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face book)에 모란이 피었다. 속치마 같은 하얀 꽃잎이 수술을 가운데 두고 겹겹이 포개졌다. 타임라인을 훑던 눈이 사진에 꽂힌다. 한군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P씨와 K씨도 J씨의 페이스북에도 하얀 모란이 있다. 배경과 모델은 동일하나 찍힌 각도가 다르다. 셋이 함께 본 모양이었다. 모두 자신의 휴대폰에 모란을 담았다가 시간차를 두고 각자 페이스북에 고이 풀어놓았겠지. P씨는 서교동의 하얀 모란이라는 제목으로 꽃의 얼굴을 클로즈업을 했다. 사진 찍는 솜씨가 빼어난 그이의 모란은 화려하다. 그이는 내가 가지지 못한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시를 쓰는 솜씨도, 음식을 만드는 솜씨도, 살아가는 솜씨도 감칠맛이 난다. K씨는 활짝 핀 것과 시들고 있는 모란을 함께 찍었다. 어쩌자고 길에서 면사포를 쓰고 있냐고 모란에게 묻는다. 역시 시인의 감수성은 남다른 것인지. 그늘이 깊은 그이의 시를 읽을 때 나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J씨의 모란은 수줍은 듯 꽃잎이 살짝 벌어졌다. 더불어 붉은 모란 사진도 함께 올렸다. 보기 드문 백모란이 피었다며 홍모란도 함께 올리고 친절하게 김영랑의 시도 올렸다. 전직 기
선생님!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면서요? 왜 아니겠어요. 일찍이 ‘코로나 19’만큼 무서운 건 없었잖아요. 비행기가 날지 않고, 가동을 중단한 공장도 있고, 가게엔 손님이 사라지고, 도서관·학원도 문을 닫고, 온라인 개학이라는 걸 하고… ‘셧다운’이라는 말 그대로 이러다가 우리 사회가 멈춰서야 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이 엄습했어요. 이 모순·부조화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심지어 목숨도 잃고, ‘팬데믹’을 실감하면서 일상생활이 위축되는데도 대기는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깨끗해졌다지 않아요? ‘세계의 굴뚝’인 중국, 유럽의 공기 질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역설적 현상이 네이처에 보고되었다는 뉴스 말이에요. 미국항공우주국(NASA)·유럽우주국(ESA)의 위성 데이터 분석 결과로 ‘코로나 사태’ 전후를 비교한 세계지도와 푸른 별 지구 사진도 봤어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코로나가 물러가면 대기도 곧 오염되겠지!…
…
코로나19 확산 속에 맞이한 5월. 이런저런 기념일은 변함없이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이것저것 챙길 일도 역시 달라진 것이 없다. 당장 내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입양의 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여기에 직장이나 학교 동료들의 결혼까지 신경 쓰다 보면 기념일 아닌 날이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가물’한 정신으로 지낼수만 없는 노릇이 우리네 살림살이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올핸 작년보다 더 줄여야 할 것 같다”며 각오를 다지지만 그마저 가능하지 않은 서민들은 마음만 탄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천여명을 대상으로 ‘5월 개인 휴가 계획과 예상 경비’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예상 추가 지출액은 ‘평균 46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조사 때(54만원)보다 8만원이 줄었다. 기혼과 미혼을 나눠서 살펴보면 기혼 직장인은 평균 66만원, 미혼 직장인은 평균 38만원으로 기혼 직장인의 예상 지출이 미혼에 비해 약 1.7배 높게 나타났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념일은 어버이날이다. 예상 경비가 평균 28만원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총 예상 경비의 약 6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 외에 어린이날은
오늘 /박경희 원천(遠川)은 예나 지금이나 흐르는데 어느 날 천변을 따라 길이 놓였다 사람들이 그 길따라 걸었다 나는 근심의 살을 빼려 천변을 걸었다 풀잎배에 실었던 유년의 부푼 꿈들은 물살에 부서져 가뭇하고 입가에 번졌던 소녀의 맑은 미소는 휘돌아감은 물길따라 꼭다문 예순의 입술에 갇혀 있다. 원천(遠川)은 유구히 흐르고 하늘은 열린 가슴이다 ■ 박경희 1961년 전남 나주 출생. 광주교육대학을 졸업해 아주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2009년 『한국문인』으로 등단했으며 경기여류문학회와 수원문학인협회 회원이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Homo Deus 신이 된 인간)』에는 산업혁명이 노동자 계급을 창조했지만 당면한 과학혁명은 쓸모없는 계급을 창조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AI와 빅데이터는 생명을 무한정 연장하고 모든 생산을 기계가 대신하는, 신에 가까운 인간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초인류는 극소수이며, 대다수는 자유의지가 허용되지 않는 잉여인간으로서 초인류에 의해 부양되는 계급이다. 초인류가 보통 인간을 어떻게 취급할지는 현재 인간이 동물을 보는 시각과 같을 것이다. 이런 미래상은 코로나 사태로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기존 사회시스템의 저항 때문에 지체되던 4차 산업혁명은 가속화될 것이다. 비대면?비접촉 사회가 당연시되면서, 자동화를 빌미로 대량 인원감축이 별다른 저항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학교들, 심지어 대학에서도 대면강의에 회의감이 들고, 전통적 권위대신 콘텐츠만 중요시된다. 굴뚝산업과 전통시장은 점점 위축되고 새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권력의 사회통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투명사회를 강조하는 코로나사태는 통제사회로 이어질 수도 사생활 침해로 볼 수 있는 확진환자 이동경로가 큰 저항 없이 공개된다. 이를 당연시한
