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교육청이 관내 중학생에 대해 오는 9월께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포천교육청이 중학생에 대해 자체적으로 학업성취도를 평가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전교조 경기지부에서는 의견수렴절차 없이 시행한다며 반대, 서명운동 등을 벌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갈등에 대해 본란은 포천교육청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절차상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교육 퀄리티를 제고하려는 교육청의 프로그램이 성공하길 바라는 것이다. 포천교육청은 관내 중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통해 교육수준을 측정하기로 하고 평가시험을 9월께 실시할 방침이다. 특히 포천교육청은 이번 평가에서 농촌지역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자기평가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해 교육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포천교육청의 방침에 대해 전교조 경기지부는 일제 평가로 인해 학교별은 물론 교과별 학생별 서열화가 이루어지는 등 반작용이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평가에 관한 업무가 관내 교사들에게 전가되는 것도 용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 전교조는 학교간 과다 경쟁으로 각종 사교육비가 증가되고 공교육의 황폐화가 우려된다며 반대의 기치를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방행정의 자
수도권과 대전·충청·제주를 제외한 10개 시·도에 대형 공공기관 1개씩을 이전시키기로 한 정부 계획이 거센 반발과 이해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엊그제 건교부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국발위)는 국회 건교위에서 한전, 주공, 토공 등 10개 대형 공공기관을 지방 10개 시·도에 1개씩 나눠 배치하고, 나머지 180개의 공공기관도 시·도당 10~15개씩 고루 배치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건교부장관은 공공기관의 이전 비용을 12조원으로 추정하고, 이전 대상 공공기관의 자산(토지·건물) 매각 대금이 8조 7천억원이 될 것이므로 3조 3천억원의 부족액은 따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알다시피 정부는 행정신도시 건설을 결정한데 이어 공공기관 이전 방법을 놓고 고심해 왔다. 고심 끝에 내놓은 것이 10개 대형 공공기관 균등 배치 방식이다. 건교부와 국발위 나름으로는 이 방법이 가장 공평하고, 수요공급상의 불만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마치 돌집 떡 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대형이든 소형이든 공공기관은 공익성과 채산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업조직이
베트남전쟁 종전 30주년을 맞았다. 1964년 통킹만사건이 일어나고, 1965년 미군과의 첫 교전으로 베트남전쟁은 시작됐다. 같은 해 우리나라는 청룡과 맹호부대, 1966년엔 백마부대까지 파병해 사실상 미군의 대리전을 치르면서 나쁜 의미로는 악연, 좋은 의미론 인연을 맺었다. 문제는 전쟁 결과다. 미국은 월맹군을 무찌르지 못했다. 197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철군을 공식선언하고, 월남전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해 1월 필자는 베트남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포공항을 떠난 공군 수송기로 8시간 비행 끝에 필리핀 크라크 공군기지에서 일박하고, 이튿날 사이공 공항에 도착했는데 당시 공항의 긴박한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전투기, 수송기, 헬리콥터, 대소형 정찰기할 것 없이 날개 달린 것들이 모두 분초를 다투며 뜨고 내리는 바람에 공항은 붉은 먼지로 자욱했고, 엔진음은 고막을 찢을 듯이 요란했다. 당시 주월군 사령관은 채명신 후임으로 막 부임한 이세호 중장이었다. 채명신은 월남전의 영웅으로 불리울만큼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차기 대통령 감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대권 소문 때문에 군복을 벗게 되었다는 것이 세평이었다. 주월군 전부대를 방문
