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헌법재판소는 박근혜에 이어 두 번째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다음은 그 이유를 밝힌 판시(判示)의 한 대목이다.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였습니다.’ 세계챔피언이었던 왕년의 권투선수 홍수환, 1977년 11월 도전(挑戰)전 2라운드에서 4번이나 다운됐다. 3라운드에서 ‘지옥의 투사’라던 챔피언 카라스키아의 턱과 배를 통렬히 때려 눕혔다. 칠전팔기(七顚八起)를 떠올리는 ‘4전5기’, 지금도 많은 이들의 ‘신화(神話)’의 대명사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아들의 고함에 절규하듯 엄마는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 소리쳤다. 이 대목, 곧 얘기 거리가 됐다. 왜 ‘대한민국 만세’가 아니고 ‘대한국민 만세’냐 하는 시비(是非)였다. 기억에 따르면, 당시 신문 등은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기뻐서 생각 없이 내지른 말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한 이번 판결에 엄연(儼然)히 존재하는 ‘대한국민’도 그러할까? 우리나라 이름의 본디는 대한(大韓)이다. 구한말 고종황제는 그 이름에 제국(帝國) 칭호 달아 ‘대한제국’ 깃발을 세웠다. 다음 시대에는 ‘제국’ 대신 민국(民國)이 달려 ‘대한민국’이 됐다. 민국은,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합친 민주공화국이란 정치체제의 이름이다. 왜(倭)가 지들 개화(開化) 때 받아들인 서양문물 중의 데모크라시(democracy)와 리퍼블릭(republic)의 합체다. 그 후 1900년경에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박래품(舶來品 수입품)인 것이다. ‘대한’의 (역사적) 연원(淵源)은 무엇인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1780)에는 한 중국 관리가 연암에게 “요즘 삼한의 사정은 어떠한가?” 묻는다. 조선시대의 우리를 대륙 등 동아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삼한’이라 지칭하였다. 우리 땅의 옛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3개 ‘韓나라’가 삼한(三韓)이다. 다음에 백제가 된 지역의 이름 마한의 속뜻은 ‘큰 한나라’다. 말(馬)이 많다고 마한이었던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의 말은 강하고 아름다우며, 크다는 것을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크다 아름답다는 저 풀이, 지금도 한자사전에 들어있는 ‘馬’자의 의미다. 고종이 제국을 칭(稱)하며 ‘대한’이란 이름을 치켜든 소이(所以)려니, 우리 ‘대한민국’의 벅찬 의미이기도 하리라. 우리를 ‘한국’이라고 부르는 호칭의 근거다. 사람이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린 (갑골문의) 그림에서 비롯된 ‘크다’는 뜻의 大는, ‘큰 사람’이면서 당연히 ‘큰 것’(의 상징)이다. 말(馬)의 거대한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그림(글자)이다. 두 팔을 앞으로 모아 충성을 다짐하는 겸손한 그림인 사람 人(인)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겠다. 이 ‘대한국민’은, 그 귀한 속뜻을 품고, 헌법 전문에 실려 있다. ‘대한민국’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대한국민 즉 대한의 국민(사람)의 의의다. 대한국민과 대한민국의 차이에 관한 명상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말(언어)과 말이 품은 상징 또는 뜻은 문득 우리의 존재 의미를 설명한다. 말글의 철학이다.
어제(20일)는 ‘제45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국민들이 장애인을 깊이 이해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여주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1972년부터 민간단체에서 개최해 오던 ‘재활의 날’을 이어, 1981년부터 정부에서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해 왔다. 1991년부터는 ‘장애인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됐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은 ‘차별 없이 일상을 누리고, 누구나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장벽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불편한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많은 국민들은 아직도 장애인들을 ‘동정’하거나, ‘도움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전북도청 앞에서 열린 ‘전북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대회’에서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비장애 중심주의를 철폐하고 이동권과 노동권 등 장애인이 누리지 못하는 권리 전반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생업을 구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은 장애수당으로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성장을 막는다는 호소에 가슴이 아프다. 