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문학의 백미로 알려진 한중록(閑中錄)은 사도세자의 부인이며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惠慶宮, 1735~1815)이 쓴 작품이다. 혜경궁은 오랜 기간의 궁중생활과 사도세자의 죽음, 큰 뜻을 위해 어린 아들 정조를 시아버지인 영조(英祖)에게 보내는 결단과 정조의 즉위 후 정적(政敵)의 모함으로 친정이 화를 입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근래에 사도세자가 부인이 쓴 한중록의 내용처럼 정신병자인지 아니면 아들이 쓴 사도세자의 행장의 내용처럼 총명하고 똑똑한지에 대한 진정성 논쟁이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각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에 한쪽으로 치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조는 즉위(1776)하자 바로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을 거대하게 개건한다. 또 혜경궁의 거처를 다음해(1777)에 새로 마련하는데, 당호(堂號)는 자경당(慈慶堂, 자경전)으로 뜻은 ‘자(慈)란 자비로운 은혜이고, 경(慶)이란 경사스런 일이 바란다’로, 위치는 창경궁 통명전 뒤 언덕에 있는 위치에 건축되는데 창경궁과 경모궁등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자경전의 건축 관련 자료는 3가지로서 동궐도(1824~?)와 자경전진찬의궤(1827~29년)가 있으며 내용
‘지역의 관료가 바뀌어야 지역이 바로 선다’라는 ‘촌철살인’을 그동안 오산시민들은 왜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기(放棄)했던가. 이는 현재 오산시의 일부 국장들의 ‘무영혼론 업무’에 대해 함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기관은 근본적으로 똑똑하고 유능하다. 그런데 그 유능한 간부 중 극히 일부가 시민이 맡겨 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거나 자리때우기식의 행정을 펼치고 있다면 큰 문제다. 밀실행정만 펼치며 민원인을 거부하고 언론과의 소통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범이 돼야 할 간부가 오히려 불만을 속출하며 수동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하 직원들까지 자질론에 대한 평가를 쏟아내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인사권자인 시장의 결단이다. 그같은 근무행태를 방치하고서 공직개혁을 외치는 것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공직 DNA가 바뀌지 않는 한 공직개혁은 요원하다. 이와 반대로 시정을 위해 몸을 바치는 간부도 있다. 늦게 퇴근하고, 이튿날 아침 새벽같이 출근하고, 토요일 일요일 구분도 없이 나오고, 휴가도 반납하는…. 공직도 떠날 시기가 중
며칠 전 충남 당진에 있는 ㈜선진정공이라는 기업에 다녀왔다. 마침 현장에서 굴삭기 부품 용접 품질검사를 위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요일마다 생산품질을 평가하고 개선점을 도출하는 행사란다. 굴삭기, 각종 캠핑카, 레미콘, 특장차 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설립자인 박성수 회장의 피와 땀이 결집된 기술집약적 우수기업이다. 박성수 회장의 삶은 한편의 휴먼드라마와 같다. 그는 60년대 말 재건중학교(5.16 이후 재건국민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학력무인정 중학과정)를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상경했다. 20대까지 구두닦이, 화물차 조수, 운전기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모은 돈으로 화물차 한 대를 구입해 운수업을 시작했다. 때마침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운수업은 호황을 누렸다. 국가경제를 일으키는 길은 제조업에 있다고 판단한 그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국내에 전무했던 레미콘 등 특장차 제조에 뛰어들었다. 30년간 한 우물을 판 덕분에 지금은 8개의 계열사, 연 매출 2천억 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의 인생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을 닮아있다. 박성수 회장은 취업난으로 힘들어 하는 청년들에게 “요즘 청년
무예 수련은 자신의 몸과 끊임없는 투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 무예 자세라도 그것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수천 번 혹은 수만 번의 동일한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몸에 새겨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몸과 일체화 되면서 자신만의 몸짓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똑같은 자세를 배운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몸이 다르기에 그 움직임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제조건은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과는 다른 형태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일체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바로 나와는 다른 몸짓이지만, 그 다른 몸짓을 내 몸에 맞도록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 수련이라는 것이다. 고된 과정을 거치면서 무예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진화한다. 그런 이유로 무예는 과정은 있지만, 완벽한 정답이나 결론이 없다. 이는 복식이나 음식과 같은 생활문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더 아름답거나 혹은 더 맛있는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또한 시류 혹은 유행 속에서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통해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예의 문화적 속성으로 인하여 무예를 배우는 목적과 의미에 따라 자세나 운동형태가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린이들이 수련하는 무예는…
