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와 나뭇가지를 낭창낭창 흔들어댄다. 짙어진 녹색 나뭇잎은 기름칠한 듯 반짝인다. ‘내 나이를 새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5월 속에 있다.’는 피천득 수필가의 문장처럼 계절은 우리를 위로해 준다. 유년 시절의 일이다. 날아다니는 새가 귀여워 처마 밑에서 참새 새끼를 잡아다 새장 안에 넣고 물도 주고 아까운 싸라기도 주며 정성껏 길러보기로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새는 새장 안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니 죽어 있었다. 새를 꺼내 마루에 놓고 손바닥으로 마루판자를 두드리며 ‘일어나라 일어나’하고 주문을 외우며 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머니는 내게 ‘그만저만 해라. 죽은 녀석 고추 만지기인 게’ 하시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내가 어머니에게 속담으로 처음 들었는지는 모르나 속담 1호가 되었다. 어느 교회 집사가 내게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때 나는 나의 첫 신앙은 ‘어머니 종교’ 곧 모교(母敎)였노라고 했다. 집사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어머니는 가정살림에 논농사까지 경작하시며 힘들고 외롭게 사셨다. 나 또한 홀로 성장하며 기댈 곳은 어머니뿐이었다. 어머니는 속담으로 내 정신의 뼈대를 튼실하게 해주시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바느질하는 순간에도 나를 옆에 앉게 하시고 속담을 들려주셨다. “남하고 다투지 마라.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지 마라 네 눈에서 피눈물 날 수가 있다. 살려고 나온 짐승 죽이지 마라 그것들도 다 생명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 밥 먹고 바로 자면 소 된다. 남에게 손가락질당하지 마라. 병 없고 빚 없으면 산다.”라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속담은 속된 이야기가 아니다. 조상들 지혜가 응축되어 구전되어 온 보통사람들의 격언이요 철학이다. 속담을 무식한 사람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F.S 코즈츠이다. 그렇다면 내 어머니는 문학인이었다. 1920년대 출생하여 학교 앞도 가보지 못한 분이요. 마을 야학에서 뒤늦게 한글을 깨쳐 ‘개 조심’ 정도밖에 해득을 못하시는 분으로서 놀라운 일이었다. ‘속담은 평범한 사람들의 철학’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속담은 하루하루 경험의 어머니가 되어 자녀들의 밥상머리 교육이 되었다. 때로는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지겹다고도 했다. 귀에 못이 박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잔소리 교육이 약이 되어 오늘날의 수필가 김경희의 삶이 엮어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어머니는 어느 대학을 나오셨느냐?’는 내 시집 속 ‘어머니의 시’를 읽어본다. 어머니는 내게 ‘공부 잘해라’ 라든가 ‘출세해서 잘 살아야 한다.’는 말씀은 없으셨다. 대신 유유상종이다. ‘못된 녀석들과 어울리지 마라’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문학으로써의 속담을 장르로 구분한다면 속담과 수필은 이웃이다. 멀다 해도 사촌은 될 것이다. 수필은 청춘의 글보다 한 세상 고비를 넘긴 사람의 글이다. 인생의 향취가 있으면서도 아픈 체험 속 찬란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정서적인 글발이다. 수필은 독자의 마음 산책 같은 문장 속에 삶에 대한 의미와 인식을 일깨우는 것으로써, 작가의 삶이 담보가 되어야 신뢰할 수 있다. 동아프리카 속담에 ‘땅에 빚지지 마라. 언젠가 땅이 이자를 요구해 올 것이다.’ 라는 속담 이 있다. 왠 아프리카 속담인가- 어느 지역에서는 산불로 수십 명이 집을 잃었다, 서울에서는 잘 가던 차가 땅 꺼짐으로 도로 밑 땅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봄날의 폭설로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고 한다. 땅이 이자를 요구 햐는 것인가 싶다. 그런데 한 나라의 통치자가 상상할 수 없는 범죄행위를 저질러놓고서도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문학적 전공 기술자가 저 모양인가 싶어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녹음 짙어가는 자연 앞에서, 살아갈 날을 위해 새벽 기도하는 분들 앞에서 나는 생각해 본다. 그동안 사람들 교도소 보내는 재미로 살아온 인간이나 권력의 꿀을 빨겠다고 쇠파리 떼 같이 빌붙어 살아온 인생들 그리고 우직한 나부터 마음 다스리기 위한 수필이나, 한 편의 속담이라도 제재로 읽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
나는 2006년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그동안 네 번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나는 빠지지 않고 참가해 권리를 행사했다. 누구를 찍어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소란을 떠는 바람에 두 번은 흔들렸고, 두 번은 소신껏 투표했다. 네명의 대통령 중 한명의 대통령은 법정에 섰고, 두명의 대통령이 탄핵 되었다. 나는 정치에는 관심 없으면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2017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경험하기 위해 탄핵 찬반 집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2025년 ‘비상계엄령’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를 관망했다. 