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사이에 스포츠 팬들이 자주 사용하게 된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워크에식’이다. 직업에 대해 성실한 정도를 의미하는데 한국어로는 직업 윤리로 번역될 수 있다. 유명한 스포츠 선수 중에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술, 담배를 비롯한 각종 몸을 해치는 일들을 꾸준히 해오지만 성적이 좋은 선수들이 있다. 팬들이 이런 선수를 비판할 때 워크에식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반대로 늘 몸 관리를 하고, 팀에 헌신하는 자세를 가진 스포츠 스타에게 워크에식이 좋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며 더그아웃의 쓰레기를 줍는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직업 윤리가 좋은 대표적인 선수다. 특정 종목에서 슈퍼스타라고 해서 꼭 직업에 대한 자세가 좋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공무원에 속하는 교사의 워크에식은 어떨까. 교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도는 이야기가 있다. 업무분장을 할 때 눈물을 잘 흘린다면 일을 맡지 않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학교는 오는 업무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일을 많이 가져가는 구조라는 거다. 공무원이기에 일을 더 한다고 돈을 더 받는 게 아니니 일단 업무를 피하고 보는 게 유리하다. 이러다 보니 똑같은 연차이지만 누구는 업무에서 모르는 게 없어지고, 누구는 부장 한번 해본 적 없는 상황이 생긴다. 몇몇 학교에서는 특정 사람에게 부장 업무가 쏠리는 걸 막기 위해 근무하는 동안 부장 업무를 한 번 이상 해야 한다는 걸 내규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것도 휴직이나 만기를 채우지 않고 다른 학교로 옮기며 피하는 경우도 있다. 주어진 업무를 피하려면 어떻게든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주어지는 업무를 피하는 게 적극적인 행동이라면 소극적인 행동도 있다. 서이초 이후 인터넷의 젊은 교사들은 최대한 문제가 될 일을 만들지 말자, 돈 받는 만큼 일하자는 분위기다. 급여가 그 직업의 권위를 나타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사는 이전만큼 매력적이거나 가치 있는 직업이 아니게 되었으니 우리도 그만큼만 일하자는 거다. 5년 미만 교사들의 급여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공무원이니 공무원 마인드를 갖는걸 비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던 차에 얼마 전에 만난 몇 명의 선생님과 대화하며 직업 윤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들은 누가 봐도 너무 많은 양의 업무를 혼자서 해오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이 잘 굴러가기를 원한다. 업무를 더 하는 걸로 해결이 된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아이들에게 정말 꼭 필요한 경험과 활동이라 정말 잘 해내고 싶어서 조금씩 조금씩 더 하다 보니 일이 많아졌다.” 길지 않은 교직 경력에서 멋있었던 선생님들은 모두 일을 피하지 않고 성실하게 해냈던 분들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경력을 쌓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일을 잘하고,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는 잔뜩 많아졌는데 업무를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멋이 없다. 새해에 생각보다 다양한 업무를 잔뜩 하게 되었지만 일은 일이니까, 하면 그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이 20일 정도 남은 시점에서 미국의 상당 수 국민들도 향후 4년이 참 길 것이라는 자괴감을 가질 것이다. 우리도 2년 반 전쯤, 5년은 너무 길다라는 생각을 가졌었고 그 우려가 지금 현실로 다가서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재등장을 걱정하는 미국 내 지식인의 목소리는 다양한 대중문화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 『원더풀 랜드』와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가 그것이다. 지난 해 연말에 개봉됐던 알리 아바시 감독의 ‘어프렌티스’란 영화도 트럼프 시대의 재개가 새삼 두렵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중 앞의 두 작품, 『원더풀 랜드』와 ‘시빌 워 : 분열의 시대’는 둘 다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깊은 증오의 정치가 미국이라는 큰 나라를 두 쪽으로 쩍 갈라 놓게 한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 소설 원더풀 랜드에서는 미국이 ‘연방 공화국’과 ‘공화국 연맹’으로 갈라지는데 그 영토의 분포도가 딱, 대선 때의 민주당 지지 주와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거기에 독일 베를린 처럼 중립지대가 하나 있다. 그건 미니애폴리스이지만 왜 작가가 미니애폴리스로 잡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스윙 보트 지역이 아닐까 싶다. 분열과 분단은 언제, 어느 나라, 어느 시대가 됐든 결코 바람직 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 오는 트럼프 재집권 시기에는 이 같은 분단 상황이 미국에서 실현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 아닌 상상이 나오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는 분단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아예 정부군과 이에 저항하는 서부군의 내전으로 비화된 상태의 얘기를 다룬다. 정부군을 대표하는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하야를 거부한다. 서부군은 이제 곧 백악관을 함락 시킬 태세이다. 