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일상에 지친 아내의 간절한 요청으로 괌을 여행했다. 그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마주한 황홀한 석양을 보고, 어느새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보랏빛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사진만 찍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며, 문득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기록하기 위해 소비하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을 사진에 연연하여 절묘한 감동을 놓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살아가는 일’보다 ‘기록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폰은 늘 손에 있고 SNS는 우리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소환한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절친을 만나는 때조차도 우리는 먼저 카메라 앱을 켠다. 이른바 기록 강박이 조용히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물론 기록은 나쁘지 않다. 사진은 기억을 더 선명하게 살려주고, 잊혀가는 순간들을 다시 불러오는 힘이 있다. 문제는 그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즐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남기기 위해 순간을 연출할 때, 우리의 삶의 방향은 아주 오묘하게 전도된다. 살아가는 주체가 아닌, 카메라 앞에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피사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석양이 진 뒤 비로소 내 눈과 마음에 한가득 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자신에게 “순간을 오롯이 만끽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남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를 물었다. 이 질문만으로도 많은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기록강박이 강해질수록 사진은 증명서로 쌓여만 간다. 내가 이만큼 잘 지내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명. 그러나 진짜 나다운 삶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연출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편안하게 머무는 시간 속에서 피어난다. 그 시간은 반드시 기록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때로는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산책할 때는 폰을 주머니 깊숙이 넣고, 카페에서는 눈앞의 풍경을 사진이 아닌 ‘나의 감각’으로 음미해 보는 것이다. 그 순간의 냄새, 빛, 온도, 의식의 흐름까지 온전히 느끼다 보면, 기록되지 않아 더 소중한 시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은 결국 기록이 아니라 경험을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날은 마음껏 사진을 찍어도 좋다. 사진은 또 다른 언어이자 표현방식이며 기억을 떠받치는 도구다. 중요한 것은 촬영이 나를 방해하지 않고, 시선을 확장시키는 도구가 된다. ‘잘 찍어야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지금 내 마음에 닿는 장면을 자연스레 담으면 된다. 그러면 사진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작은 기억의 서랍이 된다. 정말 나다운 삶은 경험과 기록의 균형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순간은 찍고, 어떤 순간은 그냥 바라보고 즐긴다. 이 단순한 선택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순간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여유—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다. 우리는 모두 기록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기억의 주인은 언제나 ‘나’다. 카메라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순간들이 모여 결국 나를 만든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이 찍을 때인가, 아님 느끼고 살아볼 것인가?” 이 질문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록 강박에서 벗어나 나답게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다.
(기고문) 11월 ‘불조심 강조의 달’이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한 달 동안 각 지역 소방서에서는 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와 캠페인을 펼쳐 왔으며, 시민 여러분도 여러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러나 소방은 강조하고 싶다. 화재 예방은 11월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겨울철 전체를 관통해 지속돼야 하는 ‘생활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본격적인 겨울철로 접어드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난방기구 사용량이 급증하고 기온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화재 위험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다. 