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를 거닐 때 보이는 화려한 외벽, 그리고 매일 드나드는 복도와 계단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모두 ‘도장(페인트) 공사’로 마무리된다는 점입니다. 많은 입주민이 도색을 단순히 색을 입히는 미관 작업으로만 생각하시지만, 사실 도장 공사는 건물의 부식을 막고 수명을 연장하는 핵심적인 방어 공정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공정의 마침표라 불리는 ‘상도(Topcoat) 시공’은 하자가 빈번하지만 일반인이 발견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기도 합니다. 도장 공사는 보통 바탕을 다지는 ‘하도’, 색상을 입히는 ‘중도’, 그리고 보호막을 형성하는 ‘상도’의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상도는 자외선, 빗물, 먼지 등 외부 자극으로부터 중도층을 보호하고 광택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하자 소송 사례들을 보면 외벽뿐만 아니라 복도나 계단실 등 내부 공용 공간에서도 상도 시공이 누락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되고 있습니다. 내부의 경우 주로 ‘무늬코트’라 불리는 다채무늬 도료 위에 투명한 코팅제(상도)를 덧바르게 되어 있는데, 이 과정을 생략하면 내오염성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상도가 없는 복도 벽면은 살짝만 긁혀도 페인트 가루가 묻어나오거나, 작은 얼룩도 쉽게 지워지지 않아 아파트가 금세 노후해 보이는 원인이 됩니다. 상도 미시공 하자가 있는지 여부는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지만, 현장에서 간단히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사인펜 테스트’입니다. 상도는 매끄러운 코팅막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 위에 수성 사인펜으로 글씨를 쓰면 잉크가 흡수되지 않고 맺히거나 쉽게 닦여 나갑니다. 반면, 상도가 누락되어 중도 페인트가 그대로 노출된 곳은 마치 종이에 글씨를 쓰듯 잉크가 벽면 속으로 번지며 스며듭니다. 또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독용 알코올(메탄올 또는 에탄올)을 마른 천에 묻혀 주차장 바닥의 특정 부분을 10~20초간 문질러보는 방법입니다. 이때 보호막이 없는 중도재가 알코올 성분에 의해 녹으면서, 천에 바닥 페인트 색깔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면 상도 시공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법정의 감정절차에서는 감정인이 더욱 정밀한 실험을 하기도 합니다. 도막에 바둑판 모양의 눈금을 내어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는 ‘격자법(Cross-cut test)’을 통해 층간 분리 상태를 확인하거나, 정밀 현미경으로 단면을 관찰하여 상도 층의 존재 여부를 물리적으로 판별합니다. 또한 ‘성분 분석’을 통해 상도제 특유의 수지 성분이 검출되는지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도 미시공 하자는 설계도서에 상도 시공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 법원은 감정을 통해서 상도 미시공이 확인이 되면 하자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편, 시공사가‘상·중도 일체형’ 제품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설계 변경에 대한 적법한 동의 절차를 거쳤다는 점과 해당 제품이 기존 설계와 동등 이상의 성능을 가졌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외벽의 상도가 누락되면 콘크리트 중성화가 빨라져 건물 안전이 위협받고, 내부 복도의 상도가 누락되면 오염에 취약해져 주거 환경의 질과 자산 가치가 떨어집니다. 이는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입주민들이 막대한 재도장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자 소송 과정에서 내·외부의 상도 시공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는 것은, 시공사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넘어 우리 아파트의 내구성을 확보하고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정당한 권리 행사입니다.
지금 국민의힘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선거 구도는 이미 민주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안착돼 가고 있고, 선거에서 야당의 무기인 바람(風)이 일으킬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며, 그렇다고 후보자의 역량에 기대를 걸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천 과정을 보면 국민의힘이 애처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공천 과정에서는 항상 잡음이 있어 왔지만, 이번 컷오프를 둘러싼 잡음은 잡음이 아니라 굉음 수준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컷오프의 기준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여론이 납득할 만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채 컷오프를 단행하니 당사자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법부로 문제를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치의 사법화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지금 국민의힘은 사법부의 결정에 의하지 않고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치의 본연의 목적은 갈등을 조정하는 데 있다. 사회적 갈등은 무한 투쟁으로 번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규칙이 존재하는 정치라는 이름의 ‘링’ 위에 사회적 갈등을 올려놓고 정당이 대신 싸워 줌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무한 투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당내 갈등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한숨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법부는 공천이나 징계와 같은 정당 내부 사안에 개입하기를 꺼린다. 