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월드컵 조 추첨이 진행되면서 벌써부터 월드컵 열기로 후끈하다. 축구에 대한 인기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월 북한 17세 이하 여자 축구대표팀이 2025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하였다. 녹화 중계된 경기에도 거리응원으로 평양이 들썩였고 귀국 후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북한 U-17 여자 대표팀은 결승에서 네덜란드에 3-0 대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는데, 조별리그를 비롯해 16강 전부터 결승까지 7연승하며 ‘전승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2008년 U-17 여자 월드컵 초대 대회 우승팀으로 2016년과 2024년 대회에서도 우승했던 북한은 대회 2연패를 달성하며 여자축구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후 북한은 FIFA 랭킹 28위로 북한보다 한 수 아래인 러시아 여자 축구 대표팀을 초청하여 평양에서 공동훈련을 진행하며 친선경기를 가졌다. 축구 외에도 조선중앙통신은 체육성 초청으로 러시아 연해주 17세 이하 남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북한 대성산체육단 U-17 남자 아이스하키팀과 공동훈련과 친선경기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2024년 6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이후 러시아와 밀착해 온 북한이 작년 11월 러시아와 ‘체육교류의정서’를 조인하고 스포츠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의정서 조인 당시 러시아 체육부 장관은 “2025년부터 격년으로 러시아와 북한이 번갈아 가며 하계 체육대회를 열자”고 제안하였고, 북한도 찬성했다고 밝혔었다. 이재명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의 반응은 아직 싸늘하다. 지난 몇 년간 전쟁까지 불사했던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는 차갑게 외면하면서 러시아, 중국과 협력하며 국제사회 정상국가의 길로 걸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남한이 끼어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무관심은 물론 남북교류도 필요없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북한도 싫다는데 굳이 왜 우리가 남북관계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하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 갈등과 단절은 미국 단일패권이 무너지고 다극화 되어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남북한 모두를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희생양으로 만든다. 이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남한에게 더 불리한 여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는 북한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그러나 불신의 벽이 높은 ‘적대적 두 국가’ 상황은 그동안 남북을 이어주며 관계 개선에 물꼬가 되었던 스포츠 교류마저도 쉽지 않은 지경이 되었다. 신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남북의 직접적인 스포츠 교류도 어려울 전망이다. 한때 유소년 축구로 평양을 직접 방문도 했었던 필자로서는 북한과 공동훈련과 친선경기 자리에 우리가 아닌 러시아가 있는 기사를 보게 돼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다. 북한은 2026년에 아시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해 놓고 있다. 어렵게 유치한 이 국제대회를 남북이 현명하게 이용한다면 관계 개선에 중요한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여 교류 재개와 한반도 평화에 물꼬가 트이길 희망한다.
경기도의회가 40조 577억 원 규모의 2026년도 경기도 본예산을 확정 의결했다. 이는 올해 대비 1조 3356억 원(3.4%)이 늘어난 금액이다. 경기도는 이에 즈음하여 교통·복지·첨단산업 등 새로워진 도의 분야별 정책사업을 힘차게 시행할 예정임을 밝혔다. 갖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시중 경기가 악화일로에 있는 등 민생에 먹구름이 끼는 시기이다. 경기도가 적시 적소에 적극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게 예산을 잘 집행하여 도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끌어올리는 기관차 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바란다. 경기도는 ‘사람 중심 기술혁신’을 기조로 내년도 본예산안을 편성, 도민 체감도가 높은 정책사업에 재정 투입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도는 교통권 보장을 위해 관련 정책사업에 8730억 원을 투입한다. 내년도 핵심 교통사업으로는 일산대교 무료화 사업(200억 원)이 있다. 내년부터 해당 사업을 통해 기존 1200원(승용차 기준)에서 600원으로 인하된 통행료를 지불하고 일산대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도민들의 대중교통 이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버스 공공관리제, 수도권 환승할인, THE 경기패스, 수요응답형 버스 똑버스 운영 등에 총 7470억 원을 투입한다. 