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당신이 낳은 딸을 보세요. 낳고 기른 딸이, 이제는 또 다른 딸의 엄마가 되어서 걸어가요. 낮게 걸린 비구름 사이로, 건듯 내딛는 걸음걸이가 바람 같아요. 바람은 멈추지 않아요. 멈춤과 바람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라서, 끝끝내 멈춤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요. 엄마, 당신이 낳은 딸이 그래요. 이제는 또 다른 딸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딸이기를 포기한 적은 없어요. 의사의 입에서 사망선고가 떨어지던 그 날도 그랬어요. 모두가 절망으로 머리를 조아릴 때, 당신이 낳은 딸은 바람처럼 나부끼며 온몸을 펄럭거렸어요. - 울 엄마 아직 안 죽었어요. 엄마, 당신이 기른 딸을 보세요. 낳고 길러 공부시킨 딸이, 이제는 또 다른 딸의 엄마가 되어서 새벽을 열어요. 새벽이면 어둠은 썰물처럼 무너져요. 무너지는 어둠을 딛고 현관문을 나서는 뒷모습이 밀물 같아..
집 근처 사거리에 보름 가까이 걸려있던 현수막, 대선 당선사례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하나 되는 대한민국 만들겠습니다’. 정말 마음에 와닿는다. 그런데 참말일까, 가능은 할까, 얼마나 노력을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부동산 정책, 지속적 성장, 사회 양극화 해소, 소통 문제 등 사실 여야 보수 진보가 많은 분야에서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대안책에 있어서 그렇게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북에 대한 인식, 관점에서 본질적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책은 대북정책이라 확신한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핵미사일 문제 등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바로 진단한다면 새 정부에서 기대치 않는 커다란 성..
“거긴 가지 말아요! 그 나쁜 놈들은 빵을 만드는데 악마가 발명한 수증기를 사용한단 말이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숨결인 북풍과 동풍을 이용해 일을 하고 있소.”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풍차방앗간의 편지(Les Lettres de mon moulin)』다. 어두운 파리와 빛나는 프로방스를 대비시킨 이 단편은 도데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 소설의 무대는 프랑스 남쪽 끝 퐁비에이유(Fontvieille).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무대인 아를(Arles)과 길쌈의 마을 파라도(Paradou) 사이에 있다. 옛날에 이곳엔 풍차방앗간이 많았다. 프로방스 사람들이 밀방아를 찧어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파리에서 온 사람들이 기계방앗간을 세우면서 풍차방앗간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웬일인가. 언덕 위의 코르니유(Corni..
6·1 지방선거에서 여야가 후보 등록을 마치면서 당내 공천과 여야 대결이 본격 점화됐다. 집권에 성공한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열세를 보인 경기도의 경우 대선 주자였던 유승민 전의원과 윤석열 당선인 대변인이었던 김은혜 의원을 비롯해 심재철 함진규 전의원 등 내로라는 하는 중량급 인사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홍준표 의원은 대구시장에 나섰다. 이에 맞서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광역단체장 3곳을 포함해 압승을 거둔 민주당은 서울시장에 송영길 전 대표가 나서는 문제로 논란을 빚으며 지방정부 수성에 부심하고 있다. 경기도는 김동연 새로운 물결 대표를 포함해 다선의 안민석 조정식 의원, 염태영 전 수원시장 등 역시 비중 있는 인사들이 불꽃 공천 싸움에 들어갔다. 이번 지방선거는 새 정부 출범 후 20여 일 만에 치..
조선 중기에 천재 딸 셋이 태어났다.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비운(悲運)의 시간이었다. 황진이 허난설헌 이숙원이 그들이다. 여염집 처자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것은 대개 불행의 원인이었다. 치명적인 저주가 되기도 했다. 몽매하고 흉악한 시대였다. 황진이는 시서화무(詩書畵舞)의 탁월한 종합예술가로 당대를 풍미했다. 기생이었기에 가능했다. 성리학이란 게 이 얼마나 난폭한 세계관인가. 난설헌과 진이에 비하여 덜 알려진 숙원은 이들 못지않은 천재였다. 왕실 후손으로 출세길을 마다하고 시골 군수를 지냈던 이봉(李逢)의 서녀였다. 멸문폐족의 한 처자와 화합하여 얻은 이 특별한 딸은 아비의 문재를 내려받아 총기 넘치고 영민하였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호를 옥봉(玉峰)이라 지었다. 이봉은 '옥돌이 아름답게 솟아오른 봉오리'에 크게 감탄했다. 그날부터 숙..
2차 세계대전 전후에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돌베개 출간)을 읽으면 허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프너는 저널리스트답게 히틀러에 관한 기록을 건조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거리두기가 오히려 실체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 과거를 현재진행형으로 만든다.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굶어 죽은 러시아군 포로 300만 명. 폴란드에서 유대인 200만 명 살해. '쓸모없는 식충이'로 분류된 독일인 10만 명 살해. 집시 근절작전으로 독일인 50만 명 살해. 폴란드 지도층 근절 정책으로 100만 명 살해... "히틀러는 오직 자신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수많은 해롭지 않은 사람들을 죽게 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알렉산드로스나 나폴레옹과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고, 여성 연쇄살인범 퀴르텐과 소년 연쇄살인범 하르만과 같은 범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최근 마이스(MICE)산업이 주춤하고 있지만 부가가치가 매우 큰 산업이다. 연관 산업이 매우 다양하고 경제적 파급효과 역시 커서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도 불린다. MICE 참가자들의 1인당 평균 소비액이 일반 관광객의 3.1배나 된다고 한다. 체류기간도 1.4배다. 자체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도 크지만,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기획사·개최지·숙박업체·음식점 등 다양한 산업과 연계되며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더 크다고 한다. 도시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지역의 문화산업 육성 효과도 기대된다. 수원컨벤션센터가 마이스 산업의 중심을 꿈꾸며 개관한 지 3년이 넘었다. 수원컨벤션센터 건립사업은 1995년부터 추진해왔다. 고 심재덕 수원시장은 수원시의 미래 산업을 고민하다가 다채로운 전시·국제회의, 이벤트 등 행사를 진행하면..
