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없이 어수선하게 지나는 봄도 봄인지라 잠시 밖을 거닐다 보면 뒤죽박죽 꽃이 핀다. 초여름에나 피어야할 조팝꽃이 하얗게 늘어지고 돌 틈에는 제비꽃이 빼곡히 꽂아 놓은 것처럼 피어있다. 출입문 바로 앞에 민들레가 노란 얼굴을 내밀던 수요일, 온 국민을 슬픔으로 몰아넣는 사건이 발생했다. 몇 년 전에 본 영화 죠스의 한 장면이 정지 되어 있고 다급한 목소리와 자막이 지나갔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여객선 세월호의 참사는 며칠을 좌절과 분노와 애통함으로 우리를 몰고 갔다. 그 중에서도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들 다수가 배 안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그 자체였다. 갈팡질팡 하는 집계에 실망하고 무엇 하나 진행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은 구조 활동에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는 일도 있었지만 승객을 버려두고 탈출한 승무원들의 태도를 두고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선원 수칙을 들먹이지 않아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장으로서의 사명감은 물론이요 칠십이면 어린 학생들의 할아버지다. 본인의 목숨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손자 손녀 같은 어린 학생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선실을…
그간 정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기초지자체 공천 문제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철회 결정과 함께 원점으로 회귀하였다. 여당과 야당 공히 지난 대선 때 내걸었던 공약을 폐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이가 없고, 허탈한 나머지 분노마저 인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의 정당공천 폐지는 1995년 지방자치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여 20년 운용하면서 나타난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반성적 성찰에서 도출된 여야 모두의 공약이었다. 그간 중앙정치와는 사실상 무관한 지방자치가 소속정당의 진영논리를 판박이로 옮겨와 이전투구를 벌이는 정치 과잉현상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단체장과 기초의회의 다수당이 여야로 나뉜 경우 예산안은 물론이고 조례 개정 하나에도 지루한 정쟁을 일삼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당별 정책의 차이가 없을 순 없지만, 그보다는 여야의 패거리 정치에 동조하고 앞장서지 않으면 지구당이나 국회의원의 눈 밖에 나서 다음번 선거에서 공천을 확보할 수 없다는 보신책이 그 배경임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장치로서의 지방자치제도가 그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비용과 부작용을 초래한 배경에 이 공천제도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번
어떠한 논리와 설명으로도 불가능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을 우리는 기적(奇蹟)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미러클(miracle)이며, 라틴어 미라쿠룸(miraculm)에서 유래됐다. 이 말의 본 뜻은 ‘미소를 짓게 하는 멋진 일’이라고 한다. 종교학에선 기적을 자연법에 반하는 물리적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통계학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극단점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런 기적은 종교적 의미가 강하다. 경험적 자연법칙이나 과학법칙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과 기적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성서에도 수많은 기적이 나온다. 그 중 첫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기독교인들에겐 믿음의 중심인 이 기적은 기독교를 있게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적은 기적을 믿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고 한다. 성서에 나오는 여러가지 기적에서도 알 수 있듯 추호의 의심도 없는,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의 세계에 푹 빠져야 기적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성서 속 기적 중에는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진 ‘요나’가 큰 고기 뱃속에서 되살아난 내용도 있다. 누가 만든 기도문인지…
대한민국은 지금 패닉 상태다. 침몰된 세월호 앞에 세월이 멈춰 있는 듯 하다. 초기 대응이 늦었느니, 일어나서는 안 될 후진적인 인재(人災)라느니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실종자 가족들은 오직 단 한 명이라도 구조하는 것이 목표일 뿐이다. 어제도 정부는 세월호 여객선의 탑승자 숫자를 정정 발표했다. 이번이 여섯 번째다. 탑승객 숫자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다. 결국 모든 것을 답답해 하던 민간인 구조대가 사비로 장비를 챙겨 물 속에 뛰어들었지만 바다의 사정이 녹록지 않다. 텔레비전에 눈 귀를 곧추세워도 온통 오보 투성이다. 가족들의 분노의 메아리는 높아만 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듯한 느낌이이다. 바닷 속에 잠긴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기본을 잊고 사는 우리가 아닌지 자괴감이 든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지침도 없고, 우왕좌왕하고 허둥지둥대는 정부다. 470여 명의 승객들이 수장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만 살겠다고 탈출한 선장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로 10여 명의 아까운 대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지 두 달여 만이다. 그러나 현실을 탓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실종자들이
지난해 4월 경기도는 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와 ‘카네이션 하우스’ 사업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카네이션 하우스는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등을 리모델링한 공동생활주택이다. 이곳에는 생활시설과 작업장이 마련돼 있다. 카네이션 하우스가 들어선 곳은 안양시 만안구 안양9동 공부방, 여주군 북내면 외룡리, 이천시 율면 고당3리, 구리시 교문동, 가평군 북면 백둔리, 연천군 청산면 초성2리 등 6곳이다. 도의 예산과 행정, 노인회의 서비스연계, 농협의 사업비와 일자리가 지원되고 있다. 카네이션 하우스는 노인자살예방과 노인의 응급상황 발생 시 초동대처 등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 설치됐다. 최근 홀몸 노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각종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도가 대책으로 내놓은 시범 사업 중 하나다. 도 관계자에 따르면 홀몸노인들로부터 호응도가 높다고 한다. 특히 안양에 위치한 카네이션하우스의 경우 매일 웃음과 활기가 넘쳐난다고 한다. 쇼핑백 만들기 등 소일도 하고 용돈 벌이도 할 수 있단다.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모두가 한 가족이 됐다고 한다. 보통 직장인들은 60세 정도에 정년을 맞는다. 그러나…
