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反轉, Turning Over)이 돋보이는 영화를 검색해 보면 어김없이 선두를 점하는 작품으로 1996년 제작된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라는 영화가 있다.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이 연출하고 에드워드 노튼(Edward Harrison Norton)과 리처드 기어(Richard Tiffany Gere)가 주연한 미국영화다. 스릴러 영화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법정 영화(courtroom drama)에 가깝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한 주교가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현장에서 잡힌 소년 애런은 순박해 보이는 인물로, 변호사 마틴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 사건을 맡는다. 그러나 검찰은 애런이 주교에게서 성적인 학대를 받은 증거를 찾아내고, 애린의 범죄를 확신한다. 재판 과정에서 애런은 극심한 불안증으로 다중 인격자의 모습을 보인다. 법정에서 애런은 무의식에 지배되는 광기로 무언가를 떠들어댄다. 이 과정에서 범인은 애런이 아니고, ‘로이’라는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정은 혼란에 빠지고, 마틴은 애런이 심신상실 상태임을 호소하여 무죄를 받게 한다. 다음 날 마틴은 애런이 무심코 흘린 말에서 그가 건강한 정상인이었음을 눈치챈다. 마틴이 다그치자 애런은 자신의 그간 행동은 모두 연기였고, 자신이 주교를 죽였다며, 연기에 속은 마틴을 조롱한다. 내 선의를 사악하게 이용했구나! 마틴은 개탄하지만, 이미 판결은 끝난 뒤다. 이 영화는 반전의 스토리를 구축해 간 내적 과정이 정교하고 단단하다. 그 결과로 주제의 정합성에 반전이 딱 들어맞게 작용한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의 반전은 작위적이지 않고, 서사적 합리를 지닌다. 그래서 반전을 통하여 보여주는 인간 욕망의 내면이 오래 뇌리에 남는다. 동시에 법이나 제도의 숨은 모순들도 조용히 들추어 준다. 그러나, 반전이 인생론적 주제를 심어주는 명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반전을 통해서 임팩트 있는 재미를 구사하고 싶지만, 그런 영화일수록 불후의 명작이 되기는 어렵다. 이유는, 바로 그 ‘반전(反轉)’ 때문이다. 반전이란 흔하지 않다. 반전이 흔하면 그것은 반전이 아니다. 인생을 통틀어서 기막힌 운명적 우연과 맞닥뜨려 일어날까 말까 한 것이 반전이다. 그러므로 반전이란 보편적일 수 없다. 영화나 문학의 가치는 어떤 기발함을 구하는 데 있지 않고, 삶의 보편성 위에 서 있을 때 살아난다. 바로 그 보편성 때문에 작품은 깊은 공감의 울림을 주는 것이다. 보편성을 확보한 반전을 그려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이 꿈꾸는 반전이란 세속적이다. 평범한 삶의 반전을 꿈꾸며 복권을 사고, 위험한 투자도 한다. 인생 반전을 기대하며 이름을 바꾸고, 성형을 하기도 한다. 사표를 내고, 이민을 가고, 이혼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서도 반전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는 지천으로 많다. 인생을 ‘반전의 공식’으로만 풀어가려는 것은 인생에 대한 외경을 버리는 일 아닌지 모르겠다. 러시아 작가 푸시킨이 친숙한 어조로 일깨워, 이제는 진부해진 구절이 새삼 참신하게 다가온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반드시 오리니/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곧 그리워지리라.”