이를 정치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본안 소송을 제기할지언정, 가처분 신청까지 하지는 않는다. 자칫 가처분을 신청했다가 사법부가 이를 기각하면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사법부는 국민의힘 관련 사안에 대해 대부분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있다. 지난번 당 윤리위의 징계에 대해 배현진 의원과 김종혁 전 최고위원이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고, 이번에는 김영환 충북지사가 컷오프에 항의하며 낸 가처분 신청도 인용했다. 주호영 의원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지만, 그럼에도 가처분이 적지 않게 인용된 것은 사실이다. 이 정도가 되면 국민의힘이 당 차원에서 내린 결정 혹은 조치에는 상당한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즉, 결정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 윤리위의 징계 절차만 문제였다고 해도 심각한데, 이제는 공천 역시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까지 나오니, 국민의힘 내부 기구 전반이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가 없다. 선거 운동을 할 때 빨간색 점퍼 대신 하얀색 점퍼를 입고 뛰어야 한다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장처럼, 후보들 각자가 당에서 독립된 선거대책위를 꾸려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현 국민의힘 지도부는 사법부의 결정을 탓하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보수 유권자가 결단해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을 고쳐 쓸 수 있는지, 고쳐 쓸 수 없다면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 이제 결심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지방자치는 풀뿌리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세계화·지방화 시대에 지방자치는 점점 확대될 게 분명하다. 지방자치 중요성이 커질수록 평범한 일상도 정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지방정부 선출직의 역할 또한 갈수록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있으랴마는 6월 3일로 예정된 민선 9기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더욱 중요하다. 지난 60여 년 우리는 중앙정부가 주도해 닦아놓은 탄탄한 길 위를 부지런히 달리기만 했다. 그러나 이젠 성장 정체라는 위기가 우리 앞에 버티고 서 있다. 미래 100년을 대비하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직접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아졌다. 과제는 지방정치를 제대로 보살필 수 있는 인물 선택이다. 지역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식견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내세워야 하고, 유권자는 올바로 골라야 하는 것이다. 한데 공천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전북지사와 서울시장 예비후보를 둘러싼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제1야당 국민의힘은 대구시장과 충북지사 후보를 놓고 ‘컷오프’ 내홍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1일 심야에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김관영 전북도지사를 제명했다. 식사 자리에서 돈봉투를 돌리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언론에 공개된 데 따른 것이다. 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성동구청장 시절인 2023년 멕시코·미국 출장 도중 멕시코 유명 휴양지 칸쿤에서 2박3일 머문 사실이 알려지며 ‘출장을 빙자한 관광’ 의혹이 불거졌다. 김 지사 사례의 경우 의문점이 없지 않다. 금품 제공에 대한 공분과는 별개로 왜 4개월이 지난 후에 고발이 됐는지, 다른 정치적 의도는 없는지 등이 그러하다. 선거법 위반 혐의가 불거진 김 지사 사건은 경찰의 신속한 수사와 처분이 필요하다. 정 예비후보는 야당이 요구하는 칸쿤 2박3일의 구체적 활동 내역 등을 유권자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길 바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월 3일부터 선거 관련 제한 및 금지 사항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도처에서 크고 작은 선거법 위반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기부행위 제한 위반이다. 기초의원 A씨가 선거구민 5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현수막을 들고 사전 선거운동을 하거나, 단체 정기총회 등에서 기부행위를 해 고발된 사례가 있다. 선거대책위원회 명단 무단 도용도 있다. 지사 예비후보 측이 당사자 동의 없이 현직 군 의장 등 지방의원들의 이름을 선대위 명단에 포함해 논란이 발생했다. 그동안 지방선거는 대체로 다른 전국 단위 선거보다 투표율이 낮았다. 국민의 절반이 투표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투표율이 50% 안팎에 머물렀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처음 사전투표제를 도입한 끝에 56.8%까지 끌어올렸을 뿐이다. 설상가상 이번엔 상당수 예비후보의 들이 전과자여서 유권자들은 ‘이토록 지역일꾼이 없느냐’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 한 기초의원 후보는 뇌물 공여와 사문서 위조, 근로기준법 위반, 음주운전 등 전과가 무려 8개일 정도다. 