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처방 /김윤환 안압이 오른 후에 의사 왈 신경 쓰지 마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뭐 그리 신경 쓸 일도 무리할 일도 없는 나에게 참 과분한 처방이다 얼핏 들으면 신경 좀 쓰고 살아라, 힘 좀 쓰고 살아라 양심에 독촉하는 듯 들려 약 처방에 인공눈물약이 들어있네 하루 대 여섯 번 눈물을 넣으란다 얼마나 울지 못했으면 얼마나 눈물이 말랐으면 눈물약이라니 참, 눈물이 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욕망의 종점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사랑의 대상인 사람에 대해 곁눈질로 보는 눈의 오남용(誤濫用)이 범람하고 있는지 모른다. 눈물을 흘리기보다 눈에 불을 뿜는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대상(對象)이 무엇이건, 혹은 누구인건 그 뚫어져라 쳐다보던 눈에는 안압이 오르고 마침내 스스로 생성되지 못한 눈물을 인공으로 넣어야 하는 모순의 삶에 지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만이 지닌 눈동자 흰자위의 순기능과 흘릴만한 눈물의 저수량과 배수의 기능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신은 물론, 이웃과 약자, 지연과 역사의 아픔에 대하여 눈길을 주고 눈물을 흘리며 오독이나 난독이 아닌 정독(精讀)의 눈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시(詩)가 예술의 영역안에서 시인은 물론, 사
온통 가을이다. 갈대숲이 있어 좋다. 활짝 핀 은색 빛으로 바람을 빗질하고 여름내 웃자란 초목을 쓰다듬는 것이 영락없는 가을의 파수꾼이다. 익을 대로 익은 풀씨와 출렁이는 갈 볕 그리고 조용조용 스미는 그리움이 있어 행복하다. 가을이 오면 더러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나는 천변을 서성이는 것을 좋아한다. 잔잔해진 물살과 가끔씩 허공으로 튕겨지는 물고기 그리고 천변에 핀 갈대가 무엇보다 좋다. 여름엔 끝없는 푸르름이 좋고 하늘이 높아지면 멀대같은 큰 키와 은빛 출렁임으로 습지를 평정하는 갈대가 좋다. 헐렁한 바지를 입고 허적허적 걷으며 언뜻 보기에는 막걸리처럼 텁텁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이 꽉 찬 야무진 사내 같은 풀이 갈대다. 쉬이 꺾이지도 않고 발치에 이런 저런 생물들은 품고 있어서 더 정이 간다. 가을은 상상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차 한 잔 들고 잔잔한 음악에 취해있다 보면 가슴 한쪽이 시려온다. 옷깃을 여며도 마음을 단속해도 속절없이 파고드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풀물 빠져 파삭해진 잎들이 씨앗을 멀리 좀 더 멀리 보내는 것처럼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고독하면 고독하도록 방치하면 된다.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이토록 나에게 충실할 수 있겠는가. 강
그야말로 혐오스러운 법학자의 모습이다. 두상은 온통 통닭과 생선을 버무려놓은 덩어리로 되어 있고, 몸통은 두꺼운 책들과 서류 뭉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코와 눈썹, 눈동자, 안면 피부와 입술도 모두 생선이나 통닭의 부위들로 대체되어 있다. 온전한 것이라고는 그가 두르고 있는 의복뿐이다. 1566년 이탈리아 출신의 아르침볼도가 그린 <법학자>라는 작품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의 작품은 일종의 형태의 바꿔치기 놀이였다. 야채와 과일, 건초더미, 통닭과 생선과 같은 온갖 사물들이 인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식이다. 이러한 엽기적인 구성과 착시적 효과는 당시에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관객들이야 이런저런 괴상한 현대미술 작품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 테니 놀라움이 더 컸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르침볼도를 사회를 통렬하게 비웃었던 조커 즘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는 프라하와 독일, 오스트리아를 통치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3대에 걸쳐 황제들의 총애를 받았던 궁정화가였다. 본래 밀라노에서 교회 스테
흑염소 /박종국 우리가, 말뚝 박아놓고 매어놓은 고삐만큼 자유가 허락된 흑염소는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의 멍에를 씌워놓고 저를 묶은 밧줄 당기고 당긴다. 풀밭에서 목메어 우는 건 우리다 짧은 시이나 시사점이 큰 시다. 시인이라 해서 모든 시인이 이렇게 짧은 시로 주종이 바뀐 세상을 극명하게 나타내기는 힘들다. 흑염소 한 마리를 키운다는 것은 흑염소에 매달리는 것이다. 흑염소를 묶어놓는 다는 것은 흑염소가 달아날까 묶는 것이지만 결국은 흑염소에 관심을 두는 것이고 방목하는 흑염소가 아니므로 흑염소를 매는 밧줄은 흑염소를 상전으로 곁에서 수발을 들면서 모시겠다는 결의 같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 풀밭에서 줄에 꽁꽁 매어두는 행위는 우리를 꽁꽁 매는 결박의 행위이다. 풍자와 해학이 있으므로 시는 더욱 깊이를 더해 간다. 시단에서 말없는 형님으로 과묵한 선생님으로 이런 좋은 시를 보여 주어 나는 더욱 즐거운 것이다. 시 읽는 재미를 더 하는 것이다. /김왕노 시인
