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35도가 넘는 폭염에 한반도가 펄펄 끓는 요즘이다. 덕분에 주말동안 에어컨에 의지해 집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하(夏)면’에 들어갔다. 계획한 일은 전혀 하지 못하고 내내 유튜브와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요즘 주로 유튜브에서 시청하는 영상의 주제는 ‘여행’과 3040세대의 ‘이른 퇴직’ 혹은 회사의 눈총과 최저시급도 감내하며 버텨내는 50대 이상의 ‘직장생활 분투기’다. 관련 영상을 보며 알게 됐다. 현대인에게 직장생활과 퇴직, 여행은 겉보기엔 다르지만 하나로 이어진 ‘이음동의어’라는 사실을. 조기은퇴를 꿈꾸던, 장기근속을 원하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지속하고 싶어 한다. 단지 그것을 직장을 통해 실현할지, 직장을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유지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직장생활이 자신에게 해답이 아님을 깨달았으나 무엇을 해야할지 답을 찾지 못한 사람은 돌연 사직서를 내고 자아를 찾기 위해 여행길에 나서기도 한다. 아니면 정년을 채워 퇴직에 성공한 이들은 일에 매진하며 살아온 지난날 자신에게 보상을 주듯 한가로이 여행하며 노후를 보낸다. 유튜브에서 인기있는 주제인 <여행>, <이른 퇴직>, <늦은 나이의 직장생활>을 보면서 이같은 유사점을 발견했다. 통계청이 지난 6월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15~64세 고용률은 30대 등에서 상승했으나, 50대 등에서는 하락했다. 실업률은 30대와 40대 등에서 상승해 1년 전보다 0.2%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지난달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도 발표했는데, 55~79세 고령층 인구는 1598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50만2000명 증가했으며, 이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년 대비 0.4%p 오른 60.6%로 역대 최고치였다. 고용률도 0.1%p 늘어난 59.0%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고령화를 지나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불안정한 직장 생활과 노후 걱정에 미래를 저당잡힌 각자도생 사회에 살고 있다.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가 나의 미래를 책임지기는커녕, 예상보다 빨리 이별을 고하는 세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적 자립과 조기 은퇴’를 뜻하는 ‘파이어(FIRE)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파이어(FIRE)족이란 ‘젊었을 때 극단적인 절약으로 노후 자금을 빨리 확보해 40대에는 퇴직하려는 이들’을 뜻한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게 퇴직일까? 어차피 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일 또는 회사라면, 그보다는 자신이 사랑하고 잘할 수 있는, 평생 ‘업’을 찾으려는 시도가 ‘파이어’로 드러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어쩌면 은퇴란 평생 하고픈 나만의 ‘업’을 만나려는 일은 아닐까.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을 위해.
11세기 교황은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하여 유럽 가국의 영주들에게 전쟁의 필요성을 호소하였고 이렇게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약 200년 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당시 영국의 많은 영주들 역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당시 이들이 관리하던 토지를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양도하고 토지를 양도받은 친구는 이를 관리하여 전쟁에 나간 영주의 자녀와 배우자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던 것이 현대 신탁제도의 연원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신탁제도는 영미권 국가에서는 보편적인 재산관리 방식의 하나로 자리잡았고,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노인들의 경우 유언을 대신하여서 신탁이 이용되기도 하고,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경우 부모 사후의 자녀의 경제적 자립을 위하여 신탁을 설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신탁은 위탁자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거나 사후에도 위탁자의 의사에 따라 수탁자가 신탁재산을 관리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현재 후견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생면부지의 노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가치관이나 선호를 가지고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필자와 같은 전문후견인들은 피후견인의 가치관이나 선호 보다는 일반적인 사회통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후견사무를 수행하기 쉽습니다. 일례로 필자는 해외에 거주하는 자녀들에게 부과되던 세금을 피후견인의 재산으로 내는 문제로 법원의 허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피후견인에게 치매가 발생하기 전 피후견인이 늘 자녀들의 세금을 부담하였던 사실을 고려하면 피후견인의 추정적 의사에 기초하여 이를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이후 법원의 후견감독이 부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후견인으로서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다 보면 금융재산의 경우 정기예금에 보관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다소의 투자위험이 있는 금융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만약 치매가 발병하기 이전에 신탁계약을 통해 본인의 재산의 사용처나 관리방법을 정해두었다면 재산은 보다 더 유연하게 관리될 수 있었을 것이고, 자녀의 생활비나 손자의 교육비로 지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신탁을 통해 특정 자녀에게 다소 많은 재산을 물려주게 되면 자녀들간에 불필요한 유류분 분쟁이 발생하는 것 역시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탁은 안전한 노후생활을 준비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 중에 하나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탁은 부유층이나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알려져있습니다. 