장애인들은 특별교통수단 도입과 시외 이동권 등 장애인 이동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중증 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확대하는 등 노동권을 보장하고, 장애인 평생교육 확대, 자립생활권 등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성특례시가 눈에 띄는 장애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장애인 복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전국 최초 장애인 로봇재활훈련을 도입해 장애인 복지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든 것이다. 뿐 만 아니라 AI를 기반으로 하는 교통약자 이동서비스 실증사업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 확대 정책을 선도하고 있다. 시는 관내 장애인복지관 2개소에 전국 장애인복지관 최초로 로봇재활 서비스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9년부터 △고정형 보행로봇 △웨어러블 보행보조로봇 △상지재활로봇 등을 활용해 장애인의 재활훈련을 지원해왔는데 기존 물리치료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고 비용 부담도 적다. 당연히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엔젤슈트 H10(Angel Suit H10)’도 도입했다. AI 기반 웨어러블 보행보조로봇으로써 고성능 센서와 AI 기술이 탑재돼 있어 사용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상황에 따라 최적의 보조력을 자동으로 제공, 재활 훈련 효과가 높다고 한다. 뇌병변 및 지체장애인에게 로봇 재활기기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 뒤 기기를 빌려주고 재활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로봇 홈재활(HomeCare)’ 사업도 인기를 끌고 있단다. AI를 기반으로 한 ‘교통약자 이동서비스’도 장애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4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5개월간 동탄신도시에서 특수개조 차량을 활용한 교통약자 이동서비스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중증장애인이 교통약자 전용 앱 ‘셔클’에 등록한 뒤, 특수개조 차량을 호출해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결제를 완료하는 전 과정을 검증”하는 단계라고 설명한다. 교통약자 이동서비스에 투입되는 차량은 옆문(2열 측면) 탑승 방식을 적용했다. 장애인이 옆문으로 탑승할 수 있고 보호자가 바로 옆 좌석에 앉아 보살필 수 있다. 시는 로봇과 AI로 복지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열의를 보인다. 첨단 기술을 행정에 실질적으로 접목해 복지정책을 한 단계 진보시키겠다는 것이다. 시의 설명처럼 “로봇과 AI가 시의 장애인 복지정책에 적극 활용되면서, 장애인의 상태와 필요에 맞춘 맞춤형 재활치료와 이동지원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재활과 교통약자 이동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로봇과 AI 기술을 기반으로 펼치는 화성시의 장애인 복지행정의 앞날이 기대된다. “단 한 사람의 불편함도 놓치지 않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장애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정명근 시장을 응원한다.
"빨간불인데 왜 안 가?" 운전을 하다 보면,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려는 순간 멈춘 앞차 뒤로 경적이 울리는 장면을 자주 마주한다. 차량 신호가 적색인데도 마치 당연히 지나가야 한다는 듯한 분위기. 하지만 이 ‘잠깐의 멈춤’은 선택이 아닌 법으로 정해진 의무다.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은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거나 통행하려는 보행자가 있을 경우 일시정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차량이 교차로에서 차량 신호가 적색일 경우 정지선, 횡단보도 또는 교차로 직전에 일시정지한 뒤, 다른 교통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행하며 우회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말해, 차량 신호가 적색일 경우에는 무조건 일시정지해야 하고, 차량 신호가 녹색일 경우에는 보행자가 있으면 일시정지, 없으면 서행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규정은 특히 버스나 화물차 같은 대형 차량에게 더욱 중요하다. 대형 차량은 구조적으로 운전석 시야에 사각지대가 많고, 좌측에서 직진하는 차량에 신경을 쓰다 보면 우측 횡단보도를 지나는 보행자를 놓치기 쉬운 환경에 있다. 