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이미 1천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20퍼센트를 초과하여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함께 노인성 기억 장애와 치매의 발생률은 필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국내 65세 이상의 고령 치매 환자는 약 12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더욱이 85세 이상의 노인 50퍼센트에서 치매가 발생한다는 통계는 치매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각 지방 도시 단체마다 노인 전문 병원과 치매 요양 시설들이 늘어나고, 교회, 성당, 사찰 등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노인 관련 시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수십 년 동안 노인성 치매에 관해 천착해 온 다르마 상 칼샤(Dharma Singh Khalsa)는 치매 유형 가운데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혈관성 치매와는 달리 치료를 늦출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증상의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추면 20년 이상 걸리기에 진행되는 알츠하이머형 치매 후기단계의 고통스러운 증상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반적으로 노인에게서 이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병은 진행을 늦출 수 있음으로써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감당하기 힘든 후기단계에서 최악의 상황을 겪지 않고도 생을 마감할 수 있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10〜20여 년에 걸쳐 마음을 파괴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환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도 함께 고통받는다. 현재로서는 한번 치매에 걸리면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며, 상태가 악화하면 돌봄전담사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고 그 비용 또한 만만찮다. 그래서 치매도 다른 질병처럼 예방이 중요하다. 후레디 마츠가와는 「치매를 물리치는 89가지 비밀」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분명 치매에 걸리기 쉬운 성격이나 성향 그리고 직업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치매에 걸리기 쉬운 직업을 공무원, 교사와 같은 대체로 안정된 직장을 들고 있다. 그리고 치매에 걸리기 쉬운 기질이나 성향으로는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내성적 성격, 말수가 적고 고분고분한 성격 등이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치매에 강한 직업은 정치가, 영업사원, 예술가, 요리사 등을 꼽는다. 또 욕구가 뚜렷하거나 도전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 감성이 풍부하고 창조적인 사람들은 치매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곧 새로운 시도나 낯선 환경보다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것에 안주하면 치매에 잘 걸리고, 뭔가 도전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을 걸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인들이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보다는 가급적 아무것도 안 하고 편안하게 살려고 한다는 데 있다.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100세까지 산다는 전제하에 생존하는 동안에 치매에 걸릴 확률은 당연히 올라간다. 그래서 마츠가와는 중년이 되면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보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나 운동을 권하고 있다. 결국 이 말은 일상 속의 익숙함보다는 어떤 낯선 체험을 정기적으로 하면서 뇌를 여러 각도로 자극하라는 것이다. 초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노인들은 새겨들었으면 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임오경은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이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 임순례 감독, 2008년)의 실제 모델이다. 2020년 21대 국회에 들어와 이번 22대에도 당선됐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만큼 친(親)영화파이다. 그런 그녀가 지난 9월 13일 '영화와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핵심적인 내용은 홀드백의 법제화이다. 임오경은 핸드볼을 하듯, 영화계 내의 계륵(鷄肋, 닭의 갈비, 실속은 별로 없지만 버릴 수는 없는)인 홀드백 문제에 슛을 던졌다. 홀드백(hold back)이란 쉽게 말해 극장에서의 상영을 일정 기간 독점화하는 것을 말한다. 한 편의 영화가 나오고 그것을 비디오로 출시(한다는 것은 구시대의 얘기이며 요즘 같은 때에는 케이블TV나 VOD, OTT 같은 다른 플랫폼에 노출하는 것) 하기까지 일정 기간을 강제로 못하게 한다는 얘기이다.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는 일정 기간이 지나야만 다른 데서도 볼 수 있게 된다. 임오경 의원 법안의 핵심 내용은 이 기간을 6개월로 한다는 것이다. 이건 친 영화 정책이라기보다는 친 극장 정책이다. 비(非) 극장 측, 그러니까 수직 계열 회사의 배급사(CJ나 롯데처럼 배급사와 극장 체인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회사들)를 제외한 독립 배급사들의 반발과 제작자, 감독, 대다수 영화인의 불만이 이어지는 이유이다. 6개월은 너무 길다는 것이며 이렇게 되면 영화의 수익을 최대화하는 데 있어 극장 외의 다른 쪽에서는 큰 장애를 겪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기간이 길게 잡아도 대략 한 달인 현실에서 그것을 6개월간이나 다른 플랫폼으로 넘기지 못하도록 묶어 부가 수익 창출을 어렵게 한다면 영화 비즈니스의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 전에 개봉한 공포영화 ‘홈캠’의 경우, 극장 종영이 길어야 한두 주 더 갈 것으로 보인다. 