이른바 ‘소버린 AI’의 시대다. 인공지능이 경제·안보의 핵심 자원으로 간주되면서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 인프라, 모델 개발, 인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역시 대규모 GPU 확보, 한국형 인공지능 모델 개발을 위한 5개 컨소시엄 선정 및 지원, ‘국가과학자’ 제도 신설 등 다양한 정책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세계시장의 확장 그리고 디지털 기술의 등장은 전통적 의미의 주권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데이터는 국경 앞에서 멈추지 않았고, 글로벌 플랫폼은 영토를 초월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클라우드, 통신망, 플랫폼 등의 서비스가 외국 기업에 의해 제공될 경우, 국가 주권은 제한된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문제로 텔레그램을 수사하는 데 한국 정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허비했는지를 떠올려보라. 반면 자국 기업이 핵심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주권적 영향력은 커진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네이버, 카카오 등 자국 기업을 통해 백신 관련 정보를 제공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전 세계 국가들은 디지털 기술 전반에 대한 통제력, 즉 디지털 주권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기술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 인프라 운영, 서비스 개발, 인재 고용 모두 기업이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이자 실천자이다. 즉, ‘소버린 AI’ 시대에 인공지능 기술이 중요하게 여겨질수록 인공지능 기업은 유력한 주권적 행위자가 된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실질적 주권자, 특히 인공지능과 같이 자원 집약적인 기술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소수의 대규모 기업과의 관계를 재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버린 AI’의 시대, 국가는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기업은 국가의 필요를 부풀리며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공생한다. 문제는 정당성이다. 기업은 선출되지 않았고, 민주적 통제에도 취약하다. 결과적으로 ‘소버린 AI’ 시대는 국가 주권의 일부를 인공지능 기업에 이양한 것에 대한 항시적인 정당성 문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두 측면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첫째로, 소버린 AI와 관련된 의사결정에 누가 참여하는가? 현재 인공지능과 관련된 정책 의사결정은 대기업 중심으로 좁혀져 있으며, 인공지능의 부정적 영향을 직접 겪는 사회 집단은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투입 정당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로, 소버린 AI가 자원 집중을 정당화할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가? 인공지능이 감시, 사생활 침해, 차별, 불평등, 기후 위기와 같은 기존 사회 문제를 한층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뼈아프다. 교육, 돌봄, 기후 같은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뒤로하고 인공지능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산출 정당성 역시 갖추었다 보기 어렵다. ‘소버린 AI’ 시대의 주도권은 결국 인공지능 거버넌스에 있다. 기술 경쟁력에만 매달리면 정당성 결핍은 더 커질 뿐이다. 인공지능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면, 민주적 감시와 사회적 책임 강화는 이 시대의 첫 과제다.
지난 13일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소재 제일시장에서 67세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시장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60대와 70대 여성 2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당했다. 경찰은 사고 트럭 내 페달과 브레이크를 촬영하는 ‘페달 블랙박스’를 확보했다. 영상 분석 결과 사고 당시 운전자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에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서도 70대 여성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행인을 치었다. 고령자 운전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 오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해 7월 1일 시청역 참사 이후로 논란은 더욱 커졌다. 69세 남성이 운전하던 차량이 역주행을 하다가 인도와 횡단보도로 돌진했다. 9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참사였다. 운전자는 자동차의 문제로 인한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조사 결과는 ‘운전자 과실’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70대 운전자가 골목길로 돌진해 1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올해 5월 서울 강동구 길동 복조리시장에서도 60대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인도로 돌진, 11명이 부상당했다. 해당 사고 운전자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었지만 경찰은 ‘페달 오조작’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국과수가 밝힌 급발진 의심 사고의 88%는 페달 오조작이었고 급발진 인정은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와 사망자 수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에 3만 4652건(735명)이었으나 2023년 3만 9614건(745명)으로, 2024년엔 4만 2369건(761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에 고령층 운전면허 반납 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고령층 운전면허 반납 제도는 지난 2019년 부산시에서 첫 시행, 지금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실제 고령층이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확인됐다. 고령층 운전면허 소지자는 2022년 439만 명에서 지난해 517만 명으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반납률은 2.6%에서 2.2%로 오히려 감소했다. 제도가 시행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실제 반납률은 2%대에 그쳐 실효성 논란마저 일고 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7일자 7면, ‘부천 참사로 드러난 고령 운전 문제, 면허 반납 제도 실효성 논란’) 그렇다면 어째서 반납율이 저조할까? 한마디로 운전면허를 반납한 뒤의 생활불편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각 지방정부들은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10~20만 원 상당의 교통카드 등 혜택을 제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낙후 지역에서 교통카드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이 자주 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혜택보다 생활불편이 더 크다고 한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의 말처럼 “경기도에서 수원시나 용인시 등 대도시는 대중교통 이용이 용이하지만 고령층이 밀집된 지역은 1시간에 버스 1대가 오는 등 교통편에 불편함이 많다. 고령층이 운전면허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고령층은 시력 저하 및 반사신경 둔화로 운전 중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사고들도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헷갈려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고령층이 면허를 반납할 수 있도록 혜택을 강화하고 대중교통을 증설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뿐 만 아니라 운전을 하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는 생계형 고령 운전자도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증가하는 고령자 운전 사고로 인해 “나이 들면 운전을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노인들의 절박한 사정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공감을 얻고 있는 만큼 다방면의 배려가 필요하다.