실제로 매년 통계에서도 겨울철 화재는 11월보다 12월 이후에 더욱 많이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전기난로·전기장판·히터·보일러 등 전열기구 사용이 늘면서 과열·과부하로 인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여러 화재를 살펴보면, 평소 거창한 부주의가 아닌 작고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콘센트에 여러 기기를 동시에 꽂아주거나, 난방기 주변의 가연물을 치우지 않은 채 사용하거나, 전기장판을 접어서 보관한 뒤 그대로 사용하는 등 사소한 습관이 큰 화재로 이어지곤 한다. 소방은 “전기·난방기구는 안전한 사용법을 숙지하고, 사용 전후 상태를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수의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더해 주택용소방시설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단독경보형감지기는 화재를 가장 먼저 감지해 신속한 대피를 가능하게 하며, 소화기는 초기 단계의 작은 불씨를 잡아 큰 피해를 막는 데 결정적이다. 실제로 최근에 김포 관내에서 공장 변압기 화재가 발생했는데 분말소화기를 활용해 초기 진압에 성공하여 인명피해 없이 초기 진화에 성공한 사례가 언론보도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감지기 등 미설치 가구가 많아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소방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불조심 강조의 달이 곧 끝나지만, 우리의 안전 점검은 이제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겨울은 화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가정과 직장에서 전기·난방기구 안전관리, 정기적인 전기 점검, 가연물 정리,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등을 꾸준히 실천해 주시기 바랍니다.”이어 “특히 가족 모두가 화재 발생 시 어떻게 대피할지 미리 정해두고, 비상구나 대피 통로를 확보하는 등 평소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겨울은 예년보다 더 추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추위가 강해질수록 난방기기 사용이 늘고, 실내 활동이 많아지며 화재 위험도 그만큼 증가한다. 화재는 한 번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지만, 예방은 작은 실천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불조심 강조의 달이 끝나더라도 우리 모두의 관심과 실천이 이어질 때, 안전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1년 동안 벌여온 사이버도박 범죄 특별단속에 무려 5000명이 넘는 범법자가 검거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박 풍토를 여실히 입증했다. 검거된 위법자 중에는 20·30이 절반 이상을 차지해 놀라움을 주고 있고, 특히 70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도박행위로 적발된 사실은 더 충격이다. 국수본이 앞으로 1년간 특별단속을 연장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도박 풍토가 완전히 일소되도록 속도·범위, 깊이를 더욱 확대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진행된 국수본의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에는 모두 3544건이 적발됐고 도박 사범 5195명이 검거됐다. 이 중 314명은 구속되면서 환수한 도박 수익금은 1235억 원에 이른다. 이 통계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검거 인원은 0.6%, 구속된 인원은 7.9% 증가한 수치다. 피의자의 연령대는 20대가 25.3%(1514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24.9%(1489명), 40대 22.8%(1366명)로 뒤를 이었다. 20·30대만 합쳐도 무려 50.2%에 달하는 수치다. 이어서 50대는 13.4%(800명), 10대 7.0%(417명), 60대 이상 1.7%(306명) 순이었다. 도박 유형별로 스포츠토토 등에는 주로 20·30대가 다수였고, 게임 기반의 카지노 유형은 20~40대가 고르게 분포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오프라인 경기로 유입된 불법 경마·경륜·경정은 40대 이상이 다수를 차지했다. 내용적으로 청소년들의 도박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걱정거리다. 경찰청은 지난 1년간 청소년 도박 행위자 7153명을 적발했다. 청소년 도박의 경우 상당수 입건 처리되지 않아 단속 통계에는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정도를 감안해 훈방이나 즉결심판, 청구·송치 등이 결정된다. 경미한 사안은 경찰서에 설치된 선도심사위원회에 회부 처리한다. 당사자나 학부모 동의를 받아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등 전문 상담기관에 연결해주기도 한다. 청소년 사이버도박 행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사이버 접촉면이 넓다는 특성 때문이다. 경찰은 불법 도박 사이트 접근 차단을 위해 수사 단서 확보 후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게시글 등 삭제·차단 등의 요청도 병행 중이지만, 방대한 사이버 세상의 특성 때문에 예방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사이버도박 단속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해외에 사이트를 구축해 우리 아이들을 주 타깃으로 24시간 파상공세를 펼친다는 점이다. 