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이성적 프로세스여야 한다. 하지만 정치를 하는 주체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어서, 감정적 갈등이 이성적 프로세스이어야 할 정치 과정을 때로는 망치기도 한다.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요즘 윤석열 당선인 측과 문재인 대통령 간의 갈등이 간단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의 표면적인 발단은 청와대 이전 문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인사 문제를 두고 윤 당선인 측과 문 대통령 측이 갈등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과거에도 “등장할 권력”과 “퇴장할 권력” 사이의 갈등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첨예한 경우는 없었다. 이처럼 갈등이 첨예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이번 대선에서 표 차이가 아주 근소했다는 점이다. 표 차이가 근소했기 때문에, 현재의 여권은 패했지만 “자신만만”할 수 있..
“바스크의 촉망받던 군인 돈 호세. 자신에게 꽃을 던져준 집시여인에게 영혼을 빼앗겼다. 착하고 얌전한 고향처녀 미카엘라와 결혼하려고 맘을 돌려 보지만 그 집시여인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비극의 오페라 카르멘(Carmen). 이 곡의 작곡자는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다. 그 역시 너무나 천재적 이어서였을까. 서른여섯의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 않던가. 카르멘을 두고 한 말 같다. 비제는 파리에서 가발을 만들고 이발사를 하다 가곡 선생이 된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였을까. 피아노에 소질이 많았다. 그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건 어머니다. 비제는 어려서 피아노와 작곡 경연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오페라를 작곡한 건 그의 나이 스무 살 때. 아름다운 ‘진주조개잡이(Pêcheurs de Perles)’는 스물다섯에 만들었다. 하지만 비제는 아직 성공한 작곡가는 아니었다. 그에게 찬스가 온 건 파리 오페라 코미크가 카르멘을 주문했을 때. 비제는 야심찬 꿈을 갖고 부기발(Bougival)로 거처를 옮겼다. 센 강 둔치의 한적한 곳에서 카르멘을 쓰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그가 쓴 원고는 1000페이지. 그러나 초연은 실패였다. 관객들에게 관능적이고 자유분방한 카르멘은 시기상조였다. 비제는 탈진했고 심근경색으로 부기발에서 숨을 거뒀다. 카르멘이 성공을 거둔 건 그의 사후 4개월 만인 빈에서였다. 공연을 본 니체와 바그너, 차이콥스키는 극찬했다. 브람스는 카르멘을 무려 20번이나 보았고 “비제를 포옹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가겠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카르멘의 작곡가를 사랑했다. 비제의 안식처였던 부기발. 이곳은 센강이 툭 튀어나온 녹색의 작은 낙원이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앞 다퉈 여기 들어와 불멸의 경치를 그렸다. '부기발에서의 춤'을 그린 르누아르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러시아 작가 뚜르게네프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비제와 교류했다. 파리지앵들도 부기발을 좋아했다. 둔치의 선술집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여흥을 즐겼다. 오늘의 부기발은 19세기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불멸의 작곡가 비제의 집과 카르멘 광장이 초입에 멋지게 복원돼 있고, 노트르담 성당 주변에는 유쾌한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특히 부기발의 자랑 마쉰 드 마를리(machine de Marly)의 자취는 여전하다. 세계에서 경이롭기로 이름난 이 기계는 루이 16세가 고안한 것이다. 센 강의 물을 품어 베르사유와 마를리 성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대선이 끝났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스산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해외 이동 제약이 풀리기 시작했다. 정처 없을 땐 여행이 약이다. 파리로 훌쩍 떠나 밤거리를 거닐며 심호흡도 해보고 태양이 다시 뜨면 교외선에 몸을 실어보라. 30분이면 비제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부기발에 당도한다. 거기서 아름다운 카르멘의 아리아 ‘아바네라(Habanera)’를 들어봐라. 분명 카타르시스와 함께 힘이 솟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기자회견에서 “정말 외람되오나”라며 질문을 시작했던 기자가 자신의 표현에 대해 사과하고, 공식 해명했다. 오마이뉴스에서 밝힌 해당 기자의 말인즉 “답변자가 윤석열 당선인이기 때문에 쓴 표현은 아니었다”고 했다. 평소 인터뷰 때에도 상대방이 누구든 난처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예의상 입버릇처럼 썼던 표현이었고 이 논란이 있고서야 적절치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해당 기자는 지난 13일 윤 당선인이 인수위원회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인수위 관련 질문을 하고 그 뒤에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특검’에 대해 추가로 질문했다. 미디어오늘 보도를 살펴보면 1인 1질문 체제에서 질문을 연달아 했던 상황인지라 다른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차원이기도 해서 “정말 외람되오나”라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1. 이제 곧 벚꽃 잘 쓰지 않는 한자지만, 터질 탄(綻)이란 글자가 있다. 탄로가 나다, 파탄이 나다 등으로 쓰는데, 속에 들어 있는 것이 터져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형성한 한자다. 놓을 방(放)과 합쳐서 탄방(綻放)이라 적으면, 꽃이 터질 듯이 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터지듯 피는 꽃이라면 단연 벚꽃이다. 앵화탄방(櫻花綻放)은 봄날에 터지듯 무리지어 피어난 벚꽃 군락을 가리킨다. 아직 벚꽃이 핀 것은 아니지만, 주야로 걷는 천변의 벚나무마다 꽃눈이 움트는 걸 보니 이제 곧 벚꽃 철이 올 모양이다. 벚꽃이야 예년처럼 장히 피어나겠지. 피더라도 꽃구경하러 갈 마음은 영 나지 않는다. 꽃구경이 다 무언가. 세상사 부질없다는 생각만 가득한 요즘이다. 2. 그는 나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 전에 미리 마음을 다져 먹긴 했지만, 막상 결과를 받아들자 가슴 한 켠이 무너..