냉혹한 국제 현실과 과제 오늘날 지구상에는 200여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하며,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등 G7은 물론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같은 인구 대국까지 국제 질서 재편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 선도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게 이는 동시에 중대한 기회이자 위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으로 재출발한 대한민국은 반세기 만에 산업화·민주화·정보화·세계화를 압축적으로 달성하며 ‘한강의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2009년에는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OECD DAC 가입)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고, 2021년에는 UNCTAD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K-음악·영화·드라마·음식·미용·IT·한국어 등으로 대표되는 K-컬처는 ‘15세기 세종, 18세기 영조·정조 시대 이후 최대의 문예부흥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세계적 영향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21세기 국제정세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자국 우선주의의 확대로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하다. 이는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가 강력한 국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도, 단기 처방도 아닌 국가 역량을 구조적으로 강화하는 중장기 전략이다. 국력의 새 기준, 이산성(Diaspora)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우리는 국민·동포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산성(離散性)’을 국력 측정의 새로운 척도로 삼아야 한다. 첫째, 글로벌 인재 네트워크의 전략적 활용: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전 세계 2억8천만 명이 출생국 밖에서 살며, 이들의 송금액은 2022년 기준 8,31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이스라엘은 물론 인도·아일랜드·멕시코·튀르키예·베트남 등도 해외 네트워크를 전략 자산으로 활용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한국 역시 글로벌 이산 네트워크를 ‘부수적 자산’이 아닌 ‘핵심 국가 역량’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둘째, 국력의 총체적 역량 확장: 국력은 인구·영토·경제력·군사력·외교력 같은 하드파워뿐 아니라 가치·국민 사기·국정 목표의 정당성과 같은 소프트파워를 포괄한다. AI·빅데이터·글로벌 초연결성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시대일수록 국민·동포의 이산성은 국가 외연을 확장하고 영향력을 투사하는 결정적 자산이다. 셋째, ‘섬 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국가 공동체: 초저출산·고령화·인구절벽의 경고등이 켜진 대한민국은 더 이상 영토·국적·혈연·이념의 울타리에 갇힌 ‘섬 국가’일 수 없다. 남과 북, 700만 재외동포, 국내 300만 외국인을 포괄하는 ‘열린 국가 공동체’ 구축이 필요하다. 이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할 때 대한민국은 글로벌 혁신·통합국가로 도약할 수 있으며, 국력의 확장 가능성 역시 G3 수준까지 열려 있다. 넷째, 질적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지향적 정책 설계: 708만 재외동포 중 외국국적동포가 65%이며, 이 중 다수는 1.5세·2세 이하 세대다. 이들에게는 상징적 지원이나 수사적 응원으로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다. 이들을 미래 국가 인재자산으로 확보할 체계적·현실적 정책이 시급하다. 다섯째, ‘뿌리의식과 세계시민성’의 동시 강화: 재외동포는 한국적 정서를 지닌 ‘글로벌 코리안’이자 현지에서 살아가야 하는 ‘세계시민’이다. 국익과 실용을 중시하는 정부라면 이민·다문화 정책과 재외동포 정책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들의 경제력·정치력·정보력과 현지 전문성·신뢰도를 국력 증진의 전략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섬세하고 정교한 정책 개발이 요구된다. 여섯째, 재외동포 데이터의 고도화: 조만간 발표될 '2025 재외동포 현황'은 국력 재평가의 핵심 자료가 되어야 한다. 단순 인구 집계를 넘어 국가별·세대별·체류 자격별 역량과 현안을 계량화하고, 이를 재외국민 보호와 재외동포 지원 제도 개선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빅 데이터 기반 정책체계가 강화될 때 비로소 국력의 실질적 확장이 가능하다. 