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광복절 62주년을 맞아 일제의 횡포와 관련하여 해결이 안 된 두 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그 하나는 종군위안부 문제요, 다른 하나는 친일파의 재산 환수 문제다. 전자는 미국 하원이 만장일치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이에 따른 역사적 책임의 이행을 결의함으로써 국제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요지부동이어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후자는 나라를 팔아 영화를 누린 사람들이 남기고 그 후손들이 재산증식의 주요 수단으로 삼아온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작업으로써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약칭 친일조사위)가 이를 담당하여 최근에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 13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대통령 직속 4년 한시기구로 발족돼 활동하고 있는 친일조사위원회가 올해 5월 2일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9명의 토지 36억원 상당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한 데 이어 광복절 62주년을 앞둔 13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일제로부터 자작을 받았던 민영휘와 정미7조약의 체결에 앞장섰던 이재곤을 비롯해 민병석, 민상호, 박중양, 윤덕영, 이근상, 이근호, 임선준, 한창수 등 친일반민족…
산수 비경에 세상사를 녹이다… 잡지 ‘미술과 비평’의 편집주간으로 있는 필자는 일 년 전에 ‘새로운 한국화의 가능성을 연 작가들’이라는 테마로 세 명의 유망 작가들을 추천·기획한 적이 있었다. 전통 한국화를 오늘날 우리의 입맛에 맞게 현대화시키면서도 서양화와는 그 특성과 느낌이 확연히 다른 작가의 작품을 선정하였다. 활동하는 작가들은 많지만 그 기준에 부합할 만한 작가는 많지 않다는 것에 새삼 놀랐었다. 우리의 정서를 안고 현대미술에 부응하는 작품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에 선정된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석철주는 원래 전통 한국화를 지속적으로 해왔던 작가로서 예전부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왔다. 그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인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테마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변화시켰을 무렵, 그의 작품성이 필자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캔버스에 서양적인 재료들을 사용하면서도 우리의 정서가 흐르는 작품성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몽유도원도〉는 당시 왕족이었던 안평대군이 어느 날 꿈꾼 장면을 안견에게 그려달라고 요청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
우리의 생활이 “최소 투자에 최대이익”이라는 이른바 경제원칙대로 운용만 된다면 새삼스럽게 삶의 열의를 다지거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치 달성을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의 몸부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며, 목표를 수립하여 짜여진 일정에 따라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고 또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한 도전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에 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없다. 주변의 상황과 투자의 적절한 타이밍, 그리고 노력의 지속성 여하에 따라 결과는 언제나 가변적으로 바뀌어 가며 상황의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처가 결여된다든지 효과적인 노력의 투입이 부합되지 못할 때 결과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언제부턴가 우리 경제는 미묘한 국제경제의 역학에 의해서 국내의 실물경제의 위축과 더불어 변화무상한 국면을 맞고 있다. 밖으로는 각국의 자국경제 이익을 위한 방어 전략에 수출장벽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져 있다. 국내 정치적인 불투명한 환경은 구조 조정의 부담과 더불어 대외 신인도를 하락시키고 이는 내수를 비롯하여 해외무역의 여건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어 경기의 전반적인 침체로 이어져 있다. 최근에는 비정규직법안이 통
제(齊)나라 중신 순우곤은 제왕이 위(魏)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이렇게 진언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매우 빠른 명견(名犬)이 동곽준(東郭逡)이라는 썩 잘 뛰는 토끼를 뒤쫓았사옵니다. 그들은 수십 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는 바람에 개도 토끼도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나이다. 이 때 그것을 발견한 전부(田父 : 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횡재(田父之功)했나이다. 지금 제와 위는 오랫동안 대치하는 바람에 군사도 백성도 지치고 쇠약하여 사기가 말이 아니온데 서쪽의 진(秦)나라나 남쪽의 초(楚)나라가 이를 기회로 전부지공을 거두려 하지 않을지 그게 걱정이옵니다.” 제왕은 이 말을 듣자 위나라를 칠 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부국강병에 힘썼다.(‘전국책(戰國策)’ 참조) 2천300여년이 흐른 지금 대선 예비선거 과정에서 한나라당이란 동일 정치집단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견토지쟁을 벌이다가 함께 쓰러져 죽음으로써 구경하던 농부의 밥이 되고 만다면 이는 우행(愚行)의 극치요, 이적행위의 표본이라 할 것이다. 13일 오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캠프에 속한 김무성, 최경환, 이혜훈 의원 등 9명이…