나는 두 번에 대통령 탄핵을 경험하면서 리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 두 개의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면서 고민했던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비영리단체 리더를 자처하고 있으며, 어째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올바른 리더는 없을까.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비영리단체 활동에 적극적인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최고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가진 듯한 대통령의 명예롭지 못한 결말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리더란 무엇이며 리더는 어떤 사람이여야 하는가. 어째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았다. 대통령을 국민이 선출하고 파면을 할 수 있다면 북한이탈주민 리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이 네명이나 배출되었다. 과분하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탈북민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었다. 세명의 국회의원은 비례대표로 뽑혔고, 한명은 지역구에서 선출되었다.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와 정당에 충실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북한이탈주민을 대표 할 수 있을까. 명예는 얻었을지라도 북한이탈주민 리더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치열한 경쟁과 민주주의 뿌리, 즉 탈북민 사회를 경험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국회의원을 뽑아준 정당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뿌리 없는 탈북민 리더의 모습은 누구라도 줄을 잘 잡으면 한자리 얻을거라는 비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게 한다. 통일부는 매년 수억을 들여 탈북민 정착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나무랄데 없는 정착지원이지만, 성적표는 초라하다. 아직 탈북민 자살율이 높은 원인을 알지 못하며, 모범 정착사례는 모범적이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까지 탈북민 사회에서 리더는 북에서 리더의 경험이 있는 사람, 엘리트라는 사람을 뽑아 올렸다. 뿌리 없는 리더이기에 뿌리에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모른다. 책으로 민주주의를 배웠기에 디테일을 모른다. 누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싸우는게 일상인 국회에서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의 자리는 불안정해 보인다. 나는 비영리 단체를 하기에 공모에 응모해 면접을 자주 본다. 때로 북한 사회 복사판을 보는 것 같아 실망할 때가 있다. 나에게도 품격있는 면접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은 아직 있다. 탈북민 사회 30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탈북민 사회는 성장했고, 낡은 옷을 벗을 때도 되었다. 揠苗助長 뽑아올린 뿌리는 살아남지 못한다. 선출된 대통령도 잘못하면 탄핵하는데 하물며 뽑아올린 탈북민 리더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생각하는 탈북민 리더는 탈북민 활동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적당한 곳에 적당한 사람을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경기도의회 정책지원관들이 허위로 초과 근무를 신청하는 방식으로 수당을 부당수령한 사실이 무더기로 드러나 충격이다. 특히 경기도는 몇 년 전 시·도별 시간외근무수당 부정수령 환수 현황에서 전국 최다의 불명예를 안았던 지역이라는 특성 때문에 파장이 더 깊다. 공직자의 ‘근무수당 부정수령’은 국민 세금을 부정 편취한 비위라는 측면에서 비난 여지가 크다. 일벌백계로 기강을 다잡는 것은 물론,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도의회에 따르면 지난 25일 도의회는 초과 근무 수당을 부당수령하는 등 복무규정을 위반한 정책지원관 16명을 적발해 경기도에 감사를 의뢰했다. 도의회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의 전체 정책지원관의 복무 기록을 조사한 결과, 총 234건의 초과 근무 수당 부당수령 사례를 발견했다. 부당수령 사실이 확인된 정책지원관들은 근로시간 외에 업무를 한 사실이 없음에도 시간 외 근무를 신청한 뒤 도의회 청사에 마련된 체력단련실·쉼터 등을 이용하는 등 사적인 용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도의회는 복무규정 위반에 대한 도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그동안 부당수령한 수당의 환수·인사 조치 등 징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임채호 도의회 사무처장은 일부 정책지원관이 근무수당을 부당수령한다는 도의회 안팎의 지적이 제기되면서 의회 전 직원을 대상으로 복무현황 조사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도의회가 일단 ‘초과 근무 수당의 부당수령’ 적발 사례를 공개한 만큼 향후 수당 부정 사례 등이 추가로 드러날 수도 있다. 공직 사회에서 좀처럼 수당 부정청구 비위가 끊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수당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그릇된 인식이 문제다. 