일곱째, 이산 네트워크를 이끄는 리더십: 경쟁국들은 해외 인적자산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지 않는다. 높은 교육열, 근면성, 강한 뿌리의식을 겸비한 재외동포는 사실상 대한민국 국력의 숨은 원천이었다. 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소속감·유대감·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리더십만이 초저출산·AI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생존과 도약을 보장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대한민국은 지금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국력 신장의 새로운 동력이 절실하며, 그 중심에 재외동포가 있다. 재외동포는 대한민국의 ‘바깥’이 아니라 국력의 확장된 범위, 즉 국가 외연이자 ‘또 하나의 집(Home)’이다. 이제는 영토·국적·혈연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 전 세계에 뻗어 있는 국민·동포의 이산성을 국력 신장의 촉매제로 삼아야 한다. 민·관·산·학이 서로 힘을 합쳐 우리 재외동포정책의 패러다임을 고도화하고 지원체계를 정밀하고 유연하게 재설계할 때, 대한민국은 세계평화·인류 번영에 기여하는 자랑스러운 국가 공동체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언론매체 수는 그야말로 확장일로에 있다. 법적으로 등록되거나 허가되지 않은 혹은 그럴 필요가 없는 자칭 언론매체의 증가도 가파르다. 양적으로만 따지면 언론산업은 얼핏 유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종사자나 전문가는 물론 시민도 언론산업의 열악함을 잘 안다. 주위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의 인기는 시들하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미디어 전공생은 해마다 줄고 있다. 관련 강의가 폐강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 많았던 대학언론도 쇠퇴의 길에 접어든 지 오래다. 언론을 제외하고도 전망 밝은 미디어 영역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선뜻 언론에 자신의 미래를 맡겨보라 청년에게 추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청년이 자발적으로 만든 언론매체는 내게 언제나 응원의 대상이다. 숟가락 하나 올려본다. 작년 4월 창간한 '토끼풀', 최근 여기저기에서 많이 소개된 신문이다. 제호는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토끼풀 신문사’에서 따왔단다. 서울 은평구 6개 중학교의 학생 32명이 만든다. 이들이 직접 기사를 쓰고 편집하며 발행한다. 중학생이 만드는 재기발랄한 학급신문 정도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종이신문도 발행한다. 이들은 창간 이래 청소년의 권리와 복리 증진을 위해 청소년 교통비, 학생회 문제, 특수교육 대상 학생 괴롭힘, 학교 공사, 학생인권조례, 학교 급식실 노동 환경, 대선후보 청소년 공약 등 관련 보도를 했다. 이번 달에 총 20면으로 발간한 종이신문 제18호에는 교육감, 정당 대표, 국회의원 등의 기고가 있다. 은평구의 광고도 실렸다. '토끼풀'은 총 8면이었던 지난달 제17호의 1면을 백지로 발행해 널리 알려졌다. 일부 학교의 언론 탄압에 항의한다는 이유였다. '미디어스' 기사에서 편집장은 신문을 배포해 온 4개 중학교 중 3곳에서 한 번 이상 배포 금지 처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한 중학교는 기자가 직접 배포한 신문을 압수하고 배포 금지했다고 한다. 한 기자는 다른 중학교에서 배포 전 사전 검사, 기계적 중립과 수정 요구 등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이 통제와 간섭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백지 사태 이후 광고가 많이 들어오고 후원자가 천 명 정도 된 모양이다. 진보 유튜버의 후원 제안이 있었지만 편집장은 거절했다. 중립을 표방하고 있고, 종속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였다. 그는 언론의 근본 목적이자 존재 이유를 문제 제기라고 했다. '토끼풀' 구성원이 겸연쩍어 할 수 있겠으나, 이들의 언론관은 놀랍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저항도 마다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보도 수준이다. 직접 취재를 기본으로 하는 보도는 기성 언론의 낯을 부끄럽게 한다. 상당량을 차지하는 심층보도 또한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이들 세대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전통 언론매체인 종이신문을 선택한 것이 신기하다. “앞으로도 '토끼풀'은 여러분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 정론(正論)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제18호 20면에 실린 성명의 마지막 문장이다. 자못 비장하다. 또 다른 '토끼풀'이 하나쯤 더 나온다면, 우리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잠시나마 접어둘 수 있겠다.