성매매에 나섰던 용인의 여중생이 에이즈에 걸려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청소년 성매매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2013년 823명이었던 청소년 성매매 사범은 2015년 710명으로 줄어드는 듯 했지만 지난해 1천21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얼마전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전체 청소년 성매매 사범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10%밖에 되지 않았다. 처벌이 약하다는 비판이 일자 경찰청, 여성가족부, 법무부는 지난해 ‘성매매 방지·피해자 보호 및 지원·성매매 사범 단속·수사 강화를 위한 2016년도 추진계획’을 내놨다. 이 계획의 내용은 ▲성 알선 사범에 대한 적극적인 구속 수사 ▲아동·청소년 상대 성구매자의 ‘존스쿨’ 회부 금지 및 엄중 처벌 ▲성매매로 발생한 불법 범죄수익 환수 등이었다. 매매 사범의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에 대해 경찰도 할 말은 있다. 이들에 대한 구속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실제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최근엔 최근에는 성매매를 조장하는 모바일 웹사이트나 랜덤 채팅앱 등을 이용한 청소년 성매매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단속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성매매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
영화 남한산성이 추석 연휴기간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상영되고 있다. 벌써 400만명 이상이 관람을 했으니 아마도 천만 이상의 관객이 영화를 볼 것이라 예상된다. 이 영화가 우리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병자호란의 패전에 대한 역사를 진지하게 그렸거나, 혹은 이병헌 등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때문만은 아니다. 이 두가지의 내용도 인기의 주요한 이유이기는 하나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가지도자들의 국제정세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부족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오랑캐로 인식되었던 여진족의 나라 후금(청나라)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이미 망해지고 있는 명나라에 대한 지독한 사대주의가 낳은 결과다. 조선의 집권자들은 백성들의 안위는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집권을 위한 명분만 만들었다. 그 명분이 바로 친명반청. 즉 명나라에 대한 사대와 후금에 대한 비난, 여기에 더 나가 후금을 우숩게 여기고 후금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한 것이다. 이미 명나라는 국력이 모두 사라져 망하기 직전이었고 후금 세력들이 나날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후금과의 관계를 단절하
파리 에펠탑 전경이 가장 아름답다는 샤이요궁 앞 트로카대로에서 차를 타고 고흐가 생전 마지막으로 머물던 오베르 쉬르 우와즈 마을은 파리에서 30㎞ 떨어져 있는 평온한 시골 마을이다.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불우한 화가로 기록되고, 살아 생전 작품이 단 한점만 팔렸을 정도로 어렵고 힘든 화가생활을 견딘 고흐지만 죽기 전 두달동안 머물며 70여 점이라는 가장 많은 작품을 그린, 작가의 영혼을 사로잡은 오베르 마을의 풍광을 느끼고 싶었다. 고흐는 네덜란드 화가로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작품 전부를 측두엽 기능장애로 추측되는 정신장애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까지 단지 10년 동안에 모두 만들어냈다. 사후에 동생 테오의 아내에 의해 11년 후 파리에서 71점을 전시한 이후 그의 명성은 급속도로 커졌다. 반 고흐는 세잔과 고갱과 더불어 후기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된다. 특히 형태의 단순화와 강렬한 색채로 내면적 세계를 그리는 표현주의 화파를 대표적으로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파 등 20세기 미술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과 오테를로에 있는 크뢸러-뮐러 박물관은 많은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을 수집해서 보유하
