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전담을 맡으면 좋겠어요.” 최근 몇 년 사이, 교사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다. 학급 담임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느덧 교육계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담임을 맡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예외나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되어버린 것이다. 담임 기피 현상이 이토록 뚜렷해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행정 업무의 과중함이 있다. 공문과 회의, 수시로 바뀌는 지침에 따라 정리해야 하는 각종 문서들, 여기에 학부모 상담과 학생 생활지도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보다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원’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교사들의 목소리 중엔 수업이 쉬는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라는 자조도 있다. 교육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하루의 대부분을 서류 처리에 소진하는 구조가 담임 교사를 소모시키고 있다. 둘째는 학부모와의 갈등이다. 일부 학부모는 교사 개인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 늦은 밤이나 주말에 연락하고, 학급 운영 전반에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과도한 민원을 제기한다. 교사의 모든 말과 행동이 기록되고 감시되는 듯한 압박 속에서, 교사는 불안과 긴장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텨야 한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민원은 담임 교사의 심리적 부담을 키운다. 셋째는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사회적 기준 변화다. 예전엔 훈육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던 언행이 이제는 쉽게 인권침해로 오인된다. 물론 시대 변화에 따라 교사의 지도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훈육이고 어디까지가 아동학대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애매한 잣대는 교사를 위축시키고, 결국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담임을 맡지 않겠다는 선택은 합리적인 자기 보호일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선택이 개별 교사의 몫을 넘어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일반교사들이 기피하는 담임 교사 자리는 기간제 교사처럼 선택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넘어간다. 구조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떠맡는 경우가 생긴다. 답답한 건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행정업무를 줄이고, 교사의 권위를 회복시키며, 학부모와의 소통을 조율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말은 교육계에서 오래전부터 나오던 이야기다. 하지만 변화는 더디고, 될 수 있으면 담임은 피하자는 현상은 교사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로 굳어졌다. 교사는 단지 수업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정서를 돌보고, 관계를 이끌며, 삶의 이정표를 함께 그려가는 사람이다. 그 중심에 담임 교사가 있다. 담임 기피가 확산될수록, 학교는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조금씩 힘들어지는 구조가 된다. 지금 우리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동기부여와 사명감을 교사에게 불어 넣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교사가 존중받고, 담임을 맡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 반을 책임진다는 것이 교사의 용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날을 다시 기대할 수 있을까. 교육 현장의 목소리에 늦었지만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25년 6월 23일이 이재명 대통령은 장관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다. 안규백(국방부)·정동영(통일부)·조현(외교부) 등 12명의 장관(국무조정실장 포함) 후보자를 지명했다. 이번 인사는 정치권, 관료 출신, 민간 전문가 등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포진시킨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역별로 수도권 2명, 호남 4명, 대구·경북 2명, 부산·경남 2명, 충청권 1명, 강원권 1명으로 균형을 고려한 점과 특정 대학에 치우치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번 새 정부의 인사를 조선시대 인사원칙과 비교하면 어떨까? 이번 인사는 국회의원 출신이 6명으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우며, 정무직 역량을 중시한 구성이다. 