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어제(9일) 오전 9시까지 보내야하는 글이다. 당연히 대선 투표결과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칼럼은 오늘(10일) 실린다. 어떻게 써야 엉뚱한 글이 되지않을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껏 대선을 염두에 두고 칼럼을 실어왔는데 딴소리할 수도 없고 틀리건 맞건 내가 생각한데로 적을 수밖에.. 어젯밤 늦게까지 동영상 중계로 후보들의 마지막유세를 봤다. 한사람은 여전히, 아니 더욱 격한 어조로 상대후보를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중엔 심지어 허위사실 논란이 일었던 여배우까지 무대에 세우며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다른 한 사람은 비난보다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니 홍대 앞 마지막 유세에서는 사람들과 즉문즉답을 주고받으며 마무리를 했..
선거는 끝났다. 그런데 선거보도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칼럼은 물론 스트레이트 보도조차 진영 논리로 춤을 췄다. 칼럼은 특정 캠프의 감독 명령으로 둔갑하고, 스트레이트 기사는 다른 언론이 검증하는 사안을 물타기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의 ‘윤석열은 안철수를 보쌈이라도 해오라’는 칼럼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학생이나 초년병 기자의 저널리즘 강의에 쓰면 더없이 좋을 사례가 됐다. 강의제목은 ‘버릴 관행’ 정도면 적절해 보인다. 보쌈이란 용어는 품격 있는 언론인이 입에 담아서는 안될 말이다. 그가 쓴 보쌈은 ‘삶은 돼지고기 편육을 절인 김치에 싸서 먹는다’는 뜻으로 쓰인 게 아니다. 투표용지 인쇄 마감일인 2월 28일을 혼인이 가능한 마지막 날로 보고, ‘혼기를 놓친 윤석열은 과부인 안철수를 납치해서 강간하고 같이 살라’는 교시였다. 후보나 선거 캠프의 일방적인 발언을 검증 없이 전달하는 관행도 여전해, 네거티브 선거전의 불쏘시개가 됐다. 클릭수를 높이는 데 혈안이 된 언론의 생리를 잘 아는 선거 진영에서는 더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 냈다. 언론은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 써 확성기 노릇을 자처했다. 유시민 작가는 3월 3일 MBC ‘100분 토론’에서 “사적 소유 언론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익 집단이다. 사회적 공기가 아니다”라고 통박했다. 또 “올드 미디어에 매달려 공정선거보도를 촉구하며 애걸복걸 호소하는 헛짓거리는 그만하자”라는 말도 했다. 사회자 정준희 교수가 “선거 때 유권자와 정치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미디어인데, 지금의 언론구조가 민주적 기능을 제대로 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유 작가의 주장은 일부만 옳다. 공영언론이 아닌 언론사가 사기업이고 영리를 추구한다는 말은 맞다. 그렇다고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면 논리적 비약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최순실 국정개입 특종보도는 뉴스버스 이진동 사장이 조선일보 재직 중에 한 걸작이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는 사적 소유임에도 전 세계가 우러러보는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해 닉슨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국방부 기밀문서 사건을 폭로해 미국의 베트남전 허상을 세상에 알렸다. 영국의 가디언, 프랑스의 르몽드가 공영 언론이어서 세계적 권위지로 자리매김된 것이 아니다. 대주주가 있어도 편집권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구축돼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사기업 언론들이 공적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유 작가의 비판은 우리 언론계가 곱씹어봐야할 대목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지만, 한국언론의 신뢰 추락 속도를 보면 초가삼간 허물고 재개발에 나서야 하는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정파를 초월해 저널리즘 신뢰를 높이는 일에 나서야 할 이유다. 출발은 대선보도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작업에서부터다.
