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모든 생물들이 제자리에서 각기 제 역할을 하며 존재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도 어김없이 운행되고 있다. 묵묵히 그들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있으며, 따뜻한 태양 아래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맞게 지금까지 살아왔었다. 나아가 사람들은 집단과 사회를 구성하며 서로 영향을 주며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하여 우리는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규칙과 법을 제정하여 이 틀과 관계망 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서로 행복하게 지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질서가 있는 사회를 이끌어가며 통치하려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덕(德)이 없든가 잘못을 저질렸을 때는 커다란 혼란과 손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소수의 지배자가 다수의 시민들이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를 ‘비상계엄’이라는 괴물을 통해 파괴하였으며 대한민국의 국격을 크게 훼손하였다. 이에 대해 대처하는 법을 동양고전에서 찾아보자.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의 요체에 대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고 강조하셨다. 또 “시민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民無信不立)‘고 하였다.
로스쿨이 생기기 직전 법대에 다녔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법을 처음 배울 때 개인의 감정과 부합하지 않는 법 조항들에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너무 과한 처벌이나 약한 처벌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행동에 동기 부여가 된다. 처벌 수위가 법 감정과 괴리를 보이는 경우는 이 때문이다. 예컨대 강도나 음주운전 하는 사람들을 왜 모두 사형시키지 않을까.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강력하게 규제하면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법이 범죄 사실을 쉽게 용서해주는 건 아닐까. 하지만 법이 강도나 음주운전 범죄자를 사형시킬 정도로 강력하면, 살인자가 될지 말지 기로에 선 사람들이 살인을 택하게 된다. 강도로 사형을 당한다면 강도 행위를 본 목격자를 살려두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듯 법 조항 하나하나와 판례에는 사람들의 행동을 뒤바꾸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다. 3년 전 초등교사에서 학생들과 체험학습을 갔다. 도착한 테마파크 주차장에서 학생이 타고 온 버스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즐거워야 할 소풍이 비극으로 끝난 것이다. 운전했던 버스 기사는 이미 처벌이 확정됐고, 남은 건 담임교사와 보조교사로 온 사람들의 처벌 여부였다. 학교 활동 중
자동차가 자율 주행하고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 이는 오랫동안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어느 샌가 현실이 되어 우리 생활 속으로 훅 들어오고 있다. 얼마 전 오픈AI는 인간처럼 추론할 수 있는 인공지능 쳇GPT-5를 공개했다. 이는 기계가 더 이상 프로그래밍된 작업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AI는 우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간단히 ‘Yes’, ‘No’로 답할 수 없지만 필자는 과감히 ‘No’라고 말하고 싶다. 기술이 제 아무리 정교해진들 우리 인간 경험의 미묘한 뉘앙스를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있다. 최근 데이트 앱의 전 세계 사용인구가 16%나 감소했다. 이 현상은 스페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왜 그러할까? 이 나라에 사는 싱글들은 ‘메르카도나(Mercadona) 플러팅’을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르카도나 플러팅’이란 오후 7~8시에 대형마켓 체인인 메르카도나로 쇼핑을 떠나 카트에 파인애플을 담음으로써 “나는 진지한 만남을 원해요”라는 신호를 상대방에게 보내는 전통적 관행이다.…
