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예술은 공교롭게도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먹고 자란다. 영화는 밝은 시대보다는 어두운 시대에 더 잘 되는 경향이 있다. 아니 그보다는 어두운 상황에 대한 얘기를 더 잘하는 경향이 있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그랬다. 한국사회가 문재인 정부 하에서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심하게 곪아 있고 또 그렇게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줬다. 그건 신자유주의가 심화된 때문이고 한국 자본주의가 극도의 천민화, 양극화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은 문재인 이전 이미 9년 동안 진행돼 왔었다. '기생충’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 모두 이러다가 비극적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 드라마로 등극한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다. 극중 인물인 1번 노인을 통해 이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에..
근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무관심층이 60%가 넘고 그중 25%는 ‘통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부정적 의견을 내놓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그냥 우리끼리 잘 살면 되지 굳이 통일을 해서 불편하고 힘든 상황을 만들 필요가 뭐 있겠느냐는 생각이다. 핵개발이다, 미사일 발사다, 불안만 조성하는 북한의 행태를 볼 때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숙명적으로 우리는 분단상태에서는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반도를 우리는 한반도라 부르지만 북한은 조선반도라 부른다. 그들과 대화할 때 북한이란 용어를 사용하면 그들은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대한한국의 북쪽이란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정통성을 두고 싸운 6·25전쟁이 모양이나 방법은 다르지만 어쩌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급기야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몰린 애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안전과 위로를 그리고 당신들의 애국적인 항전 소식에 감명하고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음을 밝힌다. 침략자 러시아의 야만적인 공격이야 당연히 가장 먼저 규탄하지만,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온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행태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코미디언 출신인 정치 신인이라고 치부하던 언론이 이재명 후보가 정치 초짜의 어리석음 때문에 전쟁이 터졌다고 하자 한순간에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되고 있다. 수도 키예프를 지키며 결사항전을 지휘 중인 그의 행동은 분명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의 어설픈 언행이 러시아의 푸틴을 자극하였고 그것이 전쟁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1차 투표에서 30..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4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26만6853명으로 역대 최대였다. 경기지역 확진자도 7만 6726명으로 하루 최고 기록을 넘어섰다. 수원시(6289명)와 용인시(6183명)가 6000명대였고 성남시(5471명), 고양시(5040명), 화성(4614명), 부천(4553명), 남양주(4290명) 등에서 많은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정도면 이제 막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국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은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방역 모범국’이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한 신문에 발표한 글에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방역 성적을 거두게 된 비결을 분석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메르스를 겪음으로써 정보 개방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감염경로의 추적과 코로나 방역 전반에 대한 실전훈련 경험을..
먼 나라의 낯설지만 가슴 뛰는 음악. 월드뮤직을 수식할 때 쓰는 말 중의 하나인데 서양 클래식 중에도 종종 그런 음악이 발견된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아르보 패르트(Arvo Part)의 음악이 그 예. 그의 음악을 알게 된 건 10년 전, 한 바이올리니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첫인상도 말투도 까칠하게 느끼게 한 그녀는 자주 연주하는 곡을 묻자 ‘ 나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이런 거 지겨워요. 나 정도 되는 연주자면 아르보 패르트같은 걸 해야지’라며 자신감과 오만함을 넘나드는 눈빛을 보였다. 끝까지 유쾌하지 않았던 인터뷰의 기억은 이후 그녀의 연주회에서 들은 아르보 패르트 연주(Fratres: 형제들) 한 곡으로 반전됐다. 쇤베르크, 프로코피에프, 바르톡같은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이 감정을 두드린 경우가 드물었는데 처음부터 심장으로 직진한 아르보 패르트 음악은 충격이었다. ‘영적 미니멀리즘’이라는 그의 음악에 붙는 생경한 찬사는 그가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 르네상스 종교음악에 심취했고 독실한 러시아 정교 신자라는 배경을 알면 이해가 간다. 영성의 길은 또한 침묵의 길일 터. 그의 작곡의 변에 ‘음악은 음 하나가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종소리의 여운처럼 남는다. 실제 두 가지 악기, 혹은 두 가지 소리만 낸다는 그만의 작곡법 ‘틴티나불리’는 라틴어로 ‘종들’이라는 뜻이다. 음 하나하나의 오랜 울림, 여백, 침묵을 오가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 절로 눈이 감기고 다른 세상으로 뜨는 듯한 감정의 유체이탈을 경험한다. 아르보 패르트의 북채는 너무 시끄러운 세상에서 너무 고독하게 사는 현대인들의 심장을 두드렸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배경으로 쓴 영화가 50편이 넘는다. ‘어바웃 타임’같이 유명세, 호평을 받은 작품의 반대편에 있는 마돈나 출연의 영화 ‘스웹트 어웨이(Swept Away)’를 소개한다. 이 영화는 마돈나에게 미국 ‘골든 라즈베리’ 수상을 안겼는데 이 행사는 ‘영화값 1달러도 아까운 영화를 뽑자’는 취지로 아카데미 수상식 전날 열린다. 수상 부문은 ‘최악의 여우주연상’ 마돈나는 골든 라즈베리가 사랑하는 대표적 배우로 지금까지 무려 5회나 동명의 상을 거머쥐었다. 