빨리 부가 수익을 내야 제작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임오경의 법제화는 이걸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박찬욱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나 메이저급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서울의 봄’ ‘야당’ 등)의 신작 ‘보스’의 경우 추석 연휴를 넘어 롱런할 작품들이다. 이런 흥행 영화의 경우 극장 측에서는 6개월까지 손에 쥐고 있고 싶어 할 것이다. 극장은 극장대로 최고 흥행 영화를 기준으로 삼을 것이고 제작자나 감독은 흥행이 안 될 경우를 염두에 둘 것이다. 각자 보수적으로 사안을 바라볼 것이다. 합의점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6개월을 3개월 안쪽으로 줄여 나가는 것이다. 극장 대 비(非) 극장 양측의 주장을 실용적으로 좁혀 나가고 타협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1인 시네마를 표방하며 만든 최극단의 독립영화 ‘더 자연인’을 6개월까지 극장에 묶어 놓는 건 의미가 없다. 최고의 수작 소리를 듣는 ‘3학년 2학기’나 ‘3670’같은 독립영화의 경우 빨리 홀드백을 풀어 줘야 다음 작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홀드백 문제는 지금 ‘영화판’의 문제에 있어 메인 코스 요리가 아니다. 사이드 메뉴 중에서도 사이드 메뉴이다. 불필요한 논쟁으로 시간을 소진하기에는 지금 ‘영화판’의 현안이 쌓이고 쌓여 있다. 홀드백 문제로 영화계가 분열되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임오경이 던진 만큼 임오경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홀드백을 현실화하고 한층 더 큰 영화계 이슈로 나가야 한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야말로 '살신성인'이었다. 캄캄한 밤 사신처럼 다가오는 물살 속에서 일면식도 없는 중국인 노인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줘 살리고 자신은 물살에 휩쓸려 끝내 삶을 마감한 젊은 해경 이재석 경사.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숭고한 희생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물론 중국인들도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15일 영결식이 치러지는 날까지 많은 국민들의 조문을 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해양경찰청은 고인에게 1계급 특진(경사)과 함께 훈장을 추서했다. 11일 오전 3시 30분쯤 인천 옹진군 꽃섬 일대에서 어패류를 잡다 밀물에 고립된 중국 국적 70대 남성을 구조하기 위해 현장으로 출동했다. 발을 다쳐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던 노인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부력조끼를 입혀줬다. 노인은 이날 새벽 4시 20분쯤 해경 헬기에 의해 구조됐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이재석 경사는 오전 9시41분쯤 인천 옹진군 꽃섬에서 약 1.4㎞ 떨어진 해상에서 심장이 멈춘 상태로 발견됐고 끝내 숨졌다. 이 경사는 2021년 7월 임용돼 인천해경서 경비함정을 거쳐 영흥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해양경찰교육원 교육생 시절엔 해양경찰교육원장 표창을 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 우수한 인력이었다. 임용 후에도 “주어진 임무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동료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고 근면 성실했다. 안전 관리 분야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 중부해양경찰청장과 인천해양경찰서장의 표창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한다. 자신을 희생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고인의 희생에 국민들은 안타까워하면서 애도하고 있다. 중국인들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자국 국적노인을 구해준 이 경사를 추모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누리꾼들은 “국경을 넘은 영웅”, “진정한 영웅에게 경례를 보낸다”, “고립된 중국 노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구명조끼를 과감히 포기했다”, “영웅이여, 편히 쉬세요”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 정부도 이재석 경사를 애도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당시 해경 파출소가 ‘2인 출동’이라는 내부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당시 영흥파출소 근무자는 모두 6명이었는데 이 중 4명은 휴게시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으면 파출소 근무자가 현장에 출동할 때는 2명 이상이 함께 나가야 함에도 이 경사는 갯벌에 사람이 앉아 있다는 드론 순찰 업체의 연락을 받고 홀로 현장으로 출동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 윗선의 진실 은폐 기도가 있었다는 해경 동료들의 폭로가 나왔다.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 직원들은 장례식장에서 팀장과 팀원들 간의 불화, 사고 당시 사건의 전말들에 대해 대답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담당 팀장이 신속한 대응을 하지 않아 구조가 지연됐다는 말도 나왔다. 직후 해양경찰청장은 사임했고, 인천해경서장, 영흥파출소장, 팀장은 대기발령 됐다. 