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는 기억의 창고다. 첫 장편소설을 집필했고, 어머님과 별리, 여인과 별리, 백구 토순이와 별리, 필자에게는 이별의 공간이었다. 큰형님의 공직생활을 기점으로 보길도와 맺은 인연은, 수원서 열차로 광주에 와 시외버스로 환승하여 땅끝 마을 항에 도착하면, 30분 간격으로 항해하는 철선을 타고 노화도 산양진항에서 정박한다. 승용차로 15분간 달리면 국문학사에 길이 남는 가사문학의 최고봉인 조선시대 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지었던 곳, 보길도다. 세연정과 동천석실, 곡수당과 낙서재, 부용동 원림을 둘러보고, 예송리 해변 자갈을 밟고 건너편 예작도를 바라보면 조석으로, 지는 해의 찬미와 함께 황홀한 일출광경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여름철이면 예송리, 중리, 통리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북바위와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씐바위, 보죽..
문재인 대통령이 개각을 단행했다. 아마도 최근 여론조사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리얼미터가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RDD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응답률은 4.4%)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전주 대비 6.4%p. 급락한 37.4%로 나타났다. 또, 지난 12월 1~3일에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전화 인터뷰 형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15%)에서도 문 대통령 지지율은 39%를 기록했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은 30%대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아마도 개각을 단행한 것 같은데, 민심을 수습한다는 차원에서의 개각은 과거 거의 모든 정권이 민심수습책으로 사용했던 방법이다..
국민의힘이 수감 중인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대국민 사과’ 여부를 놓고 또 내홍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취임 직후부터 사과를 공언해온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실행할 뜻을 내비치자 당내에서 거센 반발이 이는 양상이다. 김 비대위원장 혼자서 비쭉 사과에 나선다면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지지도가 오르는 등 조금 형편이 나아지자 또다시 집안싸움 고질병이 도지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지난 6일 청년국민의힘 창당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대국민 사과’는 국민의힘에 처음 올 때부터 예고했던 사항인데 그동안 여러 가지를 참작하느라고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운을 뗐다. 그러자 당내 여기저기에서 태클을..
내 고향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떠내려가는 돌다리 건너, 읍내에서 꼬불꼬불한 논길을 5리 걸어가야 하는 억불산 자락이다. 어릴 적 읍내에 살았던 나는 항상 고향 가는 것이 즐겁고 기대되었다. 대여섯 살 어린이에게 5리길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지만 나는 흔쾌히 길을 나섰다. 명분은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첫 번째는 큰집에 가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던 쑥떡 한 덩이와 조청이었다. 큰집에는 쑥떡이 살강에 놓여 있었다. 쑥이 쌀보다 많이 들어간 쑥떡은 거칠어서 씹다보면 껌처럼 되었다. 나는 조청의 달콤한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다. 어떤 때는 독 속에서 홍시를 하나 내주실 때도 있었다. 그 큰 홍시를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결코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큰집 즉 고향에 가면 맛볼 수 있는 맛..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Time Magazine)가 사상 처음으로 '올해의 어린이'를 선정했다. 그 주인공은 미국 콜로라도주 더글라스 카운티의 고교생인 기탄잘리 라오(Gitanjali Rao)로, 15세 소녀 과학자다. 5000명이 넘는 8∼16세 후보들을 제치고 선정된 인도계 미국 소녀 라오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우리 주변에 발생하는 실생활 관련 앱과 장치들을 개발했다. 2014~2015년 미시간주 플린트에서는 수돗물 납 오염 사건이 발생해 미 전역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당시 10살이었던 그녀는 “이런 문제는 곧 우리세대의 문제로 돌아온다”며 “아무도 하지 않으면 내가 (연구 개발) 할거야”라고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탄소나노튜브 센서를 이용해 싸고 간편하게 수돗물에서 납을 검출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 유명해졌다...
