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파트 하자 소송과 관련하여 과거에는 균열, 누수, 결로와 같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 결함’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지능형 홈네트워크’와 같은 정보통신 설비의 미시공 여부가 수십억 원대 소송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심에는 ‘홈게이트웨이(Home Gateway)’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파트 거실 벽면에서 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 형태의 단말기를 ‘월패드(Wall-Pad)’라고 부릅니다. 월패드는 사용자가 조명, 난방, 가스를 제어하거나 방문객을 확인하는 인터페이스이고, ‘홈게이트웨이’는 세대 내 설치된 각종 기기(가스밸브, 조명, 도어록 등)와 외부 망(공용부 서버, 인터넷 등)을 하나로 연결해 데이터를 중개하는 장치입니다. 최근 분양된 아파트는 이러한 설비들을 통해서 내부나 외부에서도 조명, 냉난방 등의 관리를 할 수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09년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설치 및 기술기준‘을 제정하여, 주거 공간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화재나 가스 누출 같은 비상 상황 시 외부에서 신속히 대응하며, 나아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통해 입주자의 주거 편의를 극대화하도록 하였습니다. 홈게이트웨이는 현대적 아파트가 단순한 건물을 넘어 스마트한 ‘지능형 주택’으로 기능하기 위한 필수적인 인프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아파트 하자소송에서 ‘홈게이트웨이 미시공’은 외형상 “도면·기준에 있는 장비가 빠졌다”는 미시공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소송에서의 쟁점은 대개 “세대에 설치된 월패드가 홈게이트웨이 기능을 이미 수행하는지(대체시공 여부)”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시공사들은 과거에는 기술적 한계로 두 장치를 분리해 시공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월패드 내부에 홈게이트웨이 기능을 수행하는 칩셋이나 모듈이 통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법원은 하자 여부를 계약 내용(설계도서·시방서·분양계약 편입 여부)과 법령상 최저기준 충족 여부 등으로 종합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근 하급심 판결들은 일관되게 “월패드가 홈게이트웨이 기능(상호연동 기능)을 포함하면 별도 홈게이트웨이 미설치는 하자로 보기 어렵다”는 방향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그와 같은 판단의 근거로는 ①기술기준이 ‘월패드가 홈게이트웨이 기능을 포함하는 경우 월패드로 대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 ②KS 표준 역시 월패드·홈게이트웨이의 통합형 구성을 예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하자소송을 위한 사전진단이나 감정 초기에 “별도 홈게이트웨이가 없다”는 현장 관찰만으로 미시공 하자로 분류되었다가도, 시공사 측이 시험성적서·인증서·월패드 내부 연동기 설치 등을 제출하면 감정 의견이 ‘정상시공’으로 변경되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KC 인증 또는 방송통신기자재 적합등록 등 ‘기기인증’ 확보가 있으면 이를 홈게이트웨이 기능을 포함한 적합한 설비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파트 하자 소송에서‘홈게이트웨이’미시공 하자를 다투는 경우 기준이 요구하는 기능의 충족을 충족하지는 여부와 이를 입증하는 객관적 자료(인증, 시험성적서, 시스템 구성도)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교사는 언제 인공지능에게 대체될까. 이 주제를 꺼내면 많은 초등 교사들은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라며 고개를 젓는다. AI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나조차도 휴머노이드 로봇이 교단에 서는 장면은 공상과학 영화 속 설정으로만 느껴지니 다른 선생님들은 오죽할까. 인공지능 교사가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초등교육은 지식 전달을 넘어 돌봄을 포함하고 있고, 아이의 표정과 숨결을 읽어내는 일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교실은 관계의 공간이며, 교육은 결국 사람의 일이라는 믿음도 여전히 단단하다. 그러나 나는 그 확신이 얼마나 오래갈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기술은 늘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삶을 바꾸어왔다. 소설가 장강명이 쓴 <먼저 온 미래>에는 알파고 이후 바둑계의 풍경이 담겨 있다. 오랜 세월 프로 기사에게 사사하던 이들이 압도적인 실력의 AI를 마주하고 어느 순간부터 모니터로 배우는 걸 선택했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기보를 분석하고, 실수를 정확히 짚어내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컴퓨터 스승을 선택했다. 전통과 권위로 유지되던 배움의 방식은 효율과 성과 앞에서 재편되었다. 이미 우리는 유사한 변화를 곳곳에서 목격한다. 