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활동을 할 의지도 없이 ‘그냥 쉬는’ 청년들의 숫자가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 고질적인 ‘일자리 미스매치’ 난제를 넘어 우리 젊은이들의 ‘노동 가치개념’에 심각한 병증이 의심된다. 물론, 선진국 길목에서 나타난 ‘가고 싶은 자리는 없고, 갈 수 있는 자리는 마음에 안 드는’ 미스매치 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일하는 보람’보다 ‘노는 게 낫다’는 오염된 가치관이 독버섯처럼 자라 오르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 젊은이들의 일상은 피폐해져 가는데, 정치권은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층(15∼29세) 중 ‘쉬었음’ 인구는 44만3000명(5.4%)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같은 달보다 4만2000명 늘어난 규모다. 이 규모는 코로나19 당시보다 많았으며 같은 달 기준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놀랍게도 한국영화 중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는 그리 많은 편수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툭하면 벌어지는 역사 논란들이 영향을 줬기 때문일 수 있다. 이상한 논란에 휘말리거나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작자나 투자자를 지배할 수도 있다. 홍범도 장군의 위대한 쾌거의 독립운동 전투 ‘봉오동 전투’(2019)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절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이다. 이 영화를 요즘 같은 때에 다시 본다면 어떨까 싶다. 영화 ‘파묘’가 아무리 일부에서 반일 좌파적 영화라며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라는 식으로 떠들어 댄다 한들 관객 천만을 훌쩍 넘기는(11,913,519명) 대성공을 거둔 것은 어리석은 정치가 역사를 놓고 ‘대중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정부와 국방부는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는데 홍..
‘우리산을 푸르게 푸르게’ 이런 표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후 황폐해진 우리땅에는 나무가 사라져 민둥산이 많았다.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토사가 흘러내려 피해를 막기 위해 ‘산림녹화 사업’으로 생명력이 강하고 척박한 환경에도 강한 아까시나무를 많이 심어 빠르게 우리산을 푸르게 가꾸는데 공헌을 많이 했다. 우리가 아카시아로 잘못 알고 있는 이 나무의 본명은 아까시이다. 아까시나무는 초여름 10일 이상의 꽃을 피어서 많은양의 꿀을 얻게 해준다. 우리나라 꿀의 80%가 아까시나무에서 얻는 최고의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며칠 전 뉴스에서 사라지는 ‘산림녹화 주역’ 아까시나무의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쓸모없다는 이유로 나무를 마구 베어 내 30만 헥타르가 넘던 것이 30년 새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양봉산업..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폭염 현상으로 온 국민이 지쳐가는 가운데 말이 안 되는 ‘열대야 마라톤’ 무더기 탈진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 17일 하남시에서 진행된 한 마라톤대회에서 다수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수십 명이 탈진해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정신이 혼미할 만큼 찜통더위가 혹독한 날에 참으로 한심한 토픽이 아닐 수 없다. 주최 측의 무책임 행태는 말할 것도 없고, 안전사고에 대해 이토록 무딘 관리를 해온 행정기관에 이르기까지 책임 소재를 가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마라톤협회가 주관하고 매일경제TV가 주최한 ‘2024 썸머 나이트 런’에는 지난해보다 약 2배 많은 약 1만 명이 참가해 안전사고 위험이 컸음에도 이에 대한 관리가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하남시..
몇 년 전에 우연히 철학자 데이비드 베나타의 반출생주의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철학 수업을 꾸준히 들어왔지만, 베나타만큼 비관적인 철학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반출생주의자인 그는 삶이란 너무 나쁘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인간은 번식을 중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베나타의 관점에 따르면 삶 자체가 악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 손에 손잡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진보적인 일이라고 믿는다. 반출생주의 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은 물론 느꼈지만, 동시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출산과 가족 형성, 양육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출산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아이를 위해?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생명체를 위해 출산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욕구 실현? 자연의 질서? 이러한 흐지부지한 설명도 와닿지 않는다. 대개의 인간은 번식 욕구가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번식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출산은 오로지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임신 과정의 즐거움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가족을 꾸리고 싶어서. 일종의 자기만족과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다. 더불어 최근 들어 느끼는 바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대한 로망도 대중적으로 잘못 심어진 것 같다. 출산과 양육은 여성에게 (특히 동양인 여성에게)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결혼하여 임신하기 전에는 임신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특히 임신 초기에는 임신과 관련된 수많은 건강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임신에 대한 교육 수준이 위험할 정도로 낮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베나타의 반출생주의 사상에 더 포용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임신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은 차마 못 하겠다.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반출생주의가 논하는 몇 가지 관점들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동의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인생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쾌락과 즐거움을 능가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아이를 낳고 싶다면 어떤 동기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가? 묻고 싶다.
