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대내적으로는 ‘다문화사회’를 지향한다는데 과연 그런가.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 출신 고려인(кореец. 카레이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자. '재외동포에 대한 내국민 인식조사(재외동포청, 2023)'에서 “러시아·CIS지역동포(고려인)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항목에 대해 응답자 1,000명의 3.1%가 “매우 가깝게 느낀다”, 26.2%가 “어느 정도 가깝게 느낀다”, 50.6%가 “보통이다”, 17.1%가 “다소 이질적이다”, 3.0%가 “매우 이질적이다”라고 응답하였다. 이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우리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은 고려인을 불편해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30대의 부정적 인식(8.5%)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는 우리 사회..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버스 정류장에 다섯 살쯤 된 어린이가 두 손 포개 기도하고 있었다. 어린이는 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외출 중이었다. 어머니는 두 아들과 한여름 도로 위를 방황하고 있었는데, 어린 둘째는 더위와 피로에 지쳤는지 유아차에서 노곤히 자고 있었다. 어머니는 택시를 잡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택시는 흔드는 손에 멀찍이서 다가오다 이내 가속 페달을 밟아 신속히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어머니는 유아차가 있으면 택시를 잡을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아스팔트 도로가 지글지글 끓었다. 그렇게 택시를 몇 대 보냈다. 정말이지 지독한 여름이었다. 한탄을 외면할 수 없었던 큰아들은 어머니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럼, 버스 타고 가자 엄마.” 어머니는 유아차가 있으면 버스 기사분들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는 수 없이 집까지 걸어가 볼까 하며..
윤석열 정부 임기가 절반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매일 쏟아지는 여권발 뉴스는 마치 임기 말을 연상케 한다. 특히 수 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갈등은 역대 정권들의 임기 말에도 보지 못했던 수준의 ‘레임 덕(lame duck) 장면’이다. 레임덕 발생의 시작점은 민심 이반이다. 민심을 회복하지 못하면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권위가 무너지고, 이를 방치하면 여권 내부의 권력싸움으로 전염되어 국정동력은 완전히 상실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2016년 10월) ‘최순실 스캔들’로 국정지지율 17%를 찍으며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8월에 20%가 붕괴되면서 레임덕을 피해 가지 못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은 점점 심각해 지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
찾아낸 약(藥)은 생각이다. 오랜 실패 끝에 터득한 처방이다. 생각으로 생각을 덮고, 생각으로 생각을 지운다. 덮고 지우기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들린다는 생각마저 사라지게 된다. 아니 망각하고 만다. 들리는 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것. 도망쳐서, 들림에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내게는 그것이 기쁨이다. 들리지 않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선 쉬지 않고 생각해야 한다. 한순간이라도 생각을 멈추면 기쁨도 따라서 멈추고 만다. 기쁨이 멈춘 자리에 남는 건 소리다. 풀벌레 울음 같은 그 소리. “찌르르르.” 헤아려 보니 벌써 이년째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귀울림(耳鳴)에 시달리고 있는 게. 귀를 막으면 도리어 또렷해진다. 없는 소리를 있는 것처럼 지어내서 들려주는 녀석의 정체는 뇌(腦)다. 왜 그러는지 첨..
‘벼룩이 간을 내어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에게 푼돈을 뜯어 먹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골라 등쳐먹고 사는 독버섯 같은 부류를 빗댈 때 사용한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벼룩의 자기 제한을 검증한 이색적인 실험이 있다. 벼룩이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높이는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정도다. 그다음에는 어항의 출구를 막기 위해서 유리판을 올려놓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올라 유리판에 부딪힌다. 그러다가 자꾸 부딪쳐서 고통을 느껴 유리판에 닿지 않을 만큼만 튀어 올라가도록 스스로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히지 않는다.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오른다. 그러고 나서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경기신문은 24일자 인천판 1면 ‘헛바퀴만 도는 소각장 확충 사업’ 기사를 통해 인천의 자원순환센터(소각장) 확충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천시는 오는 2026년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를 앞두고 10개 군·구와 협의회를 통해 소각장 확충사업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시는 송도소각장이 있는 남부권(미추홀구·연수구·남동구)을 제외, 북부권(서구·강화), 서부권(중구·동구·옹진군), 동부권(부평구·계양구) 등에 소각장을 확충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민 반발로 부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는 소각장 확충사업을 군·구 주도로 전환한 이후 협의회를 구성해 소각장 확충 논의를 해오고 있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다. 시와 군·구 간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업을 떠안은 10개 군·구가 최근 민간소각장 활..