알렉스 가랜드라는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비록 허구지만 이제 정치 협상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듯 (트럼프를 연상케 하는)대통령을 처단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미국의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뜻을 저버리면 가차 없이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국내에서는 흥행이 완전히 참패했지만 ‘어프렌티스’는 트럼프라는 인간의 정치관과 인생관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 지를 고발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어프렌티스는 견습생이라는 뜻이다. 사실은 트럼프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NBC TV에서 진행했던 TV쇼 프로그램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정치적 견습생이 나라를 대표할 때 자칫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가를 얘기하고 있다. 이 대중문화의 작품들이 비단 미국만의 얘기일까. 한남동에서 버티고 있는 내란범죄의 대통령과 그의 소수 극렬 지지자들의 얘기는 아닐까. 미국의 영화와 소설이 반면교사가 되는 요즘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시도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됐다. 그동안 수사기관과 법원은 ‘12.3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14명을 신속하게 구속했다. 그러나 이번 내란 사건을 계획하고, 발표하고, 현장 지휘까지 한 것으로 확인된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은 아직 조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조사거부 뿐 아니라 수사기관, 법원, 헌법재판소의 정당한 법 집행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새 해 첫 날,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윤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대신, 관저 앞에 모여 있는 극렬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편지를 전달했다. 그는 법원에서 발부된 체포영장의 집행을 막고 있는 군중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해 첫날부터 추운 날씨에도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이 나와 수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저는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끝까지 싸울 것”을 천명하며 등 매우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선동했다. 윤 대통령의 편지가 전달되자 불법적인 시위현장에 있던 군중들은 환호했고, TV를 통해 생중계 된 그들의 광기어린 눈빛은 더 강렬해졌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이 유튜브로 아직 세상을 보고있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고 했고, 국민의 힘 김상욱 의원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변명과 말장난, 거짓말, 갈라치기, 법꾸라지 같은 행동을 그만했으면 한다"고 비판했다. 이 참담한 상황을 끝 낼 방법은 헌법재판소의 빠른 심리와 판결 뿐이다. 지난 12월 31일 최상목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두 명을 임명해 8인 체제로 만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 힘 지도부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온 ‘재판관 6인 체제 판결 불가’ 논란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여 준 일부 국무위원들과 대통령실의 언행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한 정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12월 31일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된 국무회의는 일부 국무위원들의 극렬한 항의로 아수라장에 가까웠다고 한다. 김문수 고용부 장관은 여야 협의가 있었는지 따지며 “국회 인준도 안 받은 부총리가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고 항의했고, 김태규 방통위원장 권한대행은 “(최 권한대행이)헌법재판관 2명을 최근에 만났나”,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야기한 것은 아닌가”라며 취조하듯이 몰아붙이며 최 권한대행의 사직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완규 법제처장을 비롯해 유철환 국민권위원장.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 연원정 인사혁신처장 등이 거세게 항의 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의 행동은 더 가관이다. 대통령실은 1일 공지를 통해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장호진 외교안보특보와 수석비서관 전원이 최 권한대행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에대해 보수논객 정규재씨는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위헌적 계엄을 모의할 때 그리고 파다하게 소문이 외부로 흘러넘칠 때 단 한명도 입을 뻥끗하지 않던 자들이 지금 와서 헌재 심리와 판결을 중단시켜 국정을 마비시키려는 일을 요구하기에 이른다면, 이 자들은 국민의 공복이 아니라 윤석열 개인에 충성하는 사복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극렬 지지자들을 선동해 물리적 충돌을 일으켜서라도 법원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보려는 윤 대통령의 막장 행동은 그 끝이 어디일지, 내란 공범혐의를 받고 있는 국무위원들과 대통령 참모들의 위헌적인 행동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이제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해법은 하나밖에 없다. 