“진실은 땅 속에 묻히면 점점 자라며 숨이 막혀서, 결국 그것이 터지는 날에는 모든 것을 날려버릴 만한 폭발력을 얻게 된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 에밀 졸라(Emile Zola)의 고발문이다. 진실의 은폐로 간첩이 된 드레퓌스(Alfred Dreyfus) 대위. 유대인이었기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이에 분노한 정의의 기자 졸라. 펠릭스 포르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썼다. “자뀌즈(J'accuse: 나는 고발한다)!” 이는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마침내 지식인들의 선언문을 이끌어 냈다. 재판은 뒤집혔고 드레퓌스는 누명을 벗었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두 동강 나게 한 “드레퓌스 사건.” 이를 종식시킨 졸라. 프랑스 양심의 표상이 됐다. 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존경은 하늘을 찔렀다. 오죽했으면 사후 6년 만에 프랑스 위인들의 성전인 팡테옹에 그를 모셨을까. 하지만 졸라의 인생초년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모자라는 듯 말을 더듬고 국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타지에서 온 학생이 이처럼 꺼벙하니 프로방스 학생들은 그를 괴롭혔다. 이때 세잔이 나타나 구해줬고 그 둘의 우정은 시작됐다. 졸라는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도 연거푸 낙방했다. 대학을 결국 포기했고 아셰트(Hachette) 서점 종업원이 됐다. 그때 스탕달, 발작, 플로베르를 열심히 읽었다. 그의 좌우명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읽지 않는 날이 없어야!”는 이때 생긴 것이고, 이는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꿨다. 졸라는 메당(Médan)을 좋아했다. 파리에서 30킬로 떨어진 이 마을은 센 강이 굽어 드는 언덕 위에 있다. 이곳에 졸라는 1878년 집 한 채를 샀다. 대박 난 그의 소설 『목로주점』 덕분이었다. 이 집에서 모파상, 세잔 등과 사교를 하며 졸라는 문학적 상상력을 키웠다. 세잔은 여기서 불멸의 작품 '메당의 성'을 그렸고, 졸라는 명작 루공 마카르 전작을 집필했다. 24년간 살았던 메당의 졸라 메종. 네오 고딕식 서재와 가구, 졸라 자신이 직접 그린 도안들, 키가 큰 전신의 불상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바로 옆에는 드레퓌스 기념관이 서 있다. 드레퓌스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 노래, 슬라이드, 팸플릿, 포스터 등이 잘 전시돼 있다. 메당에는 이 외에도 역사 문화 유적지가 많다. 마을 한 복판에 세워진 생 제르맹, 생 클레르 성당. 토스카니식의 채광창, 둥근 지붕 위에 올라붙은 두 개의 종루가 있는 이 성당은 우아하기 그지없다. 메당의 영주 장 부르댕(Jean Bourdin)이 1635년 세운 것으로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16세기 최대의 시인 롱사르의 별장도 있다. 졸라의 지성이 생각나는 시절이다.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무엇이 진실인지 너무도 혼탁하다. 혹시 파리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있다면 메당에 꼭 한 번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서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한국의 갈등을 부추기는 건 내가 아닌가, 나 자신은 깨끗한가. 이런 다양한 질문들을 하고 답을 찾아본다면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여행이겠는가.
이른바 ‘역대급’으로 치열했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낙선자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이번 선거 역시 저급한 비방, 흑색선전, 이합집산 등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것 역시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다. 어쨌거나 당선자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쌓였다. 코로나19, 경제, 주택, 빈부격차, 저출산 고령화, 지역갈등, 사회양극화, 남북관계, 청년일자리, 노후대책,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 남녀갈등, 이념갈등...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문제들이다. 이번 선거 기간 중에도 후보자들의 공약을 통해 대부분 언급된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이슈가 되지 않은 내용이 있다.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이 안보였다. 그나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지난 1월 “연줄 없는 인재들의 진입을 가로막는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제 폐지를 제안”했지만 윤석열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2005년 기초자치단제장 정당공천제, 3기 연임제한, 후원회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6·30 공선법’이 개정되고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가 전면 도입됐다. 당시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 기초의회, 시민단체들은 입법 재량권을 일탈한 위헌이자 ‘개악’이라며 반발했다. 이후 여야 모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정당공천제 폐지 법안은 국회에도 제출됐다. 2012년과 2013년 모두 6차례였지만 심의조차 하지 않은 탓에 자동 폐기됐다. 2012년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 폐지를, 문재인 후보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처럼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치권이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항이라고 봐도 옳았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해 가장 뜨겁게 싸운 인물은 고 심재덕 의원이다. 무소속으로 수원시장에 두 차례 당선됐던 그는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국회지방자치발전연구회 대표의원과 열린우리당 지방자치특별위원장을 맡아 전면에 나섰다. 