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딱이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 많다. 국민과 정부, 학생과 교사, 고객과 은행, 소비자와 상인, 독자와 신문의 관계 등이 그 예다. 또 하나 절대적인 신뢰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시민과 경찰이다. 경찰은 시민과 국가의 치안을 담당하는 기관이면서 현장 지킴이이기 때문에 시민은 경찰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찰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남다르고, 경찰 또한 시민을 철저히 보호할 책임과 사명이 있다. 그런데 그토록 믿었던 경찰관이 도둑질을 일삼았다면 이는 시민에 대한 배신에 더해, 치안의 몰락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보도된 바와 같이 화성경찰서 모 순찰지구대에 소속되어 있는 이모 경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민간인 배모와 함께 초상이 난 집에 십중팔구 사람이 없는 틈을 이용, 집안으로 들어가 거액의 금품을 털오오다 경찰에 검거됐다. 범행 수법 또한 절묘하다. 신문에 난 부고를 보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다음 범행을 저지르는 치밀성까지 보였따. 이런 수법으로 지난해 4월부터 검거 직전까지 서울·경기지역을 돌아다니며 상주의 아파트만을 여러 차례 털어왔음이 밝혀졌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 JP를 빼 놓고는 얘기가 안된다. 그만큼 JP는 우리나라 현대정치사의 중간에서 중심역을 한 것이다. 지금은 무대 뒤로 떠나거나 떠날 것을 준비하고 있는 갱년기 이후의 세대들은 JP의 정치역경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동정하기도 했으며 비난을 하기도 하는 등 갖은 애증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 핵심부에 정착한 그는 중앙 정보부장, 공화당의장 등 권력의 제 2인자로서의 역을 수행했다. 가히 날으는 새도 떨어 뜨릴 수 있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잘 나가던 그도 김성곤, 길재호, 이후락 등 신진 권력그룹의 견제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들에 밀려 국회의원직 등 모든 공직을 내놓고 ‘자의 반, 타의반’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고는 외유를 떠났다. 그의 좌절은 여기에서 끝이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이후 공화당 총재가 되었으나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환수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시 부활하는 오뚜기 정치인이었다. 1987년 공화당을 재건하여 총재가 되더니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고 1990년 3당합당을 이끌어 내어 민자당 최고위원을 지냈
수도권의 71곳 공사현장에서 87대의 타워크레인을 점거한 가운데 벌이고 있는 타워노조의 ‘고공 농성’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하다. 5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감행된 이번 농성에는 480명의 조합원이 참가하고 있다. 타워노조는 2001년 조합 설립 직후인 2001년에 3일 동안 파업을 벌인 바있다. 이 때 타워노조와 사용자측은 일요일 휴무 등을 포함한 임단협을 체결하고, 2003년에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또다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뭘까. 타워노조측은 사용자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체협약 이행률이 17%에 불과하고, 공휴일 휴무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조측은 불법 파견 금지, 단협준수, 근로계약서 체결, 퇴직금 지급, 임금 14.4%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사용자측인 타워크레인 협동조합과 안전경영관리자 협회측의 입장은 다르다. 지난달 6일부터 16차례나 협의를 가졌지만 노조 요구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노조가 사측에 맞서 파업을 계속한다면 돌아 올 것은 파국 밖에 없다. 협상 과정의 자세한…