여하튼 지방자치는 지방분권이 확대되는 추세여서 주민 삶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리가 이러하기에 지방정치를 제대로 보살필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유권자는 앞으로 후보들의 면면을 꼼꼼히 살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내 손에 우리 지역은 물론 대한민국 국익이 달려 있다는 자세로 옥석을 가려야 한다. 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냉정한 판단과 참여가 요청된다. 후보들 역시 깨끗한 정책대결로 선거운동에 임하길 당부한다.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흑색선전으로 지방자치를 진흙탕으로 빠뜨려선 안 된다. 이제 특정 중앙정치 권력에 기대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생활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들을 개혁함으로써 국민에게 다가서는 능력 있는 지역 일꾼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 곧 진정한 선진국 실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경기도는 지난 3월 30일 ‘평화경제특구’ 후보지로 연천·파주·포천을 선정하였다. 정부의 ‘2026~2027년 평화경제특구 지정계획’(2월 20일)에 따르면, 접경지역에 약 4개의 특구를 지정할 예정이므로 강원도와 인천광역시도 곧 공모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1차 접수는 9월까지, 2차 접수는 2027년 8월까지 진행되는 만큼 현재 사업은 진행 중이다. 이 공고사업은 기존 경제특구와 달리 지향점이 분명히 다르다. 가장 큰 특징은 특구 내에 남북 교류·협력 및 평화 기능을 수행하는 ‘평화용지’를 5% 이상 확보하도록 한 점이다. 또한 남북 교류 확대를 통한 경제공동체 형성과 북한의 경제·관광특구와의 연계 가능성을 평가 기준에 포함하고 있다. 평화용지는 평화경제특구의 핵심 요소로, 기존 신도시 개발과의 중요한 차별성이다. 접경지역은 오랫동안 개발에서 소외되어 왔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군사적 규제로 다양한 제약이 뒤따랐다. 2006년부터 주한 미군의 평택 이전이 진행되면서 반환된 공여지가 상당하지만, 매각과 정화, 인허가 지연으로 여전히 많은 지역이 방치되어 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남아 있다. 따라서 평화경제특구의 조성은 경기북부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접경지역 주민들의 애로와 고통을 해소하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경제특구는 종전의 신도시 개발이나 경제특구의 조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특히 토지 확보 방식에서 기존 택지개발 방식이 아닌 환지방식(토지구획정리)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80년 군사정부에서 부터 택지개발은 국가 주도로 토지를 수용해 공급하는 방식으로, 주민과 지역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환지방식은 토지 소유자의 참여를 바탕으로 개발 이익을 공유할 수 있어 공동체에 기여 한다. 헌법 제23조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면서도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제3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공공 필요란 도로, 학교, 공원처럼 모두가 이용하는 공적 시설을 말한다. 하지만 택지개발제도는 공적인 필요에서가 아니라 택지를 국가가 수용하여 사업자에게 되파는 것이었으므로 헌법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국가가 토지를 ‘사행성 자산’으로 만들어 이익을 취하였다. 그 결과 토지를 판 주민은 흩어지고 학생들과 청년들은 새로운 곳으로 가서 지역공동체는 무너지게 되었다. 평화경제특구의 개발이 마을을 복원하고 주민을 정착하게 하여 공동체를 보존하고 남북교류의 중심지가 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인구 유입과 정착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갖추어 청년들이 모여 가정을 이루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형성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또한 주거, 농업, 산업이 결합된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마련해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가 구축되어야 한다. 단순한 정착을 넘어 ‘정착하는’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평화경제특구가 성공하려면 개발 중심이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주민이 머물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남북 교류 협력의 거점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발을 넘어 공동체를 형성하는 평화경제특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난 3월 25일부터 공공기관 승용차 5부제가 시행됐다.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라는 취지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그 실행 방식이다. 정책이 학교로 내려오자, 몇몇 학교에서 차량 번호판 확인, 요일별 운행 점검, 출입 차량 통제 업무가 교사에게 배정됐다. 수업 준비로 가장 바쁜 아침 시간, 교사들이 주차장에서 번호판을 확인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수업에 전념하라는 말은 여전히 강조되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정책의 목표와 현장의 역할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비슷한 시기 시행된 ‘학생맞춤통합지원(학맞통)’ 제도 역시 현장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취지는 옳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지원하자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연수에서 소개된 우수 사례는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학부모에게 대출을 안내하고, 학생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가정을 방문해 식사를 함께한 사례가 모범으로 제시됐다. 