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남자가 전시장 작품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었다. 겨우 마음을 가눈 듯 다른 자리로 옮겨 전비담 시인의 ‘공무도하公務渡河’ 시를 읽다가 결국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어 운다. 그의 여식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별’이 되었단다. 애통하고 분통이 터져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공무원인 그는 정치적 중립 의무 때문에 유가족협의회 활동을 할 수도 없고, 영정 사진을 분향소에 올릴 수도 없단다. “아침마다 아이의 방문을 열어봅니다. 어떤 때는 평소처럼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요. 늘 방을 따뜻하게 해 두지만 휑하기만 한 아이의 방을 보면서 내 아이가 죽었다는 자각이 들 때면 한참을 멍하니 서 있게 됩니다. 아침 마다요.” 다 키운 자식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따질 수 없는 나라, 슬픔을 내비칠 수도 없고 가족끼리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나..
머지않아 ‘이연(異緣)’이란 영화가 개봉될 것 같다. 장기봉 감독이 극본, 연출을 맡고 (사)한국시니어스타협회(이사장 김선)가 제작한 이 영화는 중장년이 된 베이비부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세대, 곧 노년으로 접어드는 이들의 가슴속 깊이 간직돼 있던 삶을 영상으로 표현했다는데 출연배우들도 베이붐 세대다. 꼬마신랑 김정훈, 고교얄개 이승현 그리고 명품배우 이경영과 김선 등 대부분 5060세대들이 나온다. 베이비붐 세대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슬프게 그렸다는 이 영화를 기다리는 중·장년들이 많다고 한다. 6·25 전쟁 이후 신생아 출생률이 크게 증가했다. 이 시기인 1955년~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이 베이비붐 세대다.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유신시대와 10.26, 12.12, 5·18을 겪었다. 6월 항쟁 때엔 군부독재를 종식시키..
2023학년도 정시 모집에서 전국 13개 교육대학교(이하 교대)와 초등교육과 중 11곳이 미달 됐다. 정시 모집 때 대학 세 곳을 접수할 수 있기에 모집인원의 3배가 지원하지 않으면 미달됐다고 본다. 전국 대부분의 교대가 미달 되었고, 이는 입학 점수의 추락을 가져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년에 이후에 교대 입결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방대 인기 하락과 교사 인기 하락이 맞물려서 상위권 학생들이 교대를 선택할 요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교대 자퇴생의 비율도 10년 전보다 20% 늘었다. 수치로 보면 2016년 102명이었던 교대 자퇴생이 2021년 426명으로 급증했다. 교대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몇 년 전까지 한 과에 1~2명 있던 자퇴생이 요즘은 3~4명씩 생겼다고 한다. 교대에는 편입이 없으므로 중도 탈락자가 생기면 그대로 졸업생 수가 줄어든다. 교사라는 직업의 인기 하락을 입시생과 재학생이 보여주는 상황이다. 교대의 인기가 떨어지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인기 하락에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 이유로 교사의 급여를 꼽을 수 있다. 처음 교사가 되고 나서 놀랐던 점은 월급이 200만 원이 채 안 된다는 점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직업별 연봉을 자세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 교대를 다니는 동안 주변에서 아무도 급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고, 4년 내내 실습 나갔던 학교에서도 교사들이 연봉이나 급여를 대화의 주제로 올린 적이 없었다. 요즘은 어떤가, 인터넷을 켜면 누가 누가 월급을 더 많이 받았는지 자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회사에서 상여를 연봉의 200%로 받았다, 이직해서 연봉이 많이 뛰었다, 하는 모습을 보면 나조차도 직업 선택할 때 급여를 너무 고려 안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학생들이라고 다를까 싶다. 