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구성하고 단연코 나를 반짝이게 만드는, 영원히 반짝일 모래알들,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사람들과 살아가고 또 사랑을 할 것이다.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10년 전에 타계한 박완서 작가가 남긴 글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1년 내내 뭔가 모를 상실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생활패턴이 바꿨다. 변화된 일상에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해졌다. 바깥 외출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답답함, 몸에 미세한 변화에도 혹시나 코로나가 아닐까하는 마음이 날 무기력하게 만든다. 누굴 만나는 것도 서로가 꺼린다. 이런 감정을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가 보다. 코로나 우울이다. 친구들도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우울증이 오는 듯 걱정한다. 생존에 대한 위험신호다. 그렇다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에 미아(迷兒)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의 존재를 잃을순 없어 “언제 힘들었냐.”고 털털 털고 일어서는 날이 빨리 오길 기다린다. 백신을 기다리는 이유다. 이스라엘은 60대 이상 노인층 80%가 백신접종을 이미 마쳤다는 외신이다. 부럽다. 감정을 많은 이들은 색(色)이나 소리, 언어로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코로나로 인한 정신적 증세를 우울감을 뜻하는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심장이다. 서울보다 16.8배나 넓다. 인구도 1378만여 명으로 서울 976만여 명 보다 많다. 첨단 제조업도 경기도에 제일 많이 입지하고 있다. 더 이상 경기도는 서울에 종속된 도시가 아니다. 신축년 새해에 경기도는 전국 최대 지방정부의 위상과 미래 비전을 반영한 새로운 얼굴을 들어냈다. 이제껏 16년여에 걸쳐 사용하던 대표상징물과 영문슬로건, 경기도 노래를 새롭게 내놓았다. 경기도가 새로운 상징물과 노래를 선보이며 소띠 해 새로운 출발을 알린다. 상서로운 기운이 넘친다. 새로운 GI(Government Identity)는 경기도 이름의 한글 초성‘ㄱ,ㄱ,ㄷ’을 초록과 파랑색으로 표현했다. 초록은 자연, 공존, 친환경, 평화를 나타내고 파랑은 신뢰, 에너지, 미래가치를 뜻한다. 첫 인상이 깔끔한 느낌을 준다. 영문슬로건 ‘Go Great, Gyeonggi’는 대한민국 대표 지방정부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하며 도민과 함께 번영해 나가는 경기도를 의미한다. 이전까지는 ‘Global inspiration (세계 속의 경기도)’였다. 도민 40%,전문가 자문위원회 40%,디자인 평가단 20% 투표로 집계해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온·오프라인
세모(歲暮)다. 이틀 후면 미증유의 고통과 어지러움으로 점철된 경자년 한 해가 저문다. 올 한 해도 많은 시(詩)가 쏟아졌다. 시의 언어는 달리 공감의 언어다. 나 아닌 남의 처지를 살펴 아픈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의 언어다. 그런 측면에서 가황(歌皇) 나훈아가 작시한 ‘테스형!’이 올해의 최고의 시가 아닐까.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70~339년)를 불러내 ‘세상이 왜 이런지. 왜 이리 힘이 드는지’를 물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또 왜 이래/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나훈아가 직접 지은 테스형! 노랫말의 일부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대한민국 국민들 가슴팍에 대답을 새겨준 듯하다. 분열과 갈등에 모두 지쳐 있는 만큼 나훈아의 일갈(一喝)은 큰 울림을 줬다. 요즘 국민들의 눈은 ‘남의 나라 코로나 백신접종’에 쏠리고 있다. 1년 내내 엄청난 고통을 겪어 온 국민들 입장에서 이보다 더 절실한 게 없기
한 해의 맨 마지막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 철새들로 가금농가들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발생으로 고역을 치른다. 코로나19 확산세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식생활 양상도 바꿔놓았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면역력 향상과 관련된 건강기능성 식품 구매도 크게 늘었다. 외국산보다 안전한 국산 농식품 섭취가 건강에 이롭다는 인식과 함께 어려움에 처한 농가를 살리자는 착한 소비운동도 한몫했다. 하지만 농업인은 여전히 어렵다. 추수가 끝났지만 손에 잡히는 소득은 없기에 그렇다. 여름철 호우·태풍 등 극심한 기상악화로 작황이 나빠 쌀 생산량이 1968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물가는 해마다 3~5%씩 오른다. 정곡(精穀)은 그대로다. 현재 산지 쌀값이 80kg 한가마당 21만5820원이다. 지난해 수확기보다 14%정도 상승했다. 이를 두고 쌀값이 폭등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몰린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연 59.2kg이다. 한 달 소비는 대략 5kg이다. 하루 450원 정도에 불과하다. 커피 한잔 값의 10분의 1 수준이다. 쌀값이 다른 물가에 비해 비싼 것도 아니다. 정부가 일제강점기부터 쌀을 80kg들이 가마니로 수매하던 관행을 이어오
나라건 기업이건 누가 그 집단의 리더로 있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리더십은 역사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미 대통령선거가 조 바이든의 승리로 끝났다. 뒤늦게 미 연방 총무청이 당선을 공식 승인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깨끗한 승복이 아니라 소송을 이어갈 모양새다. 강대국의 리더십 부재가 우려스럽다. 패자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메시지를 내놓는 미국의 전통이 124년 만에 깨졌다. 리더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예측할 수 없는 환경변화를 가져왔다. 어느 때보다도 세상이 공감하는 리더십이 절실할 때가 아닌가. 우리는 어떤가. 최근의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과연 리더십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의심케 한다. 리더십은 지도자의 의무와 책임을 말한다. 모든 환경에 들어맞는 리더십 역량은 존재하지 않는다. 리더십 정의(定義) 만해도 850여 가지이상이 될 정도다. 리더십 전체를 관통하는 리더십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서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게 리더의 표상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동서고금의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리더십 사례로 꽉 차 있다.
