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덕이를 잊지 말아주세요!” 뮤지컬 ‘요덕스토리’의 마지막 대사다. 어린 ‘요덕’의 나지막한 외침, 강한 울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요덕 스토리’는 탈북자 출신의 정성산 감독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 ‘요덕’의 인권유린을 폭로한 뮤지컬로 제작 당시부터 유명세를 치렀다. 영화를 전공한 정 감독은 개성에서 군 복무하던 1994년, 라디오로 KBS 사회교육방송을 듣다 발각됐다. 정치범 수용소로 수송되던 중 호송차가 산길에서 구르는 틈을 타 탈출해 한국에 오게 됐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2001년 요덕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작품을 구상했다. 정 감독은 지난 9일 수원(정 감독이 한국에서 적응기간을 가진 도시다)에서 열린 마지막 공연 커튼콜에 무대에 올라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공연을 끝낸 감독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 묻어나왔다. 북한의 가슴 아픈 현실보다, 눈물겨운 남한 착륙기보다, 제작과정에서 불거졌던 정치적 압박이 더욱 큰 슬픔과 기쁨을 가져다 준 듯했다. 북한 인권을 다뤘다는 이유로 한국 내 정치적 압력과 작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공연을 앞둔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추위를 아랑곳 않고 술에 취해 비틀비틀 세상사를 잊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슬픔 같은 체온의 벽이 다가선다. 나 또한 여기여기 송년모임으로 분주한 육체를 이끌고 다니며 지역예술계를 돌아본다. 예술이 무엇인지 답을 내놓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대와 공간과 장르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읽히고 긍정적인 통로라면, 존재에 대해, 세계에 대해, 삶에 대해, 피부에 쉽게 다가서고, 인식체계를 각인시킨다는 측면에서 예술은 삶 그 자체다. 지금 경기지역의 예술은 어떠한가. 예술이란 단체의 이름을 걸고 걷는 모양들이 추위 속에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지역문인회만 보아도 하나의 단체면 될 것을 상징적인 명칭을 입혀, 왜 필요한지, 추구하는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지도 불확실한 채 정신적 혼동을 일으킨다. 게다가 무슨 상이니 해서 수상 장면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좀더 통합을 이뤄낼 수는 없는 것일까. 좀더 질적인 예술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변화를 던지기에는 너무 깊게 병들어 있는 관행으로 오래 걸어온 길이어서인지 아쉬움만 커질 뿐이다. 새해에는 언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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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팔당호의 수질 개선을 위해 11일 해당 지역 7개 시군의 오염원 실태 등을 총괄하여 조정하는 ‘오염원 자료 통합관리 체제’의 기반을 구축키로 한 것(본지 12월 12일자 2면 보도)은 마땅하고 바람직한 조치다. 도가 이날 광주 팔당수질개선본부에서 보고회를 갖고 팔당호 유역을 점하고 있는 가평, 광주, 남양주, 양평, 여주, 용인, 이천 등 7개 시군의 오염원 및 하천 수질, 유량 등의 기초자료를 시군별로 관리함으로써 통합관리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염원 통합관리를 위한 연구용역을 경기개발연구원에 의뢰하기로 한 것 또한 팔당호의 수질 개선을 과학적이고 총체적 관점에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해석된다. 팔당호 오염원 통합관리체제는 오염원의 원인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시군이 어디이며, 그 양이 어느 정도이고, 팔당호에 영향을 미치는 어느 시군을 막론하고 어느 계절에 오염이 심하며, 오염의 종류는 무엇이고, 시군별로 해결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이며 시군이 연대하고 도가 총괄하여 대처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이고, 수질 개선을 위한 노력이 시기별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이로써 팔당호를 식수원으로 하는 경기도민과 서울시민의 쾌적한 생활환
풀뿌리 민주주의 학교라는 지방자치제가 흔들리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지방선거와 관련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난 달 말일로 끝난 후 수원지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검과 성남, 여주, 평택, 안산지청 등 4개관할 지청에서 5·31지방선거에서 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선거사범이 2002년 552명보다 26명이 늘어났고 기소된 인원도 394명으로 3회 지방 선거 때보다 32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자수도 2002년 20명에서 58명으로 2.4배나 크게 늘었다.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면서 부정선거가 줄어 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경기남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선거사범이 증가하였다. 지방자치제의 위기는 선거과정에서 뿐만이 아니라 선거결과 구성된 민선4기 경기도내 일부 지방의회가 보여 준 불미스러운 행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초의회를 대표하던 의장이 자신을 선출해 준 의원들에게 의해 불과 반년 만에 불신임을 받아 낙마하는가 하면 시민들의 비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5천 만원의 예산을 ‘주민들의 왕래도 별로 없는 청사내 로비에 불필요한 상징물을 조성하기 위해 편성하여’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12월 7일과 8일 2일간 지역언
