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지 않습니다. 아닌 건 어떻게 해도 아닙니다. 넘나들기 쉽도록 설치한 사거리 신호등이 아닙니다. 이리저리 옮겨 가도 무방한 온탕(溫湯)과 냉탕(冷湯)이 아닙니다. 선택 장애 손님을 위한 메뉴, 이를테면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치킨’은 더더욱 아니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같을 수 없습니다. 다름과 틀림 역시 그렇습니다. ‘세상’이라는 울타리 속에 존재하지만, ‘세상’이라는 울타리를 둘로 가르는 ‘낮’과 ‘밤’처럼 별개의 존재입니다. ‘세상’이라는 울타리를 ‘그릇’으로 좁히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밥그릇도 국그릇도 모두 그릇입니다. 다만 그릇 안에 담는 음식에 따라 쓰임새가 다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밥그릇과 국그릇은 생김새와 쓰임새가 서로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라는 별에 사는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경기도가 내년 지역화폐 예산을 1043억 원으로 편성했다. 이는 올해(954억원) 보다 10% 증액된 것이다. 특히 설을 앞두고 도내 시·군과 함께 할인율을 10%까지 높이기로 했다. 현재는 6~7%다. 이 조치는 계엄 사태와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침체한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도는 설을 앞두고 시·군과 함께 현재 6~7%인 할인율을 10%까지 높이기로 했다. 수원시의 경우 민생회복 특별경제대책의 일환으로 지역화폐 예산을 2배로 증액했다. 시는 지역화폐인 수원페이 발행액을 올해 200억 원에서 내년 411억 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종전의 충전 한도는 30만 원이었지만 다음 달부터 50만 원까지로 확대하기로 했다. 인센티브 할인율은 기존 6∼7%에서 10%로 올린다. 뿐만 아니라 설과 추석 명절이 포함된 1월과 10월에는 20%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
‘5월 광주’를 아는 어떤 이가 뉴스를 보았다. 찬찬히 세수했다. 이게 마지막 재계(齋戒)는 아닐까. 계엄이란 이름의 군사반란을 또 보는구나. 비장한 길을 나섰다. 천지신명이여, 선배가 앞장설 기회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 후,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지난다. 여의도의 인파, 젊은 여성들 한 동아리가 “와, 아저씨도 오셨네요, 고맙습니다.” 응원봉 흔들어 환호했다. 그렇지, 그들(몫)의 세상이지. 마음으로 축원했다. 상황의 그런 변화는 진화(進化)일 터다.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四字成語), 계엄 전에 뽑았다는데 우연이었나? 도량(跳梁)과 발호(跋扈)를 묶은 1위작 도량발호는 황당한 저들의 행태를 제대로 찍었다. 후안무치(厚顔無恥)와 석서위려(碩鼠危旅)가 뒤를 이었다. 셋 다 상황에 딱 맞는다. 여러 사람들이 보내고 있는 ‘어려운 밤’을 떠올리다 문득 생각했다, 계엄 후에 선정 했다면 1위로 전전반측(輾轉反側)이 뽑히지 않았을까 하는 발상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비통과 무력감은 도량발호를 넘어서는 특선작이 될 수도 있었으려니. ‘저 몇 사람의 도량발호’보다는, ‘나(우리)의 전전반측의 총량’은 얼마나 참혹한가. 작년엔 ‘이끗 보더니 의리 잊더라’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왜(倭) 제국주의의 심장을 쏘아 처단한 안중근 장군의 그 글씨 견리사의(見利思義)의 반대편에 서는 말이다. 그런데, 관련기사 살피다가 특이(特異)한 점을 보았다. 일부매체가 도량발호는 한자 ‘跳梁跋扈’ 사진 올리고, 본문은 한글로만 썼다. 후안무치와 석서위려는 아예 한글로만 적었다. 작년의 견리망의 기사도 일부는 역시 한자 없이 한글로만 적혔더라. 특기(特記)할 사항이라 본다. 문해력이 문제라는데, 발음(기호)만으로 뜻을 풀까? 어차피 모르는 말이니 그냥 지나쳐? 좀은 의도적으로 단어들을 선택한 이 글도 그런 걱정을 품는다. 한자 배우지 않은 세대와의 소통부재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일 터다. 당장 급하지 않다고 미뤄두니 치유나 개선이 더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는 고사성어 따위의 유식한 ‘말씀’을 멈추지 않는다. 다음세대를 위한 정책의 배려도 없다. 도량발호는, 물론 1위작이니 간단한 해설은 기사에 붙어있었다. 한글로 쓰인 후안무치가 뭐지? 대충 그런 사람을 이르는 말이겠지. 하지만 석서위려는? 견리망의나 견리사의는? 特異와 特記는 같은가? 재계 계엄 축원 장삼이사 따위는 뭐고, 왜 그런 뜻이 쓰일까? 이 또한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일(전전반측) 상황이다. 전전반측, 시경(詩經)의 국풍(國風)에 나오는 시 한 대목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익숙한 말의 초나라 노래(歌)의 대표적인 것이 국풍이다. 이런 따위, 전에는 ‘상식’이었다. 연말연시엔 ‘원단’ 들어간 인사 무성하다. 元旦은 ‘새해 첫 아침’의 비유적 표현이다. ‘문자(질) 좋아하는’ 선배들의 저 유식한 인사에 다만 멀뚱한 후배들 표정의 의미는 뭘까? 언어가 바르게 전해지지 않아 세상이 비뚤어지는 건 아닐까. 말과 글이 겨레의 혼이라며. AI시대에는 국어공부도 필요 없을까?
