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는 더 이상 하나의 연속된 서사로 설명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분명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의미와 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미술사 전기(前期)와, 발생과 귀속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미술사 후기(後期) 사이의 경계다. 미술사 전기는 재현, 형식, 개념이라는 질문의 축으로 요약된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 왜 예술인가라는 물음이 미술의 방향을 이끌어왔다. 이 시기 예술의 중심은 의미 생산이었고, 작가는 해석 가능한 메시지의 주체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전기의 말미에서 의미의 해체와 상대화를 수행했지만, 질문의 구조 자체를 전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예술은 더 이상 ‘무엇을 말했는가’라는 질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구조가 작품이 되고, 조건이 이동하며, 그 결과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발생하는 작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미술의 질문은 달라진다.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열어버렸는가, 그리고 그 이후의 결과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것이 미술사 후기가 작동하기 시작한 지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론적 가설이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실천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필자는 이 과정을 구조, 조건, 책임이라는 세 단계의 작업을 통해 통과해왔다. ‘지퍼니즘(Zipperism)’은 구조 미학의 실천이다. 열고 닫히는 지퍼 구조를 통해 작품은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결합과 분리, 참여와 비참여가 반복되는 구조 자체를 드러낸다. 관객은 더 이상 해석자가 아니라, 구조를 통과하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왜 이 구조를 열었는가라는 선택의 문제다. ‘에머젠티즘(Emergentism)’은 조건 미학의 실천이다. 구조를 고정하지 않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도록 조건을 이동시킨다. 작품은 완성된 대상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발생은 통제되지 않으며 반복되지 않는다. 작가는 결과를 관리하지 않고, 조건을 열어두는 선택만을 감당한다. ‘노 다지(No daji)’ 시리즈는 책임 미학의 실천이다. 관객은 선택할 수 있지만, 무죄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을 유지할 수도 있고, 분리할 수도 있으며, 현실의 이익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도 그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작업은 감정이나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책임의 귀속이라는 현실적 문제로 작동한다. 이 세 작업은 서로 분리된 개별 작업이 아니라 하나의 연쇄다. 구조가 열리고, 조건이 이동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회수되지 않는 과정이다. 따라서 미술사 전기와 후기의 구분은 과잉된 주장이나 개인적 선언이 아니다. 이미 다른 질문이 작동하고 있다는 현실을 최소한의 언어로 명명한 것이다. 전환기는 언제나 지나간 뒤에 설명되지만, 그 징후는 내부에서 먼저 나타난다. 오늘날의 미술은 의미의 경쟁을 넘어, 선택과 발생, 그리고 귀속의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미술사 후기의 현실이다. [ 경기신문 = 최순철 기자 ]
성인이 된다는 것은 말의 무게를 입술이 아닌 종이 위에 얹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흔히 사회생활에서 '신뢰'를 강조하는데, 신뢰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은 서류이다. 인간의 기억은 주관적이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감정과 구두 약속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갈등이 발생했을 때 시시비비를 가릴 기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서류는 변하지 않는 객관적 지표이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이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분모가 된다. 특히 근로계약에서 서류의 중요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서 작성과 교부는 사용자의 엄격한 법적 의무다(근로기준법 제17조). 이를 위반할 경우 사용자는 단순히 과태료를 무는 수준을 넘어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라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근로기준법 제114조). 이는 국가가 서류의 힘을 빌려 고용 관계의 투명성을 강제하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피고용인이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불신이나 무례함의 표현이 아니라, 법이 보장하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정당한 절차다. 임금, 근로 시간, 휴일 등 핵심적인 근로 조건들이 서류라는 단단한 지반 위에 놓일 때 노사 양측은 불필요한 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서류는 관계를 불신해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로부터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선의는 상황이 악화했을 때 가장 먼저 변질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는 대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과로 귀결되며, 이는 곧 개인과 관계의 실질적인 손실로 이어진다. 