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대에 숱한 한국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희생당한 일본 ‘사도광산’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또다시 일본에 뒤통수를 맞았다. 일본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희생자들을 위해 매년 추도식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참혹한 피해의 당사국인 한국의 입장이 존중되는 추도식을 마련하는 것이 상식이다. 일본이 상식을 보란 듯이 깼음에도 우리 외교당국은 갈팡질팡하면서 나라의 자존심을 구겼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무려 1500여 명의 조선인이 끌려가 처참한 강제노역을 당했던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일본 정부는 2010년 이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으나 한국 정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조선인 강제 노역 전시물 설치’ 등을 약속하고 지난 7월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의 전원 동의를 얻어냈다. 일본은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는 추도식 개최도 약속했다. 그러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는 “구미의 기계화에 견줄 일본 독자 기술의 정수”라며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환영하는 입장문을 내면서도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강제노동’ 문구 대신에 당시의 생활상을 설명하는 것에 양해를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진위는 아직 가려지지 않고 있다. 추도식 개최는 국가 간 약속임에도 일본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전시물에 ‘강제’ 표현이 없는 데다가 추도식 명칭도 누구를 추모하는지조차 모호한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했다. 그야말로 어물쩍 형식적인 ‘추도식’을 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누가 보더라도 일본 정부의 진정성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일본 정부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일본 대표로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명료하게 드러났다. 추도사 내용을 두고 일본과의 이견을 조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우리 외교부는 결국 추도식 하루 전날인 지난 23일에서야 ‘보이콧’을 결정했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나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개최한 추도식에 우리 정부와 강제노동 피해자 유족들은 끝내 불참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추도사에서 “전쟁 중에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며 “종전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감스럽지만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고 언급했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강제 노역’의 진실이 명시되거나 ‘사과’의 뜻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잔혹하게 끌려와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을 위로하기는커녕 왜 희생됐는지에 대한 성격 규명조차 없이 노동자들의 영혼을 뒤섞어 두루뭉술 애도의 뜻을 밝히는 ‘쇼’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애초 한국인을 추도할 뜻이 없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추도식’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 간사한 말로 던진 속임수임이 분명하다. 분통이 터지는 건 질질 끌려가는 인상을 주는 우리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도 희생자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센터를 현장이 아닌 도쿄에 세우고 강제성도 부인해 약속을 어긴 바 있다. 연거푸 뒤통수를 얻어맞는 외교부의 무능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나. 윤석열 정부가 실용적 접근을 통해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의 회복을 위해 애쓴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선의만 믿고 막연한 기대에 의지하는 듯한 어리숙한 외교에는 실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외교는 더 이상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이 물컵의 반을 채워 화답할 것’이라더니 그런 날은 대체 언제 오나.