실제 과거 금융기관들은 수억 원 이상의 자산을 맡기는 경우에만 신탁설정이 가능하였으나 최근에는 그 문턱을 많이 낮추어 중산층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상품들을 내놓아 그 저변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재산을 잘 지키는 것만큼 이를 잘 사용하여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는 것 역시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기도가 8일 안산시 선감동에 소재한 선감학원(仙甘學園) 공동묘역에서 희생자 유해발굴 착수를 위한 개토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장기간 저질러진 반인권적 만행에 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은 늦어도 한참이 늦었다. 이번 유해발굴을 기점으로 진실이 한층 더 드러나는 것은 물론 희생자들의 해원(解冤)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어두운 시절 무지몽매가 저지른 비극의 그림자를 정리하는 일은 결코 미룰 일이 아니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시굴한 분묘 35기 외에 희생자 분묘로 추정되는 150여 기를 확인했다. 경기도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해발굴 사전절차인 분묘 일제 조사와 개장공고 등을 지난 4월 말부터 지난달까지 진행했다. 도는 이번 개토행사 이후 희생자 추정 분묘에 대한 유해..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대부분의 유권자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어떤 업무를 하고 어떻게 선거를 준비하는지 잘 모른다. 이에 지난 국회의원선거에서 정당추천 선관위 위원으로서 활동하며 느낀 선거관리위원회와 그 업무의 성격 등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선관위는 ‘중립적’이다. 선관위는 말로만 외치는 중립이 아니라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선거를 흔히 전쟁에 비유한다. 전쟁에는 아군과 적군이 존재한다. 한쪽 진영에서 볼 때 중립은 야속한 존재라 출마자들은 매사에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선관위에 서운함이나 불만을 표시하지만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이 기관의 사명인 선관위는 흔들림 없이 중립을 유지한다. 필자는 이번 국회의원선거에서 선거법 위반 신고에 대한 대응, 개표과정에서 투표지 유‧무효 심사 등 모든 업무에 있어 선관위가 명확한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하고 있음을 매번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선관위 업무는 ‘확인의 연속’이다. 투표용지 인쇄 과정을 감독하거나, 선거공보 발송·투표함 이송, 우편투표 접수 등을 정당추천 위원 자격으로 직접 참관해보니 선관위의 업무 절차는 국민의 참정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한편, 선거관리 과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어 관내투표와 관외투표(우편투표)로 나뉘는 사전투표를 살펴 보면, 관내사전투표는 투표마감 후 관내사전투표함을 선관위로 이송하여 지정된 장소에 개표일까지 보관하고, 관외사전투표는 선거인이 해당 관할구역 밖에서 투표하면 우체국을 통해 회송용봉투(투표지 포함)가 선관위로 배달되어 엄밀한 절차를 거쳐 접수된다. 필자가 소속된 성남시분당구선관위의 경우 사전투표 첫째 날인 4월 5일 사전투표를 마친 후 익일에 1만 5000여통의 회송용봉투가 위원회에 배달되었고, 그 다음날에도 비슷한 수량이 배달됐다. 이후 우편투표 접수 과정에서 서너 차례 회송용봉투 수량을 반복하여 확인하였다. 이 일련의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선관위 직원들은 계속된 격무로 피곤한 몸을 부여잡고 정확한 수량 파악을 위해 최선을 다해 반복적인 확인 작업에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거일을 사흘쯤 앞두고 부정투표 현장이라며 영상과 함께 기사가 났는데 서울지역 모 선관위의 우편투표 투입 영상이었다. 해당 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정당추천위원이 절차에 맞게 회송용봉투를 투입하는 장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자세히 모르는 유권자들이 보기엔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중요한 선거 절차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충분히 안내하는 것도 선관위의 책무일 것이다. 그럼에도 선관위 위원으로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의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하며 느낀 점을 결론 삼아 말하자면, 선관위는 공명선거 실현을 위해 항상 중립적으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투명하고 정확한 선거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 '능력주의의 등장'을 발간한 이후 능력주의가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는 어떠한가? 능력주의는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문과 혈통에 의한 세습주의를 부정하고 인종, 성별 등에 의한 차별은 금지된다. 무상으로 의무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을 통해 능력이 키워진다. 경쟁으로 사회성취가 이루어지므로 능력주의는 공정의 가치가 되었다. 부와 명예는 개인의 능력과 근면의 결과이고 가난은 무능과 게으름의 결과로 이해됐다. 산업화 시기에 능력주의는 고도 경제성장의 초석이 되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를 통해 관리를 등용하던 전통으로 능력주의는 고시제도 등 각종 시험제도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공개경쟁으로 능력에 따른 사회이동(social mobility)이 가..
