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호주 시드니 파라마타의 웨스턴 시드니 스타디움에서는 약 300명 남짓한 호주 교민과 한국에서 날아간 응원단들이 거의 9000명에 이르는 중국 관중에 맞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펼쳤다. AFC 여자축구 아시안컵 B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로 FIFA 랭킹 9위 북한과 전 대회 우승팀 중국이 조 1위를 놓고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호주에서 2026 AFC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가 열리고, 여기에 남북한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한 호주 동포들은 2026년 1월부터 호주 동포응원단을 꾸리는 여정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에서 간 응원단이 3월 8일 합류하면서 한국과 조선(북한)여자축구팀 공동 응원단이 구성되었다. 호주 동포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북 화합에 많은 관심을 갖고 노력해 온 전통이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공동입장이 이루어진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미 훨씬 전에 시드니에서 스포츠로 남북 화합이 이루어진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89년 3월 21일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 경기장에서는 세계아이스하키 선수권 C풀 대회 4일째 경기로 남북한 경기가 열렸다. 경기에서는 7대4로 북한이 승리하였지만, 이날 경기장은 어느 한쪽의 승패를 떠나 같은 민족으로서 얼싸안고 ‘아리랑’을 합창하며 분단을 뛰어넘는 감격적인 민족의 대합창이 울려 퍼졌다. 이날의 합창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남북 공동응원, 1991년 탁구와 청소년축구 남북 단일팀이 성사되는 밑거름이 되었고, 스포츠를 통한 화합은 고위급 회담을 거쳐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까지 이르렀다. 당시 보도를 보면 이날 교민들은 경기 초반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였으나, 곧 태극기를 내려놓는 수가 늘어나 전반이 끝나기 전에 태극기는 보이지 않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리랑, 아리랑 목동 등을 부르며 남북한 선수 모두를 응원하였다. 경기가 끝난 후 북한 김태용 단장이 남한 교민들에게 “우리가 이겨서 미안하다고”고 인사했고, 남한의 박갑철 단장도 “멋진 경기였다”고 화답하며 교민들과 선수들이 남북한 구분없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노래하였다. 불상사를 우려하여 교민사회에 협조 공문까지 보냈던 호주에서 민망해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지난 9일 여자축구 경기에서도 호주 교민들은 “우리 선수 잘한다”, “조선 이겨라”, “코리아 이겨라”라며 응원하였다. 사전에 응원을 준비할 때 논란도 있었지만,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라 부르며 응원을 펼친 것이다. 이러한 작은 배려가 꽉 막혀 얼어붙은 남북관계 속에서도 북한 선수단의 마음을 녹여 한국 응원단이 포함된 교민 응원단 쪽에 다가와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진행된 경기에서 ‘조선’이라 불렀다면 큰 논란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냉각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조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에 지나치게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대를 배려하는 아량을 베풀어야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4강 진출에 실패하며 위기에 몰렸던 북한도 PO경기에서 대만을 4대0으로 이기고 2027년 브라질 여자월드컵 출전권을 획득하여 남북이 동시에 진출하였다. 2027년 7월말 남북 여자축구팀이 함께 결승에 올라 멋진 경기를 펼쳐주길 희망해본다.
최근 나는 비영리조직에서 15년째 일하고 있는 NGO 후배와 통화하다가 그녀가 자신이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 십수 년 전부터 시작한 유산기부 운동이 드디어 한국형 ‘유산기부법 레거시 텐(Legacy 10)’ 으로 입법발의했다는 얘기를 듣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그녀가 우리나라 유산기부 운동의 제도화를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닌 것을 누구보다 옆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신문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지난 3월 20일 ‘한국형 레거시 10(Legace 10)’ 도입을 포함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여야 의원들의 공감대 속에 국회에 발의됐다. 해당 법안은 초고령 사회와 1인 가구 증가 등 인구 구조 변화 속에서 가계에 묶여 있는 자산을 사회적 가치로 환원할 수 있도록 유산기부를 활성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유산기부 세액공제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 기부문화에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영국은 2012년 ‘레거시 10’ 제도를 도입해 유산의 10% 이상을 기부할 경우 상속세율을 40%에서 36%로 낮추는 세제혜택을 제공해 왔다. 