학생 때 공부하면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을 수 있다고 배워왔는데 교사는 보상 측면에서 매력이 없다. 교대의 인기가 하락한 두 번째 이유는 무너지는 교권이다. 비단 교사뿐만 아니라 아이를 만나는 모든 직업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이 급감해서 대형 병원에서 소아과 전공의 지원이 0명인 곳이 속출하고, 어린이집 교사 지원자도 10년 사이에 95% 줄었다. 출생률이 하락했으니 아동 관련 직업 인구가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현실은 신생아 하락 수보다 더 빠르게 아동 관련 직업 종사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공통적으로 부모의 폭언이나 갑질, 툭하면 걸리는 소송 때문에 병원에서는 소아과 기피, 학교에서는 담임 기피 현상이 생겼다. 교대 인기 하락의 마지막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건 임용고시가 예전만큼 녹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교대를 졸업하면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 어렵다는 게 정설이라 교대 졸업생들은 임용고시에 합격해야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예전에는 교대 졸업생 수보다 더 많은 숫자를 교사로 뽑아서 교사 되기가 수월했다. 언제부턴가 임용 선발 인원과 교대 졸업생의 비율이 미스 매치 되면서 임용 재수생이 생겼고, 매년 적체된 인원 때문에 교사 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특수목적대학이 가진 장점인 학교 입학이 곧 직업 합격이라는 공식이 깨지면서 교대에 오려는 인원이 줄고 있다. 교대에 입학하려는 인원이 줄어드는 게 뭐 어떤가 싶을 수도 있다. 미국과 일본의 공교육이 어떤 상황인지 보면 한국의 공교육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게 앞서나가는 걱정이 아닐 수 있다. 교사가 다시 매력적인 직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조선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긴 세월 폄하돼온 ‘선비정신’에 대한 재평가 이야기가 요즘 등장하고 있군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것까지는 좋은데, 사회를 개혁해내기는커녕 교조적 맹종으로 반상(班常)의 부조리를 심화시킨 게 문제였죠. 나라를 패망시킨 죄로 ‘선비’는 현대인들에게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갖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물론 일제강점기 일본의 교활한 모함도 한몫하긴 했죠. 국리민복(國利民福) 추구는커녕 오직 권력 연장에만 눈이 어두운 작금 정치꾼들의 소인배 행각을 지켜보다가 문득 ‘선비정신’ 덕목이 떠올랐어요. 학식과 예절로 지키는 지행합일(知行合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와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정신력, 공적인 일을 앞세우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자신에게는..
지난 3~5일 고양 킨텍스와 김포 아라마리나에서 펼쳐진 제16회 ‘2023 경기국제보트쇼’가 역대 최다인 6만8000여 명의 관람객이 몰리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행사 개막식에서 “해양레저산업의 중심인 경기도에서 대한민국 신성장동력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기도는 서울·인천과 더불어 국민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 한복판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품고 있는 최대의 해양레저 수요 적지다. 경기도의 해양레저산업 신성장 동력 선정은 매우 적절한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두바이, 상하이보트쇼와 함께 아시아 3대 보트쇼로 불리는 이번 경기국제보트쇼가 열린 킨텍스 1전시장은 주말 내내 주차장이 가득 차는 등 큰 관심을 반영했다. 행사 기간 중 경기도 3대 보트 제조사인 스타마린, 시스타마린(화성), 빅베어마린..