헌법과 법률을 따르는 것이다. 법원의 체포영장이 적법하게 집행되고, 6인 체제의 불안정성이 해소된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심리와 판결 뿐이다. 그 길 만이 무너진 국격을 다시 회복하고, 환율급등으로 사라지고 있는 국민의 재산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24년이 지난 2024년 12월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스톡홀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할 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있었다. 2024년 노벨평화상은 일본 내 원폭 피해자 단체인 니혼 히단교(Nihon Hidankyo)가 수상했다. 히단교는 1956년 결성되어 국제사회에 핵무기 폐기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일본 정부에 피폭 지원을 요청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노벨위원회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과 다시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증언을 통해 증명한 공로를 인정”하여 이 상을 수상 한다고 밝혔다.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식에는 히단교 관계자 외에 한국이 피폭자인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과, 피폭 2세인 이태재 한국 원폭 피해자 후손회 회장도 히단교의 초청으로 함께 참여했다. 수상식의 대표연설을 한 다나카 데루미는 “일본에서 피폭돼 고국에 돌아간 한국인 피폭자들과 전후 미국과 브라질, 멕시코, 캐나다 등지로 이주한 많은 피폭자는 피폭자 특유의 병, 원폭 피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고통받았다”라고 했다. 시간이 흐른 뒤 한국 역사에서 2024년 노벨평화상에 참석한 2명의 한국인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는 원폭 피해로 고통받는 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 직접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이미 나이가 80세를 넘긴 고령이며, 많은 피해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제 후손들인 2~3세에게 그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 2007년 알 수 없는 희귀병으로 죽는 순간까지 원폭 피해의 유전적 피해를 호소하다 죽은 고 김형률을 시작으로 원폭 피해가 유전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2~3세에 대한 지원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유전학적으로 원폭 피해가 자녀에게 유전되는지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폭 피해자들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일본이 전쟁 무기를 만들기 위해 강제로 동원되어 끌려가 고통스러운 노동환경 속에서 착취당하다가 미국의 원폭투하로 피해를 본 역사적으로 암울하고 힘없던 그 시기의 아픈 역사를 외면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자신 받은 피해를 당당하게 얘기하고 그 아픈 역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국 사회가 앞장서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원폭 피해의 문제는 단지 피해자들의 지원 문제를 넘어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비핵평화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니혼히단교의 노벨평화상 수상도 비핵평화 운동이 수상의 주된 역할이었음을 볼 때 앞으로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원폭 피해의 문제를 더 큰 아젠다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도 그동안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84조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은 법전에만 존재하는 규정이라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재직 기간에 형사소추, 즉 기소되는 것은 상상 속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하지만 법원은 직무정지 상태라고는 해도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을 청구한 공수처는 영장 기간인 2025. 1. 6.까지 집행해야 한다. 아마도 이 칼럼이 게시될 때면 윤석열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것이다. 범인을 체포하면 수사기관은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으면 석방해야 한다. 그렇기에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는 구속영장을 전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48시간 후 석방하기 위해 현직 대통령을 체포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소추특의 예외 사항은 내란, 외환의 죄다. 윤석열의 체포 사유가 내란이라는 뜻이다. 현직 대통령의 내란 행위, 그 초현실적인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출석에 불응하고, 더 나아가 체포영장의 집행까지 불응하겠다는 대통령이 여전히 대통령 직위에 앉아있는 현실, 과연 이게 나라인가 싶다. 백번 양보해 윤석열이야 범죄자의 방어권 행사라 생각해서 이해해 보려 노력해 볼 수는 있다고 치자. 그런데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상황에서 여전히 2024. 12. 3.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생방송으로 목도한 그 초현실적인 사건이 내란은 아니라며 윤석열을 옹호하는 국민의 힘 의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은 내란의 공범으로서 방어권을 행사한다고 해석하는 것밖에 없다. 