한 교사의 말처럼 이런 일까지 교사가 맡는다면 수업 준비는 언제 하라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다. 선의로 시작된 정책이 현장에서는 부담으로 체감되는 이유다. 교사는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물론 아이의 삶을 돌보는 일까지 외면하자는 뜻은 아니다. 현장의 교사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많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자발적 돌봄과 제도화된 의무는 전혀 다른 문제다. 열정과 헌신은 강요되는 순간 왜곡된다. 더구나 복지사의 영역, 지자체의 역할, 지역사회가 담당해야 할 책임이 따로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문성과 책임의 경계를 무너뜨릴수록 결과는 더 비효율적이 된다. 결국 누구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다. 문제는 반복되는 구조다. 새로운 정책이 생길 때마다 실행의 마지막 단계가 교사에게로 향한다. 별도의 인력이나 체계 없이 현장에 맡긴다는 말은 결국 교사에게 떠넘긴다는 의미가 되기 쉽다. 정책은 늘 추가되지만, 교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무엇을 더할 것인지만 논의되는 구조에서는 현장의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언제부터 행정요원이고, 복지 상담사이며, 시설 관리자가 되었는가. 그 사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이다. 교사가 주차장에서 번호판을 확인하고, 전화로 복지 정보를 안내하느라 지쳐 있다면 교실에서 아이들과 마주하는 시간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의 본질은 수업과 관계 속에 있다. 그 시간을 잠식하는 정책은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교사의 역할이 흐려질수록 교육의 중심도 함께 흔들린다. 좋은 정책은 목표만큼이나 실행 구조가 중요하다. 정책의 성공은 누가 무엇을 맡는가에 달려 있다. 교사가 교사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교육 정책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교사를 만능 인력처럼 활용하는 한, 어떤 정책도 온전히 성공하기 어렵다. 무작정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시키는 것보다는, 적합한 전문 인력과 기관에 책임을 배분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질적 지원 체계가 뒤따를 때, 비로소 정책은 살아 움직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 이란 전 종전 의지를 밝히면서도 ‘유사 시 정밀 타격’ 등을 언급하면서 우리 경제의 그늘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에 경고음이 크다. 원유, 나프타,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공급 부족으로 산업현장이 서서히 멈춰 서고 있는 것이다. 포장재·합성고무·플라스틱 부품 등의 부족으로 식품·약품 등 생필품은 물론 건설 등 내수산업, 자동차·반도체 등 수출산업까지 전방위적인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이어 홍해 위기가 겹치면서 산업계에선 당장 공급 비상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원자재 위기는 일차적으로 포장 용기 등 플라스틱 제품 재고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자, 음료, 간편식 등 식품부터 화장품까지 짧게는 1개월 정도의 재고밖에 남지 않았다. 식품업계는 인체에 닿거나 맛과 상품의 변질 우려 등을 고려한 특수 포장이어서 당장 대체 용기를 마련하기 어렵다고 답답해하고 있다. 건설 현장도 비상이다. 골재 작업을 위한 레미콘(시멘트 배합물)을 비롯해 마무리 공정에 쓰이는 창호(새시), 외벽 도장 등이 나프타 수급 차질로 지연이 예상된다. 누구보다 인프라와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크다. 작금 원·달러 환율이 1500 원을 돌파하는 등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3고(高) 복합 위기로 존폐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이 해소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국내 중소기업의 피해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동전쟁 관련 중소기업 피해·애로(우려 포함)가 모두 500여 건에 이른다. 피해·애로의 유형(중복 응답)을 보면 운송 차질이 64%로 가장 많았고 계약 취소·보류(35%), 물류비 상승(34%), 대금 미지급(27%) 등이다. 국가별로는 이란이 19.6%, 이스라엘이 15.0%로 각각 집계됐으며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중동 국가가 71.8%로 나타났다. 정부는 정책 금융기관을 통한 24조 2000억 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 지원을 신속히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무역보험(무보)을 통한 중동 수출기업 대상 제작 자금 보증 한도 2배 우대 등 자금 지원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무역보험은 수출자가 대금을 받지 못하거나(수출보험), 은행이 수출금융을 제공할 때 발생하는 위험을 보장하는 제도다. 수입자의 지급불능과 정치적 위험 등을 담보해 대금을 회수하게 하거나 대출을 보증해, 수출 중소·중견기업의 안전한 해외 진출과 대외 거래를 돕는 필수적인 수출 지원 안전망이다. 석유화학 등 원자재 수급이 시급한 업종을 위한 수입 보험 지원 규모를 작년보다 6000억 원 증액하는 등 공급망 안정성을 뒷받침한다. 금융위원회는 중동전쟁 피해 기업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약 20조 3000억 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동 수출기업 애로에 신속 대응하기 위한 '원스톱 대응' 지원도 강화한다. 중동 고(高) 의존 품목과 연쇄 영향이 우려되는 전방산업 관련 품목의 해결에 총력체제로 힘쓰길 바란다. 관건은 신속한 대책 마련 못지않게 현장의 원활한 집행이 중요하다. 범정부 지원책이 수출기업에 실질적 혜택으로 이어지도록 집행 전 과정을 재점검하고 보완해 나가길 바란다. 중소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을 꼼꼼히 수립하길 당부한다. 경제의 실핏줄 같은 중소기업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 글로벌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강한 중소기업 육성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활로를 여는 길이다. 차제에 각종 규제와 노동 리스크를 줄이고, 중소기업이 신산업 분야의 중추 기능을 담당케 하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요청되고 있다. 정책 당국은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중소기업 인력 양성, 시장 친화적 기술이전·사업화 활성화 등에 힘쓰길 바란다. 국난의 시기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과 소비자 등이 한뜻으로 이 어려움을 이겨낼 때다.
