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기도 파주에 산다. 가끔 차를 타고 지나다가 이런저런 플래카드를 보게 된다. 거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결사반대” 다. 무슨 화장터, 무슨 특수학교, 무슨 공장 뒤에는 어김없이 “결사” 반대란다. 뭐 반대하는 것이야 민주사회에서 정당한 의사표시니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조금 유감인 점은 “결사”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말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의 무게를 아는 것일까? 진정으로 목숨을 걸어본 적이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90년대 초반, 나는 ‘행남사’라는 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다가 해고되었다. 93년 봄, 전국의 해고자들이 모여 ‘전해투’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전국을 돌며 복직투쟁을 할 때의 일이다. 노동청 점거농성을 했는데 청장이 면담에 응하지 않자 노동청 창문 난간에 매..
전대미문의 시대적 전환기에 올해와 내년 큰 선거가 잇따라 예정돼 있다. 4월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내년에는 대선,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모든 일상을 코로나의 블랙홀에 빼앗기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홀로 광야에 서 있는 모습이 우리 국민들의 현주소다. 그래서 목마름으로 백마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계절이다.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여야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출사표를 던지거나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선급 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도전장을 내밀며 서울시장 선거의 판이 커졌다. 특히 이번 선거는 전직 단체장들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막대한 국민혈세가 추가로 투입되는 등 엄중한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부터 내년까지 이어지는 선거는 오랫동안 우리정치를 감싸고 있는 누더기 옷..
양평 용문사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추정나이 1100년, 높이 4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4m, 가지너비가 동서로 28.1m, 남북으로 28.4m라는 숫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은행나무를 처음 마주했던 순간의 인상을 잊을 수 없다. 그 나무, 아니 그녀(암나무이다)는 나에게 동양최대라는 거대한 자태로 힘찬 가지와 무성한 은행잎을 휘날리며 지나온 1100년의 시간을 문자가 아닌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 나이의 두 배가 넘는 기간 전부터 여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했던 불교는 2500년 전 보리수나무 밑에 앉아 호흡을 통해서 지혜를 개발한 붓다의 한 숨결에서 시작되었다. 그 모습은 초기불교서적인 (맛지마니까야:들숨날숨기억경)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기억을 확립하여 앉는다. 기억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기억하면서 숨을 내쉰다..
아이 하나 낳고 셋방을 살던 그 때 아침 해는 둥그렇게 떠오르는데 출근하려고 막 골목길을 돌아나오는데 뒤에서 야야! 야야! 아버지 목소리 들린다 “저어---너--- 한 삼십만 원 없겠니?” 그 말 하려고 엊저녁에 딸네 집에 오신 아버지 밤새 만석 같은 이 말, 그 한 마디 뱉지 못해 하얗게 몸을 뒤척이시다가 해 뜨는 골목길에서 붉은 얼굴 감추시고 천형처럼 무거운 그 말 뱉으셨을 텐데 철부지 초년생, 그 딸 “아버지, 내가 뭔 돈이 있어요?!” 싹둑 무 토막 자르듯 그 한 마디 뱉고 돌아섰던 녹슨 철대문 앞 골목길, 가난한 골목길의 그 길이만큼 내가 뱉은 그 말 아버지 심장에 천 근 쇠못이 되었을 그 말 오래 오래 가슴속 붉은 강물로 살아 아버지 무덤 그 봉분까지 치닫고 있다 이영춘 약력 『월간문학』(1976) 등단. 시집 [노자의 무덤을 가다] [따뜻한 편지] [들풀]..