허위정보가 아니라면 머스크는 차기 트럼프 정부에서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의 수장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머스크가 비벡 라마스와니와 함께 과도한 정부 지출은 줄이고, 비대한 정부 조직은 구조조정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효율성에 대한 머스크의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X가 아직 트위터였을 때, 트위터의 지출 내역이 정리된 스프레드시트를 앞에 두고 직원들은 모든 항목 하나하나를 머스크에게 설명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예산 지출은 모두 삭감했고, 그의 결정에 반발하는 직원은 예산과 함께 해고당했다. 그는 예산을 ‘제로 베이스(zero base)’, 즉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예산을 덜 깎느니 많이 깎는 편을 택했다. 예산 삭감으로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후 대응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직원을 절반으로 줄였고, 외부 협력사에게 지불하기로 약속된 대금도 치르지 않았다. 트위터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도 어려움을 겪었다. 서버 비용을 줄이라며 새크라멘토 서버 연결을 끊어버렸다. 갑작스러운 서비스 중단이 잇따랐다. 정부효율부가 정부 예산을 원점 재검토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단, 머스크는 의회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트위터의 지출 삭감과 정부 예산 삭감은 결코 같지 않다. 정부 예산은 정치적 합의의 결과다. 그의 ‘효율성’은 국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예산 삭감은 이해관계자에게 영향을 미쳐 정책적 수혜 집단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예산의 수혜 집단이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머스크의 ‘효율성’은 의회, 궁극적으로 유권자의 반발을 이겨내야 한다. 정부 예산이 원점에서 검토되는 경우는 드물다. 정부 예산의 편성 과정은 점증주의로 흔히 설명된다. 점증주의는 정부 예산이 전년도 예산에 근거해 좁은 범위 내에서 증감하는 현상으로, 정책 결정자의 인지 자원이 제한된 결과로 자주 해석된다. 그러나 점증주의의 묘미는 예산을 검토하고 숙의하는 과정에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년도 예산은 사회가 예산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이 된다. 일견 점증주의는 쇄신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과거에 선호했던 것이 과연 지금도 선호할만한지 점검하는 학습의 과정이기도 하다.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알기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예산을 통으로 삭감하는 것은 민주적 합의의 가능성을 줄인다. 머스크는 X에 미국에 428개의 연방 기구가 있으나, 99개면 충분하다고 포스팅했다. 그의 살생부가 도대체 누구를 위하며, 어떤 설득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그 와중에 머스크가 수장이 될 새로운 정부 부서의 이름은 그가 아버지를 자처하는 ‘도지 코인’과 발음이 같고, 11월 5일 미국 대선 이후 일주일 만에 도지 코인의 가격은 약 197% 상승했으며, 그의 순자산은 이제 3,2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지금 혼탁(混濁)한 시대를 살고 있다. 신문·방송·영화·SNS 할 것 없이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거친 말과 혐오 표현이 난무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들 살림살이가 어렵다 보니 인심(人心)이 각박해진 것은 아닐까. “일정한 생업을 갖지 못하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無恒産無恒心)”는 맹자(孟子)의 말이 예나 지금이나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속담에도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가정·조직·기업·국가·세계 어느 곳 하나 민생(民生)이 넉넉하지 않고 미래가 불안하면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이 엇갈리더라도 내부 분위기가 좋을 때는 별다른 탈이 생기지 않는다. 기초 체력이 있거나 어느 정도의 내성(耐性)이 있는 사람은 약간 상한 음식도 너끈히 소화해내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국가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제때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더 큰 분열과 자중지란(自中之亂)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국가공동체나 민족공동체의 뿌리 자체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살펴보고 적절한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어느 시대든 내치(內治)의 근본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공동체의 의견이 항상 일치하진 않는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자주 강조되던 국론 통합도 점점 더 쉽지 않다. 