12월 중순, 한 해의 끝자락이다.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른들의 말씀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한 해가 지나간다는 사실은 늘 신비롭다. 언뜻 보면 시간은 한 방향으로, 직선적으로 흐르는 듯하지만, 실은 다양한 사건과 감정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내 머릿속 구석구석 기억의 형태로 남아 있다. 이맘때면 나는 휴대폰의 달력과 다이어리를 펼쳐본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아무 도움 없이 올해를 떠올려본다.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올해 내가 했던 공연, 촬영, 오디션, 그리고 몇몇 긴박했던 순간들. 삶의 주요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하지만 달력과 다이어리를 펼치는 순간, 내 기억의 빈칸이 채워진다. 스쳐 지나갔던 만남들, 여행에서의 사소한 순간들, 지인의 결혼식, 공연 관람, 그리고 무심코 적어둔 나만의 다짐과 고민들. 적어두지 않았더라면 떠올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 나의 관심의 방향이 일에 많이 치우쳐져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내가 살아온 한 해를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 뭔가 놓치고 있었던 내 삶의 조각들을 다시 붙이는 듯한 느낌이다. 매번 그럴 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의 기억은 종종 큰 사건만을 중심으로 저장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은 작고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서 진정한 모습을 갖춘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 시간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가장 인간 다운 순간이 아닐까? 삶은 결국 지나온 시간의 궤적을 확인하며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힘을 얻는 과정이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잠시 멈춰 서서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그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완벽하지 못한 선택을 자책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실망하며,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깎아내린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실체가 없는 기준과 압력이다. 오늘 하루 만큼은 자신에게 올해도 수고했다고, 비록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기특하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싶다. 삶은 마치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같다. 어떤 장면은 선명히 기억되지만, 어떤 장면은 흐릿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모든 페이지는 다음 페이지를 위한 준비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발자취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올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넨다. 올해도 잘 버텼다고.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하루 만큼은 자신을 토닥여주기를 바란다. 당신은 한 해를 묵묵히 살아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해낸 것이다. 삶은 속도나 성과로 측정되지 않는다. 삶은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기억하고 그 기억에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올해를 정리하며, 당신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바로 ‘도량형의 통일’이었다. 물물교환이나 상거래를 약속하는 기본 단위이자 조세와 공납의 가장 기초가 되는 제도였기에, 통일된 국가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표준’이었던 것이다. 당시 이러한 표준을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바로 왕의 권위이자 권력의 상징이었다. 고구려가 한 때 동남아시아의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막강한 군사력과 더불어, 고구려의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제작하여 활용한 35.6㎝의 자(척)인‘고구려척’에 의한 경제적 영향력이었다. ‘고구려척’은 토지측량과 건축뿐 아니라, 일본에까지 전파되어 주변국 상거래의 기준이 되어 고구려의 권력을 확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우리 일상의 무수히 많은 곳에도 표준은 녹아있다. 전 세계에서 하루 몇 만 장이 소비되고 있는 종이인 A4용지, 국제표준화기구인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ISO)가 210×297㎝로 규격을 제정한 A4용지는 종이를 자르는 과정에서 가로, 세로의 비율을 유지해 종이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수치를 표준화한 것이다. 