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신고 접수와 지령을 하다보면 마음이 다급해지는 순간이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더욱 긴박해진다. 아주 짧은 비명소리도 ‘별일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하는 경찰관이기 때문이다. 특히, 112신고 접수와 지령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신고라도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이 때문에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장난의 경우에도 신고자를 발견하기 위해 장시간 많은 경찰관들이 수색에 동원되기도 한다. 112 신고 접수·지령을 담당하는 경찰관은 신고자가 급박한 상황에서 최상의 치안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기 위해 전화통화 내용을 100%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전화 통화만으로 신고 내용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경찰관들이 국민에게 최상의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장난은 과도한 치안서비스의 낭비로 인해 양질의 서비스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112 신고를 접수·지령을 담당하는 경찰관은 신고자를 100% 신뢰하고 있기 때문
우리나라의 경찰의 역사는 크게 경무부, 치안국, 치안본부, 경찰청 시대로 나눠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15일 광복 직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스스로 조국 치안을 담당할 경찰조직 창설이 중요 과제로 떠오르고 그해 10월21일 미군정청 산하에 경무국이 창설됨에 따라 이날을 ‘경찰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번 2015년은 경찰 70주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6월 호국보훈의 달 역시 경찰 70주년에 맞이하는 특별한 달이기도 하다. 사전적으로 ‘호국(護國)’은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고, ‘보훈(報勳)’은 ‘공훈에 보답한다’ 뜻이다. 결국 ‘호국보훈의 달’은 나라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예우하여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는 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순직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어떨까? 각 지역 현충원을 방문하거나, 바쁘다면 ‘국가보훈처 사이트’ 접속해 사이버추모를 하는것도 좋은
메르스 종식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 가히 국가적 재난상황이다. 이 질병의 진원지인 평택에서 발생하여 경기 서울 등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행을 다녀온 1번 환자로부터 삽시간에 퍼진 지독한 바이러스. 이 시점에 급속하게 퍼진 이유와 확산경로는 있을 것이다. 옛날에 마을에 괴질이 돌면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에 환자들을 격리했다. 그 당시 격리의 개념은 마을과 상당히 떨어진 외진 골짜기를 선택하여 내다 버림의 수준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조선 순조 때, 괴질이 창궐한 적이 있어 사료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전한다. “평양성 내외에 지난달 그믐께 홀연히 괴질 돌림병이 돌아 토사 관격하여 경각에 죽다. 10일 동안 천(千)여 가구지의 약이 효과가 없고, 구제하는 기술이 없다. 기도(祈禱)를 행하여도 잠잠한 기미가 없고, 점점 각읍과 동리로 퍼지다. 이 질병(疾病)을 만난 자는 먼저 반드시 통주(洞注, 설사가 멎지 않는 병)하며 이어 궐역(厥逆: 찬 기운이 머릿골을 범하여 머리와 이가 아픈 증세)의 기운이 다리로부터 배안으로 침입하여 경각의 사이에 살아남는 자 10명 중 한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처음 서쪽 변방에서 시작하여 도하,…
전염병으로 인해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는 대재앙을 그린 감기(2013)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주인공은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국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메르스와 같은 위기상황 시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제공을 통해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도 메르스를 부인하고 처음 발병한 병원과 환자정보를 통제해 국민들을 더 불안하게 하며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이렇듯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온 나라가 혼돈에 빠졌다. 12일 기준 사망자는 10명, 확진자는 126명, 격리 대상자만 3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최초 발원지인 평택에 있는 모 병원을 중심으로 경기도 곳곳의 지역사회가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메르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전국 2천199개 학교를 대상으로 ‘메르스 휴업’을 단행했다. 각종 행사와 모임 등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음식점과 점포, 공연기획자 및 여행관련 사업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