동시에 LG AI 연구원장이었던 배경훈, 네이버 대표 출신인 한성숙, 노동계에서 활동한 김영훈 등 사회 각계 전문가를 발탁해 실무 능력도 함께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선시대 인사제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과거제 합격자와 함께 ‘천거제(薦擧制)’를 통해 덕성과 실력이 뛰어난 인재를 관직에 기용했던 조선시대의 전통과 유사하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전관(前官)의 평판과 근무 성적을 중시했는데, 이번에도 다수의 전직 관료와 공직 경험자를 중심으로 인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그 당시에도 특정 지역 출신의 관직 독점을 막기 위해 ‘지역 안배’ 원칙을 두었다. 이번 인사 역시 전국 주요 권역을 고르게 안배해, 전통적인 인사 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국방, 통일, 외교 등 민감한 부서에 정치권과 관료가 적절히 배치되었고, 보훈부에는 야당 출신 인사(권오을 전의원)와 전 정부의 국무위원(송미령)을 다시 기용해 정치적 포용의 메시지도 보인다. 다만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의 비중이 과도하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될 경우 도덕성과 자질 검증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을 하였던 사례가 있었다. 1519년 중종 14년 현량과(賢良科) 제도였다. 이는 대사헌 조광조가 주도하여 덕망과 인품, 도덕성과 학문이 뛰어난 인재들을 중앙정계에 진입시키기 위한 추천(推薦) 기반의 인재등용 통로였다. 사헌부·사간원·홍문관 삼사(三司)와 지방 유림이 천거한 인물을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하였으며, 철저히 능력과 인격 중심으로 선발하였다. 이 현량과를 통해 선발된 28명의 인물 중에 다수가 훗날 조선중기 사림정치를 이끈 핵심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혁적인 인재 등용은 훈구세력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되었으며, 훈구파의 탄핵과 모함으로 기묘사화가 발생하였다. 현량과는 단 한 차례의 시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 제도가 지향하였던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단순한 시험 성적이 아닌 도덕성과 책임감, 전문성과 공익성을 고루 갖춘 인물을 공직에 등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시대는 현량과와 같은 이상적 제도를 다시 한번 시도할 용기가 있는가?” 최근에 이재명 정부는 국민추천제를 통해 공직 후보자를 추천받는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개방적이며 공평한 공무원 채용제도가 확고하게 제도화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개혁적이며 책임감이 투철한 전문가가 등용이 되어 대한민국을 보다 민주화된 복지사회로 발전시켜 주기를 모든 국민이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의 부족이나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립·은둔 청년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데도 이들을 위한 정부 및 각 지자체의 지원 프로그램이 크게 미흡하다는 비판이다. 청년의 고립·은둔으로 인한 사회 경제 활동 저하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7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은둔·고립 청년들에게 필요한 지속적인 관심과 라포 형성 지원을 위한 인프라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경기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전국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2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국무조정실이 공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집에만 있는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5.2%로 집계됐는데 이는 2022년 조사(2.4%)보다 2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고립 은둔 청년 발생의 주요 사유로는 취업이나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이 꼽혔다. 경기복지재단의 지난해 경기도 고립·은둔 청년실태조사의 경우도 도 전체 고립 비율은 2019년 5.3%, 2021년 6.3%, 2023년 6.8%로 해마다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문제는 도를 비롯해 전국의 고립·은둔 청년이 증가하면서 정부 및 각 지자체, 민간단체가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초기 발굴에 집중돼 있어 장기적인 효과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시, 수원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고립·은둔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위해 대인관계 형성, 조직 적응력 향상, 일 경험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사례관리를 하고 있다. 동아리 활동, 동행 힐링 여행 등 다양한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작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필요한 지속적인 관심과 라포 형성 지원을 위한 인프라는 태부족한 실정이다. 