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은 기회에 다카이치가 이끄는 자민당이 중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단독으로 과반(233석)을 넘는 압승을 거둘 때 도쿄에 체류했다. 날이 많이 흐렸고 진눈깨비가 내리다가 폭설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세상은 고요했다. 에노시마 기차역 슬램 덩크 관광지에는 푸릇한 한국 청춘들이 몰려들었다. 다카이치든 자민당이든, 중도당이든, 공명당이든 일본 사람들은 정치에 무심해 보였다. 하루 이틀 머물다 스쳐 가는 사람처럼 일본 국민은 정치는 정치, 민생은 민생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카사카에 있는 방송국 TBS 앞에는 공산당 깃발을 꽂은 유세차 위에서 초로의 여성 당원이 목소리를 높여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빌보드 팻말에는 부자증세라 쓰여있었다. 도쿄를 안내했던 영화 관계자 지인이 말했다. “들어 보면 일본 공산당 친구들이 가장 정확한 얘기를 해요. 똑똑한 애들은 역시 좌파이긴 해요.” 다카이치가 이겼으니 센카쿠 분쟁 문제니, 쿠릴 열도 반환 문제를 둘러싼 정책이 바뀔 것이다. 성향이 공격적이니만큼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군사력을 강화할 것이다. 자위대 설치와 운용범위에 관한 법률을 바꾸고 무엇보다 평화헌법이란 미명으로 대외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군사법안을 마련할 것이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독도 이슈, 그들로서는 다케시마 이슈에 불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나 많은 언론은 다카이치가 거기까지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 보고 있다.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사는 친구는 종종 그의 일본인 친구와 독도-다케시마 문제로 언쟁 아닌 언쟁을 벌인다고 한다. 사실 한일 친구들은 아예 이 문제를 대화의 주제로 꺼내는 것을 극력 피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만약 얘기가 나올 때를 대비해 그가 알려준 대처방안에 무릎을 쳤다. 일본 거주 30년째 한국인은 순수 일본인에게 “너희들은 다케시마 문제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대체로 일본인들은 이 질문에 쭈뼛거리기가 십상인데 거기에 이렇게 답을 던져주면 더 이상 얘기를 이어가지 않게 된다고 한다. “우리? 한국 사람은 독도 문제로 전쟁도 불사할걸? 너희들은 독도를 사이에 놓고 우리와 전쟁을 벌일 수 있어? 감당할 수 있겠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런저런 영화들이 있다. 송원근 감독의 <김복동>(2019)이 대표적이다. 조금 멀게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이 있다. 30년 가까이 적어도 영화는 공정한 역사관, 올바른 여성관을 세우고, 가르쳐 오고, 전파하려 노력해 왔다. 그런데 윤석열 집권 이후 뉴라이트들이 번식하고 번성하면서 위안부 할머니 문제 역시 매춘부라 공격하고 매도하는 천박한 극우들이 판치고 있다. <봉오동 전투>(2019)도 만들고 <밀정>(2016)도 만들며 영화는 독립운동의 가치를 드높이려 했지만 밀정보다 못한 친일주의자들은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려 했고 한국의 독립이 운동의 내적 동인에 의해서라기보다 외세의 지원에 의한 해방이라고 폄하해왔다. 이런 자들은 다케이치의 압승에 축하주를 들고 있을까. 이런 자들은 일본의 재 무장화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그들에게 묻는 말은 똑같은 것이다. 당신들은 독도 문제를 사이에 두고 다카이치 파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전쟁도 불사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몇 편의 영화만이라도 보기를 바란다. 영화에서라도 애국을 배우고 일본의 진위, 실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하고 배우기를 바란다. 이상 일본에서 목격한 자민당 압승의 단상.
1월 30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민주시민교육 추진계획’의 핵심은 ‘학생들이 헌법 가치와 원리를 이해하고 삶과 연계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학교 현장의 헌법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동안 우리 교육과정에서 헌법교육을 도외시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내 경우를 봐도 초·중·고는 물론 대학 시절에도 헌법을 제대로 본 적 없이 사회에 진출했다. 특별히 대학에서 헌법을 전공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헌법의 한 줄도 볼 기회가 없는 것이 일반적 현실이다. 2월 10일 <MBC PD수첩 – 통일교와 공모자들> 편에 드러난 가평군의 전·현직 군수, 정치인들의 모습은 그런 탈헌법적 현실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헌법과는 무관한 부끄럽고 안타까운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헌법의 빈틈으로 사이비가 파고들었다. 가평군민으로서 옆에서 지켜본 통일교의 활동은 전방위적이다. 군민들의 생업, 여가, 교육 등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물이 스며들 듯 침투한다. 