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차량에 치어 숨진 동두천 50대 여인의 사망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미군측이 취한 신속한 대응은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고 다음날인 11일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동두천 강변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한테 이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깊은 유감과 조의를 표한다.”는 애도의 말을 전해 왔다. 또 찰스 캠벨 미8군사령관과 민튼 주한미국 대사대리도“유가족에 사과드리며 한국 경찰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과 ‘모든 훈련 중지’를 약속하는 성의를 보였다. 사고의 잘 잘못은 조사결과가 가려 줄 것이므로 두고 볼 수밖에 없다. 유가족들도 사고는 불행한 일이지만 사회문제화하는 것은 원치 않고 있다니까 공연스레 떠들거나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12일은 효순·미선 양 3주기였다. 3년 전 두 소녀가 희생되었을 때 이번과 같이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군관계자들이 사과와 조문을 하고, 사건 수습에 열의를 보였더라면 반미 감정을 촉발하는 불행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사건으로 인해 양국 관계가 냉각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한국 뿐 아니라 미군이 주둔하는 모든 지역에서 주둔지 국민의 생명과 지위
인천 소재 동양제철화학의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인 이회림(李會林·88)씨가 50년동안 나라 안팎으로 발품을 팔아가며 수집한 8천437점의 고미술품과 자신이 세운 송암미술관 등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문화유산을 인천시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 회장의 이번 기증은 우리나라 고미술품과 문화재 기증 역사상 최대 규모여서 미담사(美談史)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됐다. 8천점이 넘는 양도 놀라운 일이지만 국보급을 비롯한 당대의 걸작품들이 그득한 질 역시 놀랍다. 조선시대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화를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민족지도자 백범(白凡) 김구(金九)의 친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시대와 영역에 거침이 없다. 특히 수천점에 달하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각종 도자기와 불상은 여느 미술관이 소장하지 못한 희귀품들이어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은지 13년밖에 되지않은 송암미술관 역시 국내 사립미술관 가운데 최대 규모로 그 자산 가치만도 공시지가로 124억원이나 된다. 이 회장은 오늘 송암미술관에서 안상수 인천시장 등 관계자가 함께한 자리에서 문화재와 송암미술관 기증협약식을 갖는 것
고대로 올라가면 왕이 주재하는 제사에서는 산사람을 희생(犧牲)으로 썼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0세기께에도 산사람을 제사의 제물(祭物)로 쓴 것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1천 1백년 은(殷)나라 때까지 멀쩡한 사람을 신명에게 희생으로 바쳤다. 사람을 희생으로 쓰는 제사는 사직과 천지신에 올리는 제사였다. 그런데 이 희생이 문제였다. 하나라나 은나라 사람들은 제사에 중국인을 쓰지 않고 변방의 이민족을 잡아다 썼다.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이들 이민족은 이적(夷狄)이라고 하여 한낱 오랑캐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잡혀오는 오랑캐는 티베트인 이였다. 당시 하·은대에서 이들 티베트인들은 강(姜)족이라고 불렸다. 姜은 羊과 女의 합의(合意)이다. 중국인들은 양을 귀하게 여겨 양이 들어간 글자는 좋은 뜻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美자 등이다. 강족이라고 칭하는 것도 제물로써 좋다는 의미이다. 티베트인들은 고원에 살기 때문에 피부가 하얗고 고운데다 심성이 온순하다. 그래서 고대 중국인들은 티베트인들을 제물로서 최고로 쳤던 것이다. 그러나 허무적멸(虛無寂滅)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동족이 죄 없이 잡혀가 죽는데 악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들이 진급을 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깎아 내리는 일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사회가 약속한 하나의 그레이드인데 거기에 무슨 계층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정서이다. 