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7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토지공개념제를 도입해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은 이미 제7공화국 헌법개정안에서 토지공개념제를 명시한 바 있으며, 이는 조국 대표가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하려 했던 ‘토지공개념 입법화’ 구상의 연장선에 있다. 여당의 협조 없이는 실제 입법이 쉽지 않겠지만, 토지공개념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여전히 높다. 현행 헌법 제122조는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균형 발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는 토지공개념의 법적 근거를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조항이다. 토지공개념 도입이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헌법에 마련된 틀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라는 의미다. 토지공개념 논의의 현실적 조건을 살피기 위해, 과거 개혁정책이 어떻게 추진되었는지 두 시기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1949년 농지개혁을 단행한 이승만정부, 다른 하나는 그후 40년이 경과한 후에 1989년 토지공개념 3법을 통과시킨 노태우정부다. 우선 제1공화국의 농지개혁은 토지개혁의 고전적 모델이다. 정부가 소작농지를 유상으로 강제 매입해 소작농에게 유상으로 분배한 조치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이로써 소작제가 사라지고 ‘경자유전의 원칙’이 헌법에 뿌리내렸다. 농지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둘째, 조봉암 농림부 장관의 집행력, 셋째, 국회 내 소장파 의원들의 지지였다. 여당 기반이 없던 대통령이 무소속 개혁파 의원들과 손을 잡고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토지분배에 맞서 체제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대통령의 전략적 판단이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게 했다. 이러한 농지개혁은 6·25 전쟁에서 농민층의 지지를 확보하며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노태우정부에서도 개혁의 동력은 정치적 필요에서 나왔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이 국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대표 정책이 토지공개념제였다. 당시 조순 부총리(경제기획원 장관) 주도로 ‘토지공개념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정책이 설계되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 통과를 위해서는 정치적 기반이 필수였고, 실제로 토지공개념 3법(택지소유상한제·토지초과이득세·개발이익환수법)은 3당 합당 직후인 1989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는 개혁입법이 국회의 지지와 권력 내부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제 이재명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가 관심사다. 현재 여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보유하고 있어 의지만 있다면 개혁입법 추진이 가능하다. 여기에 조국혁신당까지 가세한다면 국회 기반은 더욱 강해진다. 이재명 정부의 123개 공약에는 토지공개념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부동산 정책에서 토지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방향은 분명히 읽힌다. 결국 핵심은 정부가 얼마나 분명한 의지를 갖고 역사적 개혁의 흐름을 이어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토지부동산제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국민주권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불로소득으로 경제적 격차와 편중이 악화되는 현상을 시정하기 위하여 추진했던 이승만 정부, 노태우 정부의 개혁정책을 국민주권정부에 기대해 본다.
작년 오늘, 나는 뉴스를 통하여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목격하면서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초현실적 상황으로 여기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비교적 편하게 잠을 잤다. 실은 감기기운도 있었고, 술도 좀 하고 들어온 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한 밤이었다. 일어났을 때는 이미 계엄이 해제되어 상황이 끝나 있었다. 그 후 1년 동안, 나도 이웃과 벗들만큼 ‘계엄 트라우마’로 힘들게 지냈다. 다음은 비상계엄이 성공했다고 가정하고, 상상하여 쓴 글이다. “우리는 다음 날부터 전혀 다른 세상에서 아침을 맞았다. 내가 사는 도시는 계엄군의 무쇠 발자국에 짓눌리고, 나의 일상은 말없이 조여드는 공포 속에서 서서히 숨이 막혀갔다. 침묵과 무표정으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친구가 주변을 살피며 짧게 전하는 귓속말은 모두가 곧바로 주저앉아 통곡해야 할 소식이거나, 분기탱천하여 웃통을 벗고 쫒아가서 응징해야 하는 내용들이었다.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질서 있게 보이지만, 이미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절망과 우울의 나라가 신진대사와 다름없는 희로애락의 표현을 막아버렸다. 