“나는 아침, 점심, 저녁 이 일상의 완고함과 씨름하고 있다. 축복받기 전에는 나날을 그대로 흘려보내진 않겠다. 천천히 말 없는 시간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다.” '오랜 슬픔의 다정한 얼굴'을 읽었다. 해야 할 일들은 머리를 짓누르고 정리되지 않는 일상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허덕이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날, 잠시 짬 내어 읽는 시집 한 줄이 마음에 위안을 줄 때가 있다. 오늘 아침은 어쩐 일인지 싯구보다 시집 뒷면에 수록된 작가의 삶이 더 눈에 들어온다. 칼 윌슨 베이커(Karle Wilson Baker, 1878-1960) 이야기다. 미국 아칸소주 리틀락에서 태어나 텍사스 남부에서 자란 문인으로, 시인이자 소설가 아동문학가이기도 했던 그는 1931년 퓰리처상 시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그가 유년기를 보냈던 1880년대의 리틀락은 한창 철도가 놓이고 빅토리아풍 저택들이 들어서며 확장되고 있던 분주한 도시였다. 교사였던 부모는 도시로 옮긴 후 식료품점 점원으로 일하다 회사를 일구어내기에 이른다. 작가가 꿈이었던 어머니의 응원으로 칼은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푹 빠져 지낸다. 외가가 아칸소주 잭슨빌 근처 농장에 있었던 터라 기차여행을 종종 하곤 했는데…
저마다 우리 사회의 위기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누구나 위기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각종 차별과 혐오로 인해 갈등하고 분열된 우리 사회는 마침내 모든 이슈에서 극화되는 양상마저 보인다. 토론과 이해, 의견 수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상호적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 발화가 난무하고 있다. 의사소통은 이성에 기반을 둔 대화에서 가능하다. 대화는 상호 존중에 기반을 둔다. 자신과 타인을 연결해 공동체를 유지한다. 사적 영역과 공정 영역을 연결하는 여론도 대화에서 시작된다. 우리 편이 아닌 다른 편은 곧 적이 되는, 그래서 설득하지 않으려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공허하다. 흔히 언론은 제4부로 불린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각각이 독립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는 삼권분립은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다. 여기에서 언론은 삼권에 대한 감시를 통해 권력 남용을 막는다. 언론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삼권 못지않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시민의 알 권리를 대리하기 때문이다. 언론 자유에 대한 근거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삼권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게 할 뿐 아니라, 여론을 삼권에 전달하기도 한다. 공론장으로서 언론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제4부로
분류가 잘 된 것은 아름답지요. 이를테면, 계절을 나누고 때와 장소에 맞게 차려입을 수 있도록 정리가 된 드레스룸 말입니다. 엄마의 옷장은 그야말로 옷 무덤이었어요. 나는 엄마의 허락을 받아 옷장에서 꺼낸 옷들을 방바닥에 쌓았습니다. 옷이 든 바구니와 서랍까지 쏟자, 방 한가운데가 봉분처럼 우뚝 솟았습니다. 온갖 색이 뒤섞여 한쪽은 푸르고, 한쪽은 검고 붉어 고르게 자라지 못한 뗏장 같았어요. 헤집어 놓은 옷에서 취향 같은 것은 발견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의 옷에는 비싼 값을 자랑하는 라벨 대신 고단했던 삶이 붙어있습니다. 쌓인 옷가지는 헌옷 수거함에서 나온 것 같아, 다 갖다 버려도 아깝지 않아 보였는데요. 신기하게도 엄마의 눈에는 버릴 것이 없는지, 자꾸만 내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며, 나는 버릴 것을 더 많이 골라냈습니다. 옷은 날개가 아니었습니다. 무릎이 나오고 보풀이 인, 수많은 계절이 한꺼번에 걸어 나왔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동전이 나오고 포장지가 붙어버린 사탕도 나왔습니다. 다른 옷에 짓눌린 스웨터의 한쪽 팔이 축 늘어져 있고, 치마는 마치 보자기 같았어요. 세탁을 잘못해서 줄어버린 니트와, 늘어진 티셔츠를 다 입을 수…
나 때는 말이다,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것이 빨갱이였다. 학교 화단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있었다. 세종대왕, 유관순 동상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다는 이승복 어린이 동상이 더 잘 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1년에 한 차례씩 꼬박꼬박 반공웅변대회가 열리면 웅변학원에서 써준 북한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원고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는 했다. 북한에서 날아왔다는 삐라를 주워 경찰서에 가져다주면 책받침도, 공책도 푸짐하게 주었다. 잊을만하면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 한 가족이 간첩이기도 했고, 심지어 어촌의 한 마을 전체가 간첩이기도 했다. 수지 김이라는 간첩은 홍콩에서 남편을 납치해 북한에 데려가려다 의문사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간첩단 사건 중 상당수는 세월이 한 참 지난 후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집혔다. 수지 김은 간첩은커녕 남편에게 살해당한 억울한 피해자로 밝혀졌다. 간첩 사건은 유독 선거 때 터지고는 했다. ‘간첩’이라는 두 글자는 모든 뉴스를 집어삼켰다. 사회문제든 정치문제든 그 어떤 이슈도 간첩 사건 앞에서는 가십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간첩 사건 뒤에는 어김없이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등 이름은 바
