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나치스의 계관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대한 해석론을 배경으로 나온 말이지만, 지난 한 세기 헌법학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되다 보니, 이제는 아무나 갖다 쓰며 아무 말이나 하는데, 이 글도 그런 글 중 하나다. 주권자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면, 주권자가 되고 싶은 주권자 지망생들이나 주권자 호소인들도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예외상태라고, 예외상태에 필요한 예외적인 조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싶을 것이다.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안’, 일명 “25만 원 지원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5만 원 지원법”은 법률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 헌법에 반하는 처분적 법률이고, 권력분립의 원리를 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처분적 법률이 불가피한 상황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처분적 법률이 예외가 아닌 정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민주당은, 지금이 민생회복을 위한 예외적인 조치가 필요한 ‘예외상태’인데, 정부가 이를 방기하고 있으니, 우리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로 나서겠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25만 원 지원법”도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다. 대통령은 이미 양곡관리법, 간호법, 방송법, 50억 클럽 특검법, 도이치모터스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채상병 특검법, 방송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화 이후 헌정사에서 거부권의 행사는 ‘정상’보다는 ‘예외’였다. 노무현 정부가 4번, 이명박 정부가 1번, 박근혜 정부가 2번 행사했을 뿐이다. 헌법전에 적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부권은 행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관례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대통령은 지금이 거부권 행사라는 특단의 조치를 연거푸 감행해서라도 저지해야 하는 입법부 폭주의 ‘예외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슈미트는 입법부와 행정부, 의회와 대통령의 대립 구도를 전제하면서, 대통령이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로서 적극적으로 결단해야 할 것을 암시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이든 히틀러 총통이든 누구든 그 역할을 수행해, 끊임없이 토론만 하고 아무것도 결단하지 못하는 의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슈미트의 눈에 비친 바이마르는 토론만 하고 아무것도 결단하지 못하는 무력한 공화국이었다. 오늘날 우리 공화국은 이편이나 저편이나 토론은 내던지고 앞다투어 예외상태를 선언하며 결단하느라 바쁘다. 다들 슈미트주의자고 다들 결단주의자다. 토론을 한 기억도 없는데 토론은 끝났다고 저쪽 이야기 더 들을 필요 없다고 이제는 결단뿐이라고 예외적 조치의 총동원이 불가피하다고 선언한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 진정한 주권자는 예외상태가 아닐 때는 예외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자가 아닌가.
AI(인공지능)시대 도래에 발맞춰 조직을 개편해 AI국을 신설한 경기도가 관내 시·군들과 함께 시행 중인 관련 사업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다. 지자체 사업의 홍보 부족, 참여율 저조 등 고질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들고 있는 AI가 민생의 질을 좌우할 핵심 변수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경기도의 AI 사업이 도민 모두의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섬세한 방향 선택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경기도는 지난 6월 조직개편안의 경기도의회 통과로 ‘AI국’을 신설했다. AI프런티어사업과·AI산업육성과·AI미래행정과·AI데이터인프라과 등 4개과 규모의 AI국은 AI시대가 가져올 혁신을 선도하기 위해 도민 서비스 발굴, AI클러스터 조성, AI전문인력 양성, 데..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2022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진지 일색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음으로 비로서 해방되었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집도 나름 맛집이 된 이유가 있듯 출판보다 판매가 어려운 도서 시장에서 베스트셀레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죽음’과 ‘해방’으로 요약시킨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골 풍경과 전남 사투리가 어울리는 문체가 좋아서일까. 이 책을 읽고 ‘죽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해방, 죽음은 고통이지만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희망을 쓰고 싶어진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잃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싸웠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한 사람들, 빼앗은 자에 붙어 영달을 꾀하지 않고 죽음으로 항거한 사람들을 선지자, 애국지사라고 한다. 이들에 희생으로 오늘의 국가가 존재함으로 8월 15일을 국가 공휴일인 ‘광복절’로 기념한다. 