가정, 사랑, 평화 등 보편적이고 희망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건강하고 상식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 와중에 주민들에게 표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들은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실천을 하기보다는, 그 현혹된 주민의 환심을 사려는 행태를 보이며, 오히려 주민을 현혹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의 계획 발표 이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청소년 정치 참여 확대라는 순기능보다 자칫 교실이 정치판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심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는 논평을 냈다. 헌법교육 또한 정쟁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최근 <시사인>과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이 수도권 30명의 학생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학교에서 정치 이야기를 나눠 본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 비어 있는 정치 토론 환경을 메꾸는 것은 극우적인 정치 밈과 괴담들이었다. 그것들은 특히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내란 이후 본격적으로 유행되었다고 한다. 보수를 참칭한 윤석열 사이비가 역시 헌법의 공백을 파고든 것이다. 헌법을 가르치지 않는 공화국은 모래성과 같다. 우리가 탄핵당할 수준의 대통령을 뽑고, 극우와 팬덤 정치가 득세하는 것이 그 증거다. 민주공화국의 주민들이 교실과 일상에서 사이비보다 헌법을 가깝게 느끼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이 잘 추진되길 바란다. 이번 글로 2023년 12월부터 써 온 ‘촌스러운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23편의 글을 통해 나의 ‘촌스러움’이 기존의 ‘촌스러움’의 의미가 아님을 독자들께서 이해하셨으리라고 생각한다. 한 줄로 질주하던 무리가 뒤를 돌아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면 선두와 꼴찌의 처지가 뒤바뀐다. 도시화, 산업화로 질주하던 무리의 앞에 지역소멸과 기후재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계속 죽음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이제 뒤를 돌아 살림의 발향으로 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 절박한 마음으로 뒤로 돌아가는 담대한 전환을 위해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 가평군수로 출마한다. 대의제 중앙집권이 아닌 직접민주 지역자치의 깃발을 들고 신당을 창당하며 출마한다. 이제 가평군에서 펼쳐지는 촌스러운 이야기를 독자들이 뉴스로 보실 수 있는 실천을 할 것이다. 그동안 나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6·3 지방선거가 불과 110일 남았다. 과거 이 시기에 각 정당은 경쟁적으로 인재도 발굴하고 국민친화적 정책도 발표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은 낯익은 장면이었다. 그러나 제1야당 국민의 힘의 최근 모습을 보면 많이 낯설다. 설 연휴를 앞두고 민생은 나아지지 않고 있고 대외 경제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있는데, 국힘은 오로지 ‘누가 누구를 징계하고, 누가 공천권을 쥐느냐’는 권력 투쟁에만 매몰되어 있는 탓이다. 현재 국힘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정치적 내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갈등의 핵심은 당 지도부와 이른바 ‘친한계’ 사이의 전면전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제명 사태 이후 당내 분열은 봉합되기는커녕 중앙당과 서울시당 간의 ‘징계 전쟁’으로 번졌다. 지난 1월 말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의 ‘전두환 존영 게시’ 발언으로 촉발된 설화(舌禍)는 친한계의 징계 요구로 이어졌고, 이에 맞서 당권파는 배현진 의원의 성명 발표 과정을 문제 삼아 중앙당 윤리위 제소라는 맞불을 놨다. 결국 서울시당은 고 씨에게 ‘탈당 권유’를, 중앙당 윤리위는 배 의원을 소환 조사하는 이른바 ‘징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당의 윤리 기구가 정적 제거를 위한 계파 보복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당의 중심을 잡아야 할 지도부와 수도권 전열을 정비해야 할 서울시당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숙청의 칼날을 휘두르는 모습은 목불인견이다. 여기에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가세해 장동혁 대표의 사퇴를 압박하며 갈등의 전선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당 지도부가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의 기초단체장 공천권을 중앙당이 행사하겠다는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하면서 폭발한 ‘공천권 사유화’ 논란은 이번 갈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지방분권과 정당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실종된 채 오로지 당권 장악을 위해 공천권을 무기화하려는 장동혁 대표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제1야당 이렇게 내부 권력 쟁탈전에 골몰하는 동안 국민의 삶은 방치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관세협상 비준을 미루고 있다며 25%관세 환원을 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는 비상이 걸렸고, 글로벌 반도체 성지인 경기도 도민들은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정 운영의 한 축인 야당이라면 마땅히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통상 전략을 점검하며 정부를 압박해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국힘에서는 ‘민생’이나 ‘경제’라는 단어는 계파 간의 비난을 위한 수사(修辭)로만 쓰일 뿐이다. 