가장 먼저 쓰러진 건 약자들이었다. 한낮에도 그늘지고 비가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반지하 주민들, 이웃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도시빈민과 쪽방촌 노인들! 그들은 마치 전쟁터의 맨 앞에서 총알받이 노릇하는 병졸들처럼, 나쁜 정치, 포악한 행정의 우선적 희생자집단이 되었다. 독재권력은 히틀러의 인종청소를 본받아 쓰레기 처리하듯 이 나라 바닥층 약자들을 그런 식으로 정리해 나갔다. 수많은 어린아이들과 노약자들이 해열제와 아스피린 한 알, 페니실린 연고 하나로 이길 수 있는 증상에도 방치되었다가 죽어갔다. 그들의 죽음은 통계에 잡지 않았고, 한 줄의 보고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마치 치명적 전염병 환자처럼 먼저 떼죽음을 당했다. 가족을 잃은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장례조차 재대로 치르지 못했다. 장례식처럼 번거롭고 여러 날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의식은 규제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아부쟁이가 일종의 허례허식에 해당된다며 박정희 시절의 규정을 찾아내어 기레기언론이 나팔을 불게 만들었다. 어떤 이는 죄없이 체포되어 끌려간 자식을 찾아 날이면 날마다 관공서와 변사자 처리시설을 전전했지만, 명부에 없다, 곧 돌아오지 않겠냐, 는 허망한 소리를 듣는 게 일상이었다. 아이를 찾지 못한 부모는 자책과 죄의식 속에서 병들어갔다. 그 절망은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 수괴와 그 패거리들은 보란 듯이 옛날 왕실처럼 관혼상제를 거하게 치르며 위세를 부렸다. 학교는 ‘교육의 장’이 아니라 아부와 충성의 훈련소로 전락했다. 생각이 깊고 질문이 많은 아이들은 문제아 취급을 당했다. ‘비판적 사고’란 말은 교과서에서 지워졌고, 교사의 입에서도 발설되지 않았다. 전라도의 한 교사는 아이들에게 '창조적 파괴'의 개념과 가치를 가르쳤는데, 그것이 체제를 위협하는 선동으로 간주되어 해직되었다. 그 교사를 편들며 교육청의 조치에 항의하던 학생대표는 실종되었고, 몇 달 뒤에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마흔 살에 얻은 아들이었다. 엄마는 자살했다. 신문에 기사 한 줄 나지 않았다. 그 억눌린 슬픔과 분노는 거대한 침묵의 공동체, 즉 죽음의 도시를 작동시키는 기괴한 에너지가 된 것이다. 언론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국가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 슬로건은 브리핑, 뉴스, 학교, 버스정류장 전광판, 관공서의 벽면까지 사회 전반을 뒤덮은 부적이었다. 기레기들은 앞장서서 온 국민을 정신병자로 만드는 엔지니어였다. 그들은 월급의 몇 배를 더 버는 고소득자들이었다. 병역기피 등 예전에는 대통령도 할 수없던 민원을 얼마든지 해결했다. 물론 유료다. 촌지를 거절하고, ‘알바’를 안뛰는 ‘고고파’는 무능으로 낙인찍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시인은 촛불 끝의 떨림을 쓰지 못하고 검열관의 얼굴을 먼저 떠올렸다. 소설가는 등장인물의 운명보다 보안관찰관의 눈빛을 의식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민주진보 세력이 부르던 노래들은 지하에서조차 들을 수 없었다. 악기들은 먼지 구덩이에 처박혔다. 감동의 무대는 사라지고 정부가 동원하여 세우는 무대만 살아남았다. 우리는 끝내 긴 가뭄의 들판처럼 균열되었다. 아무리 큰 참사가 벌어져도 보도를 통제하여 소문으로만 알게 되는 나라가 되었다. 악몽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위에서 상상한 내용들은 기본이고, 그보다 열배나 백배가 되는 비극들도 별일 아닌 것으로 축소되어 알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을 것이다. 나라는 거덜나서 미국이나 중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보다 더 흉포한 지옥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새 정부가 5년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지방공기업으로는 최초로 재무정보의 신뢰성 확보와 부패 방지, 자산 보호를 위한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내부회계관리제도는 회사 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가장 강력한 회계 시스템이다. ‘외부감사법’에 따른 해당 제도의 법적 의무 대상이 아님에도 GH가 이 같은 결단을 내린 것은 상당한 용단이다. GH의 선진적 결정이 공기업들을 포함한 기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큰 분기점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이번에 GH가 도입한 내부회계관리제도는 우선 1단계 도입 수준이다. 내년에는 재고·유형자산을 포함한 2단계, 2027년에는 기타 프로세스까지 확장하는 3단계 로드맵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제도 도입을 통해 GH는 자금·결산 분야를 중심으로 회계 절차를 표준화하고, 업무 흐름과 검증체계를 정비함으로써 재무 보고의 투명성과 정확성을 높였다. 또 외부 회계법인의 검토를 통해 대외적인 신뢰성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내부회계관리제도는 회사의 재무제표가 회계 처리 기준에 따라 작성·공시되었는지에 대한 합리적 확신을 제공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회계 시스템을 관리하는 제도다. GH는 ‘외부감사법’에 따른 해당 제도의 법적 의무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공공기관으로서의 신뢰 강화를 위해 지방공기업 최초로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만만치 않다. 