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연다. 맑은 공기가 스며들어 가슴을 채운다. 지난 밤 내내 숲 속에 머물었던 바람도 언제 들어왔는지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마음이 맑아진다. 이른 새벽부터 숲을 지나온 바람이다. 지난 밤 내내 숲에 머물며 숲의 기운을 담뿍 담고 온 바람이다. 바람은 지난 밤 숲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해준다. 어떤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어떤 나무가 병이 들었는지 말해준다. 어떤 꽃들이 피고 어떤 풀잎들이 자라고 있는지 말해준다. 나무가 나무에게 꽃들이 꽃들에게 풀잎이 풀잎들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수런거리던 이야기들도 전해준다. 벌레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바람이 전한 소식들에 마음이 동하여 옷깃을 여미고 아침 산책을 나선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지지배배 비베쫑비베쫑 짹짹짹짹 꾸룩꾸룩 시시시시-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새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 나를 반기는 것일까. 아침이니 오서오라고 나를 반기는 것일까. 아니면 제 즐거움에 혼자 노래하는 것일까. 제 슬픔에 노래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새들은 새들대로 제 노래를 하고 나는 나대로 내 길을 갈 뿐이다. 걷는 발걸음을 따라 아침이 오는 듯 밝아진다. 하늘을 본다. 하늘이 밝아
강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여름 숲이다. 여름 숲은 비가 오지 않았더라도 습하다. 축축하다. 시원하다. 깊고 깊은 땅 속에서 나무가 빨아올린 물들이 나뭇잎을 통해 대기를 적시기 때문이다. 울창한 나무숲들이 햇빛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줄 때에만 간간이 햇빛이 들어온다. 나뭇잎이 하늘을 덮었다. 나뭇잎으로 덮인 하늘이 푸르고 푸르다. 잔바람에 나뭇잎들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하늘이 흔들리는 듯하다. 숲길을 걷는다. 숲 여기저기에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이제 겨우 십 년 이십 년 짧은 세월을 살아왔을 여린 나무들도 있고 족히 수십 년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아름드리 나무도 있다. 채 자라기도 전에 모진 비바람에 쓰러진 여린 소나무도 있고 수백 년을 세월과 함께 지켜온 상수리나무도 있다. 지난 여름 장마에 뿌리 채 뽑힌 나무들도 있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저 홀로 쓰러진 나무들도 있다. 발걸음 따라 걸어가는 숲길에 나무가 놓여있다. 쓰러진지 오래된 나무이다. 나무는 이미 삭았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다. 죽어 쓰러진 나무는 많은 벌레들과 미생물들의 양식으로 집으로 이용된다. 두꺼비 한
숲에는 울림이 있다. 숲에 들어서면 그 울림을 들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숲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들이다. 숲에 가득한 그 이야기들이 숲만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숲으로 들어가 마음 기울이면 그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이야기들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겨 놓은 삶의 흔적들도 만날 수 있다. 말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말로는 할 수 없었던 삶의 이야기들이다. 숲에 사는 모든 생명들은 제각기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들을 제 몸에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봄이면 피었다 지는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에서부터 수백 년을 지나 천 년을 사는 상수리나무나 갈참나무 굴참나무 등도 수천 년을 사는 주목과 같은 나무들도 모두 제 몸에 제 삶의 흔적을 남긴다.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의 색이 노란 것도, 진달래나 철쭉의 색이 붉은 것도, 개망초꽃이나 조팝나무의 색이 하얀 것도 모두 제 삶의 이야기들이다. 삶의 흔적이다. 나뭇잎이 뭉쳐나는 것도, 띄엄띄엄 떨어져 나는 것도 모두 제 삶의 흔적들이다. 같은 종류의 나무일지라도 나뭇잎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모두 제각기 제 삶의 모습들을 담고…
