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메리카노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은 내 충혈된 눈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 줄서기에 합류하며 하루를 휘도는 동안 나는 숱한 사람들을 만난다. 전화로 만나고, 얼굴로 만나고, 글로 만나고, 소문으로 만난 사람들의 담금질에 굳은살이 박힌 채 내 눈은 자주 충혈돼 있다. 마치 까페 테라스의 화분 속 화초처럼 항상 싱그럽게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닌 듯 늘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그곳을 찾게 된 것은 충혈된 내 눈에 대한 서비스라고나 할까, 안식의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에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항상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열어놓고 턱을 고인 자세로 무엇인가 사색에 빠져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시들어 가는 한 그루의 나무 같았다. 늘 그 자리에서 별 움직임 없이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는 모습이 바람에 나뭇가지 몇 개 흔들어 보는 포풀러 나무 같기도 한 것이 괜스레 나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그늘이 있지나 않나 나를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내 자리는 늘 그 옆 테이블. 뽀얀 생크림에 빵 조각을 찍어 씹으며 내게 허용된 시간들을 잘근잘근 음미하는 편안한 시간. 사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만나 나누는 이야기 따위
북한과 맞닿아 북녘하늘이 눈앞에 보이는 대마리는 철원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민통선 마을로,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청정 지역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작은 형님은 내가 전화를 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번 왔다 가라고 하셨다. 작년 여름부터 벼르다가 휴가를 내고 내려갔다. 맘만 먹으면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 남짓 달려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그동안 무엇이 그렇게 바빴던지 1년에 한 번 가기도 힘들었다. 고향의 여름은 푸르다. 산과 들이 푸르고 하늘이 푸르다. 이곳을 떠난 지 몇 십 년이 흘렀어도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포도넝쿨로 뒤 덮인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을 때 제비 한 쌍이 먹이를 한입 물고 처마 밑에 있는 둥지로 날아들었다. 날개가 삐쭉 나온 대여섯 마리의 제비 새끼들이 먹이를 달라고 짹짹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어미제비는 연실 벌레를 잡아 크게 벌린 제비새끼 주둥이에 물리고 급히 날아갔다. 구름 한 점 없는 불볕더위에 어미제비는 먹이를 찾아 숲속을 날아다니다가 단 한 번도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제비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에 감탄사가 절로…
민생치안 책임지는 경찰 입장에서 사람과 사람, 법과 사람 사이의 조정자 역할을 신중하게 해야 할 때 흔히 공격적인 직업하면 경찰관을 떠올릴 것이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만 경찰은 현장에서 국민과 가장 가깝게 접하고 있으니, 공격적인 직업하면 경찰을 떠올릴 만하다. 필자는 그래서 강의 때마다 사회적인 약자에게 신뢰받는 일, 공격적인 정서에 대한 경계, 친절한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강의하는 버릇이 생겼다. 필자는 평소에 성선설이 옳다고 생각해 왔는데, 근래에 인간이 참 악하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김기덕 영화감독이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 칸, 베니스 중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영화계에 놀라운 소식이었고 나는 서둘러 아내와 함께 ‘피에타’를 보았다. 김기덕 감독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영화 ‘섬’이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에 초청됐고,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잔혹과 엽기성이 깃든 불편