실제로 교차로에서 대형 차량이 관련된 사고는 한순간에 중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경찰청 우회전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여간 전체 우회전 교통사고 10만 7985건 중 버스, 화물차 등 대형 차량에 의한 사고는 1만 9246건으로 17.8%에 불과하지만, 전체 사망자 수 762명 중 대형 차량 관련 사망자는 약 39%를 차지하는 298명으로 사고율에 비하여 사망자의 비율이 매우 높다. 사망률로 따지만 대형 차량이 일반 승용차보다 거의 세 배나 높다. 특히 대형 차량의 경우 사고 시 피해가 크기 때문에, 더 큰 경각심과 철저한 법규 준수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란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법을 알고 지키려는 운전자들이 뒤차의 거센 경적에 놀라거나, 억울하게 언쟁에 휘말리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눈총을 받는 현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가 교차로 우회전 통행방법을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금 늦더라도 괜찮다. 더 이상 안타까운 사고가 반복되지 않기를, 우리의 멈춤이 누군가에게 삶의 여유와 안전을 주는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최근 양자컴퓨터에 대한 빅테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올해 초 CES에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양자컴퓨터 실용화가 20년 이상 걸릴 것이다”라고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자 양자컴퓨터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구글 양자컴퓨팅 담당 임원 켈리는 “양자컴퓨터 시대가 5년 내 올 것이다”라면서 젠슨 황의 발언을 반박하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3∼5년 후 양자컴퓨터 상용화가 가능하다”라고 주장하였다. 지난 3월 젠슨 황은 양자컴퓨터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철회하고 “엔비디아도 보스턴에 가속양자 연구센터를 만들 것이다”라고 언급하여 시선을 끌었다. 양자컴퓨터가 왜 이렇게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인가?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를 활용하여 첨단기술 개발과정에서 풀지 못했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도구이다. 인공지능, 우주항공, 바이오, 자율주행 등 과학기술 모든 분야에서 직면한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미래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게임체인저 기술이다.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이 양자컴퓨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양자컴퓨터 회사인 아이온큐(IonQ)는 현대차와 함께 자율주행 교통, 배터리 효율화 등에서 양자컴퓨터를 활용 중이다. 양자컴퓨터 대중화 시기를 놓고 엔비디아와 양자컴퓨터를 개발 중인 빅테크 간에 왜 이견을 보이는 것일까? 현재 슈퍼컴퓨터 시대를 이끌고 가는 기업은 엔비디아이며,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슈퍼컴퓨터의 핵심으로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이다. 구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엔비디아 GPU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양자컴퓨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핵심인 양자처리장치(QPU)는 슈퍼컴퓨터 세상을 양자컴퓨터 시대로 새롭게 재편해 줄 것이다. 미래 사회는 양자컴퓨터 이전(Before)과 이후(After)로 확연하게 구별되는 기술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며 인간의 일상생활을 5차 산업혁명 시대의 터널 속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양자컴퓨터 시대에서는 엔비디아 젠슨 황을 뛰어넘는 새로운 스타 기업인이 탄생할 것이다. 젠슨 황은 이를 경계하면서 슈퍼컴퓨터 시대를 더 지속시켜 엔비디아 제국의 영광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양자컴퓨터 시대 승자에게 기술 패권을 쉽게 넘겨주기 싫은 것이다. 이제 엔비디아와 양자컴퓨터 기업 간 본격적인 기술 패권 경쟁이 시작되었다. 젠슨 황은 피지컬 AI 시대를 예고했다. 기술혁신의 급물살은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세상이 슈퍼컴퓨터에서 양자컴퓨터 시대로 옮겨질 때 산업 각 분야에서 기술혁신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공상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미래 세계가 구현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양자컴퓨터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양자컴퓨터 기술 주도권을 잡아야 미래 첨단기술 패권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양자컴퓨터 개발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양자컴퓨터 시대에 한국 스타트업이 주목받는 글로벌 핵심 기업으로 부상하기를 기대한다.