계약서에 적힌 숫자와 문구들은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것을 넘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책임의 경계를 설정하는 고도의 전략적 행위다. 따라서 서류를 꼼꼼히 챙기는 태도는 까다로움이 아니라, 자기 일에 책임을 지겠다는 전문성과 성숙함의 방증이다. 갈등이 임계점을 넘어 법적 절차에 들어섰을 때, 서류의 위력은 더 절대적이다. 법의 언어는 감정의 호소가 아닌, 오직 증명된 사실과 기록된 문장에만 반응한다. 서류가 없는 상태에서의 싸움은 맨손으로 벽을 치는 것과 같다. 단 한 장의 서류라도 확보해야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점이 마련된다. 확보된 문서는 법정이라는 전장에서 나를 대신해 싸워주는 가장 충직한 대리인이자 방패가 된다. 계약 당시에는 사소해 보였던 쪽지나 메일 한 통이라도, 객관적 정황과 결합하는 순간 상대방의 변명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물증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인의 세계에서 서류로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이다. 기록되지 않은 약속은 책임질 수 없는 방종에 가깝고, 기록된 약속만이 비로소 권리와 의무로 인정받는다.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문자의 힘을 깨달아 왔다. 서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해 인류가 고안한 가장 지혜로운 방어 기제다. 진정한 어른의 언어는 화려한 수사나 감동적인 연설이 아니라, 담백하고 명확하게 적힌 종이 위에 있다. 기록만이 우리의 노동과 진심, 그리고 권익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패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단어 ‘빨리빨리’는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라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속도와 효율에 진심인 민족인지를 방증한다. 이러한 압축 성장의 에너지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짙은 그늘을 남겼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급격한 가족 해체, 그리고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는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무엇을 놓치고 짓밟아 왔는지를 아프게 증언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밀려왔다. AI는 인간이 수십 시간에 걸쳐 하던 일을 단 몇 초 만에 처리하며 인간이 추구해 온 속도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제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거나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속도의 경쟁이 사라지는 자리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지혜를 빌려오고 싶다. "하라카 하라카, 하이나 바라카." 번역하면 "서둘러 하는 일에는 복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이 오래된 격언은 오히려 혁신적인 삶의 이정표가 된다. 그들에게 ‘복’이란 성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유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얻는 평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탄자니아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방식은 '뽈레뽈레'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스와힐리어로 ‘천천히’를 뜻하는 이 말은 게으름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속도의 강박 대신 여유 속에서 현재를 음미하며 꾸준히 걸어가는 태도를 말한다. 그들의 걸음은 산책하는 이의 그것과 같다. 천천히 걷는 사람은 길가에 핀 이름 없는 들꽃에 멈춰 설 줄 안다. 구름의 무늬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바위에 걸터앉는 여유가 있다. 무엇보다 곁에 있는 이와 눈을 맞추며 안부를 묻고 대화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그것이 바로 ‘뽈레뽈레’ 정신이다. AI가 우리를 노동의 속도에서 해방시켜 준다면, 그로 인해 생긴 시간의 빈자리는 ‘의미 찾기’와 ‘관계 맺기’로 채워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관계 단절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보폭을 맞추어 걷는 마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가족의 지친 표정과 이웃의 슬픔은 오직 여유의 속도에서만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 서로의 걸음을 기다려 줄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서로의 걸음을 기다려 주는 배려 속에서 공동체는 단단해지고 삶은 비로소 깊어진다고 믿는다. ‘공감의 느림’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더 빨리 성과를 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깊이 사랑하고 연대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삶의 깊이는 속도가 아니라 그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천천히 가는 길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이의 손을 잡을 수 있다. 뽈레뽈레 정신은 우리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복은 여유 속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순간 함께하는 사람들이야.”