국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지 수 개월째다. 당 지도부가 반대파를 몰아내는 데만 열을 올린다면, 중도층 이탈은 막을 수 없을뿐더러 보수층의 외면도 피하기 어렵다. 당연히 그 결과는 지방선거 참배로 이어질 것이다. 과거 보수 정당이 오만과 독선에 빠져 공천 갈등을 빚을 때마다 국민이 어떤 심판을 내렸는지 회상해 보기 바란다. 국힘은 지금이라도 소모적인 ‘징계 정치’와 공천권 다툼을 즉각 중단하고 지방선거를 앞둔 정당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 책임있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윤어게인 세력이 아니라 합리적인 보수 인사들을 선거의 전면에 내세워 국민과 소통하는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도부는 당내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포용적 리더십을 보여야 하며, 각 계파는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당권파의 세력을 확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지역 주민의 삶을 책임질 일꾼을 뽑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제1야당이 민생이라는 본분을 잊고 권력 투쟁에만 몰두한다면 결국 국민이 결정하는 엄중한 심판대에서 자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자멸의 길’로 갈 것인지, ‘국민과 동행하는 길’로 갈 것인지 이제 결단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기도는 11일부터 오는 3월 10일까지 도내 8개 시,군을 대상으로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공개모집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모는 단순한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감내해 온 안보 부담과 구조적 제약에 대해서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정책적 분기점인 만큼, 이 질문에 앞서 포천은 더 이상 뒤로 밀려나서는 안된다. 포천은 법적으로 수도권에 속해 있으며.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각종 규제는 예외 없이 적용돼 왔다. 그러나 산업 인프라, 인구 유입, 재정 여건, 도시 기능 어느 하나 수도권다운 혜택을 온전히 누려본 적은 없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사격장과 훈련장, 반복되는 소음과 진동, 출입 통제와 토지 이용 제한은 포천 시민의 일상이었다. 국가는 안보를 이유로 포천의 발전 가능성을 제약해 왔고, 포천은 그 제약을 오랜 시간 감내해 왔다. 이제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안보를 위해 희생이 요구되었다면, 그에 대한 보상 역시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같은 접경지역으로 분류되고, 이번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고양,파주,김포,양주와 포천의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이들 도시는 이미 자족 기능을 갖춘 성장 궤도에 올라섰고, 산업과 인구, 도시 인프라 면에서 포천과는 다른 단계에 도달해 있다. 접경이라는 행정적 분류만으로 모든 지역을 동일선상에 놓고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형평이 아니다. 국가 전략사업은 가장 절실한 곳에 우선 배치되어야 하며, 평화경제특구 역시 그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평화경제특구 지정과 관련해서는, 현재 우리 시가 유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기회발전특구와의 정책적 연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회발전특구는 기업의 이전과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감면, 재정 지원, 규제 특례, 정주 여건 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제도로, 우리 시 역시 이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지속적인 준비와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기회발전특구와 평화경제특구가 함께 지정된다면, 정책 효과는 단순한 합이 아니라 상호 증폭되는 시너지로 나타날 수 있다. 평화경제특구가 접경지역의 안보,평화,경제를 결합한 국가 전략 공간을 제시하는 제도라면, 기회발전특구는 그 공간 안으로 기업과 자본을 실제로 유입시키는 강력한 실행 장치가 된다. 두 특구가 결합될 경우, 포천은 국가 전략사업의 실증과 사업화, 산업 집적과 일자리 창출이 동시에 이뤄지는 핵심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는 접경지역 정책이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포천은 이미 군사,안보 인프라가 도시 전반에 내재된 지역이다. 