인류 역사 속에서 정치와 사회의 안정은 국가의 흥망성쇠, 백성의 안락, 기술의 발전과 생산, 역사의 진보 등에 크게 영향을 미쳐왔다. 평화롭고 안정된 정치와 사회가 받쳐주지 않으면 기술 발전과 생산은 불가능하며, 백성들이 안정된 생업에 종사하는 것 또한 기대하기 힘들다.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지도자의 철학 부재 때문이다. 자고로 한 가정의 가장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가족들이 불행하게 되듯이 한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지 않으면 국민은 불행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더욱이 지도자를 보좌하는 참모진들의 철학 부재 또한 지도자 못지않게 국가와 국민에게 해악(害惡)을 끼치게 되는 법이다. 국민에 대한 사랑과 충성은 뒷전이고,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지도자에게만 충성한다. 아울러 자신들의 천박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 위에 군림할 때면 국민은 절망의 수렁에 빠져 헤쳐나오지 못할 게 뻔하다. 역사 속의 간신들은 그 악랄한 속내만큼이나 끼친 해악도 컸다. 그들은 군주를 포악하게 만들었고, 나라와 권력을 훔쳐 농락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충신을 모함했고, 조정의 기강을 문란하게 만들었으며, 백성을 도탄에 빠뜨려 신음하게 하였다. 간신들이 독버섯처럼 정치권에 빌붙어 수천 년 동안 부패하고 암울하며 치욕스럽고 혼란스러웠던 역사로 물들였다. 간신들을 얕봐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세상인심을 노련하게 읽고,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하며, 사람을 잘 구슬리고, 말재주가 걸출하며, 분위기 파악에도 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은 민주 사회에서도 사상(思想)과 덕성(德性)의 수양을 게을리한다면 간신들처럼 타락하기 쉽다. 세상의 풍토가 도덕적 수양은 쓸모없고, 극단적 이기주의로 변질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권력자의 주변에는 작금도 아부하며 부귀를 탐하는 간신배들이 들끓는다. 청나라 때 화신(和珅)이란 간신의 재산을 모조리 압수해 보니 가옥이 2000여 채, 논밭은 1억 6000만 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밖에 규모가 큰 금고인 은호(銀號)의 자본금이 금 2만 2000kg, 전당포 자본금은 은 3만kg, 금고(金庫)에 순금이 2000kg, 은고(銀庫)에 은원보(銀元寶) 등이 895만 5000 개에 달했다고 한다. 화신이 재상으로 재직했던 20여 년 동안 부정으로 긁어모은 재산은 무려 8억 냥에 달했다고 한다. 이 금액은 당시 청나라 조정의 10년간 수입금액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는 것이다. “나라를 세우는 데는 수많은 충신을 필요로 하지만,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는 간신 하나면 족하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만고의 진리로 와닿는 것은 왜일까? 그러기에 간신에 대한 역사의 징벌은 인정사정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공정한 심판은 긴 시간과 커다란 대가를 요구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간신들의 잔혹한 짓거리와 끊임없는 악행이 국가와 국민에게 커다란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 뒤에야 비로소 인식되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혹자는 새가 죽으려고 할 때는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으려고 할 때는 그 말이 선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간신들이 은퇴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악행에 대해서 무릎 꿇고 국민에게 사죄한들, 그 죄는 사라지지 않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역사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배운다. 고위공직자들은 새겨들었으면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던 도로가 아래로 푹 꺼져 차량이 처박히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는 ‘땅 꺼짐’ 사고가 전국적으로 빈발하고 있다. 지하수의 흐름이 바뀌어 구멍이 생기거나, 상·하수관로의 손상으로 인한 누수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땅을 파헤치고 공사를 벌이면서 방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게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한폭탄이나 살얼음판 위에서 사는 듯한 시민들의 공포를 제거할 전문 검사장비 투입 등 사고 예방책이 대폭 강화돼야 할 시점이다. ‘땅 꺼짐’ 사고가 지역 구분 없이 전국적으로 자주 발생하면서 지반침하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관심이 태부족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수원시는 팔달구 등 구도심에서 상수도관 등 기반 시설이 노후화된 곳이 많아 ‘땅 꺼짐’ 사고에 대한 위험이 있다는 우려에도 정작 행정감사 등에선 특별한 대책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11일과 20일 수원시청역 사거리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했다. 