게다가 내란범 윤석열의 체포를 온 몸으로 막을 태세인 그들은 불과 1년여 전 윤석열의 정치검찰에 의해 청구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의 심사를 앞두고 “회기 중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라”며 핏대를 올렸던 자들이다. 더욱 당시 제1야당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는 배임 등이었다. 입증도 되지 않은 배임 혐의 등으로 제1야당 대표에게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라며 핏대를 올리던 그들이 2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온 국민이 증인인 내란혐의자를 체포하면 안된다며 울부짖고 있는 현실, 게다가 그들이 집권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한민국 헌법은 권력에 대한 저항권을 규정하고 있다.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전문이 그것이다. 권력에 대한 저항은 국민의 권리다. 군대를 동원해 국회에 쳐들어 가고 국민에게 총부를 들이대는 것은 저항이 아닌 쿠데타다. 그렇기에 윤석열이 내란범, 군사반란범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당연히 체포되고 구속되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 더는 기대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그나마 한 때는 대통령이었던 자의 마지막 품위일 것이다.
‘푸른 용의 해’라고 불린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 가고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가 밝았다. ‘푸른 뱀’의 해란다. 부디 나라를 망가트리는 ‘사악한 이무기’나 에덴의 사람에게 금지된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해 저주를 내리게 했다는 그 뱀이 아니면 좋겠다. 지난해는 그야말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여름 내내 뜨거웠으며 비는 억수처럼 퍼부었다. 겨울이 되면서 폭설이 내려 큰 피해를 입혔다. 극한기후였다. 여객기 참사와 대형화재까지 발생했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나라를 혼란으로 빠져들게 했다. 증시가 급락하고, 환율은 급등하는 등 내우외환을 불러왔다. 12월 3일 밤 10시 23분경 윤석열 대통령은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것이 선포 이유였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가 군홧발에 짓밟혔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은 12월 4일 1시 1분경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며 2시간 1분 만에 해제됐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다. 12월 29일엔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착륙 중 사고가 발생, 17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에 예정됐던 전국의 제야·송년 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서울 보신각 제야의 종 행사는 공연과 퍼포먼스를 취소한 채 조용히 치러졌으며 각 지역의 새해 첫 날 타종·해맞이 행사들도 취소되거나 크게 축소해 열렸다. 경기도 역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희생자를 애도하며 1월 1일 수원시 팔달산 서장대 일대에서 갖기로 했던 새해 해맞이 행사 일정을 취소했다. 매년 5000명 정도가 몰리던 수원시의 송년·신년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31일 수원시민과 함께하는 2024년 수원시립예술단 송년음악회(수원SK아트리움), 제야음악회(행궁광장 특설무대), 1일 제야타종(여민각), 떡국나눔(제야타종 후), 해맞이 행사(팔달산 서장대) 등이 줄줄이 취소됐다. 6월 24일엔 화성시에 위치한 리튬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의 대형 화재로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인한 의·정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4월 10일 실시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75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국민의힘은 108석밖에 얻지 못했다. 이밖에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이 1석을 차지했다. 국민들을 기쁘게 한 소식도 있었다.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는 그의 작품을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다”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평가했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 K-컬처도 세계에서 빛났다. 이밖에도 경사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경사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을사년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그리고 조선이 일본에 강제 병탄되기 시작되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지 12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지 80년 동안 우리나라는 6.25 전쟁과 4.19, 12.6, 12.12, 5.18 등을 겪었다. 그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며 우리는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참으로 위대한 국민들이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시련도 더 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자양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12월 3일 내란 사태이후 손님의 발길이 끊긴 데에 더해, 안타까운 여객기 참사까지 터져 최악의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는 자영업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일상이 빠르게 회복되길 바란다. 새해엔 비극적인 참사가 더는 일어나지 않길 기원한다. 불의가 정의로 바뀐 나라, 궤변과 억지의 정치가 통하지 않는 나라, 어둠을 이긴 빛이 가득한 나라, 새해엔 국민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새 나라를 이루자. 새해엔 모든 난제들이 해결되면 좋겠다.