과거-현재-미래를 이르는 다른 이름인 어제-오늘-내일 중 하필 내일만 한자로 된 말이어서 늘 얘깃거리가 된다. 그 來日은 ‘온다’는 뜻의 한자 래(來)와 해(태양)를 이르기도 하는 말인 ‘날’ 일(日)의 합체다. ‘내일’을 대신할 ‘하제’란 말이 최근 젊은이들의 생활언어로 펴지고 있음을 주목한다. 순수한 우리 토박이말을 찾아 복원하는 일은 의미 있다. 이 말은 고려 때 중국 사람이 쓴 고려 말(언어) 교본(계림유사)에 명일왈할재(明日曰轄載)라는 대목을 주목하여 우리 언어학이 찾아낸 것이다. 고려시대 당시 내일(의 발음)이 ‘하제’였다는 것이 문자학자 故 진태하 교수의 연구결과다. 저 대목은 ‘고려 사람들이 명일(明日 내일)을 ’할재‘라고 하더라(曰 왈)’는 중국 사람의 기록이다. ‘할재’의 당시 중국말 발음이 ‘하제’였다는 것이 진 교수 연구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고려 때 사람들은 내일은 하제라고 했다, 즉 당시 내일 뜻의 우리말(발음)은 하제였다는 것. 소리를 표시하고자 활용한 말이니 ‘할재’의 의미를 따지는 건 의미 없겠다. 비슷한 말이 또 있다. ‘하제’와 발음이 비슷한 ‘아제’가 ‘내일’의 원래 우리말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아제 다르고, 어제 다르다.’고 읽어보면 별스런 통찰을 준다.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이 펼친 주장이다. 겨레학자 故 백기완 선생은 ‘올제’라는 말을 내일의 뜻으로 가르쳐주기도 했다. 새 소식의 뜻을 ‘새뜸’이라 하여 ‘올제 새뜸’(내일의 소식)이란 말을 언론계에 제시하기도 했다. 원래 우리말이 잊히는 것은, 우리 마음의 반듯한 본디가 그 망각의 골짜기에서 사그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까닭과 인연으로 ‘어제-오늘-하제’의 시간적 선형(線形)에 우리들 한국어 언중(言衆)은 더 주목할 일이다. 우리 겨레의 이름은 대한(大韓)이다. 이는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三韓)의 전통을 계승한 이름으로, 역사적으로 또 이웃 나라들도 우리를 그리 불러왔다. ‘큰 한 겨레’의 뜻이다. 남한(南韓)은 현대사의 이데올로기가 더럽힌 우리의 허접한 얼굴일 따름이다. 민주주의를 선택한 국가라는 뜻에서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줄여 한국(韓國)이다. 한자어라고 ‘대한’을, 또 ‘한국’을 우리말 한국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내일(來日)도 그런 취지에서는 엄연한 한국어다. ‘명일왈할재’에서 본 것처럼 중국은 ‘오늘의 다음날’을 明日이라 한다. 요즘은 명천(明天 míngtiān)이란 말이 일반적이다. 일본도 明日(아시타 あした)이라고 한다. 한국인 來日이다. ‘내일’은 한국어의 한 요소인 한자어(휘)이니. 굳이 배척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온전한 토박이말로 ‘하제’가 있으니 이를 즐겨 더 쓰는 것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하는 뜻을 한글날을 앞둔 시점에 아뢰는 것이다. 아직 국어당국은 이 대목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제를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여러 ‘하제’ 중 ‘설사가 나게 하는 약’이란 뜻의 下劑가 제일 먼저 뜬다. 우리 세상 지성(知性)의 변비(便祕)도 이만큼 심한가 보다. 내일의 뜻 하제는, (언급도) 없다. 고운 말은 쓸수록 이뻐진다. 뜻도 바로 선다. 어제-오늘-하제, 곱지 않은가?
이카로스는 다이달로스라는 아테네 출신의 건축가(이며 조각가, 발명가)의 아들이다. 다이달로스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크레타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당시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다이달로스를 환대했고,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생활 중 노예와의 사이에서 이카로스를 낳게 된다. 이후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와 간음하여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식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이달로스가 파시피에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이 괴물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미궁을 만들게 시켰다. 다이달로스는 라비린토스라는 이름의 미궁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둔다. 하지만 미궁 속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미노스 왕은 미노타..
교육부의 강도 높은 ‘종합대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학교폭력이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이다. 더욱이 ‘킥보드 셔틀’은 물론, ‘카카오톡 빼앗기’, ‘딥페이크’ 등 신종 학폭이 급증하면서 학교 사회에 번지는 폭력 문화는 점점 더 지능화, 고도화하고 있어서 한걱정이다. 이쯤 되면 처벌만을 강화하는 채찍 요법만으로는 학폭 근절은 요원한 헛꿈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 사회의 헝클어진 데카당(퇴폐·타락) 문화를 척결할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이들의 비뚤어진 가치관부터 바로잡을 특단의 대책이 갈급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 학교폭력 발생 건수는 총 6만 1400여 건으로 전년 대비 약 3500건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 경우 1만 6155건으로 학생 수가 많은..
병원에 들러 해열제와 기침약을 받아 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추석 연휴 동안 낮에는 괜찮다가 아침과 저녁이면 열이 오르고 기침하는 아이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집에 두었던 이 약 저 약을 꺼내 보이며 아이에게 먹이자 강권했다. 아직은 병원에서 받은 약이 있으니까 집에 돌아가면 병원에 가보겠다고 둘러댔다. 괜찮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번 감기는 폐렴으로 갈 수 있으니 병원을 다시 오라고 했던 의사의 말이 있었기에 속으로 걱정을 했다. 연휴 마지막 날 동네 병원은 북새통이었다.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병원에 도착했는데 아이 이름은 대기 번호 80번에 떴다. 오전 진료만 하니까 더는 접수 환자를 받지 말아야 하지 않냐는 숨죽인 소리가 접수대에서 들렸다. 대기 번호가 100까지 늘고 있었다. 복도까지 대기 환자가 서성였다. 얼마나 기다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