의료, 법률, 번역, 상담처럼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던 영역에서도 AI는 빠르게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미술, 음악, 글쓰기처럼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었던 직업부터 오히려 먼저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교사는 과연 안전지대에 있을까. 교사도 언젠가는 AI에게 대체될 것은 분명한데, 언제라는 시점의 문제가 남아있다. 교사가 AI에게 대체되는 순간은 기술의 완성도보다 세대의 경험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휴머노이드 로봇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면 어떨까. 로봇이 자장가를 불러주고, 동화를 읽어주며, 질문에 즉각 답하고,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설명을 제공하는 환경이 일상이 된다면 교단 앞의 로봇을 낯설어할 이유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그것은 침입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속일지 모른다. 익숙함은 거부감을 지운다. AI는 인간보다 방대한 지식을 저장하고, 피로하지 않으며, 동일한 설명을 수백 번 반복해도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처음 학습할 때의 정보에 편견이 없다면, 색안경을 끼고 현상을 바라보거나, 기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학습의 효율성만 놓고 본다면 AI는 이미 인간을 앞선 지 오래다. 남은 건 우리가 인간다움, 따뜻함이라 일컫는 요소인데, 이런 것조차 AI가 인간보다 잘한다고 칭찬을 받는 중이다. 교사가 AI에게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일은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믿음만으로 미래를 지킬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술과 공존하더라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교사의 역할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다. 아이의 삶을 해석하고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존재, 지식 너머의 의미를 묻는 존재로서 우리는 어떤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가.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교실에 가장 뛰어난 AI가 들어온다 해도, 아이들이 끝내 찾게 될 어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 답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교사는 예외일 것이라는 믿음 역시 언젠가 조용히 대체될지 모른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에 ‘사무장병원’이나 ‘면허대여 약국’ 등 불법 의료행위를 단속할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을 도입하는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일고 있다. 특사경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행정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수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의료계 등 일부 권한 남용에 대한 우려가 있으나 제도적 방지책 완비로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불법 의료행위로 인한 재정 누수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건보 인천경기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사무장병원’이나 ‘면허대여 약국’ 등 불법 의료행위로 인한 재정 누수 규모는 최근 10년 사이에 2조 9162억여 원에 달하며, 징수율은 8.79%에 그치고 있다. 이 가운데 경기·인천지역을 포함한 전체 누수 규모는 연간 약 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건보는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 등 불법 의료행위는 건강보험 재정을 잠식할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까지 위협한다고 강조한다. 현행 단속 체계는 사회적 이슈나 중대 범죄가 우선 수사 대상이 되면서 사건 처리에만 평균 11개월이 소요되고 있다. 특히 단속 기간 동안 증거 인멸이나 재산 은닉이 발생해 실질적인 환수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게 건보 측의 설명이다. 건보는 특사경을 도입해 수사 착수부터 송치까지의 기간을 단축하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지고 재정 누수 차단 효과도 기대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특사경 도입은 과도한 권한 부여라며 반발하고 있다. 행정기관이 수사권을 갖게 될 경우 의료기관에 대한 지나친 압박이나 권한 남용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의료계의 반대 의견이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이미 전문성을 갖춘 경찰 인력이 존재하는 만큼 별도의 수사권 부여는 부적절하다는 게 대한의사협회 측의 견해다. 의협은 보험자인 건보공단이 의료기관을 직접 수사할 경우 계약 당사자를 넘어 수직적 감독 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하지만 건보 측은 특사경 조직을 분리해 이사장 직속의 독립 조직으로 운영하고, 검사의 수사 지휘와 감독을 받도록 해 권한 남용을 방지토록 하면 문제가 없으리라는 입장이다. 