공기업의 회계 투명성은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부채관리, 투자의사 결정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다. 회계 정보 신뢰성 부족은 공공요금 산정, 경영평가, 부채관리 등에서 왜곡을 초래하며, 국가신인도 하락과 자본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역대 정부와 지자체는 회계 관리 강화와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을 통해 투명성 확보에 주력해왔다. 지난 2024년에는 지방공기업법 개정으로 회계감사인의 전문성·독립성 확보, 회계규정 위반 시 제재 근거 마련, 부정청탁·금품수수 처벌 강화 등 투명성 제고 방안이 도입됐다.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와 같은 제도도 시행되고 있으나, 이익조정 억제 효과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공기업의 회계 투명성은 국민 신뢰와 국가경쟁력에 직결되므로, 실질적 효과와 실효성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점검과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현행법은 상장사와 자산 1천억 원 이상(직전 사업연도) 비상장사에게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외부감사인 검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유한회사와 법상 요건에 해당되는 특수목적회사는 내부회계관리제도 적용에서 제외된다. 미국과 일본은 내부회계관리제도(ICFR) 적용 대상을 상장사로 한정하고, 비상장사는 적용 제외하고 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은 내부통제제도 구축의 핵심 요소다. 예를 들어, 퇴직금 계산에서 일차적으로 인사부서 담당자가 근로계약서상의 조건들에 기초하여 퇴직금을 계산한 다음 책임자가 이를 확인해 회계부서에 제출한다. 그러면 회계부서에서 전표를 입력하고 해당 전표를 또다시 책임자가 확인하는 등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다중적 내부통제제도가 구축되는 것이다. 우리 공기업들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감사원이 2024년 연간 감사 계획에 따라 실시한 공공기관 결산 및 회계감사 운영실태 감사에서 매입·매출, 충당부채, 이연법인세, 투자주식, 유·무형자산 등의 회계 처리에서 적지 않은 ‘부적정’ 사례가 지적된 바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GH가 선진적인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을 천명한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GH의 용단이 국가 및 지방공기업들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제고하는 소중한 전환점으로 작동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도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기업으로서 ESG 가치를 내재화하고, 지속 가능한 혁신기관으로 성장해 나가겠다”는 김용진 GH 사장의 다짐에 기대와 성원을 보낸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 세대가 경험했던 그곳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라는 것. 친구와 속삭이고 다투고 화해하던 자리들이 많은 부분 빛나는 화면 속으로 옮겨 갔다. 말이 오가는 공간은 교실보다 SNS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색을 입는다. 아이들은 이미 또 하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공간에서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 배운 적은 없다.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조용한 어느 날에도, 온라인에서는 보이지 않는 파도들이 치고 있을지 모른다. 가볍게 던진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허락 없이 공유된 사진 한 장이 아이를 긴 밤의 불안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화면 너머에서 오간 짧은 말들은 지워지는 듯 보이지만, 지워지지 않은 마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현실의 표정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그 무게를 잘 모른다. 디지털 공간의 말과 행동은 현실보다 가벼워 보이기 때문이다. 손끝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문장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깊은 울림을 남기는지, 그 차이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마음이다. 그래서 지금 학교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건너 사람에게 닿는 마음의 온도를 일깨워 주는 일이다. 디지털 시민성 교육이란 결국 거창한 지침이나 규칙의 나열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생각하며 말을 고르는 일,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힐 때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는 법,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 현명함을 익히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오래전부터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오던 배움의 본질이기도 하다. 