지방자치는 풀뿌리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세계화·지방화 시대에 지방자치는 점점 심화‧확대되는 게 시대 흐름이다. 지방자치가 발전할수록 지방행정은 위민(爲民), 곧 주민을 위한 주민 중심으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지방정부 선출직들의 역할이 갈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있으랴마는 6월 3일로 예정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더욱 중차대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반헌법적이고 뜬금없는 12·3 계엄 선포나 김건희 국정농단에 대한 사법부의 엄정한 심판이 내려지고 있는 때이다. 만기친람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중앙집권제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징적 헌정질서 유린 사태가 비상계엄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의한 비상계엄 및 탄핵에 따라 탄생한 정부로서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이 주시했다.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반증을 세계 앞에 보여줬다. 이젠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국리민복을 위한 지도자상을 구현해야 할 책무를 띠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새로운 나라로 향하는 분기점이 돼야 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작금 성장 정체라는 위기가 우리 앞에 버티고 서 있다. 미래 100년을 대비하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직접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런 현실에서 치러지는 6·3 지방선거는 시대적 의미가 작지 않다. 3일부터 시·도지사 및 교육감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120일간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지역구 시·군·구 의원 및 장 선거는 3월 20일부터 등록이 시작될 예정이다. 예비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선거일 현재 18세 이상이어야 하며, 지역별 선관위에 가족관계증명서 등 피선거권에 관한 증명서류, 전과기록에 관한 증명서류, 정규 학력에 관한 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공무원 등 입후보 제한 직에 있는 사람은 등록신청 전까지 사직해야 하며 선거일 전 90일 또는 30일까지 사직해야 예비후보자 또는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다. 현직 지방자치단체의 의회 의원이나 장은 직을 유지한 채 예비 후보자 등록이 가능하다. 다만 기초단체의 경우 정당 공천과 관련해 잡음과 후유증이 적잖게 우려돼 공명선거 구현이라는 과제가 제기되고는 있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17개 시도는 몰라도, 226개 시·군·구 기초자치단체 선거의 경우 생활 현장이기에 중앙정치의 논리는 불필요하다. 국가적 현안도 중요하지만 4년간 해당 지역의 살림을 꾸려갈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한다. 그동안 지방선거는 대체로 다른 전국 단위 선거보다 투표율이 낮았다. 국민의 절반이 투표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투표율이 50% 안팎에 머물렀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처음 사전투표제를 도입한 끝에 56.8%까지 끌어올렸을 뿐이다. 여하튼 지방자치는 지방분권이 확대되는 추세여서 주민 삶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리가 이러하기에 지방정치를 제대로 보살필 수 있는 인물을 눈여겨보고 선택해야 한다. 지방정치를 제대로 보살필 수 있는 인물을 골라야 한다. 정당도 지역을 이해하고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식견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 유권자는 예비후보자들의 면면을 꼼꼼히 살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내 손에 우리 지역은 물론 대한민국 미래가 달려 있기에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후보들 역시 정책대결로 선거 운동에 임하길 당부한다.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흑색선전으로 지방자치를 진흙탕으로 빠뜨려선 안 된다. 이제 특정 중앙 정치권력에 기대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생활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들을 개혁함으로써 국민에게 다가서는 참신한 지역 일꾼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 곧 진정한 선진국 실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특히 여야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은 중앙정치 의제가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지방자치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자중하길 당부한다. 무엇보다 공직자들이 유력 후보에 줄을 서는 행태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구태이다. 유권자들의 냉정한 판단과 참여가 요청된다.
요즘 거대 양당을 둘러싸고 자주 들려오는 말 중 하나는, 정당 내에서 특정 유튜버의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유튜버가 거대 양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이는 여러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공당으로서의 역할 상실이다. 오늘날 유럽을 비롯한 다수의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정당은 대체로 포괄정당(catch-all party)의 형태를 띤다. 포괄정당이란 특정 계급이나 이념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계층과 이념을 지닌 유권자를 폭넓게 포섭하는 정당을 의미한다. 그런데 강경한 이념을 기치로 내건 유튜버가 특정 정당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면, 포괄정당이 아닌 1970년대 유럽 정당의 모습으로의 퇴행하는 기형적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튜버가 강경한 이념을 대변하지 않으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유튜버는 구조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진영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유튜브의 비즈니스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정치적으로 중도적인 콘텐츠를 제작할 경우, 일정 수준의 구독자는 확보할 수 있겠지만, 특정 진영에 실질적 영향을 줄 정도의 규모에 이르기는 어렵다. 