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는 추방과 이산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diaspeirein에서 유래되었고, ‘~를 넘어, ~를 지나다’라는 뜻과 ‘흩뿌리다’의 합성어이다.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기’에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바빌로니아(이라크)에서 가나안(이스라엘)으로 갔다. 이스라엘에 기근이 생기자 이집트로 피했고, 그곳에서 형제 요셉이 그들을 맞았다. 아브라함과 요셉이 죽은 뒤 유대인들은 노예 상태가 되었고, 이들을 구출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는 무리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갔다. 모세의 후손들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북쪽과 남쪽으로 쪼개졌고, 신의 분노로 성전은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세계로 흩어졌다. 디아스포라는 이산과 이주를 설명하려는 연구자들이 만든 용어 즉 연구 분석틀이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추방과 이산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고, 의미는 확장되었다. 5세기 강한 국가 사이에 끼인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전쟁과 침략으로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고, 16세기 노예무역으로 11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갔다. 18세기 영국식민지 상태였던 아일랜드는 대기근으로 백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경제적 이유로 200만명 이상이 세계로 흩어졌다. 디아스포라의 분류는 20세기 노예제 폐지와 함께 노동계약으로 단기간 체류, 장기간 이주 등으로 확장되었다. 디아스포라는 오늘날 이민과 이주, 난민을 설명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이주한 사람들이다. 어딘가에서 왔고, 한반도라는 지리적 위치에 정착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다. 한반도 이주의 역사는 1860년 연해주로 이주하여 시베리아로 추방되었고, 스스로 ‘고려인’이라 부른, 현재는 러시아에 거주한 고려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북한이탈주민은 누구인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용어는 1997년 7월 14일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비공식적으로 귀순 용사, 탈북자, 새터민, 북향민으로 부른다. 연구자들은 북한이탈주민을 디아스포라에 근접시키려 한다. 디아스포라는 한반도적 상황을 디아스포라에 기대어 해석해 보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이다. 지금도 전쟁과, 난민, 추방과 이산, 이주는 계속된다. 보편적 현상을 ‘흩뿌리다’는 어원을 가진 디아스포라로 설명 가능할까. 뿌리를 찾다 보면 누구나 이주민이기 때문이다. 나는 디아스포라인가? 탈북한 사람 대다수는 경제적 이유로 1990년대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전 세계로 흩어졌다. 북한이탈주민의 고난은 유대인의 고난에 비유할 수 있으며, 디아스포라 어원에 근접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남쪽에 왔으니, 이천년을 방랑하다 드디어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에 비유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나를 디아스포라로 분류하는 순간 백년도 안되는 분단 시간에 오천년 역사를 팔아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으로부터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디아스포라’라는 용어에 무임승차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다. 헌법은 이렇듯 국민이 주권자임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행정권력이 국민을 지배하는 것 같다. 백번 양보해도 최소한 주권자인 국민이 행정권력을 지배하는 것 같지는 않다. 주권자가 대한민국을 지배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주권자인 국민을 지배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권자가 국가권력에 지배당하는 모순은 ‘자발적 복종’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국가권력은 주권자인 국민 개별적 의지로 형성된 일반의지의 표출이어야 한다. 국민의 국가권력에 대한 복종은 자신이 만들어낸 일반의지에 대한 복종이기에 주권의 침해가 아닌 보장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적지 않게 뒤흔들고 있는 명태균씨는 “내가 만든 정권 내가 무너뜨릴 수도 있는거죠. 그게 뭐 대수입니까?”라고 했다. 이는 주어가 ‘국민’일 때만 성립하는 명제다. 주어의 자리를 국민이 아닌 ‘명태균’이 차지하고 있으니 국정농단이 되는 것이다. 국가권력이 주권자의 일반의지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더는 민주주의 정부가 아니다. 주권자의 복종은 자발적 복종이다. 그렇기에 언제든 그 복종을 거둘 수 있다. 시민혁명이다. 헌법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한 이유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쉴새 없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되더니 열흘 후에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는 이재명이라는 개인이 감옥에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재명은 차지 대통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인 야당 지도자다. 