실제보다 좋게 보이려고 사실을 숨기고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분식(粉飾)’이라 한다. 예를 들면 기업이 주가를 높이거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고의로 자산이나 이익 등을 크게 부풀리고 부채를 적게 계산하여 재무 상태나 경영 성과 등을 고의로 조작하는 것을 ‘분식회계(粉飾會計)’라 할 때 ‘분식(粉飾)’이 그것이다. 즉 왜곡하거나 숨겨야 할 무언가가 있을 때 사용되는 분장이나 덧칠을 말한다. 1970~1980년대 우리 사회 집권 세력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한국적 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였다. 유신체제 출범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이 제안한 한국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 ‘분식(粉飾)’된 권위주의’의 결정판이었다. 중학교 사회시간에 선생님께서 ‘민주주의 앞에 다른 말을 붙인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말씀을 나중에 성장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3선 개헌을 통해 1971년 대통령에 다시 당선된 후 박정희는 그해 12월 북한의 무력도발과 안보 위기를 명분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언론 등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또한 야당의 당리당략이나 언론의 무책임으로 안보 위기가 발생했다고, 1972년에는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며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이후 그는 선거제도가 지역감정과 민족분열을 조장한다며 선거제도는 물론 민주주의 전체를 부정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어디에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때로부터 50년도 더 지난 지금 세계 10위권 OECD국가 대한민국에서 그런 황당한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 그런 징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헌법에 명시된 우리나라 국호를 ‘대한민국’이 아닌 ‘자유 대한민국’으로 바꾸어 불렀다. 국호에 ‘분식(粉飾)’이 들어가고 있었는데,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가 야당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북한의 위협으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었다거나, 심지어 전단과 포사격에 무인기까지 아무리 자극해도 북한 응하지 않자 이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의혹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50여 년 전의 주장과 너무나도 똑같다. 윤석열은 수없이 ‘자유’의 가치에 대하여 강조하며, ‘가치 외교’를 최고의 치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가 말한 ‘자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을 ‘분식(粉飾)’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진정한 ‘자유’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이 이번 계엄을 통해 밝혀졌다. 지금까지 온 국민의 땀과 노력으로 일으켜 세우고 발전시켜 놓은 ‘대한민국’을 한순간에 국제사회 비웃음거리, 부끄러운 후진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교활한 대통령은 나라를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세상과 사회에 무관심하다 여겼던 20, 30세대가 계엄을 막아내는데 앞장섰고,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로 폭력을 막아낼 수 있다는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지난 50여년 동안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여러 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고, 일부 첨단 과학기술이나 한류 등에서는 글로벌 리더가 되었다. 새해에는 정치에서도 새로운 한류를 꿈꾸며 이들이 펼쳐갈 새로운 미래를 기대해 본다.
2024년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해이다. 국가는 지금 12.3 비상계엄으로 혼란하다.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총리가 탄핵 되었다. 그리고 지금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을 넘겨받았다. 국가 비상상황에 권한대행이 있어 다행이다 싶으나, 전반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기는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난무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보기 어렵다. 그 와중에 29일 제주항공 참사가 있었다. 행복여정문학 송년회를 마친 다음날 소식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을까. 두 명을 제외한 비행기 탑승 전원이 사망했으니, 2024년은 개인이나 국가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해이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이루어놓은 성취도 있다. 두 번째 시집 ‘오늘도 마음에 꽃을 심는다’를 출간했다. 남북통합문화센터 창작지원 공모 선정작으로 그동안 틈틈이 써놓은 글을 모았다. 글을 쓰는 기쁨도 크지만 책으로 출간했다는 뿌듯함도 있다. 