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발간한 후배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자 우체국을 들렀다. 창구 여직원이 반기면서 새해 캘린더를 선물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세월이 고개를 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세월은 모든 것 위에 있다. 작가로서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한 해의 삶이 어떠했는지? 자문하게 된다. 누군가는 ‘인간은 덧없는 이슬의 자식’이라고 했다. 나이 숫자가 불어날수록 삶이 두루마리 화장지같이 끝으로 갈수록 더욱 빨리 사라지는 것 같다. 지금은 살아 있는 자로서 누군가에게 감사드려야 할 때다. 그동안의 12월은 쉼 없이 달리는 고속열차의 뒷모습같이 속도감 속에서 정신없이 보냈다. 문학단체의 행사를 비롯하여 망년회, 향우회, 동창회, 직장 모임 등 술기운 속에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12월은 투명한 마음으로 보내야 한다. 정직한 시력으로 사람과 사회를 보면서 지금..
전두환 정권 출범 후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군부의 세를 약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세를 강화하는데 힘입은 검찰조직이 이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한 시대를 마감하려 한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는 국정을 농단하던 거대 세력이었다. 전두환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검찰의 기능을 강화하고 힘을 실어줬고, 검찰은 그 '역할'을 충실히 이어받았다. 민주화 항쟁을 하던 수 많은 이들을 잡아 없는 죄도 만들어 구속시키는 신통력까지 발휘했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은 가족과 친족, 지인들을 소환해 정신적 압박을 가하면서 며칠씩 조사를 해댔다. 반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이들의 죄는 갖은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 불기소 처분했다. 이러했던 검찰 조직이 드디어 40여년만에 영욕의 세월에 종식을 고하고 있..
더불어민주당이 개혁 입법 추진과정에서 미뤄두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의 12월 임시국회 상임위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민주당은 중대재해법 정기국회 처리를 미룬 일로 정의당 등으로부터 모진 비난을 받아왔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페이스북에 “중대 재해를 예방하고 그 책임을 강화하는 법을 최대한 이른 시기에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늦은 만큼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부작용을 철저히 차단한 이상적인 입법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산업재해 유가족은 지난 11일부터 국회 본청에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해 있다. 정의당과 중대재해법 제정 운동본부는 이날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향해 연내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
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반으로 한 우리의 민주주의적 대응 모델은 미국의 자유방임적 모델, 중국의 전체주의적 모델, 일본의 관료주의적 모델, 그 어느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친인간적인 방식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직 너무 어리다고 평가한다. 70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수많은 굴곡을 겪어 제도적으로는 완비했지만 정당 민주주의도, 책임정치도, 정책선거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시민의식은 성숙한 민주주의라 일컬어지는 유럽 여러 나라들의 행태보다 훨씬 더 훌륭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휘하는 시민의식의 근간은 무엇일까? 아마도 불편을 감수하면서 기꺼이 마스크를 쓰는 것에서 찾을..
온 세상을 분노케 했던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68)이 12일 새벽 출소한다. “피해 아동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려 놨는데 12년 형기는 너무 짧았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지금은 정리됐지만, 조두순의 형기 결정에 영향을 끼친 ‘주취 감경’에 대한 불만도 다시 곱씹어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른바 ‘조두순 감시법’으로 불리는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아동 성범죄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은 필요하지만, 15년 전 폐지된 반인권적 ‘보호감호법’ 부활을 외치는 등의 과잉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두순은 지난 2008년 12월 경기 안산 단원구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를 납치해 화장실에서 잔인하게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이미 강간과 살인 등으로 전과 17범인 상태였다. 검찰은 범죄의..