최근 가까운 후배(공연제작사 '스튜디오 반' 대표:이강선)의 '민중의 적:거짓의 시대'가'입센 스코프 그랜트 2026'에 선정되었다. 노르웨이 출신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정신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창작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를 '공연예술의 노벨상'으로 높이 평가하고, 세계 공연예술의 담론을 주도하는 플랫폼으로 인정한다. 금년에는 65개국의 작가들이 총 207편의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최종적으로 5편이 선정되었다. 경쟁률이 41:1이었다. 헨리크 입센! 우리는 그를 '인형의 집'으로 기억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버나드 쇼(1856~1950)는 1925년, 입센을 '인류역사상 최고의 극작가'라고 평가했다. 심리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도 입센을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BC 497~ BC 406)와 셰익스피어(1564~1616)와 더불어 3대 극작가로 꼽은 적이 있다. '입센 스코프 그랜트'는 2007년에 출범, 입센의 업적과 명성에 걸맞은 위상을 달성했다. 노르웨이 정부의 사업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입센을 국보1호로 친다는 뜻이다. 이 사업의 대표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노르웨이 정부가 직접 지원하고, 수백 건의 지원작들 가운데 극소수의 작품만 뽑기 때문에 권위가 아주 높다. 2) 예술적 완성도를 넘어, 사회·정치적 담론의 확장성에 중점을 둔다. 3) 입센의 예술가적 문제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준을 본다. 4) 선정작은 제작비를 지원하며, 노르웨이의 시엔(Skien. 입센의 고향)에서 열리는 세계 연극제에 작품을 올리며, 국제 무대에서 장기간 주목을 받게 된다. 입센은 금수저 물고 태어났으나, 여덟 살에 집안이 파산했다. 모진 가난 속에서도 열다섯살까지는 정규교육을 받았다. 마침내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약방의 점원으로 취업한 것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철학과 문학을 독학했다. 대학입시에 응했으나 떨어졌다. 스물둘에 정치극 '카틸리나'로 데뷔했으나 호평을 받지 못했다. 스물세살에 전업 작가가 되었다. 그때부터 승승장구의 삶을 살았다. 제도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글이 깊었을 것이다. 입센은 연극을 인간정신의 실험실로 바꾸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위선의 충돌을 통해 근대문명이 직면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낸 극작가였다. 그는 문학 뿐만 아니라, 철학, 심리학, 정치담론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들은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많이 공연되었다. 죽기 몇 해 전부터 3년 연속(1902~1904)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수상자가 되지 못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였다. "국가는 개인에 대한 저주다. 국가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가 아나키스트로서 남긴 어록이다. '입센 스코프 그랜트 2026'에 '민중의 적: 거짓의 시대'를 출품, 한국 감독으로서 유일하게 선정된 이강선은 육군 중사 출신으로 나이 들어 한예종에 입학한 연극인이다. 일본 유학 시절 경험한 재일교포 공동체의 특별한 아픔과 슬픔, 분노와 연민을 담아 이 작품을 썼다. 압도적 기세의 K-Culture에 그가 긴 시간 품고 있던 문제의식이 또 하나의 분야로 추가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X에 올리면 좋겠다. 참으로 근사한 쾌거다. 이 감독! 축하한다.
김구 선생은 회고록 '백범일지'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렇게 그렸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이 짧은 문장은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국가 비전의 핵심을 담고 있다. 국가의 힘은 흔히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한 나라의 품격과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경제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군사력은 외부의 위협을 막아준다. 하지만 문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계와 공감하며,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빛나게 한다. 김구 선생이 말한 ‘아름다운 나라’란 바로 이 문화적 힘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최근 BTS(방탄소년단)의 공연이 광화문광장에서 펼쳐졌으며, 우리는 문화의 힘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공연은 전 세계 수많은 국가(190개 나라)로 실시간 중계되었고, 직접 현장을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단순한 음악 공연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자 세계적 교감의 장이 열린 것이다. 