대한민국과 한민족공동체의 미래와 직결된 통일문제일수록 논쟁과 대립 대신 대화와 타협, 협상과 설득,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와 공감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막연히 미래를 기다릴 수는 없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끝까지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3·1운동(1919)에서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의 입장이나 지식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선언서에 담긴 대의명분(大義名分)이나 이념·가치들이 중요했겠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 목숨 걸고 자주독립 만세를 목놓아 외쳤던 민(民)의 입장이나 독립운동사의 관점에서 보면 공약삼장(公約三章)의 행동강령이 훨씬 더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우리 정부가 지난 광복절(2024) 경축사에서 선언한 ‘8·15통일독트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관련 부서의 입장이나 전문가들의 관점에서 보면 3대 비전, 3대 추진전략, 7대 추진방안 등의 내용이 중요하겠지만 다수의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주민, 그리고 180개국에 뿌리내린 재외동포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동어반복적이다. 지금부터라도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8,500만 겨레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행동강령과 국제사회가 적극 동참할 수 있는 실천규범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느냐, 국력은 어디까지 성장하느냐, 특히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한민족공동체는 어떤 형태로 변화·발전하느냐와 같은 물음들은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재외동포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온 국민이 똘똘 뭉쳐 힘을 길러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탐내는 나라가 많습니다. 첫째도 힘이고, 둘째도 힘입니다.”라고 강조했던 도산에게 민족의 독립은 군사·외교·재정·문화·식산·통합단결,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민족공동체의 미래 역시 군사·외교·재정·문화·식산·통합단결, 어느 것 하나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민생과 내치를 여유롭고 조화롭게 하는 촉매제로서의 미래 대비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굳고 단단하고 튼튼하게 하는 머릿돌로서의 미래 개척 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경기도 건설국장 등 관계자들이 12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울 방문했다. ‘제6차 국도·국지도 건설계획(2026~2030)’에 69개 경기도 건의사업을 최대한 반영시키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는 구리~포천 민자고속도로 통행료를 인하시켜달라는 건의도 포함됐다. 구리~포천 민자고속도로는 지난 2017년 6월 30일 개통되어 구리시 토평동과 포천시 신북면, 양주시 봉양동을 연결하는 총 연장 50.6km의 왕복 4~6차선 고속도로로 국토교통부가 관리하고 있다. 이 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기존 1시간 30분이었던 서울에서 포천, 양주간의 이동 시간이 1시간 이내로 단축됐다. 하지만 통행료가 비싸다. 남구리IC에서 신북IC까지 가면 도로공사 대비 1.15배나 되는 3600원의 통행료를 내야 한다. 개통 당시 지역주민들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경기도 북부 접경지역은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수도권정비계획법,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정부의 각종 규제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민의 재산권 행사와 지역개발도 각종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통여건 또한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개통된 구리~포천 민자고속도로는 포천시, 양주시, 구리시 등 수도권 동북부지역의 중요한 교통기반이 됐다. 국가 재정이 어렵고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정부 재정사업이 아닌 민간자본에 의해 건설된 이 도로는 통행요금이 과다하게 책정됐다는 불만이 이용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주민들의 불만이 일자 지난 2019년 통행료를 3800원에서 3600원으로 200원 인하했다. 그러나 비싸다는 항의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22년 12월 1일 열린 제168회 포천시의회 제1차 회의에서 임종훈 포천시의회 의원(무소속)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요금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임 의원은 “포천~구리 민자고속도로는 같은 민자사업인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일산IC~의정부IC까지 26.3㎞ 구간 ㎞당 68.4원인데 반해, 포천~구리 민자고속도로 동의정부IC~포천IC까지 21.68㎞ 구간 ㎞당 106.1원으로 같은 민자사업으로 추진된 도로의 통행료보다 높은 수준으로 여전히 불평등하고 불합리하게 책정되어 운영되어 오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포천~구리 구간을 이용한 시민들은 과도한 통행료를 지불해옴에 따라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통행료 부담을 떠안으면서 과중한 경제적 부담과 지역적 차별에 불만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임의원은 대체 교통수단이 부족해 통행료가 