나에게 글쓰기는 나를 확인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세상을 보는 창이 생겼다고나 할까. 나는 감히 대한민국 국민이 걸어온 길을 가위로 천을 자르듯 재단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내가 천박한 지식으로 한쪽 편을 들어 대변할 생각일랑 일찍부터 없다. 그러나 나는 민주주의적인 생각을 배우지 않고는 세상을 보는 창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은 나의 일상과 연관되어 있기에 귀를 닫고 무관심할수록 세상과 멀어지고 고립된다. 2024년 또 하나의 성취로 국가 보조금 사업을 알뜰히 잘 해냈다는 기쁨이다. 해마다 보조금 공모에 지원하면서 비영리사업을 열심히 챙기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24년을 돌아보는 나의 마음은 뿌듯하다. 스스로 바보라 칭하며 마음 졸이며 했던 일, 다시는 돈 안되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 손을 놓아버렸던 시간마저 좋게 기억된다. 인생사 험하고 굴곡진 일들이 이처럼 이쁘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부족한 나를 믿고 참여해준 회원님들에게 감사하다. 내고향만들기공동체는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 용인지역에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고 있으며, 행복여정문학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시화전’, ‘작가와의 만남’ 행사 등을 진행한다. 이러한 활동으로 현재 탈북민 사회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결과로 보여주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다가오는 신년 2025년은 평범했으면 좋겠다. 비상계엄령으로 나라가 혼란한 일은 없으면 좋겠고, 갑자기 가족을 잃는 슬픔은 더욱이 없으면 좋겠다. 일상이 평화로우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부실한 몸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건강한 생각과 건강한 만남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좋기는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 있는 리더를 만나면 좋겠다. 싸우고 상처받는 민주주의보다는, 소통하고 발전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새해에는 계획한 일들이 잘 이루어지고 올해처럼 2025년 또한 알찬 열매로 가득한 한해이기를 기도한다.
매년 줄어들던 경기도 주민조례청구가 올해는 ‘0건’을 기록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주민자치의 꽃’이라고 불리는 주민조례청구는 선진 지방자치를 상징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에서 이 제도가 차츰 유명무실해지더니 급기야 나타난 사라질 위기는 비상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단체뿐만이 아니라 개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대폭 개선하고 교육·홍보를 강화해야 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이달 29일까지 경기도에 제출된 주민조례청구 신청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광역단체가 아닌, 이천·성남·평택 등 기초단체에서는 5건이 청구돼 절차가 진행됐다. 일명 ‘주민 조례 발안제’라고 불리는 주민조례청구는 주민이 직접 조례 제·개정 및 폐지를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참정권 보장 제도다. 1999년 지방자치법에 근거해 도입됐다. 인구가 경기도보다 425만여 명이나 적은 서울시는 올해 주민조례청구 2건에 대한 신청 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해도 마찬가지로 서울시에선 무려 6건이나 있었고, 2022년에는 4건이었다. 2022년~2024년 기간 광역·기초단체의 합산 신청사례를 기준으로 봐도 경기도 19건, 서울시 23건으로 차이가 난다. 경기도와 도의회는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등을 활용해 주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법 제17조(주민의 권리)에 따르면 주민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주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 정책의 결정 및 집행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아울러 제19조(조례의 제정과 개정·폐지 청구)에 의해 주민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제정, 개정하거나 폐지를 청구할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이를 통해 ‘학교급식 지원 조례안’을 탄생시킨 기록이 있다. 2003년 11월 제정 운동이 본격 시작돼 이듬해 4월까지 약 16만6000명 주민이 서명에 동참했다. 2009년 6월에는 정계와 학생, 학부모 공동으로 ‘대학생학자금 이자 지원 조례안’을 만들기 위한 서명이 진행돼 도의회에서 여·야 합의로 조례가 제정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총 3건의 주민조례청구가 있었으나, 서명 인원을 충족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결실을 거두진 못했다. 심각한 문제는 성과와 별개로 관심 자체가 떨어지면서 ‘개점휴업’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는 점이다. 2022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친환경 정책, 청소년 무상교통요금을 주제로 주민들이 조례 관련 권한을 행사했었다. 주민조례청구 제도는 지방자치법이 전부 개정된 2022년 1월 온라인 비대면 플랫폼 구축과 청구연령 하향(19세 이상→18세 이상) 등으로 접근성을 높인 바 있다. 도의회는 법에 근거, 서명 요건을 청구권자 총수의 200분의 1에서 350분의 1로 문턱을 낮췄다. 