초과근무수당이나 출장여비를 사실상 임금 보전의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소위 ‘빼먹지 못하면 그만큼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때문에 비위를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공무원들은 일을 하지도 않고 돈을 받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허위 청구를 넘어서, 낮에 할 수 있는 일을 밤이나 주말로 미룬다거나 불필요한 업무를 보면서 편법으로 수당을 받아내는 등의 지능적 일탈 행위도 없지 않다. 수당 부당수령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비위가 적발되어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해묵은 관례 때문이다. 지난 2022년까지 5년간 시간외근무수당 부정수령으로 적발된 지방공무원은 1789명이고 약 2억1176만 원이 환수됐다. 이때 경기지역은 적발 공무원이 전국 최다인 무려 457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발표돼 전국적인 망신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시간외근무수당 부정수령 비위로 적발된 1789명의 지방공무원 중 실제 처벌받은 공무원은 83명으로서 처벌률은 고작 5%에 그쳤다. 결국은 공직자들이 허위 근무기록으로 세금을 축내는 탈선을 일소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윤리의식 구축과 엄격한 처벌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공무원사회가 ‘가재는 게 편’의 심사로 서로 눈감아주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허위로 수당을 빼먹는 풍토를 방치한다면 유사한 비위는 좀처럼 발본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경기도의회의 초과 근무 수당 부당수령 시례는 자치단체 집행기관을 감시 감독하는 임무를 으뜸으로 삼고 있는 도의회 안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각별하게 지적된다. 행정기관을 철저히 관찰하고 문제점을 찾아내어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최고의 사명으로 삼아야 할 도의회에서만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공직 사회에는 ‘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가을 서리처럼 엄정하게 하라는 뜻’의 춘풍추상(春風秋霜)의 정신이 항상 흘러넘쳐야 한다. 예부터 공직을 목민(牧民)의 중직으로 여겼던 선조들의 얼에 숨겨진 엄격한 자정의 덕목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2년여 전, 필자는 진심으로 경기도 양주 화장장의 건립 성공을 기원했다. 그리고 신문 지면을 빌어 쓴소리를 먼저 던졌다. 그 첫째가 “화장장을 공부하라”였다. 둘째 셋째가 “합리적인 부지선정과 공정성 확보”. 넷째가 “주민 지원금 액수를 떠벌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지켜본 결과, 부지선정 과정에 별 무리가 없었고, 모든 것이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건립 후보지 확정 발표를 접했을 때, 주제넘게 걱정이 앞섰다. 위성지도를 통해 본 부지 자체는 나무랄 게 없었다. 문제는 몇 km 밖 신도시의 위치였다. 비슷한 여건을 지닌 다른 지역이 오래 지체되거나 좌절한 사례를 몇 차례 봐 왔기 때문이었다. 우려했던 대로 양주시 집행부와 의회의 갈등 소식에 이어, 시장의 대체 후보지 제시 요구에 대응한 3개소 후보지 추천 소식도 전해졌다. 평가 기관이 “시설 면적의 적정성을 우려했다.”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필자는 지난 30여 년 火葬 운동을 해온 원죄를 안고 있다. 그 때문에 화장장을 ‘더 많이’,‘더 빨리’, ‘더 좋게’ 짓는 활동에서 발을 빼지 못한다. 습관처럼 양주 후보자 현장을 돌아보고 의견을 청취했다. 안팎에서 입수한 자료를 통해 제반 사항을 검토했다. 그 결과, 양주 화장장의 확실한 성공을 위해 짧은 소견이나마 보태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었다. 가장 먼저, 추가 3개소의 후보지와 이미 확정된 후보지를 놓고 과학적인 비교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주시장이 “확정된 후보지보다 더 좋은 곳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라고 요청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없었던 일로 돌린다면 중대한 절차상 흠결로 남을 수가 있다. 새로운 평가는 앞서 후보지를 평가했던 기관이 아닌 곳에 맡기는 게 옳다고 보았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공정성 시비를 피할 수가 있다. 둘째, 경험상 지역 사회의 이해를 구하는 데는 “듣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먼저 설명 설득하려 들고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들지 않는 것이 좋다. 이해를 구하는 길은 많이 듣는 것이다. 가슴과 귀를 열고 듣고 또 듣다 보면 싫음, 분노, 아픔, 서운함 등의 배경을 알게 될 것이다. 그걸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대화의 장이 열릴 것이다. 근래 경기도 몇몇 곳에서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을 한자리에 모아 마찰을 빚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처럼 양측이 동석하면 설득은커녕 갈등만 키울 수가 있다. 어디든 화장장 건립 과정에 끼어든 정치적인 논쟁은 약방의 감초와 같다. 그들이 나서서 서로 다른 견해나 쟁점 차이를 지적하는 것은 일에 방해만 될 뿐이다. 셋째, 광역 장사시설 수급계획부터 재검토하기를 권한다. 