제86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이달 17일 육군사관학교에서 거행됐다. 순국선열의 날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기념일로 제정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올해 기념식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는데, 이종찬 광복회장의 요청으로 육사 교정에서 처음 진행했다. 독립유공자 유족, 정부 인사, 육사 생도까지 800여 명이 기념식에 참석했다. 육사 교정에는 독립전쟁 영웅으로 불리는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함께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있다. 2023년 8월에 국방부와 육사가 이 흉상들을 이전하겠다고 했다가 찬반 의견이 대립하고,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비판이 크게 일었다. 긴 논란 끝에 2025년 5월에야 육사가 모든 흉상을 현 위치에 그대로 두기로 했으니, 이종찬 회장은 육사 교정에서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을 거행함으로써 독립군의 정신은 광복군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국군이 그 뜻을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자 했다.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 선생은 이종찬 광복회장의 조부다. 일제 침략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우당 6형제는 온 가족이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가산과 전답을 급히 처분해 자금을 마련, 1910년 12월에 일가 40여 명은 북풍한설의 지린성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논밭을 사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했다. 명문가 후손으로 유복하고 편안히 살 수 있는 삶을 버리고 막대한 가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치면서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6형제 가운데 해방된 조국 땅을 다시 밟은 이는 다섯째 이시영 뿐이었고, 나머지 형제들과 후손들은 타국 땅에서 배고픔과 고초를 겪으며 죽음을 맞았다. 우당의 손자 이종찬 회장은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 왕의 항복 소식을 들었고, 그해 11월 임정 요인들이 귀국할 때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1960년 육사 제16기로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하여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는데, 김대중 대통령 당선 후 그는 안기부장에 임명되었다. 그 때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하여 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개편, 초대 원장을 맡았으며 ‘정보는 국력이다’는 그의 뜻을 원훈에 담았다. 제11대부터 연이어 네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민주정의당 원내총무와 사무총장도 지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자당 대선후보에 김영삼과 맞대결하게 되자, 불공정 경선이라며 이를 보이콧, 민자당을 탈당했다. 새한국당을 창당한 이후 민주당과 합당하였고, 정계 복귀한 김대중, 동교동계 정치인들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는 등, 2000년에 정계를 은퇴하기까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오갔다. 그의 자서전 '숲은 고요하지 않다 1, 2'(제2판, 2024)를 읽어보면, 이종찬의 정치 여정은 어떤 인물이나 집단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며 자유롭고자 하였다. 스스로 자유로운 판단과 선택을 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고자 했고, 실수와 한계에도 솔직했다. 격랑과 같은 정치 여정 중에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友堂 정신 때문이었을까?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했을 때도, ‘돈이 없어 육사에 간다는 생각은 말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던 선조 정신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안되겠느냐’ 하신 부친의 말씀을 역사를 꿰뚫은 友堂 정신으로 가슴에 새겼으리라. 정계 은퇴 후 이종찬 회장은 종로구 자택에 우당 기념관을 만들고,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로 제7회를 맞은 우당상 시상식 및 장학금 수여식에서 그는 이 행사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정신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友堂 정신을 이어가는 그의 용기가 조국의 미래를 위한 한 줄기 빛이 되기를 응원한다.
