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항상 특별하다. 어릴 적에는 눈도 오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로 예쁘게 장식된 세상을 보면서 참 즐거운 시즌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12월은 지난 1년을 정리하며 만감이 교차하기도 하고, 미처 끝마치지 못한 일들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특히 올해는 전 세계를 쓰나미처럼 덮친 금융위기와 이어진 실물경제 위기로 어디를 둘러봐도 추위와 우울함이 넘친다. 게다가 신문이나 방송, 세미나 등에서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은 앞다투듯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라느니, ‘내년 봄은 정말 어려울 것’이라느니 어두운 전망들을 매일 쏟아내고 있어, 걱정이 바위처럼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올해를 돌아보면 연초에 우리나라에선 새 대통령이 취임하였고, 11월에는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이며 40대의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변화를 갈망하는 세계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8월에는 북경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어 온 국민들에게 승리의 여름밤을 선물하기도 했다. 올해는 단 한 차례의 태풍이나, 연례행사 같던 수해가 없어, 비교적 평안하게 한 해가 지나갔다. 올해 좋은 날씨 탓에 거의 모든 농작물이 대풍이라는 기쁜 소식
세상은 돈 때문에 난리법석이다. 미국 자동차 빅3인 GM·포드·클라이슬러의 CEO(최고경영자)들이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열린 ‘자동차 산업 금융지원’ 청문회에서 수모를 당했다. 이들은 자가용 비행기를 놔두고 직접 자동차를 몰고 디트로이트에서 워싱턴 DC까지 800km를 달려 왔는데 의원들은 그것 조차 ‘전시용’ 이라고 꼬집었고, “안전벨트는 했느냐”, “돌아갈 때도 직접 몰고 가겠느냐”고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납작 엎드렸다. 그러면서 “연봉 1달러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그들 말마따나 벼랑 끝에 선 자만이 할 수 있는 구차한 호소였지만 미국 의회와 정부는 여전히 냉담하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옛날 우리나라 거지들이 “한푼만 줍쇼” 하며 구걸하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푼은 한 닢의 돈이나 아주 적은 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푼과 비슷한 말로 돈푼, 돈냥, 푼돈 같은 것이 있었다. “돈푼이나 있다고 거들먹 거린다.”는…
물류창고가 꽃다운 나이의 젊은청춘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사람먹는 하마로 변해 버렸다. 지난 1월에 이어 이번에 또 다시 화재가 난 이천의 물류창고가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처럼 변한 것을 보면서 이제는 건축법상의 허점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힘을 얻고 있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다수가 희생 당하는 현실을 감수하기에는 너무나 뼈아픈 현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1월7일 '코리아 2000' 물류창고 화재로 40명의 목숨을 앗아간데 이어 이번에도 지난 5일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주검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태가 재발하자 해당 자치단체장인 조병돈 이천시장은 허탈함과 안타까움에 긴겨울밤을 하얗게 세우고 있다고 한다. 지난번 화마가 휩쓸고간 이후 조시장은 고용창출은 없고 사람잡는 하마인 물류창고에 대해 허가조건을 검토해봐야 겠다고 밝혔지만 이제는 검토라는 선택에서 필수가 된 것 같다. 특히 이천 시민들은 해를 가릴정도로 엄청난 화재모습을 바라보며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3대 재앙이라 할 수 있는 水.風.火에 이천은 한가지를 더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로 화재의 근원이 된 K 물류창고의 G모씨가 이천에 발을 들여 놓음으로 생겨난 말로
세계적 경제위기로 지구촌이 고통에 휩싸인 이때 인도의 뭄바이에서 발생한 잔혹한 테러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둡고 불안하게 한다. 인도 경제 중심부의 상징적 호텔을 대상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이번 테러는 9.11 테러 당시의 공포를 상기시킴에 충분하다. 45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테러를 누가 왜 저질렀는지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인도 내부의 불평등에 불만을 품은 자생조직의 소행으로 추정하는 주장이 좀더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만 외국인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알카에다와의 연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이든 그리고 어떤 대의나 명분을 내세우든 무고한 사람들을 무차별 살육한 행위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이점은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이번 테러를 규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규탄이나 강경 대응만으로 테러를 종식시킬 수 없음을 역사는 이미 증언하고 있다. 국내외적인 불의나 종교적, 인종적 차별 등이 극단주의와 증오에 바탕을 둔 테러리즘을 낳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공격이 무슬림을 처형한 것에 대한 복수라고 밝히는 등 테러범의 발언이 그 단적인 예다. 19세기에 인도에
