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균형발전이란 명목 아래 수도권을 압박해온 중앙정부에 대해 경기도가 ‘폭탄선언’을 하고 나섰다. 총대를 멘 것은 손학규 경기도지사다. 그는 16일에 가진 도내 시장·군수 정책회의 석상에서 참여정부의 실정(失政)을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는 도덕적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며 향후 경기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내 일선 시·군이 일체가 돼서 경제와 민생챙기기에 나서야 한다”고 독자생존을 강조했다. 그는 여기에 덧붙여 “측근의 비리사건은 재신임의 대상이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국민 투표를 제안한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했다. 일찍이 지방정부의 수장이,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난한 사례가 없었던 터라 발언의 진의에 대해 해석이 구구하다. 혹자는 압살지경에 처한 경기도의 수장으로서 할말을 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한쪽에선 항간에 나돌고 있는 대권 행보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며 순수성 결여를 탓하고 있다. 아무튼 정부와 경기도는 반목의 극점(極點)에 섰다. 사태의 발단은 경기도가 결사 반대하는 국가균형발전법안을 국무회의가 통과시킨데서 비롯됐다. 손학규 도지사는 이 법안의 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국무회의 참석을 요구했었지만 무참
경기도가 제84회 전북 전국체전에서 종합우승했다. 경기도의 이번 우승은 작년에 이은 대회 2연패이며 통산 15번째 정상등극이기도 하다. 우선 우리는 이번 체전에 참가했던 선수들과 관계 임원, 그리고 경기도 체육회에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아울러 체전준비와 지원에 만전을 기했던 관련 단체의 임직원들과 공무원들에게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바다. 이로써 우리 경기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전국의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가장 우수하고 위용있는 지자체임을 다시한번 입증한 셈이다. 경기도의 이번 우승과 대회 2연패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경기도는 지리적으로 서울의 외곽에 위치해 수도 서울의 주변지역 혹은 방계 수도권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경기도가 단지 서울의 외곽지역이 아니라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위용을 갖춘 웅도임을 입증한 것이다. 또한 인구수는 물론 경제총규모에서도 이미 서울을 앞지른 바 있는 경기도가 체육분야에서조차 연거푸 전국 최고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더 이상 경기도가 서울의 외곽이 아닌 대한민국의 중심임을 확인한 셈이다. 이번 체전에서 2연패를 일찌감치 달성한 경기도선수단은 폐막을 하루 앞둔 대회 마지막 날에도 유도, 탁구, 조
SK 손길승(孫吉丞) 회장으로부터 11억원어치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아오던 최도술(崔導術)씨가 구속수감됐다. 최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는 검찰조사에서 11억원 가운데 3억 9천만원만 받아 대선 빚을 갚고, 나머지는 개인 용처로 썼다며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다. 문제는 SK가 최씨에게 건낸 돈의 성격이다. 야당의 주장과 같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이었는지, 아니면 사업을 잘 돌봐달라는 뜻의 ‘보험금’이었는지다. 물론 둘 가운데 한가지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회사를 잘 봐 달라”는 명목(알선수재)과 정치자금(정치자금법 위반) 성격이 동시에 있다면서도 알선수재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 사태를 몰고 왔다. 결코 11억원의 뇌물이 적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서관 한 사람의 비리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재신임을 묻는 단계로까지 확대될만한 것인지에 대해서 이론(異論)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투표 제안이 나오자마자 정치권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이 혼란에 빠졌다. 여야간의 찬반도 엇갈린다. 결국 최씨는 가뜩이나 어려운…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제안하면서 나라 안이 국민투표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우리나라의 국민투표법은 1954년 11월29일 최초로 도입되었으나 실시되지는 않았다. 제1차 국민투표는 1962년 12월 17일 대통령 박정희 발의로 제3공화국 헌법 제정에 대한 찬반을 물었는데 가결됐다. 제2차 국민투표는 1969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 발의로 3선 개헌에 대한 찬반을 물었는데 가결됐고, 제3차 국민투표는 1972년 11월 21일 역시 대통령 박정희 발의로 유신헌법 찬반을 물었는데 가결됐다. 제4차 국민투표는 75년 2월 12일 대통령 박정희 발의로 유신체제에 대한 찬반을 물었는데 역시 가결됐다. 제5차 국민투표는 1980년 10월 22일 대통령 전두환 발의로 제5공화국 헌법 개정에 대한 찬반을 물었는데 가결됐으며, 1987년 10월 27일에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에 대한 찬반을 묻는 제6차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압도적인 찬성으로 확정됐다. 결국 국민투표법은 자유당 대통령 이승만이 제정했지만, 통치수단으로 쓴 것은 박정희 4번, 전두환 2번이었다. 박정희의 경우는 4번 모두가 정권 수호 차원이고, 전두환의 경우는 한번은 정권수호, 한번은 민주주