이 제도는 기부 확대에 기여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유산기부는 단순 분배를 넘어 ‘사회적 상속’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기부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에서는 유산기부가 대표적인 기부 유형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려니와 전체 기부금의 32%(약 45억 파운드, 8조 9000억 원)를 차지할 정도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기부금에서 유산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1% 수준에 머물고 있어 제도적 지원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한국자선단체협의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50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5 유산기부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3%가 ‘한국형 레거시 10’이 도입될 경우 기부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상속세 감면혜택이 주어질 경우 유산을 기부하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53.3%에 달한 것이다. 상속(相續)은 ‘일정한 친족적 신분 관계가 있는 사이에서, 한 사람의 사망으로 다른 사람이 재산에 관한 권리를 이어받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상속은 아주 내밀한 개인과 가족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초고령 사회와 1인 가구 중심으로 가족 단위가 변화하면서 향후 20~30년간 대규모 자산 이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상속을 둘러싼 논의는 점차 사회적 의제로 확장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유산기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영국의 유산기부 확대에 이 ‘레거시 10’ 제도 도입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최고 상속세율이 50%로 높은 우리나라도 유산기부법을 도입하면 유산기부가 일정부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의 보고에 의하면 전체 기부금 가운데 개인의 상속 증여재산의 비율은 1%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반면 영국에서는 전체 기부금의 30% 이상이 유산기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초고령 사회에서 자산의 사회적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고 싶은데, 막상 유언장을 쓰려니 막막하네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퇴직한 지 10여 년째 되는 대선배님이 털어 놓은 고민이다. 평생 모은 재산을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하고 싶지만, 복잡하고 걸림돌이 많아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여유가 있다면 기부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막상 상속 시점이 되면 대부분 가족에게만 재산을 물려주고 생을 마감한다. 왜 그럴까.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자들은 기부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관련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도적 유인(세제혜택)과 신뢰할 수 있는 실행주체(전문기관·설계프로그램) 확보가 유산기부 활성화의 핵심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한국에는 ‘1% 나눔운동’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2011년 소득의 1%를 이웃과 나누면서 시작한 이 운동은 큰 공감을 얻으며 한국 사회에 기부문화의 씨앗을 뿌렸지만 그런데 평소에는 소득의 1%를 나누면서 정작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죽을 때 무엇을 남기고 나눌 것인가.
3월엔 전국 곳곳에서 107주년 3·1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일제의 통치에 반발한 의거가 일어난 경기·인천 지역들에선 기념식과 함께 시위행렬 재현, 기념 공연 등 다채로운 형식의 행사들이 펼쳐졌다. 1919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항쟁을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닌 ‘역사적 혁명’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도 벌어졌다.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3·1운동을 3·1혁명으로’ 토론회가 그중의 하나다. 김준혁(민주·수원정) 국회의원이 국회 역사정의포럼, 권칠승·문정복·박성준·부승찬·강경숙 의원,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3·1운동’이라는 표현을 ‘3·1혁명’으로 격상할 필요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경기신문 2026년 3월 24일자 3면, ‘‘3·1운동’을 ‘3·1혁명’으로…국회, 명칭 격상 논의 본격화’) 이날 토론회에서는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헌법 제정 관련 역사 기록, 각종 선언문과 제헌국회 회의 등에서 ‘3·1혁명’이라는 표현이 사용됐음을 확인했다. 