화장로 12기 규모에 대한 적정성부터 봉안시설 및 자연장지 등의 사용 범위, 규모 등을 놓고 원점에서 검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이건 지역 사회에서 우려하는 장례 차량의 통행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일이다. 필자는 화장시설은 광역적으로, 봉안 및 자연장지 등은 각각 자기 지역 내에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평생을 고향에 살았던 어른이 사후에 타처에 잠드는 것 그리 좋은 모양은 아니다. 넷째, 현대 화장문화에 대한 좀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 필자는 장사 담당 공무원과 지방공사 직원부터 향교, 문화원 등지를 돌면서 현대 화장문화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때마다 절실하게 느끼는 건 대체로 “모른다”라는 것이다. 이건 우리 화장문화의 역사가 아직은 짧아서 그런 면이 크다고 본다. 양주시 장사시설 계획 몇몇 부분에 미흡함을 보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끝으로 화장장 건립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정치적 과시는 되도록 배제하는 게 좋다. 과시의 효과보다는 걱정하는 시민들의 우려를 더 키울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저런 홍보물에는 깔끔하게 행정 기술적인 면만 내세우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주시는 '인내와 끈기'로 지역 사회의 '이해와 양보'를 구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잊지 말 아야 할 것은 ‘화장장 건립’은 지방 공공부문 최고의 3D 업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일을 담당한 이들의 노고는 반드시 보상되어야 한다.
삶은 언제나 나의 계획이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전혀 엉뚱한 곳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내가 네덜란드에서 살게 된 것은 2009년 여름 무렵이었다. 주재원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나선 것이니 4년 혹은 길어야 5년 후엔 돌아올 것이라 예상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벌써 나는 16년째 네덜란드에서 클라라로 살고 있다. 내가 네덜란드에 산다고 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그곳은 산양이 뛰어다니는 곳이 아니냐 묻고, 지인들은 뉴질랜드는 요즘 어떠냐고 묻는다.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었고 이름 또한 비슷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실제로 두 나라는 전혀 다른 나라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네덜란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마 대부분은 튤립과 풍차, 히딩크 감독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더하여 하멜표류기, 고흐와 안네 프랑크를 생각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의 생활이나 생각, 그리고 시스템에 대해서는 실제 살아보기 전에는 알 길이 없다. 네덜란드는 늘 행복지수 5위 안에 드는 나라이며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들이 네덜란드인들이다. 네덜란드 집으로 이사왔을 때 욕실 거울 앞에 서니 내 얼굴이 윗쪽 절반만 보였다. 싱크대가 높아서 설거지를 하거나 음식을 만들 때면 어깨가 저절로 솟는다. 생전 변비에 걸린 적이 없던 지인이 네덜란드에 와서 변비에 걸렸다고 했다. 호텔의 변기가 너무 높아서 앉았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아 힘을 줄 수가 없었다며 그 까닭을 말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오히려 네덜란드 집이 익숙해져서 한국에 와서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변기에 푹썩 주저앉게 되어 당황한다. 네덜란드인들이 키가 큰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속설이 있다. 그 중에,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네덜란드인들은 자전거를 탈 때 두 발을 땅에 딛고 타는 것이 아니라 페달에 한 발을 올리고 다른 쪽 발로 자전거를 밀면서 타기 때문에 자전거가 자기 허리보다 높고 자전거를 탈 때면 다리를 쭉쭉 뻗어야 한다. 차도와 인도 사이엔 어김없이 자전거 도로가 있으며 네덜란드인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은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처음 네덜란드에 왔을 때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초등학생이었고, 나는 모임에 갔다가도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비가 오면 아이들을 데리러 나섰다. 어느 비오는 날, 학부형 모임에 갔다가 비가 와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겠다고 나서는 나에게 누가 말했다. “클라라! 너희 아이들은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어. 그러니 비가 와도 녹지 않을 거야”라고 말이다. 두둥!하고 나의 머리가 울렸다. 그 이후 네덜란드에서 우리 아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아이들도 나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날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가끔 한 손에 꽃을 들고 경쾌하게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들을 목격한다 . 