교실에는 이미 소중한 장면들이 있다. 서로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건네는 토론 시간, 친구와 손잡고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들, 말보다 표정으로 마음을 알려 주는 작은 배려들. 이 모든 경험은 디지털 세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현실과 디지털 세계에 다리를 놓아주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과제일 뿐이다. 아이들이 쓰는 짧은 댓글 하나에도 온기가 담길 수 있도록, 우리는 때때로 실제 사례를 함께 들여다보며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을 만든다. “만약 그 말이 나에게 왔다면 어떨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 단순한 질문이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아, 화면 너머에서도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힘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가정도 이 여정의 동반자다. 집에서 이어지는 작은 대화, 기술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길잡이가 된다. 금지와 단속만으로는 아이들을 지켜줄 수 없다. 오히려 함께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옆에서 손을 잡아줄 때 아이들은 더 단단하게 성장한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앞으로도 빠르게 바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분명하다. 화면 너머에서도 한 사람의 마음을 존중하는 태도, 그 인간다움의 씨앗이다. 디지털 시민성 교육은 그 씨앗을 아이들의 손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는 일이다. 그리고 그 씨앗이 자라 빛이 되도록 곁에서 오래 지켜보는 일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권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헌정(憲政)을 유린한 지 정확히 1년이 된다.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한동안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서 있었지만, 실상은 국가권력 탈취의 충격과 사회 혼란의 와중에 겨우 유지돼 왔었다. 내란 특검은 비상계엄의 우두머리와 중요 임무 종사자들을 추적해왔고, 수사 종료일은 12월 14일로 다가왔다. 그러나 국민의 받은 상처와 기대하였던 희망에 비해 사법부 정의의 시계는 터무니없이 느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국가 전복 사태의 책임자들은 법리 꼼수로 재판을 지연시키며 마지막 남은 양심마저 부정하고 있다. 한덕수 전 총리만이 결심에 이르렀고, 징역 15년 구형이 내려졌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채상병특검은 11월 28일 150일간의 수사를 마치면서 ‘VIP 격노설’ 실체를 확인하고 윤석열 등 총 33명을 기소해 재판에 넘겼지만, 수사과정 속 각종 논란과 함께 구명로비 등 해심 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가장 뼈아픈 장면은 국가 반란의 범죄 책임을 부하에게 떠넘기는 윤석열의 모습이다. 지도자라 자처하던 사람이 정작 법정에서는 도피와 변명으로 일관한다는 사실은, 이 정권이 얼마나 공허한 권력욕의 산물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여기에 검찰과 일부 사법부의 안일한 태도는 국민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 다수가 기각됐다는 사실은, 사법기관이 더 이상 정의의 비상구가 아님을 증명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의힘 역시 결단을 회피한 채 ‘윤석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장동혁 야당 대표마저 "윤석열 어게인"을 외친다는 현실은 민주주의 앞에서 실소를 자아낸다. 우리는 그날의 비상계엄과 1년간의 파장을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또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 직접 목격하였다. 3대 특검에서 드러난 새로운 진실은 국가 시스템이 한 번 타락하면 얼마나 오랜 시간 회복이 필요한지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내란을 종식시키고, 민주주의가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권력기관의 적폐(積弊)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이미 경고한 바 있다. 고려시대 공민왕의 반원(反元)개혁은 권문세족의 기득권 벽에 부딪혀 꺾였고, 조선 중기 조광조의 왕도정치 시도는 기묘사화의 칼날 앞에 쓰러졌다.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 또한 군주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최근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조차 검찰개혁을 약속했으나, 제도개혁은 끝내 검찰 권력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개혁은 늘 시작됐으나, 완성된 적이 거의 없었다. 이것이 우리 역사의 뼈아픈 교훈이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국민의 대다수가 염원하였던 사법부와 검찰개혁의 완성만이 그 해답이다. 오늘 이 시점이 마지막 경고다. 검찰의 기소권 · 수사권 분리, 조직 해체 수준의 구조조정 없이는 이 나라의 법치주의는 다시 뒤집힐 수 있다. 검찰은 더 이상 절대권력의 성채가 아니라 국민에게 책임지는 공적기구가 되어야 한다. 내란을 끝내고 검찰 권력을 통제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이제는 내란의 철저한 단죄와 올바른 개혁을 통해, 헌정 파괴의 역사를 스스로 끝낼 차례다.