검찰은 최근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음주 운전자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숨진 여성은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하던 대학생이었다. 새벽에 치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30대 음주운전자는 지난해 10월 음주운전을 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이 여성과 30대 남성을 들이받은 뒤 도주했다. 이 사고로 여성 숨지고 남성은 전치 12주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지점은 제한속도가 시속 30㎞인 어린이보호구역이었지만 운전자는 시속 약 75㎞로 달리며 사고를 냈다. 뿐 만 아니라 블랙박스를 꺼내 도망쳤다고 한다. 음주운전은 항상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최근 언론과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음주운전 사건 중 대표적인 것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인 래퍼 장용준 씨 사건이다. 장씨는 면허 없이 운전..
그런 날이 있습니다. 무얼 해야 할지, 왜 해야 할지, 텅 비어버린 날 말입니다. 껍데기만 살아 펄럭거리는 하루는 시간을 삼키는 종이인형 같습니다. 인형이 삼켜버리는 시간 때문일까요. 봄이 찾아왔지만, 사람들은 봄을 맞을 겨를도 없이 겨울을 삽니다. 세상은 ‘확진’과 ‘격리’의 틈에서 몸살을 앓습니다. 약기운인지, 봄기운인지. 거리에는, 계절을 따라 걷지 못하고 주저앉은 그림자로 가득합니다. 애써 길을 걸어도 보이는 건 겨울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아무리 찾아도, 왔다는 봄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다시 봄입니다. 움트고 싹트는 것들로 세상은 천지가 젖몸살입니다. 몸살꽃 이파리는 저물고 뜨는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돋아납니다. 저무는 것과 뜨는 것들이 경계의 이쪽과 저쪽에서 요란합니다. 삼월의 낮과 밤이 덩달아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하늘과..
무리 없이 진행되리라 예상되던 신구정권 인수인계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충돌 양상을 연출했다. 오는 5월 10일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옮겨 새 정부 업무를 시작하겠다는 윤석열 차기 대통령 당선인과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현 청와대의 입장이 맞부딪쳤다. 여야 정치권은 정권 인수인계의 불협화음을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맞물려 첨예한 정쟁 소재로 써먹으려는 조짐마저 보인다. 인수위가 일단 새 정부 출범 이후로 이전 작업 스케줄을 수정한 듯하지만, 사사건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여야가 정권교체기에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하는 것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척도다. 정치적 유불리 셈법에 함몰돼 사명의 본질을 벗어나서는 곤란하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폐해진 민생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층 불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개월째 이어지면서 초토화에 준하는 무자비한 공격으로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전쟁 중단 시기를 놓고 여러 견해가 엇갈리지만, 3월말 경 마무리 국면을 보일 것이라는게 대체적 전망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 제재, 자유를 수호하려는 서방측의 단합된 의지에다가 전장인 우크라이나가 3월말경이면 겨우내 얼었던 땅이 진흙탕으로 변해 러시아군의 탱크를 동원한 작전이 쉽지 않다는 것이 논거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후하여 ‘정보’의 역할은 지대했다. 정보의 예측적 기능이 십분 발휘되었고,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정보기관들의 정보능력 또한 막강함을 각인시켰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 모두가 온라인으로 전쟁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최초의 TikTok 전쟁이다. 러시아..
대선의 결과로 인한 트라우마가 꽤 오래가고 있다. 의학적 용어인 정신적 외상(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이 선거 후유증으로 전환되어 뉴스도 보기 싫고, 의욕 상실에 식욕부진까지 겹치고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충격으로 나온 선거 후 스트레스장애(Post Election Stress Disorder)를 나도 겪는가 보다. 그러나 이젠 일어나야 하는데 벌써 나오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들이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승리가 확정된 후 윤석열 당선자는 자신은 젠더,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이 없다며 투표 결과는 다 잊었다고 한다. 글쎄? 국민통합을 위해서 투표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미라며 백번 환영이지만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이재명 후보보다 더 받은 표는 겨..
2002년 4월 금강산에서 처음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다. 1-3차는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되었으나 북한이 이를 꺼리고 금강산에서 열기를 희망하여 이후 2018년 21차까지 금강산에서 상봉행사가 열리었다. 금강산에서 처음 개최된 4차 행사는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다. 이산가족들의 이동문제도 그렇고 특히 상봉행사의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남북간 합의에 어려움이 많았다. 북측은 통제 가운데의 만남, 만남시간도 가능하면 줄이길 원했고 하룻밤의 동숙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산가족들의 선물 수송도 만만치가 않았다. 이 일의 책임을 맡은 나로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4차 행사를 끝내고 돌아와 이번 행사를 평가하며 다음 행사에서는 원활한 입경(入境)수속을 위해 북측 CIQ 직원들과 특별한 만남을 준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해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