올해 캄보디아·중국·필리핀·베트남 등 4개국 사무실 기반 5300억 원 규모의 도박사이트 운영자 등 97명이 검거되고, 필리핀 해외 서버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 23명 등이 붙잡혔다. 하지만 이 같은 실적은 범죄 규모에 비하면 ‘창해일속(滄海一粟)’ 수준이다. 국익을 위해 범죄를 고의로 방치하는 일부 저개발 국가들이 골치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의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하다. 임지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청소년의 사이버도박 경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만 13∼19세 청소년 가운데 사이버도박을 직접 해 본 5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7%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인터넷 불법 대출, 고리 사채를 썼다”고 답했다. 불법도박(57.7%), 사기(36.2%), 절도(22.2%) 등 각종 불법 행위를 경험한 사례도 적지 않아 사이버도박의 가없는 폐해를 절감케 한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아이들이 어둠의 세력이 벌이는 추악한 농간질에 덧없이 희생양이 되는 참상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청소년들이 사행심에 찌들어 가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을 것인가. 경찰 등 당국은 청소년을 노리는 불법 사이버도박 사이트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과 예방 활동을 펼치는 한편, 중독 청소년들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치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사이버도박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독버섯이다. 독버섯은 씨를 말리는 것 말고 다른 대책이 없다. 지금 단계에서 안 하면 영원히 못 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기를 바랄 따름이다.
돌이켜 보니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4·19 혁명 56주년이 되던 2016년 4월 19일, 그 역사적인 날에 그야말로 역사적인 한 인물이 유명을 달리했다. 초당(草堂) 신봉승(辛奉承) 선생. 83세의 일기였다. 선생은 ‘국민 사극 작가’로 불린 극작가요, 시·소설·평론·시나리오에 두루 걸쳐 130여 권의 저술을 남긴 광폭(廣幅)의 문인이었다. 그중에 많은 사람이 오래 기억하는 작품은 8년간 지속한 TV 드라마 '조선왕조 5백 년'이었다. 그 가운데는 세조 조의 한명회나 구한말 흥선 대원군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평가를 비롯하여, 그야말로 볼거리가 즐비했고 화제도 만발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성격이 확정된 역사에 대한 관점의 ‘반란’은 작위적인 의지만으로 가능할 리 없다. 오랜 사료의 검토와 연구, 그리고 역사관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선생은 이 곤고한 역사 학습의 과정을 초인적인 인내와 근면으로 넘겼다. 그는 언필칭 ‘재야의 역사학자’였다. '조선왕조실록'이 국문으로 번역되기 전에 9년에 걸쳐 통독하고 그 500년 역사를 통시적으로 관통하는 눈을 길렀다. 여러 곳의 말과 글에서 확인되는 선생의 문학관은 자신의 역사관과 면밀히 결부되어 있다. 그는 역사라는 사실적 골격에 문학이라는 상상력의 치장을 덧입힌 것이 역사문학이라는 명쾌한 논리를 가졌다. 치장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골격을 사실과 다르게 설정하면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그 논리로 그는 춘원 이광수와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들, 역사적 사실성의 고증을 위반한 작품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동시에 오늘날의 TV 사극들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심하게 이 사실과 상상력의 균형을 훼손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멀리하고 있는가를 탄식했다. 선생이 보는 당대의 현실 정치도 그와 같았다. 자격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정치 일선에 서 있기 때문에 나라의 모양이 그토록 무질서하다는 것이었는데, 그의 시각에 의하면 조선 시대에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정암 조광조와 같은 선비 정치의 모범이 있었다는 말이다. 600년의 우리 근대사를 한눈에 꿰뚫는 식견이 없이는 내놓기가 쉽지 않은 말하기 방식이다. 바로 이 식견으로 선생은 2012년에 매우 기발하고 뜻있는 책 한 권을 냈다.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라는 책이다. 조선조 500년에 명멸한 역사 인물 가운데서, 그 품성과 역량에 비추어 현재 한국 정부를 구성할 ‘드림팀’을 선발한 것이다. 이를테면 대통령에 세종대왕, 국무총리에 이원익,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황, 법무부 장관에 최익현, 행정자치부 장관에 이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박지원, 지식경제부 장관에 정약용, 검찰총장에 조광조, 감사원장에 조식과 같은 인재의 선발이다. 우리 근대사의 흐름과 그 경로를 따라 부침(浮沈)한 인물들에 대한 확고한 평가, 또 그에 따른 논증에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글쓰기다. 오늘의 한국 정치인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그런데 기실 선생의 수발(秀拔)한 이력과 업적보다 필자를 더 감동하게 한 대목은 늘 따라 배워야 할 그 사람됨이었고, 임종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던 삶의 길에 대한 신념이었다. 