특사경 지명 역시 복지부 장관의 추천과 관할 검찰청 검사장의 승인 후 제한적으로 이뤄져 수사 범위를 벗어날 경우 징계나 지명 철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특사경의 수사 범위를 사무장병원, 면허대여 약국 등 불법 기관으로 한정하면 일반 의료기관에 대한 무분별한 수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불법 개설 의료기관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으로 건보에 특사경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건보공단에 40명 규모의 특사경 지정을 지시한 이래 관련 논의가 진행돼왔다. 특사경 도입은 불법 개설 의료기관으로 인한 재정 손실을 줄이는 방안으로 대두된 해법 중 하나다. 물론 의료계 등의 우려를 불식할 촘촘한 대안을 마련해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어리석음도 경계해야 한다. 사무장병원이나 면허대여 약국의 폐해 일소는 어제오늘의 사회 문제가 아닌 시급한 과제다. 불법 의료행위로 인한 피해는 단지 건보 재정 누수에 그치지 않는다. 사무장병원은 형식상 합법 의료기관을 가장한 채 환자를 유인·유치하고, 과잉·허위 진료를 통해 건강보험 급여를 부적정하게 사용하도록 해 의료체계의 왜곡을 가져오는 부작용이 노출되기도 한다. 면허대여 약국에서 취급되는 의약품은 적정한 복약지도와 안전성 관리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 전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이기도 하다. 건보가 과도한 권한으로 정상 의료기관을 압박하는 부작용을 경계하면서, 불법 의료의 폐해를 불식할 방안으로 특사경 제도의 신속한 도입을 기대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주택 사업은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공익적 목적을 띤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특정 지역에는 ‘특별법’이라는 비단길을 깔아주고, 먼저 시작한 지역에는 ‘원칙과 절차’라는 가시밭길을 강요한다면 그것을 과연 정의로운 행정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최근 서초 서리풀지구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고무줄 행정’과 이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린 3.5기 신도시 토지주들의 참담한 심정을 고발하고자 한다. ◇서리풀만을 위한 ‘맞춤형 특별법’, 법 앞의 평등은 죽었다 최근 공공주택특별법 제26조 제3항이 신설되었다. 핵심은 ‘지구지정 전에도 협의취득(보상)을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국토부는 이를 통해 서리풀지구에 대해 공람공고 한 달 만에 지장물 조사 입찰을 마치고, 내년 말 보상이라는 유례없는 ‘속전속결’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반면, 우리 김포한강2 신도시는 어떠했는가? 2022년 11월 공람 이후 지구지정까지 무려 1년 8개월이 걸렸다. 주민들이 보상의 첫 단추인 지장물 조사를 간곡히 요청했을 때, 국토부는 "지구지정 전에는 전례가 없다", "행정 절차상 불가능하다"며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특정 지역만을 위해 법까지 만들어 ‘새치기 보상’을 대놓고 밀어붙이는 행태를 보며, 우리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 ◇50% 넘는 근저당, 이자 폭탄에 피눈물 흘리는 3.5기 토지주들 정부의 ‘천천히 행정’이 이어지는 동안, 김포한강2를 비롯해 평택지제, 의왕·군포·안산, 오산세교, 화성진안, 용인이동, 화성봉담, 광주산정 등 3.5기 신도시 토지주들의 삶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현재 이 지역 토지들의 근저당 설정 비율은 50%를 상회한다. 신도시 발표로 묶여버린 땅은 거래조차 되지 않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되었고, 토지주들은 매달 돌아오는 감당 못 할 이자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 대출을 받아 농사를 짓고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에게 사업 지연은 곧 파산 선고와 다름없다. 서리풀은 법까지 신설해 ‘지구지정 전 보상’이라는 특혜를 주면서, 왜 수년째 이자에 시달리며 보상만 기다려온 3.5기 신도시 주민들에게는 그 법적 잣대를 적용하지 않는가? 왜 우리에게만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라고 강요하는가? ◇‘고무줄 행정’ 중단하고 모든 지구에 평등한 보상 절차 적용하라 행정의 생명은 형평성이다. 국토부는 그간 관행적으로 지구계획 승인 이후에야 지장물 조사에 착수하며 주택 공급 지연의 책임을 절차 탓으로 돌려왔다. 하지만 서리풀에서 증명했듯, 의지만 있다면 지구지정 전에도 보상 절차 착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토부는 지금이라도 서리풀에만 적용하는 ‘특혜성 속도전’을 중단하고, 신설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김포한강2를 포함한 모든 3.5기 신도시 지구에도 즉각적인 보상 절차(지장물 조사 등)에 착수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만 허용되는 특별법은 공정이 아니라 폭력이다. 빚더미 위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토지주들의 피눈물을 외면하지 마라.