이는 곧 수익 모델의 한계로 이어진다. 따라서 유튜버는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수익을 위해서 특정 진영의 논리를 대변하게 되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특정 진영의 논리를 단순히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이나 진영의 팬덤을 구독자로 흡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 팬덤이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기 시작하면, 구독자 수와 조회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유튜버는 자연히 팬덤을 의식해, 팬덤의 구미에 맞는 강경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강경한 이미지를 형성한 유튜버는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무뎌지듯이, 정치·사회적 분야에서도 팬덤과 강경 세력은 점점 더 강한 메시지를 원하게 되고, 유튜버는 점점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더 강한 메시지를 전파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유튜버가 특정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되면, 자신들의 강경한 목소리를 정당에 투영하려 할 것은 당연하다. 유튜버가 정당과의 연계를 통해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튜버의 추종 세력이 당원에 가입할 경우, 해당 정당은 점차 강성 세력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당은 특정 이념의 수호자가 아니라, 강성 팬덤의 요구를 반영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그 결과, 포괄정당이 지녀야 할 대중성은 사라지게 되고, 중도층은 이런 정당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며 정치 혐오로 빠지게 된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면, 정치는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각 정당의 강성 지지자들의 ‘투쟁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초래되기 전에, 정당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성찰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동주택 하자 소송에서 방수 공사의 하자는 누수와 직결되어 입주민의 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고 건물의 내구성을 저하하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거의 모든 아파트 하자소송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루어집니다. 특히 지하주차장, 욕실, 발코니 등에 시공되는 시멘트 액체방수는 그 시공 품질이 매우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방수층의 적정 두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여 시공사와 입주자대표회의 간의 법적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994년 건축공사 표준시방서는 액체방수의 두께(벽 6mm, 바닥 10mm)을 정하고 있었으나, 1999년 건축공사 표준시방서가 개정되면서 방수층의 두께 기준이 삭제되고 성능 기준으로 변경되고 2006년 건축공사 표준시방서는 공정을 단순화하자, 시공사들은 실제 누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설계도면에 특별한 두께 명시가 없다면 방수층 두께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하자가 아니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위와 같은 표준시방서의 변경은 방수층 두께를 일정하게 유지하여 시공하기 어렵거나 그 두께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일 뿐 방수층의 두께와 성능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더라도, 통상적인 방수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두께가 필수적이며, 방수층의 두께가 현저히 부족할 경우 누수 발생 가능성이 커져 기능상, 안전상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근 하급심 판결들은 시멘트 액체방수 두께 부족을 하자로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으로 최소 4mm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1999년 건축공사 표준시방서의 개정으로 실제 시공현장에서는 여전히 방수층의 두께에 관한 논란이 많아지자 2013년 건축공사 표준시방서에서 방수층이 방수성능을 발휘할 수 있고, 요구 성능(부착성능)을 평가할 수 있는 최소 두께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품질기준과 시험방법을 보완하면서 액체방수층의 시공 후 두께를 벽, 바닥 모두 최소 4㎜ 이상으로 확보하도록 개정 규정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비록 이 규정이 방수 성능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으나, 법원은 이를 사실상 방수 공사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품질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해당 아파트의 준공 당시 적용되던 시방서에 명시적인 두께 기준이 없더라도, 시공된 방수층의 두께가 4mm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는 거래관념상 통상 갖추어야 할 품질을 갖추지 못한 시공상 하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입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24. 5. 31. 선고 2020가합115720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10. 23. 선고 2021가합572935 판결 등). 