지금 당장 대선이 치러진다면 절반 가까운 국민은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권리를 침해당하게 된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기소에 따라 사법적 판단권을 가진 사법부가 선고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그 어떠한 권력 또는 권한도 주권자의 그것을 넘어설 수는 없다. 헌법은 이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표현한다. 사법부의 판단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국민의 주권을 넘어설 수는 없다. 사법부 역시 주권자인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반 가까운 국민으로부터 대통령감이라 지지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피선거권이 사법부, 아니 판사 한 명의 선택에 달린 이 상황을 주권자인 국민이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은 없다. 하지만 주권자 스스로 복종을 거부하는 행동은 제도가 아닌 주권자 고유의 권리다. 조봉암과 김대중에 대한 사형선고도 사법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승만과 전두환 정권은 국민에 의해 무너졌다. 국민이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주권자의 뜻을 거스른 정권은 살아남을 수 없다.
세상은 조만간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를 접하게 될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위, 로봇(We, Robot)’ 행사에서 로보택시인 사이버캡(CyberCab)을 선보이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대중 앞에 세웠다. 옵티머스가 참가자들에게 음료를 따르고 춤추기도 하는 등 축제 분위기를 이끌었다. 일론 머스크는 2026년 옵티머스를 2~3만 달러에 판매할 것이며 장차 그 수요는 최대 200억대가 될 수 있다고 공언했다. 미래사회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로봇 집사들이 각 가정에서 인간을 도와주는 세상이 될 것이다. 매우 흥미롭고, 기대된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자의 일등공신인 일론 머스크가 미 정부의 각종 규제를 철폐할 정부효율부(DOGE) 공동수장에 지명되었다. 벌써 트럼프 2기 정부의 핵심인사로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 머스크의 주력사업인 자율주행차, 스페이스 X 등 각종 사업에 대한 규제가 풀어져 미국 시장에서 로보택시와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가 앞당겨질 전망이다. 이미 로봇은 산업체에서 대중화되었으며, 식당에서 고객에 음식을 배달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올해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인공지능(AI) 반려로봇을 선보였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정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시대가 곧 온다. 이는 앞으로 잠재 시장이 무궁무진하단 뜻이다. 현재 관심을 받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현대차가 2021년에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이며, 4족 보행 로봇 스폿(Spot)은 트럼프 당선자의 경호를 맡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2021년 ‘AI데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사업 진출을 발표했던 후발주자이나 그 후 옵티머스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기업들도 휴머노이드 로봇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니트리는 지난 8월 1만 6000달러의 휴머노이드 로봇 ‘G1’을 공개하였으며 중국에서 상장된 휴머노이드 로봇회사는 약 100여 개에 이른다. 중국 로봇 업체들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최근 카이스트가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 ‘라이보2’는 세계 최초로 마라톤을 완주하였다. 로봇이 미래 핵심산업으로 떠오르면서 오픈 AI CEO 샘 올트먼과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미국 AI 로봇 스타트업체인 피지컬 인텔리전스에 투자하였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생성형 AI 기능이 빠른 속도로 개선될수록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 비슷할 정도로 진화되어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전 세계 각지에서 많은 기업이 휴머노이드 로봇산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어 이 시장은 글로벌 테크기업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한국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연구개발도 중요하지만 빠른 속도의 상용화 작업이 더욱 시급한 때이다.