경기신문이 창간한 2002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한해 였다. 그리고 뜨거웠다.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가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말 있었던 대통령 선거도 뜨거운 월드컵의 열정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경기도 경기지만 그 중심에는 응원의 열기가 있었다. 지금 다시한번 응원에 참여한 국민 숫자를 헤아려도 대단하다. 앞으로 또다시 이런 모습이 재연될수 있을까상상이 어렵다. 폴란드와의 1차전 전국 81곳에서 66만명이 길거리에서 태극전사들을 응원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응원단은 늘어만 갔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포르투갈전에는, 전국 223곳에서 278만명이 길거리를 가득 채웠다. 이탈리아전에는 전국 311곳 350만명이 길거리 응원에 동참하며 골든골 승리의 감격을 맛봤다. 태극전사들이 승리를 거듭함에 따라 거리 응원의 규모는 커져만 갔다. 스페인전에서 전국에서 500만여명을 기록한 데 이어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는 무려 650만여명이 거리 응원에 나서는 기록을 세웠다. 대표팀의 선전과 함께 전국으로 확산된 붉은 악마의 이같은 함성은 세계속에 한국의 힘을 각인 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의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하는 응원 구
길, 긴 길 /황학주 연년이 내가 많은 비를 맞아 서 나의 속도는 몇 년째 잘 자라지 않았다. 삶의 불이 밋밋한 배에 지피는 중일까 날이 새는 길 위에서 당기는 창자를 가만히 참아보았다. 연년이 내가 많은 비를 맞아서 장작불에 정숙을 피우며 긴 길, 푸릇푸릇한 잡풀의 무엇을 줍고 싶은 긴 길이었다. 몸이 몸의 희망을 버렸는지 모르지만 연년이 내가 많은 비를 맞아서 쓸쓸하게 손이 떨리는 저녁이 홀로 필요했다. 나 이대로 연년이 많은 비를 맞은 이 가슴의 옷을 주워 안고 서향의 길가에 조용히 꽃그늘을 세워놓고만 싶다. 시가 슬픈 것은 삶의 반영일지 모르지만 함축된 그늘에서 외로움들이 찾아든다. 집 밖에서 보고 싶은 햇빛이 병상에 누운 어떤 환기를 고뇌하고 있다. 다들 혼자서 갈 수 없어서 누구와 동행을 삼아 앞날을 개척해 가는 구도자의 길이다. 어떤 길이든 갈 수가 없다는 이 형언하기 어려운 고독감에 비하면 인간의 의지란 대체로 무엇인가. 간다는 것은 무엇이고, 길을 만들어가는 일들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진보, 변화, 화해, 자아라고도 할 수 없는데 마음의 통일을 이루긴 어렵다. 시간은 길고 세월은 읽을 수 없을 만치 빠르게 지나간다. 한줌의 빛과 기억, 그 기
취업자가 원하는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대기업취업을 선호하여 중소기업은 인력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생태계에서는 중소기업이 중산층으로 경제를 살일 수 있는 계층이다. 튼튼한 중소기업 강국을 위해서 전력을 기울려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342만개에 근무자는 1천342만 명으로 전체사업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 인력지원 특별법 등 중기청 소관 법령을 개정하고, 조세특례제한법과 관세법 등 관계부처 소관 법령개정을 추진하여야 한다. 중소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고 성장해 가기 위해서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양질의 제품생산을 이뤄가야 할 때다. 중소기업 중 소상공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을 직시하여 이에 적절한 정책을 추진해 가야한다. 반면에 제2의 벤처창업 붐을 조성해 가는 일도 중요하다. 벤처기업의 역동성이 제고되고 이에 따른 기술개발과 자금지원이 절실하다. 정부가 과감히 예산지원을 하여야 되는 이유다. 정부는 법과 규제를 개정하는 것과 별도로 중견기업으로의 성장할 가능성이 큰 중견 후보기업군을 집중 지원하기 위해 지방 소재 강소 기업과 수출기업 지원 사업을 확대해 가야한다. 수도권외의 유망 강소기업을 발굴해
가장 우수한 친환경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물론 단거리나 장거리 일 때만 가능하긴 하지만 대기오염을 방지할 뿐 아니라 건강도 향상시켜 주는 요즘말로 ‘착한 교통수단’이다. 외국의 경우 자전거 이용이 활성화된 나라는 일본 중국 네덜란드 등인데 이 중 네덜란드는 1인당 자전거 보유수가 무려 1.2대나 된다. 같은 유럽국가 중 자전거 이용률이 높다는 덴마크(1인당 자전거 보유대수 0.83), 독일(0.77), 스웨덴(0.67)과 비교해 봐도 압도적으로 높다. 게다가 국민 86%가 자전거를 이용한다고 한다. 총리도, 시장과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도 웬만하면 출·퇴근 시 자전거를 이용한다. 우리나라의 소위 ‘높으신 분’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여건이 잘 조성돼 있기도 하다. 게다가 고위 정치인과 관료,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 별도로 어깨띠를 메고 피켓을 든 캠페인을 벌이지 않아도 국민들이 자전거를 이용한다. 우리나라 순천시, 여수시, 아산시, 영주시등도 자전거 이용이 활성화 되어있는 도시들이다. 특히 순천시는 공공자전거가 활성화되어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끈다고 한다. 시내 어디서나 자전거를 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