최근에 국민의힘 주변에서는 기대와 절망이 공존하고 있다. 대검의 대장동 재판 항소포기 논란으로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대선 이후 바닥을 헤매고 있는 당 지지율이 조만간 변곡점을 맞을 것이란 기대가 작지 않다. 또한 정부 여당의 부동산 정책 혼선에 대한 시장의 여론도 심상치 않자 국민의힘 지도부는 그동안 미뤄왔던 경제단체 면담 등을 추진하며 이재명 정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함께 탄식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데도 국민의힘 지지율은 여전히 바닥에 머물고 있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최근에는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층보다 지지율이 낮은 조사 결과도 나왔다. 당 내외에서는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지도부의 정치노선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장동혁 대표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변화는커녕 대표 스스로가 소수 극우세력에 의존하는 정치를 강화하고 있어 당 안팎의 절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장 대표는 최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말해 당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황 전 총리는 극우세력을 대변하며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또한 장 대표는 지난 16일 극우성향의 인사들과 유튜버에 출연해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극우세력과의 연대 가능성도 언급했다. 걱정되는 것은 장 대표의 언행이 단순 말 실수나 착오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 대표는 중도층 대신 강성 지지층을 먼저 결집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지도부 협의도 없이 내란 수괴혐의로 구속돼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대표 취임 이후 미뤄오던 면회를 국정감사 기간 중 그것도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점에 윤석열 부부의 석방을 주장해온 김민수 최고위원만 동석한 채 면회를 한 것은 극우 강성 지지층 결집을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지난 달에는 제주 4·3을 '공산폭도들에 의한 폭동'으로 왜곡한 영화 ‘건국전쟁2’를 관람한 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은 모두 존중돼야 한다"고 발언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또한 의도적인 메시지로 보는 시각이 많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강성 지지층마저 이탈한다면 집권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모습은 대중정당의 길이 아니다. 잘못된 판단이다. 최근에는 보수논객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 조차 "(장동혁 대표) 본인은 대표에 당선되기 위한 전술로 '윤 어게인' 세력을 이용한 것 뿐이라고 믿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당선되는 과정에서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는 국민의힘과 척을 지게 됐으니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윤 어게인' 세력 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장 대표 뿐 아니다. 박민영 미디어대변인은 지난 12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비례대표인 김예지 의원이 발의했던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비난하면서 “(비례대표에) 장애인을 너무 많이 할당해서 문제”라며 “김예지 같은 사람은 눈 불편한 거 빼고는 기득권”이라는 등의 선을 넘는 막말을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에 대해 장 대표는 제대로 된 징계조치 없이 ‘구두 경고’만 했다는 것이다. 한국정치 발전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강력한 야당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부여당에 대한 매서운 견제와 균형감 있는 국정운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힘과 장 대표가 하루빨리 ‘지지층 정치’를 재고하기 바란다.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국민의힘이 괴거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강성 지지층을 버려야 한다. 대다수 국민은 국민의힘과 장 대표가 망상수준의 윤어게인, 부정선거 음모론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보수를 강력히 재건하길 원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인데도 나는 아직도 때때로 시험을 보는 꿈을 꾼다. 시간에 쫓겨 문제지를 다 풀지 못하거나, 백지의 답안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꿈이다. 깨고 나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을 보며, 그 꿈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학교를 떠났지만, 여전히 각자의 삶에서 자기만의 문제지를 풀고 있는 수험생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어른이 되면 시험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시험은 늘 삶의 다른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점수나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어떤 지점을 넘어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들 앞에서 흔들린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선택을 복잡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에 빠지게 되는 순간도 있다. 기대보다 실망을 안겨주었던 자리가 오히려 자신에게 필요한 기회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큰 기대를 품었던 일이 나와 맞지 않는 자리임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가까스로 잡은 기회를 놓쳤을 때,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허사로 돌아갔을 때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지만, 실은 어느 것도 끝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문을 지나왔다. 