후학 양성에 전념해야 할 선생님들이 잡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교육정책이라 하겠다. 학교 선생님들까지 신분향상을 위해 골몰하는 사회 풍조는 하루 빨리 지양해야 된다는 여론이 높다. 경기도교육청은 교사들의 격을 판정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이 도교육청의 평점산정 팩트에 대해 불만이 높아 재조정하기로 하고 일제 점검에 나섰다. 교사들의 진급에 사활이 걸린 만큼 관심이 높지 않을 수 없다. 도교육청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지정한 평점항목 외에 고교근무경력 가산점을 비롯 담임근무 가산점·도서벽지 및 접경지역근무 가산점 등에 대해 재검키로 했다. 도교육청이 재검토키로 한 것은 오지근무 경력의 경우 우수교사가 승진을 위해 속칭 일류교에서 도서·벽지로 빠져 나가 교육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교사들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또한 담임가산점 및 고교근무가산점도 문제가 많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어 전반
도내 지명 중 상당수가 일제 잔재를 털어내지 못하고 일부지명에서는 국적불명의 한자어까지 그대로 사용되어 이를 청산해야 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모든 지명에 대해 어원 유래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우리나라 고유지명을 찾아 주어야 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일부 지명에서는 우리나라의 국어 지명을 무리하게 한자로 고치는 바람에 지역 정서는 물론 지역 이미지와도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시정해야 된다는 여론이 높다. 지명에 대해 제일 먼저 문제제기를 한 의왕시(儀旺市)는 본래 지명인 義王을 되찾기 위해 시의회에서 한자명칭 변경을 의결, 도와 도의회에 변경안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의회는 오는 13일 의왕시 한자 명칭 변경에 관해 의견청취활동을 하기로 했다. 儀旺이라는 한자 명칭은 조선총독부가 의왕면을 수원시에 편입하면서 광주군 의곡(義谷)면과 왕륜(王倫)면을 통합, 의왕이라는 지명을 만들면서 한자를 아주 바꾸어 버렸다. 의왕시와 의왕시의회는 이 같은 과거의 잘못을 되짚어 정당한 한자 지명을 찾기로 한 것이다. 지명의 일제 잔재는 의왕시뿐이 아니라 도내 곳곳의 지명에 묻어나 있다. 고양시의 일산이라는 지명도 원래는 일뫼(韓山)였지만 일제가 일방
취업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제가 호전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경제와 취업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경제가 좋아지면 기업에 인력 수요가 생기게 되고, 그 수요에 따라 취업문이 열리게 마련인데 우리 기업은 감원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업률은 높아만 간다. 그 가운데서도 청년 실업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한 조사에서 대학을 나와 취업하는데 평균 2년 반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는데 이 범주에 들어간 취업자는 그래도 행운아라 할 수 있다. 최근 채용정보업체인 잡링크가 수도권 기업체를 대상으로 올 상반기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모집한 64개 기업 및 기관의 취업경쟁률을 조사 분석한 결과 평균 경쟁률이 102대 1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2003년 상반기 83대 1과 지난해 85대 1보다 크게 높아진 수치다. 올해의 경우 개별사 별 경쟁률을 보면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을 실감시키고도 남는다. 3년 만에 신입사원을 공모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경우 사무직 5~6명을 뽑는데 2천 100명이 지원해 400대 1, 한국중부발전 사무직 역시 314대 1, 대한주택보증 202대 1, 중소기업진흥공단 151대 1 등…
공자(孔子)는 소신 없는 신하를 경멸했다. 소신 없는 신하란 인의(仁義)가 없는 신하를 말한다. 요즈음의 지당파 이른바 예스 맨(Yes man)을 칭한다. 고대 중국의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에 삼환의 하나인 季씨 집안의 계자연(季子然)이 공자에게 물었다. “중유(仲由)와 염구는 대신(大臣)이라고 할 수 있느냐.” 중유와 염구는 공자의 제자로 계씨집안에서 벼슬(신하노릇: 참모)을 하고 있었다. 계자연이 중유와 염구에 대해 물은 것은 공자의 제자가 자기 집에 있다는 것을 은근히 뽐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공자는 중유와 염구는 숫자만 채우는 신하라고 했다. 대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이란 도로써 군주를 섬기다가 불가능하면 그만 두어야 된다고 했다.(논어 선진편) 공자의 신하론은 논어 계씨(季氏)편에서 소상히 설명된다. 염유와 계로(季路)가 공자를 찾아 와 “계씨가 전유를 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공자는 그의 제자인 염유와 계로에게 말하길 “그렇다면 그것은 너의 잘못이다.”라고 했다. 공자는 “전유는 옛날 선왕께서 동몽산의 제주로 삼았고 또한 노나라 안에 있으니 전유는 사직의 신하인데 어찌 징벌할 수가 있느냐.”고 했다. 이어 공자는 “능력껏 일해서 능히