이번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주요 복지사업 예산 삭감 편성으로 인해 불거진 도의회,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갈등도 해소됐다. 도의회 여야 교섭단체는 협의를 거쳐 앞서 삭감 편성된 복지예산 500억 원을 복원했다. 복원된 복지사업으로는 어르신 맞춤형 케어 사업(노인복지관 40억 원·노인상담센터 12억 원·노인장기요양 시설급여 57억 원)과 장애인 지역사회 재활시설 지원사업(68억 원), 장애인 복지관 지원사업(27억 원) 등이 있다. 도는 나머지 복지사업에도 1조 3787억 원을 투입한다. 또 출산·육아·돌봄 부담을 덜기 위한 생애 맞춤형 전방위 돌봄(9862억 원), 누리과정 지원(4978억 원),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497억 원), 누구나 돌봄(50억 원), 간병 SOS 프로젝트(21억 원) 등이 시행된다. 첨단기술 산업 지원, 기후위기 산업 등 미래를 위한 사업예산에는 1229억 원이 투입된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분야 지원사업에 457억 원 규모의 재정이 집행될 예정이다. 바이오 스타트업 육성과 의료기기 실증 지원, 바이오 전문 인력 양성 등에 70억 원을 투자하고 기후행동 기회소득(350억 원), 기후보험(34억 원) 등 RE100 사업도 이어간다. 내년 지역개발과 균형 발전 비용으로 투입되는 6471억 원도 눈에 띈다. 도로·철도 등 핵심 기반 시설 확충에는 1476억 원을, 도민 생활과 밀접한 인프라 시설 확충에는 357억 원을 각각 투입한다. 경기북부 발전을 위해 투자되는 예산도 관심거리다. 도는 주한미군 반환공여구역 개발기금(200억 원)을 조성하고 북부 도로 확·포장 사업, 제3차 지역균형발전사업 등에 4638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예산집행은 적절성과 효율성을 끝까지 검토하고 추적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투입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문성을 끝까지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경기도의 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확장 편성됐다고 하지만, 적절성과 효율성에 대한 끈질긴 검토와 연구가 집행단계에서까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를 잃게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낙관하기 어려운 경기 전망과 이에 따른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들의 민생 악화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적어도 경기도에서만큼은 빈곤층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고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빠지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스템의 효율성 확보와 함께 예산의 적기(適期) 집행이 중요하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속담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새해 예산 확정에 즈음해 밝힌 김동연 지사의 “민생 현장에서 실질적 성과로 나타나도록 집행의 속도와 완결성을 높이겠다”는 다짐에 기대를 건다.
크리스마스 이브 하루 전 통과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EU의 DSA(Digital Services Act)처럼 거대 플랫폼 사업자가 불법정보와 허위정보에 신속히 대응하도록 하는 법체계가 목표라고 제안 이유에서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개념을 도입하고, 허위정보와 조작정보의 개념을 도입하며,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허위조작정보에 관해 신고를 받고 각종 조치(삭제, 접근차단, 노출제한, 계정 정지, 수익화 제한 등)를 할 의무, 자율적인 운영정책을 수립할 의무, 투명성 보고서를 반기마다 공표할 의무, 불법촬영물 등의 유통방지에 관한 보고서를 매년 방미통위에 제출할 의무, 방미통위의 조사에 응할 의무, 사실확인단체와 협약을 체결하여 사실확인활동에 관한 보고서를 공표할 의무, 방미통위의 투명성센터의 감독을 받을 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다. 이는 EU의 DSA에서 아주 큰 온라인 플랫폼(Very Large Online Platform) 또는 아주 큰 검색 엔진(Very Large Search Engine) 개념을 도입하고, 이들에게만 위험성평가(Risk Assessment)를 실시하고 위험성을 완화할 의무(Mitigation of Risks), 독립 감사를 수인할 의무, 연구자들의 데이터 접근을 보장할 의무, 투명성 보고서 발간 의무 등을 정하고 있는 것과 일견 유사하다. 그런데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EU의 DSA를 도입하였다면서도 위험성평가 실시 의무와 위험성 완화 의무까지는 수입하지 않았다. 어쩌면 위험성평가 제도야말로 표현의 자유의 억압이라는 논란은 피하면서 ‘규제된 자율규제’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규제기관(방미통위)은 피규제자(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자율규제를 하도록 하면서 바로 그 자율규제를 각종 행정작용을 통해 다시 규제할 수 있다. 잘 운용되기만 한다면 (타율)규제와 자율규제를 절충하면서 장점만 살린 제도가 될 수도 있다. 