블랙머니와 검사의 두 얼굴 “블랙머니”. 검은 돈, 뇌물이나 부정한 거래에 은밀하게 오가는 돈이라는 뜻인데, 은행매각 비리, 금융 범죄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의 소재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은행을 헐값에 매입하고, 매각한 사건을 파헤치는 검사 이야기. 영화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한 수사 검사가 수사 중지라는 윗선의 외압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증거자료를 폭로한다. 그런데 부장검사와 사건 배후에 있는 핵심 인물인 전직 총리가 사건 실체의 은폐를 은밀히 합의하는 데, 더 눈길을 끈 것은 검사 사무실 벽면에 걸린 액자였다. 이 액자에는 “공명정대(公明正大)”라는 네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공명정대한 길을 걸어 왔는가 현실은 영화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내외부적 압력에 따른 사건 무마 등 사회적 사건을 그저 영화 속의 픽션으..
코로나19는 시민들의 일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시민들의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대면접촉을 최소화하는 패러다임으로 삶의 틀이 급변하고 말았다. 비접촉(언택트)이 새로운 일상(뉴노멀)이 되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음식 배달서비스가 외식을 대체하게 된다. 음식 배달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압도적 다수가 주문배달 대행서비스, 약칭 ‘배달앱’을 이용한다. 수도권공정경제협의체가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수도권 외식배달 음식점 점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배달앱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96%가 배달앱을 이용해 주문을 하고 있다. 배달에 응하는 음식점들도 평균 1.4개의 배달앱에 가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렇게 주문과 배달의 길목을 외국자본인 독일회사가 ‘사실상 독점’..
형사사건에 변호인으로 참여해 보면 때때로 한 없이 초라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되고는 한다. 모든 증거는 검찰이 가지고 있고 검사는 유죄입증에 유리한 증거만 제출한다. 수사를 통해 무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했다고 해도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그러한 증거가 검사에게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천신만고 끝에 증거의 존재를 알게 된다고 해도 이를 검사로부터 얻어내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에 가깝다. 예컨대 지난 2010년 용산 사건에서 검찰은 재판부의 공개결정에도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버텼다. 결국 검찰 손에 있는 증거는 검찰이 제출하기 전에는 변호인 심지어 판사마저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형사법정에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무죄 입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변호인이 되고..
재일동포 한영용씨가 개발한 ‘뿅뿅사’ 모리오카 냉면은 부산 밀면가 가장 유사하다. 그 냉면 하나 가지고, 한적한 지방인 모리오카(盛岡)역 주변을 비롯해 시내 여러 곳에 음식점들이 들어서면서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리오카하면 '냉면'이라는 이미지를 떠오른다는 일본인들도 상당히 많다. 그가 이렇게 냉면을 개발, 보급하게 된 것도 유년 시절 맛본 냉면의 기억 때문에 비롯되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일본인 故 가와하라 도시오(川原俊夫)사장은 어린 시절 부산 초량시장에서 먹었던 매운 '명란젓' 맛을 잊지 못해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식품으로 만들어 일본 최대 명란 식품 회사 '후쿠야'(ふくや)을 만들었다. 이 명란젓 이야기는 연극, 소설, TV 드라마를 통해 알려졌다. 그는 부산 초량시장 유년 시절의 맛을 평생 잊지 못했다. 일본인들도..
민주당이 지난 8일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통합감독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등 핵심 쟁점 개정법안을 상임위에서 강행 처리했다. 다수의석의 여당은 힘으로 밀어붙이고 소수 야당은 몸으로 막아서는, 국회 창설 이후 줄기차게 보아왔던 장면들이 또다시 연출됐다. 집권당이 나라를 위해서 진정 절박해서 그런 것이라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야당과 언론이 쏟아낸 우려가 기우(杞憂)라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오롯이 여당에 주어졌다. 기업규제 3법의 경우도 논란이지만, 역시 가장 첨예한 법안은 공수처법 개정안이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사회를 맑게 하여 ‘유권무죄(有權無罪)’의 치명적 모순사회를 끊어낼 소중한 국가기구다. 공수처의 출범은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적 완성이고, 20년간 기울여온 무수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