최근 찾아보는 정보와 이슈는 거의 대부분 한 가지로 수렴된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언론 분야도 마찬가지다. AI가 저널리즘 도구로서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부터 AI에게 위협받는 언론산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까지 다양한 얘기가 펼쳐지고 있다.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 정확하게는 웹이 언론에 가져다준 변화보다 더 큰 충격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전 변화가 뉴스 유통에 집중돼 있다면, 이번은 뉴스 생산이다. 언론사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언론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AI는 벌써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AI로 만든 콘텐츠로 인한 오보 사례는 증가하고 있다. 허위조작정보의 유통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AI 이용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AI를 온전히 도구로 활용해 생산한 뉴스도 안심할 수 없다. 개발 단계에서 개발자가 의식하지 못했던 또는 걸러내지 못했던 편향이나 차별이 반영됐을 수도 있다. AI가 정확하지 않거나 사실이 아닌 정보를 만들어내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은 폐해가 크다. 컴퓨터가 스스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학습하는 딥러닝(deep learning) 수준의 AI에서 인간이 검증할 수 있는 영역은 많지 않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AI 기술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AI 윤리를 강화하는 추세다. 국제기구나 각국은 물론이고 빅테크를 비롯한 IT기업도 AI 윤리 원칙이나 활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칙이 있는데, 공통적인 것은 대체로 인간중심성, 개인정보보호성, 안전성, 책임성, 공성성, 신뢰성, 투명성 등이다. 특히 최근 가장 강조되는 원칙은 인간중심성이다. AI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데 있어 인간의 윤리의식과 도덕적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윤리의식과 도덕적 판단은 결국 인권 보호와 관련 있기에, AI 개발과 활용에서 인권 보호를 첫 번째 목적으로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언론의 AI 윤리 역시 인간중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작년 12월 발표한 ‘인터넷신문의 인공지능 활용을 위한 기본원칙’에서 첫 번째는 ‘인간 중심’이다. “인공지능은 언론인의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 제작과정에서 보완적인 수단으로서 활용되어야 한다. 즉, 인공지능 기술은 언론인의 관리․감독 하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작년 11월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AI와 저널리즘에 대한 파리 헌장’(The Paris Charter on AI and Journalism)에서도 부각된 것은 인간중심의 윤리다. “언론매체와 언론인이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은 언론윤리를 따라야 한다.”가 첫 번째 원칙이고, “언론매체는 인간 판단을 우선시해야 한다.”가 두 번째다. 아이러니하게도 AI 시대에 언론 현장에서 강조되는 것은 인간 언론인의 역할과 언론윤리다. AI가 언론인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사라진 것을 방증한다고 안도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저널리즘의 AI 활용을 장밋빛으로 전망하기에는 언론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언론인이나 언론매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집중되는 곳은 결국 윤리의식과 도덕적 판단이다. AI 시대에도 언론윤리 회복을 통한 저널리즘 복원을 말할 수밖에 없다.
수원화성 축성이 끝난 지 228년 만인 2024년 11월 23일, 그들의 이름이 불려졌다.(경기신문 25일자 7면, ‘수원화성 축성 장인 정신 기리며…위패 봉안 문화제 성료’) ‘이자근노미’ ‘노차돌’ ‘김개노미’ ‘전광세’ ‘쇠고치’…수원화성 축성 당시 목수, 석수, 미장이, 와벽장이, 대장장이, 개와장이, 화공, 톱장이로 일했던 민초 장인(匠人)들의 이름이다. 많은 수의 장인들은 이름이 없이 ‘큰놈(大老味)’ ‘50에 낳은 애(五十童)’, ‘기다란 녀석(麒麟金)’ 등으로 장인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이름이 없었기에 화성 축성현장에서 등재된 이름이 많았을 것이라고 화성연구자들은 추정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는 화성 성역 모든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화성성역의궤’엔 이 역사적인 공역에 참여한 장인 1821명과 함께 화성성역소의 관리직 376명 등 2197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1796년 화성축성이 완료된 지 228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관광명소가 되어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지만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에 (사)화성연구회가 나섰다. 화성연구회는 1997년 12월 ‘누구보다 화성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모여 창립한 단체다. 역사학자, 언론인, 화가, 사업가, 사진작가, 교사, 교수, 건축전문가, 문인, 전통무예연구가, 연극인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화성 바로알기 강좌’, ‘국가유산 모니터링’, ‘유산 지킴이’ 등 화성 바로 알리기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화성의 사당인 성신사 터를 조사, 푯말을 세우고 고유제를 지내면서 수원시에 복원을 건의, 성신사 복원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정기학술회의와 화성 관련 자료 발굴과 연구 등 그간의 발표를 통해 축적한 논문과 자료는 화성의 바람직한 보전과 화성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의 보존·관리, 학술·연구, 봉사·활용 등 각 분야의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아 2007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국 문화재 지킴이대회도 두 차례나 개최했다. 