비싸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경기북부지역 시민들의 차별적 통행료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22년 11월,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구리~포천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인하의 필요성을 건의한 바 있는 오석규 경기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의정부4)도 지난 1일과 4일 동의정부IC, 민락IC 앞에서 ‘구리-포천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오 의원은 경기북부의 건설된 고속도로는 모두 민자고속도로라고 밝힌 뒤 “북부 도민의 주머니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느냐” “민자 고속도로의 높은 통행료는 생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통행료 인하를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경기도가 나선 것이다. 도는 고속도로 이용자가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며 최대한 통행료를 인하해달라고 건의했다. 앞으로 도는 지속해서 국토교통부,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긴밀하게 협력해 최대한 도의 국도·국지도 건설계획 반영과 통행료 인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 관계자의 말처럼 구리~포천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는 경기도민의 교통권 향상을 위한 필수 사항이다. 북부 지역 주민들의 교통 여건 개선을 위해 도와 해당 지방정부,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등이 적극 나서 주민들의 통행료 인하요구를 관철시키길 바란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미사일과 대인지뢰를 지원하면서 2년 9개월 넘게 이어져 온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급격히 격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바이든 행정부가 장거리 전술 탄도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 사거리 300㎞) 사용을 허가하자마자 19일 러시아 본토로 6발을 발사했다. ‘에이태큼스’ 발사는 전쟁의 성격을 바꿀 수도 있는 매우 예민한 문제다. 그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이태큼스의 영토 내 사용 허가’를 미국이 넘지 말아야 하는 ‘레드라인’으로 설정해 왔다. 여기에 더 해 미국은 국제조약으로 금지된 ‘대인지뢰’까지 우크라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대인지뢰는 국제적으로 ‘대인지뢰 금지조약’에 따라 금지돼 있다. 미국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는 않고 있지만, ‘대인지뢰’가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살상할 수 있는 반인도적 무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도 2022년 6월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대인지뢰 사용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WP는 이번 ‘대인지뢰’ 지원 조치가 에이태큼스의 러시아 본토 공격 제한을 푼 데 이어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레임덕 상태인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단행하는 긴급 조치의 하나”라고 했다.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다. 먼저 핵무기 사용 원칙을 규정한 ‘핵 교리’를 변경했다. 개정 전 ‘핵 교리’는 국가 존립이 위협 받는 경우에만 핵 보복을 허용했지만, 변경된 교리에서는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공격할 경우 두 국가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재래식 공격이라도 공격 규모가 크고 주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핵무기 대응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핵무기 사용 기준을 크게 낮춘 것이다. <AP> 통신에 따르면 19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미국이 제공한 장거리 무기를 사용한 우크라이나 공격에도 핵 대응이 촉발될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권과 영토 보전’에 위협이 된다면 재래식 공격에도 핵 보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을 통해 “크레믈궁이 새로 수정된 핵 교리 발표를 둘러싸고 한 발언에 불행히도 놀라지 않는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크레믈궁은 무책임한 핵 수사와 행동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 다른 국가들을 강압하고 위협하려 해왔다.”