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은 국교 수립에 합의하였다. 양국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으로 협력한 결과 오늘날 실질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구동존이’란 상호 경제 협력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큰 목표를 우선하고 체제의 차이와 같은 작은 것은 있는 그대로 두자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 국교 수립 30년 기념식에서 한국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중국은 군자신이성(君子信以成)을 이야기하였다. 신뢰에 금이 가 있는 현실을 은연중에 드러낸 말이다. 2016년 1월에 감행된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미국의 사드 배치와 중국의 한한령으로 이어졌다. 이 사태의 승자는 북한과 미국이다. 북한은 핵 능력을 향상하는 동시에 중국과 한국 사이를 이간하는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은 원하던 사드 배치를 얻어내는 동시에 한중간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상호의존관계에 쐐기를 박았다. 설상가상 미중 대립이 격화하면서 한중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가고 있다. 북핵은 우리의 모든 자원과 노력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 힘은 우리의 주권 행사를 제약할 정도다. 대중국 관계는 북핵 문제의 해결에 있어 중요한 지렛대 혹은 균형추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현재의 정상 관계를 유지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우리가 중국과 멀어지는 만큼 북한은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고, 북핵 블랙홀은 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한중관계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구동(求同)과 존이(尊異)’가 필요하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자유무역은 너무나 중요하다. 중국도 대외적으로 자유무역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바로 여기에 한중이 협력할 공간이 존재한다. 한중은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무역 질서’를 양국 간 경제 협력보다 한 차원 높은 ‘새로운 구동’의 기치로 삼아야 한다. 다만 미중 갈등의 현실 속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무역 질서’의 기치가 명분을 획득하려면, 중국 스스로 무역제도와 관행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개혁하여야 한다. 한국도 한중 FTA의 업그레이드를 통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유인할 필요가 있다. 한중은 차이를 있는 그대로 두는 존이(‘存’異)에 차이를 존중하는 존이(‘尊’異)를 더하여야 한다. 존이(尊異)는 혐오와 배척의 부정성을 새로운 생성과 생산의 긍정성으로 인도할 것이다. 또 한중 사이에는 “공통성이 많아서 오히려 모순이 큰” 역설적 현상이 존재한다. 동북공정 등 역사와 문화 분야에서 ‘과거의 것은 과거에’ 존재하게 하고, ‘현재의 것은 존이(存異) 혹은 존이(尊異)의 마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대북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면 거부’를 천명한 데 이어 ‘선제적 핵 공격’을 법에 못 박는 등 ‘핵 무력’을 법제화했다. 선택 폭이 확 줄어든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이 난해한 시험대에 올랐다. 큰 폭으로 바뀐 북핵 위협 양상에 대응하는 다양하고 새로운 전략이 시급해졌다. 일단, 상식을 거스르는 북한의 위험천만한 도박에 당당히 맞서는 결기가 필요하다. 아울러 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려는 노력 또한 절대 포기해선 안 될 것이다. 북한이 최근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법령 제6조는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위협의 차원이 다르다. 북한은 법령 6조에서 김 위원장이 ‘핵 버튼’을 누를 조건으로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WMD) 공격 감행 또는 임박’, ‘..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오토바이의 운전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긍정적 이미지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횡단보도 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인도 위에서 요리조리 곡예 운전하는 오토바이, 신호 맨 앞으로 가기 위해 차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오토바이 등등.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신호와 도로교통법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운전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운전할 때 꽤 빡빡하고 촘촘한 법체계, 이를테면 튼튼한 유리로 된 창문이 있다. 최초의 몇 명이 빨리 배달하기 위해 신호를 어기면서 창문에 작은 구멍을 냈고,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 것을 본 다른 운전자들이 따라서 신호를 어기면서 창문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지금은 운전 법규를 잘 지키는 오토바이를 만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는데 예외..