경기도의회가 도내 소방공무원들을 위해 ‘경기도 소방심신수련원’에 대한 근거 마련에 나선다는 소식이다. 소방청이 장애 등을 겪는 소방공무원의 치유·회복 지원을 위해 내년 개원을 목표로 소방심신수련원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건강 이상 신호가 급증하고 있는 시점에 소방청의 시설에만 기댈 수 없는 형편이다. 소방관들의 건강 척도는 곧 우리 사회의 안전 척도와 직결된다. 도의회의 조례제정 움직임은 그 명분과 가치가 충분하다. 소방청이 내년 개원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소방심신수련원은 재난 현장에서 긴급 구조활동으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소방공무원의 치유·회복 지원을 위한 시설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수면 장애 등을 겪는 소방공무원들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지방자치단체들이 이 시설 하나를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자치 분권 시대에 맞게 각 지자체가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도의회에 따르면 안계일 경기도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 소방 심신수련원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이 지난달 28일 입법 예고됐다. 경기도가 전국에서 소방공무원들의 활동 비중이 가장 높은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만큼 해당 조례제정을 추진, 도내 소방공무원에 대한 지원책으로 경기 소방심신수련원 설치·운영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조례안은 경기 소방심신수련원이 심신 회복 및 치유 지원·교육 및 훈련·휴양 및 문화 공간 제공 등을 골자로 소방공무원들을 위한 사업을 실시하도록 했다. 조례에서 명시하고 있는 심신수련원의 주요 사업으로는 심신 회복 사업, 교육 사업, 가족참여형 치유·화합 프로그램 등이 있다. 여기에 심신수련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수련원이 자체적으로 전문 휴양시설을 갖춘 외부 기관 등과의 업무협약(MOU) 체결, 관계 기관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했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소방공무원 특수건강진단 결과 매년 절반가량이 건강 이상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공무원 중 특수건강진단에서 관찰이 필요하다고 진단받은 비율은 2020년 51%, 2021년 47.7%, 2022년 49%, 2023년 48.1%, 2024년 48%다. 건강 이상 소견이 있는 환자까지 합하면 그 비율은 70% 수준을 넘나든다. 건강 이상의 대부분은 직업병과 직무 관련 질병이다. 관찰이 필요한 건강 이상자 중 직업병과 직무 관련 질병 비율은 매년 약 80%를 차지한다. 지난해엔 3만 1997명 중 82.1%인 2만 6279명이 직업병·직무관련질병을 진단받았다. 가장 심각한 분야는 정신건강 문제다. 지난 5년간 자살 소방공무원 수는 78명으로 10만 명당 23.9명 수준이다. 2023년에는 16.5명으로 대폭 감소하는 듯 보였지만 지난해 다시 25.4명으로 증가했다. 외상 경험, 동료 순직 등으로 소방관들의 PTSD와 자살사고 위험이 일반인보다 3.4배 높다는 통계 분석도 있다. 소방공무원 심리상담 사업인 ‘찾아가는 상담실’ 상담 건수는 2020년 4만8026건에서 2024년 7만 9453건으로 5년 새 65% 증가했다. 이 같은 통계는 구조 현장에서 겪는 외상과 트라우마가 소방관의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다. 정치권은 선거를 앞둔 시점만 되면 앞다투어 ‘소방관 증원’, ‘소방관 건강 증진대책’ 등 공수표를 쏟아내지만, 감동적인 실질 정책을 펼치는 위정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911 소방관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위해 법적·제도적 지원과 실질적 예방·치료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누가 뭐래도 119는 이제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소방관 1명의 건강은 대략 국민 1천여 명의 안전 척도와 직결된다. 건강한 소방관들만이 국민의 건강과 안락한 일상을 담보할 수 있다. 경기도의회가 추진하는 ‘경기도 소방 심신수련원 설치 및 운영 조례안’ 추진은 시의적절하다는 게 여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25년 7월 1일 국무회의에서 “국방부에 경기북부 지역의 미군 반환 공여지 처리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다.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장기임대를 포함한 반환공여지 개발에 대한 대통령 약속의 연장선이다. 