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추락하는 새 정부의 국정지지도를 보면서 쉬운 길을 나두고 어려운 길, 그것도 가서는 안 되는 길을 택하여 고생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지지도 추락의 원인은 각자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남북관계만을 가지고 논하고자 한다. 북한에 끌려 다니다 핵문제 등 남북문제를 망쳤다는 생각으로 탈북자 북송 등을 정쟁화하여 지지를 얻겠다고 기대했다면 이는 큰 착각이라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 과거 북풍공작 같은 일에 휩쓸릴 정도은 아니며 나름 균형감각을 갖는 안보관을 갖고 있다. 그런 수준 있는 우리 국민이기에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가능했다고 확신한다. 관점에 따라 첩보 등 당시 상황을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인데, 지금의 최우선 과제인 경제문제는 제쳐두고, 남의 탓을 통한 자신의 정체성, 가치..
21대 후반기 국회가 50여일의 긴 식물국회를 끝내고 대정부질문을 시작으로 본격 가동됐다. 국내외 대형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많은 국민들은 그동안 허송세월한 시간을 압축해 입법부 본연의 임무를 다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여야 정치권을 보면 제사보다는 젯밥에 쏠려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바로 2024년 총선 공천권과 관련한 차기 당권 경쟁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 반이재명 구도로 흘러가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8월 28일)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국민들이 더 주목하고 우려하는 곳은 집권여당인 국민의당이다. 정상적인 일정대로라면 내년 6월에 당 대표가 선출돼야 하지만 이준석 대표가 6개월의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으면서 당 지도체제의 불확실성이 파장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당 내부가 이대표 대 비(非)..
진정되는듯한 코로나가 다시금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1주일 사이에 두 배로 뛴다는 더블링이 이어져 전문가들은 8월에는 3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코로나의 재확산은 이미 세계적 현상이 되어 각국은 모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인 오미크론(BA.5)에 이어 더욱 강력하다는 켄타우로스(BA.2.75)까지 거듭되는 변이의 발생으로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서구의 학자들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종결시키는 방안으로 4가지 정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첫째가 가장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부터 배려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적 관점이고 둘째는 최대 다수가 혜택을 봐야 하므로 먼저 완쾌가 빠른 젊은 층에 집중해서 방역과 치료를 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 셋째는 개인의 생명까지도 자유이므로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한다는 로버트 노직의 자유방임주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주의가 그것이다. 정답은 단연코 4번째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이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고 세계 최다의 확진자국가가 된 것은 전적으로 자유방임주의적 마인드와 정책 덕분이었다. 한국은 지난달 말 블룸버그에서 선정한 코로나19 회복력 전 세계 1위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이는 4번째 방법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비난이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국경을 봉쇄하지 않았고 신속한 선별진료소 운영과 빠른 격리, 치유,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까지 국가의 주도와 자발적인 국민의 참여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민관 합동으로 함께 고통을 극복한 한국의 모범적인 방역시스템에 대해 세계는 K-방역이라며 칭송했다. 비록 자유롭게 해외를 나가서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국제회의에서 한국 대표들에 대한 절대적인 환대가 그것을 증명했다. 이런 성과에도 전임 정부의 정책을 정치방역이라 비판하며 자신들은 과학방역을 하겠다던 현 정부는 막상 뚜껑을 여니 과학은 온데간데없고, 각자도생이라는 방역법만을 제시한다. 정권이 자랑하는 도어 스테핑에서 대통령은 과학방역이 기본 철학이지만 희생과 강요가 아닌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는 방역을 하겠다고 한다. 정권 출범 두 달이 지났음에도 방역정책을 총괄할 장관은 없고 신임 질병청장은 통제중심의 국가주도 방역은 지속 가능하지도 못하고 또 지향할 목표도 아니란다. 그럼 국가가 왜 있는 것이지? 전 정부에서 확보했던 비상용 병실, 선별진료소 등은 대부분 철수했고 자가 진단키트의 가격도 몇 배로 뛰었다. 중소기업에 지급되던 유급 휴가비와 생활지원비는 축소되고 재택치료비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인상된 것은 사망 시 위로금 정도이다. 우스갯소리로 ‘과학방역’이 아니라 ‘가학방역’이라고 하니 각자가 알아서 생존하라는 것이다. 전세계에 자랑했던 K-방역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우리도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는 국가가 되고 있다. 하긴 몰락하는 게 방역 정책만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그립다, 그리고 돌아오라 K-방역.
