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백남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그의 예술을 제대로 안다고 여길 사람은 백남준 이외에 세상에 없는 것 같다. 한 천재의 예술에 새겨진 지식(방대함)과 깨달음(심오함)과 실천(파격성)의 삼위일체를 도저히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창조성의 절대조건으로 지식의 융합 혹은 통섭이 유행어가 되고 있지만, 인류의 지적재산으로서의 동서양의 ‘신화’를 테크놀로지와 깊숙이 결합한 백남준의 큰 비전, 큰 마음, 큰 실천에 비할 바가 못된다. 현대문명 마저도 신석기 혁명의 토대 위에서 개화한 것이며, 이에 비할 때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IT 혁명은 더없이 작아 보인다. 백남준은 빛나는 문장을 많이 남겼다. “나는 TV를 갖고 작업할 때마다 신석기를 떠올린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자연이 아름다운 까닭은 자연이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이 (그냥) 변하기 때문이다”, “영원성-숭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병이다” 등. 우리는 음악기기란 악보에 기재되어 있는 음들을 소리로 만들어내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라는 일반적
우리의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덩달아 바뀌는 단골메뉴가 된지 오래다. 5년을 견디지 못하는 정책으로 백년대계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가소로운 일이 된 것이다. 학부모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마조마하면 혹시나 했다가 금새 역시나로 돌아선다. 마음이 여간 심란한 게 아니다. 변덕꾸러기 교육정책의 틈새에는 사교육시장의 거대한 손이 더 분주하게 움직이고 공교육이 이제 질식사 일보직전에까지 이르고 있다. 역대 정부마다 사교육비 절감 계획은 여지없이 망가지고 말았다. 급한 나머지 이에 대한 대안 마련도 졸속처리 될 수밖에 없는 교육현장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집권한 정권마다 교육정책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근본적인 교육만은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미래의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당위적 요구가 우리 교육의 기본 목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정권의 교육관이 교육과정을 뜯어 고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를 금치 못하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은 오히려 사교육시장의 급성장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 예사롭지 않다. 사교육비 절감 대책이랍시고 내놓을 때마다 사교육업체의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는 기현상이
고령화 사회는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또 고령화 사회의 정착에 출산률까지 떨어지게 되면 사회적 생산성을 추락시켜 결과적으로 국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고령화 사회는 사회적 비용지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고령사회의 선진국형 노인수발 서비스인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지난해 7월 1일 시행된 지 만 1년이 되었다. 치매와 중풍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병수발과 가사돕기, 목욕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제도는 점점 무거워지는 노인봉양의 부담을 사회가 함께 진다는 취지로 도입돼 노인복지의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1년이 흐르면서 주위 가족들에게도 경제·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여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기관의 경우 지난 5월말 현재 요양시설 2천16곳, 재가시설 1만3천15곳으로 도입 당시보다 각각 2배 가량 늘었다. 서비스 신청자도 47만2천여 명으로 1년 만에 약 20만 명 증가했고 이중 수혜대상자로 인정된 1-3 등급자의 수도 25만9천여 명으로 11만 명이나 확대됐다. 양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과도 확인되고 있다.…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은 해마다 반복돼 온 자치단체의 영원한 숙제다. 