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공통의 화두가 ‘환경’과 ‘자원’이란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 하다. 스턴보고서(stern Review)는 현재와 같은 에너지 다소비 체제가 계속될 경우 인류가 치러야할 경제적 손실이 연간 세계 GDP의 5~20%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에너지의 대량 투입에 기대고 있는 오늘날의 산업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경제는 성장을, 인류는 생존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높다. 선진국들은 이미 요소 투입형 성장방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녹색산업에서 희망을 찾은지 오래다. 자원 효율적 산업 육성은 이제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려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산업과 인류의 삶의 질, 새로운 성장동력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행보가 됐다. 세계 10대 에너지 소비국, 더욱이 이중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선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녹색성장’에는 ‘환경’과 ‘경제’가 모두 담겨있다. 성장을 지향하되 환경을 고려하고, 이를…
튀어 오르는 공의 반발력은 던져진 공의 속도에 비례한다. 내리 누른 힘만큼 그 반발력도 함께 튀어 오른다는 것이다. 무리한 법과 제도의 시행에 뒤따르는 후폭풍이 꼭 이와 같다. 사교육을 막으려는 눈물겨운 교육정책의 무리수, 즉 규제만으로는 사교육의 팽창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값 사교육비 공약은 이미 산으로 올라갔다. 교육을 살리겠다는 정책들이 학원부양책으로 또는 ‘교육 차별’로 뒤집어지고 말았다. 생선 한 마리를 구우면서 이사람, 저사람 젓가락 쥔 사람들이 들여다 볼 때마다 뒤집어 놓으니 그 생선이 온전할 리가 없다. 익기도 전에 살은 찢기고 터지고 해서 누더기가 되어 버릴 것이다. 꼭 그 형국이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교육정책을 추스르는 일은 공교육의 위상정립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옳다. 경쟁력 높은 공교육이 있는데 구태여 고액경비 들여가며 사교육시장으로 달려갈 학부모는 아무도 없을 터, 더 이상 규제하고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접어야 한다. 미래형 교육과정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일면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다. 교과목 수를 줄이고 수업편성권을 확대한다는데 누가 반대할 것인가. 반대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 시행 이후를 예상해보자. 교과목이 줄어든다
남양주시와 구리시가 시 통합을 둘러싸고 격렬한 찬반 논쟁을 펼치고 있다. 이번 논쟁은 이석우 남양주 시장의 자율통합 발표로 촉발됐다. 이 시장은 중앙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행정구역 자율통합을 하나의 추세로 보고, 양시의 통합을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다는 판단 아래 선제적으로 발표한 듯하다. 하지만 박영순 구리시장은 자율적 통합이라면 양시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 없이 발표한 것은 유감이라는 입장인 듯하다. 따낸 그렇다. 강제통합이 아니라 자율통합이라면 사전에 양시 대표(시장, 시의회 의장, 시민단체장 등)가 만나 피차의 입장 정리를 끝낸 뒤에 양시 시장이 공동 발표를 하는 것이 종래의 관행이고, 순서였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한 가지 절차를 빼먹는 바람에 통합이라는 당위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마치 어느 쪽이 승기(勝氣)를 잡느냐는 패권 다툼 양상으로 바뀌고 말았으니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었다. 알다시피 행정구역 통합은 ‘지방행정 체계 개편’의 일환으로 반듯이 실현되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다만 인위적 통합보다는 자율통합을 권장하고 있을 뿐이다. 통합의 기류를 알려면 국회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3월 지방행정체계개편 특위가 발족
우리사회 구석구석 소통의 부재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나 미디어법과 관련하여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나라 전체가 폭력의 현장에 있는 듯 한 착각이 들며 내가 순간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개개인 갖고 있던 주된 관심사가 사회적인 합의를 거치며 제도화 되는 과정에서 들어난 갈등이 소통(疏通)되지 못하면 첨예한 갈등사안이 되어 정치의 핵심적인 쟁점이 되어 또다시 국회에서 만난다. 소통(疏通)의 사전적 의미는 왕래(往來)와 상통(相通)이다. 막히지 않고 서로 통한다는 것, 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한다는 의미이다. 무엇이 소통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일까? 소통하는 과정에는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 최소한 절차가 보장 된 것 이라면 우리는 합리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장된 절차마저 지켜 지지 않은 것이라면 한쪽 일방의 의견을 관철하기위한 싸움판에 지나지 않는다. 싸움도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기도 하나 이미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사회적 비용 부담이 높아지며 어떤 경우에는 이미 갈등조정을 위한 시위를 떠난 경우도 많다. 이러한 싸움판은 대체적으로 힘이나 권력을 가진 쪽의 일방적인 밀어…
