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야심차게 시작된 일자리센터가 어느 덧 첫 돌을 지나 15개월을 넘어섰다. 사람으로 말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라고나 할까... 본인도 작년 일자리센터가 개소할 때부터 지금까지 ‘취업상담’, ‘구인관련업무’, ‘취업교육’, ‘센터홍보’ 등 일자리센터가 지역 내 일자리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총 망라한 ‘일자리 사업의 메카’로 자리 잡도록 쉼 없이 달려왔다. 아울러 지난 1년 반 동안 현장에서 느낀 다양한 경험과 아쉬운 점을 많이 발견하고 있어 본 지면을 빌어 독자들이 일자리센터의 하는 일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몇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우선 시·군 일자리센터는 구인업체와 구직자들의 매칭을 통해 취업률을 높이고, 구인업체의 구인난을 해결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사람을 구하려는 구인업체가 있고, 일자리를 찾으려는 구직자들이 있으니 달성하기 쉬운 목표라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우선 일자리센터를 방문하는 구직자들은 ‘시청에서 하는 것이니까, 편하고 내가 원하는 일자리를 주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찾아오는 구직자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일반 사기업체 보다는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수원에 이종학(李種學)이란 분이 있었다. 서지학자로서 사재를 들여 각종 고문서와 서책을 수집,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줬던 분이다. 생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료(史料)를 수집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일제시기 항일운동, 수원화성, 이순신 장군, 독도 등에 관련된 사료들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독립기념관, 동학혁명기념관, 현충사에 기증 됐고 방대한 사료집을 발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머지는 선생의 사후, 유족에 의해 모두 수원시에 기증됐고 수원시는 ‘사운’이라는 그의 호를 사용한 사운사료관(수원박물관 내)을 마련해 전시하고 있다. 특히 사운 선생이 평생 수집한 독도 관련 사료 기증은 울릉군 독도박물관 건립에 결정적인 바탕이 됐고 선생은 명예관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운 선생이 지난 2002년 11월 23일 75세의 나이로 별세한 뒤 독도는 우리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3.1절이나 8.15광복절에 즈음해 언론에서 관심을 보였다. 일본의 독도관련 발언 또는 교과서 문제가 터질 때나 분노할 뿐이었다. 이런 때에 개인이 사재를 털어 만든 독도홍보관이 최근 문을 열었다는 보도는 눈길
평생 빈민운동을 해 ‘빈민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여야가 반값 등록금 경쟁을 벌이는 요즘의 정치 상황을 격하게 비판한 것이다. 강 의원은 대학 때부터 판자촌에서 빈민운동을 했고, 18대 국회에 한나라당 비례대표 1번으로 들어왔다. 이런 그가 복지포퓰리즘의 대표적인 사안으로 떠오른 반값 등록금이 연일 뜨거운 감자로 달아오르자 마침내 작심하고 입을 연 것이다. 강 의원은 “4년제와 2년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모두 281만명이고, 이 중 23%인 약 64만명이 대출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고 있다”며 “반면 돈이 없어 급식예산을 지원받는 청소년의 수는 137만명이다. 표 없는 137만명은 눈에 보이지 않고, 표 있는 대학생들만 보이느냐”고 했다. 그는 “내가 지난 3년간 빈곤문제 해결을 말했지만 누구도 특단의 대책을 펴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등록금에 대해서는 모두들 특단의 대책을 들고 나섰다. 한나라당 쇄신파도 틀렸고, 당 지도부도 모두 틀렸고,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강 의원의 통렬한 비판은 가슴을 후련하게 할 정도다. 그가
얼마 전 모신문 칼럼에서 우연히 접한 글이 있다. 위방불입 난방불거(危邦不入 亂邦不居). 논어에 나오는 이 글은 위험한 곳은 드나들지 말고, 어지러운 곳에는 거하지 말라는 뜻이다. 언제 화를 당할지 모르는 험한 세월을 살았던 선인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도 언제 화를 당할지 모르는 어려운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사고 없는 안전한 삶을 꿈꾸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각종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교통사고든 화재사고든 가스폭발사고이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 사고를 안 당하고 사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사회는 위험사회라 할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 말은 쉽게 수긍이 간다. 누구에게나 사고를 당한 사람이 주위에 한두 명은 있게 마련이다. 현대사회는 위험이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고 없는 삶을 정상이라 여기면서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러한 삶을 누리려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사고가 닥치면 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한다. 이제, 위험사회를 사는 우리의 사고 자체가 변해야 하는 시점이다. 사고 없는 안
남미의 잉카가 원산지인 토마토가 과일인가, 채소인가 하는 문제는 실제로 미국에서 법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887년 미국의 관세법은 채소에는 관세를 부과했지만 과일에는 부과하지 않았다. 때문에 토마토의 분류는 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됐다. 이 논란은 1893년 미국의 대법원이 채소로 판결하면서 일단락 됐는데 이 판결은 관세법상의 해석일 뿐 식물학적인 분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토마토는 타임지가 ‘몸에 좋은 10가지 식품’으로 꼽았을 만큼 인체 건강에 미치는 효과가 뛰어나다. 유럽에서는 토마토를 최음제(催淫劑)로 취급해서 성욕을 자극한다는 의미로 ‘러브 애플(love apple)’ 즉 ‘사랑의 사과’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청교도 혁명 후 크롬웰 공화 정부는 토마토가 도덕에 악영향을 끼칠까 두려워 토마토에 독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는 모두 단죄했는데 정력에 좋은 토마토를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토마토 재배를 하지 못하도록 재배 금지령까지 내렸다. 영국에서는 아직도 토마토를 ‘러브 애플’이라고 부르며, 미국에서는 ‘울프 애플’로 부르기도 한다. 토마토를 먹으면 늑대와 같은 정력을 갖는다는…