도내 한 지자체 청년 복지 관계자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경우도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수준으로서 상담 인력마저도 충분하지 않다고 실토했다. 고립 청년이란 외출 빈도가 낮고 사회활동이 현저히 줄어든 상태로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힘든 상태인 이들을 말한다. 이 중에서도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제한된 공간에 가둔 이들을 은둔 청년이라고 한다. 최근 공개된 2024년 고립·은둔 청년 비율 5.2%,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비율 0.9%를 우리나라 19~34세 청년 인구 약 1000만 명에 적용하면 고립·은둔 청년이 50만 명을 넘어선다는 얘기가 된다. 이 같은 고립·은둔은 대부분 청소년기부터 일찌감치 시작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4년 전국 9~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2139명 중 72.3%가 18세 이하에 고립·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초등학생 때 고립·은둔 상태가 되는 경우도 무려 17%에 달했다. 재고립 문제도 심각하다. 고립된 청소년 중 71.7%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 절반 이상이 벗어나려고 시도했지만, 다시 고립으로 돌아간 경험이 적지 않았다. 특히 응답자의 43.5%는 고립·은둔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응답해, 이들이 여전히 사회적 지원 사각지대레 놓인 현실을 입증했다. 현재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은 선제적 예방보다 문제 발생 후 임기응변 중심인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아동·청소년 단계에서 전수조사와 위험군 발굴, 학교·청소년기관 중심 조기 개입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관련 법률·조례를 강화해 실효성 있는 보호·지원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고립·은둔 청년 대책 중에서 ‘지속 가능한 지원’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청년이 급속히 늘어나는 국가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을 수 있나. 고립·은둔 청년 발생의 예방·개입·회복 전 과정에 걸친 사회 안전망 전면 재설계가 시급하다.
지난 5월 지역균형 발전 사업 평가 위원으로 경기 북부 ‘삼천(동두천, 포천, 연천)’을 방문하였다. 프리미티브한 대자연이 펼쳐진 이곳에 발을 디디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손상되지 않은 자연, 신선한 공기, 풍부한 먹거리, 사람이 살기에 이 보다 좋은 곳은 없으리라. 한 가지 흠이 있다면 큰 병원과 문화시설이 빈약하다는 것. 이 점만 잘 보완하면 ‘삼천’은 지상낙원이라 할 수 있다. 부족한 의료 시설은 원격 진료센터를 설치하여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저밀도 지역의 부족한 의료시설을 원격 진료센터 설치로 보완 중이다. 프랑스는 2001년부터 이 방식을 추진해 왔지만 사회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2018년 오메디스(Omedys)라는 회사가 설립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두 전직 응급의학과 의사가 원격 상담 전용 진료실 두 곳을 오픈한 것이다. 금상첨화로 이해 9월부터 원격 진료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고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바야흐로 원격 의료의 시대가 시작됐다. 원격 의료는 병원 응급실의 부담을 덜어주고 특히 시골, 교외 등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 의사와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접근성을 높여 준다. 또한 환자와 의사의 진료 시간을 재창조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동부 샹파뉴 아르덴과 같은 의료 사막지역은 원격 상담실 수를 대폭 늘리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인구 대비 의사 밀도가 전국 평균보다 30% 낮은 지역을 의료 사막으로 간주한다. 현재 아르덴 지역에서는 보건소, 약국, 양로원, 이주민 접수 센터, 장애인 시설 등에 약 100여 개의 원격 상담실을 설치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의료 자원의 지역적 분포는 도시와 지방 간의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한다. 좋은 의료 인프라와 우수한 의사는 수도권에 모두 집중되어 있다. 그 결과, 농촌 지역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의료 사막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에 대처할 방법은 원격 진료의 활성화가 아닐까? 원격 상담 또는 원격 진료는 환자나 의료 전문가가 이동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의사가 특정 지역에 없거나 환자가 이동하기 어려운 경우에 특히 유용하다. 인터넷 연결, 마이크, 스피커, 웹캠이 장착된 컴퓨터, 디지털 태블릿 또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의사는 환자가 제공하는 시각적 정보와 세부 정보를 통해 진단을 내리고 치료 과정을 계획할 수 있다. 원격 전문 의료의 진단 또는 치료 전략은 최소 두 명의 의사 간의 교환으로 가능하다. 