유족들은 왜 이 경사만 현장에 출동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혼자 나간 이유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중부지방해양경찰청은 12일 이 경사의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영흥도 경찰관 순진 관련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의 단장은 외부 인사가 맡고, 해경은 조사 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5일자 인천판 1면, “왜 현장에 혼자 나가게 했냐”) 조사단은 이 경사의 영결식이 치러지는 15일 이후 고인과 함께 근무한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 동료 등을 상대로 사고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었으나 중지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유가족과 동료들의 억울함이 없도록 사건 진상을 외부 독립 기관에 맡겨 엄정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내부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나온 이상 진상은 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 그래야 고인도 편안히 영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 두 달이 넘는 연습 기간을 지나 9일간 10회의 공연을 끝냈다. 공연이 끝나면 언제나 시원섭섭한 감정이 몰려온다. 특히 이번 공연은 30명이 넘는 출연진이 함께한 큰 작품이었다. 무대 위에서 서로를 믿고 내 등을 맡긴 사람들과 이제는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막이 내려오는 순간,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공허가 찾아온다. 연습 기간 동안 우리는 매일 무대에서 부딪히며 서로를 알아갔다. 어떤 날은 호흡이 맞아떨어져 희열을 느꼈고, 또 어떤 날은 답답함과 좌절을 맛보았다. 그렇게 웃고 울며 쌓아 올린 장면들이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됐을 때의 감정은 쉽게 말로 옮기기 어렵다. 열 번째 커튼콜을 마친 뒤, 내 안에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야 할까?” 돌아보면 이런 감정은 배우로서 늘 반복돼 왔다. 처음에는 그 공백이 두려웠다. 연습의 분주함과 공연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나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허전함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공백이 단지 공허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아마 누구나 비슷한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시험이나 프로젝트, 큰 행사를 끝냈을 때 찾아오는 묘한 허전함. 준비할 때는 그렇게 바쁘고 치열했는데, 막상 끝나고 나면 하루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그 감정. 우리는 흔히 그런 시간을 ‘휴식’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 안에는 휴식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지난 노력을 정리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다음 도전을 준비하는 시간. 무대 뒤의 고요가 배우에게 필요하듯, 일상의 고요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 요즘 사회는 점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다. 더 빠른 정보, 더 신속한 배달, 더 즉각적인 결과. 하지만 정작 중요한 깨달음은 이런 속도 속에서 쉽게 오지 않는다. 연극의 막이 오르고 내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삶에도 리듬과 호흡이 필요하다. 공연이 끝난 뒤의 고요가 배우를 성장시키듯, 어떤 일의 끝맺음 뒤에 찾아오는 시간도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 역시 이번 공연을 끝내고 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무대를 만들어갈 것인가?” 아직 답은 없다. 하지만 확신하는 건 하나 있다. 연습과 공연에서 배운 것들, 함께한 사람들과의 기억, 무대 위에서 쌓은 호흡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다음 발걸음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공연이 끝난 뒤의 공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것은 비단 배우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의 ‘막’을 내리고 또 다른 ‘막’을 준비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지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간다. 그러니 막이 내린 뒤 찾아오는 시원섭섭한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그 감정 속에는 우리가 걸어온 길의 흔적이 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의 실마리가 숨어 있다. 잠시 멈추어 서서, 그 공백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자.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힘을 얻고,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림과 공백, 그리고 끝맺음의 시간들은 결국 우리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준다. 막이 내린 후에도 연극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삶으로 무대가 옮겨지고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바뀔 뿐이다.