이어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정철승 변호사(독립운동가 윤기섭 후손), 변성호 조선대 박사후연구원(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이 참여해 3·1혁명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적·학술적 차원에서의 접근 방향도 제시됐다. 지금까지 우리 법령과 제도는 ‘3·1운동’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해 왔다. 국경일을 규정한 법률에서는 ‘3·1절’을 공식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3·1운동을 ‘혁명’으로 격상시켜 헌법 전문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와 시민사회의 공감을 얻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탄생을 알린 헌정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종찬 광복회장도 19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에서 열린 107주년 3.1절 기념 민족정기선양대회에서 헌법의 ‘3.1운동의 정신’을 ‘3.1혁명의 정신’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 방안을 국회에 보내 헌법개정에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호응, ‘3.1운동’ 대신 ‘3.1혁명’이라고 표현했다.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07주년 3·1절 기념식 기념사에서 “우리 국민이 이어온 ‘3·1혁명의 정신’이야말로, 민주주의와 평화가 흔들리는 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인들을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인도할 밝은 빛”이라고 ‘혁명’을 공식화 한 것이다. 김삼웅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전 독립기념관장)는 아직도 “관제 용어인 ‘3·1운동’이란 비칭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4000년 역사의 군주제를 민주공화제로 만들어버린 것 자체만 해도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김 대표가 밝힌 혁명 명칭 사용의 당위성들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시위에 참여(세계혁명사 최초) ▲군주제 폐지, 근대적인 민주공화제로 전환(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이를 받아 민주공화제 채택) ▲여성이 사상 처음으로 근대역사 현장에 등장 ▲신분 해방(기생·백정·광대 등 하층인들까지 투쟁 전선에 주체적 참여-민중이 중심되는 평등주의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 ▲비폭력투쟁 ▲세계 피압박민족 해방투쟁의 봉화 역할-중국 5·4운동, 인도와 이집트, 중동과 아프리카 제국의 반식민지 해방투쟁에 큰 영향) 김 대표는 이런 대전환을 가져온 것이 기미년 3~4월 한민족이 성취한 3·1혁명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당연히 ‘혁명’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중국 신문·잡지들도 ‘조선혁명·대혁명·조선해방투쟁’ 등으로 썼다고 한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제헌헌법 초안에도 ‘3·1혁명’이라고 명시돼 있었지만 나중에 ‘운동’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혁명’이라는 용어가 과격하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3·1혁명’이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논의는 본격화되고 있다. 역사학자이기도 한 김준혁 의원은 “3·1혁명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역사적 사건이므로 국회와 정부, 역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3·1혁명 격상을 공론화하고, 관련 입법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다. 그날을 기다린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강국이면서도 안전후진국이란 말을 아직 듣고 있다. 안전선진국이 되려면 먼저 안전문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안전문화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기본가정으로서 안전보건프로그램 운영방식을 결정짓는 가치, 태도, 역량, 행동유형이다. 제임스 리즌은 안전문화 구성요소를 높은 지식과 정보 공유, 자유로운 보고, 공정성, 유연성, 학습조직이라고 하였다. 안전문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개인과 가정의 불행, 기업과 사회의 엄청난 부담 및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안전문화 개념은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4.26-사망 5,772, 부상 70만 명)를 계기로 등장하였다. 경영층은 직원의 보고를 무시하고, 수년 간 제기된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사고 당일, 근무자가 냉각펌프 작동 상의 문제점을 보고하였으나 묵살했고, 다음 근무자에게 인수인계하지 않았다. 