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1999년 터키 이스탄불로 올라간다. 죽마고우와 달랑 배낭 하나 메고 터키 여행을 떠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친형 보다 더 친한 허태수 목사의 권유였다. “좁은 한국에서 놀지 말고 큰 세상을 보고오라”는 특명이었다. 주저 없이 떠났다. 콧수염과 담배를 흩날리며 거리낌 없이 그들은 물었다. “너, 어디서 왔니?” “중국? 일본?” “아니, 대한민국에서 왔어.” 그 대답을 듣자 그 콧수염 사내들은 성큼성큼 왕복 4차 도로를 건너 왔다. 두려웠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잠시. 그 거친 입에서 터진 목소리는 하나, “내 친구들(My friends)”이었다. 이어진 포옹. 그 따뜻함을 잊을 수 없다. 하물며 타국에서 만난 한국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랴. 이스탄불에서 여행사를 하던 후배와 금방 호형호제(呼兄呼弟)가 됐다. 한국 식당에서, 또 그 친구의 집에서, 우리는 ‘라크’로 불리는 터키술을 양갈비를 안주로 대취하는 날들이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후배가 제안했다. “노래방 가실래요?” “여기도 있어
동양 문화에서 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상징할 때가 많다. 그중 국화는 의(義)를 지키고 뜻을 굽히지 않는 선비와 문인의 심벌이다. 또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국화는 이슬이나 밤서리를 견디며 피어난 꽃으로서 예찬된다. 그래서 예부터 국화를 오상고절(傲霜高節)이라 칭하며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서 귀중하게 대접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정보는 해동가요에서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보내고/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고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고 노래했다. 국화는 피는 시기에 따라 추국(秋菊), 동국(冬菊), 하국(夏菊) 등으로 나눈다. 이 중 동국은 가장 늦게까지 핀다. 동국은 다른 국화가 한창일 때 봉오리를 굳게 다물고 기다렸다가 첫서리가 내려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국화옆에서’의 작가 미당 서정주 시인의 전북 고창 질마재 묘소 주변 5만여평을 노랗게 물들이는 그 품종이다. 국화는 꽃을 말려서 술에 넣어 마시고 어린잎은 나물로도 쓴다. 또 떡에도 붙여 구워 먹는다. 꽃에 진한 향기가 있어 관상용으로도 많이 쓰며 또 한방에서는 약재로도 쓴다. 동양의 시인 치고 국화를 노래하지 않은 이가 드물다
강화고려역사재단이 지난 월요일 출범 기념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고려시대의 역사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종합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역사재단으로서 향후 역할이 매우 기대된다. 단군 이래 강화도가 갖는 역사적 중요성과,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돼온 고려 역사의 의미를 교직(交織)시키면서 뿌리 튼튼한 연구 및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아 나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인천시가 강화라는 역사공간과 고려시대의 특성에 주목하여 강화고려역사재단의 출범을 주도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고려의 역사는 개방성과 역동성을 특징으로 한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활발한 교역이 이뤄졌던 시대가 고려시대다. 사회상도 엄격한 신분제의 굴레에 묶여 있던 조선보다 상대적으로 역동적이었다. 대몽항쟁을 위해 강화로 왕도를 옮겼던 기간에도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수많은 보물을 남길 정도로 문화적 수준도 높았다. 이러한 개방성과 역동성은 인천이 지향해야 할 21세기 가치와 부합한다. 강화고려역사재단은 역사 자산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 더욱 단단한 바탕과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 대표를 맡은 고려사 전공 역사학자 박종기 교수(국민대)는 고
오늘 10월 3일은 단기 4345년 개천절이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라는 개천절 노래에도 있듯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이 나라와 민족, 역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우리나라의 조상과 역사, 근본을 부정하고 생각 없이 외래문화를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일제가 우리를 무능한 민족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식민사관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내세우는 ‘뇌 없는’ 일부 집단도 있다. 그런 자들에게 건국 이야기는 그저 신화나 설화,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또 어떤 몰지각한 인사들은 엄연한 우리 역사를 폄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개천절이 어떤 날인가? 서력 기원전 2333년,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됐다. 물론 이에 대한 강단 사학자나 재야 사학자의 견해는 다르다. 재야 사학자들은 중국 쪽의 고대문헌과 출토 유물을 거론하며 한민족의 민족국가 건립은 이보다 한참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강단 사학자 중 일제강점기 이병도의 후계자들은 신화 쪽으로 무게를 둔다. 이에 대해 우리 상고사 분야의 저
얼마 전 포스코 상무의 항공사 승무원 폭행사건,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대리점 사장 폭언, 최근 블랙야크 회장의 항공사 직원 폭행 사건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건 모두 갑과 을의 관계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러한 폭행과 폭언 사례들이 어느 한 개인의 문제만으로 국한될 수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힘이 아닌 공정한 법이 실현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 방패가 되어 주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한 “부처 간의 칸막이를 뜯어내 국민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행정을 펼치고 융합과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현장을 중시하겠다”는 관료조직의 대혁신을 예고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현재 도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시민을 대변하고, 시민들에게 봉사해야 할 단체장과 공직자가 시민들로부터 받은 권력을 공정하게 집행하기보다는 도리어 힘으로 난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회복지도 예외는 아니다. 2012년 1월부터 시행한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과 함께 2012년 5월 「경기도 사회복지사 등 처우 및 지위…