가을이라 하면 푸르디푸른 하늘, 붉게 익은 고추, 한가로운 고추잠자리 등이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단풍(丹楓)’을 빼놓고 가을을 이야기할 순 없다. 생동감 넘치던 여름을 지낸 나뭇잎들이 가을이라는 계절변화로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스스로 분해돼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변모한다. 이는 분해과정에서 안토시안이라는 색소가 생성되는데 단풍의 노랗고 빨간 색깔은 안토시안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는 설명이다. 기상청은 보통 산 전체의 20% 정도가 색깔을 바꾸면 ‘첫 단풍’으로 분류하고, 80%가 넘어서면 ‘절정기’로 예보하는데 이때가 바로 단풍구경에 나설 때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우리와 같은 단풍구경의 풍습이 전해지는데, 단풍놀이에도 정치의 음습한 그림자가 엿보인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일본의 패자(覇者)들은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거나 지방 다이묘들을 견제하기 위해 거국적 단풍놀이에 나섰다는 기록들이 전해진다. 지금도 단풍놀이에 나서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게 마련인데, 일본 전국시대에는 단풍나무를 조경하듯이 옮겨 심어야 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대느라 지방 다이묘들은 중앙정부에 대항할 힘을 기를 수가 없었다. 그
모든 예술·문화는 한 권의 책으로부터 비롯된다. 반듯한 경제와 과학, 민주적인 정치와 사회 역시 책 없이는 불가능하다. 책을 읽는 삶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반듯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이 가슴에 꽂힌다’라고 책의 장인인 월리엄 모리스가 말했다. 한 권의 책은 인문학이고 예술학이다. 지상의 책 한 권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문화이고 예술이다. 동네서점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경기도 수부도시-수원에도 4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수원 최고(最古)의 향토서점이 문을 닫았다. 7년 새에 경기도 내에서 무려 101곳이 폐업했다. 안타까운 우리 사회의 문화적 현실이다. 읽고 싶은 책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손쉽게 보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언제나 서점에서 시대정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환경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경제가 풍요롭게 발전하고 과학이 경이롭게 발전하면서 물질시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물질이 정신을 황폐화 시키고 있다. 한 권의 책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사회를 반듯하게 세우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바로 걷게 하는 힘이고 정신이다. ‘내가
불과 3년 전에 벌어져 근로자들과 국민들을 울분케 했던 쌍용차 사태가 재조명받고 있다. 그 당시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농성 진압에 투입됐던 전투경찰 출신의 한 청년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에게 사과의 편지를 전달한 것이 알려지면서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지난 20일 행사에서 한 청년이 행사가 끝난 뒤 문기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비지회장에게 쪽지를 건넸다고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로 시작되는 이 쪽지에는 “저는 당신들과 맨 앞에서 대치한 전경이었습니다. 그 시위에서 가장 많이 다친 부대였기 때문에 당신들을 미워하고 증오했습니다. 제대를 하고 얕은 공부와 당신들의 진실을 통해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적었다고 밝혔다.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쌍용차 문제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번 청문회는 대규모 정리해고와 이로 말미암은 파업의 후유증을 진단하고, 경찰 진압의 과잉 여부 등을 가려 3년 넘게 지속해온 쌍용차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려는 자리였다. 환경노동위가 여소야대라고는 해도 여당이 쌍용차 문제를 공론화하는 청문회 개최에 동의한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청문회는 여러 명의 관련 증인을 불러
지난 22일 오후 3시 음악회에 온 사람들이 펑펑 울었다. 우리 한국 사람들 말에 ‘네 설움 내 설움’이 있긴 하지만 그 우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또 함께 울어줬다. 서러움과 죄송스러움, 그리움과 음악이 하나가 됐다. 그러나 우울한 음악회만은 아니었다. 울다가 웃다가 행복한 표정을 짓다가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추모음악회가 열린 곳은 수원시 영통구 동탄원천로 1420(이의동)에 있는 수원시의 장묘시설 연화장이다. 화장하는 시설이 있고 화장한 유골을 모시는 납골당이 있다. 지난 2001년 1월에 개원한 종합장제 시설이다. 당시 심재덕 수원시장은 지역주민들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화와 상생의 타협을 통해 이 시설을 건립했다. 그도 지난 2009년 1월 유언에 따라 자신이 생전에 건립한 이곳에서 화장됐으며 대통령 중 유일하게 화장을 한 노무현 전대통령도 같은 해 5월 여기서 한줌의 재로 돌아감으로써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 5월에는 그를 기억하는 수원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이곳에 조형물을 세웠다. 이제쯤 심재덕 전 시장의 조형물도 여기에 세웠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시설은 승화원(화장장), 장례식장, 추모의집(봉안당)의 기능을 갖췄으며 부지면적은