급기야 한밤중인 오전 1시에 발전소가 폭발한다. 사고 발생 30시간 후 주민을 대피시키고, 언론과 관공서에 알리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안전문화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안전은 절대적 가치이며, 안전 리더십을 확립해야 하며, 명확한 책임 소재와 안전이 실제 업무와 연계되어야 하며, 학습조직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안전문화가 작업장 안전확보와 직결된다. 위스콘신대 심리학과 Jang 교수팀의 2019년 연구 결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먼저 ‘안전문화와 ‘안전행동’ 연구에서 안전문화 수준이 높으면 구성원들이 안전행동을 한다 (참여자 5만 명). 그리고 ‘안전문화와 사고재해’ 연구에서는 안전문화 수준이 높을수록 사고재해유율이 줄어든다 (참여자 3만 명). ‘안전행동’은 작업자와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행동을 말하며 안전준수 행동과 안전참여 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 ‘안전준수 행동’은 규칙, 절차의 준수 행동이며 (안전장비 착용 등), ‘안전참여 행동’은 안전한 작업장을 위한 자발적 행동을 말한다. 작업장의 모든 일을 절차서로 만들 수 없으므로 안전준수 행동만으로는 완벽하게 사고재해를 막을 수 없다. 따라서 구성원들의 다음과 같은 자발적인 행동이 중요하다. 동료가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서로 간 도움을 제공하고, 동료가 불안전 행동을 하면 이를 시정하도록 이야기해 주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작업장의 위험요소를 자발적으로 찾아 개선을 요청하고, 불안전 또는 위험요소를 가중시킬 수 있는 지시는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고 거부할 수 있는 조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CEO 역할이 중요하다. 안전에 관해 유명한 듀폰사 브래들리 커브에 의하면 개인의 자율적 안전행동과 부서 간 협력이 강화되면 높은 수준의 안전문화가 정착된다고 한다. 높은 수준의 안전문화가 정착된 조직은 “소 잃기 전에 미리 외양간을 고친다”라는 인식으로 잠재적 위험요소를 평소에 점검하여 대응책을 수립한다. “행복한 가정은 공통적인 이유가 있으나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다”라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 안전문화에도 적용된다. 최근 대전 화재사고 등 전국적으로 재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제대로된 안전문화 정착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용산나루는 전국에서 배로 운송한 조세의 집산지로서 군자감의 창고, 훈련도감의 별영창 등 규모가 큰 나라의 창고가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용산나루로 내려가는 길은 남영역사거리에서 서남쪽으로 나누어지는데, 지금의 원효로다. 동재기나루 가는 길은 지금의 삼각지고가도로 서쪽 시작점 부근에서 갈라져 너푸내(蔓草川)를 건넜다. 노들나루 가는 길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 너푸내다리(蔓草橋)를 건넜는데, 1905년에 부산으로 가는 출발역으로 넓게 자리 잡은 용산역이 개통되면서 그 위치를 알 수 없게 됐다. 이 구간에서 옛길의 상당 부분이 사라져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청파로를 따라가다가 경부선 철도 위의 삼각지고가도로를 넘는 것이 옛길에 가장 가깝다. 삼각지고가도로는 오르내리는 계단과 보도가 있어 걷기에 불편하지 않다. 이쯤 어디에서 갈라진 길이 너푸내를 건너 동남쪽의 동재기나루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고가도로를 내려와 230m쯤 가면 삼각지사거리에서 한강대로를 만나고, 남쪽으로 꺾어 직선으로 쭉 내려가면 한강대교다. 드디어 깊고 푸른 물이 출렁이는 한강이다. 서남쪽을 바라보면 우뚝우뚝한 빌딩이 멋진 여의도고, 정 남쪽은 관악산(632.2m)의 기운이 하늘로 치솟으며, 동남쪽은 우리나라 최고의 부촌 강남이 으리으리하다. 그 가운데 왕복 8차선의 1005m 한강대교가 시원스레 쭉 뻗어 있다. 앞쪽으로는 잘 단장된 노들섬이 선명한데, 그 사이의 한강 폭이 꽤나 넓다. 한강에 놓인 영구적인 첫 다리는 기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칙칙폭폭 건너던 1900년의 한강철교이고, 두 번째가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있어 인도교(人道橋)라 불렀던 1917년의 한강대교다. 을축년대홍수, 한국전쟁, 빠른 경제성장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우리 앞에 서 있는 한강대교를 바라보면, 원행을묘 백리길을 걷는 이 누구라도 감격에 겨울 것 같다. 와~ 여기가 그 유명한 배다리가 놓였던 곳이구나! 하지만 좀 성급하다. 옛날 한강의 일상적인 물길은 지금보다 훨씬 좁았다. 1982년 9월에 시작하여 1986년 9월에 끝난 한강종합개발사업의 결과로 지금의 한강이 만들어졌다. 한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바닥을 깊이 파냈고, 돌아가던 물길을 최대한 직강화 했다. 잠실 같은 곳은 남쪽의 본류가 석촌호수로만 남고 모두 메워졌으며, 평상시엔 작은 물길과 모래사장이다가 홍수 때만 큰 물길로 변했던 잠실 북쪽의 새내(新川)가 본류로 바뀌었다. 더불어 평상시에도 한강 물이 넓고 깊게 출렁일 수 있도록 한 공사가 있었는데, 바로 ‘물속에 있는 둑’이란 뜻의 수중보(水中洑)다. 한강에는 1986년의 잠실수중보와 김포대교 바로 아래쪽에 건설한 1987년의 신곡수중보 2개가 있다. 