그는 ‘6·30 공선법’이 개정되자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 및 연임제한 규정 유지는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은 물론 주민들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국회지방자치발전연구회 대표의원과 열린우리당 지방자치특별위원장을 직도 전격 사퇴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KBS가 지방의회 부활 30년을 맞아 주민 인식조사를 했다. 이 결과 지방선거(기초·광역의원, 기초단체장)에서 10명 중 7명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정당공천제는 ‘중앙정치권의 입김과 잇속, 돈 선거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지방선거에 나서려는 후보자들이 추운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유세에 동원되는 모습을 봤다.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눈에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고액의 공천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이 땅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여·야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정당공천제 폐지를 재논의하기 바란다.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헐뜯기 네거티브 난타전으로 일관한 20대 대선 투표일이 밝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뜩이나 멍든 민심을 더욱 힘들게 했던, 선거기간 내내 펼쳐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저질 선거전도 모두 끝났다. 신기록을 달성한 사전투표율이 증명하듯, 이번 대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결정의 날, 마지막 선택만 남았다. ‘회고적 투표’를 넘어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이성적인 ‘전망적 투표’로 유권자의 ‘성숙한 지혜’를 보여주자. ‘비호감 대선’으로 점철된 선거전의 혼란 속에 둔감해졌지만, 이번 대선전은 국가적으로 대단히 엄중한 환경 속에 치러졌다. 이 나라는 지금 안보와 경제 지형에서 국내는 물론 글로벌 대전환의 시기에 직면하고 있다. 가공할 코로나 후폭풍, 10여 년 만의 인플레와 부동산 가격폭등으로 인한 자산 양극화, 높은 청년 실업률, 세계 최저 출산율과 최고 고령화 속도 등 해결해야 할 국정이 산더미다. 혼돈 상황으로 치닫는 국제적 환경은 더욱 엄혹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나라가 힘이 없으면 국민이 처참한 피란민으로 전락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러·중이 대치하는 신냉전이 전개되는 급변은 안보 영역을 훌쩍 넘어서는 전방위적 글로벌 긴장국면을 예고한다. 기술, 공급망이 진영을 중심으로 복잡한 이합집산을 추동하는 새로운 경제패권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치러지는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최악의 흙밭 싸움을 연출했다. 여야는 국가의 미래 따위는 도무지 안중에도 없이 상대 후보에 대한 티 뜯기에만 혈안이 되어 결정타를 먹이기 위한 폭로전 선동에 함몰된 추악한 선거전을 펼쳤다. 상대 후보를 파렴치범으로 몰아 때리기 위한 온갖 협잡과 모함이 난무하는 형편없는 저질 청백전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권자를 하찮게 여기는 저급한 선거전략이 판치는 육박전에 불과했다. 이쯤에서 유권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선거야말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임을 똑똑히 상기해야 한다.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은 명실공히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부터 각성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심판의 성격을 띤 것이 선거인 만큼 그동안 해온 것을 평가해 표심에 반영하는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를 아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온전히 감성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할 개연성이 높은 ‘심판’의 성격에만 머무르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국내외적으로 냉혹한 시대를 맞닥트리고 있는 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누가 앞으로 잘할 것인가 하는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를 아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치명적인 ‘이성 마비’ 고질병을 획책하는 지독한 ‘진영주의’가 걱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맹종을 강박하는 기형적 파당 정치의 병폐를 논증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냉철한 이성을 꼿꼿이 가누고 투표장에 가시라.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물려줄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 잠시만 더 생각하고 결정하시라. 오늘의 선택이 당신의 삶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규정한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릴 수 없듯 스스로 칭찬함으로써 평판을 높일 수는 없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사람들의 평가는 내려가는 법이다. 남들한테서 좋은 말을 듣고 싶거든 스스로 자신의 좋은 점을 늘어놓지 말라. (파스칼) 사상과 그 표현, 즉 언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상과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은 좋지 않다. 속된 사람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드러나도록, 현명한 사람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가려지도록, 언어는 그렇게 주어진 것이다. (로버트 사우디) 자신에 관해 남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결코 마음이 평화로울 때가 없다. 페르시아 사람 사디는 언젠가 아버지 옆에서, 집안 식구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 밤새도록 자지 않고 코란을 읽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