그러나 평범한 주민들에게 주민조례청구는 여전히 문턱이 너무 높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직접 조례안을 작성하기엔 전문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청구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서명운동도 본인인증 과정 등 절차가 복잡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여 지역민이 손쉽게 정책과 제도 개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이 제도가 잘못 흘러갈 경우 집단의 이익을 위한 조례 청구가 빈번해지거나 주민조례 청구요건에 해당하지 않은 님비현상 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는 있다. 결국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길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번거롭고 귀찮아질 걱정 때문에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합리적 비판이 가능하다. 이는 문자 그대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어리석음이다. 선진 지방자치로의 도약을 위해서 ‘주민 조례 발안제’의 확립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발상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토교통부가 26일 용인 첨단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를 국가산업단지로 승인했다. 앞으로의 조성 계획도 발표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산업단지계획 승인이 완료됨에 따라 오는 31일부터는 국가산단이 된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삼성전자가 360조원을 투자, 조성하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다. 이날 국토부의 국가산단 지정과 향후 조성 계획 발표로 사업은 본격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다행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이어진 국회탄핵, 헌법 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국가 기반산업이 될 이 사업이 기약 없이 미뤄지거나 혹시라도 무산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당초에 제시한 목표인 내년 당초 내년 1분기에 승인될 예정이었지만 국가산단 지정보다 3개월 빨리 작업을 완료했다. 계획보다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삼성전자가 입주 협약을 맺으면서 총 360조원의 투자가 이뤄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될 것이다.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읍 일원 약 220만평 부지에 조성되는데 대규모 반도체 제조공장 6기와 발전소 3기, 최대 150개 규모의 협력기업 등이 입주하는 대형 국가 전략사업이다. 앞으로 160만 명의 고용효과와 400조원의 생산 유발 등 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승인까지 경기도의 역할도 컸다. 국가 산단 승인에 이르기까지 넘어야할 산 가운데 하나가 송탄상수원보호구역 해제 문제였다. 지난 40년간 용인시의 ‘규제 완화’ 요구와 평택시의 ‘취수원 보호’ 방침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이에 경기도는 2015년부터 중재에 나섰고, 2019년에는 민·관·정 협의체를 구성, 2021년 경기도, 환경부, 용인·평택·안성시와 함께 ‘평택호 유역 상생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적극 노력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평택시, 용인시 등과 논의하며 해결방안을 찾은 결과 드디어 올해 4월 17일 경기도·국토부·평택시 등 8개 관계기관은 지난 4월 17일 상생협약을 체결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도는 앞으로도 남사 국가산단, 원삼 일반산단 등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을 총력 지원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판교에 팹리스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독자적인 반도체 밸류체인을 구축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울러 실무형 인력양성 등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적극 투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는 현재 산단 내에 상주하는 542가구와 89개 기업의 이전문제다. 이들은 인근 이주자 택지와 이주기업 전용산단으로 이전시킬 계획이다. 원하면 반도체 산단 내 토지로 보상해주기로 했다. 산단 노동자 9만 명이 거주할 배후 신도시와 각종 기반시설도 조성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인근 이동읍 천리·묵리·덕성리·시미리 일원 228만㎡(69만평)에 1만6000가구 규모의 공공주택지구를 수변공간을 갖춘 신도시로 통합 개발할 계획이다. 이 신도시에는 SK하이닉스가 122조원을 투자하는 처인구 원삼면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1·2차 용인테크노밸리(이동읍) 등 산업단지에서 일할 노동자들도 입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교통망 등 인프라 구축도 반드시 필요하다. 산단이 본격 가동되면 하루 교통량이 6만대에서 11만3000대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도로와 철도망이 확대돼야 한다. 이에 정부는 국도 45호선을 확장하고 서울-세종 고속도로, 현재 적격성 조사 중인 반도체 고속도로 등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경기 강원 철도인 경강선과 연계된 철도망도 구축할 예정이다. 전력과 용수 문제도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겠다니 안심이 된다. 모쪼록 이주 주민들에 대한 보상 등 행정절차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국가산단과 배후 신도시, 각종 기반시설 조성에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추진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