이 더위에 난 꽃이 피었다. 이른 봄에 분갈이를 해서 그럴 것이다. 먼저 올라온 꽃대는 시들해졌다. 난을 선풍기 옆으로 앉히고 차분히 들여다본다. 꽃은 꽃인데 난 꽃이라서인지 코와 눈과 가슴이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신석정 선생의 수상집 ‘蘭草 잎에 어둠이 내리면’을 펼쳐본다. 선생님은 한복을 곱게 입고 뿔테안경을 쓴 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시는데 책상머리에는 큼직한 난 화분이 놓여 있다. 그 사진 우측 아래는 작은 글자로 ‘그윽한 서실에서의 저자’라고 새겨져 있다. 책장을 넘기니 ‘서시’로써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라는 시가 있다.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릴 때// 그때 나는/ 노을이 흔들리는/ 언덕에 앉아 있었다.// …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이다’ 에머슨의 글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나는 책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괴테는 ‘나는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인류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의 영역일지라도 인류를 번영시킨 것은 책이 아니겠냐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멈추지 않는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을 쌓아온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주인공들도 독서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라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가끔 뒤돌아 볼 때가 있다. 첫째는 생계유지 형으로서 자립을 위한 사회적 위치와 금전 욕구의 충족적 시기가 있다. 다음은 외부지향형으로서 성공지향과 존경과 지위를 목적으로 하는 출세의 시기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내부지향형으로서 자신의 성숙과 자아실현이요, 삶의 최후의 목적을 위한 영혼의 충전과 관리 문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생계지향형 이전부터 너무나 지치고 힘겨웠다. 태어날 때부터 외로웠고 슬펐다. 청소년시절에도 한 눈 팔 겨를이 없었다. 내게 낭만은 없었다. 어머니를 껴안고 울고 싶을 때도 많았다. 세상에 소통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비하하고 자책하며 지냈다. 정서적 지도도 잘못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불혹의 나이 때부터인가 ‘모든 잘못의 원인을 자신에게만 돌리지 말라’는 스스로의 언어를 들었다. 사실이 그렇다. 지금까지 세상사는 맛이 출세지향적인 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철학과 인문학적 공부가 없었다면 나는 오늘 아침 난초의 꽃과 그 향기를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잘 먹고(비싼 고기), 잘 사는 게(비싼 집, 고급승용차) 그저 이런 거라면 동물세계의 그저 그런 것이겠지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찾아가는 길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 속에서 나를 위로하며 살기로 했다. 지칠 때, 서러울 때는 마음 가다듬고 책을 읽으며 좋은 말씀은 새기며 내 영혼을 충전해 왔다. 속세를 떠나 울고 싶을 때는 높은 산에 올라 하늘 가까이 가서 기도했고, 통곡의 벽 앞에 서보기도 했다. 한여름 깊은 산 숲의 속살에 안기면 뜻하지 않는 생각과 느낌이 주어진다. 세상사는 맛을 제 맘대로 해치우는 데 두는 권력형 인간과 자본가에게 둘 것인가. 아니면 영혼의 스승 같은 분들이 난초 앞에서 시를 쓰며 인격의 향(香)을 고민하는 멋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때 하늘을 보았다. 순간 세월의 하늘 위로 한 줄기 멋진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지난 14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옛 경기도지사 공관인 도담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사람중심경제(휴머노믹스) 실천을 위한 임기 후반기 중점과제인 4개 경제 분야 신규 사업을 설명했다. 김지사가 밝힌 임기 후반기 중점 과제는 기회·돌봄·기후·평화 경제 등 4개 분야다. 기회경제는 반도체 등 신성장 클러스터 조성, 투자유치 100조+, 기회소득 확대 등으로 주 4.5일제, 일자리 0.5&0.75잡 등 신규 저출생 노동시간단축 정책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돌봄경제’는 가족돌봄수당을 도입하고, 국공립어린이집을 확충하는 한편 경기도 SOS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국가 간병지원체계를 견인하겠다는 내용이다. ‘평화경제’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와 경기북부 대개발을 신속하게 추진한다는 내용으로 8월 31일까지 중앙정부의 주민투표 의사가 없으면 경기도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두 경기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정책들이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여름이 길어지고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지금 김 지사가 발표한 ‘기후경제’에 관심이 간다. 기후경제는 경기 RE100으로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를 실험하고 기후위성 발사, 기후보험 가입 등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김 지사는 스스로 ‘기후도지사’임을 내세우고 있다. 