중소기업이 개선할려고 하는 아이템이 있고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면 국가 R&D 지원사업의 신청이 가능하다. 세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연구개발(R&D) 단계를 크게 3가지 기초연구, 응용, 연구개발 등 3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연구개발은 중소기업에게 필수적이다. 따라서, 회사의 자금으로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지원으로 기술개발이 가능하다. 1세대 R&D(연구개발, Research and Development)는 19세기 말 등장해서 개인 연구자와 발명가의 역량이 중시된 형태이고, 2세대 R&D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국방기술 개발 체제가 벤치마킹 되면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통한 R&D 관리가 특징이다. 3세대 R&D는 연구소와 사업부 간 조율을 통한 전략적 R&D가 특징으로, 기업부설연구소 혹은 연구전담부서 설립이 확대되고 있다. 4세대 R&D는 시장 고객 그리고 R&D를 통합한 가치 창출형 기술개발이 특징이며 그 결과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서 분석하여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고객 중심의 R&BD (사업화 연계 기술개발, Research and Business Development)로 진보하고 있다. 앞으로 5세대 R&D의 특징은 명의신탁주식, 가지급금, 자사주 매입, 미처분 이익잉여금, 주식이동, 가수금, 기업인증, 특허/노무/세무/법무 협력, 직무발명보상제도, 기업신용평가관리, 법인전환, 가업승계, 자본거래전략을 바탕으로 대표이사와 법인이익을 우선한 절세컨설팅과 국가과제 R&D 컨설팅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전문가와 협력이 필수적일 것이다. 국가 정부에서는 한해 정부지원 R&D 공고문만 거의 8000건 이상 공고하여 기업의 사업화를 지원해주고 있다. 기업은 이러한 정보를 모르고 단순 생산에만 치우치면 회사의 발전을 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또한, 정부지원을 받는 업체만 계속 받고 있으므로 R&D 연구개발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서는 기업의 CEO와 함께 기업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정부과제 R&D 지원 전문가 필요하다. 중연지 중소기업연구개발지원협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우수한 기술과 아이템을 보유한 기업들에게 연구과제 지원 로드맵 작성 서비스, 맞춤형 연구과제 지원 정보 서비스, 과제 타당성 검토(과제 중복성, 지원 적정성 검토), 관련분야 특허/시장 동향 작성 서비스 등을 통해 많은 자문과 지원을 해주고 있다. 중소기업 정부과제 R&D 기술개발이 어려운 이유 2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유로는, 중소기업 내부에는 한계가 존재해서 회사 업무 및 과제 작성(기술개발 내용) 업무 등 2중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정부기관도 매년, 사업계획서 포맷, 콘텐츠(사업계획서 내용)가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서 사업계획서 작성이 점점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 함께 뛰어줄 조력자가 필요하다. R&D 지원사업에 선정이 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정부지원 R&D 지원사업을 통한다면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국내/해외 시장 및 경쟁사를 알게 되고, 국내외 특허가 어느 정도 있는지 파악하게 된다. 더불어, 제품 성능, 제품 인증, 제품의 신뢰성 평가 시험으로 제품이 개선되고 기업의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 임치제도도 활용할 수 있고, 사업화 자금까지 받을 수 있는 혜택 등 다양한 혜택이 있다. 따라서 기업의 정부지원 R&D 경영은 필수적이고, 전문가 그룹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실시되기 한 해 전이었던 2002년의 이산가족상봉 행사는 속초에서 설봉호를 타고 공해 쪽으로 나와 북한 지역으로 올라가서 북한 장전항(고성항)으로 이동하는 항로를 이용했다. 장전항으로 들어 가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금강산 큰 바위(치마바위, 500명이 올라 파티가 가능하다고 함)에 붉게 새겨진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이라는 글씨였다. 김정일위원장 환갑 기념 축하 글귀다. 대략 글자 한자의 길이와 폭이 가로는 20m 세로는30m, 파 들어간 깊이는 2m 정도라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작업을 위해 동원된 인원과 장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남한 기준에서 보면 자연 경관에 그렇게 큰 글씨를 새겨 놓았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입항할 때 우리 측 방문 가족들 모두 저마다 한마디씩 논평을 했다. 그..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추진하고 있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가 날개를 달게 됐다. 정책 공론조사에 참여한 경기도민의 87%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경기 북부의 실정과 분도(分道)의 당위성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 다음의 결과물이었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가 유발할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다. 여론 지지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진할 때가 됐다. 공론조사는 경기도에 1년 이상 거주한 만 18세 이상 도민을 대상으로 성별·연령·권역(경기 북부와 남부 동수로 구성) 등을 고려해 도민참여단을 모집한 후 총 3차례 조사를 시행했다. 1차 조사는 사전학습 없이, 2차 조사는 숙의 토론자료로 자가 학습을 한 후 실시했다. 최종 3차 조사는 전문가발표·질의응답..