하교 시간 이후엔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의 차로 북적대는 한국의 차도와 달리, 페달을 밟으며 건강하게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네덜란드인들의 자전거 도로는 생각이 생활을 바꾸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최종 선출되었다. 최종 득표율은 89.77%로 90%에 가까웠다. 현재 민주당의 지지율과 각종 여론조사를 살펴볼 때 한 달여 후인 6월 3일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사법 리스크’는 이재명 후보에게 항상 꼬리표와 같이 따라붙던 논란이다. 이는 현재도, 대통령 선거일까지도 지속될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유효할 것이다. 다만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논란이 유죄 선고의 가능성에서 대통령에 대한 재판의 가능성으로 바뀔 뿐이다. 하지만 이재명에 대한 사법 리스크 논란은 그가 압도적인 지지율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선출되면서 사실상 종결되었다.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의 이면에는 윤석열 검찰의 부당한 수사권과 기소권의 남용이 존재한다. 2022년 3월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검찰은 전 조직을 동원하다시피 하여 이재명을 수사했다. 그 결과물이 소위 ‘이재명 사법 리스크’다. 하지만 이재명의 압도적인 득표율은 최소한 민주당 당원과 지지층에서는 이재명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만약 한 달여 후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국민 다수가 검찰의 편파적 수사와 기소를 지적한 결과가 될 것이다. 우연일까 국민의힘 유력 대통령 후보인 한동훈과 홍준표 모두 검사 출신이다. 특히 한동훈은 검사 시절 윤석열의 충실한 부하였고 그에 의해 검사장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하는 파격적 인사의 수혜를 입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법무부 장관에서 집권 여당의 대표 격인 비대위원장으로 다시 한번 직행했다. 그 결과 당대표를 거쳐 국민의힘 유력 대권 후보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3년 검찰은 전사적(全社的)으로 이재명 죽이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재명은 숱한 죽음의 고비, 심지어 칼에 찔리는 테러를 당하면서까지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지배하다 내란까지 일으킨, 그 검찰총장 출신의 심복이었던 자가 유력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세력과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6월 3일 치러질 대선을 이재명 대 검찰의 대결이라 평가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이는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재명의 탓이 아닌 정치 한 복판에 뛰어든 검찰이 자초한 일이다. 이재명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군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그간 검찰이 휘둘러온 수사권과 기소권에 대한 국민의 경고다. 국민이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토록 이재명을 구속하지 못해 안달이던 검찰이 내란수괴 윤석열은 즉시항고의 즉시 포기라는 초유의 사태로 석방해 준 단 한 장면만으로도 국민의 판단이 잘못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대선에 참전한 검찰이 살아남을 길은 이제라도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말고 법무부의 외청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는 길 뿐이다.
사업주들이 미등록 체류자의 신분을 악용해 고의로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불법체류’의 약점을 이용해 체불을 일삼고, 강제 출국을 위협해 침묵을 강요하는 부조리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후진국형 고용문화를 반증하는 낯부끄러운 현상이다. 외국인에 대한 처우는 철저하게 상대적인 것이어서 재외 동포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잠시도 방치해선 안 된다. 인권 의식을 높여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지난해 임금체불 피해자 중 미등록체류자 2만 3200여 명이 1108억여 원 규모의 임금체불 피해를 입고도 불안정한 신분을 악용한 사업주와 강제 출국 위협으로 권리 구제가 어려운 딱한 상황에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임금체불 신고조차 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 속에 방치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임금 보호와 노동의 공정성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체불 피해자 총 28만 3212명 중 미등록체류자는 8.2%인 2만 3254명으로 집계됐다. 이주노동자의 피해 임금체불액은 전체의 5.4%인 1108억 4100만 원으로 확인됐다. 