다만, 모든 사건에 4mm 기준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해당 아파트의 설계도면이나 특별시방서에 구체적인 방수 두께(예: 10mm, 16mm 등)가 명시되어 있다면, 법원은 그 설계도서를 우선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아 하자 여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서울고등법원 2019. 10. 16. 선고 2019나2021598 판결 등). 결론적으로, 법원은 더 이상 ‘누수만 없으면 된다’는 시공사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멘트 액체방수 두께가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것 자체를 독립된 하자로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공동주택이 당장의 기능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내구성과 품질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법원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수원특례시의 총 44개 동에서 ‘2025 우리동네 자치계획’이 마련됨으로써 주민자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동(洞) 단위의 중장기 발전 구상을 담고 있는 ‘우리동네 자치계획’은 단발성 사업 중심의 활동이 아니다. 주민과 도시·마을 분야 전문가가 함께 구상한 계획은 마을을 중심으로 주민자치의 미래상을 구체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원형 ‘우리동네 자치계획’이 풀뿌리 지방자치 역사의 새 지평을 열길 기대한다. 44개 동이 수립한 자치계획을 살펴보면 주민들이 바라는 마을의 모습은 크게 네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주민 간 소통을 핵심 가치로 삼은 마을’, ‘노후화된 지역을 지속가능하게 재생하려는 마을’,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성장을 모색하는 마을’,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 인프라 확충을 목표로 하는 마을’ 등이다. 이 가운데 수원시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계획은 주민 소통을 마을 발전의 출발점으로 제시한 11개 동의 구상이다. 지난해 수립된 우리동네 자치계획에는 ‘함께 사는 방법’을 찾으려는 주민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역사성이 깊거나 주거 밀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주민 간 소통을 핵심 의제로 설정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공동체 회복이 곧 마을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깨달음이 계획 곳곳에 반영된 셈이다. 주민과 전문가들은 오목천동·고색동·평리동·평동 등 4개 법정동을 직접 답사하며 자원과 문제를 함께 정리했다. 평동 자치계획의 제목은 ‘기억의 숲, 꿈의 터전’이다. 세대와 삶의 방식이 다른 주민들이 자연과 문화를 매개로 함께 성장하는 마을을 목표로 삼았다. 주민 의견을 종합해 ‘기억의 마을’, ‘연결의 마을’, ‘세대 공존 마을’을 위한 4대 전략을 수립해 놓고 있다. 권선구 구운동, 권선2동, 세류1동, 세류3동은 세대 간 단절 해소를 공통 과제로 설정했다.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어울리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자치계획의 핵심이다. 구운동은 ‘세대가 어우러지고 이야기가 흐르는 일상 공동체’를 미래상으로 제시했다. 화서1동, 우만2동, 광교1동, 망포2동, 영통1동 등 공동주택 비중이 높은 지역들은 ‘이웃과의 공존’을 자치계획의 중심 가치로 설정했다. 화서1동은 ‘일상을 나누고 온기를 더하는 마을’을 목표로, 우만2동은 ‘우리가 만들고 이끄는 동네’를 비전으로, 광교1동은 ‘같이의 가치를 잇는 광일이네’라는 의인화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망포2동은 ‘이사 오고 싶은 마을’을 장기 목표로, 영통1동은 전입·전출이 잦은 특성을 반영해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집약할 복합문화 거점 조성을 핵심 과제로 각각 설정했다. ‘우리동네 자치계획’은 주민자치회가 주도해 동(동네)의 중·장기 발전 방향과 구체 사업을 ‘자치계획단’과 ‘주민총회’ 과정으로 수립·의결하는 주민자치 제도다. 법적·행정적 확정 사업과는 구분되는 이 사업은 수립된 계획을 주민총회의 의결·승인을 거친 뒤 실행한다는 차원에서 진일보한 선진 풀뿌리민주주의의 장신을 담고 있다. 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의 참여자치에서 중앙-지방 관계가 상호 의견제시에서 협의, 공동결정, 지방 주도 형태로 발전하고 있음은 역력하다. 도시재생 경험을 통해 주민과 지자체의 역할은 점차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국가 전체를 놓고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국가행정 못지않게 가장 가까운 지역을 가장 잘 아는 현장 주민들이 직접 문제점을 찾아내고 미래비전을 설계하는 역할을 극대화하는 것은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의 핵심 과제다. 세계 최고의 관광 휴양지로 발전한 스위스의 건강한 풀뿌리 지방자치는 유명한 모범사례다. 신축 건물의 색깔 하나를 결정하는데도 관광 휴양지로서의 품격 유지를 위한 집단 지성을 동원한다는 그들의 지방자치 수준은 부러운 대목이다. 수원형 ‘우리동네 자치계획’이 전국의 참여자치 수준을 끌어올리는 모범적인 사례로 기능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5일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잃어버린 30년을 향해 치닫는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을 탈출하는 데는 고통과 저항이 따르겠지만, 필요하고 유용한 일이라면 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며 부동산 문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연말에는 “망국적 부동산 구조의 정상화는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라며 “표 계산 없이 국민을 믿고 비난을 감수하면 될 일”이라고 언급해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토지문제에 대한 강한 정책의지를 재차 확인시켰다. 