80세가 넘도록 10여 년을 일관한 저술과 강연도 놀라웠다. 해마다 몇 권의 책을 상재하고 150회 이상의 강연을 소화했으니 가위 철인의 면모가 없지 않았다. 더 나아가 선생은 내면의 질적 수준, 곧 철인(哲人)의 풍모를 지닌 지성인이었다. 늘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다짐했고, 후진들에게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름 석 자에 때 묻히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마음껏 높은 정신적 지경을 거닐고 또 아낌없이 자신의 예술과 학문의 재능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던 생애의 줄을 놓고, 선생은 영면에 들었다. 우리 역사의 행간을 탁월하게 읽어내던 그 눈길을 선물처럼 남겨두고 스스로 역사의 행간 속으로 떠났다. 선생을 잃은 것이 특히 슬펐던 이유는 그 창대한 경험과 지식 그리고 창의적 사유의 자산을 함께 잃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생을 추억하며 그리워할 때마다, 마침내 후대의 역사가 될 오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중한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강력 성범죄자들이 이웃에 살고 있는데도 현실적으로 이를 알지 못하고 사는 주민들이 불안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조두순·박병화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과자들을 제외한 다수 위험군에 대한 정보가 쉽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미지의 지뢰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런 모순을 해소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무명이지만 위태로운 성범죄 전과자들이 주는 불안을 해소할 효과적 방안이 시급하다. 성범죄자 신상등록 사이트인 ‘성범죄자 알림e’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는 정보공개 성범죄자는 모두 699명이다. 전국 공개 성범죄자 2949명 중 23.7%를 차지한다. 도내 공개 성범죄자 중 상당수는 범행을 저질렀던 장소 인근을 포함해 해당 지자체에 살고 있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과 ‘수원 발발이’ 박병화 등 언론에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들은 24시간 철통 감시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 성폭행범은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두순과 박병화와 비슷한 수준의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는 만큼 인근 거주자들의 불안감을 낮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찰 등에 따르면 조두순의 자택 근처에는 24시간 감시 초소가 설치됐으며, 상시 배치된 경찰관과 보호관찰관의 통제 및 기동순찰대 등의 순찰이 이뤄지고 있다. 박병화의 주거지 인근도 초소와 함께 기동순찰대와 지구대 경찰력이 고정 배치됐다. 이 둘은 실형을 선고받기 전부터 범행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알려지지 않은 성범죄자들은 같은 수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 성범죄자알림e 누리집에 따르면 조두순의 주소지인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는 실제 등록된 신상공개 성범죄자가 4명 더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60대 모 씨는 2012년 공범들과 함께 미성년자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50대 모 씨는 2013년 30대 여성을 강간해 징역 10년, 2021년 40대 여성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징역 6월이 결정됐다. 박병화 거주지인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는 11명이 더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40대 모 씨는 2008년과 2009년 성범죄를 저질러 특수강도 강간 등 혐의로 징역 11년, 또 다른 40대는 공범들과 함께 2004년과 2007년, 2008년 범행해 같은 혐의로 징역 12년을 복역했다. 징역 12년이 확정된 조두순과 징역 11년을 받은 박병화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의 범행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신상정보 공개 및 전자발찌 부착 등 조치 외 경찰과 보호관찰관의 통제는 사실상 받지 않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기신문 취재진에게 “24시간 감시 초소 설치 및 순찰 인력 배치만으로 1년에 수천만 원 상당의 혈세가 투입된다. 경찰 인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 모든 강력 성범죄자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실토했다. 2020년 12월 조두순, 2022년 10월 박병화 등의 출소 때마다 성범죄자를 국가가 지정한 시설에 살게 하겠다는 한국형 제시카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법무부가 2023년 입법을 시도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22대 국회에 들어와서도 김영진·박해철·장동혁 의원 등이 발의한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 지정 등에 관한 법률’도 계류 중이다. 제시카법이 쉽게 통과되지 못한 이유는 위헌·이중처벌 논란과 시설을 만들 지역 선정에 대한 부담감 등 때문이다. 이웃 어딘가에 성범죄자들이 시한폭탄처럼 존재한다는 국민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하는 것은 치자들의 무능 말고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문제는 정쟁거리가 돼선 안 된다. 잔불이 남아서 위태로운 산불 진화 현장에서 진화 장비를 놓고 ‘양동이’냐, ‘바가지냐’ 다투는 꼴과 다름없는 이 한심한 논란을 도대체 언제까지 지속할 참인가.