백주 대낮. 지난 7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촌서 선거운동 중에 70대 남성 유튜버에게서 피습을 당했다. 또 지난달 24일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충남 홍성 유세 중에 ‘선제타격, 사드 배치 반대’를 표명하며 1인 시위를 하던 젊은 여성이 정당 지지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소위 ‘태극기부대’ 중장년·노년층 일부의 막무가내 ‘폭력’이 유야무야 용인되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정치 폭력의 씨앗’은 이 지경으로 자랐다. 선거를 일종의 전쟁이라고 쳐도, 유권자의 축제에 폭력이 용납되어선 안 된다. 정치적 견해차에 따른 폭력은 아마도 2014년 봄, ‘국가의 무능’으로 인해 세월호가 침몰하는 속에서 꽃 같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은 후, 희생자 가족을 조롱하던 ‘일베’들의 ‘혐오’와 궤를 같이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국가 폭력 범죄자인 전두환을 옹호하는 발언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기도 했다. 철학자들은 “좋은 정치란 평화와 번영을 이루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며, 나쁜 정치란 나라를 전쟁 상태에 몰아넣고 국민을 갈등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로크, 루소 등의 공통된 주장이다. 또한 좋은 정치란 ‘폭력’과 ‘불평등’이 없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 비폭력 정치의 본질이듯이, ‘불평등’의 제거는 정치의 소명이다. 불평등과 관련해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인 토크빌(Tocqueville)은 “평등은 인류 사회를 진보시킨다”고 했다. 이쯤에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으쓱해했을, 넷플릭스의 초대박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을 각자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은 스토리 전개에서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 불평등을 드러내 보였다. 그 ‘드러냄’으로 한류는 세계의 주류(主流) 문화가 됐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들은 대한민국이 아시아 1위 민주주의 국가, 아시아 1위 언론자유지수 환경에서 탄생했다. 이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번 선거에는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이 질문으로 던져졌다. 제20대 대선은 국가가 ‘괴이한 폭력적 동물(리바이어던)’이 될 것인지, 정치 폭력의 하나였던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대동 공동체’가 될 것인지를 가름하는 날이다. 양 진영 모두 ‘교체’를 주창하지만, 핵심은 ‘정치(적) 폭력은 안 된다’는 것이다. 서로 증오하고 두려워하게 하는 ‘트럼프식’ 정치, 혐오와 막말에 바탕을 둔 ‘저렴한 정치’가 이 땅에 또다시 자리를 잡아선 안 된다. 썩은내 풀썩이는 공작 정치도 물론이다. 미래 비전과 민생을 위한 정책 제시, 경제와 안보를 우선하는 통합의 정치를 위해 “나 하나쯤은 투표 안 해도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은 도려내야 한다. 국민은 폭력적 정치와 막말 정치인, 여론 조작을 일삼는 레거시 미디어를 ‘혼쭐’ 내줄 현명한 심판관이기 때문이다.
‘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아요? 더 가릴 음식은 없는가요?’ 그녀가 물었다. 마흔 넘어 결혼을 하고 임신을 위해 한 시험관시술에 다섯번 실패한 후 빠른 회복이 절실한 마음이리라, 열심히 했는데 심신이 지쳐버린 그녀다. 나는 “돼지고기와 밀가루, 튀김, 인스턴트, 화학첨가물이 든 음식을 피하고 한식위주로 담백하게 골고루 식사하라는 큰 원칙만 지키면 되어요.” 하고 대답하니 그녀는 자세히 알려달라고 재차 졸랐다. 마지못해 나는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한약을 복용하면서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던 어느날 그녀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원장님. 회를 조금 먹어도 괜찮나요.” 바닷가 동네인 고향 부모님댁에 갈 때면 비추천 음식인 회종류를 많이 차려주시는데 안먹는 게 스트레스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참는 것보다 신선하고 좋..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친구인 현인 유하혜(柳下惠)의 동생이다. 그러니까 대략 2500년 전 인물이다. 9000명이나 되는 졸개들을 거느리고 전국을 종횡무진하며, 재산약탈, 양민학살, 식인, 부녀자 학대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특수강도였다. 맹자, 장자, 사마천의 사기에도 나온다. 도척은 이름처럼 '최고의 도적'으로 2500년 동안 특별한 존재다. 공자가 그 형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사람 만들어주겠다고 만난 적이 있다. 놀랍게도, 공자는 도척의 긴 시간 훈계를 들은 뒤 심한 모욕을 당하고 쫓겨났다. 공자가 수레에 탄 뒤에도 머리를 숙이고 부들부들 떠는 장면이 장자 잡편에 상세히 나와 있다. 훗날, 장자의 제자들이 '소설 쓴 거'라는 설이 있다. 왕초와 부하들과 나눈 대화다.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습니까?" "그 어디를 가봐라. 길이 없는 곳이 있는..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양상이나 나라 안팎의 여건들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들로 점철됐다. 막판까지 선거 프레임을 지배한 후보·가족 리스크와 네거티브전, 3년차의 코로나 등이 유권자들을 짓눌렀다. 이런 가운데 사전투표는 선관위의 부실관리 논란속에 역대 최고의 열기를 보였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유권자들은 오히려 대선의 의미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제 9일 본투표를 끝내면 차기 정부 5년을 이끌 새로운 국가지도자가 출현한다. 유권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없는 주권행사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미래를 희망과 과실로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고 엄중하다. 무엇보다 선거 과정 중에 노출된 갈등이다. 여야는 서로 “지는 쪽이 감옥에 간다”고 말할 정도로 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