지난해 12월 5일은 리영희 선생(1929-2010) 10주기였다. 리영희 재단 등에서는 몇 차례 추모세미나를 열었고, 창비출판사에서는 새로운 《리영희 평전》과 《리영희선집》을 펴냈다. 추모 논술대회나 글쓰기 공모전도 열렸고, 리영희상 시상식도 이어졌다. 리영희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는 《다큐 리영희》 5부작을 제작하여 공개했다. 리영희선생 관련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리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리선생을 다시 소환하는 동력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이고, 시민의 열망이다. 리영희를 통해 검찰(법조)과 언론, 재벌과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한국 지배 권력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고, 동시에 한국사회의 근본적 개혁방향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리선생은 언론사 기자로 지낸 10여년을 포함하여 평생을 정론직필의 투사로 살았다. 반공주의와 파시즘체제, 베트남전쟁과 중국사회주의, 6·25전쟁과 미제국주의, 친일파와 일본군국주의, 분단체제와 통일, 수구권력과 언론매체 등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모든 ‘우상’의 본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군부정권은 물리적 탄압으로 응답했다. 언론사와 대학은 리선생을 내쫓았고, 검찰은 체포·구금·기소했으며, 법관은 그의 입을 막고 형무소로 보냈다. 이에 질세라 수구신문지들은 리영희를 ‘빨갱이’로 낙인찍었다. 리선생은 굴하지 않고 글로 싸웠다. 자신을 겁박하고 자의적으로 단죄하려는 권력의 주장을 검증함으로써 ‘진실의 심판대’에 세우고자 했다. 대표적인 글이 1977년 감옥에서 쓴 ‘상고이유서’다. 자신을 기소하고 감금한 군부파시즘체제와 검찰, 법원을 역으로 ‘기소’했다. 이성적 논증을 통해 우상의 허구성과 언론의 요설,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판했다. 이후에도 지치지 않는 장구한 싸움을 통해 결국 그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웠다. 리영희에게 저널리즘은 비판이고 정명이고 실천이다. 언론인 리영희는 거의 죽어가는 그 날까지 모든 종류의 부당한 권력을 비판했다. 비판은 사물과 사상의 화려한 외피를 제거하고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다. 비판의 다음 단계는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친일족벌언론(민족지), 기레기(기자), 허위조작정보(부실기사), 검비(검찰), 법비(법관), 반민족이권동맹(보수정당)… 이름을 바로잡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천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말년에 리선생은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시민 개개인의 힘뿐이라고 했다. 우리는 각자가 선 위치에서 우리를 옥죄고 약탈하는 부당하고 불의한 언론-검찰-법조-수구정치권-재벌로 이어지는 권력카르텔을 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언론비판과 언론개혁이 그 시작이다.
지난 2014년에 처음 발의된 '사회적경제기본법'과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실현에 관한 기본법', '사회적경제기업을 위한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 사회적경제 3법이 19대, 20대 국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있다. 기본법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사회적경제기업, 사회적경제 활동가 등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의 실망감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중소기업통계(2018년 기준)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99.9%에 이르는 380만여 개의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직원 수는 1588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9.7%에 이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1986년 5월 12일 중소기업의 창업과 신규 중소기업 지원 및 중소기업..
천만뜻밖이다. 방역 당국이 교정기관과 요양병원 등 집단수용시설을 이렇게 엉터리로 관리해온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법무부 소관인 서울동부구치소에서 감염된 코로나19 확진자가 30일 오전 현재 792명으로 늘어났다. 전국의 요양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는 27일 기준 900여 명, 코로나19로 숨진 사람만 지난 28일 기준 모두 57명을 헤아린다. 특히 코호트 격리된 요양병원은 마치 살처분을 기다리는 ‘도살장’처럼 취급되면서 방치돼있다고 아우성이다. 지금이라도 집단수용시설에 대한 총력 지원이 절실하다. 서울 동부구치소에서는 29일에도 233명이 무더기로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첫 환자 발생 후 한 달 만에 800명 가까운 확진자가 쏟아졌다. 단일 시설 내 최대 규모의 감염이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에서 터졌다는 사실은 세계에 자랑해온 K-방역의 부끄러운 속살이다. 구치소 같은 집단거주 시설은 원래 감염에 취약한 데다 동부구치소는 모든 활동이 실내에서 이뤄지는 아파트형 구조여서 특별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환자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용자들에게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지난 15일 두 자릿수 확진자가 나왔는데 사흘 뒤에야 전수 검사를 했다고 한다. 