반전(反轉, Turning Over)이 돋보이는 영화를 검색해 보면 어김없이 선두를 점하는 작품으로 1996년 제작된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라는 영화가 있다.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이 연출하고 에드워드 노튼(Edward Harrison Norton)과 리처드 기어(Richard Tiffany Gere)가 주연한 미국영화다. 스릴러 영화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법정 영화(courtroom drama)에 가깝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한 주교가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현장에서 잡힌 소년 애런은 순박해 보이는 인물로, 변호사 마틴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 사건을 맡는다. 그러나 검찰은 애런이 주교에게서 성적인 학대를 받은 증거를 찾아내고, 애린의 범죄를 확신한다. 재판 과정에서 애런은 극심한 불안증으로 다중 인격자의 모습을 보인다. 법정에서 애런은 무의식에 지배되는 광기로 무언가를 떠들어댄다. 이 과정에서 범인은 애런이 아니고, ‘로이’라는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정은 혼란에 빠지고, 마틴은 애런이 심신상실 상태임을 호소하여 무죄를 받게 한다. 다음 날 마틴은 애런이 무심코 흘린 말에서 그가 건강한 정상인이었음을 눈치챈다. 마틴이 다그치자 애런은 자신의 그간 행동은 모두 연기였고, 자신이 주교를 죽였다며, 연기에 속은 마틴을 조롱한다. 내 선의를 사악하게 이용했구나! 마틴은 개탄하지만, 이미 판결은 끝난 뒤다. 이 영화는 반전의 스토리를 구축해 간 내적 과정이 정교하고 단단하다. 그 결과로 주제의 정합성에 반전이 딱 들어맞게 작용한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의 반전은 작위적이지 않고, 서사적 합리를 지닌다. 그래서 반전을 통하여 보여주는 인간 욕망의 내면이 오래 뇌리에 남는다. 동시에 법이나 제도의 숨은 모순들도 조용히 들추어 준다. 그러나, 반전이 인생론적 주제를 심어주는 명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반전을 통해서 임팩트 있는 재미를 구사하고 싶지만, 그런 영화일수록 불후의 명작이 되기는 어렵다. 이유는, 바로 그 ‘반전(反轉)’ 때문이다. 반전이란 흔하지 않다. 반전이 흔하면 그것은 반전이 아니다. 인생을 통틀어서 기막힌 운명적 우연과 맞닥뜨려 일어날까 말까 한 것이 반전이다. 그러므로 반전이란 보편적일 수 없다. 영화나 문학의 가치는 어떤 기발함을 구하는 데 있지 않고, 삶의 보편성 위에 서 있을 때 살아난다. 바로 그 보편성 때문에 작품은 깊은 공감의 울림을 주는 것이다. 보편성을 확보한 반전을 그려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이 꿈꾸는 반전이란 세속적이다. 평범한 삶의 반전을 꿈꾸며 복권을 사고, 위험한 투자도 한다. 인생 반전을 기대하며 이름을 바꾸고, 성형을 하기도 한다. 사표를 내고, 이민을 가고, 이혼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서도 반전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는 지천으로 많다. 인생을 ‘반전의 공식’으로만 풀어가려는 것은 인생에 대한 외경을 버리는 일 아닌지 모르겠다. 러시아 작가 푸시킨이 친숙한 어조로 일깨워, 이제는 진부해진 구절이 새삼 참신하게 다가온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반드시 오리니/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곧 그리워지리라.”
이른바 ‘소버린 AI’의 시대다. 인공지능이 경제·안보의 핵심 자원으로 간주되면서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 인프라, 모델 개발, 인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역시 대규모 GPU 확보, 한국형 인공지능 모델 개발을 위한 5개 컨소시엄 선정 및 지원, ‘국가과학자’ 제도 신설 등 다양한 정책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세계시장의 확장 그리고 디지털 기술의 등장은 전통적 의미의 주권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데이터는 국경 앞에서 멈추지 않았고, 글로벌 플랫폼은 영토를 초월한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클라우드, 통신망, 플랫폼 등의 서비스가 외국 기업에 의해 제공될 경우, 국가 주권은 제한된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문제로 텔레그램을 수사하는 데 한국 정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허비했는지를 떠올려보라. 반면 자국 기업이 핵심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주권적 영향력은 커진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네이버, 카카오 등 자국 기업을 통해 백신 관련 정보를 제공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전 세계 국가들은 디지털 기술 전반에 대한 통제력, 즉 디지털 주권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기술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 인프라 운영, 서비스 개발, 인재 고용 모두 기업이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이자 실천자이다. 즉, ‘소버린 AI’ 시대에 인공지능 기술이 중요하게 여겨질수록 인공지능 기업은 유력한 주권적 행위자가 된다. 