광화문광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조선 왕조의 정문이었던 경복궁의 앞마당이자, 해방과 민주화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장소이다. 이 역사적 공간에서 울려 퍼진 음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세계를 잇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문화는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이른바 ‘떼창’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한국어 가사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단순한 팬덤 현상을 넘어선다. 이는 한글이라는 문자, 그리고 한국어라는 언어가 세계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아리랑과 한복 등 전통문화까지 자연스럽게 주목받으며, 한국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이 함께 전달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은 한국의 일상과 정서를 체험하며 또 다른 문화 전달자가 되어 돌아간다. 문화는 이처럼 사람을 통해 확산되며, 국가의 이미지를 가장 부드럽고도 강력하게 확장시킨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되었다. 경제적 성장과 군사적 안정 위에, 어떤 가치를 더할 것인가. 김구 선생의 말처럼 ‘높은 문화의 힘’을 지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 속에서 존중받는 나라가 될 수 있다. 문화는 경쟁이 아니라 공감의 언어이며, 지배가 아니라 나눔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BTS와 같은 문화적 성취는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성공 사례가 아니라, 그러한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다. 창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사람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나라’의 조건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는 김구 선생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의 이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실현해야 할 현재의 과제이다. 문화가 살아 숨 쉬고, 그 문화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나라. 바로 그곳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일 것이다.
범국가 차원으로 추진되고 있는 ‘독서국가’ 캠페인에 경기도 기초자치단체의 참여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독서교육을 확대하여 ‘책 읽는 국민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이 같은 노력에 풀뿌리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기초단체가 동참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독서 운동은 나라와 국민의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과업이다. 경기도 기초단체들의 전폭적인 호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 1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독서국가 선포식 및 독서국가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이재준 시장이 참석해 모두 발언과 선언문을 낭독하는 등 주도적으로 참여해 온 수원시가 지난달 30일 ‘독서도시 수원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지방정부 최초로 ‘독서국가’ 선언에 동참하고 ‘독서도시 수원 비전’을 선포해 모름지기 전 국민 독서 운동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이날 선포식에서 이 시장은 기념사를 통해 “인공지능에 날카롭게 질문을 던지고,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려면 사유하는 힘이 필요하다”며 “사고력과 질문하는 힘을 빠르게 길러내는 길은 결국 독서”라고 강조했다. 수원시는 앞으로 ‘인공지능(AI)과 함께하는 스마트 독서’, ‘수원시가 책임지는 평생 독서’, ‘어디서나 즐기는 일상 독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파주시는 지난달 11일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에서 시민과 도서관·교육·출판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파주시 독서 국가 선포식’을 가졌다. 지난 1월 출범한 ‘독서국가추진위원회’에는 김영호 위원장(국회 교육위원장), 박준 시인, 유시춘 EBS 이사장,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등이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독서국가추진위원회’는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범국민 독서 캠페인’, ‘입법 및 예산 정책화’, ‘독서생태계 기반 구축 사업’ 등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6일 발표한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20대 청년층 종합독서율이 증가하고, 전자책·소리책(오디오북) 독서가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격년 단위 정기조사인 이 조사는 2025년 9월 1일부터 2025년 11월 5일까지 만 19세 이상 성인 5,000명(가구 방문 면접 조사)과 초등학생(4학년 이상) 및 중·고등학생 2400명(학교 방문 설문 조사)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20대(만 19~29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75.3%로, 2023년보다 0.8%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성인 전반의 경우,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 종합독서량은 2.4권으로, 2023년 조사와 비교하면 종합독서율은 4.5%포인트, 독서량은 1.5권 감소했다. 