또 2022년 매탄권선역 앞 도로, 2021년 수원시청역과 장안구 연무동의 한 이면도로 등 3곳, 2016년에서 영통구 원천동의 한 도로 등 4곳 등 싱크홀 피해가 있었다. 지난 3월 25일에는 장안구 정자동 동신2차아파트단지 앞 주자창에서도 깊이 2m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싱크홀은 도로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입주민들의 왕래가 잦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해 여차하면 중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등장한다. 사고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구체적인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국토교통부 지하안전정보시스템(JIS)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4년까지 7년간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는 전국에서 1천337건이나 된다. 이 중 경기도에서 발생한 사고만 289건(21.6%)으로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다. 연간 41.2건꼴이고, 매달 평균 3.4건이 발생했다. 택지 개발과 지하 교통 개발이 늘면서 경기도의 땅 꺼짐 사고 위험도도 한결 높아졌다.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서울시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장 주재로 안전점검회의를 열어 지표투과레이더(GPR)를 이용한 구체적인 탐사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5곳의 도시·광역철도 건설공사 구간 49.3㎞와 주변 도로에 GPR 탐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또 자치구가 자체 선정한 우선 점검 지역 50곳(45㎞)도 전수 탐사할 계획이다. 아울러 전국 최초로 지반 변화 실시간 계측 시스템인 지반침하 관측망도 설치·운영한다고 밝혔다. 지자체들의 현실은 막막하다. GPR 탐사 장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한 지자체는 한 곳도 없다. 장비를 보유한 민간업체에 의뢰해야 비로소 장비 투입이 가능하다. 굴착 공사 주변에 ‘위험 지역’ 공지나 하는 정도의 주먹구구식 행정을 면치 못하고 있는 처지다. 길가에 나붙은 ‘위험 지역’ 공지만으로는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싱크홀’ 사고는 방지가 안 된다. 흔해빠진 경고에 만성화된 시민들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무심히 그냥 지나다닌다. ‘땅 꺼짐’ 사고의 특징은 사고가 나기 전에는 아무런 징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웬만해서는 낌새조차도 느낄 수가 없다. 결국 운이 없는 사람만 멀쩡하게 길을 가다가 횡액을 당하는 형국이라 ‘땅 꺼짐’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후진국형 사고인 셈이다. ‘땅 꺼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땅속 상황을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성이 발견된 지역은 출입 통제와 함께 사고요인 제거 작업이 적극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특히 경기도에서 많이 일어나는 토목공사나 지하 시설 공사 현장을 중심으로 GPR 탐사와 같은 첨단 장비를 동원한 전면 조사부터 진행돼야 한다. 차를 몰고, 길을 걸어가며 언제 땅이 꺼질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일상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무감각해지고 있다. 별의별 일을 다 겪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어지간한 뉴스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도파민에 중독된 뇌를 가진 사람이 된 기분이다. 122일간의 정치적 이슈를 제외하더라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노라면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내 몸과 머리는 살아남기 위해 무감각해지기를 ‘선택’한 것 같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미덕이 아니라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태어난 것이 내 선택이 아니었듯, 그저 던져지듯 시작된 인생일지라도 이 지구라는 행성 위에 발 딛고 살아간다면, 먹고 자고 살아지는 대로 살다 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일종의 지식의 고통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살기 힘든 세상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게만 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정치도 그렇고, 출산율도 그렇다. 