중국어 아는 이들은 우리말 한자어(漢字語)가 중국어 어휘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안다. 한자를 중국어 표기 문자로만 아는 한국 사람들이 헷갈리는 대목이다. 서울 지하철 안내방송에서 역(驛·station)은 중국어로 ‘찬’(站)이다. ‘이(驿)’ ‘이찬(驿站)’이라고도 하나 ’찬‘이 익숙하다. 驿는 驛의 간체자(현대 글자)다. 중국어 일본어의 발음과 한국어 독음(讀音)을 혼동하지 말 것. 일본어는 ‘에끼’(駅·驛의 일본식 약자)다. 한자문화권 한중일 3국은 각각 제 문자를 가졌다. 언어의 역사와 전통도 각각이다. 갑골문에서 비롯한 한자가 세 나라 문자(언어)의 배경을 받치는 고갱이란 점은 공통적이다. 한국어의 한자어는, 익숙하게들 쓰는 영어 ’오픈‘처럼, 한국어(의 한 부분이)다. 우리 일상의 언어에서 한자어를 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영어의 비중도 만만치는 않다. 한 라디오 진행자가 “잠시 후 일주일 지나서 일이 터졌다.”고 하는 걸 들었다. 잠시는 뭘까? ’알만한 이‘에게 물었다. 짧은 시간(의 길이) 같은데 더는 모르겠다고 고개 갸웃했다. 한자어 暫時다. ‘잠깐’이다. 그럼 늘 쓰는 말 한참은? 한참은 우리말 ‘한’과 한자 참(站)의 합체다. 지하철역 방송의 중국어 ‘찬’이 站이다. 잠시와 한참, 뭐가 더 길지? 한참이? 왜? 暫(잠)은 벨 참(斬)과 날 일(日)의 합체다. 수레(車 차)와 도끼(斤 근)의 합체 斬은 죄인의 사지(四肢)를 묶은 수레를 사방으로 몰아 몸을 조각내는 옛 형벌, 낮(日)에 얼른 했겠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故事)처럼 칼로 목을 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는 순간(瞬間)의 뜻으로 번졌다. 한참의 참(站)은 과거의 역마을이다. 파발마(擺撥馬)가 달리다 지치면 다른 말로 갈아타는 곳, 숙소나 주막도 있었으리. 한참은 ‘참과 다음 참 사이’다. 후에 시간의 단위가 됐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 사이의 거리나 시간보다 오래, 대충으로도 ‘한참’ 걸렸겠다. 잠시와 한참의 ‘길이’를 가늠하는 도구로 말의 속뜻인 말밑(어원 語源)을 썼다. 말과 글의 (속)뜻은, 역사와 제도, 비유(比喩) 등 문명 여러 요소들의 ‘화학적’(化學的) 반응 또는 변용(變容)이다. 문화(文化 culture)의 해석으로도 일면(一面) 적실하다 본다. 방송 진행자의 말 ‘잠시 후 일주일 지나서’가 어색(語塞)하게 들린 까닭이다. 어색은 ‘말(語)이 막힌(塞) 것’이다. 어원을 보니 환하다. 말이 막히는 까닭이 뭐지? 요즘, 귀 닫고 싶도록 세상에 어색(語塞)들이 즐비하다. 큰 바다의 좁쌀 한 알 창해일속(滄海一粟), 우주의 영원 속 순간의 윤슬이다. 인간의 크기다. 바다 바라보면 장자(莊子) 나비의 꿈, 그 현묘(玄妙)한 유장(悠長)을 만나리라. 한참(-站) 같은가? 망나니 큰 칼 번득이는, 잠시(暫時)다. 바라보라.
불행한 정신적 고뇌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모두 끝없는 변화 때문에 영원한 소유(관계)를 허락하지 않는 사물(인간)에 대한 우리의 집착 탓이다. 오직 영원하고 무한한 것에 대한 사랑만이 우리의 마음에 순수한 기쁨을 준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신은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신을 본디 사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신을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은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격체뿐이다. 나는 신이 인격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신을 사랑할 수가 없지만, 나 자신이 인격체이기 때문에 역시 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신에 대한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사랑에 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야 말로 최상의 행복이다. 그러한 사랑은 어떠한 존재도 예외 없이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비록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는 신에 대한 사랑과 사랑의 행복을 잃게 될 것이다. /주요 출처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