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한 달 정도 남았다. 여론 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와중에 ‘경기도 분도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분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지방분권 시대와 균형발전, 다가올 남북협력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분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북도 분도론은 선거철마다 수면으로 떠올라 쟁점이 되고 있다. 1987년 제13대 대선 때 민정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5년 뒤인 1992년 대선 때는 김영삼 후보가 분도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분도공약은 2000년 총선에도 등장했고 2004년 총선 때는 여야 모두 경기도 분도를 약속했다. 2014년 지방선거 때는 ‘평화통일 특별도’라는 이름으로 분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제안이 등장했으며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공..
북쪽의 2월은 28일이라는 가장 적은 일자에도 가장 많은 式(식)과 놀이가 있다. 式에는 기념일과 민속명절이 있다. 민속명절로는 정월초하루와 대보름이 있고 기념일로는 2월 8일 건군절과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이 있다. 기념일에는 각종 행사에 의식적으로 참가해야 하지만 민속명절에는 취향에 따라 한바탕 놀아볼 수 있는 날이다. 2월에 빨간 날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軍(군) 창건일이 두 개나 있다. 2월 8일은 1948년 생겨난 것이고 4월 25일은 1932년 김일성이 만주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한날이다. 2018년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4월 25일은 창건일로, 2월 8일은 건군절로 되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軍을 기념하는 명절이 두 번이나 있어 2월에는 휴일이 하루 더 늘어났다. 그리고 민속명절인 음력설은 80년대 후반부터 휴일로 지정되었고..
‘중앙선데이’ 기사를 최근 ‘미디어오늘’이 조졌다. 싹수의 흔적마저 안 남은 언론 동네 퇴영(退嬰)의 음흉한 처참이 차라리 슬프다. 제 속셈이 여론인가? 신문이 지 하고 싶은 말에 전문가의 뜻을 까먹었다. 제 뜻에 맞춰 뒤집었다. 항의하니 반응 없다가 법적 대응한다니 ‘의도는 없었고 마감에 쫓겨 취지를 오해했다.’고 했다. 온라인 판에서 삭제했다. ‘미디어오늘’ 보도다. 대선 후보 이모저모, ‘스피치’ 주제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천천히 말하기'에 신경 쓰고 있다고 밝힌 뒤 ‘윤석열 후보도 단기간 내 화법이 변한 사례로 꼽힌다. 특히 불필요한 단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관련해, 신지영 교수(고대 국문과)가 그 기사에서 “윤 후보는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경험이 적었을 뿐 스피치 자체가 미숙한 편은 아니다.” “..
텔레비전을 없앤 지 20년째다. 당시 애들 엄마는 드라마 작가, 나는 정치컨설턴트였다. 세 아이 모두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오후, "이 놈들이 TV에 중독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리사이클링업체에 주었다. 물론 과격했다. 애들은 잠시 금단증세를 보이더니 이내 받아들였다. 그 해 여름 한일 월드컵 때, 놈들은 온 세상이 왜 붉은 티셔츠 입고 미쳐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지 모른 채 그저 눈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했다. 그 표정들 잊을 수 없다. 요즘 우연히 소위 '먹방'을 접할 때가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 배치된 거구의 연예인들과 그 기획의도를 보며 식욕이 동하기는커녕, 측은지심과 함께 화가 치민다. '폭식'은 단순히 식도락이 아니다. 정치 경제의 으뜸주제를 그토록 탐욕적이고 희화적으로 추락시켜 긴 시간 전파를 낭비하는 건 옳지 않다..
쭈엉(가명)을 만난 것은 1년 전, 공단 옆 원룸촌에서였다. 미얀마에 군부쿠데타가 일어나자 한국에 거주하던 미얀마교민들이 각 지역에서 집회 같은 항의행동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일 때였다. 지역 교민회 대표를 맡고 있던 쭈엉은 큰 눈에 선한 인상의 이십대 후반 젊은이였다. 야간근무 출근하기 전에 잠시 만난 쭈엉은 한국에 온 지 벌써 8년째, 이젠 십여 명이 일하는 사출공장에서 쭈엉이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못한단다. 쭈엉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후 여동생과 남동생까지 넘어와 일도 하고 학교도 다니고 있었다. 쭈엉은 훗날 결혼을 하더라도 당분간 가족이랑 한국에서 일을 더 하고 싶다고 했다. 고향에서 가족과 여유있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윤석열후보가 "국민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얻는 외국인 건강보험 해결하겠다"고 했을 때..
한글이 유엔 공용어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SNS를 타고 널리 퍼졌다. ‘한류열풍으로 기존 공식 언어의 하나인 프랑스어보다 사용자가 많은 한국어를 UN에서 표결,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일이었다. 왜 이런 중요한 뉴스를 주요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걸까. 확인을 해보니 역시 가짜뉴스였다. 좋다 말았다. 현재 유엔의 공용어는 여섯 개다.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 중국어, 아랍어다. 유엔의 모든 문서가 이들 6개어로 작성, 배포된다. 현재 자국어를 유엔의 공식 언어로 채택하려 노력하는 나라는 인도와 일본이다. 15억에 육박하는 인도의 인구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1억2000이 넘는 일본의 인구는 세계 11위다. 한국은 이들 두 나라에 비해 인구수가 적다. 남한의 인구는 5200만 명으로 세계 28위다. 북한의 인구는 2600만 명으..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설 연휴가 끝나고 여론조사 등을 통해 민심이 표출되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가 하루속히 정상으로 돌아가, 국리민복을 챙기고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새해 들어 해외발 악재가 우리를 더욱 옥죄고 있다. 물가 상승세는 원유와 가스 등 수급 불안으로 멈추지 않고, 여기에 우크라이나 긴장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 1월 수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15.2% 증가한 553억 2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수출 증가율도 11개월 연속으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유지했다. 어려운 시기에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무역수지는 48억 9000만 달러의 적자로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원유와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원의 수입 규모가 1년 전보다 90억 6000만 달러나 폭증했..