며 “러시아의 무책임하고 호전적인 수사는 러시아의 안보를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핵 위협에 일일이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밀러 대변인의 발표에도, 전 세계는 격화된 전황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미국의 강대강 조치가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긴박하게 흘러가는 긴장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특별사절단이 이르면 다음 주 한국을 방문한다. 19일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요 G20 정상회의에서 돌아온 이후 (특사단의 방문이) 이뤄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측에 다음주 방한을 제안했으며, 양국이 긴밀하게 일정을 조율 중인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특사단의 한국 방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번 미국의 강경조치의 배경에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이 있고, 비록 트럼프 당선 전이었지만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간접 군사 지원을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번 특사단의 방문에서는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 실현, 북한군 러시아 파병 국면에서의 긴밀한 정보공유 등 다양한 의제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K-방산’ 무기의 직접 지원 여부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모든 형태의 한국 방공망, 포·포탄, 드론 및 전자전 방어 기술을 원한다며 특사단장 루스템 우메로우 국방장관 손에 ‘무기 요청서’를 들려보낼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느때보다 윤석열 정부의 이성적이고 신중한 외교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의 입장을 재검토하고, 정교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할 것은 미국이 권력교체기라는 점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 조치에 대해 트럼프 쪽에는 통보 조차 하지 않았다 점과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이 “군산복합체(바이든 행정부)는 아버지가 평화를 만들고 생명을 구할 기회를 갖기 전에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조치를 직접 비난하고 나선 점에 대해 꼽씹어봐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키는 미국이 가지고 있다. 미국의 ‘물러날 대통령’과 ‘새로운 대통령’의 입장 차이가 극명한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 전에 가졌던 윤 대통령의 입장은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상황에서도 ‘살상무기’ 지원 등에 대해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국익적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 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누구였더라?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이 낯설어서 한참 만지작거립니다. 명함이든 무엇이든 주고받았으니 저장되었을 게 분명한데,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서 답답할 밖에요. 죄송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해서, 몇 번을 속으로 불러 보다 삭제 버튼을 누르고 맙니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늘 겪는 일입니다. 젊어서는 전화번호를 적은 조그만 수첩을 정리하였는데, 요즈음은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정리합니다. 굵은 볼펜으로 주욱 선을 그어 지우던 시절에서 슬쩍 삭제 버튼을 누르는 세상으로 변했지만, ‘정리한다’는 본래의 목적에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요즈음 나와 당신이 하는 정리는 방이나 책상을 정돈하는 것이 아닙니다. 쓸거나 털거나 닦아내는 게 아니고, 높낮이를 조절하거나 위치를 바꾸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정리는 묵은 생각을 지우고 고인 시간을 비우는 것입니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세상살이에 눌린 어깨를 쉬게 하는 겨울잠 같은 것이랄까요. 묵은 계절을 정리하는 건 사람 아닌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은 계절의 온도에 따라 낯빛을 바꿉니다. 스치고 지날 때 얼굴을 할퀴는 손톱은 겨울바람의 전유물입니다. 봄도 여름도 가을조차도 겨울바람이 뿜어내는 작별의 입김을 흉내 낼 순 없습니다. 겨울바람이라야 비로소 해묵은 계절 속에 뒤엉킨 온갖 감정을 씻어낼 수 있습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모든 것들의 손과 발과 머리카락을 뒤흔들어서 아귀다툼의 자국을 떨어냅니다. 과시와 굴욕을 지워버리고 쓸모와 무모를 날려 보냅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겨울에 부는 바람은 이 땅의 악취를 쓸어 모아 저 땅으로 밀어내는 청소부 같습니다. 철 따라 체온을 바꾸는 게 바람이라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계절을 정리하는 건 물입니다. 얼음으로 변한 순간 더 이상 물은 눈물이나 슬픔 따위가 아닙니다. 꽝꽝 얼어붙은 얼음은 계절을 가두는 거울입니다. 철광석처럼 단단한 차가움으로 과거를 가두었다가 미래를 녹여냅니다. 그런 점에서 얼음은 주검 속에 살림을 품은 신기루 같습니다. 생명을 지닌 것들은 죄다 겨울을 나는 방법을 압니다. 실을 토해낼 줄 아는 것들은 고치로 몸을 감싸 겨울을 납니다. 굴을 팔 줄 아는 것들은 겨울잠 끝에 봄을 맞이하고, 스스로 심장을 멈춰 겨울을 버티는 개구리도 있습니다. 처절함으로만 따지자면 뿌리로 사는 것들이 으뜸입니다. 나무는 봄과 여름과 가을을 살았던 모든 걸 버리면서 겨울을 납니다. 