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범죄에 대해 특정 범위의 몇 사람이 연대 책임을 지고 처벌되는 것을 연좌제(連坐制)라고 했다. 예컨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부역(附逆)을 했다면 아들이나 딸, 또는 손자나 손녀가 부역의 일족으로서 법률적 책임을 지거나, 도덕적 책임을 지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도 얼마전까지 연좌제가 있었다. 6·25 때 빨갱이 짓을 한 집안의 자손들이 연좌제에 걸려 공직은 말할 것도 없이 사사로운 회사에 취직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뿐인가 사찰계 형사들이 감시하는 바람에 사생활까지 침해 받았다. 이 제도가 없어진 지금 처족이 부역했어도 대통령을 하고, 형제가 월북했어도 장관을 지낸다. 가족의 부역이 자손의 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것이 친일 연좌다. 물론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법에 없는 연좌를 당연시 하고 있다. 예컨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그의 부친이 일본군 육군 중위로 복무했다고 해서 ‘친일파의 딸’, 국사독재정권의 대통령을 지냈다고 해서 ‘독재자의 딸’로 매도 당하고 있다.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인 박근혜와는 무관한 일이다. 친일진상 규명에 앞장 섰던 열
여주군이 부당인사를 했다며 시민단체가 주장하고 나서 파장이 일고 있다. 여주군은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외면, 오히려 시민단체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직원에 대해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항의에 대해 우모 부군수는 인사는 군수의 고유권한이라면서 부당인사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같은 논란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여주군에 손을 들어 줄 수가 없다. 또한 우모 여주 부군수의 해명아닌 해명에도 동의할 수가 없다. 옛날 2천200여년전에도 맹자는 임금에게 주어진 권한을 100% 다 행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고유권한이라고 해서 일정한 상식과 관례에 어긋나는 행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대 교육을 받은 그것도 지방행정으로 잔뼈가 굵은, 그리고 일반 군정을 총괄하는 부군수라는 사람의 행정 마인드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고유권한이라고 해서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여주군은 지난 4월 30일 제 16회 여주 도자기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이의 일환으로 경기도 장애인 도자체험 축제를 행사 당일 11시에 거행하겠다는 경기도 장애인 정보화협회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도서관의 수준은 그 나라의 수준과 비례한다고 했다. 같은 이치로 지역의 공공 도서관의 수준 역시 지역의 문화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 경기도는 그동안 도서관 증설을 위해 애써 왔다. 우선 도는 공공 도서관을 수적으로 늘려 도서관 부재의 시·군을 없앤 뒤 나중에 질적으로 보완하려는 의도였는지, 지난 수년 사이에 퍽이나 많은 신축 도서관을 착공하거나 건립계획을 확정 발표했었다. 그래서 지역 주민과 도민의 기대가 컸고, 경기도의 노력에 의해 도서관 선진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바람을 가로 막는 악재가 생겨나 걱정이다. 악재란 다름아닌 예산의 차질이다. 도는 2006년까지 공공 도서관 20개소, 어린이 도서관 16개소, 특수·열린도서관 4개소 등 모두 40개소의 도서관을 세우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해 왔다. 말이 40개소이지 사실은 3-4년 사이에 소화하기에는 벅찬 계획이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예산 지원이 순조롭고 다른 장애 없이 추진되었더라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지만 사업계획 자체가 ‘과욕형’이어서 일말의 우려가 없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즉 내년부터 국고보조금이 국가균형
요즈음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본이 패전기념일을 맞아 자숙하기는 커녕 60여명의 각료·의원들이 집단으로 2차대전 1급 전범의 신위가 봉안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술 더 떠 이시하라 동경도지사는 일본 왕의 참배를 제안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총리자격으로 내년에 참배할 것을 공언했다. 한국을 비롯한 인근 피해국들의 정서와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이다. 독도영유권 주장도 매년 잊을만하면 극우정치인들이 번갈아 내놓더니 이제는 총리가 직접 나서서 들먹여 우리의 피를 솟게 한다. 그런데 며칠 전 매국노 송병준이 매국의 대가로 1억5천만엔을 요구했다하여 민족의 자긍심에 먹칠을 했다. 이씨 조선 의 수상이라는 자가 영토와 국민을 대상으로 매매흥정을 했다니 봉이 김선달의 빰을 칠 일 아닌가. 자존심에 앞서 통탄과 울분이 이보다 더 클 수가 있겠는가. 세계 여러나라에 알려질까 걱정이다. 수치의 극치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이 굳게 믿었고 정서적으로 친근감을 갖고 있는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하여 가슴을 치게 하고 있다. 아예 한국의 뿌리를 인정치 않으려는 것이니 일본보다 더 괘씸한 일이다. 얼마나 한국을 우습게 봤으면
불교에서 유(有)나 공(空)에 치우치지 않는 절대적인 도리를 중도(中道)라고 한다. 불타는 신도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무언(無言)으로 일관 했다고 원시경전(原始經典)은 전하고 있다. ‘무기(無記)’라든지, ‘일체불설(一切不說)’ 따위가 그것이다. 예컨대 ‘나’라는 것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영혼’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또 ‘내세(來世)’는 실제로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이같은 양자택일적인 물음에 대해 불타는 무언으로 응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진리는 하나가 아니며 고립된 존재도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 불타 특유의 표현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연기(緣起)는 불교에서 매우 큰 이상이다. 그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어느 한 쪽에 기우러져 있지 않다. “내가 있으므로 너 있다”인 것이다. 우(右)도 좌(左)도, 선(善)과 악(惡)도, 빛(光)과 그림자(影)도 각기 반대가 있기 때문에 서로 존재한다. 이 양방을 시계 추 마냥 흔들어 움직이는 것이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근대의학의 입장도 옳고, 동양경험의학의 입장도 옳다. 때로 서로가 대립하고 우왕좌왕 하는 가운데서 중도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길이