최악의 여객선 사고로 기억될 ‘세월호’의 대참사가 일어난 지 여섯째 날이다. 선수만 드러낸 채 거꾸로 바다에 처박힌 선박은 이제는 수면위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 안에는 믿기지 않지만 250여명의 17세 우리 아이들이 갇혀있거나 숨졌다. 물이 들어차는 선실에서 열일곱 살 딸이 엄마 전화기에 제 얼굴을 찍어 띄우며 말했다.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 아들은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 고백했다. ‘엄마, 말 못할까 봐 미리 보내놓는다. 사랑해.’ 2학년4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과 나눈 대화방 문자도 ‘전부 사랑합니다.’로 끝났다. 질식하도록 밀려드는 두려움 속에서도 못다 한 말 ‘사랑’을 떠올렸다. 이렇게 고운 아이들을 차가운 바닷속 어둠에 있다니 다 내 딸, 내 아들 같아 가슴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솟는다. 배를 탔던 단원고 2학년 325명 가운데 75명만이 구출됐다. 그런데 입원한 ‘세월호’ 76명의 환자 상태가 ‘중등도 이상’ 스트레스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선생님과 살아남은 학생들은…
사람들은 흔히 계절의 시작을 봄이라 말한다. 계절의 처음이 봄이라는 정의를 내린바 없지만 봄을 계절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건 아마 봄에 시작되는 식물의 재생 또는 움이 트는 시각적 효과 때문이 아닐까. 이즘 봄이면 화사하게 피어오르는 꽃, 노르스름한 주둥이 내미는 새싹들로 인하여 활기가 넘친다. 그 싱싱한 싱그러움에 사람들 또한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산으로 들로 꽃놀이를 나가기도 한다. 봄은 그렇게 자연으로부터 또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가 막 잎을 피워내는 그 생기어린 오만함, 개나리 울타리 넘치게 재재거리는 꽃잎들의 간들거림, 흘러내리는 꽃비에 가슴 동동거리게 하는 벚꽃 춤사위와 밤새 풀어헤친 수수꽃다리 참을 수 없는 향기까지. 달을 품은 밤이면 그 밤으로 해를 띄운 낮이면 그 햇살로 봄은 또 나날이 다른 봄을 해산한다. 그렇게 태어나는 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다. 태어나 걸음을 떼기 시작하고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고 황혼기를 거쳐 죽음을 맞기까지 봄여름가을겨울이 공존하는 사람들의 삶. 마치 사계절을 순서대로 맞고 보내는 듯하지만 사람들의 삶에서도 평생에 걸쳐 다년생 식물과 같이 숱한…
망연자실(茫然自失). 억장이 무너진다. 또다시 인재(人災)다. 초조한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 가운데 국민들의 안타까운 탄식만 끝없이 이어진다. 자식의 생사를 찾아 뜬눈으로 밤을 샌 부모가 지키는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 강당은 깊은 정적에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아프다. 검푸른 바다가 ‘세월호’를 삼키고 날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정확한 탑승인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다는 현실이라니. 그저 말문이 막힌다. “배가 정말로 기울 것 같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 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얘들아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용서해줘. 사랑한다.”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에 타고 있던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배가 가라앉는 순간 카카오톡 등에 남긴 애틋한 글에 눈시울이 불거진다. 그 악몽의 16일 오전 8시56분. 한창 꿈 많은 우리 아이들과 60평생을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했던 백발의 동창생 등 475명이 저마다의 추억을 기대하며 떠난 제주도 여행길은 침몰한 ‘세월호’와 함께 물거품이 됐다. 오락가락하던 중앙
“맑음 새벽2시쯤 (중략) 저녁에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에서 온 편지를 전하는데… 떼어보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움직이고 정신이 황난하다. 겉봉을 대강 뜯고 둘째아들 열의 글씨를 보니, 겉에 통곡(慟哭)이라는 두 글자가 써 있다. 간담이 떨려 목 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이다지도 어질지 못한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만 같다. 천지가 어둡고 저 태양이 빛을 잃는구나! 슬프다 내 어린자식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상이 보통사람보다 뛰어 났는데 하늘이 너를 머물게 하지 않는가? 밤 지내기가 1년처럼 길구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0월14일자 난중일기 중 일부다. 자식을 잃은 비통함이 절절이 박혀있다. 육친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즉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게 자식을 잃는 일이다. 그래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단장지애(斷腸之哀)라 했다. 또 ‘부모 주검은 땅에 묻고 자식의 주검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듯이 자식 잃은 슬픔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근심 ‘참척(慘慽)’이라고도 한다. 자식 잃는 것보다 더한 삶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적 관심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다가오는 34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많은 단체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평상시에도 이 같은 관심과 사랑의 구현을 위해서 노력해가야 할 것이다. 모든 장애인의 이용이 가능하도록 시설을 보완 확충하고 유형별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을 확충해 가야 한다. 자폐성장애, 지적장애, 신체적 등 장애자를 위한 특성별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가는 일이 중요하다. 장애인이 참여하는 음악연주회, 댄스, 놀이, 여행도 확대시켜야 한다. 장애인들이 취향에 맞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준다.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연주회와 게임 등은 사회통합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 IT 관련 프로그램 운영을 실시하여 정보 활용능력이 우수한 IT 전문 장애인을 발굴·육성하며 장애인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줄 수 있는 표창제도의 확충도 필요하다. 다채로운 체육행사와 문화행사가 평소에도 이뤄져 가야하는 이유다. 장학금 전달, 윷놀이, 투호, 노래자랑 등 다채로운 문화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