김좌진 장군은 말년을 너무나 울분스럽게 맞이했다. 청산리 독립전쟁에서 일본군 3개 사단을 거의 섬멸 시켰던 맹장이 동족의 손에 의해 암살당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였다. 그의 나이는 불혹을 갓 넘긴 42세였다. 3·1 독립만세 사건이 일어난 그 이듬해인 1920년 김좌진 장군은 북로군정서 소속의 독립군 2500여명(현대 군편제상 연대병력)을 이끌고 만주 화룡현(和龍縣)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대접전을 벌였다. 김좌진의 독립군은 일본군의 3개 사단과 맞서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 독립군은 수백여 명의 병력 손실만을 입었을 뿐이다. 이른바 신화적인 대승이었다. 절치부심한 일본은 청산리 전투이후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식량을 조달할 길 없는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은 배고픔에 쫓겨 소만(蘇滿) 국경의 밀산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김일성이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의 제안을 받아 들여 시베리아의 블라고베시첸스크로 본영을 이동한다. 1921년 초, 한인공산주의자들과 소련군의 배신으로 병력의 태반을 잃었다. 이들 일당은 김좌진 장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우수리강 너머의 일본군 지원을 받아 가며 독립군 학살을 감행한 것이다. 어렵게 목숨을 건진 김좌진 장군은 8년 후 한인 공산
이천·여주·광주 등 세군데서 분산 개최되고 있는 세계도자비엔날레는 올해로써 3회째를 맞았다. 2001년의 1회와 2003년의 2회가 시험기였다면 3회는 정착기라고 할만해서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천·여주·광주 지역은 조선시대 이래의 도요지인데다 우리나라 도자의 전통과 맥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기 때문에 비엔날레 개최지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 바로 이런 역사적 환경과 현실적 여건 탓에 세계의 저명한 도예 작가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실제로 참여도 하고 있으며, 국내외 관람객들이 흥미를 갖고 찾아 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적지 않은 예산과 2년 동안의 준비 끝에 선보이는 도자비엔날레가 참여 작가와 국내외 관람자 모두에게 만족할만한 보람과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익성까지 충족시킬 수 있을지에 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인지 개막 초부터 행사 참여자 간에 잡음이 생기고, 크고 작은 마찰과 불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 과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한다. 우선 주요 행사 개최지 배정을 둘러싸고, 여주·광주지역에서 편중 시비를 제기한 것이나, 국내 도예가와 상인들이 월요 휴관 결정에 반대하자 번복한 것 등은 재단측의 기획
경기도가 도의 위상을 높이고 경기도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가꾼다는 취지로 설립한 경기도립박물관이 전시물이 빈약하고 홍보가 제대로 안되어 관람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면서도 유지관리비가 크게 들어 도민의 혈세만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되었다는 지적이 높게 일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기도가 금년을 ‘경기도 방문의 해’로 정하고 관광객 유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도립박물관을 찾는 외래 관람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져 놀라움을 더해 주고 있다. 경기도 방문의 해라고 해서 경기도가 각종 관광객 유인책을 쓰고 있지만 실효가 별로 없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립박물관은 지난 1996년에 개관한 이래 관람객이 1일 1천여 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일반관람객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관람객 대부분이 유치원·학교단체이고 성인 및 외국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관람료 수입에 의존하는 일반 수입이 없어 직원 인건비 등 연간 유지관리비 100억여 원의 대부분을 도에 의존하고 있다. 도립박물관은 타박물관이 평균적으로 2000원의 관람료를 받는 것과 달리 300원~700원을 받아 실제적으로 입장료수입은 기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경기도립박물관은 설립
지방자치단체가 사업비를 확보치 않은 채 사업하겠다고 나서는 사례가 빈발, 비난의 소리가 높다. 일례로 수원 화성을 비롯 연천 선사유적지, 양주 화엄사지, 광주 남한산성의 발굴 및 복원을 역점사업으로 선정 추진한다고 했으나 사업비 부족으로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소요예산의 확보도 없이 의욕만 앞세운 무모한 사업추진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된 것이다. 특히 토지매입과 관련한 주민이해까지 겹쳐 사업지연에 따른 민원이 봇물을 이룰 전망이여서 사회불안 등 폐해가 보통이 아니다. 경기도는 지난 94년 수원 화성 등 4곳의 문화재를 발굴·복원하기 위해 2천61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그러나 이중 50%에 이르는 국비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업 추진의 지연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사업비 부족으로 문화재 보호구역내 토지매입이 부진, 복원 사업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수원 화성의 경우 행궁 앞 광장조성을 위해 토지 매입을 하고 있지만 국비 미지원에 따른 사업비 부족으로 토지 매입이 지연되고 있다. 또 화서문 주변 토지매입도 같은 이유로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남한산성 발굴복원사업은 국비가 전혀 지원되지 않아 지난 해 말까지의 복원완료계획을 200