참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여름 숲이야 그 울창함으로 모두 깊지만 여름의 참나무 숲은 더욱 깊다. 마치 하늘에라도 닿을 듯 뻗어있는 나무 기둥에 매달린 무성한 가지와 나뭇잎들 때문이다. 한 여름의 낮이라도 참나무 숲에 들어가면 마치 고즈넉한 저녁을 맞는 듯 숲은 서늘하고 어둡다. 고요하고 깊다. 마음 절로 깊어진다. 바람이라도 불어와 참나무 가지를 흔들어 나뭇잎이라도 펄럭여야 햇살을 만날 수 있다. 참나무 숲을 지나는 내 발걸음에 어치가 ‘과아 과아’하고 큰 소리로 운다. 낯선 발걸음에 놀랐으리라. 낯선 이를 경계하라고 숲의 친구들에게 알리는 것이리라. 미안한 마음 어치에게 전하며 조용히 걸음을 내딛는다. 행여 밟히고 차이는 생명이 있을까 저어하여 조심스레 발걸음을 뗀다. 행여 내 발걸음에 놀라 오수를 즐기던 새들이라도 잠에서 깰까 저어하여 마음 기울여 걸음을 옮긴다. 그런 마음이 어치에게 전해진 것일까. 어치는 ‘쀼우 쀼우’하고 아까와는 사뭇 다른 예쁜 목소리로 운다. 낯선 이라도 그다지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준 것일까. 내 마음을 알아준 어치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려 나뭇가지 위를 살핀다. 참나무의 무성한 나뭇잎들에 가려 어치는 보이지 않는다. 저기 어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늘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아침햇살은 따스하고 찬란하지만 저녁노을은 그윽하고 아름답다. 아침햇살은 눈부시도록 밝지만 저녁노을은 그윽하고 깊다. 아침햇살은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지만 저녁노을은 모든 것을 품어준다.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수고했다고 이제 지친 몸과 분주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쉬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저녁노을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는 이들의 삶이 고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말이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만이 하루의 삶을 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고 멈추는 것도 그러하다. 바람 불어 열매 떨어지고 꽃잎 날아가는 것도 나뭇잎 흔들리고 씨앗이 날아가는 것도 모두가 자연의 중요한 변화들이다. 사람들만이 이 변화를 종종 잊고 지낼 뿐이다. 모르고 지낼 뿐이다. 오늘 아침도 바람이 부는가 보다. 창 밖에 있는 여린 졸참나무가지가 흔들린다. 아직은 어리고 여린 졸참나무이다. 그러나 수십 년의 세월을 말없이 지키는 동안 가지도 제법 굵어지고 나뭇잎도 더욱 무성해졌다. 별 탈 없이 잘 자라기만 한다면 천 년의 세월을 살
작년에 이어 이번 여름에도 독일의 작은 마을 윤데(Juende)를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됐다. 이 마을을 작년에 이어 다시 방문한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작년에 한창 공사 중이었던 바이오 가스 발전시설이 완공돼 무리없이 작동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두 번째는 이러한 시설이 앞으로 한국에도 적용하여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함이었다. 한국은 에너지 90% 이상을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 종속국가지만, 이에 대한 대비와 준비가 가장 미흡한 나라 중에 하나이기에 이 윈데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클 것이라 확신한다. 윤데는 인구 7백여 명의 작은 농촌마을로 독일의 니더작센(Nieder Sachsen)주에 속해 있으며, 유명한 대학도시인 괴팅겐(Goettingen)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1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마을이 독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이 마을에 필요한 전기 뿐만 아니라 난방까지 자체 생산해 조달할 수 있는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시설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윈데의 바이오 시설이 독일 최고의 모범사례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이연수 시흥시장이 최근 안팎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 취임된지 채 두 달도 안돼 조직내 직제 불만이 도마위에 오르는가 하면 선거 때의 감언이 영락없는 자충수가 돼 싱거운 단체장으로 호된 질책을 받고 있다. ‘좌불안석’이란 말도 실감날 법도 하다. 그런데 이 사안들은 공교롭게도 그의 전력에 따른 오해가 적잖은 것 같다. 다분히 수사통으로서 직전 시흥서장을 지내는 등 무려 26년의 경찰 공직이 그 오해의 중심이다. 먼저 취임 즉시 부활시킨 ‘민원처리 기동팀’이다. ‘초동 수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형사통 답게 그는 ‘민원의 공백을 메워주는 서비스’를 ‘형사 기동대’ 성격처럼 도입했다. 아니 이웃 일본 치바현(千葉縣) 마츠도(松戶)시의 ‘신속처리과’를 벤치마킹하려 했는지 모른다. 동경에서 승용차로 1시간 남짓 위치한 마츠도(松戶)시는 인구 50만명의 중소 도시인데 지난 2003년 ‘신속처리과’를 신설했다. 모두 7명의 직원이 3명씩 교대로 팀을 짜서 아침부터 마치 ‘112순찰차’처럼 신고 즉시 민원 현장에 출장하고 남은 4명은 시민의 전화를 받고 무전기로 연락하는 시스템이다. 온갖 ‘3D 민원’에 재빠르게 대처한 마츠도(松戶)시는 한 해 국내외 시찰단이…