직장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근무하는 직장에서 나름의 전문성으로 최선을 다해 일한다고 했다. 그러나 늘 들려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뒷담화라 심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직장 내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마주치기만 해도 ‘저 사람도 내 뒷담화를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되도록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며, 점심도 혼자 먹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비단 이 여성이 아니더라도 종종 듣게 된다.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소문과 뒷담화가 인류 진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행위에 대한 정보 교환이 필수적이고, 뒷담화는 그 기능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인간의 언어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또한,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규(Laurent Bègue)에 따르면, 성인끼리의 대화 중 약 60%가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대화 중 그 자리에 없는 타인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을 건강하게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이나 사회의 문제개선이나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이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 뒷담화, ‘남을 헐뜯는 행위. 또는 그러한 말(네이버 국어사전)’로 정의되는 뒷담화는 긍정적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생활은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하나의 목적을 향해 일하는 곳이기에 업무상이나 대인 관계에 있어 여러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 이때 발생하는 뒷담화를 개인 차원에서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사회적 행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뒷담화는 화자와 청자 사이에 권력관계와 가치 판단을 포함한다. 따라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 대한 단순한 비난만이 아닌, 집단 내 위치와 관계를 재편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뒷담화가 무성한 조직은 직원 간 신뢰가 무너지고, 심리적 안정감이 저하된다. 더 나아가 조직 내에서 다른 부서와 교류하지 않고, 자기 부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상인 사일로 효과(Silo Effect)까지 발생할 수 있다. 개인 차원에서는 뒷담화의 당사자에게 크나큰 정신적 피해가 생겨, 우울, 불안, 자존감 저하 등으로 이어진다. 잘못된 뒷담화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발전한다. 실제로,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전북노동조합이 최근 발표한 전북지역 직장인 300명 대상의‘전북지역 직장인 근무환경 진단 온라인 설문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3%(219명)가 직장에서 괴롭힘 발생 위험 요소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주변 사람이 당한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요소로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트리는 경우(26.3%),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는 행위(23.2%) 등이 조사됐다. 뒷담화 근절을 위해 우리 모두 스스로 대화법을 성찰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타인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안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게 좋다. 또한, 조직 차원에서는 공식적 토론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식 소통 구조의 강화가 필요하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피드백 채널이 존재할 때, 뒷담화는 자연스레 줄어든다.
고용노동부가 진행한 종합건설업체와 하도급업체에 대한 노동과 산업안전 근로감독 결과 무려 91%에서 불법행위가 적발돼 충격이다. 고용노동부는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강도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지방자체단체에 근로감독권을 위임하고 경기도 등 지자체의 우수 산재예방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관습처럼 굳어버린 종합건설·하도급업체 불법행위를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효율적인 채찍과 당근 모두를 동원하여 길고 야만적 ‘불법’ 문화를 말끔히 청산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7~8월 임금체불과 산업안전에 취약한 종합건설업체 10곳의 현장에 대해 실시한 노동과 산업안전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의 발표 결과는 심각하다. 감독은 대상 기업의 본사와 이들 기업이 시공하는 50억 원 이상 주요 현장 20곳의 하도급 업체 등 총 69개 업체에서 진행됐다. 감독 결과 91%인 63개소에서 임금체불, 임금 직접 지불 위반, 불법하도급, 산업 안전·보건조치 위반 등 297건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도 25곳(중복)에서 위반 사실이 적발돼 2개 사업장은 사법 처리하고, 24개 사업장에는 과태료 1억 1752만 원을 부과했다. 적발된 위반 중 ‘굴착기에 달기구(훅 해지장치) 미부착’, ‘크레인으로 화물 인양 중 근로자의 출입 통제 미실시’, ‘차량계 건설기계에 대한 유도자 미배치 등의 필수적인 안전조치 위반’ 등에 대해서는 사법 처리 절차를 진행 중이다. 또 ‘안전보건관리비 사용 부적정’, ‘관리책임자·안전관리자 미선임 등 안전보건 관리 위반’에는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번 감독에서는 총 34개소에서 1357명의 임금 38억 7000만 원이 체불된 사실도 드러났다. 근로자 3분의 1 이상이 임금체불을 겪었을 정도로 다수·고액 체불이 발생한 업체 1곳은 처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 외 26개소 1004명에 대한 체불액 33억 3000만 원은 감독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지도해 즉시 청산했고, 7개소 3억 2000만원의 체불은 청산 지도 후 시정 중이다. 근로자의 신용불량 등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은 전문건설업체 7곳도 마찬가지로 시정조치 했다. 