2025년 11월 15일 파주에서 열린 “경기북부의 마음을 듣다”라는 주제의 타운홀 미팅에서는 대통령의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의 총론적 의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국무총리실을 포함한 중앙정부에서는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기도 차원에서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주한미군 공여지 개발은 주도성, 전향성, 지역 중심을 3대 원칙으로 하겠다며, 전국 지자체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매년 300억씩 10년 동안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개발기금 3000억 원을 조성하고, 규제 해소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TF팀”과 법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추진지원단”을 구성하는 등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중앙정부는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을 만들어 정부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개발이 더디다. 왜 그럴까? 입법 초기부터 문제가 있었다.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매각비용을 통해 새로운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을 추진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률이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이다. 주한미군 공여지 문제를 다룬 두 법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개발사업자는 중앙정부(국방부)가 소유권을 가진 주한미군 반환공여지를 확보해야 한다. 주한미군 반환공여지를 매입할 수 있는 곳은 기초지자체와 민간사업자뿐이다. 민간사업자는 턱없이 높은 토지 대금으로 인해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기초지자체 역시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매입예산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중앙정부로부터 재정 분권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방자치의 한계 때문이다. 새로운 대안은 없을까?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무상양여, 무상대여, 장기임대, 장기분할 상환, 국고 보조율 확대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수 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자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개발은 대통령을 포함한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적 판단이 중요하다. 1%의 100년 장기임대를 도입해도 반환공여지 개발은 한계가 있다.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무상양여를 통한 새로운 행정관청 설립을 통한 개발방법이 새로운 해법이다. 대통령의 결단과 국회 입법이 필요하다. 무상양여를 통한 새로운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개발을 위해서는 기존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의 개정방안도 있지만, 새로운 (가칭) '주한미군 반환공여지 개발 지원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얼마 전 일본 남부에서 열린 동아시아포럼에 다녀왔다.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자원봉사포럼’이 인구감소시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본과 중국 시민단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는 고무적인 자리였다. 첫날 오프닝은 미에현 나바리시(三重県名張市)에서 진행됐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안내 책자와 선물상자가 든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앙증맞은 호루라기와 렌턴이 들어 있었다. 무슨 용도로 이런 선물을 준 것인지 무척 의아해 옆자리의 일본인 선생에게 물었다. 그는 “요즘 일본에는 곰의 공격이 잦아 호신용으로 호루라기를 준비한 것 같다”라고 설명하면서 본인이 평소 소지하고 있는 호루라기를 보여줬다. ‘인구가 감소하니 이제 동물과 공존하는 사회가 되어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숙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한국인들에게 선물용도를 알려주자 한 여선생은 호신용으로 쓰겠다며 호루라기를 키 링에 매달았다. 귀국 후 뉴스를 보니 일본의 곰 공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올해 초부터 곰에게 공격당해 사망한 사람은 열 명에 달했다. 이는 기존 기록을 넘어섰고 곰과 마주칠 위험은 산간지역뿐만 아니라 도시지역도 포함돼 있었다. 최근에는 곰이 관광객을 덮치고 상점에 침입까지 했다. 특히 일본 북부에서는 학교와 공원 근처에 곰이 출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대 피해지역인 아키타현(秋田県) 지사는 “자위대의 도움 없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라고 호소하며 군의 개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곰은 왜 인간사회를 위협하는 것일까? 이 배경에는 사회변화와 기후변화가 작용하고 있다. 먼저 저출산과 젊은이들의 도시이탈은 숲 가장자리에서의 인간활동을 감소시켜 서식지 간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러한 재야생화는 남아 있는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또한 기후 온난화로 곰들의 동면시기가 늦어져 겨울잠을 자기 전 먹을 도토리, 밤 등 식량이 부족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곰들은 새끼를 데리고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가 쓰레기를 뒤지고 심지어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일본에는 현재 이러한 위협에 대처할 국가정책이 없다. 