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부터 오는 5월 23일까지 수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강 민관식 선생 기증자료 특별 기획전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교훈을 준다. 첫 번째는 평생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한 그의 꼼꼼함이다. 그는 민의원(3~5대), 국회의원(6, 10대)을 거쳐 문교부 장관을 지냈으며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까지 역임한 ‘거물’이다. 그럼에도 재직했던 곳의 마크와 회사현판, 명함, 명패들은 물론 수원의 서울 농대, 일본 유학을 다녀와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시작한 명함부터 국회의원 시절 명함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고 있다. 또 학창시절의 학적부, 노트, 사진 등 개인 기록들도 소중하게 보관해두고 있으며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포스터에서부터 그가 국회의원에 몇 표차로 당선됐는지가 나와 있는 자세한 현황판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그런 자료들이 사소한 것이라고 비웃을지 몰라도 결국은 개인의 기록이 우리 사회의 기록이 되고 그런 기록과 자료들이 그 나라의 역사를 이룬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료와 기록은 사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관식 선생이 평생 모아온 자료들은 값지다. 또 하나는 기증한 자료의 희귀성이다. 선생이 평
한나라당 소속 이기수 여주군수가 같은 당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범관 의원에게 현금 2억원을 건네려다 구속됐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나 당직자와 예비후보 간에 거액의 돈이 오간다는 소문을 듣고 설마했던 국민은 쇼핑백에서 나온 돈다발 사진을 보고도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가 이 사건후 바로 회의를 열어 이 군수의 후보자 추천 자격을 박탈하기는 했지만 돈선거의 악령이 아직도 주변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증거여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심사 중인 정당쪽으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불신이 우려되고 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군수는 경찰에서 “당 운영경비에 필요할 것 같아 수행비서를 통해 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지방선거를 한달 반 가량 남기고 공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금품이 오갔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지역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거래’는 돈을 준 당사자와 받은 사람이 입을 다물면 진실이 영원히 묻힐 수 있다는 생각에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유혹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후보자가 난립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TV에서 여가수 인순이가 열창하는 모습이나 대담프로그램에서 까만 얼굴에 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것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밝아진다. 웃음소리도 하이 소프라노, 표정 또한 꾸밈이 없다. 그런 인순이는 어릴 적 사회적 냉대에 애당초 분노 같은 것은 없었을까? 천안함 사건 이후 또 상류 사회에 원정출산(遠征出産)이란 천박한 전염병이 유행병처럼 돌고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몇 년 전 인순이의 원정출산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 가지 사회적 현상에 두 가지 감정, 이해와 분노. 그녀가 변명하길, “날 닮으면 어쩌나” 그 아이에게 만은 지울 수 없는 천형 - 혼혈인의 상처를 주기 싫어서 - 그나마 차별이 덜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게 하고 싶어서….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회견장에서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당당하게 이유를 밝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뒤, 거짓말처럼 여론의 화살은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연예인 학력 위조(僞造)가 사회적으로 가십거리가 되었을 때, “가난 때문에 학교에 못 갔다. 고등학교 졸업한…
소강 민관식(小崗 閔寬植)선생을 처음 뵌 것은 1993년 1월 서울 한남동 UN빌리지 자택에서였다. 신문의 신춘 기획물인 ‘명사 초대석’에 당시 경기도민회 회장이던 소강을 모시기로 하고 수차례에 걸친 ‘끈질긴’ 인터뷰 요청 끝에 가까스로 성사된 자리였다. 그만큼 그분은 노년의 나이에도 바쁜 스케줄로 정신이 없으셨다. 사전에 비서로부터 인터뷰 시간을 30분 이내로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작된 소강과의 대담은 그러나 3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됐다. 묻고 듣는 즐거움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인터뷰를 마치자 소강은 지하에 있는 자신의 소장품 전시실로 안내했다. 실로 놀라운 규모였다.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관련 자료들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청와대 식단표까지 다방면에 걸쳐 수집한 컬렉션은 한국현대사의 기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방대했다. 소강의 컬렉션 가운데 3만점 가량이 수원시에 기증돼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수원은 소강의 학창시절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개성출신인 그는 이곳에서 수원고등농림학교(서울농대 전신)를 다녔다. 소강은 타계하기 직전까지 테니스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별호가 ‘베리 베리 씽씽’이라고 들려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삼성반도체는 아니지만 반도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불안한 기사이다. 아는 사람도 백혈병, 하지만 회사의 영향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백혈병인데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는 그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도 했다고 한다. 결혼했다 아이도 못 낳고 갑자기 더 아프면 어떻게 하냐면서...’ 22살의 ‘새싹맘’이란 여성 블로거가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백혈병이 발발, 지난 3월31일 세상을 떠난 고 박지연(23)씨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중의 일부이다. 이 여성은 남의 일 같지 않게 가슴이 아프다며 다시한번 근무환경을 살펴보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5일 삼성전자가 1983년 공장설립 이후 최초로 국내외 보도진에게 반도체 생산라인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는 최근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했던 박지연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지금까지 22명 발병에 9명이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백혈병 환자가 9명 발생하고, 이중 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양측의 시각은 여기서부터 엇갈린다. 산업안전공단이 두차례 실시한 역학조사에서는 백혈병이 작업과정에서 발