김포시가 전기 필요시설을 확충하지 못해 자칫 전력부족에 따른 전기대란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전력이 지난 1997년부터 추진중인 김포 변전소 건설이 주민반대로 착공조차 못해 전력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역이기주의에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한심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전에 따르면 김포지역의 전력수급은 올해까지는 1만㎾의 여유가 있으나 내년부터는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2005년에는 -4만㎾, 2006년 -12만㎾, 2007년 -24만㎾가 부족하여 김포전역이 제한송전지역으로 된다. 더군다나 예측은 2008년이후 7만여명이 입주하는 신도시 소요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김포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원활한 전력수급을 위해 인천지역 변전소에서 전기를 송전 받고 김포관내 유일한 변전소인 양곡 변전소에 임시 설비를 갖추고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고 기존 배전선로의 대부분이 적정용량을 초과한 상태여서 고장 시 대체할 여유 설비가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에따라 사고를 당하게 되면 장기 정전이 불가피하여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사정이 여유가 없는데도 주민들은 김포변전소를 건립하게 되면 지가가 하락하는 등…
광복 59주년을 맞았다. 결코 짧다할 수 없는 시공(時空)이다. 대한민국은 누가 뭐래도 질량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할 것 없이 경이적인 발전을 했다. 광복 후 남과 북이 단일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1950년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때문에 통일국가, 단일 민족을 성취하지 못한 것 말고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을 이뤄냈다. 해마다 맞는 광복절이지만 광복절을 맞는 역사적 의미는 언제나 새롭다. 그 의미는 나라 안과 나라 밖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나라안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59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부 수립(1948년) 이전의 군정시대는 남의 탓으로 돌린다하더라도, 정부 출범과 함께 친일 세력 들을 청산·척결했어야 옳았는데 실현시키지 못했다. 결국 신생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낙원이 됐고, 그 일파들은 권력의 중심에서 호의호식하면서 못난 정부와 국민을 비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59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그것도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에 친일진상 규명을 한다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으니 가소롭다는 느낌이 안들 수 없다. 뿐인가 여의도 면적의 8.8배
8·15 광복절 59주년을 맞게 된다. 시간만큼 빠른 것이 없다고 했는데 과연 빠르다. 우리는 잃었던 나라와 주권을 되찾은 날이라해서 8·15를 ‘광복’이라 부른다. 그런데 같은 처지에 있다가 국권을 회복한 중국은 ‘승전’이라 하고, 조선과 중국을 강점하다 패전한 일본은 ‘종전(終戰)’이라고 말한다. 나라가 다르고 처지가 다르니까 같은 8·15일지라도 의미 부여와 성격 해석이 다를 수는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전했다. 1941년 12월 8일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선전포고도 없이 침공한 이래 4년 동안 싸웠지만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미군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자 8월 15일 소위 일본 천황이 옥음(玉音) 방송을 통해 항복을 선언했으니, 이론의 여지가 없는 패전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패전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 종전이라고 고집한다. 종전이란 싸움이 끝났다는 뜻이다. 전쟁을 끝나게 한 것은 미국이지 일본이 아니다. 때문에 종전이란 용어는 싸움에서 이긴 미국이 쓰면 모를까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중국이 승전이라고 하는 것도 썩 어울리지 않는다. 당시…
정부가 도내에 임대주택 대단지를 건설하려하고 있어 해당시군이 반대하고 나서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의 대단위 임대주택단지 건설 계획은 철회해야 한다고 본다. 경기도에 따르면 정부는 수원·의정부등 5개 지자체에 있는 그린벨트지역에 대단위 임대주택단지를 개발하기로 하고 공람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계획에 대해 해당 지자체와 경기도는 반대입장을 밝히고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해당 지자체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임대주택 확대 공급정책이 기존에 추진되고 있는 지자체의 “그린벨트 우선해제·개발계획”과 상충되고 자족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또 경기도도 정부가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행정수도를 건설하면서 인구집중을 유발하는 주택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며 임대주택단지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서민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임대주택 100만호를 오는 2012년까지 짓기로 한 계획에 의해 도내 그린벨트지역을 대상으로 택지를 개발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미 도내 15곳을 선정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임대주택지구로 지정할 계획이다. 정부가 그린벨트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주택건설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재산세 파동이 점점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산세 파동은 정부가 ‘조세 정의 실현’을 내세워 재산세율을 대폭 인상한 것이 단초(端初)가 되고, 이에 맞서 서울 양천구가 ‘주민 복리 우선’을 내세워 30% 감면과 소급 적용을 골자로 한 조례를 개정하면서 발단(發端)이 됐다. 양천구의 반기(反旗)는 하나의 선례가 되고 말았다. 즉 구리시와 성남시가 양천구와 동일한 조례를 개정해 버린 것이다. 아직까지는 구리와 성남시 두 군데 뿐이지만 과천과 양평군에서도 조례 개정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 정도 시·군에서만 재산세 파동이 끝나고 말 것인지, 아니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지 여부에 있다. 전문가들 판단으론 재산세 파동은 시기 문제일 뿐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산세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해당되는 세금인데다 세금은 적게 낼 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납세자는 세금을 덜 내게 돼 좋고,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들은 유권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니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내세운 ‘주민 복리 우선’에 꼼수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나머지 조세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