국가균형발전법 (이하 국균법) 시행을 앞두고 수원시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계획조례를 개정 준공업지역에서의 공동주택 건립의 길을 열어 주고 있어 비난이 일고 있다. 이러한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의 조례개정은 경기도가 공장이전 지역에 대한 타용도 변경 절대금지방침과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향토애가 전혀없는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없다. 지방자치단체가 준공업지역 또는 일반공업지역에서 공동주택 건립을 허용할 경우 이들 지역에 있는 공장들이 타지역으로 이전할 때에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길 수있게 된다. 때문에 해당 지자체에 있는 공장들은 이전을 서두르게 되고 이에 따른 산업공동화는 더욱 가속화 되리라는 전망이다. 산자부는 이미 국균법 시행에 따라 과밀, 성장관리권역을 모두 기업이전 대상지로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러한 내용의 국균법 시행령 고시안이 시행되게 되면 이 지역에 있는 상당수의 기업체가 세제지원과 이전비 지원등 정부의 각종 지원책과 공장부지 시세차익등으로 이전을 서두를 것이 뻔하게 보인다. 이같은 이유로 경기도에서는 지난해 국균법 제정시 부터 공장이전 부지에 대한 타용도로의 변경 불가를 공언해 왔다. 그런데 수원시를 비롯 안양, 부천, 시흥시등 많은 지방자치단체에
동두천문화원장 홍경섭 사람은 태어나서 일생동안 세 번의 의미 있는 만남을 갖게 된다. 첫 번째는 부모와의 만남, 두 번째는 스승과의 만남, 그리고 세 번째는 배우자와 만남이다. 이러한 만남은 우연히 아닌 필연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세 번의 만남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의미가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세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우자의 만남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많은 사람들 중에 이 세 번째의 만남에 가장 큰 의미를 둘 것 같다. 세 번째의 만남을 인생의 제2탄생, 즉 다시 태어난다고도 하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혼인(婚姻-結婚)하는 계절이 따로 없다. 아무튼 여기저기서 혼인을 알리는 청첩장을 받아 보면 예법(禮法-禮義)에 어긋나는 경우를 참 많이 보게 되는데, 중요한 것을 너무나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혼인 시에 하객을 모시는 글(청첩장)은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인데, 그런 글들 중 본인이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인쇄소에서 마음대로 만든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것이 적지 않다. 일생에 한번 있어야 할, 한번 있는 화촉(華燭)을 밝히는 경사(慶事)에 모시는
연표(年表)에 보면 단군(檀君) 원년인 단기(檀紀) 1년이, BC 2333년으로 되어 있다. BC 195년에 왕준(王準)에 이어 BC 194년 위만조선(衛滿朝鮮)으로 이어지다가 BC 57년에 신라 혁거세(赫居世)시대가 시작된다. 이 후 조선반도는 고구려(BC 37년), 백제(BC 18년)의 3국시대가 전개된다. 서기 660년에 백제가 망하고, 서기 669년에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신라 통일시대가 된다. 서기 699년 고왕(高王)이 발해를 건국하면서 천통(天統)이란 우리나라 최초의 연호(年號)가 생겨났다. 이후 후백제, 마진에 이어 서기 918년 태조 왕건에 의한 고려가 생겨났고, 927년에 발해, 936년에 신라, 937년에 후백제 마저 멸망함으로써 고려 통일시대가 시작되는데 태조의 연호는 천수(天授)였다. 1392년 고려가 멸하고, 태조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세워졌지만 연호를 따로 쓰지 않고 국왕 몇년으로 썼다. 그러다가 고종 재위 33년인 1896년 건양(建陽), 이듬해인 1897년에 대한제국으로 국호(國號)를 고치면서 광무(光武) 연호를 썼고, 1907년 7월 조선 최후의 국왕 순종이 융희(隆熙) 연호를 쓴 것이 마지막이다. 1910년 8월 일제 식민지시
오늘(5일)이 입하다. 동시에 어린이 날이기도 하다. 입하는 24계절 가운데 일곱번째로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든다. 태양의 황경이 45。인 때로 말 그대로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볍씨를 친 못판에서는 한창 모가 자라고, 밭의 보리는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경기지방은 남부지방과 달리 이모작(二毛作)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보리밭이 적다. 대신 모내기가 남녘보다 열흘이나 보름 정도 빠르다. 대개 음력 4월 하순, 양력으론 5월 상순이면 모내기를 한다. 남녘은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모를 내기 때문에 모내기가 늦고, 벼 수확도 북녘에 비해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아무튼 지금 농촌은 정신이 없다고 할 만큼 일손이 바쁘다. 문제는 일손이다. 농촌에는 젊은 일손이 없다. 70년대부터 시작된 이농현상 탓이다. 더러 도시생활에 실패했거나 농촌에서 인생의 승부를 걸 양으로 귀농한 젊은이들이 간혹 있지만 흔치 않다. 얼마전 충청도 태안에서 수백 마지기의 논 농사를 지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양묘(養苗)를 하는 귀농 청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농촌이야말로 기회의 땅이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젊은 아내와 다섯살짜리 외동 딸과 셋이 살면서 10년 째 농사를 짓