공공·기업·도민·산업 4대 분야의 ‘경기 RE100 비전’을 선포하고 우리나라 최초로 ‘기후변화 플랫폼’을 구축한 바 있다. 김 지사는 신규프로젝트로 공공주도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인 ‘경기 RE100 펀드’, ‘경기 기후위성 발사’, ‘기후보험 가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RE100 펀드는 도내 주차장, 도로 유휴부지, 자전거길, 대학교 부지 등의 미활용 국·공유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한 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은 RE100기업에 공급하면서, 발전 수익 일부를 펀드에 참여하는 도민들에게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기도주식회사에 재생에너지 전문 특수목적법인(SPC)을 별도 설립, 발전소 건립과 펀드 운용 등 사업을 맡길 계획이다. SPC에는 지역 에너지협동조합, 시군 산하기관, 금융기관 등도 참여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또 시화호 일대를 재생에너지 단지로 전환하는 RE100특구를 조성한다. 아울러 경기RE100 정원 조성, 공용전기요금제로아파트 등의 사업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RE100은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전 세계적 캠페인으로 도는 지난해 4월 경기 RE100을 선포했다. 경기 RE100 목표는 △경기도가 선도하는 ‘공공 RE100’ △수출 장벽을 넘어서는 ‘기업 RE100’ △기회소득을 창출하는 ‘도민 RE100’ △에너지 융합 미래 모델 ‘산업 RE100’ 등 4대 분야다. 이로 인해 지난해 전국의 신규 태양광 설치가 전년 대비 8% 감소했음에도 경기도는 18%나 증가했다. 세계에서 18번째, 국내 3번째 이클레이(ICLEI-세계지방정부협의회) ‘100% 재생에너지 도시네트워크’에도 가입했다. 윤석열 정부가 재생에너지 목표를 축소시키면서 지난해 경기도 기준 중앙 정부의 예산은 40%나 감소했다. 그러나 경기도는 관련 예산을 200% 올렸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화에 앞장서는 경기도를 응원한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나치스의 계관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대한 해석론을 배경으로 나온 말이지만, 지난 한 세기 헌법학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되다 보니, 이제는 아무나 갖다 쓰며 아무 말이나 하는데, 이 글도 그런 글 중 하나다. 주권자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면, 주권자가 되고 싶은 주권자 지망생들이나 주권자 호소인들도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예외상태라고, 예외상태에 필요한 예외적인 조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싶을 것이다.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안’, 일명 “25만 원 지원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5만 원 지원법”은 법률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 헌법에 반하는 처분적 법률이고, 권력분립의 원리를 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처분적 법률이 불가피한 상황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처분적 법률이 예외가 아닌 정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민주당은, 지금이 민생회복을 위한 예외적인 조치가 필요한 ‘예외상태’인데, 정부가 이를 방기하고 있으니, 우리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로 나서겠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25만 원 지원법”도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다. 대통령은 이미 양곡관리법, 간호법, 방송법, 50억 클럽 특검법, 도이치모터스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채상병 특검법, 방송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화 이후 헌정사에서 거부권의 행사는 ‘정상’보다는 ‘예외’였다. 노무현 정부가 4번, 이명박 정부가 1번, 박근혜 정부가 2번 행사했을 뿐이다. 헌법전에 적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부권은 행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관례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대통령은 지금이 거부권 행사라는 특단의 조치를 연거푸 감행해서라도 저지해야 하는 입법부 폭주의 ‘예외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슈미트는 입법부와 행정부, 의회와 대통령의 대립 구도를 전제하면서, 대통령이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로서 적극적으로 결단해야 할 것을 암시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이든 히틀러 총통이든 누구든 그 역할을 수행해, 끊임없이 토론만 하고 아무것도 결단하지 못하는 의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슈미트의 눈에 비친 바이마르는 토론만 하고 아무것도 결단하지 못하는 무력한 공화국이었다. 오늘날 우리 공화국은 이편이나 저편이나 토론은 내던지고 앞다투어 예외상태를 선언하며 결단하느라 바쁘다. 다들 슈미트주의자고 다들 결단주의자다. 토론을 한 기억도 없는데 토론은 끝났다고 저쪽 이야기 더 들을 필요 없다고 이제는 결단뿐이라고 예외적 조치의 총동원이 불가피하다고 선언한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 진정한 주권자는 예외상태가 아닐 때는 예외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자가 아닌가.