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보편적 행정 원칙을 세우는 것만이 정부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희생자 유해발굴에 합의한 야마구치현 조세이 해저탄광 수몰사고는 한일관계사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상징적이다. 1942년 2월 3일에 일어난 사고였다. 희생자는 183명으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이었다. 일본정부는 장장 84년 동안 유해발굴 요청에 귀를 닫고 있었다. 일본 후생성은 잠수사 등 전문인력과 함께 현지방문을 했다. 일에 착수한 것이다. 필자는 이 사안을 접하면서 특히 탄광의 이름을 주목했다. ‘조세이’는 그 지명(地名)이 아니라, 광산현장의 문패다. 한자로는 장생(長生)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광산은 사고위험성이 높다. 게다가 ‘조세이’는 해저탄광이었다. 영안(永安. 오래오래 편안한 인생), 영광(榮光.힘들지만, 곧 부자로 살게 된다), 복강(福岡. 후쿠오카의 한자표기지만, 복을 받는다는 뜻), 수(壽. 장수) 등은 또다른 탄광의 이름이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말(불로장생. 不老長生)은 진시황 같은 절대권력자들의 꿈이었다. 바다 밑 그 어둡고 위험한 탄광! ‘長生’, 그 특별한 이름은 마치 일제가 강제동원한 조선인들에게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일하면 굶기지 않겠다, 노임도 잘 챙겨주겠다, 고향에 빨리 돌아가도록 해주겠다, 그 돈 가지고 고향에 가서 오래오래 잘살아라”, 하고 등을 두드리며 언제 무너질지, 물이 들어올지 모르는 바닷속 채탄장으로 몰아넣기 위한 선동구호였다.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만악(萬惡)의 현장에는 예외 없이 ‘長生’의 현수막이 나부꼈다. 그들의 요절(夭折)은 그렇게 때문에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긴 이름의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라는 시민단체다. 이 모임에서는 양국의 유족들, 시민단체들, 이 단체의 목적이 도움 되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형제자매가 되어 함께 활동하고 있다. 1991년 만들어졌다. 안타깝고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이 30년 넘도록 끊임없이 유해발굴을 외쳤지만 ‘쇠귀에 경읽기’의 세월이었다는 점이다. 두 나라 정상은 30년이 넘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10분만에 풀었다. 좋은 정치는 억울하고 가슴 아픈 사람들이 대를 이어 매달려야 하는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실은 ‘長生’만이 아니다. 100년 전, 일제가 정신대원(挺身隊員)을 모집할 때, 총독부 관리들이 “천황을 위하여 몸을 바치자”고 외치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신(神)이었던 천황과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개인과 집안의 영광(榮光)이라는 믿음을 가슴에 새기는 선동이요, 세뇌였다. “여성도 전쟁에 참여하여 영광을 누리자”고 유혹하여 군수공장과 위안소에 배치했다. 영광은 천황이 내려주는 은총이었다. 최남선, 이광수 같은 조선의 명사들까지 나서서 나라(일본)를 위하여 일하면 복(福)을 받는다고 열변을 토했다. 제국주의는 좋은 말들을 모두 이렇게 오염시켜 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쁜 정치인들이 세상을 망가뜨리고 국민을 지옥으로 몰아넣으려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짓은 말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말이 분명해서 좋다. 그의 발언에는 과장도 축소도 없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는다. 가장 듬직한 것은 흙수저로 태어나 오늘에 이르는 동안 겪은 신산고초의 기억들을 다종다기(多種多岐)의 정책에 녹여넣어 민생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3·1절 107주년이다. 그날 거리로 뛰쳐나갔던 갑남을녀, 장삼이사의 후손들이 이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무병장생(無病長生)하기를 빈다.
3월이다. 봄이 오는 길목이면서 일제에 항거한 민족적 거사인 3.1운동이 일어난 달이기도 하다. 국가보훈부가 지정하는 ‘2026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김향화·이선경 지사가 선정됐다. 이들은 수원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다. 김향화 지사는 ‘수원 기생만세운동’을 이끈 공로로 2009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선경 지사는 학생비밀결사조직 ‘구국민단’을 결성해 2012년 애국장을 받았다. 역사 속에서 잊혀져가던 두 사람의 독립운동 관련 사실을 발굴하고, 국가보훈부에 포상을 신청한 곳은 수원박물관이었다. 김향화 지사는 당시 가장 천대받던 기생의 신분이었다. 1897년 한성부(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수원으로 와 혼인했지만 곧바로 이혼하고 수원권번의 기생이 됐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다. 하지만 기생이면서도 일본군에게는 술도 따라주지 않았고 권주가도 부르지 않았다. 동료들에게도 이를 종용했다고 한다. 