화성시가 최대 현안인 소각장 건설을 두고 손발이 맞지 않는 행정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다. 화성시는 소각장 건설에 대한 당위성과 무해한 점 및 지역개발등 주민시혜방안등을 홍보, 주민들 설득하는 과정에서 상위직 공직자 둘과 담당과가 불협화음을 낸다는 것이다. 화성시의 이러한 엇박자 행정으로 주민들간의 감정골만 깊어 지게 되는 등 원만한 해결이 요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화성시 부시장등 고위 간부들이 소각장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는 반면 담당부서는 전체주민의 5%정도인 찬성측 주민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여 반대측 주민들을 흥분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당부서에서는 찬성측 주민들을 만나 소각장이 건설될 경우 도시계획을 수립해 준다는 등의 청사진을 제시 반대측 주민들과의 분쟁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주민들은 설득을 하려면 반대측 주민들을 설득해야지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사탕발림의 청사진을 제시해서야 되겠느냐며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주민들은 시청직원들과 대화를 하려고 해도 자리마저 마련해 주지 않는다며 토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해가 상충되는 사업을 진행하려면 아무리 잘 해도 뒷 말이 있게 마련이다. 대화하는 상대에 따라서도 격이 맞느
서울대학교의 첨단 연구 개발 시설인 가칭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이 2007년까지 수원 이의신도시에 들어 서게됐다. 이는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한말(韓末)때인 1906년 4월 수원 서둔리 들녘에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농업 연구기관인 권농모범장(勸農模範場·지금의 농촌진흥청)이 들어선 때와 다를 바 없는 경사라 할 만 하다. 물론 전자는 순수한 우리 역량으로 세우는 첨단 연구기관이고, 후자는 일제에 의한 농촌 근대화 연구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치욕의 측면이 있었다. 어쨌거나 근 1세기 만에 한국 최고 수준의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이 설립됨으로써 수원이 또다시 과학 연구의 메카로 부상하게 된 것은 도민 모두가 쌍수를 들어 반길 일이다. 손학규 도지사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엊그제 3천 400억원이 소요되는 연구원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연구원은 첨단연구개발단지(30만 평) 안의 8만 평 터에 건축면적 3만 3천평 규모로 세워지는데 공사는 1·2단계로 나뉘어 1단계는 실험 및 교육시설, 2단계는 기숙사, 도서관, 아파트 등을 짓기로 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연구원의 외양이 아니라 내부 모습이다. 연구원에는 교수 160명과 석·박사 연구 인력 200
도내 공장들이 공장 총량제로 피해가 심각하다. 도가 집계한 94년 이후 피해 총액은 줄 잡아 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내 공장들은 공장 신증설 총 허용량 제한으로 생산과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 기존 업체중 3000여개 공장이 공장설립 또는 증설 승인을 받고도 공장총량제에 묶여 건축허가가 유보돼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특히 이중 616개 업체는 모두 70만㎡에 이르는 공장설립 승인을 관계기관으로부터 받았으나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아 공장을 짓지 못했다. 이에 따라 생산차질에 이은 수출차질을 빚어 기업체들의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군다나 52개 외국기업은 총 23만 6천㎡의 공장을 신설하여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나섰으나 이중 19개 기업은 공장설립 승인을 얻고도 건축허가를 받지 못해 외자유치는커녕 대외신인도에 손상이 가게됐다. 원래 공장 총량제의 도입은 수도권에 있는 공장들의 증설을 억제하고 신규공장의 건설을 최대한 막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다. 지난 94년 5월부터 발효된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도권내 공장의 신 증설에 대해 제약을 가하게 됐다. 이법에 의해 제조시설, 사무실, 기숙사, 연구소, 오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