화성축성의 최고 공로자이지만 그 이름이 잊혀진 것을 안타깝게 여긴 전 화성연구회 이사장인 김충영 서각가가 이들의 이름을 명패에 새기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원화성 축성 장인(匠人) 명패 봉안문화제’를 열게 된 것이다. 화성연구회가 나서자 대한불교 (재)선학원 팔달사와 수원시상인연합회가 뜻을 같이 했다. 그리하여 지난 23일 잊혀진 장인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넋을 기리는 이색적인 행사를 열었다. 팔달산에 있는 성신사에서 고유의식을 행한 뒤 화성행궁 화령전으로 내려와 정조대왕에게 고하고 명패를 앞세워 공방길을 거쳐 팔달사까지 취타대와 함께 거리행진을 했다. 팔달사에서는 봉안문화제가 열렸다. 장엄했다. 김우영 시인의 시 ‘그대들 비록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였으나’ 낭독에 이어 팔달사에서 마련한 바라춤 공연과 장인들의 안식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 의식이 이어졌다. 최호운 화성연구회 이사장은 “화성이 있음으로 오늘날 수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도시가 됐고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됐다”면서 “수원화성 축성 장인(匠人) 명패 봉안문화제는 화성을 만든 장인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해주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각소 팔달사 주지스님의 이야기도 수원시가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스님은 “명패 관리에 성심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한 뒤, “수원시에서도 많은 관심을 두기를 바란다”고 했다. 수원시가 이분들의 명패를 모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뜻이다. 화성축성 장인들의 명패를 모실 수 있는 건물이 필요하다. 지금은 명패 수가 적기 때문에 임시로 팔달사 용화전에 모셨지만 앞으로 500개, 1000개, 2000개가 넘는다면 별도의 기념관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의 아름답고 절실한 소망이 결실을 맺기 바란다.
할머니들이 만학도로 글을 배워 졸업식을 하는 뉴스를 가끔 보게 된다. 여식이 글을 배워 뭐 하겠냐는 부친 말씀에, 전쟁으로 인한 난리 통에, 헐벗고 못살았던 시절 탓에 글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오신 할머니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가족 뒷바라지에 자식 다 키우고서야 학교를 다니시며 드디어 글을 깨쳤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는 그 감격은 또 어떠했을까. 이제는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결정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2022년 11월 30일 등장한 챗GPT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산업이 차원이 다른 새로운 변화를 맞게 하였다. 오픈AI의 챗GPT는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의 일종이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거나 대체하여 특정 작업을 수행하게 하는 것인데 비해, 생성형 인공지능(AI)이란 입력된 데이터를 학습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채 2년도 되지 않은 동안 챗GPT는 GPT-4, GPT-4터보에 이어 GPT-4o까지 세 차례나 성능을 올리며, 텍스트, 이미지, 음성, 동영상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정보를 함께 처리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멀티모달(Multimodal)이 되었다. 딥러닝 기술과 거대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생성형 AI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문서를 작성해줄 뿐만 아니라 디자인, 광고, 예술 등 영역에서 창작 활동도 펼치게 되었다.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게 도와주는 이런 AI비서를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난 13일부터 3일간 열린 ‘2024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에서도 AI가 실생활과 행정에 적용된 사례에 관심이 쏟아졌다. 민간기업, 중앙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131개 기관이 부스를 열었는데, 행정안전부의 ‘AI행정비서’, 특허청의 ‘AI기반 특허심사·심판시스템’, 공주시의 ‘드론을 이용한 배송서비스’ 등이 주목을 받았고, 환경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AI를 활용한 홍수 안전망 구축’이 대상으로 뽑혔다. 이는 AI를 활용해 하천 수위 변동을 빠르게 예측하고, 운전자가 홍수 특보 발령 지점에 진입하면 내비게이션으로 경고를 보내는 시스템이다. AI는 이렇게 우리 삶에 스며들어, 우리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빛미디어 의장이었던 박태웅은 인공지능 분야의 급속한 변화에 맞서 ‘AI 리터러시’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자 「박태웅의 AI 강의」(2023)를 출간했는데, 그 개정증보판을 1년 만에 다시 낸 것을 보면 AI 분야는 정말 급변하고 있다. 리터러시란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글을 알지 못해 힘들고 서러웠던 것처럼, 이제 AI를 모르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말, ‘AI 리터러시’란 우선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알고, 그리고 인공지능을 잘 이용하며, 그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고,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 하겠다. 