더위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근 이상고온 현상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폭염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기상청에서 강력한 북태평양 고기압으로 폭염주의보가 자주 내려질 것으로 전망해 어느 해보다 폭염의 피해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폭염 피해 유형을 살펴보면 장기간 야외 활동시 일사병, 열사병, 열경련 등의 질병 발생가능성이 증가하고, 열대야가 지속될 경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생체리듬이 깨져 개인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특히 노인과 어린이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사망률이 높게 나타난다. 아울러 각종 수인성 전염병 발병 가능성 증가, 농축수산물 등의 생산성 감소, 에너지 사용이 늘어나는 등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기소방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피해와 도민들의 생활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폭염 대비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Call & Cool 구급차’의 운영. ‘Call & Cool 구급 서비스’란 모든 구급차에 얼음조끼와 생리식염수, 검안라이트, 체온계, 정제소금 등을 구비해 열 손상 환자 발생할 경우 신속한 이송 및 응급치료가 가능토록 하는 것을 말한다. 또 무더위에 취
무거운 것은 다 내려놓고 가슴을 옥죄어 오는 부피만큼 먼지만한 것도 다 털어내고 고르게 평정하는 자연의 숨소리 느리게 느리게 돌려놓고 안으로 침잠하는 법을 익힌다. 세상의 인심 말하지 말 것이다. 속되다고 오열하지 말 것이다. 다 주고 또 주고 누구나 갈 때는 빈껍데기인 것을. 시인 소개 :1960년 경남 사천 출생, <문학마을>로 등단, 시집<불의 영가>외 다수, 경기문학인협회 사무국장, 한국미술협회 회원
시조시인이면서 사학자인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이 타계한지 올해로 17년째가 된다. 그가 생존에 남긴 수필 가운데 ‘한 눈 없는 어머니’라는 작품이 있다. 이 글은 한 후배 젊은이가 찾아와 담소를 나누던 끝에 호주머니에서 돌아가신 어머님 사진을 꺼내더니 선생님이 잘 아시는 아무개 화가에게 부탁해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간청을 받고 나서 답장삼아 쓴 것이다. 젊은이의 부탁은 이런 것이었다. 어머니는 일찍이 한쪽 눈을 실명해 평생 동안 힘겹게 사셨다. 그래서 이번에 화가가 초상화를 그릴 때 두 눈을 다 완전하게 그려 주면 보수는 넉넉히 치루겠다는 것이다. 노산은 처음 돌아가신 어머님 사진을 내보이며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에 효심이 대단하구나 싶어 감동했는데 나중에 실명된 눈을 온전하게 그려 달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아무 말도 못했는데 그 답을 글로 옮긴 것이다. 글 내용은 이렇다. ‘그 즉석에서 나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나의 열리지 않던 입에서 분명히 듣고 간 것이 있을 것이오, 말없던 나의 입에서 듣고 간 것이 없소? 만일 없다면, 이제라도 한 마디 들어주오. 그러니 내 말을 듣기 전에, 그대는 먼저 그대의 품속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 자세히 들
우리나라의 국회가 개판이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개판’이란 말을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정의하고 있다. 나는 ‘개판’이란 말이 어떤 새로운 판이 시작되기 직전의 혼란상을 가리키는 ‘개판 5분전’과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인지, 사람의 행위와 구별되는 개들의 난잡한 행위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 국회의 모습을 떠올릴 때만은 개판이란 말의 의미를 ‘사람판’과 구별되는 ‘개판’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룩한 이후 국회가 품위있게 회의를 진행한 적이 과연 몇 번이었던가! 최근 몇 년간의 경우만 돌이켜보아도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들은 사학법 제개정 문제를 두고, 한미 FTA 비준문제를 두고, 미디어법 표결 문제를 두고 참으로 줄기차게 ‘짐승처럼’ 싸웠다. 사람이면서도 본회의장 단상에 뛰어오르고 발길질을 하면서, 물어뜯고 주먹질을
투철한 도덕성과 앞장서 실천하는 봉사의 자세, 이른바 지도자들의 으뜸덕목이다. 그러나 진정 좋은 세상은 지도자가 쓸데없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일 터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다 세상의 주인이 되고 제 몫을 해내는 세상이라면 굳이 지도자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헛되이 품어보는 망상이기는 하지만 각자가 주인이 되어 올바르게 움직이고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굳이 앞장서 이끌어주는 지도자가 쓸데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의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역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 맞는 도덕적 봉사를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표개발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재미있는 결과가 발표됐다.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수는 100점 만점에 26.48로 나타났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낮은 수치는 우리 사회의 고위층으로 인식되고 있는 정치인, 고위공무원, 대기업 CEO 등에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인 것이다. 반면 시민단체간부, 노동조합간부, 대학교수 등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제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