미등록체류자의 임금체불액은 2019년 1217억 원을 기록한 이래 매년 1000억 원을 초과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피해를 신고했다가는 출입국법 위반으로 체포되거나 강제 출국당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4월 18일 임금체불로 진정서를 제출한 필리핀 국적의 한 외국인 노동자는 조사 후 귀가 도중 체류 기간 만료를 이유로 체포됐고, 현재 강제 출국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회수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같은 구조적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실태 및 구제방안’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이주노동자 중 90%가 임금체불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불법체류 신분 때문에 신고를 주저하거나, 신고하더라도 강제 출국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사업주들이 미등록 체류자의 신분을 악용해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는 이어지고 있다. 천안의 한 음식점에서 1년간 근무한 태국인 수지 씨는 월급 800만 원과 퇴직금 220만 원을 체불 당했으며, 사업주는 “신고하면 출국 당한다”고 노골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같은 미등록 체류자가 더 열악한 조건의 외국인들을 악용한 특이한 사례조차 있다.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문제는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출입국법이 완강한 장벽이 되고 있다. 치명적인 약점을 노린 악덕업주의 마수에 걸리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딱한 벌레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문명국 대한민국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참혹한 부조리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미개한 현상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은 이를 명백히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불법 체류’라는 용어도 유엔과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미등록 체류자’로 대체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역시 “제도를 정비해 사업주의 악의적 체불을 막고, 노동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형 한국이주인권 센터장은 “약자인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우선 보호하는 노동행정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 지표는 그 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규정하는 중요한 바로미터다. 대한민국이 ‘미등록 체류자’의 개미지옥으로 인식되는 일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법과 제도의 정비는 물론,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사업을 영위하는 모든 사업자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사업 또한 대폭 강화돼야 한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국가사회의 세심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대목이다.
정조는 1789년 7월 11일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영우원(永祐園)을 수원의 읍치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13일에는 수원의 새읍치를 팔달산 밑으로 정했고, 10월 5일에 영우원을 수원의 옛읍치로 옮기고는 이름도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꾸었다. 정조가 현륭원으로 행차하는 여러 가지 규정을 담은 '원행정례(園行定例)'의 편찬을 명한 것은 9월 18일이다. 이때 한강을 건너는 방법으로 배다리(舟橋)의 건설도 결정했다. 정조는 1790년부터 사망하는 1800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현륭원 참배를 실천했다. 임금의 행차는 늘 경호 문제가 따라다니기 때문에 대규모일 수밖에 없고, 한강처럼 큰 강을 신속하게 건너는데 배를 타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사고 위험도 있다. 그래서 사도세자의 무덤을 영우원에서 현륭원으로 옮길 때 뚝섬나루에서 뜬다리(浮橋)를 임시로 만들어 건넜다. 전쟁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 몇천, 몇만, 몇십만의 군대가 뜬다리 또는 배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넌 사례를 세계 여기저기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는 매년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배다리를 그때그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나루를 선택하여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면 됐다. 그런데 서울 도성의 남쪽에는 한강을 건너는 나루가 아주 많았다. 유명한 것만 따져도 서쪽부터 양화나루(楊花渡), 서강나루(西江津), 삼개나루(麻浦津), 용산나루(龍山津), 노들나루(露梁津), 동재기나루(銅雀津), 서빙고나루(西氷庫津), 한강나루(漢江津), 두뭇개나루(豆毛浦津), 뚝섬나루(纛島津), 삼밭나루(三田渡), 송파나루(松坡津), 광나루(廣津) 등이 있었다. 이중 서울-수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이용한 최단코스의 길에 있는 나루는 동재기나루였는데, 왜 정조는 한강을 건너는 배다리(舟橋) 건설의 최적 장소로 노들나루를 선택한 것일까? 