꽃과 열매와 이파리마저 떨쳐내고 껍질뿐인 몸뚱이로 추위를 견딥니다. 꿈쩍도 없이 못 박고 서서, 백 번째 겨울을 보내고 천 번째 봄을 맞이합니다. 그리 보면, 사람처럼 뻔뻔한 동물도 없습니다. 지구에 사는 동물 중에서 계절에 순응하지 않는 유일한 동물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시간을 거스르고 계절을 역행합니다. 따르는 건 오직 돈벌이일 뿐, 세상이야 망가지든 말든 관심 밖입니다. 그래서 치매(癡呆)라는 형벌이 이 땅에 창궐하였을까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인간의 교만을 지우기 위해, 신이 선택한 것이 바로 그걸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심한 나는, 겨울의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 해묵은 전화번호나 지우고 앉았습니다.
최근에 발표된 ‘2024 세계행복보고서(WHR)’에 따르면 한국인이 반응한 행복 지수는 전 세계 143개국 중 52위로 중위권에 해당한다. 그러나 전체 행복 지수에 비해 노인의 행복도는 매우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은 2023년 OECD가 발표한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우리나라 노인이 40.4퍼센트로 가장 높다. OECD에서 국가별 노인빈곤율을 공개한 2009년 이래 우리나라는 계속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위 라트비아 25.4퍼센트에 비하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노인들은 우리나라 노인들과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순자산의 약 80퍼센트를 60세 이상의 국민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그 비율이 50∽60퍼센트라고 한다. 이렇게 편중된 부(富)조차도 고령층 사이에서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어, 20∽30퍼센트의 노인들이 이 연령대에 축적된 부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미국 노인들은 전 연령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이지만 같은 연령대에서도 빈부격차가 여전히 큰 셈이다. 미국 노인빈곤율도 18퍼센트로 OECD 38개국 중에서는 5위에 해당한다. 노인들은 주로 연금, 저축, 자산 소득 등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러한 자원들이 부족하거나 없는 경우는 빈곤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대체로 노인 빈곤층들은 생산가능인구로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저학력과 저소득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국민연금을 충분히 내지 못해 은퇴 후에 받는 연금으로는 여유 있는 생활은커녕 기초연금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다수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도움을 받을 처지도 못 된다. 노인 빈곤층 가운데 직장 생활할 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이들조차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난을 자식에게는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무조건적인 내리사랑으로 힘들게 모은 돈을 자녀 교육비에 투자하고, 정녕 자신의 노후생활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늙어서 별다른 소득도 없이 기초연금에 의지한 채 생활고를 겪으며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노인일수록 건강 문제로 고통받으며,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긴 노년기를 간신히 이어간다. 무엇보다 은퇴 후의 경제적 빈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정신적 피폐를 안겨주며 대인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들의 경제적 불평등은 은퇴 후에 더욱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다. 어떤 노인들은 편안하고 풍요롭게 여생을 즐긴다. 그러나 은퇴는 했지만,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아예 은퇴할 형편이 안 되는 노인들도 많다. 이러한 빈곤층 노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더욱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노인들의 빈곤 문제는 경제적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구조적 지원이 부족하고, 가족 부양의 감소와 연금제도의 미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문제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빈곤층 노인들을 위해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사회 전반적인 노인 돌봄 시스템의 개선이 시급하다.