코로나19로 오랜만에 조찬모임이다. ‘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는 주제다. 독일만큼 역사적 부침을 겪은 나라도 드물지 않은가. 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해 유럽을 호령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켜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 책임으로 동서로 두 동강이 나는 비극도 겪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불사조처럼 살아나 경제부흥을 일으키며 ‘라인 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분단된 지 45년만에 동·서독은 재통일됐다. 세계 패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경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반열에 올랐다. 도대체 “이런 국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벤츠·BMW 자동차나 기계제품을 잘 만드는 하드 파워에서가 아니라 무형의 사회자본, 즉 소프트 파워에서 왔다. 법규준수하고, 청렴, 정직, 배려, 근검절약, 소통과 상생 등이 국력과 국격(國格)의 원천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정부를 믿는다. 정치인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명예로운 직업이다. 우리나라처럼 ‘너도 나도’ 다 정치인이 되려고 덤벼들지 않는다. 우리처럼 변호사나 교수하다가 정치인이 되는 경우는 없다. 독일은 전문가 사회다. 기업인이나 다른 직업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대부분 처음 택한 직업에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여름이 주인 행세를 하더니만 추석이 지나자 가을이 제자리를 차지한 듯하다. 산천초목에 산고(産苦)의 결실이 저마다 색깔을 드러낸다. 그게 순리다. 그래서 자연은 위대하다. 가을은 소리의 계절이다. 논밭에 벼 여무는 소리, 수수더미 영그는 소리, 풀벌레 소리 등이 한창이다. 이들이 어우러지는 자연의 소리 못지않게 사람들이 책 읽는 소리가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가을이다. “달빛과 꽃 색깔이 아무리 좋아도 가족들의 화목한 얼굴빛만 못하고, 가야금과 거문고 켜는 소리, 바둑장기 두는 소리가 아무리 좋아도 자손들이 책 읽는 소리만 못하다”는 글귀가 있다. 그렇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바다를 항해해도 활자매체를 통한 책읽기만큼 좋은 게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비접촉 시대에도 활자로 된 책읽기는 여전히 정겹다. 책의 숲에는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구슬이 너무나 많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지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달려온 삶들이 아닌가.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가을이 왔다. 현재를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책읽기도 빠트릴 수 없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 예전의 독서는 눈으로 읽지 않
사람이 지닌 고유한 향기는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말하는 건 자유다. 요즘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들이 막말을 쏟아내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막말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9개월째 접어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모두가 힘들 때가 아닌가. 위로하고 배려하는 말로도 부족할 텐 데 그렇다. 타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가리지 않고 내뱉는 막말은 모든 이에게 공해다. 막말을 하는 이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배려가 오가는 사회는 따뜻하다. 배려는 상황을 이해하고 타인을 생각하고 나 자신까지 살피고 나서야 적재적소에 맞게 주고받을 수 있다. 한 번 뱉은 막말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인터넷에 돌고 돈다. 일찍이 다산도 “한마디 말로 하늘과 땅의 화평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한 가지 일로 평생의 복을 끊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모름지기 절실하게 점검하라”고 경계했다. 막말은 듣는 쪽보다 하는 쪽의 품위가 떨어진다. 막말은 다른 막말로 맞대응하는 것도 옳지 않다. 어떤 명분으로든 사용되어선 안 되는 게 막말이다. 막말을 못 들을 척, 남의 일이라고 상관하지 않는 것도 공범이
전통이란 자기 자신이다. 문화재에 담긴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값진 일이다. 코로나19로 답답함을 달래줄 국보급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공동으로 펼친 특별기획 ‘신국보보물전(新國寶寶物展)’이다. 방역수칙에 따라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된 시간에 관람을 했다. 일생에 꼭 봐야 할 전시다. ‘새 보물 납시었네’ 슬로건처럼 사상 최대 규모로 국보와 보물을 선보였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을 비롯한 유물 대여 기관만 34곳이다. 외부로 처음 공개된 국보와 유물이 눈길을 끈다. 간송이 소장한 22점, 이화여대가 보유한 청자 순화 4년명 항아리 등이 바깥에 나와 눈길을 끈다. 청자가 푸른빛이 아닌 녹갈색을 띠고 있다. 굽 안쪽에 제작 시기, 사용처,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두루마리 그림으로 희소성이 높은 조선의 대표적 풍경화는 특별전의 압권이다. 8m가 넘는 심사정(1707~1769)의 마지막 작품 촉잔도권(蜀棧圖圈⦁818*58cm)과 이인문(1745~1821)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856*43.9cm)를 한자리에 배치했다. 심사정은 조선 최고의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정
자유는 비장하다. 저절로 굴러오지 않는다.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에 자리한 스미스(Smith) 평화관을 관람하는 내내 그 소중한 가치를 절실하게 느꼈다. 자유는 물과도 바꿀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1950년 7월5일 새벽 3시, 오산 죽미령에 도착,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스미스 부대원 540명이 북한군 전차의 행렬과 마주하며 벌린 6시간 15분간의 혈전(血戰)에서 그 뜻을 읽었다. 자유는 세상의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다. “아주 어둡던 그날 밤 우리는 한국인 민간 차량에 실려 나중에야 ‘오산’이라고 알게 된 지역에 배치되었습니다.”, “이동 명령을 받았을 때,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상부에서는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윌리엄 코의 증언이다. 이름도 위치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나라, 당신이라면 그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오산 죽미령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전사통지서, 포로 3년의 기록, 1950년 7월8일자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보낸 병력 요청편지, 집보다 좋은 곳은 없다며 포화 속에서 살아 돌아와 가족과 상봉하는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