지하철이 없는 중소도시에 사는 한 구순 할머니는 자식에게 신세 지기 싫다며 텃밭에서 수확해 창고에 보관해둔 농산물을 손수레에 끌고 저잣거리에 내다 판다. 하루 3만 원 남짓 번다. 교통비는 왕복 버스요금 2900원(편도 1450원)이 든다. 짚 옆에 지하철이 있는 수도권의 팔순 할아버지 한 분은 아침 식사가 끝나면 집을 나선다. 거미줄처럼 펼쳐진 지하철을 이용해 춘천, 인천, 동두천, 여주, 아산까지 주요 지역을 찾아 다닌다. 물론 교통비 무료다. 1만 원 들고나가면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고 귀띔했다. 복지 차별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지하철이 적자에 시달려도 무임승차 연령 조정 등 해결책을 말하는 후보는 없다. 오로지 유권자가 많은 수도권 개발 청사진만 난무한다. 충청의 후예고, 경상도의 자식이며, 호남이 사위를 들먹이지만 지역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은..
기후변화는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환경문제가 됐다. 지구 온난화가 이대로 계속 진행된다면 자연재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동·식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이에 많은 국가들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20년 12월 7일 2050 탄소중립 비전을 공식 선언했다. 에너지 대전환 시대를 맞아 산업계도 힘을 합쳤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 그러니까 대기 속에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을 상쇄할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숲을 조성하고, 무공해에너지인 태양열·태양광·풍력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분야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가..
에릭 사티(Erik Satie)를 알게 된 것은 소설가 Y 씨를 통해서다. 20년 전의 이야기. 경기도 일산에 사는 문학인, 예술인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날은 문화부 기자 한 명과 함께 Y 씨의 아파트에 초대받아 가서 맥주를 마셨다. Y 씨가 떨어진 안주 대신이라며 음악을 틀었다. 소설가와 기자, 방송작가 셋이 문학, 예술 시사를 오가며 벌이던 격론의 힘을 빼고 술잔마저 내려놓고 귀 기울이게 하던 피아노 소리. 담담하면서 쓸쓸하고 또 기이했던.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Gnossienne)’라고 소개한 Y 씨가 한마디 덧붙인다. ‘김 작가가 이쪽 필(Feel)이었구만.’ 그 주 주말, CD를 구입해 종일 들으면서 에릭 사티를 탐색했다. 프랑스 대혁명과 파리 코뮌에 이르는 약 80년의 정치적 격변 이후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으로 문화, 예술이 만개했다)에 활동했던 아방가르드 작곡가. 파리 예술가들(예를 들면, 작가 알퐁스 도데, 기 드 모파상, 에밀 졸라, 작곡가 샤를 구노, 화가 클로드 드뷔시 같은!)의 아지트였던 카페 ‘검은 고양이’에서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던 사티는 기행으로도 유명했다. 똑같은 모양의 열두 벌 검은 벨벳 슈트만 돌려 입고 수백 개 소지해 매일 들던 우산을 정작 비 오는 날에는 젖는다고(우산이!) 접고 다녔으며 흰색의 음식만 먹었고 심지어 일인 종교를 창시해 교주이자 유일 신자로 살았다. 사티의 악보는 또 얼마나 별났던지. 대개 안단테, 모데라토, 알레그로 등이 적혀 있을 지시어 자리에 ‘치통 앓는 나이팅게일처럼, 너무 많이 먹지 말 것, 난 담배가 없네......’등을 써놓았다. Y 씨 집에서 처음 들은 그노시엔느(고대 그리스인을 뜻한다), 그 유리알같이 명징한 피아노 곡 악보에도 ‘매우 기름지게, 혀끝으로, 구멍을 파듯이......’라고 써놓았다. 그나마 정상(?)스러운 표현을 하나 덧붙였으니 ‘확신과 절대적 슬픔을 가지고’. 그 지시어는 영화 ‘엘레지(Elegy)’를 떠오르게 했다. 그노시엔느를 남자 주인공의 독백처럼 들리게 했던 영화. 2009년 개봉된 이자벨 코이젯트 감독의 이 영화는 문학평론을 하는 대학교수 데이빗(벤 킹슬리)과 서른 살 어린 제자 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혼 후 독신남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하며 사는 데이빗. 환갑 앞둔 그에게 다가온 콘수엘라는 성(性)적 대상이고 관계는 일회적 이벤트였다. 그것이 어린 연인에 대한 배려이고 자신에게도 늙어 추해지지 않을 예방책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콘수엘라는 그의 인생과 사랑 문법에 엇나가는 존재였다. 상처 많은 데이빗과 달리 대가족 집안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성장한 그녀는 정직하고 계산 없는 사랑을 한다. 노년의 자격지심은 결국 어린 연인을 떠나보냈고 뜻밖에(왜냐하면 그의 사랑은 이벤트였으므로) 극심한 상실감에 방황한다. 몇 년 후 다시 찾아온 콘수엘라는 말기 유방암 환자가 되어있었다. 데이빗은 그토록 탐했던 젊고 아름다운 가슴을 절제한 콘수엘라, 그보다 먼저 죽을 수 있는 콘수엘라 앞에서 ‘절대적 슬픔’을 느낀다. 데이빗이 느낀 절대적 슬픔은 사랑의 다른 말일 것이다.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는 제자로부터 사랑을 배우는 과묵한 노교수의 감정을 세밀화처럼 전한다. 에릭 사티의 음악 외에도 아보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의 목소리로 듣는 비발디의 오페라 지우스티노(Giustino) 등도 배우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