토지문제를 국가의 구조적 과제로 인식한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는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재명 정부는 지방균형발전을 국가 생존전략으로 규정하고, 자치분권에 기초한 균형성장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균형성장은 구호로는 쉽지만 현실에서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불균형 성장전략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그 대가로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수도권 ‘일극 체제’를 고착화시켰다. 지방은 쇠퇴하고 수도권은 팽창하는 구조가 반세기 넘게 지속돼 왔다. 수도권 팽창의 주된 요인은 신도시 정책이다. 노태우 정부의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노무현 정부의 2기 신도시(판교·동탄·김포한강·파주운정·양주옥정), 문재인 정부의 3기 신도시(남양주 왕숙·하남 교산·고양 창릉·부천 대장·인천 계양)는 모두 주택공급 확대라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수도권 인구집중과 자산 가치 상승을 가속화시키며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이에 대한 토지과세 정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제, 택지소유상한제를 추진했다. 이는 토지투기 억제와 토지 이용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획기적 시도였으나, 헌법 불합치 결정과 신도시 개발의 병행으로 인해 투기 억제와 재분배라는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다. 지방분산정책도 그러하다. 노무현 정부는 공공기관 175곳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10개의 혁신도시를 조성하는 등 인구 분산정책을 병행했지만,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무산되면서 세종시는 반쪽짜리 행정수도에 머물렀다. 혁신도시 역시 자족기능을 확보하지 못해 수도권 인구를 흡수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수도권 인구 비중의 추이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1990년 42.8%였던 수도권 인구 비율은 2005년 48.2%로 상승했고, 2016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2025년 현재 수도권 인구 비율은 50.9%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지속적 집중의 근본 원인은 수도권 토지가격이 비수도권보다 훨씬 빠르게 상승하며 자본과 인구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결국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도시 정책, 인구 분산 정책, 실효성 있는 토지 과세, 지방 이전 정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추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밝힌 토지개혁에 대한 분명한 의지는 환영할 만하다. 1949년 제1공화국 정부가 추진했던 농지개혁, 1989년 제6공화국이 도입한 토지공개념제를 교사로 하여, 이재명 정부가 토지정책을 통한 국가 균형발전의 대업을 완수하여 주기를 기대한다. 이에 대한 주무부처의 전략적 접근방법을 촉구한다.
교실은 매일 아침 서로 다른 세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공간이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속도와 감정, 가정과 경험을 품고 교실로 들어온다. 그 수많은 세계가 부딪히고 어울리는 자리에서, 교사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가장 가까운 어른이다. 해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할 때면 늘 같은 질문 앞에 선다. 내 눈앞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기준과 경험으로 재단하고 있는가. 교육 현장에 오래 몸담을수록 기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하게 된다. 정해진 교육과정, 규칙, 사회가 기대하는 학생상의 틀은 교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해 주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빠르게 분류하게 만든다. 질문이 많은 친구는 수업 흐름을 방해하는 존재가 되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고집이 센 이미지가 된다. 발표를 주저하는 아이는 소극적이라는 말로 쉽게 설명된다. 그렇게 붙은 이름은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언어라기보다, 어른이 안심하기 위한 표식에 가깝다. 교사로서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 있다. 쉽게 라벨링했던 이름들이 얼마나 쉽게 아이의 가능성을 가리는지 와닿았던 때였다. 수업 시간마다 말을 끊어 주의를 주던 친구가 있었다. 늘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쉬는 시간, 반에서 다툼이 생기자 그 아이가 먼저 다가가 양쪽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고 있었다.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말이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보았던 산만함은 세상과 끊임없이 연결되려는 소통의 힘이었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습은 주변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에너지였다는 것을.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일, 교육에서는 이를 ‘리프레이밍’이라 부른다. 같은 그림도 어떤 액자에 넣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주듯, 교사의 시선 하나가 아이의 삶을 다르게 만든다. 문제가 있다는 말 대신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교사가 어떤 언어로 아이를 설명하느냐에 따라 아이는 스스로를 믿기도,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한다. 요즘 사회는 평균에 맞추는 능력보다 고유함을 요구한다. 모두 비슷한 모양으로 다듬어진 돌은 안전하지만, 어디에서나 대체 가능하다. 반대로 조금은 울퉁불퉁한 돌은 다루기 어렵지만, 그 모서리 덕분에 고유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의 단점처럼 보이는 기질은 사실 그 아이만의 모서리일지도 모른다. 