자르는 과정을 몇 번 반복했는지에 따라 용지의 규격과 명칭이 정해지고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표준규격은 종이의 생산뿐 아니라 인쇄기와 복사기의 생산·유통·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개발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세계 여러 국가와 기업에서는 선제적으로 ‘표준’을 만들고 준수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정부는 2014년부터 전면 시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도로명주소를 주소체계 국제 ‘표준’의 일부로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세계 주소의 표준은 어떻게 적용되는 걸까? 나라별 도시형성의 역사와 환경이 달라 세계가 하나의 통일된 주소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는 주소체계 우수 국가의 주소 부여 방식을 우수사례로 표준화함으로써 주소체계가 아직 미흡한 국가에서 이를 참조할 수 있게 하였다. 우리나라는 2014년 도로명주소 전면 사용 이후, 건물에 사용하는 주소 외에 사물주소(시설물)와 공간주소(공터, 산지, 지역)를 도입해 다른 국가보다 촘촘한 주소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필요한 장소에 도로명판, 건물번호판, 사물번호판, 기초번호판, 국가 지점번호판 등을 설치·확장하여 건물이 없는 도로, 공터, 등산로 등에서도 위치 확인이 가능하게 해 어디서나 가능한 위치표시, 입체적 이동경로 구축에 따른 개별주소 부여, 전자지도의 실시간 갱신, 공급체계 구축, 탁월한 위치 예측성 등의 내용으로 2023년에 앞서 언급한, 국제표준(ISO 19160-2)에 ‘실세계 주소부여 및 유지관리’ 분야의 우수사례로 반영되었다. 이는 제대로 된 주소체계를 갖추지 못한 여러 해외원조 수원국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으며, 국제적 디지털 정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국형 주소정책이 세계 산업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2017년부터 ‘표준개발협력기관’으로 선정되어 공간정보 분야 표준 도입, 개발, 국제 표준화 활동 등을 수행하며 국가 공간정보의 표준화 정책을 지원하고 있으며, 주소정보활용지원센터와의 협업을 통해 주소정보 표준화에 대한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2024년에는 모빌리티와 연계한 주소정보 데이터 모델을 표준에 반영하여, 주소가 산업화에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기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표준화는 대량 생산과 국제무역이 활성화되어 있는 오늘날 모든 기술과 체계·서비스 모델의 연구 개발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건이다. 이에 정부는 국제표준에 한국형 주소체계를 반영하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실증과 홍보를 이어가고 있으며, 택배 등 물류업, 내비게이션과 같은 지도 분야, 공간정보 시스템 구축 등 위치정보를 활용하는 기업들의 해외 진출 시에도 한국형 주소체계의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다가올 미래는 전 인류와 사물이 함께 연결되어 공존하는 세상일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 등 첨단 산업 분야와도 주소테이터를 위치정보로 연계·활용하여 상호 운용성을 높이게 되면, 물류산업 성장, 지역 경제 동향 분석 등 산업계에서도 매우 유용한 공적 자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진화를 거듭해 세계와 사물을 연결하는 데이터를 꿈꾸고 있는 ‘대한민국 주소’, 세계와 미래로 향하는 그 첫걸음의 열쇠가 바로 ‘표준’이다. [ 최진무 경희대학교 교수 ]
12.3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지 2주가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 된 지도 엿새가 지나고 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경제, 행정, 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어제는 금융위기 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으로 환율이 1450원을 돌파 했다. 금융시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며 국부가 사라지고 있고, 자영업을 비롯한 민생 현장은 이제 비명 지를 힘조차 없어 보인다. 무모한 불장난을 벌인 대통령 탓에 국정은 인공호흡으로 버티는 신세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큰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전 국민이 하나되어 빠르게 위기를 극복해왔다. 권력을 탐하며 싸움질만 하던 정치지도자들도 결정적 위기 순간에는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결단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기를 곧 기회로 만들었고, 세계는 이런 대한민국의 저력에 감탄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맞이하고 있는 초현실적 위기는 양상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들은 빠르게 마음을 모아 국론을 하나로 만들었으나, 권력만 탐하는 정치권은 아직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특히, 12.3 내란 사태에 큰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의 행태는 비상계엄 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내란혐의로 탄핵 소추된 윤 대통령과 탄핵에 찬성하며 대국민사과를 한 한동훈 전 대표를 몰아낸 국민의힘 권성동 지도부는 지금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자신들의 위기를 사법절차 방해라는 저열한 방법으로 모면하려는 행태는 마치 팀플레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해제 후 대국민담화에서 “정치적 책임이든 법적 책임이든 피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수사가 시작되자 자취를 감췄다. 