보면 볼수록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손자를 보며 아내는 연실 싱글벙글 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가족 나들이를 유명산으로 갔다. 요즘 젊은 엄마 아빠들이 주로 쓰는 띠를 이용해 손자를 앞으로 안 듯이 업고 두 시간 정도를 산책을 했다. 처음으로 오랜 시간 손자를 품에 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아들놈은 잘못한 것이 많아도 장가를 가면 모두 용서된다는 이야기는 결혼이 늦어 걱정을 하다가 각자의 살림을 하는 자식에게 이거 저거 챙겨주며 하는 재미에서 아내가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런 말도 슬쩍 한 적이 있다. 아니 딸도 아니고 아들 며느리를 뭘 그렇게 챙겨 주냐고 딸이 친정에 와서 바라바리 챙겨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이리 챙겨주는 것은, 여기까지 말하다 며느리에게 시집에 온 것이 아니라 친정에 온 것 같다 했더니 네 하며 웃는다. 보기 좋은 현상이다. 시 자만 들어가도 싫다며 시집에서 주는 것은 돈 빼놓고는 모두 싫다는 며느리들도 많다는데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하는 것은 보기만 해도 좋다. 늙은 총각이 넘쳐나는 시골에서 살겠다고 하는 큰 놈, 장가 못 보낼까봐 걱정이 많이 되어 며느리 감 추천을 해도 인연이 안 되고 하여 부모로서 보통 걱정
헌법 개정에 관한 주제를 다루려니 좀 무겁다는 느낌도 들지만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 이번 기회에 꼭 검토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일이므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이 분야에 있어 가장 관심이 많고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국회에선 한법 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개정할 헌법의 주요 의제를 설정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책자 형태로 파일을 만들어 공개하였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주요 의제에 대한 개정 방향을 제시하고 있고 나름대로 방침을 확정한 부분도 있다.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이를 막기 위한 권력구조의 개편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와 같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헌 내용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각종 권한을 어떻게 분산시킬 것인지, 국회 구조도 바꾸어 지역 대표를 고려한 양당제를 도입할 것인지, 지방분권을 어느 정도 선까지 조정할 것인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을 누가 어떤 검증 과정을 통해 선임할 것인지 등등이다. 나는 일반 국민들이 이와 같은 국회의 개정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국회에서 각 지방을 순회하며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토론회를 열고 있을 때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이란 게 있다. ‘이그’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의 약자다. 현실적 쓸모에 상관없이 발상의 전환을 돕는 이색적인 연구에 수여하는 상이다. 미국 하버드대 유머과학잡지에서 과학에 대한 관심 제고를 위해 1991년 제정한 일종의 ‘패러디 노벨상’이다. 알려진 바로는 노벨상의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친척 이그나시우스(Ignatius) 노벨의 유산으로 이 상을 창립했다고 한다. 매년 노벨상 발표 한 달 전쯤 수상자를 발표 하는데 부문은 평화·생물학·의학·수학·경제 등 10개다. 수상자들은 트로피와 함께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짐바브웨 달러’로 10만 달러(미국돈 40센트의 가치)를 상금으로 받는다. 반면 시상식 참가비는 각자 내야 한다. 이에 대해 일부 과학계에서 과학을 희화화한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진짜 노벨상 수상자들이 기꺼이 논문 심사와 시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반인의 관심도 높은 편이다. 지난 9월14일 “커피 든 잔을 들고 뒤로 걸을 때 컵 속의 액체 슬로싱(sloshing·용기의 진동에 따라 액체가 떨리는 현상)을 연구한 한국인 한지원씨가 ‘이그노벨 유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