이러한 형태의 원격 진료는 심장학, 산부인과, 피부과의 1차 진료 또는 응급 진료에 적합하다. 데이터(심전도, 초음파 스캔, 피부 병변 사진 등)는 전문의에게 전송되어 동료가 적절한 치료를 진단하고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처럼 원격 의료는 의사 부족과 농촌 인구의 지리적 고립이라는 문제에 대응하여 하나의 해결책으로 아주 좋다. 또한 의사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여 집에 머물면서 대도시 외곽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유념할 사항이 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원격 의료를 지나치게 남용하고 사업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원격 진료에는 분명 한계가 따르고, 또한 원격 의료는 비즈니스가 아닌 윤리가 핵심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모든 화두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AI가 아닌 그 무엇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여유조차 쉽지 않다. 쏟아지는 새로운 개념, 기술, 서비스 등을 쫓아가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이나 크기는 가늠조차 어렵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문가 전망이 며칠 사이 겸연쩍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언급이 잦은 소버린(sovereign) AI는 한동안 우리 AI 산업 전반의 가늠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네이버에 따르면 “소버린 AI는 각 국가가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해 그 국가나 지역의 제도, 문화, 역사, 가치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AI”다. 이를 판단하는 합리적 기준은 “기술적 자립 여부보다는 해당 국가가 사용하는 AI에 자국의 가치관과 윤리, 문화적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었는지, 그리고 해당 국가의 이익과 존속을 지켜낼 수 있는지”다. 잘 알려진 것처럼 현재 AI 분야의 세계 패권은 미국과 중국이 가지고 있다. 이들의 AI 시장 점유율, 투자 및 인프라 비율, 특허 비율은 절대적이다. 이들이 어떤 국가, 어떤 언어를 중심으로 데이터 학습을 했는지는 뻔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자신만의 AI 기술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산업이나 경제만 국한되지 않는다. 몇 개 국가가 독점하는, 한정되거나 편향된 AI가 가져올 국가 및 문화 정체성 혼란이 우려된다. 급기야 시장은 물론 문화 종속까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AI 산업에서 자주와 주권의 강조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러한 소버린 AI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뉴스라는 콘텐츠를 다시 보게 만든다. 뉴스는 한 사회의 일기다. 시시각각 일어나는 사회적 의미를 가진 이슈가 정리되고 평가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아우르고 장기간에 걸쳐 생산되기에 한 사회의 역사로서 축적된다. 한 이슈에 대해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각양각색의 시각을 접할 수 있기에 사회적 다양성이 확보된다. 물론 우리 뉴스에 대한 비판과 한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제도, 문화, 역사, 가치관 등을 이해하는 AI 개발을 위한 데이터의 핵심 원천 중 하나는 뉴스 콘텐츠일 수밖에 없다. 뉴스 콘텐츠는 양질의 데이터로서 AI 모델의 학습과 검증에 최적화돼 있다. 단어의 연결과 언어적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필수다. 특히 신문의 뉴스 콘텐츠는 이미 체계적이고 정제돼 있는 전형적인 정형 데이터다. 그리고 지역신문의 뉴스 콘텐츠는 AI 시대에 자칫 흔들릴 수 있는 해당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를 굳건하게 만들 수 있는 근간이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역이 모여 우리 사회가 구축된다. 우리나라 소버린 AI 전략에서 지역신문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안타까운 점은 뉴스 저작권을 둘러싼 우리 언론사와 빅테크 기업의 갈등이다. 언론사는 저작권 침해를, 빅테크 기업은 공정 이용(fair use)을 각각 주장한다. 양측이 주장이 첨예해 쉽사리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 현재 저작권 전반은 특정 국가에만 한정해 주장하기 어렵기에 해외 사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뉴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해외 판결이나 합의에 양측의 희비가 엇갈린다.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법이나 제도의 맹점을 파고드는 해외 빅테크 기업의 공세다. 법과 제도의 미비는 우리 소버린 AI 전략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이제 우리 언론사와 빅테크 기업이 머리를 맞대 합의를 도출해야 할 때다.