그러니 8월 15일은 빼앗겼던 시간을 다시 찾은 해방의 날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아직 형태도 가지지 못한 신생아 국가는 허약했다. 검증된 미래세계가 없었기에, 형제가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는 전쟁으로 남북은 분단되었다. 그리고 이념으로 인한 갈등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상흔을 그린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진지하게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아버지는 자신을 ‘광복’ 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음으로 비로서 해방을 얻었다. 해방은 되었으나 ‘광복’을 이루지 못한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으로 항거한 애국지사가 꿈에도 바랐던 소원은 나라의 독립이었다. 그러나 반세기 넘도록 남북은 분단되었고, 분단되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북한학을 전공한 나 자신도 북쪽을 잊고 살고 싶어진다. 정치적 계산만 하는 국가가 불만스러워 관심을 덜어보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북쪽 출신이다. 올해 대통령의 8월 15일 기념사에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도 궁금하다. 일방적인 선언 같은 것은 없으면 좋겠다. 나도 북쪽 주민도 잘사는 그런 미래가 있는 메시지가 나오면 좋겠다. 해방은 되었으나 개인도, 국가도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불편하게 살고 있다. 가장 힘든 사람은 전쟁으로 생겨난 이산가족, 그리고 1990년대 고향을 떠난 북한이탈주민이다. 완전한 광복을 이루지 못한 해방은 갈등의 불씨가 되어 개인을 묶어 버린다. 79년전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선언으로 패망을 선언했듯 개인과 국가를 묶어버린 불편함이 올해 대통령의 기념사를 통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전봇대에 머리를 박은 아버지의 죽음이 해방이 되는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
“인사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자 광복회장인 이종찬회장이 일갈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뛰어든 모든 이들은 본인의 생명은 물론이고 패가망신을 각오해야 했다. 어떤 국가든 이런 희생의 흔적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다름없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기리고 대한민국의 밑바탕으로 삼고자 독립기념관을 세웠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폄훼하던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1948년 건국이전에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의 국적은 일본이었다”라는 생각은 곧바로 일제에 협력하며 호의호식한 친일세력들에게 면죄부를 발부한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
전국의 전기차 보급률이 2%를 넘기고 있는 가운데, 한번 붙었다 하면 좀처럼 끄기 힘든 전기차 화재에 기인하는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 중이다. 지난 1일 인천 청라 지역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계기로 전기차 주차 기피 풍조가 퍼지고, 경기교육청은 전기차 충전소 교내 설치 중단을 선언했다. 전기차 화재 안전대책을 종합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2024년 2월 기준 우리나라 전기차 등록 현황은 총 54만 7455대다. 이 중 경기도는 11만 5414대로서 전체의 21.1%를 차지하고 있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 센터 통계에 따르면 2021년 24건이던 전기차 화재 건수는 2022년 43건, 지난해 72건으로 3년 새 3배가량 늘었다. 전기차를 타는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전기차 화재도 큰 폭으로 증가한 상황이다. 문제는 전기차 화재가 잦은 데다가..
초고령사회가 임박했다는 통계청 지표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65세 이상 인구가 지난 7월 기준으로 1천만 명(전체 인구 5126만9012명의 19.51%)을 넘어섰고 70세 이상 취업자도 올해 상반기에만 15만 명이나 늘었다는 소식이다. 국민 5명 중 1명(20%)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당초 2025년 상반기보다 앞당겨질 거라 한다. OECD 회원국 중 최악 수준의 노인빈곤율, 올해부터 시작된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세대의 은퇴로 가속화되는 초고령사회에 대비해서 노인 일자리뿐 아니라 의료, 복지 등 노인복지 전반에 대한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 노인 일자리로부터 치매, 요양대책 등 노인들의 삶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변혁이 필요하며,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활동 지원이 필요하..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투표율을 보면, 지난 4일 기준으로 온라인 투표율은 당 대표 선거가 26.47%, 최고위원 선거 투표율은 27.12%였다. 호남의 온라인 투표율을 살펴보면, 전남 지역이 23.17%, 전북은 20.28%, 광주는 25.29%였다. 민주당은, 이런 호남지역 투표율이 지난 2년 전 전당대회 당시보다는 높아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호남에서의 권리당원 투표율이 전국 평균을 밑돈다는 점이다. 여기서 여론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8일 공개된 전국 지표조사(NBS)(8월 5일부터 7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나타난 호남지역에서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7%였다. 일반적으로..