이 밖에도 무자격자에게 일괄 하도급을 맡긴 불법 하도급 1건도 적발돼 지자체에 통보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임금명세서 미교부,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 등 기초노동질서 위반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발표한 노동안전종합대책에는 지방자치단체에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대상 근로감독 권한 위임과 감독권 인력 확충 방침이 담겼다. 지자체는 사업장을 감독하거나 ‘사법경찰권’으로 지칭되는 사후조치 권한을 수행하게 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구체적인 매뉴얼을 마련하는 등 전국적으로 통일된 집행 기준을 세우겠다는 방침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최근 민선7·8기에 지속적으로 정부에 근로감독권 위임을 요청한 사실을 밝혔다. 경기도는 근로감독권 이양과 관련해 조만간 노동부와 실무적인 협의를 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공공기관이 산업재해 근절에 선도적 역할을 하도록 경영평가에서 안전 배점을 대폭 올리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관장은 해임 조처하기로 하는 등 후진적 산업 안전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현장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임금마저 제대로 못 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미개한 건설산업 현장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권한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에 위임돼 지자체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모쪼록, 중앙-지방정부의 유기적인 역할분담과 혁신으로 수십 년 곪을 대로 곪은 건설산업장의 부조리한 환경이 환골탈태하기를 기대한다.
지난 4일 미국 조지아주에 소재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 건설 현장에서 기막힌 일이 터졌다. 한국 근로자 300여 명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해 체포·구금당했으며 일주일 후에야 풀려나 한국에 귀국할 수 있었다.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지 2주도 안 지났는데, 미 이민 당국이 한국 공장을 급습하였고, 이를 큰 성과로 홍보하였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우리 정부가 한미무역 협상에서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으며, 이재명 대통령이 방미 시에도 우리 기업이 추가로 1500억 달러 투자를 발표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출범 후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동맹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였으며, 관세 협상을 빌미로 미국에 투자를 요구했다. 한국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만큼, 트럼프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불편 없이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국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 이는 미국 국민에 혜택이 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범법자로 취급한 미 정부의 행동은 선뜻 이해할 수 없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연간 불법체류자 100만 명을 추방하겠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무리하게 단속하고 있다. 한국기업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기업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됨에 따라 한국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불법체류자 추방 정책은 다분히 미국 내 트럼프 지지 세력을 의식한 국내 정치용 성격이 강하다. 이 정책은 트럼프 정부의 투자유치 전략과 충돌을 일으킨다. 미 정부는 한국기업들에 대해 비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어야 한다. 미국 내에서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기업이 미국 각지에서 첨단산업 공장을 건설하는데 전문 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근로자들을 훈련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트럼프 정부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선업의 부활을 도와달라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트럼프는 미국 조선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 있는 필리조선소 등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한국 조선업 전문인력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기업의 미국 출장이 더욱 잦아질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미국 비자 제도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거 바이든 정부는 투자유치를 위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분야 한국기업에 보조금까지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는 당근 대신 관세 보복이라는 채찍을 들고 미국에 투자하라고 압박하고 있으며, 비자 문제까지 까다롭게 하여 한국기업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대미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비자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비자 문제 등 한국기업들이 미국에서 겪고 있는 각종 불편한 점을 수렴하여, 트럼프 정부와의 통상협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한국기업들도 글로벌 선두기업으로서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노동법, 이민법 등 현지 법규를 준수하는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역사 속 ‘노동’의 기록은 대체로 남성의 현장에서 쓰였다. 