콘텐츠 규제라는 분야에서 타율규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입틀막으로 규탄받기 쉽고, 자율규제는 규제공백의 무주공산을 은폐하는 알리바이로 의심받기 쉬우니 이 분야야말로 규제된 자율규제가 필요하다. 산업안전 분야에서 위험성평가 제도가 운용되는 실태를 보면 -여기도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현장을 가장 잘 알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주가 주도하고 근로자가 참여해 구체성 있는 유해위험요인 도출과 개선대책 수립을 하게 하고, 현장에서 떨어진 규제기관은 위험성평가가 잘 되었는지를 사후 판단할 뿐, 무엇이 위험 요소이고 무엇이 개선대책인지까지 전부 일일이 직접 정하지는 않도록 하는 구조 자체는 타당하다. 콘텐츠 규제 분야도 이와 비슷하게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주도하고 이용자가 참여하여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면서 위험요인과 위험성 완화 조치인지를 정하고 규제기관은 위험성 평가와 완화가 잘 되어 가는지 감독만 하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국가안보를 위해 미군과 한국군이 조화롭게 대처하고 있다. 미군에게는 국가안보를 위해 군용지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에게 제공된 군부대 주변지역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에서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규제를 하고 있다. 반면에 미군 공여지 주변지역에는 규제도 있지만,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이하 ‘미군공여구역법’)과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군과 미군 주둔 지역에 대한 법적 규율의 차이는 공평한가? 라는 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으로 주한미군 공여지는 일부 반환되고 있다. 반환되는 주한미군 공여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보존이든 개발을 해야 한다. 근거법령이 필요하다. 기존 ‘미군공여구역법’은 그동안 주한미군 주둔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피해에 대한 지원정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환공여지 개발 지원을 위한 법률이 아니다. 새로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은 어떨까? 주일미군이 주둔하는 일본 오키나와현 사례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키나와현 반환지의 유효 및 적절 이용 촉진 특별조치법’의 입법목적은 오키나와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특별조치를 강구함으로써 오키나와현의 자립적인 발전 및 풍요로운 생활환경의 창조를 도모하기 위해 법률이 제정됐다. 반환공여지는 오키나와현의 귀중한 토지자원인 점을 고려해, 국가의 책임하에 관계 지방정부와 협력하면서 주체적으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의 책무(동법 제4조)를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새로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가칭) ‘주한미군 반환공여구역 개발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다. 이 법에는 반환공여지 개발을 입법목적과 기본이념을 생존배려 차원에서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 법리도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의 책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 반환 및 개발계획의 수립, 반환공여지 지자체의 종합정비계획의 수립, 반환공여지 개발추진협의회 등의 여러 규정이 필요하다.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반환공여지개발청․반환공여지개발공사 설립이 필요하다. 법률 제정 또는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동일한 사안은 아니지만,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새만금개발청·새만금개발공사)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국회 입법과정에서 반환공여지 개발 문제가 자칫 반환공여지 소재 지자체의 특혜시비 내지 국비 예산의 중복지원 문제로 와전될 수 있다. 그동안 국가안보로 인한 혜택을 받은 다른 지역은 “역지사지”(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 봄)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가칭) ‘주한미군 반환공여구역 개발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함께 안보세(부담금) 내지 평화유지세(부담금) 도입, “경기북부지역특별법” 제정을 검토해야 달라는 미군 공여지 소재 지자체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광주·하남 지역의 인구 증가와 빠른 고령화로 종합장사시설(綜合葬事施設 화장장) 건립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장사시설은 국민의 일생에서 누구나 반드시 이용해야 할 시설임에도 날로 팽배해온 님비(NIMBY), 핌비(PIMFY) 현상에 몰려 막다른 상황에 몰리고 있다. 장례를 흉한 일로만 여기고 무작정 기피하는 구시대적 인식의 혁신이 절박하다.