결과적으로 국가는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실질적 주권자, 특히 인공지능과 같이 자원 집약적인 기술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소수의 대규모 기업과의 관계를 재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버린 AI’의 시대, 국가는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기업은 국가의 필요를 부풀리며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공생한다. 문제는 정당성이다. 기업은 선출되지 않았고, 민주적 통제에도 취약하다. 결과적으로 ‘소버린 AI’ 시대는 국가 주권의 일부를 인공지능 기업에 이양한 것에 대한 항시적인 정당성 문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두 측면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첫째로, 소버린 AI와 관련된 의사결정에 누가 참여하는가? 현재 인공지능과 관련된 정책 의사결정은 대기업 중심으로 좁혀져 있으며, 인공지능의 부정적 영향을 직접 겪는 사회 집단은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투입 정당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로, 소버린 AI가 자원 집중을 정당화할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가? 인공지능이 감시, 사생활 침해, 차별, 불평등, 기후 위기와 같은 기존 사회 문제를 한층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뼈아프다. 교육, 돌봄, 기후 같은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뒤로하고 인공지능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산출 정당성 역시 갖추었다 보기 어렵다. ‘소버린 AI’ 시대의 주도권은 결국 인공지능 거버넌스에 있다. 기술 경쟁력에만 매달리면 정당성 결핍은 더 커질 뿐이다. 인공지능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면, 민주적 감시와 사회적 책임 강화는 이 시대의 첫 과제다.
지난 13일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소재 제일시장에서 67세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시장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60대와 70대 여성 2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당했다. 경찰은 사고 트럭 내 페달과 브레이크를 촬영하는 ‘페달 블랙박스’를 확보했다. 영상 분석 결과 사고 당시 운전자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에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서도 70대 여성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행인을 치었다. 고령자 운전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 오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해 7월 1일 시청역 참사 이후로 논란은 더욱 커졌다. 69세 남성이 운전하던 차량이 역주행을 하다가 인도와 횡단보도로 돌진했다. 9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참사였다. 운전자는 자동차의 문제로 인한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조사 결과는 ‘운전자 과실’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70대 운전자가 골목길로 돌진해 1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올해 5월 서울 강동구 길동 복조리시장에서도 60대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인도로 돌진, 11명이 부상당했다. 해당 사고 운전자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었지만 경찰은 ‘페달 오조작’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국과수가 밝힌 급발진 의심 사고의 88%는 페달 오조작이었고 급발진 인정은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와 사망자 수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에 3만 4652건(735명)이었으나 2023년 3만 9614건(745명)으로, 2024년엔 4만 2369건(761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에 고령층 운전면허 반납 제도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고령층 운전면허 반납 제도는 지난 2019년 부산시에서 첫 시행, 지금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실제 고령층이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확인됐다. 고령층 운전면허 소지자는 2022년 439만 명에서 지난해 517만 명으로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반납률은 2.6%에서 2.2%로 오히려 감소했다. 제도가 시행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실제 반납률은 2%대에 그쳐 실효성 논란마저 일고 있다.(관련기사: 경기신문 17일자 7면, ‘부천 참사로 드러난 고령 운전 문제, 면허 반납 제도 실효성 논란’) 그렇다면 어째서 반납율이 저조할까? 