안타깝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마약청정국’이 아니다. 마약 범죄가 급증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가 됐다. 최근에도 태국에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5억 원 상당의 마약을 들여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지난 16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으로 필로폰 6㎏과 대마 5.2㎏을 밀반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 당시인 2023년 1월엔 말레이시아 국적 피의자들이 필로폰 약 74㎏ 밀수 범행을 저지르다가 검거됐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경찰·관세청 고위 간부 등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에 대검찰청은 지난 10일 경찰,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과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합동수사팀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대검찰청이 펴낸 2023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2년 마약류 사범 검거 인원은 1만 8395명이었는데 2023년엔 2만 7611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젊은 층에서 마약 범죄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20∼30대가 전체의 50% 이상이다. 청소년들의 마약 범죄도 심각하다. 10대 마약류사범은 2021년 450명에서 2023년 1477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청소년·청년층에서 마약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SNS 등을 통해 유통이 쉬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아울러 전자담배 형태의 마약류가 증가한 것도 마약확산의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의뢰된 마약류 감정 건수는 6년 사이 약 3배 늘어났는데 이 가운데 눈으로 봐서는 마약임을 눈치 채기 힘든 전자담배 형태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국민들을 경악케 한 마약 범죄가 발생했다. 지난 4월 강릉 옥계항에 입항한 외국 화물선에서 마약의 한 종류인 코카인 1.7톤이 적발됐다. 이는 국내에서 적발된 역대 최대 규모로 570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마약 조직이 페루 공해 상에서 화물선에 코카인을 실은 뒤 한국과 일본, 중국 해역에서 이른바 ‘해상 던지기’ 수법으로 밀반입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달 10일에도 마약조직이 선박을 이용, 남미에서 부산항으로 코카인 720kg 밀반입을 시도하다가 적발된 바 있다. 최근 5년 사이 해경에 적발된 해상 밀수만 연평균 600건 이상이란다. 선박을 이용한 해상밀수를 선호하는 이유는 항공기보다 검색이 덜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항공편을 이용한 마약 밀반입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경기신문(5월 30일자 7면, ‘로션 둔갑한 마약…밀반입 일당 철창 행’)에 따르면 경찰이 야산에서 마약을 던지기 수법으로 거래한다는 첩보를 입수, 현장에 잠복해 있다가 중 마약을 찾으러 온 중국인 2명을 검거해 필로폰 1kg을 압수했다고 한다. 수사를 통해 국내 판매책(태국 국적)을 검거하고, 보관 중이던 필로폰 300g과 야산에 숨긴 필로폰 3kg을 찾아냈다. 수사가 계속됐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려던 밀수책을 체포했다. 일행의 수하물에서는 필로폰 15.6kg가 담긴 바디로션 통 37개가 발견됐다. 이어 태국 마약통제청 등과 공조 수사를 통해 태국 현지에서 마약 7.6kg을 추가로 압수하고 보관자를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이 태국에서도 마약을 보관하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해 현지에 파견된 경찰 협력관을 통해 태국 마약통제청 등과 공조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태국 현지에서 마약 7.6kg을 추가로 압수하고 이를 보관하던 피의자를 붙잡았다. 압수한 필로폰은 총 27.5kg(110억 원 상당)인데 91만 7000여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관계 당국은 전담 인력 등을 투입해 마약 밀반입 차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마약 조직의 밀수 수법 역시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의 말처럼 “마약류 밀반입 수법에 대한 첩보 수집 활동을 강화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마약 공급 차단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 점점 교묘해지는 마약범죄는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마약 사범에 대한 처벌을 더 강화하라. 아울러 치료와 재활을 병행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 역시 마련하기 바란다.