대통령 관저로 보낸 수사기관의 우편은 ‘수취 거부’, 대통령실로 보낸 우편은 ‘수취인 불명’으로 배달되지 못했다. 인편으로 전달하려고 해도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처가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출석요구서 뿐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보낸 통지서조차 피하고 있다. 검사 출신인 대통령이 수사기관과 헌법재판소의 공적 서류 조차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모습은 참담하다 못해 기괴하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이다. 하루라도 빨리 국정공백을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이 윤 대통령의 사법절차 방해 전략에 공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권성동 원내대표의 행태는 12.3 비상계엄 만큼이나 충격적이다. 권 원내대표는 17일 “지금은 대통령이 궐위가 아닌 직무정지 상황이기 때문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전까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권 원내대표의 주장은 2017년 자신이 했던 발언과 헌법재판소에 의해 바로 탄핵됐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퇴임을 앞둔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임 절차에 대해 “이 재판관 후임을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절차를 지금부터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기자들이 ‘황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권한이 있느냐’고 묻자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법재판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형식적인 임명권”이기 때문에 임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도 공석인 3인에 대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도 같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마은혁 후보자는 “원론적인 입장에서는 국회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출한 인사라면, 대통령 또는 권한대행으로서는 해당 인사를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헌법 조항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정계선 후보자도 “실질적인 임명 권한은 국회에 있다”며 “대통령의 자의적 임명권 불행사로 인해 재판관 공석이 생긴다면 국민 개개인의 주관적 권리보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의 객관적 성격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므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에서 추천한 조한창 후보자 역시 “국회에서 특정한 사람을 헌법재판관으로 선출했다면 대통령 또는 권한대행이 그 사람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헌법 조항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장이 헌법재판소의 단호한 입장에 부딪히자 권 원내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새로운 논리를 꺼냈다.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헌법재판소가 이 위원장과 최재해 감사원장 등 주요 탄핵 사건 심리를 우선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정하는 건 법적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거듭 해괴한 주장을 펼쳤다. 국민의힘을 장악하고 있는 친윤그룹이 권 원내대표를 앞세워 어떻게든 탄핵 심판을 지연시키겠다는 심산이라면 이 쯤에서 멈추길 권고한다. 결과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친위쿠데타 실패에서 확인했듯이 국민을 배반하고, 헌법과 법률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는 자멸 뿐이다. 이번 위기의 본질은 헌정질서 파괴다. 