가는 세월을 누가 막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늙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나도 세월을 느낀다. 팽팽하던 피부도 웃을 때 보면 잔주름이 가득하다. 그런 내가 한심해서 가끔 친구들한테 물어볼 때가 있다. “얘 내가 부쩍 늙어 보이지.” 그럼 친구들은 말한다. “아냐 넌 나이보다 젊어 보여.” 그럼 나는 피식 웃는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한다. 위로의 말이겠지. 절로 늙어가는 내 모습을 솔직히 인정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늙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천날 만날 마주 보고 사는 내 남편도 옛날 같지가 않다. 늘 피곤하다고 한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픈지 주말이면 가던 등산도 그 햇수가 줄어들었다. 그런 남편도 먹고살기 위해서 출근길에 나선다. 젖은 낙엽처럼 어깨가 축 늘어져 현관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참으로 안쓰럽다. 그날 밤 따라 남편은 후줄근히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당신 솔직하게 말해봐. 지금 내 모습이 어때? 나 진지하게 묻는 거야.” “뭘요?” 하고 내가 다그치자 남편이 말했다. “솔직히 내가 조금 늙어 보이지?” 나는 남편의 물음이 하도 황당해서 그냥 웃어 넘기려했다. “아냐, 아냐. 진지하게 묻는다고 했잖아. 날 봐
지난 2일 수원시 장안구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농·축·수산물 드라이브 스루 장터가 열렸다. 판매 품목은 친환경 채소와 경기미(안성쌀), 돼지고기(불고기, 갈비)세트, 소고기(불고기, 국거리)세트, 평택배, 잡곡, 유정란, 양파, 감자, 바지락, 카네이션 등 다양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드라이브 스루 장터에는 물건을 사러 온 시민의 차량이 장사진을 이뤘다. 시중 가격보다 23%에서 5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 인기가 높았다. “재난기본소득으로 지역 농가를 도우면서 나들이도 하고 다양한 우수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1석3조’ 행사”라는 경기도 관계자의 말이 실감났다. 앞으로 도는 도민과 함께 하는 드라이브 스루 장터 상품 판매 행사를 지역별, 상품별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기존 농산물에서 수산물, 축산물, 화훼류 등으로 판매 상품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원시에 이어 9일엔 의정부 경기도청 북부청사에서, 16일엔 파주 임진각 주차장에서 판매 행사를 연다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드라이브 스루 장터를 한번쯤 방문해보길 권한다. 도 주관의 드라이브 스루장터 외에도 관내 기초 지방정부가 주관하는 특징 있는 장터도 많다. 고양시 일산…
초정 박제가는 200명이 넘는 외국인과 교류했다. 조선 500년 역사상 중국의 학자와 관료들에게 가장 대접을 받았던 조선인이지만 서자로 태어난 까닭에 젊은 날을 차별과 가난에 시달렸다. 박제가는 우정에 관한 여러 편의 글을 남겼다. 이 가운데 서울 생활을 접고 강원도 기린(인제)으로 떠나는 벗 백동수에게 준 글은 우정에 관한 한 조선 최고의 명문이다. “천하에서 가장 친밀한 벗으로는 곤궁할 때 사귄 벗을 말하고, 우정의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는 가난을 상의한 일을 꼽습니다. …벗이란 술잔을 건네며 도타운 정을 나누는 사람이나, 손을 부여잡고 무릎을 가까이하여 앉는 자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있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나 저도 모르게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벗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벗에서 우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안대회 번역) 평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먼저 도움을 베풀던 백동수를 추억하며 우정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전해 준다. 백동수는 서자인 박제가와는 달리 할아버지가 서자여서 서얼의 굴레를 쓰게 된 경우다. 이들…
진로상담을 할 때 알고 있는 직업을 적어보라고 하면 20개 이상 적는 이가 드물다. 그렇다면 직업은 몇 개나 될까? 한국직업사전에 등록된 직업 수만 1만 3천개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직업이 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일자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또 겨우 버티고 있는 직업들도 위태위태하다. 이 위기가 지나간다 해도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은 우리 삶을 빠르게 바꿔놓을 것이다. 2023년에는 하늘을 나는 일명 ‘플라잉 카’가 본격적인 서비스를 한다고 하고 드론이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차지하는 등 빠르게 변하고 있는 이 시대, 삶과 직업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미래를 대처할 수 없다. 만 15세~29세 청년들을 추적 조사한 청년패널 자료에 의하면 첫 직장에 들어간 청년 10명중 3명은 입사 1년 내에 퇴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필자의 업무 중 하나는 직원채용이다. 하루에도 여러 명의 지원자들을 면접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안타까움이 있다. 바로 자신에 대한 이해와 직업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기이해와 직업세계에 대한 숙고 없는 직업 선택은 잦은 이직, 퇴사, 경력단절을 야기한다. 그 결과 당사자들은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