각종 지표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앞으로의 미래가 나아질 가능성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암울한 전망뿐이다. 그래도 당장 내일을 포기할 수 없기에 우리는 버텨내고 또 버텨낸다. 자조적인 밈으로 친구들과 웃으며 하루를 견디는 것, 그 짧은 순간이 유일한 낙이 되기도 한다. 가장 심각한 건, 이 모든 걸 알고도 뚜렷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100년, 200년이 지나 지금을 돌아보는 누군가가 “어떻게 견뎌냈을까” 말할지도 모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저 막막하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유가 “키우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미안해서”인 시대다. 이처럼 상황이 절망적으로 흘러가자 삶의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길게 보고 계획하기보다 짧고 굵게 살자는 쪽으로 말이다. 정책을 볼 때도 장기적 비전보다 당장 손에 잡히는 손익에 집중한다. 그렇게 우리는 근시안적 정책을 선호하고, 또 그런 정책만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수많은 기업들은 이제 미래를 위한, 환경을 위한 ‘척’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무력과 허무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출근을 멈출 수 없고, 눈앞의 일을 놓을 수도 없으니 결국 나는 다시 무감각해지기를 선택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문제를 직면하고, 알아차리고,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무기력과 허무 속에서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감각이자 책임 아닐까. 당장 해결책은 없고, 이 답답함이 오래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망했다’고 말하기에 앞서 ‘세상이 이렇다’는 것을 아는 일부터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이 질문이 고통스럽고 무력함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묻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무감각해지기보다는 알아차림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도 감히 살아가겠다는, 작고도 단단한 선언이다.
조기 대선이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한달 반 정도면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각 공기관이 이를 두고 고민에 싸여 있는 모양이다. 곳곳에서 기관장 알박기 인사가 꽤나 거세고 거칠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 듯이 보인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문제가 터진 상태다. 기존 원장은 지난 2월에 임기가 다 됐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야 이미 원장추천위원회가 구성돼 공모를 내고 선임 절차에 들어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12월 계엄,내란 사태로 모든 것이 비정상이 됐다. 그런 ‘임시’ 상황이 4월 4일까지 계속됐던 건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이 있었고 이제서야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새로운 원장 임명 절차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자, 지금 이럴 때 새로운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뽑아야 하겠는가. 결론은 아니다이다. 대통령 선거 일정이 추후 1년이라도 남았다면 당연히 새 원장을 뽑아야 한다. 그러나 한달 반 정도 후면 어찌 됐든 새 정부가 구성될 것이다. 그때까지 유예해야 한다. 그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국립 아카이빙 기관이다. 모든 뉴스 자료는 KTV가 보관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대한늬우스’도 KTV가 갖고 있다. 뉴스를 제외한 모든 영상, 특히 영화의 경우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있다. 자료원 사무국은 서울 상암동에 있고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자료를 보관하는 창고는 비교적 막대한 규모로 경기도 파주에 조성돼 있다. 엄중한 국가보호시설이다. 그만큼 영상 자료는 국가의 기록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이 같은 아카이빙 사업을 주축으로 한국 영화문화 발전을 위한 각종 사업을 병행해 왔다. 1950~2000년 사이의 국내 클래식 무비를 대중들이 다시 볼 수 있도록 각종 기획전, 상영회를 만든다. 