고종황제의 승하(1919년 1월 21일) 때는 수원 기생들과 함께 상경해 대한문 앞에서 망곡을 했다. 1919년 3월 29일엔 수원권번 기생 33명과 함께 자혜의원(현 화성행궁 봉수당) 앞 일본 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곧바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두 달 간 구금된 상태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은 뒤 서대문형무소로 넘겨져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복역 이후의 관련 기록은 찾을 수 없다. 1950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수원시가 김 지사의 자취를 백방으로 찾아 나섰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 공훈 심사를 신청했고 대한민국은 김 지사의 공적을 인정해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대통령 표창은 수원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이를 받을 후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원시와 시민들의 김향화 지사 현양 사업도 펼쳐졌다. 수원시립공연단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9월 5일부터 7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창작 뮤지컬 ‘향화’를 공연했다. 수원에서 오랫동안 연극활동을 해 온 고영익 작가도 같은 해 김 지사의 이야기를 담은 희곡집 ‘잊혀진 혼! 예기’를 출간했다. 수원시 여성문화공간-휴(休)는 김 지사 등 여성독립운동가의 족적을 답사하며 삶과 수원의 역사를 되새기는 특별 탐방 프로그램 ‘여성독립 운동가, 그 길 위의 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선경 지사는 ‘수원의 유관순’이라고도 불리는 독립운동가다. 1902년 수원군 수원면 산루리(현 팔달구 중동·영동·교동 일원의 옛 지명)에서 태어나 수원공립보통학교(현 신풍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 숙명여학교에 다니던 중 3.1만세 운동에 참여, 3월 5일 서울에서 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됐다. 이후 경기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였던 김세환의 밑에서 연락 임무를 담당했다. 1920년엔 박선태 등과 ‘구국민단’을 결성해 비밀 활동을 펼쳤다. 서호와 삼일학교에서 비밀회합을 가졌다. 간호사가 되어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하려 했지만 일제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옥고를 치르던 중 혹독한 고문이 이어졌다. 고문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재판정에도 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머지않아 옥사할 것이라고 예상한 일제는 이선경을 석방했다. 이미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상태여서 막내동생 이용성이 업어서 귀가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석방 9일째 되던 날 순국 했다. 그때 나이는 유관순과 같은 19살이었다. 김향화·이선경 지사는 일신의 영달을 마다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영웅들이다. 수원시는 이들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수원역사 상설전시실에 ‘수원의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관련 유물과 영상을 전시하고 있다. 아울러 수원박물관 로비엔 김향화·이선경 두 여성지사의 독립운동 관련 영상을 상영한다. 김향화·이선경 지사가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 까지 수원시가 쏟은 각별한 관심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수원시가 수원화성 축성 230주년(2026년), 수원화성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지정 30주년(2027년)을 맞아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를 선포했다. 수원시는 수원화성문화제를 리우 카니발, 옥토버페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3대 축제로 육성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 연간 1500만 관광객 달성을 목표로 하는 이번 수원 관광 대전환사업이 수원시를 세계 특급 관광지 반열에 올려놓는 원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수원 방문의 해 슬로건은 ‘수원, 당신을 위한 관광도시(Suwon For You)’다. K-컬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지금이 수원화성문화제를 글로벌 축제로 도약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판단, 세계인이 찾는 K-축제로 만들어 대한민국 관광산업 발전을 이끌겠다는 각오다. 올해 63회째를 맞는 수원화성문화제는 진작부터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축제로 평가돼왔다. 세계 최대 축제인 브라질 리우 카니발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쇼’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5일 동안 열리는 축제에 매년 700여만 명이 방문해 즐긴다. 브라질 전체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 효과는 3조 원에 달한다.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민속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는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약 2주간 테레지엔비제에서 진행된다. 