한마디로 운전면허를 반납한 뒤의 생활불편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각 지방정부들은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10~20만 원 상당의 교통카드 등 혜택을 제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낙후 지역에서 교통카드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이 자주 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혜택보다 생활불편이 더 크다고 한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의 말처럼 “경기도에서 수원시나 용인시 등 대도시는 대중교통 이용이 용이하지만 고령층이 밀집된 지역은 1시간에 버스 1대가 오는 등 교통편에 불편함이 많다. 고령층이 운전면허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고령층은 시력 저하 및 반사신경 둔화로 운전 중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사고들도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헷갈려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고령층이 면허를 반납할 수 있도록 혜택을 강화하고 대중교통을 증설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뿐 만 아니라 운전을 하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없는 생계형 고령 운전자도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증가하는 고령자 운전 사고로 인해 “나이 들면 운전을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노인들의 절박한 사정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공감을 얻고 있는 만큼 다방면의 배려가 필요하다.
냉혹한 국제 현실과 과제 오늘날 지구상에는 200여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하며,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등 G7은 물론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같은 인구 대국까지 국제 질서 재편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 선도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게 이는 동시에 중대한 기회이자 위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으로 재출발한 대한민국은 반세기 만에 산업화·민주화·정보화·세계화를 압축적으로 달성하며 ‘한강의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2009년에는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OECD DAC 가입)으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고, 2021년에는 UNCTAD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K-음악·영화·드라마·음식·미용·IT·한국어 등으로 대표되는 K-컬처는 ‘15세기 세종, 18세기 영조·정조 시대 이후 최대의 문예부흥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세계적 영향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21세기 국제정세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자국 우선주의의 확대로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하다. 이는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가 강력한 국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도, 단기 처방도 아닌 국가 역량을 구조적으로 강화하는 중장기 전략이다. 국력의 새 기준, 이산성(Diaspora)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우리는 국민·동포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산성(離散性)’을 국력 측정의 새로운 척도로 삼아야 한다. 첫째, 글로벌 인재 네트워크의 전략적 활용: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전 세계 2억8천만 명이 출생국 밖에서 살며, 이들의 송금액은 2022년 기준 8,31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이스라엘은 물론 인도·아일랜드·멕시코·튀르키예·베트남 등도 해외 네트워크를 전략 자산으로 활용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한국 역시 글로벌 이산 네트워크를 ‘부수적 자산’이 아닌 ‘핵심 국가 역량’으로 재평가해야 한다. 둘째, 국력의 총체적 역량 확장: 국력은 인구·영토·경제력·군사력·외교력 같은 하드파워뿐 아니라 가치·국민 사기·국정 목표의 정당성과 같은 소프트파워를 포괄한다. AI·빅데이터·글로벌 초연결성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시대일수록 국민·동포의 이산성은 국가 외연을 확장하고 영향력을 투사하는 결정적 자산이다. 셋째, ‘섬 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국가 공동체: 초저출산·고령화·인구절벽의 경고등이 켜진 대한민국은 더 이상 영토·국적·혈연·이념의 울타리에 갇힌 ‘섬 국가’일 수 없다. 남과 북, 700만 재외동포, 국내 300만 외국인을 포괄하는 ‘열린 국가 공동체’ 구축이 필요하다. 이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할 때 대한민국은 글로벌 혁신·통합국가로 도약할 수 있으며, 국력의 확장 가능성 역시 G3 수준까지 열려 있다. 넷째, 질적 변화에 대응하는 미래지향적 정책 설계: 708만 재외동포 중 외국국적동포가 65%이며, 이 중 다수는 1.5세·2세 이하 세대다. 이들에게는 상징적 지원이나 수사적 응원으로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다. 이들을 미래 국가 인재자산으로 확보할 체계적·현실적 정책이 시급하다. 다섯째, ‘뿌리의식과 세계시민성’의 동시 강화: 재외동포는 한국적 정서를 지닌 ‘글로벌 코리안’이자 현지에서 살아가야 하는 ‘세계시민’이다. 