북한의 6자회담 복귀선언이후 북한의 핵 폭탄 시험을 둘러싼 미북 및 남북관계에 감돌던 냉랭한 기운이 어느정도 완화되는 듯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번 북핵사건과 한미FTA사태를 접하면서 문득 경기도와 남북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도의 경우 가장 가까이에 휴전선과 공동경비구역인 비무장지대(DMZ) 등이 코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고, 이중 일부 지역은 경기도와 내접한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협력도 과거 6·25이전만해도 우리 경기도의 일부였던 개성공단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점이 있다. 개성공단은 이미 한미 FTA의 협상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메이드 인 코리아’의 대접을 못받고 있다는 것이다. 공장을 북한지역에 개설했기 때문에 북한을 불량국가로 지목한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 일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남북경협이 꼭 북한에 공단을 짓는 것으로 해결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만약 우리 지역내에 공장을 짓고, 이곳에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다만 북한 근로자를 한정된 지역에서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조건
휘문산은 전북 임실에서 45km나 떨어진 산이다. 이 산이 유명해진 까닭은 6.25전쟁 시절 빨치산의 해방구였기 때문이다. 이들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자유대한의 군인들과 경찰들이 피흘려 희생하였다. 그들 희생자들의 무덤이 산 아래 있고, 그들 가족들이 아직 살아 있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여름 휘문산에서 해방구를 다시 선포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철없는 중학생들 180명 앞에서다. 임실의 임종중학교 학생들이다. 아이들은 전교조 소속 도덕교사의 인솔 아래 휘문산에서 미 전향 장기수들을 포함한 300여명이 참석한 ‘빨치산 추모제’에 참석하여 함께 박수를 치고 표창장까지 받았다. 그날 그 자리에서는 친북반미(親北反美) 주장이 넘쳤다. 반민련 남측본부 명예의장인 이종린은 “남녘 동포들이 회문산에서 용감히 싸웠던 역사를 기리면서 올해는 반드시 미군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외쳤다. 그리고 빨치산 출신이 일행을 인솔하여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우리 부대는 적을 공격하여 무기를 노획하고 적의 옷을 빼앗아 입었다”고 자랑했다. 여기서 말하는 적이란 바로 대한민국 국군이다. 참석자들은 “당 창건 60돌 6·15 공동선언 5돌인 올해 통일은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큰소
창업주 혼다 회장 배려·존중·믿음… 사람경영 성공 마음 큰 CEO로 존경 한미 FTA 협상이 진행중이지만 앞으로 FTA가 체결되면 가장 먼저 미국에서 만든 중소형 일본자동차가 물밀 듯 밀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필자는 갑자기 일본의 자동차기업가 혼다 소이치로가 생각났다. 일본 도큐그룹의 창업자이자 일본상공회의소 소장을 지낸 고토 노보루(五島昇)는 “전후 일본에서 진짜 물건을 만든 사람은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와 소니의 이부카 마사루(井深大), 이 두 사람 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혼다자동차의 실력을 인정해 주었다. 최근 소니가 엔터테인먼트 사업 등에 진출하여 부진하는 동안 혼다자동차는 오직 한 우물만 팠기 때문에 미국내 시장에서 단일 차종으로는 가장 많이 팔린 혼다 어코드를 생산하는 기업이 됐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1973년 창업 25주년을 맞는 자리에서 후지사와 타케오와 함께 현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나이 65세 때의 일이다. 그는 당시 45세의 젊은 가와시마(河島喜好)를 혼다 사장으로 추대하고 본인이 나타나면 후임 사장이 빛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취임식장에도 가지 않았던 인품이 훌륭했던 기업가로 기억에 남게
‘안녕하세요, 경기도청에 김은경 이라고 합니다. 경기도청에 00일자로 00민원을 접수해주셨는데요. 불편함 없이 잘 처리 되셨는지 여쭤보고자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라는 인사말로 나의 소중한 해피콜 업무는 시작된다. 지난 9월, ‘공직경험이 많지 않은 내가 도민을 대상으로 해피콜 업무가 가능할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공직경험부족이 도민입장에서 민원업무처리 상황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민원이 해결되면 고객에게 전화해 처리과정의 만족과 불만족 정도를 이야기하다보니 형식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차츰 고객과의 관계를 좁혀 더욱 깊은 고객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고객도 편하게 대답해 주었다. 고객들의 반응도 여러가지다. 이젠 고객의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만족하는지, 불편한 사항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어떤 고객은 “한번 찾아가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드려야 되는데 죄송하다”며 담당자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칭찬했다. 이런 칭찬을 받을 때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담당자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전화를 했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이
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여당의 김대중, 노무현 후보에게 두 번 패했던 이회창씨가 최근 정계복귀를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민은 개인 이회창씨가 참정권을 가지고 있는 한 정치에 복귀하려는 의사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선거에서 진 사람이 영원히 정치를 떠나란 법은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선에서 참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하고 노후를 무릅쓰고 출마한 후 일생의 꿈인 대권을 거머쥐었지 않은가? 이회창씨의 정치 재개의 명분은 ‘좌파정권의 종식’에 있다. ‘좌파정권’이란 사회주의 노선이나 진보적 개혁정책을 실천하여 자본주의의 폐단을 과감하게 시정하겠다는 정권을 가리킨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좌파정권에 속한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입으로 ‘좌파정권’임을 고백했다. 문제는 양대 좌파정권이 10년이 가까운 이 시점까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도와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 외에 대한민국의 정통성 확립, 지역주의의 극복, 경제성장에 어떤 업적을 남겼느냐에 있다. 이회창씨가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좌파정권의 탄생을 도왔으며, 그 좌파정권이 국가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