매년 6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이 축제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2조 원으로 추산된다. 옥토버페스트가 인구 160만의 뮌헨 지역경제를 굳건히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수원 방문의 해 추진 전략은 관광 콘텐츠 역량 강화, 메가 프로젝트로 관광객 유입, 맞춤형 행사와 이벤트 진행, 관광객 편의를 위한 관광수용태세 개선,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원시는 우선 관광객들에게 수원만의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해 관광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수원에서 촬영한 드라마의 촬영 장소에 안내표지판, 포토존 등을 설치해 관광객의 발길을 잡고자 한다. 또 남수동한옥마을 등 공공한옥마을을 활성화하고, 영동시장 한복거리를 특화하는 등 관광 콘텐츠 역량을 한층 강화할 예정이다. 또한 메가 프로젝트들도 기획된다. 수원시는 최근 개최지로 선정된 2026 경기인디뮤직페스티벌을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 사업과 연계해 메가 이벤트로 추진한다. 10월 17~18일 서호잔디광장에서 열리는 경기인디뮤직페스티벌은 인디 아티스트들에게 공연 기회를, 관객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즐길 기회를 제공하는 경기도 대표 문화 행사다. 수원시는 제5회 세계 관광산업 콘퍼런스(6월 수원컨벤션센터), 제24회 한중일 PD포럼(9월 수원컨벤션센터) 등 대형 국제행사 유치에 성공했다. 국제회의 복합지구와 연계한 특화 마이스(MICE) 사업을 추진해 수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누구나 불편 없이 관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수원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6년도 무장애 관광환경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비 42억 5000만 원을 확보한 바 있다. ‘플라잉 수원’과 ‘화성어차’를 새롭게 단장하고, 새로운 탈 거리 ‘수원행차’를 선보인다. 수원행차는 수원화성 주요 거점과 팔달문시장, 근대 골목을 연계해 운행하게 된다. 세계적 관광 명소의 가장 큰 특징은 그때 그곳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독특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다. 수원만의 문화적 자원과 음악적 감성을 접목한 축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계획 등이 이런 조건을 충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누군가 꿈꾸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문화관광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시작하는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 사업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를 기원한다. “스쳐 가는 관광을 넘어 머무르고, 연결되고, 다시 찾는 수원을 만들어 가겠다”는 수원시의 포부를 성원해 마지않는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세상을 깜짝 놀랄만한 파괴적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머스크는 늘 남들보다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화성과 달에 인간의 정착촌을 건설하려는 희망을 품고 있으며, 그 전 단계로 인간의 우주관광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머스크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 오픈AI, 구글 등 수많은 글로벌 IT 기업들은 인공지능(AI)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상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에 고민 중이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는 우주에다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려 든다. 머스크의 핵심 기업으로 테슬라, 스페이스X, xAI, 뉴럴링크를 손꼽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스페이스X는 xAI를 합병하여 자회사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우주 AI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해 위성 100만 개로 연결되는 우주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하기 위함이었다. 데이터센터를 대지가 아닌 우주에서 만들면, 태양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으며, 냉각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부지확보에 고민할 필요도 없다. 스페이스X는 그간 저궤도 상업 위성인 스타링크를 운영해온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2∼3년 내 우주에서 AI를 가장 저렴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주데이터센터는 테슬라의 피지컬 AI 비전과 연결고리를 가진다. 