붉은 것은 오른쪽에 놓고 흰 것은 왼쪽에 놓는다. 가운데는 다식과 약과의 자리이다. 촛불로 어둠을 밀어내고 향불로 길을 닦았으니 돌아가신 당신의 넋이 찾아오실 것이다. 나는 제상에 술과 밥과 국을 올리며 속으로 조아린다. 많이 잡수세요. 아버지. 예순으로 나아가는 아들이 마흔에 멈춰있는 아버지에게 절을 한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마흔 살 청춘이다. 돌아가시던 그날부터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결같다. 아버지는 추석 명절을 이틀 앞두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던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내가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오던 바로 그날 당신은 문을 닫고 세상 너머로 사라졌다. 삶과 죽음의 간격처럼 허망한 것이 또 있을까. 도회지로 나오기 전까지 우리 식구는 장흥읍내 후미진 곳을 전전했다. 언젠가는 장흥극장 뒷골목 판잣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나..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다. 지난 8월 8일 서울지역에 내린 큰비는 4일간 언론의 머리기사를 차지했다. 채 한 달도 안돼 9월 6일 태풍 힌남노가 제주와 영남지방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시간이 지나면 두 재난은 ‘반지하 일가족 3명 사망’과 ‘지하주차장 침수로 차 빼러 간 아파트 주민 7명 사망’ 사건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기억을 조금만 확장해도 모두가 위험사회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한다. 2010년 9월 21일 시간당 100mm에 가까운 폭우가 서울에 쏟아졌다. 광화문이 폭우로 잠기고 양천구 신월동이 큰 피해를 입었다. 동아일보는 물에 잠긴 광화문광장 사진 설명을 ‘파도치는 광화문’으로 달았다. 2011년 7월 26일-27일 기록적인 폭우로 ‘우면산 산사태’ 참사가 있었다.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보도는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 무엇보다 폭우 참사가 나면 언론은 마치 올림픽 기록경기를 연상케 하는 보도를 쏟아낸다. ‘동작구 신대방동 1시간에 136.5mm, 시간당 강수량 최고치 경신’, ‘2일 연속 강우량 기준으로 종전 최고치인 390.6mm 기록을 훌쩍 뛰어 넘었다’ 같은 유형의 보도다. 대부분 언론이 이 같은 보도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기록에 대한 집착은 신문 1면 제목까지 논리적 모순을 낳는다. 조선일보는 2011년 7월 서울 홍수를 보도하면서 우면산 산사태 사진과 함께, 1907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04년만의 최대 물난리’라고 했다. 지난 2022년 8월 서울 폭우를 ‘100년만의 물폭탄···서울이 잠겼다’고 보도 했다. 100년만에 잠긴게 아니라 11년만에 다시 잠긴 것이다. 기록에 주안점을 뒀다면 ‘115년만의 물폭탄’으로 보도하는 게 맞다. 자극적인 단어 남발도 문제다. 경향신문이 우면산 산사태를 보도하면서 ‘500mm 테러’라는 제목을 달았다. ‘물폭탄’처럼 전쟁이 연상시키는 단어가 언론이 즐겨 쓰는 상용어가 됐다. ‘폭우’ ‘홍수’ ‘큰비’는 보조어로도 끼지 못할 정도다.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포괄적 비판 기사도 문제다. 한국일보가 2010년 9월 24일 강서구 침수사태를 다루면서 ‘매년 물난리 나도 그때 뿐’이라고 보도했다. 구체적 사례가 없으면 기사의 힘이 떨어진다. ‘곳에 따라 때때로 비’라는 보도처럼 무성의해 보일 수도 있다. 지역차별성 재난보도도 경계해야 한다. 이봉수 MBC저널리즘스쿨 교수의 지적처럼 ‘태풍이 다행히 울릉도 근해로 빠져 나갔겠습니다’ 식의 보도는 각별히 유의해야한다. 대책보도가 턱없이 부족하다. 문화일보 2010 9월 24일자에 보도한 ‘난개발의 역습’ 같은 심층기획 기사가 더 늘어나야 한다. 클릭수만 생각하면 공염불 같은 소리다. 건축물이 대도시 산의 8부 능선까지, 바다나 계곡에는 물가 바싹 옆에 들어서고 있다. 규제를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자연재해를 통해 다시 본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단기간의 치료뿐 아니라 지속적인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으며, 헬스케어 산업의 급격한 디지털화로 의료서비스에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의료서비스 대상이 고령층으로 급변하고, 치료와 관리가 모두 필요한 만성질환(고혈압, 당뇨, 체중관리, 정신건강 등) 환자가 크게 늘면서 첨단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에 대한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시장에 출시되며 적극적인 질병 예방·관리가 가능한 환경이 구축되고 있으며,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사전 진단·관리와 발병에 따른 진단·치료·사후관리 등 의료서비스 전반에 걸쳐 건강관리를 편리하게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있다. 비대면으로 감기약을 처방받아 인근 병원으로부터..