배다리 건설 관련 내용을 체계적으로 담은 정조의 '주교지남(舟橋指南)'은 두뭇개나루(東湖), 서빙고나루(氷湖)의 장단점을 제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두뭇개나루는 물의 흐름이 잔잔하고 양쪽의 강가가 모두 높은 장점이 있지만 강폭이 넓고 너무 우회하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서빙고나루는 강폭이 좁은 장점이 있지만 남쪽의 강가가 낮은 모래사장이어서 밀물 때나 큰비에 물이 갑자기 불어나면 강폭이 넓어져 배다리를 연장해서 놓거나 부두(船槍)를 새로 증축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것이다. 노들나루는 물의 흐름이 잔잔하고 깊으며 양쪽으로 언덕이 마주 대하고 있어 물이 갑자기 불어나 강폭이 넓어질 일이 없고, 강폭도 뚝섬이나 서빙고나루에 비해 ⅓밖에 안 되어 건설비용도 상당히 절감할 수 있는 이점까지 있다고 기록했다. 최단코스의 동재기나루에 비해 돌아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두뭇개나루에 비하면 우회하는 거리가 짧다. 신기하게도 서울의 도성에서 현륭원을 오가는 최단코스의 동재기나루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왜일까?. 동재기나루는 국립서울현충원의 한강가에 있었는데, 북쪽의 물가는 엄청 넓은 모래사장이어서 밀물 때나 큰비가 내려 갑자기 물이 불어나면 강폭이 넓어지는 문제가 서빙고나루보다도 더 크게 발생한다. 그래서 '주교지남'에서는 비교의 대상으로도 넣지 않았다.
25년 전 영국에서 유학할 때였다. 지도교수에게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인으로 영국 땅에 와서 교수가 되었고, 지적재산권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프로페서가 되었기에 그가 어떤 학위논문을 썼는지 궁금했다. 그는 런던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논문 제목이 “센티멘털리즘에 대하여”였다.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파이낸스와 법 대학원의 교수가 되었다는 점도 그렇고, 센티멘털리즘에 관한 학위논문을 쓰고서 지적 재산권 분야 저명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당시 나로서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인공지능이 만능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AI를 투영하지 않은 분야는 없는 듯하다. AI리터러시, AI와 학문, AI와 사회복지, AI저널리즘, AI시대의 창작, AI기반 광고전략, AI로 PR하기, AI와 디자이너의 변화, AI시대 소통의 기술, AI시대의 번역, AI와 철학의 전환 등 출간된 책 제목들을 보아도 세상의 창은 AI가 되었다. 그 뿐 아니다. ‘AI윤리에 대한 모든 것’, ‘인공지능은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가’, ‘AI는 차별을 인간에게서 배운다’, ‘4차 산업혁명시대 AI와 일자리 경쟁 그리고 공존’ 등 인공지능 시대를 진단하며 AI로 인해 도래할 수 있는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처하고자 하는 책들도 앞 다투어 출간되고 있다. AI가 우리 삶에 밀착되면서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에서 뭔가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배우는 학문으로 일컬어지는 리버럴 아츠는 원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자유시민을 위한 학문이었다. 문법과 변증법, 수사학, 산술, 음악, 천문, 기하학의 일곱 과목이 있었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여 고정관념이나 생각의 틀을 깨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늘날 리버럴 아츠를 교육하는 학부과정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인문학과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도 가르치며, 다양한 전공으로 학문적 융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방대한 지식을 쉽게 찾고 이용할 수 있게 된 지금, 왜 사람들은 리버럴 아츠에 관심을 갖는 것인가? 각 분야마다 AI와의 융합을 모색할수록 AI의 미래와 실체는 더 모호해지고,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닌지.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철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넥서스」(2024)에서 인류 역사를 정보 네트워크로 분석함으로써 AI의 실체에 대해 탐색해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우리가 과연 호모 사피엔스인지 질문하며, 왜 우리는 정보와 힘을 축적하는 데는 뛰어나면서 지혜를 얻는 데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는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해 온 것은 우리가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nexux)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AI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유기적 정보 네트워크에서 비유기적 정보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동안은 인간의 뇌에 의존해 정보를 처리해왔지만, 실리콘 기반의 컴퓨터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난 3월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강연한 유발 하라리 교수는 AI는 인간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며, AI는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역사는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역사는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미래의 