1960년 4월 26일 아침. 송요찬 계엄사령관은 경무대로 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를 한다. “발포를 안 하면 수습이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승만은 “발포는 안 돼. 국민이 무엇을 원하나?” “하야하시랍니다.” “그럼 하야하지.” 당시 송요찬의 수석부관이었던 김운용 전IOC수석위원장이 모 주간지에 기고한 내용 중 일부다. 이승만이 적어도 4.19라는 국민적 저항 앞에 끝까지 무리수를 두지 않고 순순히 물러난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3.15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을 꾀하려던 부패한 자유당 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의거로 시작된 4.19혁명이 일어난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그날의 주역들이 이승만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던 데서 벗어나 공과(功過)를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며 ‘이승만 다시보기’를 시도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청춘인 20대에 생각했던 이승만과 고희를 넘겨 바라보는 이승만이 같을 순 없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이어가고 장차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격동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그날의 주역들이 50년이라는 세월
지난달 26일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의 함미가 23일만인 17일 오후 7시9분께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로 귀환했다. 3천t급 바지선 현대프린스호는 16일 오후 함미 인양 해역인 백령도 장촌포구 남쪽 1.4㎞ 지점에서 함미를 실은 채 예인선 2척에 이끌려 출발한 지 21시간만에 무사히 2함대 평택군항에 들어온 것이다. 바지선 위에 똑바로 올려진 천안함 함미는 절단면 부분에 그물망이 쳐진 채 지난 15일 인양된 후의 모습 그대로였다. 18일에는 선체에서 탄약과 무기류를 분리해 하역했다. 이어 천안함 함미를 육상 거치대에 옮겨 민.군 합동조사단의 정밀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요즘 TV를 켜면 얼룩무늬 복장의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좀처럼 공개된 장소에 나서길 꺼려하는 그들이 TV의 주역으로 등장한 적도 없었다. 군은 항상 업무의 특성상 드러내 놓지 않고 음지에서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요즘 군은 그렇지 못하다. 천안함 사태의 심각성과 중요성 때문이다. 군은 항상 폐쇄적이었다. 천안함 사태를 지켜보던 국민들이 답답함과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하는 군에 대해 신뢰를 거둬들이지 않을까 불안하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17일 전군 작
지난해 경상북도 문경지역에 새로운 레저시설로 각광을 받고 있는 짚라인이 텔리비전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돼 화제가 된적이 있다. 해발 487m의 문경 불정자연휴양림에서 즐기는 9개의 짚라인 코스는 문경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꼭 들려야 하는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짚라인은 열대우림 정글지역 주민들이 바닥에 있는 뱀이나 벌레, 독이 있는 식물을 피해 나무와 나무사이를 이동하던 교통수단의 한방법이다. 과거 호주와 뉴질랜드의 개척시대는 음식이나 담배, 우편물, 기타 공사에 필요한 각종 공구를 계곡이나 강 건너편과 같이 직접 가져다 주기 어려운 동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외줄에 의지해 공중을 나는 짚라인은 해외에서는 이미 일반화 되어있는 레포츠다. 짚라인이라는 명칭은 와이어를 타고 이동할 때 “지잎∼”하는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평군이 17일 자라섬과 남이섬을 쇠줄로 연결하는 레포츠 시설인 ‘짚 와이어(Zip wire)’를 착공했다. 오는 8월 완공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는 짚-와이어는 가평 선착장 타워를 중심으로 자라섬까지 710m, 남이섬까지 700m에 각각 80m 높이로 설치된다. 이곳에 설치되는 짚-와이어도 계곡과 계곡
인생을 살면서 삶에 자극이 되는 좋은 자료나 책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최근에 내게 좋은 자극을 준 자료가 있다.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치유성 논문’이라는 박사학위논문과 ‘시 치료’다. 매우 가치 있는 자료다. 시치료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좋은 자료를 쥐게 되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시치료의 개념이 역사적, 학문적 차원에서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시치료의 과정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도록 해준다. 단순히 그것을 기술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시를 가지고 혹은 시를 쓰게 하면서 적용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열거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치료의 한 형태이다. ‘당신들은 왜 창작을 합니까?’ 하고 예술가들에게 물으면 대개의 경우 그들은 당연히 해야만 하기 때문에 예술을 한다고 대답한다. 피카소도 ‘내 모든 시간을 예술에 쏟아 붓지 않고선 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창의적인 노력이야말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적인 애착을 포함하고 있다. 예술은 창작적인 면뿐만 아니라 치유적인 면도…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인 키에르케고르. 그에게 있어 코펜하겐은 지옥, 그 자체였다. 가난을 원망하며 신에게 저주를 퍼부은 아버지. 목재상으로 부를 축적했으나 죄의식으로 두려움에 빠진 아버지로 말미암아 그의 어린 시절은 산산조각나고 만다. 집안은 불화가 끊일 날이 없었고 그 자신 역시 엉망이었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신학이었다. 그러나 신학을 선택했기에 첫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에게 불꽃처럼 짧은 인생은 온통 불안의 기록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키에르케고르를 가리켜 ‘불안의 철학자’라고 부른다. 그는 소름끼치는 체험적 자기소외 과정을 저서인 ‘불안의 개념’에서 ‘불안’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으로 각각 분석의 메스를 가하고 있다. 실존주의자들은 특히 염세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전통적인 철학과 달리 그들은 죽음, 위험, 불안, 권태로움, 모순과 무지로 엮어진 존재인 인간의 현실을 개개인적 실존의 입장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20세기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하이데거는 당시 만연하던 ‘니힐리즘’을 이용해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새롭게 정립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존재란 무엇인가?” “모른다.” 처녀작인 ‘존재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