오래 전 개봉됐던 영화 중에 ‘굿바이 미스터 칩스’라는 영화가 있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사회의 제반 부조리 밑에서도 분명한 신념을 지니고 의연히 어려운 상황에 맞서서 교육자로서의 강인한 자세와 아울러 사랑의 만남과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준 영화로 교직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불신과 불확실의 세대에 생존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해와 순수한 사랑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과 더불어 나 아닌 다른 이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공감하고 공존한다. 또한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고 성취해 나가는데 큰 목적을 둔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교양정신을 높이며 생명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 요즘 정치권을 비롯해 반값 등록금 문제로 대학들이 본의 아니게 소용돌이에 휩쓸려 시끄럽다. 시끄럽다고 표현한 것은 문제의 사안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의미 없는 소모적 논쟁이라고 폄하하는 표현이 아니다. 다만 문제의 본질보다 외면적인 사안을 가지고 가열된 분위기로 인해 그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염려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언론을 비롯해 사회의 여
등태산소천하(登泰山小天下)란 말이 있다.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게 보인다는 말로, 큰 도리를 익힌 사람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는 어릴 적부터 노나라 동쪽에 있는 동산을 자주 등정했다는데, 산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그 큰 읍성도 보잘 것 없는 한줌의 땅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고, 또 장성해서는 중국 오대악산(岳山) 중 하나인 태산에 자주 오르면서 천하가 작은 세계라는 것을 간파했다고 한다. 산 아래에서 아웅다웅하며 살다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고 생각이 협소해 질 수 밖에 없기에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고집하며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도 성장할 수도 없다. 큰 바다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강이나 시냇물을 가지고 크냐 작으냐를 시비한다. 경험이 미천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최고라고 여겨 남을 가소롭게 평가하고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우열을 가리려 한다. 공자가 말한 군자의 도를 보라. 해와 달은 그 밝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반드시 비춰 준다. 흐르는 물도 그 성질이 낮은 웅덩이를 먼저 채워 놓지
지난달 27일 장애인가족지원센터 5주년 기념식과 경기도 장애인부모회장 이·취임식이 있었다. 5년 전 부모회의 제안에 따라 기안을 했던 담당이었기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침 부모회장이 이임사 첫머리에서 센터를 거론하며 진정성이 묻어나는 고마움을 언급할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져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공치사를 들으니 쑥스럽게도 하고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죄송한 생각도 들어 아쉬움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렇게 협의하며, 논의도 하며, 때로는 함께 아파하며, 함께 즐거워하며 보다 진전된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즈음해 조금씩 일어났던 일부 장애인 그룹의 권익 증진과 복지시책 확대 요구가 급기야 수원역 철야 농성과 도청 정문 앞 충돌로 이어져 경미하나마 몇몇 부상자도 발생하는 불상사를 치렀다. 그 와중에서도 복지, 교통, 교육 등 분야별로 협의가 이루어져 집회는 막을 내렸지만 마음 한곳에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평상시 장애인계의 욕구에 충분히 귀 기울여
수원시가 발행하는 인터넷신문 e수원뉴스에는 시민기자 서정일 씨의 주목할 만한 글이 실려 있다. 수원의 서울방향 입구인 지지대 고개에 수원 제1관문을 세우자는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1996년 수원화성축성 200주년을 기념해 지지대 고개에 가칭 ‘효행문’을 세우겠다는 계획이 수립된바 있었다. 예산 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해서 사업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지대 고개는 수원사람들에게 있어 효의 성지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효행문을 만들자고 했던 것이다. 지지대고개는 조선시대 정조의 효심이 담긴 곳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영면하고 있는 화산땅과 자신의 노년을 보내기 위해 축성한 수원화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아버지가 묻힌 곳을 볼 수없기 때문에 자꾸 지체했다 해서 지지대라고 불린다. 이곳에는 지지대 비가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휴게소와 어린이 미술체험관(공사중, 구 효행기념관), 프랑스군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정조대왕 동상 등 시설이 있고 노송지대가 펼쳐지고 있어 여건만 구비되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만한 곳이다. 그런데 지지대 비 앞으로는 1번국도가 지나가고 있어 관광객이나 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