모습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AI시대를 열어가는 지금, 리버럴 아츠를 통한 인간의 상상력과 사고력, 감수성과 창의력이 어떻게, 왜 중요한지 공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검찰은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자택과 은신처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당시 검찰은 현금 5만 원권 3천 300매, 1억 6500만 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그런데 이 중 5000만 원 뭉치가 검찰의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전액 신권이었고 비닐로 포장돼 있었는데, 포장 겉면에는 한국은행 표기와 함께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일련번호, 비코드가 찍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또한 포장일시도 ‘2022-5-13 14:05:59’로 찍혀 있었다. 이 날은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식이 있은지 3일째 되는 날이다. 한국은행 발권정보 스티커가 붙은 신권 뭉치는 ‘관봉 신권’이라고 해서 일반인은 구경도 할 수 없다. 한국은행이 일반 은행에 현금을 줄 때만 사용된다. 한국은행도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 질의에 "해당 포장 상태는 금융기관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전 씨는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고, 일부는 검찰이 수사 중이다. 그러나 한국은행 관봉권 뭉치 소유는 부정한 자금 수수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일반인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한국은행 관봉권 뭉치를 무속인 전씨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고, 권력기관 과의 관계를 배제하고는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누가 언제 어떤 사유로 전씨에게 5000만 원 한국은행 관봉권 뭉치을 전달했는지 조속히 밝혀햐 할 것이다. 또한 검찰은 전 씨가 통일교 전직 간부 윤 모씨로부터 거액의 부정한 자금을 수수하고,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해 달라며 건낸 6000만 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수령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전 씨는 윤 씨로부터 대통령 부부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의혹이 있다고 한다. 윤 씨가 2022년 3월 윤 전 대통령 당선인을 1시간 독대했다고 공개한 적이 있는데, 전 씨가 이를 주선했을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목걸이 수수는 그 이후 시점이다.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김 여사가 6000만 원대 목걸이를 착용해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이 “빌린 것”이라고 했는데, 윤 씨가 전 씨에게 “빌리지 마시라”며 목걸이를 전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 씨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받은 것은 인정하고 있으나, 잃어버렸다는 황당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가의 목걸이를 분실했는데 경찰에 신고는 하지 않았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전 씨는 한국은행 관봉권 뭉치도 언제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버티고 있다. 지난 대선 때부터 알려진 것처럼 전씨는 김 여사의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 직함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무속비선’ 논란이 불거져 조직이 해체됐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캠프의 한 본부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실세로 불려지기도 했다.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 힘 내부에서는 건진법사가 정권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간 전 씨는 친윤 핵심 의원들에게 인사와 공천 청탁을 한 정황이 잇따라 확인됐을 뿐 아니라 그의 휴대전화엔 대통령실 행정관은 물론 공공기관 임원·검찰·경찰 인사 청탁 문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전 씨는 윤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와 10차례 통화했는데, 12·3 비상계엄 이후에도 47분 간 통화한 기록이 확인되는 등 이른바 ‘법사폰’을 검찰이 복원한 뒤 터져 나오는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속 비선’ 건진법사의 행적이 드러날수록 지난 3년간 도대체 누가 국정을 운영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검찰은 현재 드러나고 있는 수 많은 건진법사 의혹들이 권력형 범죄에 해당한다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 바닥까지 떨어진 검찰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철저히 수사해서 관련자들을 엄벌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