‘막말’이란 말의 의미 정체(正體)는 무엇일까. ‘막’이란 접두어는 ‘함부로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막가파’, ‘막가자는 거냐?’, ‘막되어 먹은 놈’ 등의 ‘막’이 바로 그것이다. ‘막’에는 ‘거칠다’라는 뜻도 있다. 막걸리는 ‘막’(거칠게)과 ‘거르다’가 합성된 말로, ‘거칠게 걸러낸 술’이라는 뜻이다. 막말은 함부로 거칠게 해 대는 말이다. 나쁜 말, 맞다. 또 ‘막’은 ‘밑바닥’, ‘낮은’ 등의 뜻도 있다. ‘막장 인생’이 ‘밑바닥 인생’으로, ‘막노동’이 ‘별다른 기술 없이 몸으로 감당하는 밑바닥 등급의 노동’으로 통하는 데서, ‘막도장’이란 말이 ‘임시변통의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만든 값싼 도장’이었던 데서, 막말의 숨은 의미소를 볼 수 있다. 막말은 말의 품격으로서는 밑바닥 수준의 말이다. 나쁜 말, 맞다. ‘막’은 ‘끝’, ‘마지막’ 등의 뜻도 있다. ‘막차’란 말이 ‘마지막 차’를 일컫는 데서, ‘막내’가 ‘맨끝의 자식’을 뜻하는 데서, ‘막판’이 ‘마지막 판’임을 나타내는 데서, ‘막다른 길’이 ‘길이 끝나는 곳’임을 뜻하는 데서 ‘막’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막’에는 심리적으로 ‘마지막 의식’이 숨어 있다. ‘마지막 의식’이란 무엇이겠는가. 역사와 인간에 대한 특별한 성찰이 있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의식이 비장한 가치로 승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의식, 즉 허무나 퇴폐의 감정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막말은 심리적으로 마지막의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까짓것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내지르는 말이다. 마지막이니, 지금 이후라는 것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럴 때의 막말이란 어떤 극언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허무와 분노와 좌절감이 막말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생테도 엄연히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점이다. 즉 별생각 없이 막말 쓰는 습관을 쌓아 나가다 보면, 나의 심리적 지향에 허무와 분노, 불만과 좌절, 원망과 저주 등의 악령이 들어어 살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급전직하(急轉直下) 추락하여 신음하고 있는 나의 불쌍한 자존감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점이야말로 우리의 가정·사회 교육이 유념해야 하는 대목이다. 언어에는 마성(魔性)이 있다. 언어는 자신을 사용하는 주체(인간)의 의식을 잠식하듯 지배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막말은 이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막말을 듣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대화적 양심으로 거르지 않고 내지르는, 감정의 해방구가 된 SNS 공간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SNS의 생태가 나의 일상 언어 영역으로 세차게 들어왔다. 아니, 그런 SNS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태를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막말이 일상적 언어생태가 되어 버렸다. SNS 생태에서의 막말 현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실의 언어문화로 옮겨 오게 마련이다. 자기 욕망의 좌절을 남 탓으로 몰아가려는 심리가 막말을 전방위로 투사한다. 어떤 SNS에서 내 나름대로 합리적인 답글을 올려놓았는데, 누군가 무작정 나를 망가뜨리는 막말 댓글로 자기감정을 배설한다. 나는 내 답글을 조용히 내린다. 세상은 막말을 그냥 자극적으로 소비하며 즐기는 듯하다. 자극성 강한, 돌직구 막말들에 감정적 후련함을 따라가는 사이, 그 후련함의 몇 배쯤 되는 해독을 너나없이 모두 나누어 가지고 사는 세상 아닌지 모르겠다.
냉장고 속에서 사과 몇 개가 나왔다. 단단했던 사과는 쭈글쭈글 말라가고 있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잊고 있던 내가 한심했다. 맛보다도 붉은 빛깔을 잃어버린 것이 더 속상했다. 과일만큼 예쁜 식물이 있을까. 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나는 과일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과일가게 앞을 지날 때는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그 앞에서 과일을 구경하는 일은 소소한 행복감을 준다. 요즘에는 과일가게라고 부를만한 곳이 많지 않아서 예전처럼 그런 행복을 누리지는 못한다. 대형마트에 자리를 내 준 과일코너에서는 그런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다. 과일 앞에서는 침샘이 폭발한다. 봄이면 깨알 같은 씨앗이 톡톡 박힌 귀여운 딸기는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단내를 풍긴다. 무더운 여름의 푸른 수박과 노란 참외가 가득한 과일가게는 대지의 건강함을 한껏 보여주는 장소 같다. 철마다 다른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는 과일가게 앞에서는 그것들을 지나간 햇살과 바람과 비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사람을 생각한다. 더위와 갈증을 풀어주는 한여름의 수박 같은 사람, 빼곡한 이야기를 알알이 매달고 있는 포도송이 같은 사람, 한 입 베어 물면 새콤한 과즙이 가득 고이는 여름 끝물의 풋사과 같은 사람을. 단단한 사람, 무른 사람, 속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 사람, 덤덤하지만 늘 그대로인 사람을. 과일을 좋아하지만 복숭아는 내가 먹지 못하는 과일이다. 털 알레르기 때문이다. 예민한 피부를 가진 탓에 살짝 닿기만 해도 종일 따끔거린다. 보송보송한 털이 감싸고 있는 분홍빛 복숭아는 언젠가는 극복하고 싶은 과일이다. 