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쨍쨍하다. 시위를 떠난 살처럼 피부에 와 꽂힌다. 눈부시다. 그래서인가. 신 새벽 바닷가에 깊은 해무가 어리듯 아스팔트 위에도 안개가 어린듯하다. 쨍쨍한 여름 햇살 아래 안개가 피어오른다. 아스팔트가 흘러가는 듯하다. 아스팔트만이 아니다. 줄지어 늘어선 건물들도 흐르는 듯하고 지나는 사람들은 흔들리는 듯하다. 먼 길에서 돌아오는 듯 먼 길을 떠나는 듯 알 수 없다. 모두들 친근한 얼굴인 것 같은데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가물가물하다. 마치 오래 전 일들을 바라보는 듯하다. 지나 온 날들 동안 늘 보아왔던 이들을 바라보는 듯하다. 지나 온 날들을 보는 듯하다. 낡아 모퉁이가 떨어진 오래된 사진틀 속에 겹겹이 쌓여 있는 흑백 사진들처럼 빛바랜 얼굴들이 아니다. 곧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줄 것 같은 살아 있는 얼굴들이다. 생생하다. 햇빛 쨍쨍하고 햇볕 뜨거운 여름날이 되면 나는 길을 걷다가도 자연스럽게 지나 온 삶을 만나게 된다. 거기 내가 있다. 나의 지나 온 삶들이 있다. 나를 만난다. 삶의 지나 온 흔적들을 길거리 곳곳에서 만난다. 마음의 한 자락에 품어 왔던 그리움들을 만난다. 함께 살아 왔던 이들을 다시 만난다. 그들과 함께 했던 날들로
숲에 들어선다. 여름 숲이다. 숲 내음 가득하다. 깊게 숨을 들이쉰다. 언제 이렇게 무성해졌을까. 지난 봄 들어선 숲길은 모진 겨울 안간힘을 다해 살아남은 여린 싹들뿐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굵고 큰 잎으로 자랐을까. 따뜻해진 기운으로 녹아내린 언 땅에 흐르는 물 머금으며 겨우 마른 목을 축이던 여린 싹들뿐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하늘을 가리도록 짙어졌을까. 푸르러졌을까. 숲이 깊어졌다. 깊어진 숲길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행여 나뭇잎이라도 풀잎이라도 놀랄세라 마음 기울여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고요하다. 바람 한 점 없다. 나뭇잎들도 소리를 죽여 속닥이고 큰 나무들도 목소리를 낮추어 수런거릴 뿐이다. 나뭇잎들의 속닥이는 소리에도 큰 나무들의 수런거리는 소리에도 숲은 고요하기만 하다. 고요하고 깊어진 숲으로 마음을 보낸다. 마음을 따라 걷는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나처럼 제 마음 달래려 깊은 여름 숲을 걷는 이들이 있을까. 따라 오는 발자국 소리에 놀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깊은 여름 숲의 적막함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내 발걸음에 내 마음이 놀랐나보다. 고개를 돌려 앞에 놓여 있는 숲길을 바라본다. 숲은 말없이 내 앞에 길을 열어 보인다. 어서…
지난 삶을 돌아보세요. 당신을 지키고 살려온 것들이 보이시나요? 당신의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지켜 준 사랑이 느껴지시나요? 당신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늘 당신을 품고 지낸 당신의 사랑이 느껴져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고 잊고 지냈던 당신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분주하다는 이유로 삶이 고단하다는 이유로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그 사랑을 외면하였던 당신 자신의 모습이 보여요? 당신이 잃어버린 것들이 당신의 사랑이고 당신의 삶이고 당신의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리석기 그지없었던 지나 온 삶의 모습을 보고 계세요? 숲을 지난다. 여름 숲을 지난다. 여름 숲은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숲은 자신이 품고 있는 생명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품어 키우고 살린다. 숲의 마음이다. 그러한 숲의 마음으로 인해 여름 숲은 다른 여느 계절의 숲보다 분주하고 부산하다. 때론 요란하다. 비 내린 여름 숲의 아침은 더욱 그러하다. 이른 아침 비에 젖은 여름 숲을 들어가면 지난 밤 내린 비에 고단하여 그제야 젖은 깃털을 말리느라 분주한 새들이 푸드덕 날개 짓하며 몸을 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몸단장