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일임을 깨닫지 못하는 민심이 참으로 딱하다. 국내 장례문화는 올해 기준 화장률 95.1%를 기록해 장사시설은 필수 공공 인프라로서 지역 내 안정적인 공급이 시급하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하남 지역은 자체 종합장사시설이 태부족해 사망 발생 시 현재까지도 타 지역 시설에 의존해야 하는 낭패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유가족들은 장거리 이동과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며, 특히 고령층과 취약계층일수록 그 불편은 더욱 심각하다. 광주·하남 지역의 종합장사시설 건립은 입지 선정과 주민 동의 문제로 오랫동안 난항을 겪어왔다. 광주시는 2029년 개원을 목표로 5만~10만m2 규모의 시설을 추진 중이지만, 적격 후보지가 없어 2030년으로 개원 시점이 연기된 상태다. 지난 연초 1월 2일까지 4차례나 공개모집을 진행했으나, 주민 동의율 60% 미달 등으로 적격 신청지가 없었다. 광주시는 지난해 5월 첫 공고를 시작으로 8~11월 또다시 공개모집을 진행해 3개 마을이 신청했으나 주민 동의율 60% 미달, 관련 서류 미비 등으로 적격 신청지가 없었다. 3차(2024년 11월~2025년 1월)에도 2개 마을이 신청했지만 조건 ‘미충족’으로 무산됐다. 지난 3월 4차부터는 수시 모집으로 전환했으나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주민동의율이 50%에 달하는 지역까지는 있으나 60% 벽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재 추진 중인 시설 규모 및 구성은 화장로 5기 이상, 봉안시설, 자연장지, 장례식장 등 복합 장사시설로 계획되어 있다. 유치지역에는 최대 150억 원의 주민지원기금, 30억 원 이내 기금지원, 수익시설 운영권, 근로자 우선 고용, 사용료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된다. 종합장사시설 건립이 지연되는 동안 두 지역의 장례 환경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하남시의 경우 마루공원에서 4,620㎡ 규모의 장례식장과 봉안당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관내 화장장이 없는 데다 미사·위례·감일 등 신도시 인구 유입에 따른 인구 증가로 화장 수요가 대폭 늘면서 광주시 화장시설 건립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사강변도시를 비롯한 신도심에 유입 인구가 증가하면서 관내 사망자 수가 급증해 화장장 적체로 장례가 4~5일장으로 늘어나는 형편이다. 결국 유가족들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하면서 지역에 주소를 둔 고인들이 황천길까지도 차별받는다는 불만마저 팽배하고 있다. 장사시설을 놓고 난관이 악화하는 경향은 전국 각 지역이 다르지 않다. 이렇게 된 데는 장례를 흉사(凶事)로만 여기고 무조건 기피하고 보는 그릇된 인식이 깊게 자리 잡은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면, 좋은 시설은 무조건 자기 지역으로 끌어오려는 핌비(PIMFY) 심리를 무한 증폭시키면서, 동시에 혐오시설을 끝까지 반대하는 님비(NIMBY) 여론에 편승해온 정치꾼들의 선동정치가 미친 악영향이 지대하다. 아무리 민심을 업어야만 성공하는 게 정치라고 하더라도, 목민관(牧民官)의 도리를 팽개치고 그릇된 민심을 확대 재생산하는 미개한 정치만큼은 절제돼야 한다. 장사시설은 곧 나의 일이며, 장례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닌 자연스러운 인생의 일부분임을 깨우치는 모범이 그리운 시절이다. 생로병사 모두가 곧 고귀한 인생일진대, 죽음마저 힘겹게 만드는 이 어리석은 민심은 어떻게든 개선돼야 하지 않겠나.
어느새 다시 세모다. 연초 의미심장하게 계획한 것 중에 실천한 것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올 한 해도 여느 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자책에 잠시 돌아본다. 계획을 세우는 나는 훌륭하다. 그는 부지런하고, 합리적이며, 미래를 믿는다. 그에게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이다. 일찍 일어나고, 커피를 줄이며, 미루지 않고, 삶을 정돈한다. 계획하는 나는 절제와 균형, 자기 통제를 신봉하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다. 문제는 실천하는 나다. 그는 계획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알람은 울렸으나 그건 사회의 강요일 뿐이고, 운동을 가야 하지만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 가기 싫다고 한다. 계획하는 나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줄 알지만, 실천하는 나는 현재의 나를 위해 미래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다. “내일부터 진짜 하면 되잖아” 이 말은 실천하는 나의 핑계이자 좌우명이다. 두 사람은 모두 내 안에 존재하지만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 계획하는 나는 칸트처럼 의무와 원칙, 보편적 도덕을 말한다. 반면 실천하는 나는 에피쿠로스적이다. 쾌락을 선호하고, 고통을 피하며, 당장의 만족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둘은 늘 싸운다. 계획은 명령하고, 실천은 변명한다. 계획은 말한다. “이건 너 자신과의 약속이야.” 실천은 대답한다. “약속도 상황 봐가면서 지켜야지.” 우리는 이 싸움에서 실천하지 못한 자신을 의지가 약하고 게으르며 자존감이 낮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왜 우리는 계획하는 나를 ‘진짜 나’로 여기고, ‘실천하는 나’를 자책할까? 