따라서 지역사회가 곰을 쫒기 위해 조직 활동을 펼친다. 곰의 유인을 저지하기 위해 강화된 쓰레기통을 설치하고 늑대를 닮은 전자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기도 한다. 학생들은 책가방에 작은 종을 달고 다닌다. 호루라기나 종소리를 들으면 곰은 겁을 먹고 달아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캐나다 전역에서도 일어난다. 최근 밴쿠버에서 북서쪽으로 약 700km 떨어진 벨라쿨라 인근 강가로 소풍을 나간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곰의 공격을 받았다. 중상을 입은 네 명은 병원으로 이송되고 나머지 일곱 명은 현장에서 치료를 받았다. 교사들은 후추 스프레이와 폭죽을 사용해 곰을 쫓느라 진땀을 뺐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자연보호관 서비스 대변인 케빈 반 담(Kevin Van Damme)씨는 “34년 동안 활동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공격받는 것은 처음 봤다”라고 말했다. 곰의 공격은 지구온난화와 인구감소가 우리사회를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생생한 한 사례다. 기후변화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직감하게 된다. ‘한국자원봉사포럼’과 같은 뜻 깊은 단체들이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정치권에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중의 따뜻한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
인천광역시가 7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버스 무료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유정복 시장도 최근 인천교통연수원에서 열린 ‘2026년 시민과 함께하는 주요업무보고회’에 참석,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한다고 알린 바 있다. 시는 고령층 이동권 확대 차원에서 이르면 내년 7월부터 가칭 ‘i-실버패’를 통해 노인들의 버스 요금 무료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혜택을 보는 노인은 모두 22만 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간 소요될 예산은 버스 준공영제 운영 손실 보전금과 카드 시스템 구축 비용 등 약 170억 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는 12월 중에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보건복지부와 사회보장제도 협의를 진행 후 내년 상반기까지 무임 단말기 정비와 정산 시스템 개편, 카드 제작 등 사전 준비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인천시에서 75세 이상 버스 무료화가 되면 노인들의 삶은 조금 더 향상된다. 버스가 지하철보다 노선이 다양하고 이동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단거리 이동도 쉬워져 가까운 공원이나 시장에도 편하게 갈 수 있어 생활 편의에 도움이 된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7일자 인천판 1면 ‘인천 75세 이상 버스 무료화…“왜 청년만 희생하나?”’) 인천시에 앞서 노인 무상교통을 지원하는 지방정부들도 여럿 있다. 경기도는 이천시, 동두천시, 양평군의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시범적으로 교통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시내버스, GTX 등 수도권 교통수단 이용 요금을 지역화폐나 현금으로 환급하는 시스템이다. 2025년 4분기(10월~12월) 이용 분부터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 만족도, 소요 재원, 제도 개선 사항 등을 면밀히 분석한 뒤 성과가 좋으면 이 사업을 도내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화성시의 경우는 65세 이상 화성시민 G-Pass로 지하철 무임·시내·마을버스 요금을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 G-Pass 카드로 화성시 관내 시내·마을버스(좌석·광역·시외·공항버스 제외)를 이용하면 사용한 금액을 환급받는다. 사실상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화성시 내 이동에 한해서만 지원되며 연간 156만 6000원(월 최대 13만 500원)이 한도다. 화성시는 지난 2020년부터 파격적으로 무상교통을 시행했다.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버스 공영제’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서울의 1.4배에 달하는 넓은 면적에다가 신도시와 공단 개발로 인해 인구가 급증 하고 있지만 도심지와 외곽지역의 교통 인프라 격차는 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22년 실시한 시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4%가 무상교통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혜자들은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100점 만점에 79.7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교통약자인 고령층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대중교통 이용 촉진을 위한 교통 복지 정책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인천시가 만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시내버스 요금의 전면 무료화 정책을 계획하자 지역 청년층의 반발이 일고 있다고 한다. 