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헌법재판소는 박근혜에 이어 두 번째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다음은 그 이유를 밝힌 판시(判示)의 한 대목이다.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였습니다.’ 세계챔피언이었던 왕년의 권투선수 홍수환, 1977년 11월 도전(挑戰)전 2라운드에서 4번이나 다운됐다. 3라운드에서 ‘지옥의 투사’라던 챔피언 카라스키아의 턱과 배를 통렬히 때려 눕혔다. 칠전팔기(七顚八起)를 떠올리는 ‘4전5기’, 지금도 많은 이들의 ‘신화(神話)’의 대명사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아들의 고함에 절규하듯 엄마는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소리쳤다. 이 대목, 곧 얘기 거리가 됐다. 왜 ‘대한민국 만세’가 아니고 ‘대한국민 만세’냐 하는 시비(是非)였다. 기억에 따르면, 당시 신문 등은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기뻐서 생각 없이 내지른 말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한 이번 판결에 엄연(儼然)히 존재하는 ‘대한국민’도 그러할까? 우리나라 이름의 본디는 대한(大韓)이다. 구한말 고종황제는 그 이름에 제국(帝國) 칭호 달아 ‘대한제국’ 깃발을 세웠다. 다음 시대
총체적 위기다. 대한민국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다시 일어나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주저앉을 것인가. 6·3 조기 대선을 앞둔 지금, 우리 사회가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정치(政治)가 ‘정치(正治)’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의 정신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과제다. 개인이 자유롭고 신바람 나는 정치, 집 안팎이 평안하고 인심이 넉넉한 정치, 이웃 간에 화목하고 갈등이 최소화되는 정치야말로 우리가 꼭 이루어내야 할 새로운 정치다. 정치문화가 바뀌면 사회 분위기도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국가의 품격과 경쟁력과 이미지까지 높아진다. 지금의 글로벌 세계질서는 그야말로 ‘무한경쟁의 정글’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벌이는 세기의 관세전쟁(tax war)에서도 드러났듯이, ‘열린 국가’든 ‘닫힌 국가’든 자국 이익이 최우선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라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다민족·다국적·다문화·다인종을 선호하고 초국경 협력과 글로벌 공급망을 강조하
인류 역사 속에서 정치와 사회의 안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백성의 안락, 기술의 발전과 생산, 역사의 진보 등에 크게 영향을 미쳐왔다. 평화롭고 안정된 정치와 사회가 받쳐주지 않으면 기술 발전과 생산은 불가능하며, 백성들이 안정된 생업에 종사하는 것 또한 기대하기 힘들다.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지도자의 철학 부재 때문이다. 자고로 한 가정의 가장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가족들이 불행하게 되듯이 한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지 않으면 국민은 불행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더욱이 지도자를 보좌하는 참모진들의 철학 부재 또한 지도자 못지않게 국가와 국민에게 해악(害惡)을 끼치게 되는 법이다. 국민에 대한 사랑과 충성은 뒷전이고,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지도자에게만 충성한다. 아울러 자신들의 천박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 위에 군림할 때면 국민은 절망의 수렁에 빠져 헤쳐나오지 못할 게 뻔하다. 역사 속의 간신들은 그 악랄한 속내만큼이나 끼친 해악도 컸다. 그들은 군주를 포악하게 만들었고, 나라와 권력을 훔쳐 농락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충신을 모함했고, 조정의 기강을 문란하게 만들었으며
최근 양자컴퓨터에 대한 빅테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올해 초 CES에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양자컴퓨터 실용화가 20년 이상 걸릴 것이다”라고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자 양자컴퓨터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구글 양자컴퓨팅 담당 임원 켈리는 “양자컴퓨터 시대가 5년 내 올 것이다”라면서 젠슨 황의 발언을 반박하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3∼5년 후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지난 3월 젠슨 황은 양자컴퓨터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철회하고 “엔비디아도 보스턴에 가속양자 연구센터를 만들 것이다”라고 언급하여 시선을 끌었다. 양자컴퓨터가 왜 이렇게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인가?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를 활용하여 첨단기술 개발과정에서 풀지 못했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도구이다. 인공지능, 우주항공, 바이오, 자율주행 등 과학기술 모든 분야에서 직면한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미래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게임체인저 기술이다.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이 양자컴퓨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양자컴퓨터 회사인 아이온큐(IonQ)는 현대차와 함께 자율주행
조기 대선이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한달 반 정도면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각 공기관이 이를 두고 고민에 싸여 있는 모양이다. 곳곳에서 기관장 알박기 인사가 꽤나 거세고 거칠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 듯이 보인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문제가 터진 상태다. 기존 원장은 지난 2월에 임기가 다 됐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야 이미 원장추천위원회가 구성돼 공모를 내고 선임 절차에 들어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12월 계엄,내란 사태로 모든 것이 비정상이 됐다. 그런 ‘임시’ 상황이 4월 4일까지 계속됐던 건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 있었고 이제서야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새로운 원장 임명 절차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자, 지금 이럴 때 새로운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뽑아야 하겠는가. 결론은 아니다이다. 대통령 선거 일정이 추후 1년이라도 남았다면 당연히 새 원장을 뽑아야 한다. 그러나 한달 반 정도 후면 어찌 됐든 새 정부가 구성될 것이다. 그때까지 유예해야 한다. 그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국립 아카이빙 기관이다. 모든 뉴스 자료는 KTV가 보관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