김치 종주국이 자칫 속국으로 전락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값싼 중국산 김치 수입 탓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2001년 393톤에 불과하던 김치 수입량이 지난해 7만 2천 605톤으로 184배나 늘어나고, 시장 점유율도 14%나 된다. 반면에 나라 안 김치시장은 지난해 147만 톤을 생산해 시중 판매, 급식소 납품, 가정용으로 판매했으나 저가 중국산 김치에 밀려 생산량과 판매량 모두 멈칫한 상태다. 수입 김치의 물량 공세는 김치시장을 잠식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김치 원재료인 배추와 무는 말할 것도 없이 고추·파 등 양념채소류의 소비까지 급감시켜 생산 농민이 타격을 입고 있다. 국내 최대 농산물도매시장인 가락동시장의 경우 10만 톤의 김치를 수입했을 때 연간 판매량 22만 5천 톤의 60% 가량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와 같거나, 수입량이 더 늘어날 경우 야채 생산농가와 김치 생산공장이 타격을 입게 되고, 소비시장에 혼란이 야기될 것은 뻔하다. 한마디로 쯔나미(해일) 전야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민과 생산업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서 줄 것을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는
서울시가 서울시민 전용 납골당을 파주시와 화성시에 건설,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성북구 등 산하 자치단체에 납골당 건설 재원을 지원, 도내 양개시에 납골당을 마련케 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각종 쓰레기 등을 경기도에 내미는 외에 납골까지도 하치(荷置)하게 되었다. 해당 지자체 주민은 물론 경기도민들은 서울시가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주민들은 지방자치법 적법 여부를 떠나 주민 정서에도 부합치 않는 서울시의 전횡은 저지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당지자체와 경기도에 큰 짐이 지어 진 셈이라고 하겠다. 서울시 동대문구 등 9개 구청은 지난 2003년 9월 C공영과 분양을 계약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에 납골공원을 조성했다. C공영은 5만위를 수용할 수 있는 납골공원을 건설하여 오는 9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필요한 소요경비 150억여 원을 서울시가 전액을 지원, 결국은 서울시민 전용 납골당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 성북구 등 7개 구도 경비 66억 7천여만 원 전액을 서울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2004년 12월 H납골공원과 분양계약을 체결, 화성시 향남면 동오리에 납골당을 조성하고 있다. 이 납골당 건립에는 66억
고생하며 공부해서 얻은 보람을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고 한다. 원래 형설이란 말은 중국 진(晋)나라 차윤(車胤)이 반딧불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이 눈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로, 차형손설(車螢孫雪) 또는 손강영설(孫康映雪), 차윤취형(車胤聚螢)이라고도 한다. 차윤은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밝힐 수 없었다. 그래서 반딧불이를 모아 자루 속에 넣고 거기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공부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손강도 생활이 궁핍해서 눈이 내리면 창가의 눈빛을 이용해 책을 읽었다. 노력은 한만큼 보람을 가져다 주는 법인지, 훗날 차윤은 인사원 총재, 손강은 경시청 총감 자리에 올랐다. 이 때부터 고학하는 것을 형설지공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불빛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집안의 조명이 너무 지나쳐 여느 전등은 다 끈 뒤 스텐드 하나만 켜고 공부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격세지감도 있거니와 형설지공이란 말은 고학의 상징어에 불과하게 됐다. 그런데 ‘차윤취형’과 ‘손강영설’에는 우스게 말도 있다. 어느 해 겨울 손강이 차윤의 집을 방문했더니, 차윤은 반딧불이를 잡으러 가고 집이 비어 있었다. 이듬해 여름 차윤이 답례차 손강의 집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