전 2023’ 선포식을 가졌다. 이날 선포식에서 서문호 총장은 선언문을 통해 “융합학문을 선도하는 ‘아주비전 2023’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라고 전제, “5년 뒤인 2013년까지 국내 대학 10위, 10년 뒤인 1018년까지 국내 사립대 5위, 50돌이 되는 2023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6만 아주 가족의 결속과 열정이 필요하다며 희망찬 미래를 향해 비상(飛翔)하자는 호소의 말도 잊지 않았다. 알다시피 아주대학은 1973년 개교 당시 공과대학으로 출범했었다. 당시의 수원은 개발도상의 중소도시로 대학 다운 대학이 없었다. 도시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의 교육 여건도 열악했다. 당시 국내에 근대화와 공업화의 바람이 불던 때라 공과대학에 대한 인식은 높은 편이었지만 다른 한쪽에서 인문계 대학 선호 열풍이 불면서 공과대학으로 일관하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결국 아주대는 자연스럽게 종합대학으로 개편되고 말았지만 경기도를 대표하는 토착 대학으로, 그리고 대학 교육 측면에서 소외되
지금은 어지간히 자연스러워졌지만 상례(喪禮)의 경험이 일천(日淺)하던 시절에 문상(問喪)을 가 상주(喪主)와 마주 대하고 조문(弔問)할 경우 참으로 갑갑할 때가 많았다. “얼마나 비통(悲痛)하십니까.”,“얼마나 망극(罔極)하십니까.” 주로 이런 말로 상주들을 위로하는데 어색한 이유는 평소 비통이나 망극같은 용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다음 망인(亡人)의 연세, 장지, 발인일시 등 순서로 문답을 주고 받는다. 상주들 또한 처음 상을 당하는 경우 경험이 없는지라 조문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고 서로 큰절로 예를 갖추고 웅크린 채 눈만 빤히 쳐다보는 게 일상적이었다. 경험담인이데 내가 상주가 됐을 때였다. 그 당시 꽤나 유명한 분이 조문을 오셨었다. 교회 장로이며 열 개 정도의 사립학교 이사장으로 계셨었는데,아마 상주가 굴건제복(屈巾祭服)을 하고 대나무 지팡이까지 손에 잡고 있는 초상집 조문은 경험이 없었던 모양이다. 잠시 뻔히 쳐다보시더니 순간 할 말을 잊었는지 “더운데 욕보십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난처한 노릇이었다. 상주의 몸으로 어찌 날씨가 덥거나 추운게 무슨 상관이며 덧붙여
“모든 일의 성패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사고와 자세에 달려있다. 바로 정신의 힘이다. 신념은 불굴의 노력을 창조할 수 있다. 진취적인 정신, 이것이 기적의 열쇠이다. 나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라고 규정짓는 일에 도전하여 그것을 이루어내는 기쁨을 보람으로 오늘까지 일해왔고 지금도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이 무한한 인간의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에 현대조선중공업을 창업한 정주영이 남긴 말이다. 그가 타계한지 7년째가 된다. 현대조선은 오늘날 현대중공업으로 상호가 바뀌었다. 조선소를 기공한 것은 1972년 3월이었다. 일반의 상식대로라면 조선소를 먼저 완공하고 선박건조 수주를 해서 조업에 들어가는 것이 정상인데 정주영은 조선소 기공도 하지 않은 1970년 12월 그리스로부터 26만톤급 유조선 건조계약을 체결하고 조선소를 나중에 세웠다. 속된 말로 돈키호테식 발상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창업주인 정주영이 타계한 뒤 후계자가 된 정몽준 회장에 의해 급성장, 이제 부동의 세계 1위 조선그룹이 됐다. 2004년 세계 최초로 육상 선박건조(10만5천톱급)방식을 도입하면서 도크 건조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