지난날 복싱선수는 헝그리정신의 상징이었다. ‘헝그리복서’라는 말도 유행했었다. 못배우고 배고픈 청춘들에게 복싱을 통한 출세는 꿈의 구현이었다. 하여 낮에는 막노동과 공장직공 등으로 일하면서 밤마다 복싱 도장에 나가 권투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노력 끝에 어쩌다 기회를 잡아 승승장구 한국챔피언, 동양챔피언, 세계챔피언의 자리까지 내달리는 경우, 그야말로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출세가도 일보직전에 포기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대개는 경기에 져서 선수생활을 그만 두게 되지만, 더러는 그것과 상관없이 운동을 포기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이른바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체중 감량에 실패한 경우다. 체급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게 체중 감량은 최고의 공포 대상이다. 체중감량을 위해 매일 세벽조깅과 줄넘기, 웨이트트레이닝 등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먹는 것은 극도로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 떠나서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하필 먹는 것을 참아야 하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 아닌 것이다. 과거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던 선수조차도 선수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멋진 승부의 추억이 아니라 체중 감량을 위해 주린 배를 움켜줬던 기억이라
점차 다원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문화적 경향들이 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으로만 이해하기엔 곤란한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 가운데 특히 나날이 문란해지고 있는 성문화의 변화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최근 적발된 인터넷 스와핑(부부교환 성행위) 모임은 그러한 우려를 증폭시킨다. 인터넷을 통해 스와핑 모임에 가입한 회원이 드러난 것만 줄잡아 부부 70쌍 이상이다. 더구나 그들 대부분이 의사, 기업의 사장 등 우리 사회의 상류층들이고, 연령대 또한 30~40대로 다양하다고 한다. 이는 스와핑 사이트를 직접 개설해서 회원을 모집하다가 적발된 당사자의 증언내용이다.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또 “스와핑을 즐기는 부부들이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고 1회성으로 끝나는 부부가 대부분이지만 중독현상을 보이는 부부도 있는 것 같다”며 “권태로운 부부생활 때문에 자극을 원하는 부부들이 스와핑을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와핑 행위 후 연락이 두절돼 이혼을 하거나 가정이 파탄된 부부가 있다는 말은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오히려 난감해 진건 스와핑 사
내년 1월부터 포장양곡표시제가 실시된다.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이미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쌀 브랜드화에 더해서 보다 양질의 쌀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쌀시장과 농민에게 활로를 터주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따라서 제도 자체만을 놓고 보면 결코 비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며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제도도 아니다. 문제는 이 제도를 성공시키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은데다 실제로 허점이 드러난 데 있다. 첫째 이 제도는 시판하는 모든 쌀에 등급을 매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즉 완전미율이 91.4%일 때 ‘보통’, 91.4%에서 95.7%일 때 ‘상품’, 95.8% 이상일 때 ‘특품’ 표시를 하기로 돼있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미란 쌀의 형태가 4분의 3 이상이 온전하면서 투명한 색깔을 띈 것을 말한다. 기왕에 등급제가 도입돼 시행된다면 쌀생산 농가로서는 누구나 특품 쌀을 만들어 높은 값을 받고자할 것은 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특품에 속하는 완전미를 생산할 수 있는 도정기계가 많지 않은데다 완전미를 만들어낼만한 기술과 여건이 부족한 상태다. 결국 특품 쌀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이 우리…