실천하는 나도 분명 나다. 오히려 하루 스물네 시간을 함께 버티는 쪽은 후자다. 피곤을 느끼는 쪽도, 귀찮음을 견디는 쪽도, 불확실한 오늘을 살아내는 쪽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흄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보다 습관에 의해 움직인다. 그렇다면 계획하는 나는 이성의 목소리이고, 실천하는 나는 습관의 총합이다. 이성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걷는 건 다리다. 다리가 아프면 아무리 멋진 목적지도 소용이 없다. 문제는 우리가 목적지를 너무 자주 바꾸고, 다리는 쉬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계획은 종종 자기기만이 된다. 오늘의 나를 과대평가한 채 내일의 나에게 부채를 넘기는 행위. ‘내일부터’라는 말은 사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사과문이다. 하지만 그 사과는 늘 같은 주소로 배달된다. 그리고 미래의 나는 또다시 현재의 내가 된다. 이렇게 우리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연체 이자를 물린다. 이 둘을 화해시키는 것은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데서 시작된다. 계획은 조금 덜 거창하고, 실천은 조금 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하루 한 페이지, 10분, 딱 하나. 실천하는 나에게는 위대한 비전보다 구체적 타협이 더 설득력 있다. 어쩌면 성숙이란 계획을 완벽히 실천하는 실행력이 아니라, 이를 수정해도 자책하지 않는 너그러움일 것이다. 우리는 둘 이상의 나로 이루어진 존재다. 계획하는 나와 실천하는 나, 이상을 바라보는 나와 현실을 사는 나. 이들이 완전히 일치하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가끔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는 있다. 오늘도 나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내일도 다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괜찮다. 둘이 타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니까. 그 자리에서 비로소 삶은 계획이 아니라 조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길을 가는 나그네가 있다. 목이 타고 외롭고 두려운 가운데 더듬더듬 발걸음을 옮기지만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길 역시 알 수 없는 운명을 향해 암흑 속을 더듬어 걸어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면서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번민하기도 한다. 또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그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의 앞길을 환하게 비추어 주는 등불을 가지고 걸어가는 것이 현명하다. 아마도 그 등불의 존재가 다름 아닌 종교일 것이다. 그러면 종교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종교(宗敎)의 한자 의미는 ‘으뜸 되는 가르침’, ‘근본적인 교훈’이라고 풀이된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근본적인 문제, 즉 현실 이상의 영원한 문제를 가르쳐 주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한편, 종교(Religion)의 영어 어원은 ‘다시 묶는다’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엇을 다시 묶느냐면 하나님과 사람을 다시 묶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래 묶여 있다가 끊어진 것,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묶어주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종교가 있었다. 프랑스의 한 심리학자는 “사람은 종교적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사람은 식욕과 번식욕 등 자연적· 생리적인 욕구와 함께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교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깊은 유대감을 가지게 되는 한편, 사회생활을 올바르게 영위해 나가는 데 필요한 윤리의식도 형성하고 키워 나올 수 있었다. 아울러 종교는 우리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삶의 역경과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제공하는 역할도 해오고 있다.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게 되는 계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모태신앙인 경우도 있을 것이고 혹은 어떤 특별한 계기로 인해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일반적으로 가족의 종교를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은퇴한 남자들이 종교를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이처럼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층 더 종교에 대한 목마름을 지니고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현실적인 사유는 죽음의 시간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사후세계가 존재할까, 있다면 어떤 것일까?