전쟁터, 공장, 광산, 철도 위에서의 노동은 굵은 글씨로 남았지만, 집 안에서 이루어진 여성의 일은 오래도록 노동의 이름을 얻지 못했다. 빨래, 청소, 요리, 육아, 간병처럼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일들이 ‘도움’이나 ‘역할’로 축소되었고, 임금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제의 바깥에 놓였다. 기록되지 않으니 인정도 따라오지 않았다. 여성의 노동은 사랑으로 치환되었고, 헌신이라는 말 아래 가려졌다. 그러나 가사와 돌봄은 개인의 선의를 넘어 사회 전체를 떠받쳐 온 기반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아픈 이를 돌보고, 가족의 일상을 운영하는 일은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였고, 시장의 움직임을 뒷받침하는 숨은 인프라였다. 누군가 출근할 수 있었고, 누군가 가게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돌봄의 그물망 덕분이었다. 페미니즘은 이 ‘보이지 않는 노동’에 이름을 돌려주었다. 특히 제2물결 페미니즘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 선언하며 가정의 일이 곧 공적 노동임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성은 오늘도 일터에서는 직장인, 집에서는 주부로서 ‘이중 노동’을 감당한다. 피로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포장되고, 대가를 요구하는 일은 미뤄진다. 돌봄은 인간 사회의 본질이다. 약한 존재를 보호하고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 생명 공동체를 유지하는 최소 단위의 노동이다. 그러므로 돌봄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한 사회적 기여다. 이 기여는 성별을 초월해 누구나 수행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사실 ‘여성의 노동’처럼 성별로 구획하는 말 자체가 성평등의 관점에서는 한계를 드러낸다. 성평등 사회에서 핵심은 ‘누가 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여했는가?’이며,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측정해 정당하게 보상하는 질서—바로 기여자본주의(contributalism)의 요체가 여기에 있다. 초고령 사회로 향하는 지금, 돌봄의 수요는 커지고 공급은 줄어든다. 최근 대선 보도에서 2030 유권자 규모가 처음으로 6070보다 작아졌다는 사실은, 젊은 세대가 기존의 방식대로 돌봄을 전담하리라는 통념을 흔든다. 더욱이 사람의 노동 일부는 이미 기계로 이동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그럴수록 노동을 ‘기여’로 재정의하는 일은 생명체와 비생명체가 공존·경쟁하는 환경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무엇이 대체 가능하고 무엇이 대체 불가능한지를 가르는 기준이 곧 ‘기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사회는 돌봄 같은 감정 기반의 기여를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 자동화가 진전될수록 감정노동의 가치는 오히려 상승한다. 인간만이 건넬 수 있는 온기, 관계 맺음, 책임의 감각은 어떤 기술로도 대체되지 않는다. 돌봄은 기술의 그림자 바깥에서, 대체 불가능한 핵심 기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노동의 미래는 곧 인간관계의 미래다. 우리는 노동을 생산의 수단에만 묶어두지 않고, 공동체를 유지·확장하는 기여의 언어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기여로 사회적 권리를 획득하고, 돌봄이 사랑의 이름만이 아니라 정당한 보상의 대상으로 인정받는 사회—그 길이 더 인간다운 미래를 여는 첫걸음일 것이다.
정부가 6·27, 9·7 대책 등 잇달아 내놓은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로 급등하던 수도권 집값과 불어난 가계부채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나, 실수요자들에게 닥친 후폭풍은 심각하다. 결혼·교육 등 생활상 이유로 주거이동을 계획한 실수요자들의 망연자실은 깊어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줄고 대부업 대출신청과 불법 사금융피해도 폭증하고 있다. 순수 실수요자들이 당하는 혹독한 고통을 풀어줄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14일 금융권 집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9월 11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63조 702억 원으로, 8월 말(762조 8985억 원) 대비 1717억 원 증가했다. 하루 평균 156억 원 증가한 셈인데, 이는 8월 하루 평균(1266억 원)의 8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 포함) 잔액은 524억 원이 줄었다. 월 단위 감소가 확정되면 작년 3월(-4494억 원) 이후 1년 반 만에 처음이다. 반면 신용대출은 같은 기간 1823억 원 늘어 대조를 보였다. 주담대 감소세에는 이례적 규제가 직격탄이 됐다. 정부는 6·27 대책을 통해 수도권 전역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최대 6억 원으로 일괄 제한했고, 9·7 대책으로 1주택자의 전세대출 한도도 2억 원으로 묶었다. 주택을 구매하려던 실수요자에게 전세자금 대출 길마저 막혀버리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경기신문의 취재 결과 낭패를 보고 있는 실수요자 사례들이 즐비했다. 수원 광교 아파트(시세 13억 5000만 원)를 보유한 연봉 1억 4000만 원의 한 40대 대기업 개발자는 내년 자녀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목동 아파트(20억 원대) 매입을 추진하다가 주담대 한도가 줄면서 소유 아파트를 전세로 돌리고 목동 전세 입주로 전략을 바꿨지만, 9·7 규제로 이마저도 막혔다. 