드럼을 처음 연습할 때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종로 5가에 위치한 합주실로 연습을 하러 나갔다. 당시에는 드럼 스틱 이외에는 다른 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가방 안에 오선지와 메트로놈 그리고 드럼 스틱만 단출하게 넣어 다녔다. 약속된 합주실 이용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로비에 앉아 드럼 스틱을 꺼내 두드리며 손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지나가던 메탈 향기를 진하게 풍기는 긴 머리의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 드럼 연습할 때는 이 정도로 두껍고 무거운 스틱으로 연습해야 해.” 라고 이야기하며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대어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낙원상가로 달려가 드럼 관련 악기사들을 뒤져, 가장 굵고 튼튼해 보이는 녀석을 사서 두드리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그 긴 머리 남자의 말에 모래주머니를 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수도권의 물리적 거리 두기를 8일 0시부터 3주간 2.5단계까지 높였다. 비수도권은 2단계로 격상됐다. 국내 확진자의 70%가 인구 밀집도가 높은 수도권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달 초만 해도 100명 안팎이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근래 600명대까지 가파르게 치솟았다. 어떻게든 여기에서 끊어내야 한다. 민관이 유기적으로 연대하고, 시민의식을 발휘해 ‘총력방역’으로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국내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는 7일에도 600명을 넘어 이틀 연속 600명대를 기록했다. 지난달 초순까지만 해도 100명 안팎에 머물던 신규 확진자 수는 중순부터 200명대로 올라서더니 300명대-400명대-500명대를 거쳐 600명대까지 급격히 치솟았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내놓은..
수도권에서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변화하였다. 아무래도 2020년은 코로나 19와 함께 마무리되려나 보다. 한의원 입구의 마스크안내문은 물론이고 몇 달전쯤 한의원에 설치한 안면인식체온계와 자동손소독기는 자연스럽게 한의원의 풍경이 되었다. 한명 한명을 치료할 때마다의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의 알콜소독, 대부분의 1회용화도 마찬가지다. 오셨던 분들을 제외하고 올해 최근에 내원하는 환자분들은 설진(혀에 나타나는 색과 모양등의 징후를 보는 진단법)을 꼭 해야 하거나 코와 입부근을 치료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마스크를 벗지 않기에 얼굴을 잘 모르는 환자들도 꽤 된다. 망문문절로 얼굴의 이목구비를 관찰하기도 하는 한의사인 나에게는 꽤나 이례적인일이다. 이렇게 낯설음이 어느덧 익숙해진다. 종종 미열, 기침, 콧물등의 동반하여 양..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국면이 막장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굴절된 ‘검찰개혁’에 대한 논란이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흙탕 밭 전투에 함몰된 나머지 전략적 목표를 잃어버리고 샛길로 빠진 형국이 돼버린 ‘검찰개혁’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어젠다 중 하나인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여전히 높다. 지금이라도 본질로 돌아가 ‘검찰 장악’ 의심을 훌훌 벗고 바른길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여권이 ‘검찰개혁’ 과제를 효율적으로 풀어왔다고 평가하기는 미흡한 점이 많다. ‘검찰개혁’의 본질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다 장악하고 검사동일체의 전통을 유지하며 시시때때로 인권을 침해하면서 애먼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권력을..
주민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 스스로 자생할 수 있으려면 기금(fund) 조성이 필요하며, 주민공동체로서 마을관리협동조합이 공동체기금 조성과 운영을 할 수 있게 될 때 주민 주체성이 훨씬 강화될 것이다. 어차피 5년 안팎의 관 주도의 도시재생사업 기간 종료를 목전에 둔 마을이라면 주민이 주도해서 사업을 이끌어 가야만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공동체 기금으로서 마을기금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 목적 실현을 위해 연대하여 기금을 모으고, 모인 기금을 마을을 위해 사용하고, 그 성과를 주민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준다. 또한, 마을기금은 마을 주민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운영하여 마을경제 울타리 안에서 돈이 잘 순환될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도 하며, 신뢰를 기반으로 조성된 마을기금은 마을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