수용자가 정원을 초과한 과밀 상태임에도 수용 인원의 30%가 감염돼 ‘코로나 지옥’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서야 환자 345명을 경북 청송교도소로 이송했다. 노인요양시설 상황은 더욱 비참하다. 요양 시설 내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코호트(동일집단) 격리하되 중증 환자는 전담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환자 급증에 따른 병상 부족으로 이송을 기다리다 가족 얼굴도 한번 못 보고 사망한 환자가 이달 들어서만 40명이 넘는다. 지난 27일 기준으로 서울 구로구 요양병원 136명, 경기 부천시 효플러스요양병원 164명, 전북 김제시 가나안요양원 91명, 충북 청주시 참사랑노인요양원 105명, 울산 남구 요양병원 243명 등 대규모 집단감염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을 치료하는 요양병원에는 코로나 진료 경험이 있는 의료진도 없고 인공호흡기도 태부족하다. 그런데도 ‘코호트 격리’만 하고 환자가 죽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는 상황이란다. 환자와 가족들은 “일본 유람선처럼 갇혀 죽어가고 있다”며 ‘도살장’에 다름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올 2월 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사망자가 속출한 비극을 보고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노를 부른다. 코호트 격리된 시설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관리를 놓고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역병이 창궐했다고 길을 막고 다리를 끊어 단 한 명의 환자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조선 시대 방역이 웬 말이냐”는 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의 절규가 아프게 들려온다. 24시간 목숨을 건 격무에도 현장을 이탈하지 않고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의료진의 “제발 좀 지원을 해달라”는 호소에 가슴이 먹먹하다. 아직 이 전쟁은 멀었다. 제발 정부 당국이 제대로 해주길 신신당부한다.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변명만 앞세워서는 해결될 일이 아무것도 없다.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을 이렇게 부실하게 해서는 안 된다.
태어나서 이런 날들은 처음 이다.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다. 언제나 절망속에서도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말했던 것처럼. 2019년 12월 프랑스 개인전을 마치고 영국을 거쳐 한국에 돌아와서 터진 코로나19는 차라리 휴식 시간 같았다. 하지만 일년동안 나아질 기미 없이 계속 되는 일련의 상황들은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한 작가에게도 점점 마치 질주하던 기차가 멈춘 것 같이 답답한 상황이다. 미술계 또한 많은 국제 전시를 취소 하면서 다양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소통 방식을 강구 한다. 하지만 공간 안에서 입체적인 감상이 절대적 우의를 차지 할 수밖에 없는 미술 전시 특성상 고민은 더욱더 깊어 진다. 누군가가 말을 할 때 들어 보아도 정확한 제시는 없이 그럴 것이라는 추측만 들려 온다. 예측할 수 있는 경험의 시간들이 사라진 지금의 미술환경에서 모니터로 주고 받는 영상, VR 전시, 증강현실 접목등은 이 시간들을 새로운 미술 시스템을 마련하는 시간들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모두들 동의 한다. 하지만 인간의 깊은 내면을 시각적 표현으로 손이 익숙한 작가들에게는 참으로 황당한 말이다. 2020년 국내외 미술계도 코로나19의 거리두기로 전시장은 여닫음을 반복하고 베니스, 광주, 서울비엔나레는 2021년으로 연기 했다. 따라서 비평 활동도 위축되고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거의 중단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열린 2020부산비엔나레의 야곱 파브리시우스 전시감독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경험으로 스카이프, 줌등 온라인미디어에 강하고 사용이 자유로워 온라인 미술 플랫폼 활용을 잘했다. 작가로 참가한 수원시립미술관 ‘내 나니 여자라,’ 전이 팬데믹 기간인 9월8일에 개막식도 생략된 가운데 오픈 되었을 때 많은 우려를 했다. 하지만 미술관측의 빠른 온라인 전시로 다양한 홍보 덕분에 11월의 전시로 뽑히기도 하였다. 가까이에서 미술관의 적극적인 언택트 온라인 활동을 지켜 보며 이제 전시가 보여주는 것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온라인 확장이 필요 하다는 것이 느껴 졌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접어 드는 미술계의 목소리도 다양 하다. 한국미술계가 국제교류와 해외 유명작가들의 전시에 가려 빛을 못본 지역의 콘테츠 개발도 하고 한국사회의 고속 성장과 글로벌리즘 세계유행 추종에서 벗어나 우리 내면의 감정과 문화가 담긴 전시 문화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지금까지 가져 왔던 사고의 변화를 요구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는 2021년은 미술계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결국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만고의 진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으로 일상을 멈춘 채 맞는 연말이다. 