따라서 위기 극복의 유일한 방법은 헌정질서 안에서 헌법절차대로 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12월 14일 가결됐다. 1차 탄핵안 폐기 후 김용현 전 국방장관,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내란 피의자들의 자백으로 윤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라는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표결 이틀 전 윤 대통령의 ‘12‧12 대국민 담화’ 역시 가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탄핵 직전에 대통령이 당당히,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던 의지는 결연하게 읽히기는커녕 아직도 자기 잘못을 모른다는 자과부지(自過不知)라 할 만했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은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가짜뉴스인가 의심이 들던 것도 잠시였다. 속보로 확인한 비상계엄은 불안과 공포, 그리고 제정신인가와 같은 탄식과 화를 불렀다. 경찰의 국회 진입 차단 상황과 헬기에서 내린 중무장한 군인들이 보좌관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실탄을 실은 장갑차를 막아선 맨몸의 시민들 안위가 걱정됐다. 새벽 1시,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절차에 따라 가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 똑바로 차릴 때’라는 것을 확신했다. 윤 대통령은 3일 긴급담화에서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비상계엄의 이유를 밝혔다. 언론은 국회의 기능을 지체시키거나 마비시킬 목적을 두고 계엄을 내린 현직 대통령의 결정을 두고 내란죄에 해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계엄 포고령 조항을 검토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출동한 국군정보사령부 CCTV 영상을 확보하면서 계엄의 시간대별 정황을 확인했다.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기거나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마비시키는 ‘국헌문란’에 해당하는가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7일 110초 길이의 두 번째 대국민 담화가 있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윤 대통령이 비공개 면담을 진행한 이후였다. 임기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을 여당에 일임하겠다는 ‘질서 있는 퇴진’이 제기됐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서 뒤로 빠지고 누군가 직무를 대신 수행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언론은 질문했다. 누구도 부여한 바 없는 대통령 권력의 양도는 명백한 위헌에 가깝다는 판단이 우세했다. 12일 윤 대통령은 세 번째 담화를 공개했다. 29분에 걸쳐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계엄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포했고,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는 내란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JTBC는 12일 담화 내용에서 ‘(국회에)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 병력을 투입했다’, ‘예산 폭거 때문이다’ 등의 윤 대통령 주장을 팩트체크 했다. 시민의 저지로 국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병력과 대기조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700명에 달할 수 있고, 예산의 대폭 삭감이라고 주장했지만 정부안대로 통과한 것이 있고, 예산이 줄어든 정도를 볼 때 ‘대폭 삭감’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 있다고 검증했다. 탄핵 가결은 문제 해결이 아니다. 헌법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언론의 진실 추구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함은 명확해 보인다.
겨울철 집안의 큰 행사 중 하나가 김장이다. 겨울철에는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워 초겨울에 김치를 많이 담가서 저장하는 풍습으로 지금은 규모가 작아졌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겨울철 숙제처럼 하고 있다. 어렸을 적 김장은 우리에게 놀이였다. 어른들이 일하시는 옆에서 노란 배춧잎에 매콤한 속을 싸주시면 입에 묻혀가며 하염없이 집어 먹다 보면 얼얼한 입을 씻어내기 위해 물 한 주전자를 마셨던 기억과 무의 파란 부분을 잘라주시면 사각사각 씹어먹으면 옆에서 할머니가 ‘무를 먹고 트림을 하지 않으면 산삼 먹은 것보다 낫다’라는 말씀에 어린아이였지만 산삼이 좋다는 것을 알기에 나오는 트림을 입을 꼭 막고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로 참던 모습이 새삼스럽다. 예전에 맛있는 겨울 무를 동삼이라고 해서 인삼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겨울에 무를 가지고 음식을 하면 꼭 진한 연두색 부분부터 잘라 입에 넣는다. 겨울철 대표 채소인 무는 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맛이 특징으로 다양한 요리에 활용한다. 겨울철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 중에 소화를 돕는 효소와 면역력을 높이는 성분이 풍부하며, 비타민C가 풍부해 겨울철 감기 예방과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무의 비타민C는 열에 약하므로 생으로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무는 사계절 제철 재료이지만 기온이 내려갈수록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낸다. 