지난해의 경우 경기도의 몇몇 자치단체는 재래시장 살리기 대책마련에 실패했다. 그 결과 어렵게 받아온 중앙정부의 예산조차 반납해버린 쓰라린 경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렇다 할 성공사례가 없다는 것은 사업집행자들의 무소견과 창의적인 기획능력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패한 지자체의 대부분은 재래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근본취지의 이해부족에 따른 피동적인 정책수행의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간판 정비하고 보도블럭 바꾸는 현대식 아케이드 설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전통상품을 개발하고 지역주민들과의 교감을 통한 물품판매 전략은 외면한 채 오직 시설개보수 정도의 수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들의 예산편성도 문제다. 수첩 들고 나가서 하수구 정비에 얼마, 지붕 씌우는데 얼마, 보도블럭 까는데 얼마... 그리고 어쩌다 한 번 재래시장 축제랍시고 전국의 엿 장사나 불러들이는 게 고작이었다. 창작은 모방에서부터 출발한다. 벤치마킹은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담당 공무원의 창의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책의지 속에 그만한 창의력이 담겨져 있느냐…
백운호수로 유명한 의왕시는 지난 1989년 1월 1일 시로 승격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살림살이가 넉넉치 못했다. 의왕시의 재정자립도는 45.9%로 전국 시평균 54.9%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비교적 살림살이가 나은 경기도내 시지역과 비교해서는 더욱 빈곤하다. 의왕시가 이처럼 재정이 빈약한 것은 넓지 않은 면적에 그린벨트 등 이런저런 규제가 많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왕시에 요즘 경사가 났다. 삼천리자전거 공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렇다할 제조공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의왕시의 전광석화 같은 행정처리가 단연코 화제다. 삼천리자전거는 오전동 151의 1 일원 옛 해태제과 부지 8천309㎡에 지상3층, 연면적 1만2천701㎡ 규모의 생산공장을 설립하겠다는 내용의 공장신설승인 서류를 지난 24일 시에 접수했다. 접수 다음날인 25일 시는 11개 부서 관계자들을 긴급 소집해 실무종합심의회를 열고 삼천리자전거 의왕공장 신설 승인을 하루만에 처리했다. 공장신설 승인에는 통상 2주일이 소요되지만 부서간 사전조율을 통해 삼천리자전거 의왕공장 승인건을 신속히 처리했다고 시는 설명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삼천리자전거가 중국에 공장을 운영해오다 국내 자전거 이용자가
좌절(挫折), 역경(逆境)이란 단어가 있다. 좌절을 딛고, 역경을 이기고, 이 말 뒤엔 반드시 딛고 또는 이긴다는 말이 붙어야 제 맛이다. 말이 쉽지 인생 도처에 실패의 위험성이 크게 입 벌리고 있다. 설산(雪山)의 크레바스(crevasse)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져나오기 힘드나 가끔 좌절과 역경을 이긴 사람들의 이야기에 뜨거운 갈채를 보내는 건 반전(反轉) 드라마를 보는 재미와 같다. 포기할 쯤 스스로가 어금니 물고 채찍질하고 독려(督勵)해서... 하여간 보통 결심이 아니면 빠져나오기 힘든 법이다. 모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월계관(月桂冠)이다. 얼마 전 둘째 놈이 “심심하고 우울할 때 보세요” 하면서 DVD 한 장을 건넸는데, ‘더 레슬러(the wrestler)’였다. 대강의 스토리는 익히 떠들썩한 신문 광고를 통해 알고 있다. 바닥에는 관객들을 유혹(誘惑)하기 위한 과장된 내용이 깔려 있지만 황혼기에 들어 선 중년의 프로레슬러 이야기다. 물론 사랑 이야기도 드문드문 섞였고 외동딸과 부녀지간의 애증도 간혹 섞여 있지만 우리나라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만큼은 누선(淚腺)을 자극하지…
경기도가 지난해 11월부터 경기침체로 위기를 맞은 가정을 무기한, 무제한으로 지원하는 ‘무한돌봄 사업’을 시행하는 가운데, 변호사가 이들에게 무료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도는 지난 2월 19일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수원지방변호사회와 함께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을 지원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 변호사회 회원 421명은 법률상담 등을 무료로 해주기로 약속했다. 수원지방변호사회는 성남, 안산, 여주, 평택, 안양 등 5개 지회로 구성돼 있으며 전국에서 서울지방변호사회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이들은 “변호사가 참여하는 영광을 달라”며 “법 안에서 정부의 지원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위기가정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무료법률서비스 상담을 이용한 무한돌봄 대상자는 화물차 업체와의 계약파기건과 공사물품대금을 받지 못해 상담한 2명에 불과했다. 또한 현재 이를 관리하는 변호사는 1명 뿐이였는데, 그는 “무한돌봄 무료법률서비스 지원 상담신청 민원이 많지 않아 현재로서는 혼자 관리를 맡고, 각 시·군 변호사에 연락을