세상은 늘 한 번에 망가지지 않는다. 서서히 붕괴한다. 그건 마치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 형사 해준(박해일)이 서래라는 이름의 조선족 여인(탕웨이) 때문에 붕괴하는 것과 같다. 붕괴는 물리적인 파괴보다 해준처럼 참담함이라는 정서적 공습으로 다가선다. 붕괴는 간조(干潮)가 끝나고 밀물이 차오를 때 마냥 서서히 스며든다. 지금 우리 사회가 딱 그렇다. 예컨대 1. 이전 정부 때까지 정권의 핵심 공간이었던 청와대를 지금의 정부는 베르사유 궁전처럼 바꿔 관광 장소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이미 그곳을 버린 자들이지만 공적인 공간을 자기들 멋대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이 일단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적어도 공청회 같은 것, 여론을 모으는 척 같은 것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게 누구 발상이고 누구 아이디어인지, 생각한..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운영이 중지됐던 도내 곳곳의 공원 물놀이장이 무더운 여름을 맞아 일제히 재개장했다. 그동안 집에 갇혀 지내던 어린이와 부모들의 크게 기뻐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장에서 무더위를 해소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물놀이장에는 워터스프레이, 뭐터 슬라이드, 워터드롭·미끄럼틀, 유아풀 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시설을 갖췄다. 따라서 멀리 있는 해수욕장이나 워터파크를 가지 않아도 집 근처에서 산책하다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경기내도에는 수원시를 비롯, 고양·용인·평택·안양·이천시 등 많은 도시에서 물놀이장을 운영하고 있다. 수원시의 경우 공원 내 물놀이장을 2013년 처음 5곳에 설치했는데 시민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일월·샘내공원(장안구), 권선·마중·매화·고래..
본보는 ‘버스 무료·콜택시 통합도 좋지만…’ 제하의 기사(18일자 3면)를 통해 장애인 이동권 관련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정책의 섬세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사에 따르면 경기도는 김동연 지사의 공약에 따라 31개 시·군의 콜택시 이용 방식을 하나로 통합하는 ‘장애인 콜택시 광역통합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내년 초까지 통합 시스템을 완성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등록된 모든 장애인에게 버스 이용 요금을 2023년부터 전액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사는 각 지방정부들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정책들은 실제 이용자의 입장에서 봤을 땐 실효성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한 저상버스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저상버스 보급..
손흥민은 불세출의 축구 영웅이다. 공을 간결하게 다루지만 엄청난 내공에서 비롯한다는 걸 축구 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는 결과로 입증되었다. 지난 시즌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이 모여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득점왕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늘 해맑게 웃으면서 주변을 챙기는 그의 모습이 더해져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진정한 스포츠 영웅이 갖춰야할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그를 길러 낸 아버지 손웅정 씨에 대해서는 억척 아버지 아니면 전근대적 스파르타 식 지도자 정도의 평가만 있다. 그런데 최근 그의 발언은 우리의 편견을 여지없이 깬다. 그는 춘천에 손흥민 거리를 만들자는 강원도 신경호 교육감의 제안에 "(축구를 마치면 손흥민은)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업적이 있으면 사회의 영웅화 작업에 쌍수 들고 동조하는 풍조와 너무 다른 모습이다. 이 한마디 발언은 손 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동시에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그는 성공이나 명예나 물질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고 웅변한다.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가치에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중심에서 벗어나기, 탈중심(脫中心). 결코 쉽지 않은 냉철한 통찰이지만 이는 우리 시대의 유행어가 돼버린 인문학 정신일 터이다. 알고 보면 인문학은 인간답게 잘 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에서 성공만 추구하다 인간다움을 잃는 예를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인간다움을 잃음으로써 손에 쥐게 된 성공을 한 순간에 잃는 예도 마찬가지로 많이 본다. 