테슬라는 프리몬트 전기차 생산 공장을 휴머노이드 로봇 공장으로 전환할 정도로 로봇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테슬라는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BYD에 1위 자리를 내주었으며, 미국에서도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머스크는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과 로보택시에 특화할 것이다. 스페이스X의 우주데이터센터는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여 지상에 있는 테슬라의 로보택시와 휴머노이드 로봇 등 고객들에게 정보를 주게 될 것이다. 머스크가 우주데이터센터를 가동한다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중국 경쟁사 등에는 큰일이다. AI 경쟁 무대가 지상에서 우주로 바뀌게 되어, 경쟁자들이 스페이스X의 경쟁력 우위를 따라가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이스X가 미래 6G 통신인 스타링크에 이어 우주데이터센터까지 선점할 경우, 일론 머스크는 미래산업 선구자로서 그 위상을 또다시 떨치게 될 것이다. 머스크는 “10년 내 달에 자체 성장도시를 건설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것처럼 달에 도시를 만드는 꿈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스페이스X는 2027년까지 우주선 스타십을 무인 상태로 달 표면에 착륙시킬 계획이다. 우주데이터센터가 완성된 후, 테슬라는 달에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대량으로 보낼 것이다. 지구와 달에서 인간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존하여 살고, 로보택시가 끝없이 다니는 세상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업 혁신가이다. 테슬라 일론 머스크는 남보다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산업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한다. 국내기업들도 미래사회가 우주시대라는 점을 간파해야 한다. 우주 시대를 지배하려면 먼저 꿈을 꾸어야 한다. 우리 기업 CEO들도 단기적인 사고가 아닌 먼 미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길 기대한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지난 4년간 대회를 준비해온 선수들의 노력과 기록들은 많은 이들의 박수 속에 마무리되었다. 대개 올림픽의 화려한 개막과 경기 과정에는 수많은 시선이 쏠리지만, 축제가 끝난 뒤의 풍경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기 마련이다. 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부지와 건물이 이후 어떻게 쓰이는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 밀라노 올림픽은 대회 이후, 시민의 삶의 질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르타 로마나(Porta Romana) 지구에 위치한 올림픽 선수촌이다. 이곳은 대회가 끝난 후, 학생들을 위한 영구적인(permanent) 주거 구역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밀라노의 사례는 공공부지를 공공의 목적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 즉 공공부지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의가 활발해진 서울 용산정비창(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은 밀라노의 사례와 대비되는 지점이 많다. 현재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축구장 70개를 합친 크기의 대규모 부지에서 주택으로 공급할 물량은 약 3500호밖에 되지 않으며, 그중 공공임대주택은 525호에 불과하다. 서울의 주거 문제가 매우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공적 임대 기능의 비중이 매우 낮게 책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해당 부지를 매각해 한국철도공사의 부채를 해결하겠다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물론 공기업의 재무 건전성 회복은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철도 요금을 포함한 경영상의 문제로 인한 부채를 공적 자산인 토지 매각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는 부채 해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거권 보장’이라는 더 넓고 중요한 의미의 공익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한다. 무엇보다 한 번 민간에 매각된 공공부지는 다시 시민의 품으로 되돌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민이 누려야 할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영구히 포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결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용 부지가 부족한 도심에서 공공부지를 단순히 경제적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한다. 