두 수중보가 평상시에도 많은 물을 가두어 한강 물길의 폭이 옛날보다 세 배는 넓어졌다. 한강대교 북단에서 노들섬까지 원래는 엄청 넓은 모래사장이었고 홍수 때만 물이 넘쳐흘렀다. 갈수기인 윤2월 9일에 출발한 정조의 원행을묘 행렬은 한강 북단에서 노들섬까지 걷거나 말과 가마를 타고 유유히 행진했다. 지금은 그 모래를 파내 깊어지고 신곡수중보에 갇힌 물이 늘 가득 차 있어, 어떤 이는 호수라고 하지만 우리 눈엔 안 보여도 한강 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불확실성 앞에 놓여 있다. 기술의 진보는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 정책 전달의 효율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가져왔지만, 그 이면에는 ‘딥페이크(Deepfake)’라는 파괴적인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 정교하게 조작된 영상과 음성이 선거판의 본질을 흐리고 유권자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현실은 이제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작년 가을, 우리 사회는 딥페이크 기술이 얼마나 비열하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목격했다. 서울과 인천, 부산 등 전국 각지의 지방의원 40여 명을 대상으로 벌어진 ‘딥페이크 성범죄물 협박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범죄자들은 의원들의 공식 SNS에 게시된 얼굴 사진을 무단으로 수집하여 나체 사진과 정교하게 합성한 뒤, 이를 유포하겠다는 협박 메일을 보내며 금전을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금전 갈취 목적의 형사 범죄를 넘어, 공직자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흠집을 내어 정치적 생명을 끊으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러한 악의적인 조작 기술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낙마시키거나 특정 진영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 변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특히 지역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지방선거의 특성상, 확인되지 않은 가짜 영상 하나가 지역 민심을 순식간에 난도질할 위험성은 대단히 높다. 문제는 2026년 현재의 딥페이크 기술이 전문가조차 육안으로는 가짜를 가려내기 힘들 만큼 고도화되었다는 점이다. AI를 이용한 고도의 딥러닝 기술은 실제 인물보다 더 실제 같은 ‘디지털 대역’을 실시간으로 만들어낸다. 특히 선거 막판에 터져 나오는 딥페이크 영상은 유권자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 투표소로 향하게 만든다. ‘거짓은 진실이 신발을 신기도 전에 지구 반 바퀴를 돈다’는 격언이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초광속의 파괴력을 갖게 된 셈이다. 다행히 우리 입법과 행정 당국도 이 미증유의 위기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거 막판까지도 효과가 있을지 걱정이다. 올해 초 본격 시행된 ‘AI 기본법’과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선거일 전 90일부터 딥페이크를 활용한 선거 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AI 전담 감별팀을 가동하며 24시간 감시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법은 멀고 기술은 빠르다. 해외 서버를 이용한 유포나 암호화된 폐쇄형 메신저를 통한 전파는 수사 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기 일쑤다. 단순히 사후 처벌의 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AI 생성 콘텐츠에 ‘디지털 워터마크’ 삽입을 의무화하고, 조작물 발생 즉시 실시간으로 이를 감지하여 플랫폼 차원에서 차단할 수 있는 강제적 협력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구글, 메타, 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 기업들과 민관협력 체제를 구성해서 범죄를 차단해야 한다. 결국 이 혼돈의 파고를 넘어서는 최후의 보루는 유권자의 냉철한 이성이다. 화면에 비친 후보의 모습이 반드시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건전한 회의론이 필요한 시대다. 자극적인 폭로 영상일수록 그 출처와 근거를 꼼꼼히 따져보고, 공신력 있는 언론사를 통해 교차 확인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치권 또한 기술의 오남용을 경계하고, 딥페이크라는 독사과를 과감히 내던져야 한다. 당장의 승리를 위해 가짜 뉴스의 파도에 올라타는 행위는 결국 민주주의라는 배를 침몰시키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12.3 내란사태 이후 처음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우리가 기술 문명의 진보를 민주주의의 축제로 승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가짜의 늪에 빠져 퇴보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진짜 주권을 지키는 힘은 결국 깨어 있는 시민들의 매서운 눈초리에서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 유권자 모두가 감시자가 되어 이 민주주의의 성소를 지켜내야 할 때다.