여야 정치권을 향한 추석 민심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국민은 내부갈등으로 날마다 험한 꼴을 보이는 여당 국민의힘이나, 민생정치에 다 써도 모자랄 다수 야당의 힘을 대여투쟁에만 악착같이 쏟아붓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함께 날카로웠다. 연휴가 끝나면서 여야 정치권이 밝힌 민심 해석은 역시나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늪에 머물러 있다. 저급한 권력투쟁일랑 멈추고, 진정한 민생정치를 펼치라는 게 진짜 민심의 요체다. 여야는 민성(民聲)을 정직하게 받들어 날로 험악해지는 정치혐오 폭풍을 멈춰 세워야 할 것이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민께서 원하시는 정치의 핵심은 정쟁이 아니라 민생”이라면서 “약자와 미래를 위하는 법안과 예산을 충실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어서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어떤 불..
만약 삶이 행복이라면 삶의 필연적 조건인 죽음도 역시 행복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음은 자아로서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대부분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평화와 안도의 표정은 아마 거기서 유래하는 것이리라. 선한 사람의 죽음은 대개 조용하고 평온하다. 그러나 각오를 하고 죽는 것, 스스로 나아가 기꺼이 죽는 것은 자기를 버린 자, 살려는 의지를 거부하며 그것을 포기한 자의 특권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만이 겉으로만이 아니라 진실로 죽기를 원하는 자이며, 따라서 자아의 존속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고 또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만약 죽음이 두렵다면 그 원인은 죽음 속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 있다. 선량한 사람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일이 적다. 성자에게는 이미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육체의 죽음은 육체를 결합시키고 있는 것을 멸망시킨다. 즉 순간적인 생명의 의식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매일 잠들 때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문제는 과연 육체의 죽음은, 나의 모든 의식의 흐름을 통일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해 세계에 대한 나의 특별한 관계를 무너뜨리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려면 그 전에 나의 모든 의식을 통일하고 있는 것, 나의 세계에 대한 특별한 관계가 내 육체적 생존과 함께 태어나고, 따라서 그것과 함께 죽는 것임을 먼저 증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늙기 전에는 나는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늙은 뒤부터 나는 선하게 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하게 죽는다는 것은 곧 기쁜 마음으로 죽는 것이다. (세네카)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네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신의 자아 속에 갇혀 있는 운명이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 만물은 다 그 속에 생명의 숨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주의 근본이요, 인생 역사의 근본입니다. 우리 속에는 다 그 생명의 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방해하지 말고 기르란 말입니다. 도끼로 나무통을 찍어 넘긴 것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무꾼이 낫으로 벤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말과 소가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뜯고 뜯으면 아무리 하늘이 준 자연의 힘이기로서니 어찌 견디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한없이 약한 듯하면서도 한없이 강하고 질긴 생명의 소생하는 작용은 언제 되느냐 하면 밤 동안에 됩니다. 낮은 일이 주장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소모되기만 합니다. 사람들이 낮이 좋은 줄만 알고 밤이 어떻게 필요한 것은 모르는 일이 많지만 사실 이 천지에 낮만 있고 밤이 없었다면 생명은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씨ᄋᆞᆯ이 아구를 트는 것은 밤입니다. 상처가 아무는 것도 밤입니다. 밤은 쉬는 때입니다. 쉬는 때가 사는 때입니다. 숨을 쉰다. 숨 태운다는 말이 이것을 증거합니다. 