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나이가 들어가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층 더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된다. 인간이 사후세계를 인정하게 되면, 삶이 변화된다. 보다 진지하게 내 삶을 들여다보고 신의 가르침을 따르려 노력하게 될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이 거창한 질문에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상당히 낭만적인 답변이다. 인간사가 시작된 이후 줄곧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고 노력해 왔으나 아직껏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영생을 위해 미이라를 만들기도 했고,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발명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죽음의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것은 가능해졌을지언정 영생을 얻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답 찾기를 단념한 인간은 이제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 제아무리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이라도 죽음이 가까워지면 자연히 절대자의 도움을 구하게 된다. 이는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은 죽은 뒤 천국으로 가는 희망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천국이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미래세상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어떤 사유를 가지고 종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든 그들은 신앙을 통해 세상에 대한 분노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을 삭이는 평정심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종교가 가진 그 어떤 힘이 아닐까? 이처럼 종교는 죽음의 공포, 번민과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도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선하게 살아가도록 이끈다. 나 역시 이런저런 계기와 사유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신자로서의 본분을 될 수 있는 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평군, 광주시, 구리시, 남양주시, 양평군, 하남시(가나다 순) 등 경기 동북부 6개 시·군의 수변 구역 주민들과 지방정부들은 수십 년간 각종 규제 속에 어려움을 겪어 오고 있다. 북한강 팔당호는 수도권에 생활·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부분 구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수도권 식수원 보호를 이유로 겪어온 개발 제한과 규제는 지역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재산권 행사와 생업에 제약을 받는 등 지역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에 지방정부와 주민들은 지금까지 관계기관에 건의하는 등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처럼 북한강 팔당호 수변의 경기 동북부 권역은 중첩규제가 적용, 주민들의 심각한 피해가 반복되고 지역발전이 저해돼 민원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들의 기본권 행사를 제한하면서 규제와 희생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현실적 해결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당 지방정부와 주민들은 새로운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남양주시가 먼저 나서 구상을 밝혔다. “더 이상 중앙정부의 변화에만 기대할 수 없다”면서 인접 시군이 힘을 합쳐 문제해결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남양주시를 비롯, 가평군, 광주시, 구리시, 양평군, 하남시 등 6개 시·군이 협력해 가칭 ‘경기 동북부 친환경 수변관광벨트 조성’(이하 수변관광벨트 조성)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 구상은 북한강과 팔당호를 중심으로 지역 관광자원과 정책을 연계하자는 것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언제까지 규제와 희생만으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기에 중앙정부의 Top-down 방식 정책 추진과 환경 보전을 위한 규제 및 희생 중심의 제도에 대응하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협력방안에 대한 공동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남양주시의 설명이다. 남양주시가 관련 시·군에 이 사업의 추진 필요성을 설명하자 즉각 공감대가 형성됐다. 