AI(인공지능)시대 도래에 발맞춰 조직을 개편해 AI국을 신설한 경기도가 관내 시·군들과 함께 시행 중인 관련 사업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다. 지자체 사업의 홍보 부족, 참여율 저조 등 고질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들고 있는 AI가 민생의 질을 좌우할 핵심 변수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경기도의 AI 사업이 도민 모두의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섬세한 방향 선택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경기도는 지난 6월 조직개편안의 경기도의회 통과로 ‘AI국’을 신설했다. AI프런티어사업과·AI산업육성과·AI미래행정과·AI데이터인프라과 등 4개과 규모의 AI국은 AI시대가 가져올 혁신을 선도하기 위해 도민 서비스 발굴, AI클러스터 조성, AI전문인력 양성, 데..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2022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진지 일색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음으로 비로서 해방되었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집도 나름 맛집이 된 이유가 있듯 출판보다 판매가 어려운 도서 시장에서 베스트셀레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죽음’과 ‘해방’으로 요약시킨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골 풍경과 전남 사투리가 어울리는 문체가 좋아서일까. 이 책을 읽고 ‘죽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해방, 죽음은 고통이지만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희망을 쓰고 싶어진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잃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싸웠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한 사람들, 빼앗은 자에 붙어 영달을 꾀하지 않고 죽음으로 항거한 사람들을 선지자, 애국지사라고 한다. 이들에 희생으로 오늘의 국가가 존재함으로 8월 15일을 국가 공휴일인 ‘광복절’로 기념한다. 그러니 8월 15일은 빼앗겼던 시간을 다시 찾은 해방의 날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아직 형태도 가지지 못한 신생아 국가는 허약했다. 검증된 미래세계가 없었기에, 형제가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는 전쟁으로 남북은 분단되었다. 그리고 이념으로 인한 갈등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상흔을 그린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진지하게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아버지는 자신을 ‘광복’ 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음으로 비로서 해방을 얻었다. 해방은 되었으나 ‘광복’을 이루지 못한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으로 항거한 애국지사가 꿈에도 바랐던 소원은 나라의 독립이었다. 그러나 반세기 넘도록 남북은 분단되었고, 분단되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북한학을 전공한 나 자신도 북쪽을 잊고 살고 싶어진다. 정치적 계산만 하는 국가가 불만스러워 관심을 덜어보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북쪽 출신이다. 올해 대통령의 8월 15일 기념사에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도 궁금하다. 일방적인 선언 같은 것은 없으면 좋겠다. 나도 북쪽 주민도 잘사는 그런 미래가 있는 메시지가 나오면 좋겠다. 해방은 되었으나 개인도, 국가도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불편하게 살고 있다. 가장 힘든 사람은 전쟁으로 생겨난 이산가족, 그리고 1990년대 고향을 떠난 북한이탈주민이다. 완전한 광복을 이루지 못한 해방은 갈등의 불씨가 되어 개인을 묶어 버린다. 79년전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선언으로 패망을 선언했듯 개인과 국가를 묶어버린 불편함이 올해 대통령의 기념사를 통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전봇대에 머리를 박은 아버지의 죽음이 해방이 되는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