지난 9월 초 연길에 갔을 때였다. 호텔의 북한식당에 들어서려는데, “한국사람 받지 않습네다”, ‘남한’도 ‘남조선’도 아닌 명확히 ‘한국’이라는 용어를 쓰며 차갑게 거절한다. 북한 접경지역에서 경험한 ‘남한과의 결별’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현지 중국동포에 따르면 10만 명 정도 되는 연변지역 북한 노동자들에게 이미 지침이 전달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한반도에서 동족의식으로 상호절제에 의해 어렵게 유지되어온 잠정적 평화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이후 북한은 자력갱생으로 전환했다. 한미일 협력으로 압박이 강화되자 북한은 2023년 12월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통일, 화해, 동족 개념을 지워나가고 있다. 그리고 남한이나 미국 대신 러시아와 손을 잡고 국가발전을 모색하는 중이다. 북한은 서로 상관하지 말자며 결별의 길을 가고, 남한은 강경책을 고수하며 일촉즉발의 대결상태가 계속된다. 글로벌 10위권,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유치하게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으로 북한과 싸우며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국민들은 전쟁위험에 불안해하는 상황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재앙이고,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은 국민이다. 이미 우리는 한국전쟁을 통해 세계열강의 이해관계가 얽힌 한반도에서 전쟁은 남과 북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곧 비참한 남북한 공멸을 가져올 뿐이다. 우리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적’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인정해야 한다. 남한은 GDP규모나 국력에서 북한과 수십 배 격차를 보이고 있다. 7번, 70번 배려와 아량으로 포용할 때 ‘적대적 두 국가’로 나아가려는 북한을 국제사회 정상국가로 이끌어 내고 관계개선과 핵문제 해결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럴만한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지난 2022년 발표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김정은 정권 10년, 북한주민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미국, 일본, 남한, 중국, 러시아” 중 “북한에 살고 계실 때 어느 나라를 가장 가깝게 느꼈습니까?”라는 질문에, 2020년 조사에서 65%이상이 중국을 가장 우호적인 국가라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 2013년 85%에서 크게 감소는 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1위였다. 반면 남한은 19%에 불과했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할 때 동독주민들의 선택지는 서독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북한주민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자력갱생의 길을 걸을 수도, 중국이나 러시아와 본격적으로 협력할 수도 있으며, 미국 트럼프 정부와 직접 손잡을 수도 있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되면 북한은 당연히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지금은 북한주민의 삶과 인권을 위해 남북협력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남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북한과 협력해야 한다. 고려와 조선을 거쳐 그나마 어렵게 회복한 한반도의 반쪽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행히 호텔 로비의 북한카페는 첫날 중국인과 가 본 이후에는 혼자서도 들어갈 수 있었다. 한번은 내 실수로 찻잔을 쏟았는데, 북한직원은 친절하게 테이블을 치우고 따뜻한 새 차를 가져다주었다. 벌써 기온이 많이 차졌다. 차가 더 식기 전에 따뜻한 대화 분위기로 돌아가길 희망한다.
돌림자처럼 ‘농’자 든 세 낱말, 농단 농간 농락 등은 비슷해 보인다. 같은 뜻으로 아는 이도 있겠다. 그러나 이 말들은 각각 다른 단어다. ‘시대언어’인가? 박근혜 정권 말기처럼, 요즘 큰 유행인 ‘국정농단’의 농단(壟斷) 말이다. ‘깎아 세운 듯한 높은 언덕’이란 뜻이다. 사전에는 이런 풀이도 있다.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하는 것. 시장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고 물건을 사 모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독점하였다는 데서 온 말’이란다. 농간(弄奸)은 ‘속이거나 남의 일을 그르치게 하려는 간사한 꾀’ 즉 사기다. ‘손으로 만지며 논다’는 농(롱)과 ‘간사하다’의 간의 합체다. 희롱 우롱의 弄이 핵심 의미다. 농락(籠絡)은 ‘새장과 고삐’라는 뜻, 남을 교묘한 꾀로 휘어잡아 제 마음대로 놀리거나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시쳇말로 ‘가지고 논다’는 말이다. 대충 바꿔 사용할 수 있는 말들은 아니다. 한자(漢字)도 다 다르다. 계통이 같거나 비슷한 말로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그러나 공공(公共)의 도리나 개인 간의 이해(利害) 등 여러 세상사에서 품격이 현저히 떨어지는, 악질 또는 저질적 행실인 것이 셋의 공통점이다. 언론 등 현장에서의 단어의 용례(用例)도 비슷비슷하다. 뜻의 구별도 또렷하지 않아 보인다. 제 것이 아닌 것을 부당하게 제 주머니에 넣는다던지(농단), 정해진 바를 무시하고 남을 무시하거나 놀리던지(농간), 모두의 세상을 저에게만 이롭게 써먹는 것(농락) 등이 각각의 뜻이니 혼동될 만하다. 복잡해진 세상의 반영일까. ‘깎아지른 듯한 높은 언덕’은 ‘부당한 독점(행위)’의 비유적인 뜻이다. (정보를 독차지한) 유리한 입장에서 이익과 권리를 오로지하는 것, 출처는 맹자의 공손추(公孫丑)다. 되게 못마땅하다는 심리가 담겨 있다. ‘누구는 인삼 뿌리고, 누구는 무 껍질이냐.’ 툴툴대는 심보는 예나 지금이나 어찌 다르랴. 독과점 폐해, 지금은 더하지 않을까. 