각 지방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인문·사회·자연 등 풍부한 지역적 자원과 다양한 정책사업을 연계해 새로운 성장동력 사업을 발굴·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 간의 효율적이고 강력한 협력체계를 구축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국가·지역의 상생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취지에도 적극 공감했다. 그리고 지난 5월 12일 경기 동북부 6개 시·군이 참여한 ‘경기 동북부 친환경 수변 관광 상생 협의체’가 출범했다. 협의체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주민의 자주권 회복과 자립적 성장 지원 ▲균형 있는 환경 보전과 지역 발전 추진 ▲특화된 수변 관광인프라 구축을 통한 글로벌 관광거점 조성 ▲중첩규제의 합리적 개선을 통한 자족도시 기반 마련 ▲경계를 초월한 협력적 거버넌스 확대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모델 구축 등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50여 년간 수도권 인구의 식수원 보호를 위해 희생한 만큼, 중앙정부는 주민 삶의 질 향상과 지역 발전을 위해 합리적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체는 최근 경기도에 친환경 수변 관광거점 위한 정책 협력과 제도적 지원을 요청하는 공동건의문을 전달하고 도지사와의 공식 면담도 요청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4일자 7면, ‘경기 동북부 6개 시·군, 친환경 수변 관광거점 도에 요청’) 건의문에는 ▲관광권역 형성을 위한 제도적 지원 ▲규제개선 공동 대응 등 친환경 수변 관광거점 조성을 위한 경기도 차원의 다각적 협력과 지원 요청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앞으로 공동 연구와 국가사업 반영을 위한 정부·국회 대상 공동 건의, 공공·민간 협력 거버넌스를 단계적 연대할 계획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도 경기 북부의 ‘특별한 희생’과 ‘특별한 배제’ 문제를 언급한 바 있으므로 ‘합리적 수준의 규제와 개발로 수변의 대전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주 뉴욕 방문길에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보게 되었다. 이 공연은 우리나라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아시아인 최초로 뮤지컬 본고장인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리드 프로듀서를 맡아 기획부터 제작까지 주도한 작품이다. 2024년 3월에 브로드웨이를 시작으로, 올해 4월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그리고 지난 8월엔 서울에서도 공연하였다. 겨울밤 찬 공기에 비도 내렸는데, 공연을 보러 온 인파로 극장 안은 오히려 훈훈할 정도였다. 나처럼 여행 중에 극장을 찾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근무를 마친 직장인들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벼르고 뮤지컬을 보러 온 현지인들이 대부분인 듯했다. 멋지게 차려입고 칵테일 한 잔씩 들고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상기된 표정들이 그렇게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주인공 제이 개츠비 역을 맡은 국민 배우 제레미 조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낌없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민들에게 주는 감흥은 남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출간된 건 1925년이다. 당시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산업 생산국이 되어 호황을 누렸지만, 과소비와 부채, 금융 거품 등으로 1930년대의 대공항의 전조가 보이기도 한 때였다. 그때 유행했던 재즈, 스윙 음악은 아메리칸드림의 빛과 그림자를 대비해 주는 듯하다. 내용은 이렇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를 떠나야 했던 개츠비는 오직 그녀를 다시 만나겠다는 신념으로 엄청난 부를 일구고, 웅장한 저택을 마련하고,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다시 만나게 된 데이지는 개츠비와 다시 사랑을 이루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불륜과 계급 갈등, 거짓과 위선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남편을 따라 떠나고 만다. 결국 개츠비는 오해와 사고로 총을 맞고 죽음에 이른다. 이런 주인공 개츠비를 미국인들은 위대하다고 부른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무대 색상은 초록이다. 그 빛은 강 건너 데이지의 집 선착장 불빛으로, 그 빛이 초록이다. 초록빛은 시간 너머의 꿈, 손에 닿지 않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러나 개츠비에게는 사랑의 꿈을 지키는 순수함과 결코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희망 능력’이 있었다. 물질 만연주의의 피폐함과 출신 배경으로 인한 차별이 현실이었던 그 시대에 이런 개츠비의 모습은 빛났으리라. 외로움과 절망 중에도 희망을 찾고 지키고자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관객이 그때의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부르는 이유이리라.