다시 하루가 지난다. 하루가 지난다는 것은 하루를 살아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루가 지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의 하루가 지난 것이다. 내 삶의 시간이다. 내게 주어져 있는 단 한 번의 시간들이 지나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시간들이 지나간다는 것은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눈으로 볼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가슴 깊이 안고 체취를 느낄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여 사랑을 보낼 수도 없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랴. 괜스레 마음 서글퍼지는 날 바라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던 맑고 높은 하늘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온갖 몸짓으로 전하며 나를 웃음 짓게 하던 구름들도, 살아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의 말을 듣지 못할 때마다 제 마음 따뜻이 열어주며 감싸주던 숲도, ‘생각을 따라 살아가지 마세요. 이제는 마음 길 따라 살아가세요.’라고 끊임없이 말해 주던 나무들도, ‘두려워하지 말고 제 사랑을 찾아 가세요’라고 속삭이던 꽃들도,…
창문을 연다. 맑은 공기가 스며들어 가슴을 채운다. 지난 밤 내내 숲 속에 머물었던 바람도 언제 들어왔는지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마음이 맑아진다. 이른 새벽부터 숲을 지나온 바람이다. 지난 밤 내내 숲에 머물며 숲의 기운을 담뿍 담고 온 바람이다. 바람은 지난 밤 숲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말해준다. 어떤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어떤 나무가 병이 들었는지 말해준다. 어떤 꽃들이 피고 어떤 풀잎들이 자라고 있는지 말해준다. 나무가 나무에게 꽃들이 꽃들에게 풀잎이 풀잎들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수런거리던 이야기들도 전해준다. 벌레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바람이 전한 소식들에 마음이 동하여 옷깃을 여미고 아침 산책을 나선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지지배배 비베쫑비베쫑 짹짹짹짹 꾸룩꾸룩 시시시시-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새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 나를 반기는 것일까. 아침이니 오서오라고 나를 반기는 것일까. 아니면 제 즐거움에 혼자 노래하는 것일까. 제 슬픔에 노래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새들은 새들대로 제 노래를 하고 나는 나대로 내 길을 갈 뿐이다. 걷는 발걸음을 따라 아침이 오는 듯 밝아진다. 하늘을 본다. 하늘이 밝아
강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여름 숲이다. 여름 숲은 비가 오지 않았더라도 습하다. 축축하다. 시원하다. 깊고 깊은 땅 속에서 나무가 빨아올린 물들이 나뭇잎을 통해 대기를 적시기 때문이다. 울창한 나무숲들이 햇빛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줄 때에만 간간이 햇빛이 들어온다. 나뭇잎이 하늘을 덮었다. 나뭇잎으로 덮인 하늘이 푸르고 푸르다. 잔바람에 나뭇잎들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하늘이 흔들리는 듯하다. 숲길을 걷는다. 숲 여기저기에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이제 겨우 십 년 이십 년 짧은 세월을 살아왔을 여린 나무들도 있고 족히 수십 년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아름드리 나무도 있다. 채 자라기도 전에 모진 비바람에 쓰러진 여린 소나무도 있고 수백 년을 세월과 함께 지켜온 상수리나무도 있다. 지난 여름 장마에 뿌리 채 뽑힌 나무들도 있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저 홀로 쓰러진 나무들도 있다. 발걸음 따라 걸어가는 숲길에 나무가 놓여있다. 쓰러진지 오래된 나무이다. 나무는 이미 삭았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다. 죽어 쓰러진 나무는 많은 벌레들과 미생물들의 양식으로 집으로 이용된다. 두꺼비 한
숲에는 울림이 있다. 숲에 들어서면 그 울림을 들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숲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들이다. 숲에 가득한 그 이야기들이 숲만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숲으로 들어가 마음 기울이면 그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이야기들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겨 놓은 삶의 흔적들도 만날 수 있다. 말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말로는 할 수 없었던 삶의 이야기들이다. 숲에 사는 모든 생명들은 제각기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들을 제 몸에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봄이면 피었다 지는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에서부터 수백 년을 지나 천 년을 사는 상수리나무나 갈참나무 굴참나무 등도 수천 년을 사는 주목과 같은 나무들도 모두 제 몸에 제 삶의 흔적을 남긴다. 양지꽃이나 애기똥풀의 색이 노란 것도, 진달래나 철쭉의 색이 붉은 것도, 개망초꽃이나 조팝나무의 색이 하얀 것도 모두 제 삶의 이야기들이다. 삶의 흔적이다. 나뭇잎이 뭉쳐나는 것도, 띄엄띄엄 떨어져 나는 것도 모두 제 삶의 흔적들이다. 같은 종류의 나무일지라도 나뭇잎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모두 제각기 제 삶의 모습들을 담고…