이것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름다운 당신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비와 바람을 이기고 탐스럽게 열매 맺은 과일처럼, 우리는 각자의 고난을 이기고 드러난 열매들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의 빛과 어둠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고 말 건네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과일은 혐오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 바람과 햇살과 태풍을 오롯이 견디고 여물었다. 맛과 모양과 빛깔이 다르지만 과육에 가득 담긴 비타민. 우리는 서로의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비타민 같은 존재들이다. 과일가게를 지날 때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제 색을 보여주는 과일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지 그 앞에 발걸음을 멈추어 봐도 좋겠다. 오래전 흐릿한 전구 아래 반질반질하게 닦인 사과와 탱글탱글한 귤이 반짝이던 허름한 과일가게가 있었다. 겨울을 따스하게 밝혀주던 그런 옛날이 있었다. “언니는 참 사람을 좋아해.” 오래전 친한 후배가 내게 한 말이다. 나는 정말 사람을 좋아하는가? 사는 동안 내내 혼란스러웠다. 사람은 좋아하는 것에서 상처 입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데 오래 걸렸다. 냉장고 속에서 말라가는 줄도 모르고 방치한 사과를 버리지 않고 다 먹어야겠다. 과일만큼 예쁜 식물이 있을까, 사람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다시, 좋아하는 것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뜨거운 햇살과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과일이 달게 익어가고 있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내 삶의 풋내 나는 시간을 다녀간 그대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약 1년 전인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 쌓여 있던 리튬 배터리 더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첫 배터리 폭발 이후 동시다발적인 폭발이 발생하면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이 사고로 23명(내국인 5명, 중국 국적 17명, 라오스 국적 1명)이 사망했고 8명이 다쳤다. 리튬 배터리의 군납 기준을 맞추려는 욕심에 근로자의 안전을 뒷전으로 두면서 불거진 총체적인 인재(人災)라는 것이 경찰의 수사결과였다. ‘군납 기준을 맞추기 위한 검사용 시료 바꿔치기’ ‘타 기관으로부터 받은 시험성적서의 데이터를 조작해 제출’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하루 평균 생산량의 두 배를 목표로 제조 공정을 무리하게 가동했다. 참사가 발생 이틀 전에도 발열전지 1개가 폭발했지만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숙련되지 않은 일용직 근로자들이 투입됐고, 공장 내 대피로를 제대로 조성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났다. 32명의 사상자가 난 참사였지만 아리셀 대표 등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 유족과 피해자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에 23일 아리셀산재피해가족협의회와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는 수원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가족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면서 “23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박 대표는 보석 허가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반드시 살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관련기사: 24일자 7면, 아리셀 참사 유가족, ‘적반하장’ 박순관에 울분 토로) 사고 이후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자신을 ‘단순 투자자’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였다’, ‘저는 경영책임자가 아니다’라고 책임을 회피하며 사고 원인이 사망한 희생자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불량 전지의 열폭주’로 불이 났고, ‘비상구 설치와 같은 대피경로 확보미흡’이 대형 인명피해의 원인이라고 경찰이 밝혔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희생자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민사소송까지 제기하려 했다니 그 후안무치에 말문이 막힌다. 당시 사고로 남편을 잃은 유가족 최현주 씨에 따르면 남편이 “계속 전지에서 미세 발열이 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아리셀은 오히려 제 남편이 방치했고 화재로 이어졌다”고 뒤집어씌우면서 민사소송으로 위협하며 합의하자고 했단다. 합의 조건은 ‘처벌불원서’였다고 한다.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8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업체의 대표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서명해야 하는 것이 맞느냐는 최 씨의 하소연을 재판부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사고 이후 산업안전 관리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고조됐다. 