법화골 내려가는 길, 진달래가 비를 맞고 있다.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혀있다. 남한산성 아래 법화골은 조선 인조 때 청나라군 유인술에 속아 우리 병사 300명이 몰살당한 곳이다. 상관은 북문을 통해 병사들을 억지로 내몰았다. 뒤에서 머뭇거린 병졸은 현장에서 참수당했다. 북문 현판 전승문은 이런 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데, LH는 그 땅을 파헤치겠단다. 이곳 주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집회를 나갔다. 그때 법화골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 되어 온 공동체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은 2014년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법화골 주민들이 사용하던 연자방아 역시 경기도 제82호 문화재로 지정됐다. 하남시는 교산 3기 신도시 재개발로 인해 연자방아를 이전한다고 했다. 천만다행히 존치로 결정 나 그대로 두고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나는 너무 기뻐 수리를 하는 인부들에게 불 피울 드럼통과 전기를 제공하고 라면을 끓여 주었다. 그렇지만 더는 인적을 들을 수 없다. 어둠 속에서 기침 소리만 듣고도 서로를 알아보던 이웃들은 모두 사라지고 적막만 남았다. 옛날 이곳은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주민들은 산곡동 미군 부대 군용 트럭을 타고 시내를 오갔다. 마을버스가 법화골까지 올라온 것은 1991년의 일이다. 마을 사람들은 단체로 이 버스를 타고 시내 목욕탕에 갔었다. 바쁜 이웃 대신 시장을 봐주고 대소사를 서로 전하기도 했다. 100번 버스는 주민들의 미팅 장소였던 셈이다. 지금 그 버스는 텅 비고 차장에 구름만 매달린 채 달린다. 어느 날 귀가하던 길이었다. 진눈깨비가 무섭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옷을 가볍게 입어 입술이 얼얼했다. 그때 마침 100번 버스가 오고 있었다. 나는 차를 타러 뛰었다. 선글라스를 낀 여기사에게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태워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버스에 올라서 이웃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종점에서 내리자 개들이 꼬리 치며 달려왔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며 어둠 속 길을 익숙하게 걸어 집에 도착했다. 며칠 후 종점을 지나고 있는데, 그 여기사가 시동을 걸고 있었다. 외상 버스를 탔던 일이 생각났다. 버스 꽁무니를 탁탁 치며 문 앞으로 갔다. 못 낸 요금을 건네며 일전에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그녀는 자주 있는 일인 양 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떠났다. 나무가 땅속에 잔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듯 나는 어느샌가 이곳의 찐 주민이 되었다. 지방에 일을 보러 가던 날 한파가 들이닥쳤다. 워낙 허술한 우리 집 수도가 얼을 게 분명했다. 고민하다 마을 끝 집에 전화해 사정을 말하고 비번을 가르쳐줬다. 아저씨는 곧바로 내려가 수돗물을 틀어 놓고, 녹슬어 물이 새는 순간온수기도 고쳐놓았다고 했다. 나는 한강 변을 지날 때면 방벽처럼 서 있는 아파트를 쳐다보곤 한다. ‘저 창, 한 칸’이 몇억씩 아니, 몇십억 한다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꼭 ‘달나라의 장난’ 같다. 벽 하나로 이웃을 가르고 옆에 누가 사는 줄도 모르는 아파트촌을 만들어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봄이 오면 꽃소식처럼 낭자해지던 법화골, 사람들 소리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빈집에 목련이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 날개를 다시 펼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힘들었던 국면에서 벗어나 지난해부터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해 왔는데,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와 시장점유율 격차가 커져 어려움을 겪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에서도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2024년은 삼성전자에 힘든 시기였다. 이재용 회장이 경영진을 독려하고 삼성의 기술 경쟁력을 다시 회복하기를 주문했다. 삼성 반도체는 오랜 기간 메모리 반도체 1위를 지속하여 전문경영진이 시장변화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잊어 버렸다. 이른바 경영진의 늪인 맹점(blind spot)이었다. 이 점이 삼성전자를 힘들게 하였는데, 경영진을 교체한 후 각고의 노력 끝에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반도체 수율이 회복되고 기술력도 복원되었다. 맹점은 글로벌 1위 기업도 무너뜨리는 고질병이다. 이제 삼성전자 경영진은 미래 산업변화를 제대로 보는 혜안을 장착하게 되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경주 APEC CEO 서밋에 참석한 엔비디아 총수 젠슨 황과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과 함께 깐부동맹을 맺었다.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3명의 글로벌 기업 총수가 함께 치맥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미래산업 변화에 맞서기 위해 엔비디아와 전략적 제휴를 구축하려는 포석이었다. 