가치의 전도가 불행의 원인인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돌이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손웅정 씨가 지난해 말 펴낸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예상치 않은 길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게 곧 성공이라고 단언한다. 삶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성공이 아닌 즐거움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끝내 "축구라는 매개로 의도하는 모든 행위를 딱 한 마디로 줄이면 결국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삶의 본질에 닿으려고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인간다움의 완성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이쯤이면 그가 손흥민 거리 조성을 반대하는 이유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명확해진다. 그것은 깊은 사유에서 오는 절제와 겸양일 것이다. 장자 제물론(齊物論) 편에 나오는 '오상아(吾喪我)'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까지 잃어버리는 진정한 자유. 손흥민은 그야말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꿈을 주고 위안이 되는 스포츠 영웅이다. 그러나 그의 오늘은 아버지의 철학이 주춧돌이 되었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기술과 이기는 법보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더 중요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을 존중하면서 함께 즐거워하는 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손웅정 씨에게서 우리 시대의 인문학 표본을 읽는다. 책 속에 있는 평면적인 것이 아닌, 꿈틀거리는. 그래서 더욱 빛나는.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면서 7월이 지나간다. 장마전선이 끝난 것은 아니고 비구름에 태풍까지, 멋대로 상륙하고 북상하면서 한반도를 지날 것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시간, 잠시 TV이나 전화기는 꺼놓고 물안개 오르는 곳을 찾아가 보자. 오물 찌꺼기가 밀려간 작은 냇가는 산속 계곡의 물처럼 맑고 새소리는 또렷하다. 옥수수는 우쩍 자라 이삭이 패었고 나뭇잎은 푸르다. 해질녘 된장 넣은 통발을 논이나 강가에 놓고 아침에 나가면 작은 물고기들이 오글거린다. 이것들을 새치네라고 하든지, 세치네라고 하든지 세치밖에 안되는 것이 팔딱이는 힘이 하도 세서 복날 더위를 가셔 줄 여름 보양식으로 지금이 적기다. 소금에 박박 문질러 씻어 호박이나 풋고추, 깻잎을 넣어 끓이면 세치혀의 입맛을 살린다. 새치네를 모르는 곳도 있고, 이것 저것 섞어서 끓인 것을 새치네 탕이라고도 하니 맛대로 멋대로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삼복에 이것을 먹었다. 그냥 퉁쳐서 어죽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천렵이라고도 한다. 여럿이 강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뛰어다니며 물고기 몰이를 해서 잡는다. 강변에 가마를 걸고 장작불을 피워놓고 잡은 물고기를 손질해 가마 가득 끓여 놓고 늘어지게 하루를 즐긴다. 기타를 잘 치거나 노래 잘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 그러다 소낙비라도 쏟아지면 황급히 줄행랑을 친다. 숙박시설이 없으니 당일치기로 경치 좋은 곳을 골라서 직장동료나 친구끼리 놀다 보면 어쩌다 일탈의 시간이 휘딱 지나간다. 그냥 퉁쳐서 어죽은 북쪽이 고향인 사람에게 한여름의 추억이다. 남쪽에는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음식의 풍요인데 그 깟 어죽이 머라고 삼복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오이냉국이다. 폭우가 지나가도 오이는 매달려 있다. 무더위가 시작되면 제일 큰 것을 골라 사카린에 식초를 적절히 넣고 간장으로 색상을 조절하고 오이를 가늘게 썰어 넣는다. 아주 더운 날 오이냉국만 마셔도 더위가 가신다. 때로는 된장을 풀어서 만든다. 로마 사람들은 오이를 정신적으로 강인한 힘을 주는 채소로 인식해 병사들에게 절인오이 피클을 제공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도 오이를 체력을 보강하는 강장제로 믿었다고 하니, 그런 건 몰랐어도 오이냉국을 먹어서 그런지 삼복더위를 잘 견디고 살았다. 지나고 보면 가난한 시기 고향인 북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부족했기 때문에 아끼고 귀하게 먹었다. 고향에서 이밥에 고기국을 먹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탄수화물의 과잉 섭취로 보리밥을 먹고, 건강 때문에 야채와 과일을 더 먹으려 애쓴다. 폭우와 폭염이 지속되는 7월은 습하고 뜨겁다. 장대비가 몰아칠 때는 무섭게 몰아쳐도 온갖 잡동사니들을 쓸어가 버리니 배속 내장이 깨끗해진 기분이다. 7월은 남북이 정전협정에 도장을 찍은 달이다. 지금도 휴전중인 정전협정에 도장 찍고 돌아서 나올 때 등 뒤에서 울렸다는 아리랑의 슬픈 노래, 이보다 더 슬픈 곡조를 만들 수 있다면 아픈 사람도 적을 것 같다.
