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되가져오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취임 이후 몇 차례 협의 끝에 지난해 다시 작전통제권 반환을 몇 년 뒤로 미루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작전통제권 반환이 현재로선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그 부속문서인 SOFA(주한미군지위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s)이다. 방위조약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미국에 모든 군사주권을 통째로 넘긴, 지상에서 가장 해괴하고 굴욕적인 주권포기행위였다. 자기 군대를 스스로 지휘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 이게 과연 나라인가? 군사주권을 잃어 청일, 노일 전쟁이 이 땅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우리 민족이 최악의 참화를 당해야 했던 구한말 상황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조약 4조는 “...미합중국의 육, 해, 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수락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우리 정부의 동의 없이 미국이 자신의 군사력을 한반도와 그 주변에 배치할 ‘무한 권리’를 명문화하고 있다. 더 극악한 독소조항은 SOFA로 더 심각한 불평등 규정으로 가득하다. SOFA는 조약 4조에 따른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으로서, 미국이 요구하는 주한미군의 기지와 시설을 모두 한국이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과, 한반도에 중국까지 겨냥한 무기를 반입하고 전개, 증강하는 모든 군사적 행위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일절 간여할 수 없는. 일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전 세계 최대의 기지가 평택에 세워지고, 얼마 전 사드 배치를 미국 의도대로 마무리한 것, 그리고 반환 협상이 진행 중인 숱한 미군 기지들의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미국의 완전한 책임 면탈권, 이 모든 것이 이 조약과 협정에 근거한 미국의 ‘정당한 권리’인 것이다. 따라서 부산 미군기지로 반입돼 반인도적 문제로 말썽이 일었던 독극물의 화학무기 제조 및 실험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시정조처를 내릴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 전략물자의 전개는 가장 심각한 안보위협이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은 북한핵 개발을 막겠다며 한반도 상공에 항공모함과 B2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대규모의 최강 무기를 띄워 극도의 긴장감을 고조시킨 바 있다. 이 민족절멸의 위기 순간에도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군사적인 자주적 조처는 전혀 없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고 경제개발협력기구가 인정한 선진국이 되었으면 무슨 소용인가? 미 군사력 한방이면 잿더미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현 상황에 우리의 군사주권 회복은 민족의 생존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하다. 최소한 미국이 독일과 일본 등과 맺은 수준의 대등한 조약으로의 개정이 절실한 것이다. 이 엄중한 상황임에도 우리 유력 대선 후보들은 작전통제권 반환에 관해 이렇다 할 청사진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순간, 생의 모든 것이 지나가는 눈빛’이란 말을 이해한 것은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감독: 노먼 주이슨)’에서 신부 아버지로 분한 차임 토폴을 통해서다. 신기하고 존귀한 선물이면서 애간장을 끓게 하는 십자가, 자식이란 존재를 통해 겪은 희노애락애오욕의 길고 긴 세월을 단 몇 초로 표현해냈다. 명배우의 눈빛만이었을까. 그 눈빛을 더 빛나게 했던 것은 결혼식 장면 내내 흐르던 노래였다.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 그 노래는 사춘기 때 라디오 심야방송을 통해 처음 들었고 자주 들었다. 카카오 함량 높은 초콜릿처럼 달콤하기보다 쓰고 음울했던 멜로디에 콧날 시큰했던 기억도 나는데 사춘기의 감상만은 아니었다. 작사가 셀든 하닉은 처음 노랫말을 쓴 후 작곡가 제리 복의 부인에게 보여주었는데 부인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한..
새해가 밝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2022년을 즐겁게 상상해 본다. 올해는 당연히 코로나가 없어질 것이다.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벗고 2년 전의 일상으로 회복되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어떤 장소에든지 대화하게 될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과거와 같은 밝은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더는 집, 일자리, 해고 걱정이 없는 살맛 나는 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가 준 반성의 기회를 잘 활용해 다시는 자연환경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우를 반복하지는 않는 첫해가 2022년이다. 아울러 금년은 지난해 노골적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들이 시정되는 해가 될 것이다, 특히 공공의료 체계의 증대에 반대하는 의사들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의대 증원을 찬성하고 협조할 것이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한 간호..
기대 속에 출발했던 문재인 정부도 이제 4달 후면 그 임기를 마치게 된다. 문재인 정부 기간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으나 분명한 것 한 가지,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반성, 평가를 해야 문제해결을 넘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과 미중갈등, 북한의 침묵 그리고 대선정국의 현 상황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숙고해 주었으면 하는 일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미·중갈등의 본질은 미국 패권의 영향력 감소와 중국의 정치, 경제력 상승에 따른 위상과 자신감 증대가 가져온 필연의 결과이다. 미중 무역마찰이나 중국대만의 양안관계에서의 대만지지, 남중국해 갈등 속의 미국 관여 등 그 이면에는 모두 미중 패권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쿼드 가입 희망 등 확실한 줄..