요즘 ‘혁신(革新)’이란 단어가 논란거리다. 사전을 찾아 보았다. “일체의 묵은 제도나 방식을 고쳐서 새롭게 함”이라고 되어 있다. 다국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사전에 혁신라는 단어는 이렇게 설명된다. “사물, 생각, 진행상황 및 서비스에서의 점진적인 혹은 급진적인 변화를 일컫는 말이다” (Mckeown, 2008). 많은 영역에서 혁신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전의 상태보다 확연히 다른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난 23일 경기도교육위원회 본회의에서 조돈창 위원은 김상곤 도교육감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혁신학교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며 이같은 발언을 했다. “혁신은 가죽을 벗겨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학교들에게 가죽을 벗기는 변화의 아픔을 줄 수 없다” 진보로 분류되는 김 교육감이 취임후 밀어부치는 핵심공약에 대해 보수성향이 짙은 경기도교육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김 교육감의 공약인 혁신학교 예산 29억원 전액과 초등생 무상급식 예산 절반인 171억원 등을 삭감한 것이다. 이에 질세라 김 교육감은 지난 26일 열린 중등장학행정협의회 특강에서 “혁신이란 용어는 가죽을 벗긴다는 의미가 없고 굳이 어원을 따진다면 아이디어를 창출해서 제품이든 뭐든 새로운
노무현 전대통령 분향소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담배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 직전 경호원에게 “담배 있느냐”고 물었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담배 한 개비 헌정’이 조문 의식의 상징이 되었다. 노 전대통령은 한때 하루 두 갑 이상을 피운 애연가였다고 한다. 생전에 봉하마을 슈퍼에서 담배를 한대 물고 앉아 있던 노 전대통령의 훈훈한 사진이 각인돼 아른거린다. 담배 예찬론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또 생각이 막혀 있을 때 피우는 담배는 묘안을 준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안할 때나 갈피를 못잡고 방황할 때 담배 한개피를 피워 물면 더할나위 없다고 말하는 이도 많다. 담배를 피우느냐 끊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사에 달려 있다. 담배는 기호식품으로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도 못된다.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개인 취향에 따라 끊거나 피우면 그뿐이다. 또 피우고 안피우고 하는 행위에 대한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담배로 인한 나쁜 소식이 그득하다.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이는 일본인 다나베 도모지 씨로 올해 113
서지학자 ‘사운(史芸)’ 이종학(李鍾學)이 타계한지 7년째가 된다. 1927년 옛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 244번지에서 태어난 그는 광복 후 고등고시를 꿈꾸며 법학공부를 했지만 학문의 뜻은 이루지 못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서울이 수복된 1955년 종로5가에 ‘권득서당’이란 책방을 차렸는데 이것이 평생 동안 책과의 인연이 됐다. ‘서지(書誌)’는 서적(書籍)이란 뜻이다. 서적은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자나 그림으로 기록하여 꿰어 맨 것의 총칭인데 도서(圖書), 간책(簡冊), 전적(典籍), 문적(文籍), 서권(書卷), 서사(書史), 서질(書秩), 책자(冊字), 재적(載籍), 서책(書冊), 서지(書誌) 등으로 분류된다. 이종학은 책방 초기에는 헌책을 사고 파는 것을 생계수단으로 삼았으나 역사, 향토사 사료(史料)와 고지도, 희귀 서지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파는 것이 아니라 수집하기 시작했다. 1981년 일본을 처음 방문한 그는 일본 육지측량부가 발생한 ‘지도구역일람도’를 입수한 것을 기점으로 50여 차례나 일본을 왕래하며 한일 관련 서지를 눈에 띄는대로 사들였다. 그 속에는 국내 도서관과 정부 기관조차 소장하지 못한 것도 수두룩했다. 특이한 구조로 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