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고등학교 교과 커리큘럼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지도하고 있다. 이 소설이 타임 선정 20세기 영문학 100선에 들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세대도 희망의 미국을 위해 무엇을 알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어느덧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세밑 온정과 같은 따뜻한 소식을 듣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엉켜 있는 실타래처럼 어둡고 무거운 소식들만 들려온다. 내년 지방선거도 소급하여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이런 현실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게 하는 그런 정치인들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당장 ‘위대한 정치인 누구’라고 불러줄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뉴스나 신문에는 단골처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거리의 시민들에게 “새해에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모습이다. 저마다 건강, 취업, 주거 안정 같은 소망을 말한다. 소중한 질문이지만, 한편으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노력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이 아무리 애를 써도 구조적 장벽에 그 소원이 가로막혀 있다면, 우리는 개인의 다짐 이전에 공동체가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마침 올해 연말,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다시 확인되었다.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보면 건강, 고용, 주거 등 62개 지표가 보내는 신호가 엄중하다. 지난해 청년 자살률은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열 명 중 세 명은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된 ‘번아웃’ 상태다. 학업이나 취업으로부터 멈춰 선 ‘쉬었음’ 청년도 72만 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특히 내년을 준비하며 눈여겨볼 대목은 바라는 미래에 대해 ‘전혀 실현할 수 없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7.6%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는 2022년보다 2.4%p 증가한 수치다.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청년이 늘어난 현실은 단편적인 이유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산 격차가 삶의 질 불평등으로 고착화되고, 저성장과 기술 변천 속에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하며, 실패 시 회복을 돕는 안전망마저 부족한 현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개인이 스스로 통제하거나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 요인들이 청년들의 삶을 제약하고 있다. 그래서 기대되는 내년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 변화가 절실하다. 단순히 경제 성장을 통해 기회의 총량을 늘리는 것만으론 부족하며,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의 전환이 요구된다. 아프면 쉴 권리가 보장되는 노동 환경, 인간다운 주거권 확립, 고립된 개인을 연결하는 관계망, 위기로부터 회복을 돕는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 이러한 토대가 전제될 때 비로소 개인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 이번 보고서 말미에 실린 이슈보고서 ‘청년의 주관적 웰빙과 사회통합 : 시민참여와 포용성을 중심으로’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청년이 미래를 긍정적으로 인식할 때 시민 참여의 가능성이 커지고, 삶의 만족도와 기대 수준이 높을수록 타인을 포용할 확률도 높았다. 이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말하면, 공동체가 개인의 내일을 기대되게 만들어줄 수 있어야 그 개인 역시 사회의 내일을 위해 힘을 보탤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기대되는 내년을 위해 바뀌어야 할 것은 ‘개인의 다짐’이 아닌 ‘사회의 토대’다. 청년들이 마주한 위기를 개인의 분투로만 치부하는 구조 속에서는 그 어떤 희망적인 전망을 하기 어렵다. 공동체가 구성원들의 삶의 만족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그 기대감을 동력 삼아 개인들이 공동체의 내일을 함께 일궈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2026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변화다. 이제 우리는 “개인이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가”를 묻기 전에, “공동체가 개인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