1천250만 경기도민이 화합하는 생활체육인들의 한마당 축제, 제23회 경기도생활체육대축전이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하나되는 경기의 꿈’이라는 슬로건 아래 문화의 도시판타지아 부천에서 펼쳐진다. 지난 여름 제30회 런던올림픽당시 런던 북동부에 위치한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화려한 개막식은 현장에 참석한 필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나라는 사격, 양궁, 유도, 체조, 레슬링, 태권도, 수영, 펜싱, 축구 등 여러 종목에서 눈부신 선전을 펼치며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를 획득해 종합 5위를 기록했다. 지난 1948년 런던올림픽 이후 64년만에 다시 찾은 런던땅에서 텃세를 극복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런데 육상 종목은 그 어두운 그늘에 서있었다. 한국은 육상은 관심도 끌지 못한다. 자랑스럽게 내세울만한 육상스타가 없는 현실이 슬프기도 했다. 육상에도 박태환, 손연재 같은 선수가 경기를 가졌다면 한국은 왜 그런 선수가 없을까? 자메이카가 육상강국이 된 것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학생이 육상을 일상적으로 즐기고 이를 바탕으로 100m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란히 차지한 우사인 볼트나 요한 블레이크 같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슴으로 맺어지는 인연은 얼마나 될까? 옷깃을 스치는 게 인연이라고는 하지만 스스로에게 ‘나의 소중한 인연은 언제, 누구일까?’하고 자문해 보면 확연하게 떠오르는 인연들(?)이 있다. 어느날 의형제로 지내는 형님의 전화를 한통 받았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을 제안하는 내용이었고, 흔쾌히 승낙을 했다. 올해 1월 위암 수술을 받은 형님과의 여행인지라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둘만의 여행인지라 한편으로는 기대가 컸다. 머리도 식힐 겸 3박5일 일정으로 부담 없이 다녀오고 싶었다. 부부팀, 자매팀, 모녀팀 그리고 우리, 모두 4팀 8명이 여행사를 통해 자유롭고 편안하게 캄보디아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한자리에 모여 가볍게 식사를 하며 본인들에 대한 소개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보면 여행내내 서로에 대한 정보도 없이 순수하게 여행만을 즐겼던 것이다. 필자에게 관심이 보였던 분은 미국 뉴멕시코주 한인회 김두남회장 자매팀. 이천시와 자매결연이 진행되는 산타페이시가 있는 주(州)이고 이천에서 시장님과 시의장님등 사절단이 2개월 뒤에 방문하기로 일정이 잡힌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깊고 긴 대화로 여행을 마무리 했다. 두 자매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등 굵직한 정치현안에 묻혔지만 법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어쩌면 대선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외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현실화는 법원에서 시작됐다는 느낌이다. 법원은 대한변호사협회가 K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에어백 허위광고 피해소송에서 피해 소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소위 공공기관의 공익소송에 의한 첫 승소라는 점에서 그 영향은 대단할 전망이다. 법원은 K자동차가 특정 승합차의 홍보광고에서 “3열에도 커튼 에어백이 기본으로 장착됐다”는 허위광고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혔음을 인정, 원고 27명 25명에게 25만~115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대기업에 비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비자의 피해구제에 법원이 적극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특히 이번 판례가 확장돼 소송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피해자도 소송 승소자와 똑같은 판결효력을 누리는 ‘집단소송제’로 진화할 수 있어 소비자단체들이 뜨거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대기업들은 이번 소송으로 발아된 소비자위주의 소송제도가 집단소송제를 넘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성장할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물론 원칙적 ‘공익소송제’는 기업의 불법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