이를 규제의 대상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과 안보 기술, 드론·로봇, 재난·안전 분야 등 첨단 산업의 실증과 제조, 인력 양성이 집적되는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 평화경제특구의 정책적 틀과 기회발전특구의 투자 유인책이 함께 작동한다면, 접경지역의 구조적 한계를 기회로 전환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포천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수도권 과밀 해소와 접경지역 안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합리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경기도는 이번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선정 이후, 그 결과를 토대로 '경기도 평화경제특구 개발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연구용역은 형식적인 절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접경지역이 실제로 겪어온 제약과 희생, 그리고 각 지역이 가진 잠재력을 어떻게 정책 패키지로 묶어 투자와 일자리로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가 되어야 한다. 특히 포천은 수도권 규제와 안보 제약이 중첩된 지역인 만큼, 이 현실이 초기 단계부터 충실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평화경제특구의 실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필자는 포천시의회 의장으로서, 평화경제특구 유치를 위한 노력에 어떠한 역할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나서고, 정책적 논의와 공론화가 요구된다면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집행부 역시 이번 공모 대응을 단순한 형식적 신청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평화경제특구와 기회발전특구의 연계를 포함해, 포천이 무엇을 할 수 있고 국가가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전략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포천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평화경제특구는 먼 미래의 구상이 아니라, 지금 반드시 잡아야 할 현재의 기회다. 국가가 안보를 이유로 포천의 발전을 제약해 왔다면, 이제 국가는 정책으로 그 책임을 응답해야 한다. 끝으로 그 응답은 선언이 아니라 지정이 되어야 하며, 평화와 기회가 결합될 도시, 포천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답이어야 한다.
남북관계 단절이 장기화되면서 DMZ 평화는 더욱 중요한 안보 과제가 되었다. 전쟁 방지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접경 지역의 군사활동을 제한한 2018년의 남북 합의가 전 정부 때 무력화되면서 한반도는 극히 위험해졌다. 새 정부는 9·19 군사합의 복원을 대선공약으로, 접경 지역 평화 대책 및 법제 정비를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통일부는 작년 12월의 업무보고에서 “2026년 한반도 평화공존 원년 만들기”를 목표로 “남북관계 단절의 벽에 바늘구멍을 뚫기 위한 노력”을 선제적·집중적으로 추진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페이스메이커 역할 강화를 위한 평화교류 프로젝트로 서울~베이징 철도 연결, 원산갈마 평화관광 등 다양한 창의적 방안이 제시됐다.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추진체계로서 국회와의 관련 법률 제정안 협조, ‘평화경제특구법’ 시행에 따른 접경 지역 대상의 특구 기본계획 수립, 파주 등 3개 구간의 DMZ ‘평화의 길’ 재개방 등도 포함됐다. 지난 3일 발표한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 설명서에는 이 내용들이 포괄적·체계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국회에서는 ‘DMZ의 평화적 이용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입법 중이다. 이는 DMZ의 생태 가치를 보전하고 평화적 이용을 지원하기 위해 평화와 남북협력 증진, 자연환경 보전, 문화재 보존, 생태·평화관광 등에 관한 종합계획 수립과 관련 위원회 구성을 규정하고 있다. 법안에는 관련 사업을 위해 필요한 경우 우리 정부가 DMZ 출입 및 물자·장비 반입 등을 승인하는 특례 규정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통일부는 우리의 영토 주권과 한반도 평화 공존에 대한 분명한 입장 하에 관계부처 정책 조정 등을 통해 법률 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DMZ를 관할하는 유엔사에서 강력한 반대 의견을 표하면서 문제가 꼬였다. 1월 28일 유엔사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전협정(1조) 규정상 유엔군사령관이 군인 및 민간인의 DMZ 출입 승인 권한을 전적으로 갖고 있다면서 관련 법 통과는 정전협정에 대한 정면 위반이자 한국 정부의 이탈 선언이라고 강변했다. 정전협정 서문에서 “협정 규정이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한다”는 표현도 협정이 정치적 합의(평화협정)가 아니라는 뜻일 뿐 유엔사의 민사행정 권한을 제약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한국 정부의 정책과 입법 권한이 정전협정 규정과 충돌하는 이번 사안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역사적 해결의 선례도 있다. 1975년 유엔 총회에서 유엔사 해체가 결의되자 한미 정부 합의로 유엔사의 전쟁 억제 및 전력 운용 기능을 한미연합사로 이관하고 정전협정 관리 기능만 남겼다. 1990년 한국 방위의 한국화 과정에서는 판문점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넘겼다. 2000년대 남북교류가 확대되면서 유엔사의 DMZ 관할권을 나눠 철도·도로 건설을 위한 한국 정부의 관리권도 인정했다. 최근 국방부는 남방한계선에서 북쪽으로 추진 설치된 DMZ 방책선을 기준으로 그 남쪽에 대한 출입 승인 권한을 한국 정부가 갖자는 절충안을 냈고, 유엔사는 여전히 난색을 표한다는 전언이다. 이제 이 문제는 한미 정부가 한반도 평화관리와 한국의 역할 확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다.