최근 젠슨 황은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행사 ‘GTC 2026’에서 급변하는 미래산업에 대비한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엔비디아는 에이전트 AI에서 피지컬 AI까지 전 분야에서 반도체칩을 선점하여 AI제국의 위용을 갖춘다는 대담한 발상이었다. 엔비디아는 자율주행기술로 현대차와 협업도 한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를 위해 그록3 언어처리장치(LPU)를 제조 중이다. 젠슨 황은 삼성전자에 감사의 뜻을 표시했으며, 전략적 제휴를 구축해 왔던 SK하이닉스에도 관심을 표명했다. 엔비디아가 미래산업을 독점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의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이 회의에서 세계 최초로 7세대 HBM인 HBM4E를 선보였다. 엔비디아는 물론 경쟁사에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삼성전자가 힘들었던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빠르면 올해 4/4 분기에 흑자가 예상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테슬라로부터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차에 들어갈 반도체칩을 주문받았다. 2나노 공정을 가동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테슬라에게 확실하게 능력을 보여준다면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의 시장점유율은 아직 압도적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에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서둘지 말고, 수율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경영진은 미래산업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먼 장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미래에도 여전히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최근 중동전 발발 등으로 에너지 위기감이 깊어지는 가운데 자원 순환 사업을 운영 중인 재단법인 기빙플러스의 활약과 성과가 주목받고 있다. 기빙플러스는 기업의 재고·이월 상품이 단순히 폐기되는 대신 새 생명을 얻어 시장에서 유통되도록 유도하고, 이 과정에서 장애인과 취약계층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모범적인 선순환 모델이다. ‘기빙플러스’에 대한 호응도를 더욱 높여 긍정적인 역할을 극대화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성원이 필요하다. 지난 2017년 첫 매장(석계역점)을 시작한 이 사업은 선도적인 친환경 나눔스토어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2019년 10호점, 2022년 20호점을 돌파한 데 이어 현재 전국에 28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빠르게 확장 중이다. 특히 경기도와 인천 지역에는 인천갈산역점, 인천부평점, 인천논현점, 수원권선점, 성남태평점, 평택안중점 등 다수의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지하철 인근에 매장을 열어 소비자들의 발길을 유도하고 있다. 기빙플러스의 사업 모델은 복잡하지 않지만, 그 효과는 강력하다. 기업으로부터 기증받은 재고 상품을 철저한 품질 검수 후 매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이렇게 하여 발생한 수익은 전액 장애인, 다문화 여성, 이주여성 등 고용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지원에 재투자된다. 단순한 기부·판매를 넘어 탄소 저감형 프로젝트로 확장해 자원 순환을 통한 환경 보호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은 지난 2017년부터 시작한 친환경 나눔 가게 사업의 사회적 경제사업으로서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2022년 5월 재단법인 기빙플러스를 설립했다. 재단법인 기빙플러스는 친환경 나눔 가게를 기반으로 지역사회 나눔 문화를 활성화하고 국내외 취약계층의 자립을 지원하여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완전한 사회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기빙플러스는 현재까지 장애인 및 취약계층 약 200여 명의 자립을 지원했으며, 6000여 가구에 생계지원 키트를 전달했다. 또한 독거노인, 저소득층 아동, 한부모 가정 등 총 2만여 가구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현재 1974개의 기업이 후원기업으로 참여, 모두 1166만 점의 제품을 기부해 7527가정이 지원 혜택을 받았다. 탄소 절감 효과도 1167만 kg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참여기업들은 재고 폐기 비용 절감과 함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어 상생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기빙플러스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ESG 착한경영대상 환경 부문 본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 최근에는 2025 서울특별시 환경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에너지 위기, 환경오염 문제의 부각과 함께 지난 2008년 말 영국 웨일스에서 시작된 ‘3R 운동’ 등 물자 관리와 관련된 운동이 새삼 주목된다. ‘3R 운동’은 절약(reduce)·재사용(reuse)·재활용(recycle)의 각 첫 머리글자로서 물자를 절약하고, 재활용하자는 환경운동이다. 