그간 35mm 필름으로 보관 중인 영화에 대한 모든 디지털 전환 작업도 자료원의 사업 중 중차대한 것으로 꼽힌다. 해외 우수 클래식 명작들을 초청 상영하는 것 역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상암동 자료원 건물 지하에 마련돼 있는 두개의 상영관에는 연일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은,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인지도가 높은 자리는 아니겠으나, 영화계 인사들에게는 매우 중차대한 위치의 인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원장 직에 새로 임명될 인물을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향후 3년의 시간동안 한국영상자료원은 물론 국내 영화계 문화산업 전반의 미래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와 새 정부 구성 전에 한국영상자료원장을 새롭게 임명하는 것을 넘어 현재 도처에서 벌어지는 일명 알박기 인사는 재고 되어야 한다. 1968년 프랑스의 6.8 혁명은 파리 시네마테크 원장인 앙리 랑글루아를 해임하면서 촉발됐다. 모든 일은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다. 한국영상자료원장의 문제는 사소한 일 처럼 보이지만 결코 작은 사안이 아니다.
인천시 중구 영종국제도시와 서구 청라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제3연륙교는 올해 말에 개통 예정이다. 현재 공정률은 80%정도다. 그런데 아직도 이름을 짓지 못하고 있다. 통행료도 결정되지 않았다. 경기신문(12일자 15면, ‘서구 정치권·주민들 “제3연륙교 명칭 청라대교로 확정해야”’)에 따르면 중구와 서구가 제3연륙교 정식 명칭을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총길이 4.68㎞에 왕복 6차로 규모로, 영종대교·인천대교에 이어 영종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세 번째 해상교량으로 그동안 제3연륙교라는 임시 명칭이 붙었다. 중구는 이 다리가 섬 주민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영종하늘대교’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섬 지명이 우선 돼야 한다는 것이다. 명칭공모까지 마쳤다. 그러나 서구는 이미 영종대교(제1연륙교)라는 명칭이 있고 청라국제도시 주민들이 사업비의 절반가량인 3000억 원을 부담했다며 ‘청라대교’라고 정해야 한다고 반발한다. 더불어민주당 김교흥(서구갑)·이용우(서구을) 국회의원들도 청라대교로 확정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명칭 문제로 인한 지역 간 갈등은 자주 빚어지고 있다. 지난 2013년 분당선 연장구간 수원 ‘매탄권선역’ 명칭 선정문제로 주민들 간의 의견이 대립된 적도 있다. 이 역은 권선동과 매탄동 경계에 위치해 있는데 어느 한쪽 지역 명을 따게 되면 다른 쪽 주민들의 불만을 사게 되기에 양쪽 명칭을 함께 쓰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지역에 위치한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와 디지털시티의 이름을 따 삼성디지털역으로 짓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매탄권선역으로 결정됐다. 고속철도 ‘천안아산역(온양온천)’도 명칭선정 과정에서 천안시와 아산시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 이 역은 행정구역상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과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에 걸쳐있다. 그러나 부지 대부분이 아산시에 속해 있기 때문에 아산을 역명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천안시의 주장은 역 이용객 상당수가 천안 시민이고, 역이 소재한 지역도 천안시에 근접한다며 신천안역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건설교통부는 역명을 양쪽 지역 이름이 모두 포함된 ‘천안아산역(온양온천)’으로 정했다. 명칭 논쟁은 한강 33번째 교량의 명칭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벌어졌다.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시 강동구를 연결하는 이 교량 명칭을 놓고 구리시와 강동구의 주장이 엇갈렸다. 구리시의 ‘구리대교’와, 강동구의 ‘고덕대교’라는 명칭이 충돌했다. 이에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은 국가 지명위원회를 열고 다리 이름을 ‘고덕토평대교’로 의결했다. 그러나 구리시와 강동구 모두 납득하기 어려운 명칭이라며 반발, 재심의 청구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충남 보령 원산도와 태안 안면도를 연결하는 다리도 보령시는 ‘원산대교’를, 태안군은 ‘솔빛대교’를 주장했지만 충청남도 지명위원회는 ‘원산안면대교’를 최종 명칭으로 결정했다. 인천 제3연륙교 명칭을 정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논의돼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지역 간의 큰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연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기한 것처럼 현재 공정률이 80%정도 진행됐고, 올해 말 준공·개통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인천경제청은 중구와 서구가 제시하고 있는 명칭에 더해 중립명칭을 인천시 지명위원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다른 지역의 사례를 참고해 영종도와 청라국제도시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명칭으로 결정되길 바란다. 