참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여름 숲이야 그 울창함으로 모두 깊지만 여름의 참나무 숲은 더욱 깊다. 마치 하늘에라도 닿을 듯 뻗어있는 나무 기둥에 매달린 무성한 가지와 나뭇잎들 때문이다. 한 여름의 낮이라도 참나무 숲에 들어가면 마치 고즈넉한 저녁을 맞는 듯 숲은 서늘하고 어둡다. 고요하고 깊다. 마음 절로 깊어진다. 바람이라도 불어와 참나무 가지를 흔들어 나뭇잎이라도 펄럭여야 햇살을 만날 수 있다. 참나무 숲을 지나는 내 발걸음에 어치가 ‘과아 과아’하고 큰 소리로 운다. 낯선 발걸음에 놀랐으리라. 낯선 이를 경계하라고 숲의 친구들에게 알리는 것이리라. 미안한 마음 어치에게 전하며 조용히 걸음을 내딛는다. 행여 밟히고 차이는 생명이 있을까 저어하여 조심스레 발걸음을 뗀다. 행여 내 발걸음에 놀라 오수를 즐기던 새들이라도 잠에서 깰까 저어하여 마음 기울여 걸음을 옮긴다. 그런 마음이 어치에게 전해진 것일까. 어치는 ‘쀼우 쀼우’하고 아까와는 사뭇 다른 예쁜 목소리로 운다. 낯선 이라도 그다지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준 것일까. 내 마음을 알아준 어치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려 나뭇가지 위를 살핀다. 참나무의 무성한 나뭇잎들에 가려 어치는 보이지 않는다. 저기 어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늘 새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아침햇살은 따스하고 찬란하지만 저녁노을은 그윽하고 아름답다. 아침햇살은 눈부시도록 밝지만 저녁노을은 그윽하고 깊다. 아침햇살은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지만 저녁노을은 모든 것을 품어준다.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수고했다고 이제 지친 몸과 분주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쉬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저녁노을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는 이들의 삶이 고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말이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것만이 하루의 삶을 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불고 멈추는 것도 그러하다. 바람 불어 열매 떨어지고 꽃잎 날아가는 것도 나뭇잎 흔들리고 씨앗이 날아가는 것도 모두가 자연의 중요한 변화들이다. 사람들만이 이 변화를 종종 잊고 지낼 뿐이다. 모르고 지낼 뿐이다. 오늘 아침도 바람이 부는가 보다. 창 밖에 있는 여린 졸참나무가지가 흔들린다. 아직은 어리고 여린 졸참나무이다. 그러나 수십 년의 세월을 말없이 지키는 동안 가지도 제법 굵어지고 나뭇잎도 더욱 무성해졌다. 별 탈 없이 잘 자라기만 한다면 천 년의 세월을 살
작년에 이어 이번 여름에도 독일의 작은 마을 윤데(Juende)를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됐다. 이 마을을 작년에 이어 다시 방문한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작년에 한창 공사 중이었던 바이오 가스 발전시설이 완공돼 무리없이 작동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두 번째는 이러한 시설이 앞으로 한국에도 적용하여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함이었다. 한국은 에너지 90% 이상을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 종속국가지만, 이에 대한 대비와 준비가 가장 미흡한 나라 중에 하나이기에 이 윈데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클 것이라 확신한다. 윤데는 인구 7백여 명의 작은 농촌마을로 독일의 니더작센(Nieder Sachsen)주에 속해 있으며, 유명한 대학도시인 괴팅겐(Goettingen)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1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마을이 독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이 마을에 필요한 전기 뿐만 아니라 난방까지 자체 생산해 조달할 수 있는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시설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윈데의 바이오 시설이 독일 최고의 모범사례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