현대 자본주의 표상인 ‘동등(同等)한 기회’와 관련한 경계(警戒)의 말 ‘농단’이 어쩌다 농간 농락의 뜻도 포함하는 ‘다목적 용어’가 됐을까. 청년에게 선착순으로 제공해야하는 문화복지비를 (내용을 미리 안) 제주도청 공무원들이 먼저 신청해 선점(先占)했다는 최근의 보도도 이런 사례로 보인다. 전에 최순실이란 이가 그랬듯, 요즘 명태균이란 이가 이 이미지들을 다 합쳐 놓은 듯한 캐릭터의 언행(言行)으로 주목받는다. 논리는 황당하고, 안 끼는 데가 없는 듯, 참 재주도 좋다. 재승(才勝)이라 할만하다. 이 말은 재승덕(才勝德)으로 이어진다. 재주가 덕성을 이긴다(勝)니 ‘세상은 이런 걸 걱정하라.’는 것이다. 영리해서 싹수 망가지는 걸 저어하는 것이다. (큰) 재주는 어진 德을 갖춰야 불결(不潔)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쉬우랴? 쉬우면 저렇게들 살겠는가? 저 ‘명(明) 재승’은, 감히 미국 대통령에 재선된 트럼프란 인물도 생각나게 한다. 또 권력의 화신인 여러 유명인들, 그들의 (빤한) 미래도 보인다. 역사처럼 인생사 돌고 돈다.
지난 3월 30일 GTX(Great Train eXpress: 수도권광역급행철도) A노선 가운데 수서~동탄 구간(34.9km)이 개통됐다. 6월 말엔 구성역이 운영되기 시작했으며, 다음 달엔 파주 운정~서울역 구간이 이어진다. GTX-A 노선은 총연장 83.1㎞로 운정에서 서울 삼성역을 거쳐 화성 동탄까지 총 82.1km 구간(11개 역)을 잇는 노선이다. 운정중앙역∼삼성역은 민자 구간, 삼성역∼동탄역은 재정(정부예산) 구간이다. 재정사업과 민자사업으로 별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GTX는 기존 지하철보다 빠르다. 최고 속도가 시속 180km로 일반 철도 보다 2배 이상 빠르고 역 개수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수서~동탄 구간이 개통되면서 동탄에서 수서까지 19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 출근시간대에는 평균 17분 간격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이 지역으로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의 이동편의가 크게 좋아졌다. GTX는 특히 수도권 2기 신도시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보다 서울에서 더 먼 지역에 조성된 화성 동탄과 파주 운정 주민들을 위해 GTX 최초 노선인 A선을 이곳으로 정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수서~동탄 구간이 개통되자 화성시는 시민 교통편의가 향상되는 것은 물론 기업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정명근 시장은 “첨단기업들의 첫 번째 애로사항은 인재확보”라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화성에 있는 기업들에 오기 힘들었던 현실에 혁명적인 변화가 생겨 기업유치에도 GTX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통이 임박한 GTX-A 운정~서울역 구간에 대한 경기 북부 주민들의 기대치도 한껏 높아지고 있다. 경기북부에서 서울 중심부로 빠른 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다. 킨텍스에서 서울역까지 16분, 강남까지 20분 내로 이동할 수 있다. 접근성이 대폭 개선되는 것이다. 그런데 파주시 운정과 화성시 동탄을 잇는 GTX-A노선 개통까지는 넘어야 할 험한 산이 생겼다. 이 노선의 중심이 될 삼성역 환승센터가 문제다.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GTX-A 노선은 반쪽짜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와 관련, 경기신문은 두 구간이 만나는 삼성역 구간(1km)의 경우, 서울시의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설계 장기화와 사업규모 변경 등의 사유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19일자 1면, 빠른 출퇴근 ‘4년 기다림’에 도민들 분통) 기사에 따르면 국토부는 오는 2026년 삼성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2027년에는 지하철 삼성역을 이용해 환승 임시 개통 후 2028년 완전 개통할 계획이라고 한다. 화성, 용인, 성남, 파주, 고양 지역 주민들이 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순운영이익 감소(영업손실금) 보전을 나랏돈으로 채워야 한다는 점이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삼성역 구간을 제외한 운정∼서울역 구간과 수서∼동탄 구간에 대해 운영을 개시하는 민자사업자인 SG레일에게 삼성역 구간이 개통될 때까지 영업 손실금을 지속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GTX-A 실시협약’에 따른 것이다. 이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내년도 예산안 예비심사보고서 부대의견에 “국토부는 GTX-A 삼성역 개통 지연에 따른 향후 손실보상 규모에 관한 민자사업자와의 법적 분쟁, 지연이자 지급, 정산시점에서의 급격한 재정부담 등의 문제”를 우려하면서 보완 대책 및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명시했다. 현재 GTX-A노선 추진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리 일러도 2027년 말까지 정부가 민자사업자에 손실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예결특위 수석전문위원의 말처럼 국토부가 실시협약 체결 당시부터 수천억 원에 이르는 영업 손실을 민자사업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방안 외에 재정지원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사업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서울시에 대한 구상권 청구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