지방 자치 단체(地方自治團體)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지역에 대하여, 국가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아 지방적 사무를 처리하는 지방 자치의 단체를 말한다. 또 이들은 해당 지역 안의 주민을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지방 자치 단체의 관할 구역 안에 주소를 가진 자는 주민이 되며, 주민은 법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95년도 첫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때 많은 도민들은 그동안 관(官)에서 임명하던 단체장을 우리손으로 직접 뽑는다는 큰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또 지방에서 사업하는 사업자들도 지방에서 걷히는 세금은 지방에서 쓰여질 것으로 기대,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했다. 중앙집중적인 사고에서 지방분권화되고 진정한 자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요즘, 주민들이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공무원들의 가치관이 관선때보다 더 중앙으로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양평군이 서울에 있는 언론사들에서 선정하는 상을 받기 위해서 수천만원의 군예산을 쓴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군이 단체장의 치적을 포장하기 위한 행정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뿐만아니라 지난해에도 각종 언론단체에서 주는 상을 수상하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참여정부의 10년을 시민운동의 개화기라고 부를 수 있다. 최근 시민단체에 대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꼭 ‘10년 전’의 꼬리표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권의 부침에 따라 시민운동의 형태가 변하고 사회적 대접이 달라져 온 것도 사실이다.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역할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도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사회적 제도 개혁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대목을 시민운동으로 보는 정치적 시각도 있다. 시민운동에도 계급이 출현했고 그에 따른 대접이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민운동에도 위계가 있고 엘리트주의, 연줄주의, 권위주의적 구조를 갖추게 됐다. 이러한 일반적 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 시민운동의 도덕성을 아무리 부르짖어봐야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가 있다. 왜냐하면 기득권 구조에 대응하고 그와 경쟁하면서 하나의 민주적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과 이들이 수동적 시민에 대하여 능동적 시민으로 형성되는 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을 키워서 시민 권력을 만드는 시대를 우리는 겪어왔다. 지방의 경우 그 기능은 더욱 크게 확대 공급이 돼왔다. 새로운 시민운동 단체들은 지방의 기득권 구조에 대응하고 그와 경쟁하면서
필자는 지난 11월 초 일본 요코하마시에서 개최된 ‘창조적 도시 심포지엄 2008’에 초청을 받아 발표와 토론을 하고 돌아왔다. 이제는 많이 알려져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지만, 요코하마시는 ‘70년대 초반부터 도시디자인 행정을 독자적으로 펼쳐온 지방자치단체로서,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선진적 지방자치단체이기도 하다. 특히, 요코하마시의 도시디자인은 현재 우리나라 각 지자체에 불고 있는 공공디자인, 도시디자인 열풍으로 인해 지난 2-3년 사이에 많이 알려지게 된 도시이기도 하다. 이렇게 독자적인 도시디자인으로 유명한 요코하마시가 왜 ‘창조적 도시(creative city)’를 지향하고 있는가. 어떻게 추진하고자 하는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심포지엄의 주제는 요코하마시가 가지고 있는 도시자산의 보전과 활용에 의해 창조적인 도시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고, 한국, 홍콩, 영국, 일본 이렇게 4개국에서 참가한 국제심포지엄이기도 하다. 심포지엄을 진행하기 전에 요코하마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의 버려진 공간이나 시설에 문화와 예술로 되살리고 있는 사례지들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
1989년 초 어느 날, 미국 롱아일랜드의 C.W 포스트 대학 근교에 있는 나지막한 산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한 청년이 산 속을 돌아다니면서 고목나무를 모으고 있다가 순찰을 하던 경찰의 검문을 받고 제지를 당하게 되는데 이유는 산에 있는 고목나무를 무단으로 가지고 가는 것을 금지하는 법적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한국 유학생은 오래되고 말라죽은 그 고목나무들을 조각의 작품 재료로 쓰려고 한다는 설명을 간절히 했고 사정을 이해한 경찰은 고맙게도 군데군데 고목나무를 모아 둘 테니 가져다 쓰라는 허락을 했다. 하마터면 법을 위반해서 제재를 받을 뻔했던 그 유학생은 그렇게 해서 원했던 고목나무 재료를 풍부하게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뉴욕의 프렛 인스티튜트 대학 조소전공 석사과정에 있었던 이 유학생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나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가 바로 조각가 이수홍 교수(홍익대학교 조소과)다. 그즈음 미국의 유학생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작업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주로 Objet(기성품)과 고목나무를 주워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수홍 작가에게는 이 고목나무가 더없이 좋은 재료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할 수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