국익과 실용을 중시하는 정부라면 이민·다문화 정책과 재외동포 정책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들의 경제력·정치력·정보력과 현지 전문성·신뢰도를 국력 증진의 전략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섬세하고 정교한 정책 개발이 요구된다. 여섯째, 재외동포 데이터의 고도화: 조만간 발표될 '2025 재외동포 현황'은 국력 재평가의 핵심 자료가 되어야 한다. 단순 인구 집계를 넘어 국가별·세대별·체류 자격별 역량과 현안을 계량화하고, 이를 재외국민 보호와 재외동포 지원 제도 개선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빅 데이터 기반 정책체계가 강화될 때 비로소 국력의 실질적 확장이 가능하다. 일곱째, 이산 네트워크를 이끄는 리더십: 경쟁국들은 해외 인적자산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지 않는다. 높은 교육열, 근면성, 강한 뿌리의식을 겸비한 재외동포는 사실상 대한민국 국력의 숨은 원천이었다. 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소속감·유대감·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리더십만이 초저출산·AI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생존과 도약을 보장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대한민국은 지금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국력 신장의 새로운 동력이 절실하며, 그 중심에 재외동포가 있다. 재외동포는 대한민국의 ‘바깥’이 아니라 국력의 확장된 범위, 즉 국가 외연이자 ‘또 하나의 집(Home)’이다. 이제는 영토·국적·혈연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 전 세계에 뻗어 있는 국민·동포의 이산성을 국력 신장의 촉매제로 삼아야 한다. 민·관·산·학이 서로 힘을 합쳐 우리 재외동포정책의 패러다임을 고도화하고 지원체계를 정밀하고 유연하게 재설계할 때, 대한민국은 세계평화·인류 번영에 기여하는 자랑스러운 국가 공동체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언론매체 수는 그야말로 확장일로에 있다. 법적으로 등록되거나 허가되지 않은 혹은 그럴 필요가 없는 자칭 언론매체의 증가도 가파르다. 양적으로만 따지면 언론산업은 얼핏 유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종사자나 전문가는 물론 시민도 언론산업의 열악함을 잘 안다. 주위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의 인기는 시들하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미디어 전공생은 해마다 줄고 있다. 관련 강의가 폐강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 많았던 대학언론도 쇠퇴의 길에 접어든 지 오래다. 언론을 제외하고도 전망 밝은 미디어 영역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선뜻 언론에 자신의 미래를 맡겨보라 청년에게 추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청년이 자발적으로 만든 언론매체는 내게 언제나 응원의 대상이다. 숟가락 하나 올려본다. 작년 4월 창간한 '토끼풀', 최근 여기저기에서 많이 소개된 신문이다. 제호는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토끼풀 신문사’에서 따왔단다. 서울 은평구 6개 중학교의 학생 32명이 만든다. 이들이 직접 기사를 쓰고 편집하며 발행한다. 중학생이 만드는 재기발랄한 학급신문 정도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종이신문도 발행한다. 이들은 창간 이래 청소년의 권리와 복리 증진을 위해 청소년 교통비, 학생회 문제, 특수교육 대상 학생 괴롭힘, 학교 공사, 학생인권조례, 학교 급식실 노동 환경, 대선후보 청소년 공약 등 관련 보도를 했다. 이번 달에 총 20면으로 발간한 종이신문 제18호에는 교육감, 정당 대표, 국회의원 등의 기고가 있다. 은평구의 광고도 실렸다. '토끼풀'은 총 8면이었던 지난달 제17호의 1면을 백지로 발행해 널리 알려졌다. 일부 학교의 언론 탄압에 항의한다는 이유였다. '미디어스' 기사에서 편집장은 신문을 배포해 온 4개 중학교 중 3곳에서 한 번 이상 배포 금지 처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한 중학교는 기자가 직접 배포한 신문을 압수하고 배포 금지했다고 한다. 한 기자는 다른 중학교에서 배포 전 사전 검사, 기계적 중립과 수정 요구 등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이 통제와 간섭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백지 사태 이후 광고가 많이 들어오고 후원자가 천 명 정도 된 모양이다. 진보 유튜버의 후원 제안이 있었지만 편집장은 거절했다. 중립을 표방하고 있고, 종속되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였다. 그는 언론의 근본 목적이자 존재 이유를 문제 제기라고 했다. '토끼풀' 구성원이 겸연쩍어 할 수 있겠으나, 이들의 언론관은 놀랍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저항도 마다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보도 수준이다. 직접 취재를 기본으로 하는 보도는 기성 언론의 낯을 부끄럽게 한다. 상당량을 차지하는 심층보도 또한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이들 세대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전통 언론매체인 종이신문을 선택한 것이 신기하다. “앞으로도 '토끼풀'은 여러분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 정론(正論)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제18호 20면에 실린 성명의 마지막 문장이다. 자못 비장하다. 또 다른 '토끼풀'이 하나쯤 더 나온다면, 우리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잠시나마 접어둘 수 있겠다.