쓰레기를 줄이고, 버릴 물건을 다시 사용하고, 재활용 제품을 적극 사용하자는 취지의 ‘쓰레기 제로’ 운동이기도 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당시 주부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물건 재활용 캠페인인 ‘아나바다 운동’이 떠오른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뜻의 줄임말인 ‘아나바다 운동’은 지구촌 환경위기가 갈수록 깊어지는 시대에 두고두고 그 가치가 빛나는 소비자 운동이다. 기업의 ESG 실천을 돕는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의미 있는 소비 기회를, 취약 계층에게는 자립의 발판을 제공하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지속 가능 모델인 ‘기빙플러스’에 대한 호응도를 더욱 넓혀야 한다. ‘전국 유통망 100개 점 확보’라는 기빙플러스의 새로운 목표가 하루빨리 달성되도록 온 국가사회의 전폭적인 관심과 성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쟁은 당사국을 넘어 세계적 범위에서 개인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뉴스는 연일 공습 지점과 전쟁의 경과, 첨단 무기의 전과 등을 경쟁하듯 보도한다. 세계 지도 위에서 국가라는 장기 말을 옮기듯 중계되는 전쟁 담론 속에서, 정작 전쟁이 개인의 삶, 특히 사회적 약자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국제 정세를 읽는 ‘국가’적 관점도 중요하지만, 그 시선이 놓치기 쉬운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에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 전쟁이 과연 누구에게 가장 가혹한 무게를 지우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우선 전선으로 가장 먼저 투입되는 이들이 누구인지 살펴야 한다. 모병제를 시행하는 미국에서 군입대는 종종 애국심만큼이나 절박한 경제적 선택의 결과다. 학비 마련이나 의료 혜택, 혹은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제복을 입은 젊은 장병들의 상당수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속해 있다. 국가의 결단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정작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사회에서 충분한 삶의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청년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입대를 선택했을지라도, 막상 전쟁이 터진 뒤 이를 거부할 권리는 없다. 전쟁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탈영이나 명령 불복종으로 기소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이들에게 선택권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의 여파는 국경을 넘어 수많은 시민의 일상으로도 침투하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치솟은 유가는 생활 물가 전반을 압박한다.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은 누군가에게는 소비를 조금 줄여야 하는 불편함 정도일지 모르나,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고물가는 곧 생존의 위협이다. 소득의 대부분을 식비와 주거비로 지출하는 저소득 계층에게 식재료 가격과 에너지 비용의 상승은 당장의 끼니를 부실하게 만들고, 기본적인 냉난방조차 망설이게 하는 가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위험은 무차별적으로 닥쳐오지만, 그 위험을 견뎌낼 경제적·사회적 자산이 부족한 시민들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게 타격을 입는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마저 포화의 한복판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와 같은 민간 시설이 공격받고 어린 생명들이 희생되는 뉴스는, 전쟁이 얼마나 잔혹하게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겨냥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전쟁을 결정하는 이들은 안전한 지하 벙커에 머물 수 있을지언정, 그 대가는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 일터를 지키던 평범한 시민들의 무너진 일상으로 치러지고 있다. 결국 전쟁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 증명하는 현장이다. 국가 간의 관계와 전쟁의 명분을 논하기에 앞서, 그 결정이 어떤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무게로 쏟아질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이번 전쟁을 지켜보며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승패의 결과가 아니다. 이 전쟁이 누구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피해와 희생에 무감하지 않은가.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