이번 달로 대학 강단을 내려온다. 30대부터 매달려 왔던 대학 강의가 어느덧 정년이 되어 마무리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즐겁고 영광이었지만 가족과 주변 분들에게는 나의 행복에 비례해서 많은 희생을 강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보람으로 가득 찼던 순간들이었음은 틀림없다. 전공이 정치학이고 그중에서도 한국 정치사상을 전공하다 보니 배워야 할 것들 천지이고 깊이를 더 할수록 존경해야 할 분들이 넘쳐났다. 그럼에도 연구의 순간은 늘 행복했다. 한국 근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수운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사상에 빠졌고, 오늘 대한민국의 기원인 임시정부의 정치적 근간이 된 조소앙의 삼균주의라는 정치사상을 연구할 수 있었던 것도 크나큰 영광이자 보람이었다. 비록 수운 최제우나 조소앙의 사상 근처에도 못 가지만 스스로의 수준을 잘 알기에 만족하며 보낸 연구 시간이었다. 얕은 지식이나마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행복도 뺄 수 없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좌우명인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를 되새기며 자신에게 늘 “나는 강의실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묻고 또 묻기를 거듭했다. 그래도 부끄러웠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열심히 가르치고, 좀 더 진지하게 상담해 주고 지도해 주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 가득한 순간들이 우선 기억되고 있다. 지금껏 교육계에 있었던 입장에서 오늘 사회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음도 고백한다. 어쩌다가 오늘 한국 사회가 공동체 의식보다는 그저 개인적 이익에 매몰되어 버렸는가. 정의는 고사하고 상식마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인성 교육은 어디 가고 그저 테크닉에만 몰두하는 강의실은 또 어쩌란 말인가. 그 많은 부조리의 원인은 어디 있는가. 오로지 대학입시 하나에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하는 한국 교육의 문제를 너무도 잘 알면서도 해결책 하나 내놓지 못하는 무력감과 자괴감 역시 부인키 어렵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부모의 능력이 자식의 능력으로 세습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는 더 심한 모멸감까지 느꼈다면 지나칠까.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이 활발하다고 느끼는 성인은 4명 중 1명에 그친다고 한다. ‘계층 사다리’가 불가능한 이유는 자녀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 68%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원이 자녀의 지위에 영향을 주며 그렇지 않는다는 응답은 0.7%라고 한다. 사회 지도층은 늘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신들만의 특권 카르텔을 형성해 놓고 그 아성을 지키고 계승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은 정책의 최우선을 자신들이 거주하는 서울 수도권으로, 집값은 오직 강남이 기준이고, 교육은 서울 대치동이 교본으로 만들었다. 오로지 문과는 법대요, 이과는 의대만 존중받는 사회를 만든 것 또한 그들이다. 의사는 죽는 순간까지 면허가 살아있고, 법조인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수임료를 논하기에 어쩔 수 없이 모든 국민은 자식들을 그리로 집중케 한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만민평등과 생명 존엄을 외친 동학사상과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그린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의 균등함이 실현되는 사회는 진정 이상론자들만의 세상에서나 존재하는 것인가. 강단을 떠나지만 다짐한다. "스승님들이 추구한 사회를 만드는데 더욱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지역의료에 대한 불신이 수도권, 비수도권을 막론하고 악화하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수도권에서의 필수의료에 대한 불신은 거의 바닥 수준으로 조사돼 열악한 현실을 반영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규모를 놓고 의사협회 등이 반발하고 있어 의정 갈등이 민심을 흔드는 먹구름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악화일로인 이 문제를 언제까지 미봉하여 방치할 셈인가. 위정자들과 의료계는 책임감을 더욱 높여야 할 것이다. 경기연구원은 ‘지역의료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 대다수는 지역의료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비수도권 주민들의 불신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해당 조사는 전국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조사에 따르면 ‘응급상황 발생 시 골든타임 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응답한 국민은 25.7%뿐이었다. 특히 비수도권 주민은 15.5%만이 긍정적으로 응답해 수도권(35.3%)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심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필수의료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 역시 30.6%에 그쳐 낮은 수치를 보였으며, 비수도권 주민은 17.8%로 수도권(42.