5개 영화 대부분 마돈나의 섹시한 이미지를 띄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영화에 영성과 침묵이 종소리처럼 울리는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이라니, 비웃음을 탑재한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표정들이 보이는 듯하다. 영화의 악명을 모른 체 넷플릭스를 뒤지다 우연히 보게 된 나의 한 줄 평은 ‘신파로 버무린 마지막만 뺀다면 재미, 의미면에서 추천하고 싶다’다. 1974년 만들어진 ‘귀부인과 승무원’을 리메이크한 ‘스웹트 어웨이’는 ‘사랑에 완전히 휩쓸려간’ 정도의 뜻인데 주인공은 미국 재벌가 사모님과 이태리 어부 총각. 친구 부부들과 경비행기를 타고 지중해 크루주 여행을 하게 된 안하무인 불치의 왕비병 사모님 엠버는 배 안에서 머슴 부리듯 하며 갖고 논 선원 페페와 동굴탐사를 떠났다 조난 당해 무인도에 상륙하게 된다. 둘만 있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반전은 이 영화를 코미디에서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철학 작품으로 끌어올린다.(다시 말하지만 끝부분만 빼면!)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은 극적인 장면마다 흘러 영화의 긴장과 몰입을 더해준다. 아르보 패르트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바이올린 연주회에서 나를 감전시킨 프라트레스(Fratres)도 들어보시길.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난무하던 여론조사 결과를 지금은 공표하지 못한다. 후보들의 지지율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투표일 전 1주일 동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게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거나 왜곡된 정보로 주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차단하는 게 맞다. 답답하고 궁금하더라도 지금은 선관위가 보내준 공보물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생각을 정리할 때다. 서울신문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25~26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각각 37.2%와 42.3%로 5.1% 차이였다. 갤럽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가정한 조사도 했는데, 그 결과 격차는 더 적었다. 단일화를 하면 0.1%라도 더 벌어져야지 줄어드는 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25일 TV 토론에서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는 결렬되었다고 재삼 확인한 마당에..
이제 금요일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 사전투표는, 전국 단위 선거로는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때 처음 적용됐었다. 사전 투표가 처음 실시됐을 당시, 사전투표를 가장 많이 한 세대는 19세와 20대였던 반면, 가장 저조한 사전투표율을 보였던 세대는 70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최종 세대별 투표율을 보면, 20대의 투표율은 끝에서 두 번째로 저조했지만, 70대 이상의 투표율은 60대 투표율 다음으로 높았다. 처음 실시된 제도였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젊은 세대들이 사전투표에 많이 참여했던 반면, 상대적으로 새롭게 도입된 제도에 대해 생소함이 있을 수 있었던 고연령층은 본 투표에 참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사전투표율은 점점 올라갔다. 젊은 세대부터 고령층까지 점점 사전투표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갔기 때..
20대 대통령 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역대 최고의 비호감, 네거티브, 불확실성이 지배한 선거였다. 현재로선 최악의 혐오 선거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책선거, 인물 대결은 완벽하게 배제됐고, 심지어 투표용지 인쇄가 들어간 이후에도 단일화 논란이 모든 이슈를 앗아갔다. 결국 야권단일화로 결론났지만 여야는 막판까지 제3지대 후보를 놓고 서로 밀고 당기기 쟁탈전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념과 가치는 대혼돈이다. 선관위는 이번 대선에서 선거보조금 등 공식비용만 4210억 원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여기에 유무형의 비용까지 계산하면 천문학적인 혈세와 돈이 투입된다. 그래도 국민들은 선거로 내 삶이 1%라도 달라지겠지 하는 약간의 설렘과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이대로 끝난다면 선거 무용..
초등교사라는 직업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교육 활동으로 상상했던 거의 모든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에서 미리 정한 각 교과의 시수를 크게 해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초등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광범위한 것도 다양한 활동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장점 덕분에 어떤 선생님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세금을 내며 금융 지식을 익히는 교육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고, 또 다른 선생님은 성인지 교육을 학급 특색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가르치는 게 가능하다. 올해 우리 반의 학급 특색을 꼽으라면 ‘신체 활동’을 들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간단하게 계획했던 내용인데 지난달 교육청에 프로젝트 수업 예산을 신청하면서 구체적인 윤곽이 잡혔다. 머릿속에서 파편적으로 떠돌던 교육 내용들을 사업 지원서에 구체화..
"장미가 그곳에 피어 있기 전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 장미가 그곳에 피었을 때는, 아무도 장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 아,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이렇지 않았던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것인가?' 마지막 연이다.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시는 "모든 일이 이렇지 않았던가?" 하고 비논리의 일상성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사회주의 체제였던 동독에서 1954년께 이런 시를 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인민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아야 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미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성으로는 알 수 없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 무엇임에 틀림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