이것이 아마, 안식(安息) 사상의 근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겠느냐 죽이겠느냐 하고 반문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본래 달/밤이 기준이다. 옮긴이 주) 생물적 생명에서도 그렇지만 도덕적ㆍ정신적 생명에서는 더합니다. 밤은 고요하고 쉬는 시간입니다. 이 고요하고 쉬는 동안에 상했던 생명력이 도로 살아납니다. 그래서 맹자는 이 밤숨마저 끊어지면 짐승이 되어버린다 한 것입니다. (함석헌)/주요 출처: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노을이 채색된 들판에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감자를 캐던 젊은 농부는 모자를 벗어든 채 묵상을 하고, 두건을 쓴 그의 아내는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한 때 전 세계를 휩쓸었던 그 유명한 그림 ‘밀레의 만종’이다. 이 그림은 농촌의 목가적 풍경을 그린 밀레의 걸작으로 원제는 랑젤뤼스(L'Angélus), 즉 ‘삼종기도’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그는 농촌의 전원풍경을 그린 화가이기에 앞서 인간공학의 수호성인이었다. ‘건초 묶는 사람들’, ‘양털 깎기’, ‘양치는 소녀’를 그려 국제적 아이콘이 됐다. 그로 인해 농촌화가의 대명사가 됐지만 그의 진가는 이보다 더 거창하다. 1847년 프랑스는 불황이 덮쳐 집 없는 농부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 모습을 밀레는 ‘폭풍우의 피난처’에 담아냈다. 그 후 1년 뒤 파리 살롱전에 ‘키질하는 농부’를 출품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하는 농부를 그림에 등장시킨 건 밀레가 처음이었다. 비평가들은 밀레의 정치적 관점과 농부들을 향한 연민을 감지했다. 밀레는 농민에 대한 그림을 더욱 발전시켰고 자신의 고향을 닮은 바르비종(Barbizon)에서 ‘파종’, ‘만종’, ‘이삭 줍는 사람들’ 등 대작을 계속해서 그렸다. 그는 농부들을 미학적으로 예찬한 최초의 화가였다. 사실 밀레 자신도 농부였다.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망슈 주 그레빌 아그에서 태어난 그. 형제 많은 집안의 장남이었다. 양을 치고 쟁기로 밭을 갈면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사제인 삼촌의 영향을 받아 성경과 몽테뉴, 라 퐁텐,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밀턴, 샤토브리앙, 빅토르 위고를 읽으며 지적으로 성장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 데생에 큰 재능을 보이자 밀레의 아버지는 아들을 쉘부르(Cherbourg)로 보내 유명한 초상화가 폴 뒤무셀(Paul Dumouchel)의 지도를 받게 했다. 스물세 살 때 미술전에서 입상함으로써 쉘부르 시의 장학금을 받고 파리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밀레는 학교 대신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작품들을 복사해 혼자 공부하는 것을 즐겼다. 그 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파리로 돌아와 바르비종에 정착했다. 밀레가 말년을 살다간 바르비종. 이곳은 퐁텐블뢰숲 자락의 보금자리다. 경치가 아름다워 밀레, 테오도르 루소, 장바티스트 코로, 샤를르 프랑수아 도비니 등 많은 화가들이 드나들었다. 특히 밀레는 이곳에 인상파화가의 선구자가 된 바르비종 학파를 열었다. 이 마을의 평화롭고 고요한 숲과 평원, 그리고 자연에 반한 밀레. 이곳의 상징적인 경관은 화가들이 쉬어간 간(Ganne) 여관이었다. 지금은 19세기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 됐다. 또한 밀레의 추억들이 살아 숨 쉬는 밀레박물관도 빼어나다. 바르비종은 ‘초록의 수도’로 원시적 매력을 여전히 내뿜는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돌집들과 장미로 뒤덮인 정원들, 긴 산책로에는 아름다운 고택과 상점, 갤러리들이 즐비하다. 만종을 울려 퍼지게 했던 생폴드 샤리앙비에르 성당도 고색창연하다. 옛것이 그리운 시절, 바르비종으로 떠나보자.
산재관련 상담을 하다보면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산재 신청 시 사업주에게는 어떤 불이익이 있는가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산재 신청 시 사업주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산재로 인해 산재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 산재보험료는 기본적으로 사업의 종류(업종)에 따라 산재보험료율이 정해지지만 ‘개별실적요율’ 제도라는 것이 있어 사업의 종류가 같다고 하더라도 개별 사업장(회사)마다 보험료율이 달라질 수 있다. 쉽게 말해, 산재가 많이 발생한 사업장은 보험료를 더 올리고, 산재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장은 오히려 보험료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업종에 따라 기본적으로 같은 보험료율이 적용되지만 산재발생 건수에 따라 보험료 차등을 두어 산재를 예방하고, 근로복지공단이 지출한 보험급여 대해 상대적 형평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