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역의료 전반에 대한 만족도도 전체 35.0%, 비수도권은 19.5%로 지역을 불문하고 낮은 편이었다. 결국 지방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는 현상의 핵심 원인이 바로 이런 요소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지역의료에 대한 이용 의지는 여전히 높아 전문성 강화만 제대로 된다면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응답자들은 만성질환 진료는 동네 의원을 선호하고, 중증질환 진료는 수도권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응답자의 68.3%가 ‘지역의료의 전문성이 강화된다면 중증질환 진료 시에도 지역병원을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또 지역의료 이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도 ‘전문성 강화(69.4%)’를 1순위로 꼽았다. 70.1%가 ‘지역의료 이용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주치의 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과반수(54.4%)가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10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2027~2031학년도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확정했다. 2027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490명 늘리는 데 이어 2028~2029년에는 해마다 613명, 2030년~2031년에는 연 813명씩 확대해 5년간 누적 증원 규모는 3342명, 연평균 668명이다. 증원 대상은 서울을 제외한 전국 32개 의과대학이며, 늘어나는 인력은 100% 지역의사제로 선발된다. 관건은 의료계 반발이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증원에 반대하며 보정심 회의 도중 퇴장했고 증원 규모는 표결로 확정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정부가 교육 부담을 고려해 첫해에 증원분의 80%만 반영한 데 대해 “환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역대 정권들이 의료 개혁을 추진할 적마다 일어났던 갈등의 소용돌이는 온 국민의 기억 속에 남은 씁쓸한 장면들이다. 필수의료 부족과 지역의료 전문성 제고 문제는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고질적 과제다. 이젠 해결해야 한다. 주민들이 지역의료를 신뢰하고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의료 이용 정책’ 마련이 급선무라는 경기연구원의 제안에 주목한다. 경기연구원의 제안은 ‘지역의료 이용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 도입’, ‘전문성 특화 공공병원 육성’, ‘지역 명의(名醫) 양성 시스템 구축’ 등으로 압축된다. 병원을 찾는 국민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하나씩 해법을 찾아 들어가는 절차가 필요하다. 믿을 만한 의사와 이용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까지 있다면 지역의료를 외면하고 왜 다른 선택을 할까. 오직 국민의 평등한 건강 복지만 중심에 놓고 방책을 헤아리는 신실한 자세가 절실하다.
인천 동구는 수도권 철강 산업의 심장부다. 동구의 아침은 오랫동안 철강의 뜨거운 숨결과 함께 시작됐다. 거대한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와 공장의 소음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의 엔진이 오늘도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는, 안도감 섞인 신호였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현 동국CM) 등 대한민국 산업화의 뼈대를 세운 기업들이 자리한 이곳은 동구의 오늘을 지탱해 온 경제적 근간이자 자부심이었다. 새롭게 출범할 제물포구(동구·중구)는 전체 면적의 50% 이상이 공업지역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도시의 절반 이상이 산업 현장이라는 사실은 지역의 운명이 입주 기업들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하며, 주민들의 삶이 ‘양질의 일자리’ 확보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 그 견고하던 심장 박동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현대제철 인천공장이 최근 건설 경기 침체와 저가 중국산 철강의 공세로 인해 철근 생산 설비 일부를 폐쇄하기로 결정하며, 연간 생산량이 160만 톤에서 80만 톤으로 ‘반 토막’이 났다. 동국제강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면적의 절반 이상을 산업에 내어준 우리에게 철강 산업의 위기는 곧 경제적 질식이자, ‘도시 소멸’의 전주곡이다. 필자가 동구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철강 산업은 도시를 지탱하는 버팀목인 동시에 주민들과 함께 해결해야 할 환경적 과제였다. 기업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만큼, 공정 과정의 환경 이슈는 주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민감한 현안이었다. 