또 다른 문제는 제3연륙교의 통행료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인천경제청과 국토교통부의 손실보전금 협상이 진행되는 중이라고 한다. 인천경제청과 국토부의 손실보전금 산정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협상은 지난해부터 이어져 왔지만 지금까지 입장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교량 명칭 문제와 손실보전금 협상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제3연륙교 민관협의회도 구성됐다. 지혜를 모아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목련꽃이 활짝 피었다. 떼 학이 나뭇가지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 같다. 맑은 분위기 속 심호흡이 반갑다. 이 순간만큼은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없었으면 싶었다. 그때, 조선 숙종 대에 정삼품에 이른 김삼현(金三賢)이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을 벗 삼아 지내며 지은 ‘공명(功名)을 즐겨 마라’는 시조가 떠올랐다. ‘공명을 즐겨 마라 영욕(榮辱)이 반이로다/ 부귀를 탐(貪)치 마라 위기(危機)를 밟느니라./ 우리는 일신이 한가하니 두려울 일 없어라’ -청구영언- 복잡 다사한 세상에서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매사 삼가 하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거니 싶었다. 2025년 4월 3일 중앙일간지 K신문 1면 머리글에는 “임박한 ‘정의’…” 시민들 “이 불안, 끝이 보인다.”라고 활자화되어 있었다. 우측 사진에는 삭발한 스님들이 대통령 파면을 추구하며 헌법재판소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다음 날,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됩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헌법재판소장 권한 대행 문형배 재판관의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음성이 마이크를 통해 세상으로 울려 퍼져나갔다. 그 순간을 기다렸던 많은 국민들의 가슴은 후련했고, 큰 숨을 몰아쉬게 했다. 자연의 봄 못지않게 선량한 사람들의 봄을 위한 발자국 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문형배 재판관 모습은 단정하고 차분했으며 조용한 무게감으로 재판소를 꽉 짓누르고 있었다. 계엄으로 인한 내란성 불면의 밤 123일이 끝나가는 순간이었다. 삼라만상은 서로 공감을 나누는 거대한 교향곡이라고 했다. 봄의 전령은 나팔 불며 오지 않는다. 산자락에 논밭두렁에 나뭇가지 끝 꽃망울의 피면을 째면서 또는 낮게 엎드려 배밀이하며 오는 것이다. 그날은 산불도 잦아들었다. 4월의 봄은 식목일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내 어린 시절 식목일에는 괭이와 삽과 묘목을 가지고 학교 뒷산으로 가서 나무 심기를 했다. 그것이 애국인지 학교사랑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무궁화나무는 학교 울타리가 되어 ‘나라의 꽃’이라고 배웠다. 새삼스러운 생각이겠지만 2025년 4월 4일을 기념하는 나무를 한 그루라도 심어 두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나 정치풍토나 법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하나의 희망 사항을 정치인들에게 말하라면, 정치 감각도 경쟁도 중요하겠지만 유머감각을 살려서 자기와 의견이 다른 상대를 웃겨가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런 폭넓은 인문학적 능력자가 그립다는 점이다.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와 1박 했다. 다음날은 헬기로 대전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구름과 바람으로 헬기로는 갈 수 없었다. 별수 없이 KTX로 대전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시장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헬기가 뜨지 못하게 어젯밤 구름과 바람을 몰고 온 시장이시군요!’라고 유머를 날리어 사람들을 웃겼다고 한다. 이어서 교황은 자신에게 유머감각을 주시라고 40년간 기도했다고도 했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포용정책과 조수미 가수의 포옹정책’이다. DJ는 2000년 12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시상식이 있는 그날 저녁, 화려한 공연장에서 한국의 조수미 씨가 등장하여 우렁차게 노래를 부른 뒤, 무대 왼쪽에 있던 DJ에게 다가가더니 서슴없이 않고 뜨거운 포옹을 좌우로 퍼부었다고 한다. 그 뒤 돌아오던 차 안에서 한승헌 변호사는 DJ에게 조수미 씨가 해외에서 오래 살더니, 대통령의 ‘포용정책’을 ‘포옹정책’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