오히려 공공부지를 도시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계기이자 방법으로 여기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례로 서울의 경우, 주거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공공부지 개발의 최우선 순위를 ‘시민의 주거권 보장’에 두고 이에 맞는 공간을 기획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랜드마크의 화려한 외형이나 분양 수익의 수치보다 그 도시에서 그 땅을 딛고 살아갈 시민들의 일상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결국 공공부지의 활용 방식은 그 사회가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토지는 유한한 자원이며, 공공이 소유한 공공부지는 시민 모두의 공유 자산이다. 이 자산이 시장 논리에 따른 수익 극대화에만 치중하여 사용된다면,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시민들의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밀라노 올림픽 선수촌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우리에게 공공부지의 본 의미를 일깨우는 소중한 준거점이 될 것이다. 한국의 공공부지가 우리 도시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며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일궈내는 단단한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100세 시대, 퇴직 후 시간은 역할을 상실한 잔여 인생이 아니라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간이다. 나는 주위의 다양한 삶을 통해 중노년기 삶은 얼마를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삶의 주요 요소들에 대한 비움과 재설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중노년기에 있어 건강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대상인 것 같다. 젊은 시절, 건강이 ‘성취’라면, 이때의 건강은 ‘협상’이다. 신체는 더 이상 무한히 복원되지 않는다. 따라서 무리한 도전보다 지속 가능한 리듬이 중요하다. 규칙적인 수면, 균형 잡힌 식사, 적정한 운동은 삶의 독립성을 지키는 최소 조건이다. 특히 근력과 정신건강의 유지는 단순한 체력이 아니라 존엄의 문제다. 타인의 도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신체적 자율성은 곧 심리적 자율성으로 이어진다. 나이가 들면 또한 관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인간관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해진다. 모든 관계를 유지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소진을 야기한다. 상호 존중과 정서적 안정을 주는 밀도 있는 관계에 집중하고, 의무감만 존재하는 관계는 정중히 거리를 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배우자와의 관계 역시 ‘역할’ 중심에서 ‘동반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자녀가 독립한 이후, 부부는 다시 낯선 두 개인으로 마주한다. 이때 대화의 회복은 노년의 고독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자산이다. 경제적 태도의 전환 또한 요구된다. 중노년기의 재정은 확장이 아니라 안정이 중요하다. 수입이 줄어드는 시기에는 과도한 투자나 소비보다는 자산 및 지출의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재정적 안정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평온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 은퇴는 사회적 역할의 상실이 아니라 역할의 전환이다. 직업이 사라져도 ‘쓸모’는 사라지지 않는다. 멘토링, 봉사활동, 재능기부, 지식 나눔 등은 자신을 사회와 다시 연결시키는 통로이다. 인간은 기여할 때 생동감을 느낀다. 노동이 아닌 기여로써의 활동은 중노년기의 자존감을 지탱하는 핵심이다. 배움의 끈 역시 놓지 말아야 한다. 뇌는 나이가 먹는다고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새로운 언어, 악기, 디지털 기술 등에 대한 도전과 그림이나 글쓰기, 독서토론, 보드게임 같은 취미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배움과 취미는 단순한 시간을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살리는 기술이며, 인지적 건강을 지키는 전략이다. 몰입의 순간,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오히려 “이 나이에 이런 걸 시작해도 될까?”라는 망설임을 넘어설 때, 삶은 다시 활기를 얻는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사유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비관이 아니라 삶을 선명하게 만드는 철학적 태도다. 유한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진다. 소유보다 경험, 경쟁보다 평온,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중노년기의 지혜는 더 많이 가지는 데 있지 않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아는 데 있다. 복잡했던 관계나 과도한 욕심, 그리고 타인의 기대를 하나둘씩 내려놓고 자신과 마주할 때 내 삶의 지표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로써 바야흐로 어느 시기보다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