한국 바둑이 변두리 취급받던 1989년, 조훈현은 제1기 응씨배에 단기필마로 출전해 우승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뒷일은 창호가 알아서 해주겠지.” 새해 벽두부터 이 말이 떠오른 것은 올해 내 큰아이가 결혼 예정이라서다. 한참 푸릇하던 나이엔 이런저런 희망과 포부가 없지 않았지만, 이제 나이 예순에 남은 바람이라곤, 그저 탈 없이 가장 노릇을 잘 마치는 것뿐이다. 둘째는 아직 학업 중이지만, 큰애 결혼 날짜를 잡고 나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십수 년 전에 돌아가신 선친께도 얼마간 빚을 갚았다 싶고. 김규항은 최근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 본질은 자본의 무분별한 확장이며, 노동이 차지하던 최소한의 몫조차 자본이 빼앗고 있어서, 우리 아이들이 직업을 갖고 집을 사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게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우리 잘못으로 젊은이들..
임진년 새해가 밝아 인구 5천만‧세계 10위권 경제강국의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안개 속이다. 선대위를 전면 해체한 제1 야당은 국가리스크를 위협할 상황이다. 내분의 궁극적인 책임은 오롯이 후보의 몫이고 리더십 문제로 귀결된다. 새해 첫날 미국의 빅테크 기업 애플은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했다. 국내총생산(GDP 2020년)이 세계 5위인 영국(2조 7642억 달러)을 앞질렀고 4위인 독일(3조 846억 달러)에 접근하는 경이로운 수치다. 한국GDP(1조 6379억)의 2배 수준에 이르고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 전체 시총보다도 큰 규모다. 2018년 8월 시총 1조 달러를 넘어선 애플은 2년 뒤 2조 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불과 1년 4개월여만에 3조 달러 고지에 올랐다. 애플의 시총은 삼성전자의 7배를 넘는다. 삼성의 스마트폰은 판매량 기..
오병권 경기도지사 권한대행의 2022년 신년사 내용을 크게 분류하면 민생 경제 회복,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모든 행위 근절, ‘돌봄’과 ‘포용’의 복지정책, 미래형 산업구조로의 대전환, 한반도 평화정착과 경기 동·북부 균형발전이다. 모두 중요한 내용이다. 그 가운데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접해있는 경기도, 특히 분단의 현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예민하게 느끼는 경기북부 접경지역 주민들이 특히 관심을 갖는 내용이 있다. 남북관계다. 오 지사대행은 “평화는 생존의 문제이자 번영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말했다. 방역, 경제부문을 포함해 재해와 재난 대응 등 실행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사안부터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남북교류 활성화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와 생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도 멈..
지난해 말 듣도 보도 못한 유언을 접했다. "나를 포함해 사람 개개인이 하느님이란 걸 깨달았으니 여한이 없다. 담백하게, 단순하게 이별할 때가 되었다. 숨 떨어지면 곧바로 화장을 해주기 바란다." 이게 다였다. 생에 대한 미련이나 슬픔이 엿보이지 않는 유언 앞에 그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문 기자 출신의 유언 당사자는 성품 자체가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기성 언론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삐딱'했다. 부당한 취재지시는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반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애썼다. 신입 기자 시절에 대선배인 그를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학생운동권과 거리가 멀었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거명하거나 궁금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다만 그는 조금이라도 옳지 않은 일을 보면 '그건 아니다..
신정의 새벽 교회의 나무의자에 앉아 기도한다. 큰아들을 사랑하고 응원할 방법을 알게 해주시라고 했다. 작은 아들은 미래의 희망을, 외동딸은 행복의 길을 잘 터득하고 살아가기를 빌었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내 인생에 따른 아이들이 불쌍하기만 하여 가슴이 복받쳐 올라 울었다. 희미한 불빛에 의지하여 아이들과 아내에게 스마트 폰에 문자를 심어 보냈다. ‘사랑하는 너에게 금년에는 더욱 따뜻한 아버지가 되어야겠기에 아파트 옆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있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금년에는 더욱 가까이 지내면서 웃는 시간이 많도록 서로 마음을 기울이자. 너희와의 사랑을 위해 노력하마.’라고. -이 일기는 2016년 원숭이해 아침에 쓴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그때의 일기를 읽어보며 오늘날 우리 가족의 삶과 건강을 챙겨보고..
북한은 지난 12.27-31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이례적으로 5일간 개최하였다. 2021년을 ‘엄혹한 난관속에 거창한 변화 서막을 열어 놓은 위대한 승리의 해’라고 평가하고, 2022년에는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사회주의 강국건설과 자력갱생 정신을 토대로 ‘부강한 국가와 인민 복리 증진을 위해 싸워 나가자’는 결의를 보였다. 관심사였던 대남 및 대미관계에서는 ‘변화하는 정세와 상황에 대응하는 원칙적 문제와 일련의 전술적 방향 제시가 있었다’는 짧은 발표로 ‘이중기준과 대북적대시 정책 폐기’라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북한에게 있어 2022년은 결코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영향을 주는 가운데 남한 대선과 새 정부 출범 변수가 있고, 북한의 협상 주상대방인 미국은 미중간 전략경쟁하에서 북한문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