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마음 깊어지는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사람의 마음만 깊어지는 것이 아니다. 숲의 마음도, 나무의 마음도 깊어진다. 여름 숲은 마음을 넉넉하게 하지만 가을 숲은 마음을 깊게 한다. 가을 숲은 숲길을 걷는 중에도 발걸음을 멈추어 세운다. 멈추어서 지나 온 발걸음을 돌아보게 한다. 지나온 길들을 절로 돌아보게 한다. 살아온 날들을 마음 기울여 들여 보게 한다. 내 삶은 어떠했을까. 내 삶은 행복했을까. 내 지나온 삶은 아름다웠을까. 단풍으로 곱게 물들고 있는 나무의 향기에 취해서가 아니다. 숲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서도 아니다. 숲이 마음 기울여 자신의 지난 날들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나무들도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제 삶을 돌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성장을 멈춘다. 지나 온 삶을 돌아본다. 살아갈 날들을 바라본다. 지난 봄 생명이 움트던 날들에 대한 설렘과 기쁨과 그리움 때문이다. 지난 여름 숲으로 들어오는 모든 생명들을 넉넉하게 품어 주던 풍성함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성찰이다. 제 삶에 대한 돌아봄이다. 제 욕심으로 인해 지나쳤던 것은 없었는지 말이다. 제 어리석음으로 인해 제 삶을 무너뜨린 적은 없는지
경기도가 추진한 세계평화축전이 작년과 다름없이 시민들의 외면 속에서 쓸쓸히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26일 막을 내렸다. 세계평화축전은 작년 손학규 지사의 의욕아래 시작되어 DMZ일대를 중심으로 세계평화의 기치를 높이 드는 행사로 홍보되었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기백억에 이르는 예산을 사용하면서도 국민들에게 세계평화의 인식을 심어주지도 못했고 심지어는 경기도민들 조차 그런 행사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었다. 그야말로 행사만을 위한 행사요 전시행정의 전형이었다. 작년 의회의 제대로 된 감사가 있었다면 전 도민들이 들고 일어나야 할 판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올해는 재고되었어야 할 행사였고 만약에 다시 한다면 작년의 전철을 극복하는 무언가의 대안이 마련되어 있어야 했었다. 적어도 세계평화축전을 왜 이곳에서 해야 하는지, 왜 중앙정부가 아닌 경기도가 해야 하는지, 국민들의 참여가 왜 필요한지, 지금 우리에게 평화의 상대가 북한이라면 북한과는 어떤 화해의 움직임이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명확한 이유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반복해서는 안되는 행사였다. 물론 올해는 작년과 달리 규모와 개최일수도 줄였고 예산 역시 크게 지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민들의…
육군은 28일 유도탄사령부를 창설했다. 나라 밖에서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위협으로 유엔을 비롯하여 주요국들이 떠들썩하지만 나라 안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평화로운 대처방안에 치중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국민이 한반도에서 설마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을 품고 있는 가운데 유도탄사령부가 창설된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북한군은 휴전선 부근에 배치된 사정거리 54km인 170mm 자주포와 사정거리 60km인 240mm 방사포 1천여 문 가운데 수도권에 위협이 되는 300여 문을 동시에 발사할 경우 1시간당 2만5천여 발을 쏟아 서울시 전체 면적의 3분의 1 가량을 초토화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이러한 무기로 수도권의 어느 지역이라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공군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공대지 유도폭탄과 공대공 미사일의 비축목표량은 60일분 8895발이지만, 현재 보유량은 7일분인 2719발이다. 특히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6, KF-16과 내년부터 실전 배치되는 차세대전투기 F-15K에 탑재해 적외선 영상추적 방식으로 22km 밖의 적기를 타격하는…
21세기가 도래하면서 20세기 산업화시대에 확립된 절대가치인 대기업이라든지 은행은 절대 안전하고, 관료는 공공성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기존 ‘질서’들의 ‘절대성’은 붕괴되어 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세계화의 물결속에 지구적 기준이 제시돼 이를 지키도록 강요받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번영을 주도해 왔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나 백화점식 기업운영은 한계에 부딪혀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위기를 타계해 나갈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의 재구축은 우리의 긴급한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참여민주주의의 실천적 장으로서의 지역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지방화’가 주요기준의 하나가 되고 있음은 지금 이 시대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세계화·지방화·정보화라는 역사의 흐름은 이제 어느 개별 국가나 개인의 힘만으로는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세계사적인 커다란 물결이 돼 버린 것이다. 구한말 시대적 흐름에 주체적으로 적응하지 못해 국권의 상실과 민족적 아픔을 가져온 역사적 교훈을 거울 삼아 세계사적인 흐름의 하나인 ‘지방화’라는 거대한 물결에 적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반 시스템을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범지구적 흐름이 되고 있는 민
우리가 기업 경영이나 인간관계에서 성공을 이루려면 먼저 기본으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그 기본이 무엇일까? 성경에서는 그 기본을 간결하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준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면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원리이다. 장사나 기업 경영에서 많은 이익을 내려면 먼저 고객 만족을 잘 실천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사업 경영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성공을 위한 기본 원리는 이렇게 단순하며 어렵지 않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만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 따름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기본은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거나 남을 비판하는 데 정력을 허비하고 있다. 요즘에는 ‘윈-윈’이란 말을 많이 쓴다. 기업 경영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좋은 관계를 오래도록 이어가려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give and take’의 기본 원리에 충실해야 함을 뜻한다. 이를 ‘상생(相生)의 원리’라고도 한다. 회사는 고객이 기대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고객은 그 대가로 회사에 수익을 안겨 주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 편에만 유익을 주면 얼마 안 가 균형이 깨어져 잘 나가던 사업