월평균 소득 2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의 독서율은 13.4%로 월평균 소득 5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의 독서율인 56.1%와 큰 차이를 보인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 등이 전한 NOP월드의 ‘문화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책과 신문, 잡지를 포함하는 주당 독서 시간이 3.1시간으로 조사 대상 30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평균인 6.5시간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세계 최고의 책벌레 국가는 인도로서 주당 10.7시간, 매일 1시간 30분가량을 독서에 할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통계 결과는 앞으로 ‘독서국가추진위원회’가 해야 할 일들이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책은 오늘날 인류 문명과 역사를 이룩해온 가장 강력한 매개체다. ‘책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어떤 번영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애주기별 독서 프로그램 개발과 다양한 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 전자책·소리책 열람에 대한 정부 당국의 지원이 절실하다. 특히 저소득층의 독서를 지원하는 정밀한 정책이 시급해 보인다. ‘독서국가추진위원회’ 출범과 기초자치단체들의 전폭적인 호응이 나라의 미래를 바꿔낼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지금 세계는 도처에서 전쟁이 일어나 진행 중이다. 당사국들은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겪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자국에 언제 어떤 전쟁의 불똥이 튈지를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전 세계는 이미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킨 측은 전쟁의 사유로 이런저런 명분과 구실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는 그들의 일그러진 정복욕에서 비롯되었다 하겠다. 정복자란 일반적으로 무력이나 전략을 통해 다른 민족과 영토를 지배하에 두는 인물을 뜻한다.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알렉산더, 칭기즈 칸, 나폴레옹 등이 있다. 이 고전적 정복자의 개념이 현대에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칼을 든 군인이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즉 기존 한계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사람들이다. 바로 고질적 질병을 고치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의료인,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심해와 우주를 탐사하는 탐험가와 우주인,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기업가와 과학자,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증명하는 혁신가 등이다. 나는 이처럼 외부 세계의 지배보다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며 평안히 사는 삶이 더 위대하게 생각된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라 하겠다. 즉 오늘날의 진정한 정복자란 타인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타인에게 긍정적인 변화와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지금의 중장년 이상 계층은 대다수가 청소년 시절에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작품을 감명 깊게 읽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짧은 내용이지만 사람들에게 긴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위대한 인물이란 부나 명예를 지닌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성실하고 진실한 삶을 살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상의 욕심을 비우고 살아가는 사람도 진정한 정복자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지고 싶은 것이 적거나 아무것도 잃어버릴 것이 없는 인생은 마음이 가뿐하다. 갖고 싶은 것이 없으니 안달복달하면서 욕심스럽게 살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평생을 자유와 해방을 외치며 살았는데, 이러한 뜻은 그의 묘비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대제국을 정복한 알렉산더와 세상을 미천하게 살아가던 철학자 디오게네스 간의 일화는 귀감이 된다. 한날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를 만나러 갔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오두막에서 햇볕을 쬐며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디오게네스여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하라, 들어 줄 테니!” 디오게네스가 답했다. “아! 대왕이시여 저 햇빛을 방해하지 않도록 비켜서 주십시오.” 알렉산더는 그의 당당함에 감명받아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중얼거렸다. 이후 각색된 두 사람 대화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둘은 같은 날 죽었다. 그리고 저승으로 가던 중 강가에서 마주쳤다. 알렉산더가 먼저 인사했다. “아 당신, 다시 만났군! 정복자인 나와 노예인 당신 말이야!”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다시 만났군요! 정복자 디오게네스와 노예 알렉산더가 말입니다. 당신은 정복을 향한 욕망의 노예 알렉산더고, 난 속세의 모든 열정과 욕망을 정복한 정복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