실수요자 타격은 신혼부부·30대 맞벌이 가구 등 젊은이들에게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아파트(시세 14억 원)를 매입하려던 예비부부는 6·27 대책 전까지는 7억 7000만 원(주담대 7억 원+신용대출 7000만 원)까지 가능했지만, 규제 이후 총액은 6억 2000만 원으로 축소됐다. 급전을 못 구한 서민·소상공인들이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현상도 뚜렷하다. 정부의 ‘6·27 대책’ 이후 대부 업체의 신용대출 신청 건수가 불과 2주일 사이에 폭증해 7월 11일까지 2주간 상위 30개 대부 업체의 하루 평균 신용대출 신청 건수가 7201건으로서 무려 85.8%나 늘어났다. 불법 사금융피해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금융 당국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피해 신고·상담은 984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건수(1만 5397건)의 63% 수준으로서 급증세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불법 사금융피해 확산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비용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출 총량 억제에 머무르지 않고, 금융 취약 계층을 위한 실질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낮춰 금융 취약 계층에 맞춘 대출상품을 개발하고,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해법도 내놓는다.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사이의 금융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가 병행돼야 지속 가능한 금융 안정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만인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고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어떤 정책이 선의를 가진 평범한 국민에게 재앙적 요소로 작용한다면 이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꿈을 희생시키는 일은 현대 선진국에서는 결코 미덕이 될 수 없다. 대출규제로 인해 앞길이 막힌, 선의를 지닌 실수요자의 애환을 풀어주는 보완 조치는 더 미뤄서는 안 될 시급한 과제다.
정책은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대한 결정이기에 주민 공감대 형성은 정책 정당성의 핵심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정책을 미리 결정한 뒤 주민 반발이 일어나면 뒤늦게 형식적인 주민 공청회를 열어 마치 참여 절차를 거친 것처럼 포장한다. 이는 사실상 사후약방문식 행정행위이며 1960~70년대 관료주의적 행정모형(관치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퇴행적 모습이다. 행정학적으로 이는 ‘관료적 엘리트주의’와 ‘Top-Down 정책 결정 모형’의 전형적인 한계이다. 위에서 정책을 정하고 아래로 하달하는 방식은 주민을 정책의 주체가 아닌 단순한 객체로 취급한다. 이는 현대 행정이 추구하는 ‘참여적 거버넌스(governance)’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주민이 정책 과정에서 단순히 불려와 설명만 듣는 구조는 토큰 주의(tokenism) 수준에 불과하다. 아른스타인(Arnstein)의 시민참여의 사다리에 따르면 이러한 공청회는 ‘시민 권한 위임’이 아니라 단순한 형식적 장식일 뿐이다. 진정한 참여는 정책 형성 단계에서부터 집행과 평가까지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공유하는 것에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대표적인 사례가 교도소 유치 갈등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교정시설 이전·신설을 결정하면서 지역주민의 의견을 사전에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결과 해당 지역에서는 거센 반발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안전과 집값 하락”을 우려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정책은 장기간 표류하거나 결국 철회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 이는 단순히 ‘주민 반발’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공론 형성을 무시한 결과로서 정책 집행 비용과 사회적 갈등 비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각종 혐오시설(NIMBY 시설) 유치 과정에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난다. 정부는 지역 발전이나 공익성을 앞세우지만 주민들은 사전 논의 과정이 배제된 채 정책이 일방적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우리 지역만 희생양이냐”는 불신과 분노를 표출한다. 행정은 갈등을 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행정학에서는 이를 정책 실패의 대표적 원인으로 분석한다. 사전 주민참여가 부재한 정책은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고 정책의 실효성과 집행 가능성까지 무너진다. 반대로 주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합의적 정책 결정과 ‘참여적 거버넌스’ 체제에서는 갈등 비용을 줄이고 정책에 대한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주민 공청회라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숙의민주주의에 기반한 실질적 참여 제도다. 정책 결정 전에 주민과 충분히 토론하고, 대안적 방안과 보상책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정은 계속해서 정책 불신 → 주민 반발 → 사회적 갈등 비용 증가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이다. 결국 주민 의견 수렴 없는 정책 결정은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반쪽짜리 행정이다. 구시대적 관치행정을 벗어나 주민을 동등한 정책 파트너로 인정하는 참여적 거버넌스 체제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행정은 국민으로부터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낡은 권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