무에 들어있는 시니그린은 무의 독특한 쏘는 맛을 내는 성분으로 체내 기관지 점막 기능을 강화해 기침 증상을 완화하고, 가래를 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목이 건조해지기 쉬운 환절기에 특히 유용해 무를 꿀에 재워 차로 드시는 분들도 계시다. 이렇게 다양한 멋을 가진 무를 이용해 빚은 술이 있었을까. 고문헌 속에 무를 이용한 무술이 등장한다. 먼저 무를 나박나박 썰어 솥에 넣은 후 약한 불로 뭉근하게 끓여 익힌다. 이때 처음에 솥에 눌어붙지 말라고 아주 소량의 물을 넣어준다. 무가 푹 익으면 고두밥과 누룩을 넣어 평소 술빚는 것처럼 빚어 완성하면 채 주 한다. 이 술에는 별도의 물이 들어가지 않고 온전히 무에서 나온 채수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무를 익히다 보니 특유의 향이 살아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대안으로 찾은 것이 수박무이다. 겉은 흰색이지만 속은 붉고 아름다운 색상을 자랑하는 무로 ‘수박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속이 연하고 단맛과 색이 고와 샐러드용으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일단 무에는 비타민C가 많이 있는데 열을 가하면 손실된다고 해서 생으로 얇게 채를 썰어 사용해 무의 시원함과 톡 쏘는 매운맛까지 살려 재료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이야 다양한 음식 재료로 가지고 술에 사용하는 것이 많은데 그 당시에는 무를 사용했다는 것이 대단한 시도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술을 빚다 보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좋다. 술이 익으면서 무에서 나오는 붉은빛이 뽀얀 쌀과 만나 연분홍색으로 술독을 가득 채운다. 무의 시원함과 특유에 알싸한 매콤한 맛이 술과 어우러져 한잔의 소화제를 마시는 것처럼 입안에 스며든다. 하얀 술잔에 담긴 연분홍빛 술을 보면 추운 겨울날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지난 3일 밤 10시 25분에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반국가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 “북한 공산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이 계엄의 이유였다. 1979년 10월 이후 45년 만의 일이다. 야당의 감사원장·검사 탄핵소추 추진과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 등이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 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는 말도 했다. 계엄이 무산된 뒤 첫 번째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윤대통령은 진심이 안 보이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자신의 임기와 향후 국정 안정 방안을 ‘우리’ 당과 정부에 일임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2일 두 번째 표결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태세를 전환, 불법적 계엄을 정당화하려 했다. 야당을 또 다시 ‘반국가 세력’이라고 했으며 ‘국회를 마비시키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무장한 계엄군들이 국회로 난입하는 장면을 똑똑히 본 국민들 앞에서 말이다.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느냐” “비상계엄은 통치행위”라는 말도 안 되는 발언도 쏟아냈다. 그야말로 백척간두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 야당과 여당 일부의원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계엄은 해제됐다. 계엄 중에 행정안전부는 전국 17개 광역지방정부에도 청사 출입 통제 등 비상조치 지침을 시달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를 제외한 전국 16개 광역지방정부 청사가 일제히 폐쇄됐다. 이들 광역지방정부의 시·군 등 기초지방정부와 직속 사업소에도 폐쇄 명령은 전달됐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대부분의 모든 공공 청사는 비상 계엄사령부의 통제 아래 운영됐다. 하지만 김동연 경기도지사만은 폐쇄명령을 거부했다. 다른 광역지방정부가 계엄사령부의 통제 아래에 행안부와 중앙의 지침을 따라 비상 체제를 유지하며 청사를 폐쇄했지만 경기도는 정부의 청사봉쇄조치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김 지사는 이날 새벽 "비상계엄은 내용도, 절차도 위헌"이라면서 행안부의 청사봉쇄 요청을 거부했다고 한다. 김 지사는 얼마 전 프랑스의 권위 있는 언론 르몽드지와의 긴급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심경을 밝힌 바 있다. 르몽드는 계엄령 선포 직후 정부의 도청 폐쇄 명령에 대해 다른 광역지방정부와 달리 김동연 지사가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인터뷰를 요청해왔다고 했다. 