한 개의 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한 개의 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두 개 혹은 세 개, 그보다 더 많은 문이 앞에 있었다. 그것은 통과해야 하는 문이기도 했지만, 선택해야 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활짝 열려 있는 문이 있었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아 절망하던 순간이 있었다. 때때로 길을 잘못 든 적이 있었지만, 그 길을 지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무엇이 되느냐가 삶의 목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 살아가든 그것은 결국 삶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방식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나 자신으로 남는 일. 그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여러 번 멈추고, 여러 번 길을 잃고, 다시 방향을 바꿀 것이다. 어떤 선택은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뒤늦게 의미를 드러낼 것이다. 때로는 놓쳐 버린 것을 아쉬워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 덕분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인생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문을 두드리고 열어보며 조금씩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그러니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도 괜찮다. 그 망설임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이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열여덟이거나 열아홉인 그대들, 혹여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 앞에 놓여 있는 문은 여러 개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어른들 또한 그렇게 수십 번 멈추고,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절망은 가장 늦게 습득하는 언어이기를, 어떤 문이라도 거침없이 밀고 잡아당기기를, 그리고 열린 곳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응원한다.
수도권 북부 지역, 특히 접경지역은 한국전쟁의 정전협정 체결일인 1953년 7월 27일 이후 지금까지 72년 넘게 국가 안보를 위해 제약을 받아왔다. 중첩된 규제로 인해 주민 삶의 질은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오지나 다를 바 없는 환경을 인내하며 살아야 했다. 정부는 2011년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을 수립했고 2019년엔 이 계획의 일부를 수정했다. 투자실적이 없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민자 사업들을 과감히 조정하고 사업추진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남북 교류협력 기반조성 ▲생태·평화 관광 활성화 ▲생활 SOC 확충 등 정주여건 개선 ▲균형발전 기반구축 등의 사업이 추가됐고 2030년까지 13조2000 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접경지역을 수도권정비법상 수도권에서 제외해달라는 것이다. 수도권정비법의 제정 사유는 수도권의 과도한 인구 및 산업 집중을 억제하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역 개발을 저해하고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를 가속화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지난 9월 박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파주시을)과 김성원 국회의원(국민의힘, 동두천시·양주시·연천군)은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가가 접경지역 농민들의 영농활동을 보장하고 안전을 확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은 국가가 접경지역 영농활동을 보장·지원하도록 하는 책무를 명시했으며 지뢰 등으로 인한 피해 방지 조치를 국가가 취하도록 하고 군사 활동으로 불가피하게 영농활동을 제한할 경우 최소한의 범위로 그치도록 하는 원칙을 신설했다. 개정안은 지난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됐다. 또 다른 문제점은 미군기지가 이전됨으로써 지역 경제 기반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반환 공여지의 개발 가능성 또한 낮다. 이에 국회에서 주한미군 반환공여지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이재강 의원(더불어민주당, 의정부을)은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과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미군공여지 개발을 총괄하는 정부조직 개발청을 신설하고 미군공여지와 주변지역은 국토부 장관이 우선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검토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박지혜 의원(더불어민주당, 의정부갑) 역시 미군공여지를 도로, 공원, 주차장 등 공공목적으로 임시 사용하는 경우 무상사용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병주(더불어민주당, 남양주을) 최고위원도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12일 의정부시 가능동 캠프 레드클라우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발표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미군공여지 개발 방식을 ‘매각’에서 ‘임대’로 전환해 장기간 방치된 미군공여지 개발에 속도를 높이자는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3일자 3면, ‘주한미군 공여지, 임대 통한 개발로 해법 바꿔야’) 주한미군이 나간 뒤 반환된 공여지는 최대 20년 안에 분할상환 방식으로 매입해야 하는데 매입 우선순위는 공여지가 있는 지방정부다. 하지만 재정상태가 열악한 지방정부는 매입을 못하고 있다. 캠프 레드클라우드의 경우 부지 면적은 83만 6000㎡이며 매입가는 1조 3000억 원에 달한다. 따라서 장기간 방치되고 있는 공여지를 매입이 아닌 최대 99년 장기 임대방식으로 전환하고, 연간 임대료를 재산가의 1/100 수준으로 완화해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공시설 무상사용, 개발제한구역 우선 해제 등의 내용도 있다. 경기북부 주민들은 김 의원의 개정안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를 비롯한 경기북부 미군공여지의 개발이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희생엔 특별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그동안의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필요하다.