최근 산림청이 국내 ‘아름다운 도시숲 50선’을 발표했다. ‘아름다운 도시숲 50선’은 시민들의 삶 속에 쉼터가 되어주는 도시숲의 가치와 각 도시에 조성된 도시숲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게 산림청의 설명이다. 아름다운 도시숲은 국내에 모범적으로 조성·관리되고 있는 도시숲을 인증하는 제도다. 전국 도시숲, 마을숲, 경관숲, 학교숲, 가로수 등이 인증신청 대상이다. 특히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어야 한다는 단서도 붙어있다. 산림청은 국민과 지방정부 등으로부터 아름다운 도시숲 916개소를 추천 받았으며 이 가운데 50개소를 최종 선정했다. 대국민 선호도 조사와 접근성, 생태적 건강성, 이용 정도, 경관적 가치, 차별성 등이 평가된 50선 가운데는 경기도내의 ▲평택 바람길숲(평택-기후변화 대응형) ▲일산호수공원 도시숲(고양-경관 개선형) ▲노송숲(수원-경관 개선형) ▲영흥수목원 도시숲(수원-주민참여형) ▲동탄호수공원 도시숲(화성-주민참여형) ▲상동 호수공원 도시숲(부천-주민참여형) 등 6곳도 포함돼 있다. 수원 노송숲은 장안구 이목동 5만6천㎡ 넓이 노송지대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현륭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을 하사해 소나무를 심었다. 경기도지방기념물 제19호, 경기도 자연유산 제1호로 지정됐다. 일산호수공원은 고양시의 대표적 명소로 인공호수와 산책로, 다양한 식물군이 어우러진 자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는 모범적인 사례로 인정받았다. 다양한 식물군이 어우러져 있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화성시 동탄호수공원은 호수를 따라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피크닉장·피톤치드 숲 등이 있는 도심속 웰빙공간으로 화려한 멀티미디어 수경시설인 ‘루나분수’로 대표되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매주 1만 명 이상의 시민이 방문하고 있는 화성시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수원 영흥수목원은 산지형 정원문화 중심으로 조성됐다. 방문자센터, 느티나무홀(대강당), 책마루, 카페, 가든숍, 체험교실, 정원상담소, 가든교육장, 자원봉사자실], 전시온실, 꽃과 들풀 전시원, 전시숲, 생태숲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숲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조성한 전시형 숲정원과 생태 숲이 있다. 부천 상동호수공원은 부천 최대 공원으로 호수 주변 산책코스와 새로 단장한 어린이놀이터, 부천호수식물원 ‘수피아’를 포함하고 있으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높아 연 180만 명이 방문한다. 평택 바람길숲은 도시 외곽 산림에서 생성된 맑고 시원한 찬 공기를 도심으로 유입해 미세먼지 저감, 도시열섬 완화 등의 개선 효과를 증명했다. 산과 나무가 부족한 도심 환경 문제를 바람길숲을 통해 많은 부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시숲은 콘크리트와 자동차로 가득한 삭막한 도시의 경관을 개선할 뿐 아니라 도심의 열섬 현상 방지에도 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전세계 도시들은 도시에 숲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2007년부터 전국 도시공원의 숲을 확대하고 있다. 이상기후 현상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관리하는 일은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2024 파리 올림픽의 역사가 흘러가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인류의 진일보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것이 올림픽 정신의 근간이다. 그러나 야누스처럼 인류의 또 다른 얼굴인 전쟁의 역사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망하여 다시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거나 친구와 가족을 잃은 상처를 안고 출전하는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올림픽의 정신을 위배하였다는 사유로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일부 선수들은 개인 중립 선수로 경쟁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가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은 이 사안과 관련된 질문에 “우리에게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차갑게 응수하기도 하였다. 경기에서 ‘승부’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올림..
올림픽 보도와 중계는 미디어 비평의 단골 소재다. 올림픽 때마다 비슷한 잘못이 반복하고 있다. 고질이다. 금메달 지상주의, 맹목적 국가주의, 시급한 국내 현안 뒤덮기, 전쟁 용어 남발하기, 선정적인 기사로 독자 유인하기, 인기 종목 중복 편성 같은 문제가 그것들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도 예외는 아니다. 동아일보의 김순덕 고문은 자신의 칼럼에서 지금은 국뽕이 필요할 때라며 우리 선수들 만세를 외치자고 제안했다. 우리 선수들에 대한 응원을 담은 내용이었지만 ’국뽕‘이란 용어는 부적절했다. 5일 아침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대한민국의 ’금‘고는 총·칼·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사격과 펜싱, 양궁에서 거둬들인 금메달 소식을 전하는 기사였지만, 많은 독자들이 거부감을 갖을만 했다. 이 기사의 영향이었는지 SBS도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