김지사는 “12.3 계엄선포는 절차나 내용이 모두 위헌이며 부당하기 때문에 거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명령을 거부하면 강한 압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만약 군이 봉쇄에 들어갔다면 구금당했을 상황이었다”면서도 “군대가 와서 구금하거나 봉쇄하더라도 몸으로 저항할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선포가 가짜뉴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감정이었냐는 질문엔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민을 믿었고 쿠데타가 무위로,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 확신했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16일 열린 ‘도-공공기관 민생안정 긴급간부회의’에서도 “내란 수괴와 공범들의 쿠데타를 철저하게 단죄하고, 쿠데타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내란 단죄’야말로 나라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통령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내란 단죄, 경제재건,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해 다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옳은 말이다. 지금 시급한 일은 무너진 경제를 재건하고, 민생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얼어붙은 민생 현장을 회복하기위해 ‘현장 중심’, ‘신속한 대응’, ‘과감한 대처’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한 김 지사의 생각은 지당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치권이 힘을 합치길 바란다.
영화는 망했다. 최소한 극장용 영화는 망했다. 쿠테타가 일어나는 사회에서, 내란이 일어나는 사회에서, 그것이 비록 조기에 진압됐다 하더라도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차대한 사회변화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리고 매일처럼 헤드라인으로 누구누구가 공조본(공동조사본부)에 소환되고 구속됐다는 기사가 뜨는 사회에서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없다. 많을 수가 없다. 고로 한국의 영화는 망했다. 극장도 망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이 나는 내년 3월말까지 영화의 흥행은 기대하기가 난망인 상황이다. 어떻게 키운 영화산업인가. 1년에 2억명 정도가 극장을 가고 국민 1인 연평균 관람회수가 4~5회인 나라가 아니었던가. 이런 시장을 쿠테타 시도로 한방에 날려 버렸다. 12월 4일에 개봉했던 영화 ‘대가족’은 3일 밤의 내란 소요 사태로 피폭을 당하면서 17일 현재 20만 여명에 그치고 있다. 손익분기점은 260만명이다. 92억원을 들인 영화이다. 투자배급사인 롯데, 영화를 만든 양우석 감독 모두 심한 좌절감에 빠져 있다. 송강호 주연의 ‘1승’ 역시 30만에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BEP는 180만명이다. 턱도 안된다. 그나나 곽경택 감독이 만든 ‘소방관’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관객 2백만에 육박하고 있다. ‘소방관’의 손익분기점은 260만명이다.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지만 후반 마케팅 비용 등을 생각하면 좀 더 관객을 모아야 할 판이다. 결론적으로 12월을 맞아 연말 흥행용으로 내세운 세 편의 한국영화가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것이 기이한 지도자가 벌인 난장판 쿠테타 때문이다. 한국은 아카데미를 비롯해 칸과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모두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주연상 등을 탄 나라다. 박찬욱과 봉준호가 있는 나라이다. 노벨 문학상을 탄 작가 한강을 소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발매하자마자 그래미 음원 순위 톱5 안에 진입한 ‘아파트’의 로제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쿠테타를 일으켜 로제가 세계무대에서 공연할 때도 창피하게 만들었다. 한강으로 하여금 노벨상을 수상할 때도 검은 옷을 입고 우울하게 만든 나라이다. 정치가 문화와 대중예술을 망쳐도 이렇게 망칠 수가 있는가. 게다가 정치 일정을 보면 내년 5월이나 6월까지(탄핵 소추안이 인용되고 두 달 안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는 전제 하에) 한국의 대중들은 TV뉴스 앞에 꽉 붙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모든 일이 그나마 잘 풀린다는 것을 예상해서이다. 대중예술인들 모두 코로나19에 이어 또 다시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라도 영화 연극 공연 등에는 양적 완화를 통한 지원자금을 풀 필요가 있어 보인다. 25일에 개봉할 ‘하얼빈’이 극장이 처한 상황의 국면 전환과 더 나아가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기대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인 상황이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그린 얘기이다. 지금의 정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한다고 했을 때 항일 의식을 담은 공포영화 ‘파묘’에 1200만의 관객이 몰려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있다. 대중들은 애국적 민족주의를 종종 드러내곤 한다. ‘하얼빈’이 진짜 애국을 생각하게 만들지 모른다. 걱정이 구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