지금 세계 각 나라는 의료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각 나라별 의료강점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유치활동을 펼치고 있다. 환자는 물론 동반자에 대한 입국 절차도 대폭 간소화시켰고, 의료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한 서비스를 강화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지방정부들은 최첨단 의료시설, 특색 있는 의료기술과 접근성 등 장점을 앞세우며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 역시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 지원에 나섰다. 도내 외국인 환자 유치기관에 소속된 의료코디네이터의 워크숍을 지원하는 한편, 외국인 환자와 국내 병원을 연결하고 동반자들의 체류·관광을 지원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 홍보관을 운영하고 팸투어, 해외 의료인 초청 연수도 실시한다. 의료관광 인프라·전문인력 역량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통..
우연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마법 시계를 발견한다면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 몇 년 전 한 한 여대생이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마법 시계를 사용해 과거로 되돌아간 뒤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노인이 되어버린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의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는 한 할머니였습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장애를 가진 자식을 혼자 키우며 고되고 힘든 삶을 살았던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고 점차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도 가장 행복했던 과거 한순간의 기억 속으로 되돌아가 다시 살아갔던 것이었고 작가는 이것을 마법 시계라는 소재로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치매’를 가족들 또는 자식들의 입장에서 더 많이 바라본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치매 노인을 모시는 가족들의 고초나 어려움은 설명할 필요 없이 모두가 공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치매를 겪게 되는 노인의 입장에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 그들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과연 얼마나 생각을 해보았을까요? 최근에는 치매 노인과 같이 인지능력의 문제로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이들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하기 위한 임의후견제도, 사전의료지시서, 신탁, 유언 등 다양한 방법들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인 중 약 20%만이 이러한 방법들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수치는 문화적 차이를 감안 하더라도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실정과는 사뭇 다릅니다. 실제 부모가 치매로 인해 재산관리 등의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치매 노인의 재산관리 문제나 신상보호와 관련하여 자녀들 사이에 회복하기 어려운 갈등과 반목이 발생하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임의후견제도를 이용한다면 가족들 간의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임의후견계약은 질병, 장애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있거나 부족하게 될 상황에 대비하여 자신의 재산관리 및 신상보호에 관한 사무를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고 그 위탁사무에 관하여 대리권을 수여하는 것입니다. 임의후견계약을 통해 노인은 사전에 자신의 사무를 대신할 수 있는 후견인을 지정함으로써 자기 의사에 최대한 부합하는 후견 업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법원을 통해 선임된 후견감독인을 통해 후견인의 후견 사무에 대한 감독이나 평가를 받을 수 있어 후견인의 일탈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임의후견은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가정법원이나 법조계에서도 임의후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임의후견 이용 건수는 미미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 원인을 임의후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부족에서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임의후견의 당초 취지와 달리 다양한 형태의 임의후견계약들이 개발되지 않고 있고, 임의후견계약을 체결해본 전문가들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임의후견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어, 향후 수요자뿐만 아니라 공급자의 입장에서도 저변을 확대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입니다.
필자는 야구를 좋아해서 특정 팀을 오랜 기간 응원했다.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홈구장에 경기를 구경하러 갔다. 저녁 경기임에도 점심쯤에 도착해서 사고 싶었던 유니폼을 1시간 동안 줄 서서 구입했다. 지치지 않고 또 다른 이벤트를 위해 기꺼이 줄을 섰다. 이날 대략 2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평소였다면 바로 포기했을 텐데 멀리까지 왔으니 계획했던 일들을 다 해치울 심산이었다. 7월 마지막 날 여름 날씨는 그늘에 앉아 있어도 곧 땀이 흐를 정도였다. 야구단 직원이 연신 돌아다니며 몸에 이상 증세가 있으면 바로 알려 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공놀이가 뭐라고 땡볕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웃겼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대단하고 저 사람들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푹푹 찌고 습한 날씨에도 경기가 시작..