냄새를 제외하고 100가지 이로움을 준다고 해서 ‘일해백리(一害百利)’라 불리는 마늘. 하루라도 우리식탁에서 빠질 때가 없다. 매일 먹는 김치도 그렇고 나물이며 국, 찌개 등 안 들어가는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굳이 웅녀의 전설을 거론치 않아도 마늘은 한국인과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우리를 세계 최고의 ‘마늘 마니아’라 부른다. 우리가 즐겨 먹는 마늘은 사실 고대부터 대용 의약품으로 쓰였다. 중국에선 일찍부터 마늘을 이질 치료 약품으로 활용했다. 중국 한나라 때, 훗날 후한의 황제 광무제가 되는 유수(劉秀)는 반란군에게 쫓겨 달아나던 중 병사들이 이질에 걸렸다. 따라서 전투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러던 중 군대가 마침 마늘 밭을 지나게 됐다. 유수는 이들에게 마늘을 먹도록 했다. 그러자 이질이 치료돼 바로 전투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먼 여행을 떠날 때 낯선 음식과 환경에 대비해 마늘을 상비약으로 휴대하고 다닌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야전병원 군의관들도 마늘을 의약품 대신 사용했다. 전쟁의 와중에 항생제와 붕대마저 떨어지자 이끼를 뜯어다 마늘 즙에 적신 후 부상병의 상처에 덮었다.…
개망초 해마다 문내실 마을에 장마들면 무너진 토담을 지나 에베미 들판에서 백령산 자칫골까지 마냥 히죽이죽 헤매던 고모야 문내실 고모야 그 해, 유월 지나 칠월인가 팔월인가 온 산하에 콩 볶듯 총소리에 놀라 하얗게 정신을 놓아버린 눈 맑은 고모야 막내 고모야 -계간 아라문학 봄호에서 전후 세대들에게 전쟁의 기억은 없다. 다급한 상처들이 다소간 아문 후의 이해하기 어려운 몇 점 안쓰러운 현상들이 있을 뿐이다. 그 안쓰러운 현상들이 어찌 해서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른들로부터 들은 것도 있고, 듣지 못한 것도 있다. 그래도 그 처절한 전쟁의 상처에 대해서는 깊숙이 이해하지를 못한다. 전쟁과 함께 잃어버린 것들이 비단 물질뿐이랴. 몸서리쳐지는 총성과 함께 영원히 잃어버린 정신은 인간이기에 더 공포스러웠던 전쟁의 상황을 처절하게 증거한다. /장종권 시인
메르스 발병은 우리나라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여러 부문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단 국민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을 기피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정성껏 준비한 각종 공공·민간행사가 취소되고 있으며 메르스 확진환자 발생지역 학교와 유치원은 휴업에 들어갔다. 대부분 노인정도 한산하다. 사람들로 붐비던 영화관과 시장통, 음식점, 목욕탕 등도 손님이 급감해 울상을 짓고 있다. 실제로 저녁나절이면 번호표를 받아 줄까지 서야 했던 수원시 행궁동 통닭거리나 그 옆의 지동순대타운 등은 눈에 띨 정도로 손님이 줄었다. 예식장이나 장례식장도 축의금이나 부의금만 전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반면 반사적인 호황을 누리는 업종도 있다. 손 소독제를 만드는 회사나 마스크 업체는 물건을 미처 대지 못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또 있다. 메르스 등 질병 면역력을 높인다는 약품이나 식품은 판매량이 늘었다. 홍삼이나 인삼, 비타민이 많은 토마토, 사과 등 채소와 과일 판매상과 비타민음료 등 건강음료 제조회사는 호황을 누리고 있단다. 생강, 고구마, 연어, 김치 등 면역력 강화에 효과가 있는 식품들도 매출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극히 일부분의 예외일…
궁중문학의 백미로 알려진 한중록(閑中錄)은 사도세자의 부인이며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惠慶宮, 1735~1815)이 쓴 작품이다. 혜경궁은 오랜 기간의 궁중생활과 사도세자의 죽음, 큰 뜻을 위해 어린 아들 정조를 시아버지인 영조(英祖)에게 보내는 결단과 정조의 즉위 후 정적(政敵)의 모함으로 친정이 화를 입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근래에 사도세자가 부인이 쓴 한중록의 내용처럼 정신병자인지 아니면 아들이 쓴 사도세자의 행장의 내용처럼 총명하고 똑똑한지에 대한 진정성 논쟁이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각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에 한쪽으로 치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조는 즉위(1776)하자 바로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을 거대하게 개건한다. 또 혜경궁의 거처를 다음해(1777)에 새로 마련하는데, 당호(堂號)는 자경당(慈慶堂, 자경전)으로 뜻은 ‘자(慈)란 자비로운 은혜이고, 경(慶)이란 경사스런 일이 바란다’로, 위치는 창경궁 통명전 뒤 언덕에 있는 위치에 건축되는데 창경궁과 경모궁등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자경전의 건축 관련 자료는 3가지로서 동궐도(1824~?)와 자경전진찬의궤(1827~29년)가 있으며 내용
‘지역의 관료가 바뀌어야 지역이 바로 선다’라는 ‘촌철살인’을 그동안 오산시민들은 왜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기(放棄)했던가. 이는 현재 오산시의 일부 국장들의 ‘무영혼론 업무’에 대해 함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기관은 근본적으로 똑똑하고 유능하다. 그런데 그 유능한 간부 중 극히 일부가 시민이 맡겨 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거나 자리때우기식의 행정을 펼치고 있다면 큰 문제다. 밀실행정만 펼치며 민원인을 거부하고 언론과의 소통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모범이 돼야 할 간부가 오히려 불만을 속출하며 수동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하 직원들까지 자질론에 대한 평가를 쏟아내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인사권자인 시장의 결단이다. 그같은 근무행태를 방치하고서 공직개혁을 외치는 것은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공직 DNA가 바뀌지 않는 한 공직개혁은 요원하다. 이와 반대로 시정을 위해 몸을 바치는 간부도 있다. 늦게 퇴근하고, 이튿날 아침 새벽같이 출근하고, 토요일 일요일 구분도 없이 나오고, 휴가도 반납하는…. 공직도 떠날 시기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