교실은 그 모서리를 깎아내는 공간이 아니라, 안전하게 드러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공동체 안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행동의 뿌리에 담긴 긍정적인 에너지를 먼저 읽어주고 싶다. 왜 그렇게 고집이 세냐는 말 대신 끝까지 생각을 지키는 힘에 대해 칭찬해주는 순간, 아이의 눈빛은 달라진다.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은 아이를 바꾸는 가장 강한 힘이 된다. 교육의 본질은 아이의 부족함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있는 빛을 발견해 주는 일이라 믿는다. 교사는 아이의 단점을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숨겨진 가능성을 비추는 사람이다. 지나간 교실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던 다채로운 친구들이 있다. 그 행동 너머에 있을 진짜 재능을 떠올려 본다. 당연히 어렵겠지만, 올해는 개인이 가진 모서리를 북돋워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독립지사들의 삶과 이야기를 찾고 기리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고 독립운동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해 12월 21일 자신의 SNS에 올린 약속이다. 경기도박물관이 올해 4월 5일까지 개최하고 있는 ‘광복 80·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특별전(동양지사 東洋志士, 안중근 安重根–통일이 독립이다)’ 전시회와 관련, 이 같은 마음을 밝힌 것이다.(관련기사: 경기신문 2025년 12월 22일자 3면, ‘김동연 지사 “안중근 의사의 30여 년, 100년 넘도록 큰 울림”’) 지난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였다. 동시에 수치스런 을사조약 체결 120년이 된 해였다. 을사조약으로 조선은 일본에 강제 병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혹한 일제 치하에서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 가족까지 포기하면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고 해방이 됐다. 하지만 이 나라와 국민들의 고난은 이어졌다. 6.25 전쟁이 일어났고 4.19, 10.26, 12.12, 5.18, 2024년 12월 3일엔 비상계엄도 발동됐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당당한 선진국이 됐다. 위대한 국민들이 위대한 나라를 만들고 지켰다./그 세월 속에서 애국지사들은 서서히 잊혀졌다. 대신 친일파 인사들은 여기저기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2024년 8월15일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두 쪽으로 갈라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윤석열 정부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지목된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됐다는 억지 주장을 해왔다. 이에 광복회 측은 이런 인물이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된 것은 독립기념관의 역사와 정통성에 반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항의로 정부의 경축식에 불참하고 별도의 기념행사를 한 것이다. “윤 정권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표학자 김주성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쌀을 수탈당한 게 아니라 수출한 것이라는 김낙년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됐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는 이배용을 국가교육위원장으로 임명했으며,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불법 희생이 아니라는 김광동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으로, 박근혜 정권의 국정역사교과서 편찬 심의위원 허동현을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임명했다”며 분통을 터트린 김호동 광복회 경기도지부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윤 정권의 역사 인식은 매우 삐뚤어진 것이었다. 심지어는 독립투쟁의 일선에 섰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서 치우려고 해 국민을 공분케 했다. 다행스럽게도 정권이 바뀌면서 역사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경기도에서도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의 현양하는 사업이 적극 추진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김동연 지사는 각계의 사퇴요구에도 김형석이 물러나지 않고 버티자 2024년 이종찬 광복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경기도 독립기념관 건립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장투쟁·독립 열사 외에도 예술·언론·교육 등의 분야에서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다양한 독립운동과 유공자를 찾아내 선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지난해엔 광복 80주년 기념사업도 대대적으로 펼쳤다. 독립운동가 80인을 선정했고, 경기도 독립운동 사료 발굴과 문화사업을 추진했다. 온라인 교육 콘텐츠 개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 경기도 독립기념관 건립 등 다양한 사업도 전개했다. 앞으로도 도는 도민들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공유하기 위해 경기도 독립기념관 건립과 독립운동 사료 발굴·수집, 공훈선양 등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기도와 함께 수원시 역시 독립운동가 발굴과 현양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엔 3·1만세운동의 한축을 담당했던 천도교 수원교당 옛터 안내판도 세웠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2026년 올해에도 그 뒤에도 세세연년 독립운동가 현양사업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