경기도가 ‘세계 차 없는 날(매년 9월 22일)’을 맞아 30일부터 10월6일까지 ‘승용차 없는 주간’으로 선정해 도내 각 지자체와 녹색 캠페인을 전개한다는 소식이다. 즉 일주일간 승용차 없는 주간으로 정하고 도내 공무원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뭐, 내용은 언제나 어디서나 똑같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탑시다’ ‘자가용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합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도청 공무원조차 승용차를 끌고 와 관공서 근처에 주차시키고 출근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행사가 있다. 지난 9월30일 끝난 ‘생태교통 수원2013’ 행사다. ‘미친 짓’ ‘정신 나간 시장과 공무원’이란 극언까지 들어가며 시작한 이 행사는 기적과도 같았다. 세상에 하루도 아니고 한달씩이나 마을에서 자동차를 모두 빼내겠다는 발상을 한 사람이나, 그런 제안을 받아들인 주민들. 물론 처음엔 극심한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대부분이 취지를 이해해 동참했다. 이 시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이다. 많은 국가와 지자체에서 이 행사를 벤치마킹해 갔다. 그러나 실천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행궁동 사람들이 위대하다. 지난
최근 부산지역 정치권은 분주하다. 지난 대통령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동남권 신공항 조기건설’을 중심화두로 내세웠다. 새 정부 구성을 앞둔 상황에서는 부활한 해양수산부가 부산에 입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신공항 관련 용역 조기발주, 해수부 입지 절충안 제시 등으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해양경제특별구역’을 부산으로 가져갈 법안을 만들어야겠다고 한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미래과학창조부와 해수부의 세종시 배치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가 곧바로 번복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부산지역에서 반발했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 가장 큰 항만도시가 부산이란 것을 모르는 시민은 없을 것이다. 하나 항만도시가 부산밖에 없는 게 아니란 것도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최근 서용교(부산 남을·환경노동위·새누리당) 국회의원이 ‘해양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하 해양경제특구법)’의 국회 처리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그는 해당지역의 언론에서 부산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 일꾼으로 소개된다. 든든한 지역선배인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물론 지역정치권이 힘을 실어
오랜 역사를 통해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이들이 권문세도를 누려오면서 절개와 지조를 지킨 이들이 있으나 반대로 변절하거나 후대에 부끄러운 일면을 남겨놓은 이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여러 외침으로 軍亂(군란)과 政變(정변)들이 있을 때 나라를 지켜야할 교목세신들이 썩은 고기 냄새에 개미떼 달라붙듯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날뛰는 일들은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이다. 아주 가까웠던 일제강점기에서만 보아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정조대왕의 시에 喬木白江宅 文衡家宰孫 出爲關西伯 休忘二字言(교목백강댁 문형가재손 출위관서백 휴망이자언)가 있다. ‘교목세신 백강의 집이 대제학 이조판서의 손자로다. 평안도 관찰사 되어 나가니 두 글자의 말을 잊지 말게나’ 하였다. 교목세신에게 내린 흔치 않은 임금의 시다. 정조는 李徽之(이휘지)란 신하에게 이 시를 내렸는데 向陽之地 向陽花木(향양지지 향양화목)으로 가장 신임이 두터웠다. 그것은 여러 대를 거쳐 중요한 벼슬을 지내면서 나라와 운명을 같이한 집안이었다. 시 내용 가운데 두 글자란 정조가 가장 사랑한 백성들의 평안이었으니 우리에겐 이러한 임금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뿐이다. /근당 梁澤東(한국
아, 가을이다. 파란 하늘에서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은 한없이 부드럽다. 자비로움이 온 누리에 퍼져 생명의 기운찬 파장이 흐른다. 초록에서 결실의 색깔인 갈색으로 온 생명들이 자신을 갈무리하는 시절이다. 태양은 공평하게, 가을바람은 공평무사하게, 우리의 텅 빈 가슴을 한없이 채운다. 결실의 생각들이 내 마음의 한 모퉁이에 의(義)롭게 다가선다. 누구나 내 것 귀한 줄은 안다. 나의 생각, 나의 친구, 나의 사람, 나의 재산, 나의 신앙의 귀한 줄을 알아야 이웃의 입장도 생각해본다. 내가 귀한 존재라면 이웃도 역시 귀한 존재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적 관점이 생성된다. 내 것 귀한 줄을 모르면 남의 것 귀한 줄을 몰라 함부로 상대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내 것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唯我獨尊)식 사고방식은 지혜롭지 않다. 이 넓은 하늘 아래서 ‘너’와 ‘내’가 함께 공존하는 방식이야말로 이 세상을 보다 밝게, 보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만큼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이 결실의 가을에 물질은 그리 넉넉지는 않을지라도 어려운
흔히 장수한 노인이 사망하면 ‘천수(天壽)를 다 누렸다’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천수는 하늘이 내린 인간의 수명 100세를 의미한다. 그러나 생존하고 있는 90세 노인에게 100세까지 오래 살라고 향수(享壽)를 축원하면 화를 낸다고 한다. 100세라면 10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런 험한 말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무려 800살까지 살았다고 해서 신선이라 불리며 중국 고대인 장수의 대명사로 알려진 요순시대 인물 팽조(彭祖)가 임종을 맞자 부인은 ‘900세까지 살 수 있는데 너무 일찍 죽는다’며 그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인가.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질문인데도 여전히 인간이면 누구나 불로장수를 꿈꾼다. 사람은 언젠가 죽음을 맞게 되고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해서, 표현은 안 하지만 수명에 대한 감춰진 욕심을 끝없이 추구하는 게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다. 오늘(2일) 노인의 날을 맞아 올해 100세가 된 전국 1천264명의 노인들에게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청려장(靑藜杖·장수지팡이)을 증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