내년 신학기 AI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학습 능력에 따른 디지털 기반의 교과서로 맞춤형 교육시대를 열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며,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더 떨어지고, 집중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입장이다. 이제 교실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교육이 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도 있다. 박태웅은 그의 저서에서, 지금까지 도구는 “쓰는” 것이었는데, 인공지능은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 할 때 가장 큰 효용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AI와 “함께” 하려면 먼저 AI가 무엇인지를 기술적, 과학적, 인문학적으로 알아가는 ‘AI 리터러시’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삶은 B와 D 사이의 C”라고 했다. 여기서 B는 탄생(Birth), D는 죽음(Death), 그리고 C는 선택(Choice)을 의미한다. 삶은 이 간결한 언어유희처럼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날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고, 때로는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좋은 선택"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선택 이후의 우리의 태도와 노력이다. 물론 선택의 결과가 언제나 만족스럽거나 이상적일 수는 없다. 어떤 선택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음을 후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나간 선택을 두고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며 상상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고, 또 그 대안이 더 나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선택한 길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다.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삶에는 종종 자의가 아닌 선택도 존재한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찾아오는 경우다. 의무적으로, 혹은 외부의 압력으로 시작된 선택에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우리의 성장을 결정짓는다. 자의적이지 않은 선택에도 "그래도 잘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것은 성숙한 어른이 가져야 할 자세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간이 흐르면 그런 비자발적 선택이 우리 삶에 유익한 경험이나 발전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배우로서 이런 경험을 한다. 올해 감사하게도 많은 작품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지만, 동시에 여러 일정을 조율하며 포기해야 했던 작업들도 있었다. 선택한 작품에 전념하면서도 종종 놓친 기회들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느끼는 것은,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했느냐"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일을 해냈느냐"라는 것이다. 주어진 역할이나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결과는 언제나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혹은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루었느냐가 아니고 그것보다는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선택할 때 그 일이 성공적일지, 옳은 일인지 고민하기보다, 그 일을 어떤 태도로 해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선택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만, 마음가짐은 그 방향을 빛나게 만든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의 결과는 불확실하고, 때로는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선택 이후의 태도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삶의 질은 그만큼 더 높아질 것이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삶은 죽기 전까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선택이라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가짐을 정하는 것이다. 선택은 불완전할 수 있지만, 우리의 태도는 완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올해 2분기 임금 근로 일자리 중 20대 이하(10·20대) 신규 채용 일자리가 전년 대비 2018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적은 수치로 나타났다. 