얼마 전 온라인 좌담회 형식인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제인 구달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류는 이번 재난도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고, 자신은 세계 제1, 2차 대전도 겪어본 사람이라고 말이다. 이쯤 되면 인생은 재난 극복의 연속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와 같은 젊은 세대들에게조차 몇 가지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 학생이었을 때, 요즘처럼 추웠던 어느 날 IMF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시거나 하시던 사업이 어려워졌다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자주 들렸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는 건가 진심으로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세월호, 메르스, 국정 농단,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한 나라 전체가 휘청거렸던 사건을 여러 번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윤석열 검찰총장은 언제나 위풍당당하다. 한국의 권력 지형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인다. 그의 그동안의 '힘'을 보면 착각만은 아니다. 그가 검찰총장에 임명된 지난 2019년 7월부터 지금까지 1년 5개월 동안 기성 언론에 보도된 횟수로 치자면 윤 총장이 대통령 못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윤석열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이 시간에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력화한 것은 가장 강력했던 사건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장관에 지명되자마자 시작된 그의 가족에 대한 수사는 상상을 불허한다. 지난 8월 27일부터 9월 27일까지 한 달 동안 무려 69곳이나 압수수색한 것이다. 이 정도 규모는 특정 개인비리에 대한 형사 사건사에 있어 신기록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윤 총장의 숱한 비리 혐의 건에 대해서는 그의 수사철학인 '성역 없음'이 미사여구에 불과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이것이 그의 '힘'의 본질적 작동원리는 아닐까? 실제 윤 총장에 관한 고발 건은 어떠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단체인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행에 따르면 윤 총장 비리 혐의는 직권남용 등 무려 31개에 이른다. 이 단체가 이를 지난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12차례나 고발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고발인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대접이 가히 황제 급이다. 조국 전 장관 가족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하지만 윤 총장은 언제나 초심 그대로 위풍당당하다. 그 흔한 유감 표명 하나 하지 않는다. 법무부의 2개월 정직 징계에 따른 소제기에서 법원(12월 24일)이 "(윤 총장의 지시에 따른) 판사 사찰문건 작성은 매우 부적절하고,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는데도 모른척하는 건 그의 캐릭터가 일관된다는 방증이다. 우매한 걸까, 신념에 찬 걸까? 그가 '국민', '전체주의', '독재', '법치주의' 등의 말을 즐겨 쓰나 그간의 행동은 그 말이 품고 있는 뜻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독재 시대였으면 그는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됐을 것이고, 법치주의였다면 조국 전 장관 가족과 본인에게 법 잣대를 그렇게 불공정하게 적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캐릭터는 누가 보아도 인문적 성찰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다. 개인 고유의 캐릭터와 상관없는, 인간이면 가슴 속에 흐르고 있는 양심이 과연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송파 세 모녀 동반 자살사건이 떠오른다. 그들은 생활고로 생을 마감하면서도 현금 70만 원을 유서와 함께 남겼다. 공과금과 집세로 내달라는 것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공과금이 뭐라고 마지막 순간까지 깔끔하게 정산했던 밑바닥 사람들의 가슴에 있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마지노선, 양심. 이 양심, 윤 총장에게 있기는 있는 것일까? 거대한 폭력과 맞서기도 하는 큰 '힘'인 양심. 광주 항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룬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인간의 양심이 얼마나 거룩한지를 기록하고 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이런 양심은 바라지도 않는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평범한 양심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윤석열 총장님, 당신의 양심은 안녕하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