꼬꼬마 한의사 시절, 내가 인턴을 했던 병원은 중풍 전문병원이었다. 급성기 뇌경색·뇌출혈 환자들이 끊임없이 입원했고, 인턴들의 호출기는 하루에도 수십 번 울려댔다. 어느 날 점심 두어 숟갈을 뜨려던 순간, 호출기가 울렸다. ‘왼쪽 대뇌의 절반 이상이 손상된 중대뇌동맥 뇌경색 환자가 L-tube를 또 뽑았다는 연락’이었다. 전날에도 두 번 뽑은 분이었다. 병실로 올라가 튜브를 삽입하려 하자, 환자는 마비되지 않은 손으로 튜브를 잡아채 바닥에 내던졌다. 다시 넣으면 또 빼고, 실어증으로 인해 6인실 병동 전체가 울릴 만큼 우우우— 하고 울부짖는 소리만 들렸다. 다섯 번, 여섯 번. 잠시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까지 거부하는데 꼭 넣어야 할까?” 그러나 당시 나는 열정적인 인턴이었다. 병실이 쩌렁쩌렁 울릴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너무 힘들지만,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끼어야 좋아질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해서 살 수 있을 만큼은 살아봐야 하잖아요.....”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한지 5분이 지났을까 그의 눈빛이 흔들리며, 몸부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다시 L-tube를 삽입했고 그는 영양섭취가 가능해졌다. 2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확신은 질문으로 바뀌었다. 만약 그 환자가 중증 치매였다면? 말기 암으로 고통만 남은 상태였다면? 혹은 그 자리에 내가 누워 있었다면, 나는 여전히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최근 ‘죽을 권리’를 다룬 10여 편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결론은 단순하지 않다. 많은 논문들은 먼저 “존엄”의 개념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결정만을 존엄의 기준으로 삼기보다, 인간의 관계성·취약성·돌봄의 조건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여러 연구는 조력죽음이 도입된 사회에서 취약 계층이 오히려 ‘죽어도 된다’는 압력을 받을 위험을 지적한다. 장애인·독거노인·경제적 취약층일수록 “삶의 부담을 타인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의료윤리 연구들은 또 다른 측면을 지적한다. 조력죽음은 환자의 선택 문제를 넘어서, 의사의 역할과 정체성 자체를 흔드는 문제라는 것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직업적 본질인 의료인이 죽음을 돕는다는 행위는 개인 윤리와 직업적 양심의 깊은 충돌을 낳는다. 한편 법제도를 분석한 논문들은 조력죽음을 안전하게 설계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회복 불가능성’ 판단, 반복적 의사 확인, 남용 위험 등은 완벽히 통제할 수 없으며, 제도화는 곧 사회적 가치의 큰 전환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조력죽음은 허용되지 않고 임종 과정에서의 연명의료 중단만 가능하다. 의사 2명이 회생불가·급속 악화·사망 임박 상태를 확인해야 하며, 불필요한 연명치료만 중단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제도는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한 생명에 무의미한 고통을 더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가깝다. 결국 질문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조건으로 돌아온다. L-tube를 뽑던 그의 마음은, 짐작컨데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최근 연구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도 같다. 죽을 권리를 말하기 전에,사람이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과 돌봄’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죽을 권리에 대한 질문은 답이 미완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은 살 수 있는 권리, 견딜 수 있는 삶의 환경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