인구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청년 신규 일자리 감소는 지나치게 급격한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사회적 안정과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차원에서 청년 일자리 절벽 심화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상황을 반전시킬 적극적인 정책 투입이 절실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임금 근로 일자리 중 20대 이하(10·20대) 신규 채용 일자리는 145만 4000개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만 6000개(-8.6%)나 감소한 것이다. 신규 채용 일자리가 급감하면서 전체 임금 근로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20대 이하 임금 근로 일자리는 305만 9000개로 1년 전(319만 2000개) 대비 13만 4000개나 줄었다. 이 역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소치다. 내수와 직결된 도소매업의 경우 코로나19 때보다 청년 새 일자리가 더 적었다. 제조업과 건설업, 숙박음식점업 등에서도 감소세를 보였다. 제조업의 20대 이하 신규 채용은 지난해 2분기 27만 8000개에서 올해 2분기 25만 6000개로 감소했다. 건설업에서도 같은 기간 9만 9000개에서 8만 9000개로 줄었다. 도매 및 소매업은 22만 1000개에서 20만 6000개로 줄어 역대 최소를 기록했고, 숙박 및 음식점업도 22만 7000개에서 21만 7000개로 줄어들어 감소 전환했다. 30대에서도 신규 채용 감소 추세는 유사하게 나타났다. 올해 2분기 30대 임금 근로 일자리는 신규 채용 일자리는 107만 개로서, 지난해 동기(113만 5000개)보다 감소했다. 올해 2분기 15∼29세 청년층 인구는 817만 4000명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4만 1000명 감소했다. 경제활동인구는 12만 9000명(-3.1%), 취업자는 13만 7000명(-3.5%) 각각 줄었다. 20대 이하 임금 근로 신규 채용 일자리 감소율은 이보다 2배 이상 높은 –8.6%였다.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젊은 세대는 교육을 마치고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에 많은 압력과 고민을 겪는다. 그러나 실제로 일자리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렵고 경쟁이 치열한 현실이다. 이에 따라 청년들은 안정적이고 보장된 일자리를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맞닥트린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이 높은 이유로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활동참가율을 든다. 예를 들어,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경제활동참가율과 더불어 사회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젊은 세대가 직업을 찾는 데 더 유리한 환경을 누리고 있다. 반면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여전히 높은 것은 기본적으로 일자리가 적고, 구직과 창업을 위한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안정적이고 보장된 일자리를 갖게 되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가계수입의 증가로 이어지고 소비를 활성화해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트레스와 우울감, 불안감 등의 정신적 문제를 겪기도 한다.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사회적인 갈등과 불평등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청년 일자리가 넘쳐나는 사회를 구축해야 할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지금처럼 신규 청년 일자리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현상은 국가 경제의 비상 국면을 암시하는 지표다. 청년이 일할 자리를 새롭게 생성하지 못하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을 것인가. 중앙정부와 지자체, 기업, 사회 전반에 걸쳐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으뜸 책무다. 청년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실을 방치해선 안 된다. 각성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단테의 ‘신곡’은 인간이 벌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이 총집결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옥편(地獄篇)에서는 이 세상에서 지은 죄로 인해 각종 벌을 받는 영혼의 군상들이 얼마나 엽기적인 고통과 공포에 빠지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제3 지옥에서는 탐욕과 분노의 죄를 지은 이들이 눈과 비와 우박이 저주처럼 줄기차게 쏟아져, 어둡고 악취가 나는 더러운 진흙의 늪에서 고통을 당한다. 머리가 셋이나 달리고 꼬리가 뱀의 형상을 한 괴물 첼베로스가 그 지옥을 벗어나려는 탐욕의 망령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 삼킨다. 탐욕이란 악마와 악취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 그럴수록 헤어날 수 없는 것, 벗어나려고 할 때는 이미 끔찍한 파멸의 죽음을 만나는 것, 탐욕과 분노의 속성이 지옥의 벌로 현신해 있는 것이다. 제4 지옥은 인색한 자와 방탕한 망령이 벌을 받는 곳이다. 수많은 무리들이 세찬 물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떠내려가며 고함을 질러대고 우글거리는데, 그 험한 지옥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색했던 망령들과 방탕했던 망령들이 두 패로 나뉘어 무거운 금화 주머니를 가슴으로 굴려서 옮기는 일을 무한정 반복하며 서로 욕하고 싸운다. 인색함과 방탕함이 모두 돈의 노예가 됨으로 인해서 생기는 죄임을 이 벌이 입증한다. 또 어느 지옥에서는 몸뚱이가 여러 갈래로 찢어진 망령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 격렬하게 싸우는 벌을 받는다. 마호메트의 망령도 이 지옥에 와 있다.