당시 우리는 기업에 환경 개선을 위한 강력한 투자를 요구했고, 기업 역시 이에 응답하며 상생의 길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설비 폐쇄는 그동안 쌓아온 ‘상생의 노력’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공장이 가동을 멈춘다는 것은 환경 개선을 위한 설비 투자와 친환경 공정으로의 전환 기회조차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환경 정의는 단순히 공장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지역에 남아 탄소중립 시대에 걸맞은 ‘그린스틸’ 생산 기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지켜내는 데서 완성된다. 다행히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최근 구윤철 부총리가 인천을 찾아 지역 산업 현안을 살피며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 그 신호탄이다. 국회에서도 허종식 국회의원이 ‘K-스틸법’ 통과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반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인천시의 행보에는 산업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크다. 정부의 결정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천시 차원의 자체적인 대책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어 회복 동력을 가동 중인 타 지역과 비교하면 인천시의 대응은 답답하기만 하다. 유정복 시장의 생활 밀착형 정책들의 가치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도시의 뿌리인 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행정의 우선순위는 더 냉철해야 한다. 뿌리가 썩어가는데 꽃잎에만 물을 준들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가겠는가. 산업이 무너지고 일자리가 증발하는 순간, 주민들의 소박한 일상 자체가 통째로 사라질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인천시에 필요한 것은 ‘지정 검토’가 아니라 ‘전격적인 실행’이다. 인천의 철강 이슈는 단순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제물포구의 역사이자 주민의 삶이 달린 문제다. 환경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설비 투자를 유도하고 산업 위기를 극복할 구체적인 시 차원의 정책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확보하고 지키는 것, 그것이 곧 제물포구의 미래를 여는 유일한 길이다. 위기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빙핵을 구출하라!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1.5°C에서 4°C 사이로 유지될 경우, 전 세계 산악 빙하는 2100년까지 전체 질량의 41%를 잃게 된다. 빙하가 사라지면 현재 얼음으로 덮인 많은 발원지 하천이 사막화 되고 인류는 대참사를 면할 수 없게 된다. 산과 빙하는 수많은 수로의 발원지로 지구 수문 순환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뜻한 계절에 눈과 빙하가 주기적으로 녹아 생기는 담수는 하천과 강으로 직접 흘러 들어가거나 토양으로 스며들어 토양 수분과 지하수를 보충한다. 이는 지구인 약 20억 명의 담수로 활용된다. 이처럼 빙하는 우리 인류의 생명줄인 셈이다. 과학자들은 빙핵 구출작전에 돌입했다. 일명 빙핵저장고(Ice Memory) 프로젝트. 이는 현재 위협받고 있는 기후 데이터를 지정학적 또는 기술적 압력 없이 미래 세대가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2015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그르노블 알프스대학교, 프랑스 개발연구소(IRD), 이탈리아 국립연구위원회(CNR), 베네치아 카포스카리대학교가 공동으로 출범시킨 이 프로젝트에는 세계 13개국 연구자, 대학, 정부,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모나코 알베르 2세 재단은 장기적인 활동 구조를 구축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달 14일 프랑스-이탈리아의 공동 연구 기지인 남극의 콩코르디아에 빙핵저장고를 개장했다. 해발 3,200미터 고지에 자리한 이 기지에는 몽블랑과 그랑콩뱅 산에서 채취한 빙핵이 타임캡슐로 보관됐다. 안데스산맥과 코카서스산맥 등의 빙핵도 추가될 전망이다. 100미터 두께의 알프스 빙핵들이 콩코르디아로 가는 여정은 험난했다. 쇄빙선을 타고 유럽을 출발해 바다를 건너 남극에 도착한 후 특수 항공기를 타고 기지에 착륙한 것이다. 프랑스 폴 에밀 빅토르 극지 연구소와 이탈리아 남극 연구소가 공동 관리하는 이곳은 -50°C에서 -54°C 사이의 안정적인 온도를 유지한다. 길이 35미터, 폭과 높이 5미터의 이 구조물은 지표면 아래 9미터 깊이의 눈 속에 굴착돼 있다. 콘크리트나 산업 자재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남극에 오염 유발 시설을 금지하는 마드리드 의정서를 준수한 것이다. 남극은 또한 법적 중립지역으로 1959년 조약에 의해 어떤 국가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산악 빙하는 지역에 따라 부피가 2%에서 39%까지 감소했다. 이로 인해 녹은 물이 땅속 깊숙이 스며들면서 오래된 빙층을 변질시키고 일부 빙핵은 고정밀 분석에 사용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적 가치가 떨어졌다. 빙핵저장고 재단 회장이자 베른대학의 기후학자인 토마스 슈토커는 “빙하의 소실은 수천 년 묵은 기후 기록의 소멸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일단 녹으면 이 얼음은 대기, 에어로졸, 온실가스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함께 영원히 복구할 수 없게 된다. 빙하코어에는 오염물질, 화산이나 사막먼지, 심지어 DNA의 흔적까지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수 세기 또는 수천 년에 걸친 특정 기간의 환경 조건을 재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빙핵 구출 작전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수년에 걸쳐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국경을 초월하며, 지정학적 긴장과도 무관하며, 전 세계의 과학적 이익만을 위해 오롯이 존재할 것이다. 오는 2045년까지 20개의 빙하에서 빙핵을 시추해야 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려면 재단은 공공자금, 후원단체, 과학적 파트너십이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 많은 이의 관심과 후원이 봇물처럼 이어질 수 있길 기원해 본다.
