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참 불쌍하다. 어느 정도 크면서부터 오로지 공부만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들은 제발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독려한다. 그런데 과연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흔히 학교에서 1등 또는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면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만 보기는 어려운 점도 있다. 공부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퀴즈풀이식 공부이다. 퀴즈 문제로 나올 만한 단편적인 사실들을 매우 폭넓게 섭렵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공부할 경우 박학다식(博學多識)을 기대할 수 있다. 다른 유형은 탐구 또는 문제해결식 공부이다. 이것은 넓은 분야를 섭렵하기보다는 관심 있는 한 분야에 집중하여 탐구하고, 궁금증이 다 풀린 후에야 다른 분야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퀴즈풀이식 공부에 익숙한 학생들은 암기가 공부의 가장 중요한 무기이다. 수학에서조차 공식을 외우고, 문제 유형과 풀이 요령을 외운다. 선다형(選多型)의 객관식 문제를 푸는 데에는 이러한 공부 방식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대부분 퀴즈풀이식 공부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커다란
돌아왔지만...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낮 12시쯤이면 외할머니랑 단 둘이 사는 기현이는 안양5동 소방서 맞은편 주택가 1층에 있는 공부방으로 맨 먼저 달려온다. 공부방이 집보다 더 넓어서, 조금 더 시원하고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할 수 있어서, 또 친구들보다 먼저 컴퓨터를 차지하고 싶어서다. 세상을 한껏 끌어안는 우리들의 터전 안양자주학교는 2005년 3월에 문을 열어 30여명의 당찬 아이들과 10여명의 선생님들이 함께 배우며 사랑하며 아름다운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 학교는 2004년부터 안양지역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셨던 교육에 뜻이 있는 몇몇 분들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를 둔 대표가 함께 1년여 준비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대표인 내가 특별한 도움이 필요했던 내 아이 때문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보니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교육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너무 안타까웠다. 내 아이처럼 이 사회에서 목소리가 작은 소외된 아이들이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서 교육의 기회를 균등히 가지며 행복해질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느껴져 공부방을 만들게 됐다. 안양자주학교는 지역의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운영되는 마을속 작은 학교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최근 안양역전 지하상가 보수공사로 설치됐던 횡단보도의 존치문제를 놓고 주민들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 곳 횡단보도는 지하상가 리모델링 공사로 지하보도 통행을 금지하자 임시로 마련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이 그대로 사용하자는 의견을 제기하면서 촉발됐다. 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간담회를 개최한데 이어 지난 달 25일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주요 참석자인 시의원 3명이 수해복구지원을 이유로 모두 불참, 흐지부지 끝났다. 물론 수해복구지원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들에게 주요 사안이란 인식이 들었다면 복구지원 일정은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한 만큼 참석을 꼭 해야 옳은 일이었다. 또 옛 안양1동사무소 건물 활용방안을 놓고도 시와 시민단체가 서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해진 일정을 따라 자문회의를 열어 방향을 설정하기로 했으나 시는 별다른 사유 없이 이를 취소하고 차후 공청회를 개최한다고 통보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이 시 행정에 있어 사소한 일로 보이지만 시와 시의회가 공청회나 주민간담회를 극히 형식적인 절차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시는 주요 현안문제를 처리할 때 자주 이런 방식을 동원하지만 실제 내부적으
신 천지창조
중국 상하이는 날이 아무리 더워도 40도가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40도가 넘게 되면 관공서와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근무를 할 수 없어 임시 휴무를 선포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기온은 아무리 높아도 39도라고 한다. 상하이의 여름은 보통 5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5일 이상 낮기온이 25도를 넘으면 공식적으로 여름이 왔다고 정부기관에서 발표한다. 7,8월이 되면 낮기온은 보통 35도를 넘고 거의 40도에 육박한다. 밤에도 기온은 3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 소위 말하는 찜통더위가 지속된다. 지리적 위치도 연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습하고 끈적끈적한 날이 많다. 날씨가 덥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과 사무실에는 에어콘이 설치되어 있고 하루종일 가동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느 정도 사는 사람들의 얘기이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에어콘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는 집에서 하루 하루를 생활하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가져온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이다. 국민의 80% 이상이 빈부격차 문제가 가장 큰 사회불안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길거리에 다니는 차량을 보면 벤츠, BMW, 렉서스 등 외제차량이 대부분이고