올해로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다 물도 춤을 춘다’라고 조국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지 62년을 맞이하였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의미있는 경축의 날이기도 하지만 1948년 8월15일 우리 대한미국의 정부가 수립된 것을 공포한 경축일이기도 하다.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강대국들의 밀약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고 일본은 우선 우리나라의 쌀과 토지를 빼앗아가며 약탈을 시작했다. 그러나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문화와 정신을 침략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고 우리나라의 말과 글을 못 쓰게 하고 일본어, 일본이름을 쓰게 강요하는 등 한국의 일본화를 꾀하였다. 일본이 세계대전에 관계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청년들은 징병되거나 강제노동에 징용되었고 일본의 군수품 재료로 숟가락, 젓가락 마저 빼앗겨야 했으며 우리나라는 일본의 전유물이 되어 혹독한 시련을 맞았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비밀리에 조직을 결성하고 식민지 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직접 행동으로 실행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문학활동 등과 같이 간접적으로 독립
얼마전 안양에서 서울쪽으로 가다 청계 톨게이트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 몇몇군데 톨게이트는 차량들이 줄지어 있는 반면 몇몇 톨게이트는 줄지어 있는 차량이 없기에 웬일인가 싶어 차량이 없는 차로로 일단 지나가기로 결정하고 출구를 진입하는데 ‘아차’ 싶었다. 돈과 통행권을 내야하는데 돈받는 징수원도 없고 부스도 없었다. 고속도로는 유료도로라 분명 돈을 받는 부스가 있어야 하는데 싶어 운전 중 부랴부랴 해당영업소로 문의를 하였더니 ‘하이패스 전용차’로를 지나갔기 때문에 차를 돌려 영업소사무실에 들려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황당했지만 다시 톨게이트를 찾아갔다. 담당영업소 직원에게 친절하게 요금처리를 받으면서 하이패스를 시행한 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나같은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며 하이패스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하이패스전자지불 시스템이란 전자카드와 OBU라는 단말기를 차량에 설치하여 하이패스전용차로를 이용하고 무인, 무정차로 통행료 지불이 되므로 요금지불을 하려고 차로에서 정차하는 시간을 줄일수 있으며 안전하고 빠르게 요금을 지불할수 있고 전자카드 충전시에는 고속도로카드처럼 할증기능까지 있어 굳이 일회용 고속도로카드를 구입하여 환경낭비에 일조할 필요가 없다. 또 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한다.” 위의 글은 ‘6.15남북공동선언’의 서문이다. 본문은 6개 항이다. ①통일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한다. ②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반영되는 통일을 지향한다. ③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간다. ④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발전시키고, 제반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한다. ⑤이상의 합의사항을 실천하기 위해 당국간 대화를 개최한다. ⑥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답방한다. ①항과 ②항은 글자 그대로 남북 최고 책임자간에 합의된 장기 과제이다. 남북관계나 국제정세로 보면 이 문제들을 ‘우리끼리’ 논의할 단계는 아직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인 탈레반에 의해 한국봉사단원이 피랍된 지 27일째가 됐다. 27일이 지나는 동안 봉사단을 인솔했던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가 주검이 돼 한국으로 돌아왔을 뿐 21명의 피랍자는 여전히 무장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그들이 살아있고 2명의 여성이 풀려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봉사단원들이 피랍된 뒤 피랍자 가족들은 피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쏟아져 들어오는 외신보도에 하루에도 몇차례씩 희비가 교차되고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면서 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피랍자 가족들은 외신보도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자신의 자녀, 형제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전해져 오는 내용에 촉각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피랍자 가족들은 아랍권 국가의 대사관을 찾아가고 자체 UCC까지 제작하면서 애타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이들의 호소는 점차 공허한 메아리로 변하고 있다. 피랍 초기만 해도 높은 관심을 보였던 언론도 남북정상회담 발표이후 시들해졌고 국민들의 관심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을 괴롭히는 집단이 있다. 피랍자 가족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잠이 아놔(안 와) 아놔. 안습(안구에 습기 참, 눈물남)인 거다. 개학식은 8월 20일. 방학숙제 지금 해야 하는데 진짜 막막하다 -_-. 우선 국어 안 하면 담임이 남겨서 청소시킬 것 같다. 아니면 살포시 때리거나, 영어는 안 하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샌님이 싫어할 것 같고, 사회는 안 하면 수행을 깎고, 과학은 안 하면 음, 맞거나 조낸(엄청) 잔소리?! 기가(기술·가정)는 안 하면 그 높은 톤의 보이스로 ‘너 왜 안 했니?’라 할 것 같고, 음악은 ‘네가 뭔데 방학숙제를 안 해!’라고 할 것 같다. 아아아 이 죽일 놈의 방학숙제….” 한 학생이 인터넷에 쓴 이 글에는 방학숙제로 인한 중압감이 깊게 베어있다. 교육당국이 시험 성적만이 아니라 학생의 과제 수행과정을 평가해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로 1999년 도입한 수행평가의 내신반영 비율은 서울지역 초·중·고교의 경우 본래 15%였으나 2004년부터 30%로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방학이 끝나가는 요즘 서울 강남지역의 방학숙제 대행학원들이 방학 수행평가(방학숙제)를 건당 2만5천원에서 5만원씩 받고 대신 해주고 있다. 그들은 대행요금만 다를 뿐 전국 곳곳에 포진해 있다. “독후감, 그리기,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