“벌에 쏘여 본 적 있으세요?” 한의원에서 봉약침 시술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혹시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종종 하던 질문이다. 예전에는 이 질문이 유효했지만 최근에 특히 도시에서만 생활하는 젊은 층에는 의미가 없다. 당최 도시에는 벌에 쏘일만한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벌의 개체수도 많이 감소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임상에서 꿀벌의 도움을 자주 받는다. 한의원에서 만성 통증치료에 적용하는 봉약침 요법은 자연상태의 벌(Honey Bee)이 가지고 있는 독을 추출, 정제하여 치료에 유관한 경혈에 주입함으로써 인체의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질병을 치료하는 요법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독치병(以毒治病)이라 하여, 약물이 가지고 있는 독성을 잘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데 봉약침 요법 또한 이에 해당된다. 벌의 독은 약 40가지의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통과 소염 효과가 뛰어나고 면역기능을 증진시켜 준다. 꿀벌이 생산하는 꿀은 예로부터 한약재로 쓰였다. 한약재명은 봉밀이다. 동의보감에서는 봉밀의 효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5장을 편안하게 하고 기를 도우며 비위를 보하고 아픈 것을 멎게 하며 독을 푼다. 여러 가지 병을 낫게 하고 온갖 약을 조화시키며 비기를 보한다. 또한 이질을 멎게 하고 입이 헌 것을 치료하며 귀와 눈을 밝게 한다’. 벌꿀은 비타민, 미네랄 등 다양한 생리활성물질이 포함돼 있는 고열량 식품이자 약이다. 기력이 떨어지고 기관지나 폐가 지나치게 건조해서 생기는 기침, 허하거나 속이 냉해서 생기는 복통, 대장의 진액이 부족해져서 생기는 변비 등을 치료하고 피로할 때 피로를 풀어주는 힘도 강하다. 물론 약으로 쓰인다는 것은 일정한 적응증이 있다는 뜻이다. 얼굴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거나 몸이 찬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꿀이 좋은 약이 될 수 있지만 얼굴이 붉거나 열감과 염증이 심한 증상에는 꿀을 처방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어린이들 경우 ‘열체’라 해서 몸에 열감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매우 신중히 처방해야 한다. 돌 전의 아이는 금한다. 한의학에서는 몸을 보하는 기운이 있는 환약을 조제할 때 꿀을 이용해 반죽, 환약을 빚는다. 환을 만들 때 꿀을 섞으면 비교적 장기보관이 가능하고 환 모양을 잘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 많이 알려진 인기있는 보약인 경옥고도 꿀이 주성분으로 들어가고 공진단을 빚을 때도 꿀로 반죽한다. 이렇게 늘 항상 존재할 것 같았던, 일상에서 뿐만 아니라 한의사로서 매일 도움을 받는 꿀벌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 모 기사에 따르면 2022년 봄 국내에서만 ‘70억마리 실종’ 이 추정된다고 한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벌꿀에 의지하던 많은 먹거리도 위기이다.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는 암울한 상황도 예상된다. 이렇게 사라져 갈 정도로 고통받고 있었다는 것에 안타깝고 가슴 한켠이 휑하다. 더 늦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까.
조선 건국에 깊이 관여한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이 궁궐의 좌향을 놓고 치열하게 맞섰다는 역사는 유명한 얘기이지요. 무학은 “인왕산(仁旺山)을 주산으로 유좌묘향(酉坐卯向)이나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대궐을 지어야 한다”고 한 반면에 삼봉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임좌병향(壬坐丙向-정남에서 동쪽으로 약 15도 틀어진 방향)으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니까 무학은 인왕산을 뒷산, 낙산을 앞산, 북악산을 좌청룡, 남산을 우백호로 삼자 한 것이고 삼봉은 북악산을 뒷산, 남산을 앞산,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우백호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는 뜻이에요. 이 대결은 결국 왕실이 ‘도선비기’와 같은 주장을 한 정도전의 견해를 받아들임으로써 종지부를 찍었어요. 그래서 조선의 대궐은 임좌병향으로 지어지게 된 거예요. 하지만 그 이후로도..
윤석열 행정부의 초대 총리로 한덕수 전 총리가 내정됐다. 안철수 위원장이 총리직을 맡지 않겠다는 결심을 밝힌 이후, 총리 인선은 급물살을 탔다. 안 위원장의 이런 결심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안 위원장이 초대 총리를 맡았을 경우, 본인의 행정 경험에는 유익할 수 있지만, “정치 초보 대통령”과 “행정 초보 총리”라는 조합이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었다. 더구나 윤석열 행정부는 향후 최소 2년간은 “압도적 야대(野大) 상황”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두 사람 중 최소한 한 명이라도 경험이 풍부해야 함은 당연하다. “압도적 야대(野大) 상황”은 벌써부터 잘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임대차 3법을 인수위가 손보겠다고 하자, 민주당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계약 갱신율이 70%에 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