집권 2개월 만에 지지율이 이렇게 거덜 난 대통령이 있었나. 그를 위해서도 나라를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일각에선 지지율이 더 추락하면 탄핵이 일어날 거라지만, 친위 쿠데타라면 모를까, 세계 어디에도 지지율이 바닥을 긴다고 탄핵당한 지도자는 없었다. 21세기 들어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5%로 떨어졌고, 결국 탄핵당했지만, 그것은 브라질 정치의 후진성과 부패가 빚은 코미디였지, 지지율 문제라고 단언할 수 없다. 국민이 뽑았으니 국민이 퇴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지도자가 내우외환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 한정이다. 지지율이 아무리 낮아도 그것만 가지고 탄핵이 통과될 리 없다. 역대 대통령은 상반되는 두 가지 이미지로 대중에게 나타난다. 이승만은 국부와 독재자, 박정희는 경제 발전과 독재자, 김영삼은 하나회 척결과 IMF 위기, 박근혜는 공주와 최순실 등이다. 이제 겨우 2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이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어떨까. 무능과 김건희로 요약할 수 있다. 윤석열은 김건희로 흥했고, 그로 인해 몰락할 것이다. 예언이랄 것도 없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윤석열의 오랜 지인들이 지키는 룰이 김건희 언급 금지라고 한다. 대선을 돕던 모 의원(짐작건대 나경원)이 김건희 리스크를 언급한 것만으로 선거판에서 배제되고, 취임식에 초청도 받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윤석열의 역린이 김건희라면, 윤석열의 정체성 중 가장 속 고갱이 역시 김건희일 것이다. 지도자라면 역린을 만들지 말아야 하고, 있다면 그가 정치를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격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호사가들의 입초시에 오르내릴 안줏거리론 영부인 이야기가 제격이겠지만, 나는 사실 그녀에 대한 흥미도 없고, 무엇보다 아는 바가 없다. 현재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자들의 수준으로 볼 때 기대난망을 넘어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그저 부디 바라건대 김 여사 수발 잘 들고, 꼬리 잘 감춰서, 국민 대중에게 불쾌감과 혐오심, 나아가 증오를 키우지 않길 바란다. 우리나라는 “내 말이 틀렸으면 도끼로 내 목을 치라”는 지부상소의 유구한 전통으로 빛나는 나라라서, 대통령 부인이라고 그냥 넘어가 주지 않는다. 부디 제발 최순실 전철은 피하길, 그러려면 지금처럼 나대지 말고, 구중궁궐 안에서 영부인 놀이나 하고 지내길 바란다. 내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부분은 김건희 리스크가 아니다. 윤석열의 진짜 문제는 그가 완벽하게 무능하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왜 이렇게 급전직하하고 있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을 뿐이다. 반 문재인. 그 하나로 스타가 됐고, 대선 후보로 뽑혔으며, 기어이 대권을 잡았다. 그래서 취임한 뒤로도 반 문재인 노선을 충실히 걷고 있는데, 왜 두 달 만에 환호가 저주로 바뀐 걸까. 그에게 아주 조그만 정치적 재능이라도 있다면 민심 이반의 원인과 대처법을 찾아내겠지만, 그의 무능과 독선은 충언과 고언을 내치고 예스맨들로 가득 채워진 대통령실과 내각을 고집할 것이라서, 우리 앞날은 매우 암울할 것이다. 누가 알겠냐만, 5년 후 그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나라 꼴은 어찌 돼 있을 것이며, 고꾸라진 주식시장은 대체 언제쯤 되살아날 것인가. 나라 걱정 숱하게 하며 살았지만, 대체 무슨 짓을 해서 나라를 망가뜨릴지 이렇게 조마조마한 대통령은 처음이다.
“계파정치를 배격하고 통합정치를 하겠다” 지난 17일,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 언급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이재명 의원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기는 하다. 그는 당내 “계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가, 계파를 배격하겠다는 본인의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비주류이기 때문에 계파를 갖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인지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계파정치란 배격돼야 하는 “부정적 존재”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계파정치는 민주적 정당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같은 정당이라고 해서 반드시 똑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적 정당이라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맞고, 같은 입장이나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 무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상당수 국가나 일본의 정당에서도 계파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계파의 존재가 영국 민주주의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영국은 내각제 국가의 대명사이지만, 양당제하에서 내각제를 한다는 것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내각제는 총선에서 최다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행정부를 꾸리는 권력구조다. 즉, 입법 권력이 행정부를 구성해, 입법 권력과 행정 권력이 융합되는 권력구조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각제는 자칫 독재로 흐를 수 있다. 하지만 내각제를 하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다당제이기 때문에, 내각제를 하더라도 독재로 흐를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다당제하에서 내각제를 하면, 특정 정당이 절대 과반 의석을 획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연정이 필수적이다. 이렇듯 다양한 정당들과 연정을 할 경우, 특정 정당이 독주할 가능성은 없다. 또한 연정을 통해 소수의 목소리도 국정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훨씬 잘 구현할 수 있다. 반면 양당제하에서 내각제를 운영하면, 특정 정당이 입법부와 행정부를 동시에 장악하기 때문에 독재로 흐르기 쉽다. 한마디로, 영국도 독재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영국이 독재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뿌리 깊은 민주주의 전통과 보수당과 노동당 내부에 존재하는 계파 덕분이다. 즉,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독자적으로 행정부를 꾸린다고 하더라도, 해당 정당 내부의 다양한 계파들이 수상을 견제하기 때문에 독재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계파는 민주주의를 오히려 강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또한 정당 내부의 다양성과 민주성도 계파의 존재를 통해 잘 표현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명분은 좋지만, 계파정치를 배격하겠다고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타협과 양보의 미덕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