노인들을 위해 젊은이들이 희생된다는 것이다. 교통 정책 대부분이 청년층이 내고 있는 세금으로 이뤄져 사실상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청년층의 부담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무료화도 청년층 사이에서 불만이 강해 사회적 논란이 되는데 버스까지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한 청년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오히려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현재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사회 각계에서 들려온다. 손실에 대한 국비 지원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도 5만 명을 넘었다. 노인복지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팍팍한 생활을 이어가는 젊은이들을 보듬어 안는 정책도 요구된다. 대중교통비 등 생활비 부담이 큰 젊은 세대에도 일정 부분 혜택이 필요하다는 소리에 인천시와 다른 지방정부들도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방 안의 공기가 답답해 밖으로 나갔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길고양이 한 마리가 마루 끝에 앉아 울고 있었다. 인기척 소리가 나면 도망가 버리던 녀석인지라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과 배는 하얗고 등은 까만 고양이었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내 방을 향해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배고파? 아무것도 못 먹었어? 라는 내 물음에 말귀를 알아듣는 듯, 녀석은 더 큰 소리로 야옹, 야옹, 쉴 새 없이 대꾸했다. 그 모습이 꼭 배고파 보채는 아이 같았다. 사람 먹는 것밖에 줄 것이 없어 한참을 우왕좌왕하다 주방을 뒤져 참치캔 한 개를 들고나왔다. 참치캔을 따는 동안, 기다리는 녀석의 눈빛은 집요하고 진지했다. 어찌나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덩달아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드디어 빼곡히 들어 찬 참치 살이 드러났다. 녀석에게 내밀자, 고개를 박고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굶었던 걸까? 참치캔 한가운데를 핥는 소리가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 같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캄캄한 마당은 더 스산하고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사방이 고요한 밤이면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빈 마당으로 다 모여드는 것 같았다. 집을 떠나 잠시 머무는 이곳은 시골이라서 그런지 계절의 변화가 눈에 더 잘 보였다. 도시의 아파트였다면, 배고픈 짐승의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땅에서 멀어진 높은 곳에서 사는 우리에게 저 소리가 닿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물론 시골집이라고 해도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가끔 고라니 소리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고라니가 사는구나! 라고, 무심히 흘려듣고는 했다. 그런데 저 녀석을 보니, 다가올 추위가 걱정되었다. 산속이든 길 위든 먹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춥고 배고픈 생명들이 견뎌야 하는 겨울은 가혹한 계절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며 저 고양이는 방문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을까. 겨울을 견뎌야 하는 건 고양이만의 일이 아니다. 산속의 고라니는 얼어붙은 땅을 긁어 묵은 풀뿌리를 찾아낸다. 전깃줄 위에 잔뜩 몸을 부풀린 참새들은 체온을 잃지 않으려고 서로 가까이 붙어 밤을 버틴다. 바닷가 갈매기는 파도에 떠밀려온 작은 먹잇감을 찾아 해안을 맴돌며 겨울을 난다. 멀리서 보면 고요한 풍경 같지만, 사실 그 모든 움직임은 살아남기 위해 치러내는 치열한 일상의 전투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고요한 풍경 속에서도, 모든 생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을 견디게 될 것이다. 추위를 막기 위해,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살아내는 일이 유독 애달프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나는 사료 한 포대를 주문했다. 깊은 밤, 한 생명이 굶주림에 지쳐, 내 곁에 와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살고 싶다는 간절한 구조요청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다큐에서 본, 남극의 황제펭귄이 생각났다. 서로의 몸을 밀착하고 자리를 바꿔가며 추위를 이겨내는 ‘허들링’을 하는 장면이었다. 겨울은 혼자 건너기엔 너무 긴 계절이다. 동물도 사람도 이 겨울을 무사히 건널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