좌와우, 개혁과 보수, 진보와 중도 논쟁 속에 한해의 3/4의 지났다. 한해의 결실을 기뻐하며 한가위를 준비하는 국민들의 마음속은 허전하다. 26일 세계 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지수에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조사대상국 125개 중에서 작년 19위에서 24위로 떨어졌다. 5단계 하락한 것은 시장 효율성 저하와 제도 분야 (공공부문의 효율성)의 낙후가 주원인으로 나타났다. 조사에서 이용된 9개 기본 항목 중에서 7개 항목이 퇴보한 결과이다. 가장 크게 밀려난 부분이 시장 효율성, 노사관계, 각종 법과 규제 체계 등이 작년 32위에서 43위로 11계단이나 떨어졌다. 시장효율성이 하위항목인 노사협력관계 악화가 큰 이유이며 노사 협력 관계는 81위에서 114위로 악화되었다.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민간 및 공공기관의 제도를 개선하고 농업정책의 개선과 유연한 고용 및 해고 관행의 도입, 금융시장과 은행의 개혁을 통해 시장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의지에 달려있다. 냉전시대 이후 세계는 이념논쟁을 중단하고 경제 번영과 국익을 위한 노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리민복을 위한 무한경쟁의 고속도로에서 철저하게 승자만이 살아남는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 지 여러 해가…
평화기원 등불을 켜며 막을 올렸던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의 ‘세계평화축전’ 행사가 도민들에게 어려운 답을 요구하고 있는 듯 하다. 평화라는 추상적 의미를 도민들의 마음에 되새기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성공했나, 실패했나라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질문인 만큼 답도 애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게 중심은 자꾸 과제만 남긴 행사라는 쪽으로 기운다. 행사 예산은 지난 해 80억원의 8분의 1 수준인 10억여원, 행사 기간도 지난해 40일의 10분의 1인 단 4일이었다. 턱 없이 부족한 예산과 행사 기간이 작년에 비해 적었던 것도 성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산과 기간이 적었다하더라도 축제의 기본 취지와 의미를 깊이있게 전달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먼저 여타 행사들과 차별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 세계평화축전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한 마디로 ‘평화’를 떠올릴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얘기다. 예산이 적다는 이유로 지난 해 많은 관심을 모았던 강연회와 토론회 등의 학술회의는 찾을 길이 없었고, 그만큼 깊이있는 고민과 미래계획의 장도 볼 수 없었다. 굳이 차별성을 찾으라면 실향민과 외국인 등 신
오늘도 역시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겨본다. 어른들보다 한 옥타브는 족히 넘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선생님!’을 외치며 뛰어와 안길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니 히죽이 웃음까지 난다. 마냥 즐겁기만 한 출근길, ‘교사가 체질이구나’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발령을 받아 첫 출근한 학교는 그야말로 전쟁통과 다를 게 없었다. 5~6시간의 수업은 기본이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온갖 잡무와 쉴 틈 없이 날아드는 공문들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람 정신을 들락날락하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으며 하루를 36시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괴성을 지르게 만드는 곳, 그런 곳이 바로 학교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살이 학교생활도 어느덧 적응되었을 무렵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조금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에 교사만큼 바쁜 사람이 또 있으랴? 다들 학급 경영이다 뭐다 해서 눈뜨고 있는 동안은 연신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는가? 마치 멀티머신처럼 말이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선배 교사들을 쫓아다니며 귀찮으리만큼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밤늦도록 온갖 교육 사이트를 검색해대기
새롭다는 것은 항상 사람을 들뜨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항상 희망을 갖게 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개나리꽃이 만발하는 3월, 나는 매년 개성이 넘치는 천진스럽고 귀엽고 예쁜 아이들과 만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서면 여러 광경들이 벌어진다. 무엇이 두려운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저 울기부터 하는 아이, 행여나 엄마가 혼자 가버릴까봐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아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듯 교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아이, 카펫에 얌전히 앉아 내 이야기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아이. 나는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소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뚜렷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만큼 아이들을 통솔하기 어렵고 아이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 키우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아들이 예절바르고 바른 인성을 가진 아이로 지도하기 위해서 효행 지도와 매일 칭찬해 주기를 실천하고 있다. 효행지도는 태몽이야기, 태어난 경위 및 자라온 과정을 부모님과 함께 알아보게 하고 있다. 부모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항상 무한한 사랑을 주시고 언제나 자식 잘 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자식에 대한 기대가…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고 있는 아저씨를 보며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쉴새없이 삐약거리는 노란 병아리를 바라보면서 과연 저렇게 이쁘기만 한 병아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울어대며 유혹하는 저 병아리들의 울음을 뒤로하고 그냥 집으로 가야할지를 말이다. 결국 한시간 만에 결정을 내린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백원짜리 하나를 아저씨 손에 쥐어줬다. 노란 병아리 한마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지금 기억으로는 내 품안에 있는 병아리를 보고 어머니는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그땐 오래 살지도 못하는 병아리를 사 왔다고, 이걸 무엇에 쓰겠냐고 혼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별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내 힘으로 병아리를 지켜낼 수 있을 거란 하찮은 믿음에 화를 낸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이 병아리는 전적으로 너의 책임”이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말처럼 그 작은 병아리는 오래 살지 못했고, 난 그 슬픔에 한동안 참 많이도 울었고, 또 한동안 닭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지금 나는 그때 어머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그것은 내가 한 행동에는 가끔 엄청난 책임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