이제 웬만한 식당은 테이블마다 키오스크가 있어서 손님이 앉은 채 주문하고 계산까지 한다. 무인커피숍에서는 로봇이 주문한 커피를 만들어 준다. 사무실에서도 많은 일들을 AI가 대신하고 있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고 기획서 작성, 광고물 제작까지 생성형 AI에 맡겨 본다. 사람은 그저 제대로 되었나 훑어보며 감탄사만 연발하면 되게 되었다. 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집도 로봇 공정으로 며칠 만에 뚝딱 지어낸다. 부식을 막기 위해 대형 선박의 외관을 세척하는 일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잠수부 대신 로봇이 수행하고 있다. 오픈 AI의 챗GPT를 필두로 저비용 고성능의 딥시크 R1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성형 AI 서비스들이 출시되어 경쟁하고 있다. 이를 직접 사용해보고 효과를 체감하면서 AI 파급력은 커졌고, 우려도 높아졌다.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애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산업혁명의 전 과정에 등장하였다. 산업혁명기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은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일자리 수는 줄지 않았고 일의 형태가 바뀌어 왔다. 그러나 AI가 일으킨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은 다르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일자리의…
1795년 윤2월 9일, 조선왕조 통틀어 가장 장엄한 7박 8일의 정치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3월 29일로 매화꽃이 한창인 봄이었고, 길가 여기저기에는 농사일을 시작한 백성들이 바삐 움직였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1796)에 수록된 행렬 그림인 반차도(班次圖)에는 1,779명의 인원과 779필의 말이 등장하고, 정조의 친위대인 장용영(壯勇營)을 비롯하여 군사 4,500여 명을 합하면 6천 명을 훌쩍 넘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한다. 권위주의 시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정조의 효심만을 부각시키며 정치적 의미를 축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인 요즘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정치적으로 계획되고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결정이 국가와 국민의 삶에 미치는 힘이 그 누구보다도 지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권력이 혈연을 통해 승계되던 조선에서는 어떠했겠는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할아버지 영조(재위: 1724~1776)에 이어 1776년 3월 10일에 임금의 자리에 올라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를 외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자신이 펼치고자 했던
‘우(迂)’는 우여곡절(迂餘曲折)의 첫 글자이다. 우여곡절은 일상에서 상투어처럼 쓰이는 사자성어이다. 쓰기에 따라서는 고급스런 느낌도 준다. 국어사전에서는 ‘여러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로 풀이해 놓았다. 상투어로 보인다는 건, 말의 뜻이 자못 심오한데도 그런 것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기능적으로만 쓴다는 뜻이다. 현대인의 약점이기도 하다. 한자 ‘우(迂)’는 잘 쓰지 않는 한자다. '한자 자전'에서 이 글자를 찾으면 ‘멀다’라는 뜻으로도 나오고, ‘에돌다’라는 뜻으로도 나온다. 그런데 ‘멀다’라는 뜻이나 ‘에돌다’라는 뜻은 그야말로 서로 멀지 않다. 사촌쯤 되는 친밀한 뜻이다. ‘에돌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다시 찾아보면, ‘곧바로 나아가지 않고 멀리 피하여 돌다’로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迂)’가 지닌 ‘멀다’라는 뜻에는 단순히 거리가 멀다는 뜻보다는 그 어떤 대상을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오히려 그걸 멀리 두고 돌아서(피해서) 가려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우회(迂回)’라는 말이 떠오른다. 곧바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서 가는 것이 ‘우회(迂回)’이다. 이 한자어에 대응하는 고유어가 ‘에돌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