지난 6월 24일 화성시 이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의 악몽이 아직도 선연한데, 경기도 내의 공장들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빈발해 산업현장 안전불감증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안전사고나 안전수칙에 대한 주의 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공장을 운영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안전의식 고취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다. 부주의와 무감각은 반드시 비극을 잉태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명심할 때다. 지난달 28일 오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의 한 폐비닐 재활용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43시간이 지나서 이틀 뒤인 30일 오전 11시 27분께나 돼서야 완전진화됐다. 불에 쉽게 타는 폐기물이 공장 내 다수 보관돼 있었던 데다가 강풍까지 겹쳐 진압이 오래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화재로 공장 8개 동이 전소되..
사그락 사그락. 쌀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전통주 갤러리에 있으면 전통주를 홍보하거나 대외적으로 나서는 일이 참 많다. 예전에는 때때로 그런 일들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사명감을 가지고 즐기며 해나가고 있다. 우리의 전통주를 한 분에게라도 더 알리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나는 술을 빚는 일을 사랑한다. 그런 본질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내가 해내는 모든 일들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송홧가루는 봄철에 사람들에게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술의 재료가 된다. 송홧가루는 예로부터 식용으로 사용했지만 귀한 재료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접하기는 어렵다. 송홧가루는 채취하기도 참 까다롭다. 나는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송홧가루를 얻는 법을 배웠는데, 그 방법을 살펴보면 옛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먼저 송화가 반쯤 피었을 때 채취하여 3~4일 숙성시킨 후 물에 담근다. 그러면 불순물들이 밑으로 가라앉고 노란 송홧가루가 물 위에 떠오르게 된다. 그 위를 한지로 덮어놓으면 노란가루와 물이 한지에 달라붙는다. 그대로 한지를 걷어서 말리면 노란 가루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얻어지는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이런 수고로움 때문에 여전히 송홧가루는 귀한 식재료이다. 이렇듯 귀한 송화를 고스란히 모아 빚은 술이 있다. '산가요록'에 등장하는 멋진 이름을 가진 전통주, ‘송화천로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산가요록은 조선초기, 1450년대 왕실어의 전순의가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합 농서이자 요리책이다. 농업기술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있지만, 229가지의 조리법이 함께 수록에 있어 가치가 더욱 높다. 장류 만드는 법 19가지, 식초만드는 법 17가지, 김치 만드는 법 37가지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술을 빚는 법은 66가지나 쓰여있다. 그중에서도 귀한 자료로 인정 받는 부분은 온실설계법이다. 온실설계법은 서양의 온실보다 약 170년 정도 앞서는 것이었다. 2002년 KBS '역사 스페셜' 프로그램에서 직접 재현이 가능했을 정도로 정교하게 설명되어 있다. 내가 그 귀한 책에서 배워, 매년 빚는 술이 바로 송화천로주이다. 송순과 송화를 채취해 물에 넣어 진하게 끓여 쌀가루에 부어 섞는다. 된죽이 식으면 누룩을 넣고 버무려 1차로 발효시킨다. 일주일 후, 고두밥과 송화 달인 물을 추가로 넣어 2차로 발효시키면 된다. 다른 술에 비해 발효 기간이 두 배나 걸리는 이 술은, 60일 정도가 지난 후에야 걸러내어 맑은 술을 얻을 수 있다. 거기에 더 깊은 맛을 내기 위해 한두 달 더 숙성시키면 비로소 가장 완벽한 송화천로주를 맛볼 수 있다. 그 기다림에 답을 해주듯 한 모금만 마셔도 은은한 솔향기가 입안을 가득 메운다. 송화 특유의 쌉쌉하면서 약간의 떫은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푸른 솔 숲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매년 봄에 나를 찾아와주는 고고한 벗이다. 우리 선조들도 이런 느낌을 받으셨을까? 이 벗을 만나면 풍류를 즐기던 그 시절 옛 어른들과 시공간을 초월해 함께하는 기분이 든다. ‘산가요록’처럼 귀한 자료 덕분에 지금도 다양한 전통주를 만날 수 있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내 벗을 소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