4.30 재·보궐선거는 야당의 완승,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열린우리당은 현재 의석 146석을 과반수인 150석으로 늘리기 위해 당지부가 올인하고, 한나라당은 여당의 과반수 저지가 이번 선거의 목표였다. 이밖에 민주노동당과 자민련은 지역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한나라당 5석, 무소속 1석, 열린우리당은 단 1석도 건지지 못했다. 7곳에서 치러진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회성시장을 비롯 5곳, 새천년민주당 1곳, 무소속 1곳으로 나타났으며, 광역의원선거 역시 한나라당 8곳, 새천년민주당 1곳, 무소속 1곳으로 열린우리당 당선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름지기 우리나라 헌정사상 집권 여당이 야당과 겨루는 선거에서 이번처럼 철두철미하게 완패한 예는 없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일반의 예상을 깨고대통령을 탄생시켰을 뿐아니라 17대 총선에서는 여소야대를 뒤엎어 버림으로써 참여정부의 희망으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토록 당당하던 열린우리당이 대선 2년, 총선 1년 뒤에 치러진 중간평가 성격의 재·보궐선거에서 보여 준 엊그제의 모습은 너무 참혹해 할말을 잊을 정도다. 바꾸어 말하면 열린우리당은 지난 2년동안 국민이 열망하는 정치를 하기보다
위선자 또는 이중인격자의 지조를 지렁이 절조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속담인 “○○○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과 같다. 생태학적으로 지렁이는 위에서는 마른 흙을 먹고 땅속 아래에서는 물을 먹는데서 비롯되었다. 지렁이 절조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맹자(孟子) 등 공편에서다. 맹자의 제자인 광장(匡章)이라는 사람이 진중자(陳仲子:제나라 선비)를 청렴한 선비라고 추켜세웠다. 진중자가 오릉에 살면서 사흘이나 먹지 않아 귀가 들리지 않았고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맹자가 “제나라의 선비 중에서 진중자를 으뜸으로 꼽고 있으나 청렴하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했다. 맹자는 진중자의 절조를 지렁이에 비교하며 그의 이중성을 탓했다. 진중자의 집안이 제나라에서 대대로 벼슬을 하여 그의 형 대(戴)는 녹이 만종(萬鍾)이나 되는 부자였다. 진중자는 형의 녹이 의롭지 않은 것이라 하여 그것을 먹지 않았다. 또 형의 집도 의롭지 않다며 형과 모친을 떠나서 오릉에 거처하였다. 훗날 그가 형의 집에 들렀더니 그의 형에게 한 손님이 산 거위를 선물하는 것을 보았다. 진중자는 의롭지 않다하여 이 사실을 비난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훗날 그의 모친이 그 거위를 잡아서 그에게 주어 먹게 했
4.30 재보궐 선거는 결과가 어떻든 간에 여야가 겸허히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승패의 결과를 놓고 좌절 또는 자만하는 일은 더더욱이 경계해야 한다. 4.30 재.보궐 선거가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참패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남에 따라 향후 정국의 시계가 흐려진 가운데 선거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총 44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이번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원 재선거 6곳과 기초단체장 재.보선 7곳 가운데 단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하는 충격적인 완패를 당한 반면, 한나라당은 국회의원 재선거 5곳과 기초단체장 5곳을 얻은 이번 선거결과가 정국유동성을 증폭시키에 충분하다. 작년 4.15 총선이후 1년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편중없이 전국에 걸쳐 실시됨으로써 그간 정국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를 엿볼 수 있는 ‘미니총선’ 성격을 갖고 있다. 이번 선거로 국회내 의석분포는 재적의원 299석 가운데 열린우리당 146석, 한나라당 125석, 민주노동당 10석, 민주당 9석, 자민련 3석, 무소속 6석으로 재편됨으로써, 우리당은 민노당 또는 무소속 등 `우군'의 협조없이는 각종 법안의 단독처리가 불가능하게 됐다. 특히 상임위 차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