하지만 아리셀 측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유가족들의 고통은 하루하루 심해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아리셀 모회사인 에스코넥 앞에서 농성도 했다. 그럼에도 사측은 진심 어린 사과나 직접적인 보상 조치 없이 사건을 덮으려 한다며 분노하고 있다. 이로 인해 깊은 상처도 받고 있다.(관련기사: 23일자 7면, 화성 아리셀 참사 후 1년…아직도 ‘책임지는 자’ 없다) 이에 유족들은 수원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순관 아리셀 대표 등 책임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생명을 경시한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에 대한 철저한 처벌만이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엄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박순관은 법원의 보석 허가로 석방돼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면서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박순관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재판 방청, 서명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리셀 측이 책임 있는 사과와 피해 보상,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내놓길 바란다. 아울러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제도의 촘촘한 정비도 필요하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여를 우리 국민을 잠 못 이루게 하는 윤석열 정권은 마침내 끝이 났다. 박근혜 정권과 윤석열 정권, 시퍼렇게 살아있는 두 권력을 촛불과 응원봉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갈아치웠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실제로 보면 민주 시민들의 불의에 대한 단호한 의분과 민주제도에 대한 실천적 의지로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정권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 정부가 탄생했고 많은 시민의 환호와 희망 안에서 출범했다. 그동안 답답한 여러 사안에 대해, 특별히 새로운 정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일할 사람들을 추천하거나 정책 제안을 자유롭게 추천하고 제안하도록 국민을 독려하고 있다. 정말 상쾌한 분위기로 새 정부가 출범하여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한쪽에서 통합정치를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수의 가장 유명한 말씀 중의 하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어떤 이들은 이러한 논리로 그동안 “상대 당의 주요 인물들을 박해한 자들을 용서하고 통합적 정치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물론 겸연쩍은 표정으로 해야 할 말을 너무도 당당하게 외친다. 이재명 정권도 출범할 때부터 통합정치를 확실하게 표명했다. 복수의 정치를 해서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복수(revenge)는 항상 또 복수를 부른다. 하여, 보복의 정치는 낮은 수준의 정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정법을 어긴 사람들을 없던 일로 무마하고 좋은 게 좋다고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기를 원하는가? 모든 국민의 상식에 이 질문을 던지면 거의 99.999%는 슬그머니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니, 통합과 용서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고 나라를 이끌어 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실정법을 어긴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처벌을 해야 한다. 이를 보복 정치네 통합의 정치를 왜 안 하냐 등의 어리석은 말로 공정과 정의를 이뤄야 하는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또 다른 내란을 보게 될 것이다. 하여, 이번 국민주권 정부는 투명하고 단호하게 법을 어긴 사람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처벌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미군정과 리승만 정권에 의해 우리 국민을 탄압한 친일 인사들을 무죄 방면하고 오히려 권력을 쥐여 줬기에(일본 순사가 그대로 경찰이 되는 둥) 지금까지 그 자손들이 그 기득권으로 힘을 휘두르며 주권자를 무시하고 있다. 하여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하루빨리 범법자들을 수사하고 재판하여 마땅한 처벌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내란 우두머리를 “즉시항고”도 하지 않아 반바지 입고 돌아다니게 하는 검찰, 청문회 전에 총리 후보자의 이야기도 들어보지도 않고 일개 시의원의 고발에 “즉시수사” 배당하는 검찰은 하루빨리 해체되어야 한다. 검찰 개혁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면 유예기간 없이 “즉시 실행”해야 한다. 덧붙여 독일 나찌 시절의 “히틀러 유겐트(히틀러 소년단)”처럼 아이들에게 편향되고 거짓된 선전을 가르치고 가스라이팅 시키는 리박스쿨(리승만, 박정히 스쿨)도 엄밀하게 수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