북위 38도선을 중심으로 하여 남ㆍ북 10도 안에 드는 온대지역에서 세계사를 주름잡은 국가와 민족들이 일어났음은 앞에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같은 지역에 세계적인 대도시들이 시대를 따라 등장하여 그 역할을 다하였다. 우리나라 서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북경, 바그다드, 베를린, 런던, 뉴욕, 시카고, 동경 모두가 한결같이 같은 지역에 해당한다. 그런데 어제 질문을 던진 것과 같이 이 지역에서 때를 따라 특정 민족이나 국가가 일어나 세계사의 주역 노릇을 하였는데 하필 우리 민족은 왜 그런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긴긴 세월 동안 수난과 핍박의 역사를 인고(忍苦)로 지냈어야만 하였을까? 어떤 이들은 국토의 면적이 세계사의 중심무대가 되기에는 너무 좁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이다. 한때 세계를 제패하였던 로마 제국의 본거지 이탈리아 반도는 우리 한반도보다 별로 더 넓지 않다. 또 어떤 이들은 인구 숫자로 우리 겨레가 세계사의 주역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영국의 인구가 우리보다 별로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정체(停滯)된 역사, 인고의 세월을…
국내 경기가 작년 2분기부터 전기 대비 1.4~1.6% 성장을 기록하며 반짝 살아나는 듯 하더니 다시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가 제대로 기를 펴보기도 전에 다시 추락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도 4~5%의 성장조차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경기의 조로(早老) 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출은 계속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건설투자가 마이너스 증가율로 돌아서고 민간소비 회복세도 약화되면서 성장률이 다시 낮아지고 있다. 하반기에도 여전히 고유가, 원자재난, 원화강세 같은 외부요인이 이어지면서 여기에 노조 파업과 이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경영난, 홍수피해 같은 내부요인 등 온갖 악재들이 가세될 전망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볼 때 해외여건이 반드시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고도성장을 통한 또 한번의 도약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경제전선 이상없다”는 식의 낙관론이나 펴면서 경기하강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호도하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특히 “내년에도 완만하나마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금리 추가인상 명분을 축적해가
통일운동 관련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던 북한 수해돕기에 정부참여가 확정되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오던 대북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했고 남북관계는 급격히 경색되어 한반도 긴장은 심화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발생한 남북한의 장마피해가 이런 경색국면을 타개하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새옹지마라더니 수해피해민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러운 생각이지만 대화재개의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던 남북 당국자들에게는 호재가 된 것 같다. 특히 기본 인프라가 구비되어 빠른 복구와 지원체계가 어느 정도 갖추어진 남한과 달리 북한의 피해는 우리의 것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북한의 홍수피해에 대한 여러 억측이 나도는 가운데, 재일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지난달 14-16일 큰물로 인한 사망, 실종, 부상자 등이 총 4천명 선에 이른다고 7일 평양발로 보도했다. 지역적으로는 평안남도의 양덕, 신양, 회창, 성천 등에서 많은 인명피해가 났으며 강원도, 함경남도, 황해북도에서도 인명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가옥피해는 1만 6,667동, 2만 8,747세대에 1,180동의 공공건물과 생산건물이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2만 3
“그 너른 들판을 사시겠다고? 그 금액은 너무 어마어마해서(아니 너무 작고 볼품이 없어서) 나는 상상을 못할 지경이니깐. 힌트를 드리자면 대추리, 도두리 들판에서 지금껏 거두었던 벼의 낱알의 개수만 하다고나 할까. 그것을 일구기 위해 굽혔다 폈던 관절의 운동 횟수만 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한 가지 더. 그들의 시간, 한숨, 울음, 웃음 그것을 내려다보았을 별빛이나 시름을 달래주던 바람의 총량까지 합하면 대충은 나올 것 같다.”(김지태 이장이 정부당국에 보낸 편지 내용 중)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의 이장 김지태 씨 ! 그는 평택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20여 년 농사지으며 이제 팔순을 바라보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두 자식을 키우고 있는 한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다. 그의 부모님은 뇌염으로 남매를 잃은 끝에 얻은 자식이라 부잣집 자식이나 먹였을 원기소까지 먹이며 키웠고 그는 50살이 되도록 부모님 눈 밖에 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소중한 자식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농촌을 떠나는 마당에 그는 대학졸업 후 부모님 모시고 농사짓겠다며 고향 마을에 돌아와 지금은 동네 어른들한테나 젊은 후배들에게나 신망을 받는 농사꾼이다. 또 그는 평택 팽성읍 대추리가 일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