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몸이 찢어져 있고, 내장까지 갈기갈기 찢어져 덜렁거린다. 이 지옥에서는 온갖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죄를 지은 망령들이 고통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찢어지고 갈라지고 쪼개어진 육신을 갖고 다닌다. 어떤 망령은 목 없는 몸뚱이로 나타나서 무한정 걸어간다. 자신의 떨어진 머리채를 초롱불인 양 높이 들고 걸어간다. 재판에서 위증한 사람들의 벌도 가혹하다. 격노에 가득 차서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도록 한다. 위조한 사람들에 대한 벌도 무섭다. 연금술사라고 속여서 금화를 위조했던 망령들은 페스트나 문둥병에 걸려 고통받도록 한다. 신곡에서 보여주는 가장 깊은 지옥은 ‘배반의 죄’를 지은 망령들이 있는 곳이다. 신을 배반하고 악마 편으로 가 버린 ‘타락한 천사들,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 등이 모두 이 지옥에 있다. 차가운 얼음 옷에 갇혀서 고통받으며 거인 악마 루시펠에게 무참하게 뜯어 먹힌다. 이런 벌은 일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계속된다. 죄는 인간의 조건인가. 인간은 죄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가. 벌로써 죄를 씻어낼 수 있는가. 단테가 오늘의 세계를 보고, 침략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죄에 대한 벌을 형용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만 걸고, 권력 다툼 싸움질만 해대고 거짓말만 하는 정치꾼들을 죄주는 형벌을 그렸다면 어떻게 했을까. 벌을 상상하며 죄를 피하려는 상상력조차도 사라진 것 같은 세상이다.
소설 (빨간 머리앤)에서 앤은 마차를 타고 가면서 처음 본 아름다운 호수의 이름을 듣고 메슈에게 "어머나 그 이름도 어울리지 않아요. 나라면 뭐라 할까. 빛나는 호수라고 부르겠어요. 네, 참 잘 어울려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보면 알수 있어요. 나는 잘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내면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 아저씨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메슈는 "글쎄다. 아 오이묘판을 뒤집을 때 나오는 징그러운 하얀 구더기를 보면 언제나 그런 기분이 들더구나. 그 모양이 아주 싫거든..“하고 대답한다. 앤과 매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여러 감정들, 사랑에 빠지는 설레임, 환희, 혹은 막연한 불안감, 두려움으로 두근거릴 때가 있다. 그런데 이 두근거림은 일상의 감정의 표현을 넘어, 우리 몸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일 수도 있다. 두근거림은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거나 불규칙해서 발생하는데 신체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 모두에서 발생할 수 있다. 심근경색이나 부정맥 같은 질환은 두근거림을 동반 할 수 있다. 카페인 과다 섭취, 약물 부작용, 갑상선 기능 이상, 자율신경실조증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 불안장애, 공황 발작 등은 모두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유발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직장 스트레스, 경제적 압박, 대인 관계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심리적 두근거림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두근거림을 느낄 때, 몇 가지 대처 방법을 통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먼저, 심호흡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좋다. 깊고 천천히 숨을 쉬면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킬 수 있다. 들이쉬는 숨보다 내쉬는 숨을 길게 쉬는 4-7-8 호흡과 같은 이완호흡은 더욱 더 깊은 이완을 유도한다. 자율훈련법이나 점진적 근육이완요법 요가와 명상 같은 이완 기법을 통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해결가능한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그렇지 않다면 피하거나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커피, 에너지 드링크 등의 음료는 두근거림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음료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알콜은 부정맥의 상황을 악화시키므로 과음을 줄이고 증상이 지속되면 금주를 권한다. 또한,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심장과 자율신경계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생활습관의 변화에도 두근거림이 지속되거나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면, 심전도, 혈액검사, 심리적 검진 등을 통해서 원인에 대한 확인하고 이에 따른 치료가 필요하다. 이렇게 일상에서의 감정뿐만아니라 혹은 신체 혹은 심리적인 이상에서 두근거림이 발생하는데 이것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상호 작용 한다. 인간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뇌와 오장육부 모두 하나와 같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동시에 인간의 몸과 마음은 환경과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밀접히 영향을 받는다. 병리적인 두근거림의 원인은 대개는 하나이기보다는 몸과 마음 환경의 복합적인 조건이 직조되어 발생한다. 그렇기에 치유는 몸과 마음 전체에 나타나는 패턴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