시인의 표현처럼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 말처럼 열린우리당의 상황을 압축해서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한반도를 휩쓸고 간 태풍이 남긴 내상이 채 치유도 되기 전에 또 다시 엄습해 하루 종일 세차게 내리는 지루한 장맛비처럼 우리당의 전망은 한마디로 한치 앞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렇지만 장맛비가 휩쓸고 간 상처는 우리의 마음을 두고두고 어지럽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장맛비가 휩쓸고 간 수해의 상처 뒤에는 고통과 허탈만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복구에 땀 흘리는 사람들이 있듯이 우리도 진지한 성찰과 접근으로 시대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과 국민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다가서야 한다. 비가 온 뒤 일곱 색깔의 아름다운 무지개가 피는 것처럼 우리가 만들어갈 재기의 토대가 될 희망의 대지위에는 무지개 속에서 수줍은 듯 속살을 드러내는 눈부신 햇살처럼 살며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조순형 후보의 당선은 한마디로 지방선거의 승리감에 도취한 한나라당의 갖가지 부도덕과 오만함을 심판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명도가 높은 후보의 선전이라고 본다. 따라서 분명히 말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시대적 흐름을 거
위탁급식 학교에서 대규모 식중독 사고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지났으나 급식대란은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중고등학교들은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맞았다. 직영급식 법제화 등 정치권과 교육계가 호들갑을 떨었으나 급식체제는 근본적으로 나아진 게 없다. 아침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 학부모들도 고역이지만, 가뜩이나 무거운 책가방에 도시락까지 들고 다녀야 하는 학생들의 모습 또한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다. 그나마 도시락을 마련할 수 없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관계당국은 학교 급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안까지 개정하면서 직영급식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일의 진행은 극히 부진한 상태다. 경기도의 경우 도내 학교들의 급식 시스템을 2009년까지 연차적으로 모두 직영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이에 따른 여건 및 전환 시 필요한 예산규모 등을 파악한 뒤 이달 말까지 연도별 직영전환 추진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라고 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직영전환에 따른 학교 측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도 추후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해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시급을 요하는 급식대란 해결책이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제 겨우 검토 단계에서 맴돌고 있는 셈이다. 물
‘혹시 빠트린 건 없을까?’ 차가 출발하기 직전 다시 한번 준비물 목록을 체크해본다. 빠진 물건이 없는 것을 재차 확인 후 우린 선발대로 여주군 북내면 주암분교로 먼저 출발했다. 매년마다 인천경기지방병무청은 각 과별로 실시하는 체육행사 대신 올해는 봉사활동을 통해 직원 간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평소 문명의 혜택에서 소외된 산간·도서벽지의 오지마을 초등학교 어린이와 함께 하면서 서로 따뜻한 정을 나눔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하여 오지마을 분교 봉사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저로서는 행사준비 및 진행요원으로서 계획대로 이번 봉사활동이 문제없이 순탄하게 잘 진행되기 만을 바라는 마음에 설레임과 두려움이 앞섰다 봉사활동 학교로 여주군 북내면 주암분교를 결정하고 오늘까지 선생님과 많은 통화를 하면서 행사진행 의견을 교환하였던 분교장선생님 뿐만 아니라 주암리 이장님과 북내면사무소 생활복지사 담당자님과도 몇 차례 통화를 하면서 주암리 마을 개황을 살펴보니, 주암리가 논농사와 지렁이 양식, 표고버섯 재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빈농 마을이며 기초 생계비 수급 가구도 10가구나 되는 것을 알았다. 어디선가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