알렉산더 대왕의 본디 이름은 알렉산드로스다. ‘인민(andros)의 영웅(Alex)’이라는 뜻이다. 그가 인민의 영웅으로 추앙받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에 관한 다양한 신화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고르디온의 매듭(Gordian Knot)’ 역시 알렉산더에 얽힌 신화다. 옛날 프리기아의 고르디우스왕은 가난한 농부로 지내다 신의 신탁에 의해 왕이 되었다. 신의 신탁은 미래의 왕이 짐마차를 타고 올 것인즉 그를 왕으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타고온 짐마차를 신에게 바치고, 그곳에다 짐마차를 묶어두고는 튼튼하게 매듭을 지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그리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내는 사람이 아시아 땅의 왕이 될 것이라는 또 하나의 신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매듭을 풀어 보겠다고 달려 들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알렉산더 대왕 역시 문제의 매듭을 풀어 보려 했으나, 아무리 해도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 짜증이 난 그는 갑자기 칼을 쑥 뽑아 그 매듭을 잘라 버렸다. 그 수수께기 같은 고르디온의 매듭이 알렉산더의 칼에 허무하게 풀리고 만 것이다. 후일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땅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에야 사람들은 알렉산더…
부모가 죽고나면 남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물질에 불과한 시신이고, 다른 하나는 유산(遺産)이다. 유산 분배는 유언으로 대신하거나 유서로 명시하는 것이 관례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시신은 예외가 없지만 유산은 천차만별이다. 재력가는 엄청난 유산을 남기지만 가진 것 없이 살아온 가난뱅이는 유산은 커녕 빚이나 남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유서의 압권으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것을 친다. 그는 1801년(순조1년)에 천주교 박해를 위한 신유사옥(辛酉邪獄)이 일어나자. 이가환(李家煥), 권철신(權哲身), 이승훈(李承薰), 최필공(崔弼恭), 홍교만(洪敎萬), 홍낙민(洪樂敏), 최창현(崔昌顯), 그의 맡형인 정약종(丁若鍾), 작은 형 정약전(丁若銓) 등과 함께 체포돼 형 약종은 장사(杖死)하고, 약전은 흑산도로, 약용은 당진으로 귀양갔다. 다산은 이곳에서 19년 동안 귀양살이 끝에 1818년(순조18년) 풀려나 승지(承旨)가 되었으나 배교(背敎)한 것을 뉘우치고 낙향하여 저술에 몰두하다 세상을 떴다. 그가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유언이었다. “내가 벼슬살이를 하지 못해 너희들에게 남겨 줄만한 밭뙈기 하나없는 것을 미안
과천에 있는 한 교회의 신도 124명이 사후(死後)에 장기 기증 서약을 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미담으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집단 서약을 하기까지에는 독실한 기독신앙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지만, 지고(至高)한‘인간승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다. 놀라운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장기기증이 절절한 인간애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 점 흙으로 돌아갈 육신의 일부를 남에게 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이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장기 고장으로 사경을 헤메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물 장기를 기증하기로 한 용기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생·로·병·사의 철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장기 고장의 경우 알맞은 장기를 구할 수만 있다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장기 확보는 곧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수단이면서 요체다. 하지만 장기기증은 누구나 선뜻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자신의 장기가 썩어서 한 줌의 흙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함께 가지고 가고픈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증 서약자들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하늘나라로 갈 것을 만천하에 약속했다. 아마도 이같은 결심을 하기까지는 개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