무감각해지고 있다. 별의별 일을 다 겪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어지간한 뉴스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도파민에 중독된 뇌를 가진 사람이 된 기분이다. 122일간의 정치적 이슈를 제외하더라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노라면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내 몸과 머리는 살아남기 위해 무감각해지기를 ‘선택’한 것 같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미덕이 아니라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태어난 것이 내 선택이 아니었듯, 그저 던져지듯 시작된 인생일지라도 이 지구라는 행성 위에 발 딛고 살아간다면, 먹고 자고 살아지는 대로 살다 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일종의 지식의 고통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살기 힘든 세상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게만 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정치도 그렇고, 출산율도 그렇다. 각종 지표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앞으로의 미래가 나아질 가능성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암울한 전망뿐이다. 그래도 당장 내일을 포기할 수 없기에 우리는 버텨내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명 전원의 의견으로 윤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헌재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행위가 정당하다고 못 박았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을 침탈한 행위가 대통령을 파면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꾸짖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이 지난 14일 시작됐다.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지 열흘 만이다. 하지만 피고인석에 앉은 윤 전 대통령의 모습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재판부가 언론사들의 법정 내 촬영 신청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14일 ‘법정 촬영 불허…윤석열에 유독 관대한 재판부’ 보도에서 재판부가 재판 촬영이나 중계를 놓고 소극적인 판단을 했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동의가 없더라도 촬영 허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피고인의 의견과 상관없이 촬영을 허가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직 대통
목련꽃이 활짝 피었다. 떼 학이 나뭇가지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다. 맑은 분위기 속 심호흡이 반갑다. 이 순간만큼은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없었으면 싶었다. 그때, 조선 숙종 대에 정삼품에 이른 김삼현(金三賢)이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을 벗 삼아 지내며 지은 ‘공명(功名)을 즐겨 마라’는 시조가 떠올랐다. ‘공명을 즐겨 마라 영욕(榮辱)이 반이로다/ 부귀를 탐(貪)치 마라 위기(危機)를 밟느니라./ 우리는 일신이 한가하니 두려울 일 없어라’ -청구영언- 복잡 다사한 세상에서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매사 삼가 하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거니 싶었다. 2025년 4월 3일 중앙일간지 K신문 1면 머리글에는 “임박한 ‘정의’…” 시민들 “이 불안, 끝이 보인다.”라고 활자화되어 있었다. 우측 사진에는 삭발한 스님들이 대통령 파면을 추구하며 헌법재판소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다음 날,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
다시 시작하는 대한민국이다. 그동안 우리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갈등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우리의 소중했던 일상으로 돌아가 이웃과 정을 나누는 따뜻한 민족으로 다시금 살아가야 한다. 맹자(孟子)는 우리에게 네 가지 마음, 사단(四端)이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惻隱之心),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 羞惡之心), 겸허하게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 辭讓之心),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시비지심, 是非之心)이다. 이 사단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사덕(四德)으로 발전한다. 소통에 있어 인의예지는 매우 중요하다. 어진 인품으로 옳음을 쫓고, 예의를 지키며, 지혜로운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 대화는 매우 풍성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의를 담아 지혜롭게 소통하는 방법으로 쿠션어를 추천한다. 흔히 대화에 있어 사실을 전달한다고 해도 서로의 감정이 상할 수 있다. 이럴 때 쿠션어를 활용하면 좋다. 쿠션어는 우리가 늘 사용하는 푹신한 쿠션(Cushion)에 언어를 합친 말이다. 대화를 부드럽게 만들고,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한 감정의 쿠션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두견주는 한국의 전통주 중 하나로, 봄에 피는 진달래꽃을 넣어 빚은 술이다. 그 이름만 들어도 화사한 봄 풍경과 함께하는 한 잔이 떠오른다. 진달래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으로, 우리 삶 속에서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온 존재다. 삼월 삼짇날이 되면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화전 위에 진달래꽃을 얹어 함께 나눠 먹으면서 봄놀이를 즐기던 풍경은, 단순한 계절의 낭만을 넘어 우리의 식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특히 진달래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기운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상징적인 꽃이기도 하다. 두견주가 탄생하게 된 데에는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卜智謙)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복지겸이 병을 얻어 온갖 약을 써도 차도가 없자, 그의 어린 딸이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다. 그때 신선이 나타나 “아미산에 만개한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현 면천초등학교 뒤의 우물)의 물을 사용하고, 100일 후에 마시며 뜰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어 정성을 다하라”고 일러주었다. 딸이 신선의 가르침대로 하자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두견주는 ‘효심이 빚은 술’로도 불린다. 이외에도 '산림경제', '임원십육지',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