지난달 29일 국토교통부가 ‘1·29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발표했다. 9·7 공급대책의 후속 조치다. 내용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핵심 입지에서 총 6만 가구를 공급하는 것이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7배이며 판교 신도시 2개 규모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26곳 3만 2000가구, 경기 18곳 2만 8000가구, 인천 2곳 100가구 등이다. 이 가운데는 과천 경마장·방첩사령부 이전 부지가 포함돼 있다. 과천 경마장·방첩사 부지엔 9800가구가 들어설 계획이다. 그런데 과천시민과 인근 주민들, 과천시, 한국마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과천시의 입장은 이미 진행 중인 개발 사업에 더해 9800가구가 또 들어선다면 도시 기반 시설 수용 능력이 초과된다는 것이다. 지금 진행 중인 공공주택지구 사업만 해도 지식정보타운, 과천과천지구, 주암지구, 갈현지구 등 4곳이나 된다. 이런 이유로 신계용 과천시장은 공식 반대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과천시의회도 2일 열린 제295회 임시회에서 ‘과천 경마공원·국군방첩사 부지 9800호 주택 공급 계획 철회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시의회는 정부가 발표한 과천 경마공원·국군방첩사 부지 내 주택 9800호 공급 계획이 과천시의 교통·교육·환경 등 도시 수용 여건을 일절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며 즉각적으로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정부 계획을 현실과 괴리된 구호로 시민을 기만하는 고밀도 주거 확대 계획에 지나지 않으며, “과천시를 정책 실험 대상이자 희생양으로 삼는 폭력적인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존 과천시 주택 공급 계획이 이미 시 인구의 1.7배에 달하고, 교통·하수 등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개발은 시민들의 불편만 가중시킬 뿐”이란 내용이 포함된 결의문은 국토교통부 등 관련기관에 발송됐다. 한국마사회노동조합 역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과천 경마공원이 단순한 개발 대상지가 아니라 연간 420만 명의 국민이 찾는 수도권 핵심 레저·문화 자산“이라면서 어떤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자행된 불통 행정의 전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2만4000명의 말 산업 종사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산업 학살”이라면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과천 경마장을 일방적으로 없애는 것은 산업 종사자를 거리로 내몰고, 시민들의 여가권을 침해하는 행정 폭거”라고 반발했다. 주민들도 정부의 발표가 나자마자 ‘과천경마공원이전반대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정보공개청구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지난 7일 오후엔 과천 중앙광장에서 정부 계획안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9일자 6면, ‘경마공원·방첩사 부지 주택 공급 계획에 과천 시민 반발 확산’) 지역과 말 산업계가 모두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과천시 뿐 아니라 의왕 등 인접 도시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포화 상태인 교통체계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도시 기반 시설 수용 능력 초과라는 문제 외에도 반대이유는 또 있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과천시는 500억 원을 마사회 레저세로 받고 있다. 이는 시 연간예산 약 5000억 원 중 10%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만약 경마공원이 타 지역으로 이전할 시 이 지방세 수입은 사라진다. 시 재정 자립도에 악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경마공원에 근무하는 종사자는 약 3000명에 달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과천과 인근도시에 살고 있다. 이들이 직업을 상실하면 지역 상권도 움츠러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과천 경마공원 폐쇄로 인해 한국마사회 재정에 문제가 생기고 말 산업분야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예상도 할 수 있다. 마사회 매출이 줄어들면 농축산 지원에 사용되는 축산발전기금도 감소, 농촌 경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까지도 나온다. 따라서 정부의 도심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지역별 특성을 감안해 좀 더 심사숙고한 뒤 추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